仙道 丹功 佛敎/수도 종교

여동빈(呂洞賓) 신선 이야기

초암 정만순 2018. 1. 5. 13:07




여동빈(呂洞賓) 신선 이야기


중국의 팔선(八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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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선은 중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기행(奇行)과 속세를 초월한 것으로 알려진 8명의 신선이다.

 이들 팔선은 종리권ㆍ장과로ㆍ이철괴ㆍ한상자ㆍ여동빈ㆍ조국구ㆍ남채화ㆍ하선고(女神仙)를 말한다.

민간에서 유행하는 팔선도 그림의 좌측에서부터 조국구(曺國舅)는 송나라 조황후의 아우로서 신선이 되어 운양판(雲陽板)을 가지고 있으며,

종리권(鍾離權)은 한나라 때 사람으로 부채를 가지고 있다.

한상자(韓湘子)는 한상의 존칭이고 당나라 때 인물로서 유명한 유학자이며 문장가인 한유의 조카인데 피리를 불고 있다.

한상자 그림 뒤에 있는 여동빈(呂洞賓)도 당나라 때 사람으로 등에 칼을 차고 손에는 불자(佛子)를 들고 있다.

유일한 여자 신선인 하선고(何仙姑)는 이름이 경(瓊)이며 당나라 때 사람으로 연꽃을 들고 있다.

그리고 남채화(藍采和)도 당나라 사람으로 청년의 모습을 하고 꽃바구니를 들고 있으며, 장과로(張果老)는 장과의 존칭으로 당나라 때 사람이며 나귀를 거꾸로 타고 어고와 간판을 가지고 있다.

이철괴(李鐵拐)는 절름발이로 어느 시대 사람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표주박과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 이들 팔선은 개별적으로 당나라와 송나라 문헌에 나타나다가 원나라 때부터 팔선으로 정리된 듯하며 중국의 소설, 희곡, 회화, 건축 등 여러 분야의 주제가 되어 왔다.

또한 민간에 널리 유전되어 오는 여러 가지 수많은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여기서는 이들 팔선의 출생비화, 수도과정, 부명재색(富名財色)을 초월한 행위, 신통 자재한 인생항로, 시공을 초월한 기행(奇行)을 살펴보겠다.

제 일화는 고금에 널리 알려진 여동빈의 이야기이다



                                             


 

자료출처 : http://blog.daum.net/ajr3308/3864339


 여동빈(呂洞賓) 

 

여동빈 악양루에 오르다 

  

신선 여동빈의 일화에 앞서 그의 호쾌함이 돋보이는

당시 한 수가 있다. 당나라 시대,

어느 날 동정호에 달이 휘영청 뜬 밤,

여동빈이 홀로 악양루에 올라 시를 읊었다. 

 

자영(自詠) 스스로 읊노라 

 

獨上高樓望八都 독상고루망팔도 

墨雲散盡月輪孤 묵운산진월륜고 

茫茫宇宙人無數 망망우주인무수 

幾個男兒是丈夫 기개남아시장부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팔방을 바라보니 

검은 구름 흩어지고 둥근 달만 중천에 외롭게 떠있다. 

망망한 우주에 사람은 많고도 많은데 

사내대장부라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시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우주공간까지

이어지는 기개를 느끼게 하는 통쾌한 작품이다.

여동빈은 당(唐)시대의 대표적인 도사이며

민간에서는 팔선의 하나로 인구에 회자되었다.

도사 여동빈이 활약하던 그 당시는 황소(黃巢)의

난으로 세상이 뒤숭숭할 때였다.

그래서 혹자들은 이 시에서 여동빈이 황소의 난을

평정할 사람 하나 없는

현실을 탄식한 것으로도 해석한다. 

 

여동빈이야말로 팔선 중에서 전해오는 일화와

사적이 가장 많다.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개가 여동빈을 보고 짖다니,

좋은 사람을 몰라본다”(狗咬呂洞濱, 不識好人心)라는

것이 있다.

그 정도로 여동빈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여동빈 성명 석자는 세간을 두루 돌면서

중생을 구도한 신선의 대표적 명칭이 되었다. 

 

출생일화 





 


여동빈의 본명은 경(?)이고, 자(字)는 백옥(伯玉)이며 또 다른 이름은 소선(紹先)이다.

출가 이후에는 이름을 암(岩)으로 고쳤고, 자는 동빈(洞賓)이다. 그는 당나라 후대,

관서 하중부 낙현사람이다. 현재 지명은 산서성 영락현이며,

그곳에 그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서 만수궁(萬壽宮)을 세웠다.

그는 당나라 덕종 정원(貞元) 12년(797년) 4월 14일에 출생했다고 한다.

그의 모친이 여동빈을 낳을 때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고 자주색 구름이 하늘을 덮었으며

한 마리 선학(仙鶴)이 하늘에서 날아 내려와 침상으로 날아들다가 돌연 사라졌다고 한다. 

 

마조 도일(馬祖 道一)의 미래 예견 

 

여동빈은 태어나면서부터 관상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고 한다.

즉 양쪽 눈썹이 길고 비스듬히 구레나룻과 이어졌고, 봉황의 눈매에 광채가 나며, 

코는 높고 단정하며 왼쪽 눈썹과 왼쪽 눈 아래 검은 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이렇게 기이한 조짐을 갖고 태어난 이 아이를 매우 총애하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교롭게도 불교 선종 6조 혜능대사의 손(孫)제자인

마조화상이 그의 집을 방문했다.

동빈의 부친은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고 와서 마조대사에게 보이면서 아이의 앞날을 물었다.

마조대사가 동빈의 운명을 점쳐본 후 

“이 아이는 풍모가 맑고 기이하며, 골상 또한 평범하지 않으니,

풍진을 벗어난 뛰어난 인물이다. 아이가 성장한 후 우여즉거(遇廬則居, 여를 만나면 머물고)하고,

우종즉고(遇鍾則叩, 종을 만나면 두드려라)하라면서 이 여덟 자를 평생 꼭 기억하라.”

말을 남기고 갔다고 한다.

나중에 마조대사가 예언한 그 여덟 자의 의미처럼 동빈은 과연 여산(廬山)에서 수행하였고,

종리권(鍾籬權)을 만나 도를 배웠다고 한다. 

 

*주 : 마조 도일(馬祖 道一)

 

당나라때 승려로 750년 전후로 활약하였으며 속성은 마(馬)씨, 통칭 마조도일, 사천성 출신으로 19세 때 출가하여 선종 6조 혜능 문하의 남악 회양(南岳 懷讓)의 법을 이었다.

강서성 홍주를 중심으로 교화하였기 때문에 그 일파를 홍주종(洪州宗)이라고도 한다.

널리 알려진 문하생이 백장, 대매, 남천 등이며 남악의 종풍이 일시에 융성하였으며,

후일 임제종(臨濟宗)으로 발전하였다. 마조 천하라 하여 마조의 선풍이 온 세상을 덮었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선(禪)을 실천하는 새로운 선종이 이 무렵 시작되었다고 한다. 

 

● 여동빈의 젊은 시절, 두 차례 과거시험 낙방 

 

  

여동빈은 어린 시절에 총명이 남달라 하루에 글자 만 자를 암송하고 말이 입에서 나오면 문장이 되었다고 한다.

성장한 후 신장은 8척 2촌에 목덜미는 기다랗고 이마는 넓었으며, 봉(황)의 눈과 광채가 나는 눈썹에

행동거지는 당당했다고 한다. 성격은 소박하였으나 말주변이 없었으며, 언사가 능숙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성년이 되어 김씨를 아내로 맞아 자녀 넷을 두었다. 당나라 무종(회창) 연간에 여동빈은 두 차례나

장안에 가서 과거를 보았으나 두 번 다 낙방하였다고 한다. 



● 장안 술집에서 선인(仙人) 종리권을 만남 

  

 

여동빈이 두 번째로 장안에 가서 과거에 응시하였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46세였다.

과거에 낙방하고 낙심한 가슴속에 쌓인 울적한 그 심정은 보지 않아도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오후 울적한 마음을 풀기 위해 발길이 가는대로 걷다가 어느 작은 술집에 들어갔다.

자작하면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심정은 마치 바람 따라 거리를 떠도는 

가을 낙엽처럼 의지할 바 없이 쓸쓸하였다. 

 

바로 이때 술집으로 긴 수염에 빼어난 눈썹, 안색이 붉으레하게 빛나는 도사복장을 한

노인이 걸어 들어와 여동빈의 맞은 편 빈자리에 앉았다.

세간의 다툼이 없는 듯 사리사욕이 없고, 온화함이 넘치는 듯한 그 노인의 풍모는

여동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마주하여 술잔을 권하면서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 선인 종리권 즉석에서 시를 짓다 


술잔을 돌리면서 서로의 심사를 한마디씩 토로한 후,

풍채 좋은 노인은 돌연 시심이 크게 일어난 듯

술집 종업원을 불러 붓과 먹을 가져오게 하였다.

노인은 즉석에서 시를 읊으면서 붓을 들어

술집 벽 위에 다음과 같이 써내려 갔다.  


坐臥常携酒一壺  좌와상휴주일호 

不敎雙眼識皇都  불교쌍안식황도 

乾坤許大無名姓  건곤허대무명성 

疏散人間一丈夫  소산인간일장부 

 앉으나 누우나 언제나 한 호로의 술을 가지고 다녔고 

두 눈으로는 황도(세상일)의 일을 모르도록 했다네 

하늘과 땅은 이렇게 큰데 성도 이름도 없이 

한낱 인간세상을 떠도는 한 사내일 뿐일세

 

여동빈은 시를 음미해 보고는 노인의 시풍이 표일하고 호방함을 깊이 찬탄하였다.

여동빈은 두 손을 맞잡고 가슴까지 올려 절을 하고난 후 노인에게 물었다.

“비록 하늘과 땅이 이렇게 큰데 성도 이름도 없다고 하였지만, 후배인 저로서는 도장께서도 칭호가 있을 것 같아

묻자옵니다. 도장의 성명 삼자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노인은 두 눈에 미소를 띠면서

“나의 성은 종리(鍾離)이고 이름은 권(權)이요. ”라고 하였다.

여동빈은 ‘종리(鍾離)’ 두 글자를 듣자, 마음속에 마치 종이 울리듯 옛날 부모님이

늘 말씀하셨던 ‘마조(馬祖)선사의 예언’이 떠올랐다.

즉 “우여즉거(遇廬則居)하고 우종즉고(遇鍾則叩)하라” (廬를 만나면 머물고, 鍾을 만나면 두드려라)

문 앞에 앉은 이 기이한 노인이내가 마땅히 두드려야 하는 종(鍾)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 여동빈, 종리권에게 詩로 화답하다 

 

여동빈은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예언이

적중하는 상황을 만나자 순간 멍하였다.

이때 종리 노인이 술잔을 들며

“자, 우리 술 한 잔 합시다.”하면서 술을 권한다.

술을 마신 후 종리 노인은

“자네도 시 한수 짓는 게 어떠한가?”하였다.

여동빈도 술 한 잔을 마시자 시심이 샘솟듯 올라와

붓을 들고 술집 벽 위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 

 

生在儒家遇太平 생재유가우태평 

懸纓垂帶布衣輕 현영수대포의경 

誰能世上爭名利 수능세상쟁명리 

欲侍玉皇歸上淸 욕시옥황귀상청  

유가 집안에 태어나 태평시대를 만났건만 

갓 끈을 걸어두고 허리띠를 벗어 놓았으니

삼베옷이 가볍다(벼슬하지 않은 포의를 비유) 

누가 세상과 더불어 명예와 이익을 다투겠는가? 

옥황상제를 모시러 상청경으로 되돌아갈까 한다. 

 

종리권은 여동빈의 시를 한참 물끄러미 쳐다본 후 크게 기뻐하면서

“공자는 이미 도를 향하는 마음이 있는데, 나를 따라 세상을 버리고 입산하지 않겠소?”하였다.

여동빈은 머리를 흔들며 다만 집안에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고는 

아무래도 속세를 떠나기가 어려운 듯이 말하였다. 

 

종리권은 여동빈을 한번 척 보고는 그의 마음을 다 꿰뚫어 본 듯이 몸을 일으키면서

“그대와 나는 곧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 지금은 우선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 당신은 여기 적혀있는 이 여관의 주소로 나를 찾아오라.”고 말하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여동빈, 종리권을 찾아가다 

 
 
 

종리권과 헤어진 다음날 여동빈은 종리권이 준 주소를 들고 장안 근처 여관으로 찾아갔다. 

찾아간 때가 정오여서 선인 종리권은 마침 방안에서 작은 화롯불을 피워놓고 부채질을 하면서

노란 조밥을 짓고 있었다. 서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여동빈은 갑자기 졸음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종리권이 보고는 "자네는 이미 피곤에 지쳐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니 저기 내 침상에 올라가 조금 자게나.

내게는 작은 베개가 있는데, 이름을 여의침(如意枕)이라고 하네, 자네는 여의침을 베고 자면서,

여의몽(如意夢)이나 한번 꾸게나."라고 했다. 

 

여동빈이 여의침을 베고 눕자마자 몽롱해지더니 하염없이 잠속으로 곯아떨어져 꿈을 꾸었다.

여동빈은 젊어서 장안에 가서 진사시험을 보았다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었다. 

 그 후 권문세가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 장가들고, 자식도 여럿 낳았다.

인간세상의 부귀영화가 한몸에 모이듯이 출세 가도를 달렸다. 평생의 소원을 크게 이루었다고 기뻐하였다. 

 

바야흐로 만사가 순조로워 인생의 최고조를 만난 듯 득의양양할 때, 재앙이 하늘에서 내려오듯이 홀연

다른 당파의 모함에 걸려들었다. 천자의 노여움이 하늘을 찔러, 감찰기관으로 하여금 죄를 다스리게 하여

재산을 전부 몰수하였고, 아내와 자식들도 다 흩어졌으며, 그 자신도 재판을 받아 강제로 멀고먼 변방으로

쫒겨나게 되었다. 그 자신 혈혈단신, 그 고초는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인생의 무상함을 크게 탄식하다가 홀연 꿈에서 깨어났다.

여동빈은 잠에서 부시시 깨어나면서 

그 수십년의 인생살이 역정에서 부귀영화가 정녕코 한바탕 꿈에 불과하다는 것인가?”라고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낮잠에 들기 전처럼 선인 종리권이 아직까지도 화롯가에 쭈구리고 앉아 노란 조밥을 짓고 있었는데 그 조밥이 아직 익지도 않았다. 

 

● 선인 종리권을 스승으로 모시다 

 


선인 종리권은 여동빈이 꿈에서 깨어난 것을 보고는 웃으며 읊조리듯이 말했다. 

 "노란 조밥이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꿈이 끝났다. 너의 오십년 부귀영화도 절정까지 갔다가

이렇게 결말나지 않았는가?" 

 

여동빈은 본래 도를 향한 마음이 있었는데, 단지 지난 10년 간 어려운 고난이 있었고

그 고난에 대한 소득이 없어서 불만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생생하게 꿈속에서 점화(點火)되었고, 갑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깨닫게 되자

세상에 미련을 버리고 수도하고자 결심하였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운방(雲房)선인 종리권에게 절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 자네 황백술(黃白術)을 배우겠는가 ? 

 

선인 종리권은 여동빈을 제자로 받아들인 후 여동빈에게

"천부적인 너의 좋은 자질을 보건대 세상을 제도하는 선(仙)술을 닦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욕칠정에 물들은 인간의 마음을 제거하기가 어려워 신선이 되기는 어렵다.

너의 공행(功行)을 다 채우지 않아서 설사 신선이 되는 신선술을 배웠다 하더라도 실제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그러니 내가 너에게 쇠를 금으로 만들고, 납을 은으로 만드는 황백술(黃白術)을 전수하는 것보다 못하다. 너는 이 황백술로 세상을 제도하고 사람을 이롭게 하라. 삼천 가지 공덕이 차고 팔백 가지 선행을 마치고 나면 내가 다시 와서, 그때, 너를 제도하겠다. 너의 생각은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 종남산 학정봉 동굴에서 수련하다 -

 

사제의 예가 끝난 후 선인 종리권은 여동빈의 손을 끌고서 장안교외로 갔다.

그곳에서 순간적으로 공간이동을 하여 종남(終南)산 학정(鶴頂)봉 위의 동굴 밖에 도착했다.

동굴에 들어가니 햇빛이 비추어 들어오는데 포근하기가 봄날과 같았다.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큰 반석 위에 마주앉아 원화주(元和酒)를 석잔 마시고 있는데,

비취빛 저고리에 붉은 바지를 입은 사람이 구름을 밟고 기이한 향기를 풍기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와 선인 종리권에게 봉래산 천지회 모임에 같이 가자고 초대한다.  

종리권은 수련서인 현결(玄訣)을 남겨놓고, 자주색 구름을 타고 하늘 저 멀리로 사라졌다.

며칠이 지난 후 종리권이 동굴로 되돌아 왔을 때 여동빈은 스승이 남겨놓고 간 현결(玄訣)을

숙독해서 경지가 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스승과 이별 - 십년 후 동정호에서 만나기로 약속 


스승과 함께 수행하고 있는 동안 청계선인 정사원과 태화선인 시호부가 선인 종리권을 만나러 왔다.

여동빈은 두 분의 선인에게 절을 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 당시 때는 바야흐로 봄이라 새들이 다투어 울고

시절이 호시절이라 선인 종리권은 흥에 겨워 시를 읊조렸다. 

 

春氣塞空花露滴 춘기색공화로적 

朝陽拍海岳雲歸 조양박해악운귀  

봄기운이 공중에 가득하고 꽃에 이슬이 맺혀 떨어지는데 

아침 해가 바다에서 솟아오르니 산 구름이 흩어지더라 

 

스승 종리권은 여동빈에게 이 시를 동굴 입구에 새겨 놓으라고 했다. 

이어서 종리권이 여동빈에게

“나는 하늘의 옥황상제를 배알하러 가려고 한다. 너는 이 동굴에서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

십 년 후 동정호 악양루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영보부법(靈寶符法)이라는 도가 비전의 수련서를 주고, 삼원삼보(三元三寶)에 관한 설법을 하였다.

설법을 마치자 두 명의 천사가 금첩(황금으로 만든 초대장)을 받들고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어서 하늘에서 봉황과 난새가 출현하고 선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선인 종리권은 두 천사와 함께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져갔다. 

 

스승 종리권이 떠난 후 여동빈은 동굴에서 몇 년을 머물렀다. 수련을 한 동굴이 거대한 암석 가운데 있어

여동빈은 동굴을 집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름을 경(瓊)에서 암(岩)으로 고치고 자(字)를 동빈(洞賓: 동굴속의 손님)이라 하였다. 또 동빈은 이곳에서 도가의 진전(眞傳)을 모두 얻었고, 수도하여 몸속에 음의 기운(塵陰)을 모두 몰아내었으며, 순양(純陽: 순수한 양의 기운)만 몸에 남아 도호를 순양자(純陽子)라고 하였다. 

 

십년 후 악양루에서 스승과 해후 

 


종남산 학정봉 동굴을 나온 후 동빈은 누런 모자에 도사복장을 하고 호(號)를 회도인(回道人)이라 바꾸었다.

회(回)자는 크고 작은 두 개의 口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암암리에 여(呂)자로 姓이 여(呂씨, 여동빈)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때부터 동빈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천하를 노닐면서 사해를 집으로 삼았다.

스승 종리권과 만날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동빈은 동정호로 갔다. 

 

악양루에 올라 10년만에 스승 종리권과 해후하였다. 종리권은 동빈을 데리고 자기의 스승 고죽진군(苦竹眞君)을 알현하였다. 고죽진군은 동빈에게 도가의 비전인 일월교병지법(日月交幷之法)을 전수하였다. 

 


● 여산에서 천둔검법을 배우다 


 


그 후 동빈은 스승과 사조와 헤어진 후 양자강 하류 지역에 있는 천하명산 여산(廬山)에 놀러갔다가 화룡진인(火龍眞人)을 만나 수련하게 되었다. 이 여산이야말로 일찍이 마조대사가 예언한 우여즉거(遇廬則居:여를 만나면 머문다)가 아닌가?   동빈은 여산에서 화룡진인에게서 천둔검법(天遁劍法)의 진수를 배웠다.

이때부터 동빈이 강호상에 노닐 때 항상 몸에 보검을 차고 다녔다. 선인 여동빈은 이 칼로 수많은 요마(妖魔)를 제거하고 허다한 공덕을 쌓았으므로 항상 등에 칼을 찬 모습으로 신선도(神仙圖)에 등장한다. 

 

 



● 구름 따라 무창 황룡산에 오르다. 

 

 

하루는 여동빈이 구름 따라 노니면서 무창 황룡산으로 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산중 절위에 자주색 구름이

가득 덮여 있어 이인(異人)이 있음을 알고 문득 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이름을 떨치던 유명한 황룡선사가

마침 법당에서 설법을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여동빈도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 무리들 속에 묻혀 함께 법당으로 들어갔다. 황”오늘 여기에 법을 훔치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 늙은 중은 설법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동빈, 황룡선사와 선문답을 하다 

 

여동빈은 곧 자기를 가리키는 것을 알고 군중 속에서 나와 예를 취하면서 말하였다. 

 “화상에게 묻겠습니다.  

一粒粟中藏世界 일립속중장세계 

한알의 조 알갱이 속에 세계가 감춰져 있고 

半升金當內煮山川 반승당내자산천 

반 되 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는다는 이 한 마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황룡선사가 껄껄 웃으며 여동빈을 가리키면서 “원래 당신은 시체 같은 죽지 않은 귀신이구나!” 

여동빈 또한 노여움을 띠지 않은 채 눈썹을 펴면서 말하였다.

“화상은 내가 늙어도 죽지 않는 것을 조롱하지 말라. 나의 호주머니 안에는 장생불사의 약이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 황룡선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饒究經得八萬劫 요니경득팔만겁 

당신이 설사 팔만 겁을 지내왔더라도 

難免一朝落空亡 난면일조락공망 

하루아침에 공망에 떨어지는 것을 면할 수 없다. 

 

여동빈, 황룡선사와 법력을 겨루다 

 

여동빈은 황룡선사가 기지와 총명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황룡선사의 법력이 얼마나 고명한가를 시험해보고 싶어서 등에 차고 있는 보검을 꺼내면서 말하였다.  “이 검은 내가 휴대하고 다니는 신령한 보검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능히 되는데 검을 칼집에서 나오라고 하면 곧 빠져 나오고, 칼집에 들어가라고 하면 곧 들어간다. 선사께서는 능히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황룡선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비록 영물이지만 그것이 도력 있는 사람의 명령을 들어야 가능할 것 같은데,

당신이 먼저 한번 시험해 보시오.”하였다. 

 

여동빈은 보검한테 칼집에서 나오라고 외치자 그 검은 칼집에서 스스로 나와 은빛을 뿌리며 절 대웅전 기둥으로 날아가 검 끝이 똑바로 나무로 깎은 용의 눈에 박혔다.  황룡선사가 가볍게 웃으면서 오른손을 들어 올리면서 가운데 손가락으로 기둥에 박힌 보검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내가 보건대 네가 이 검을 능히 칼집에서 끄집어낼 수는 있으나 다시 꼽을 수는 없다.” 

 

여동빈이 잠시 놀라다가 큰소리로 웃으면서 보검을 보면서 “칼집으로 들어가라.”고 외쳤다.

그러나 보검은 기둥에 박힌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 검은 여동빈이 여산에서 검술을 배우고 하산한 후 줄곧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 있어서 그 신령스럽기가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주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여동빈이 그 황룡선사의 도와 법이 높고 깊음에 탄복하고 그 자리에서 절하여 사과하면서 불법을 가르쳐 줄 것을 청하였다. 황룡선사는 여동빈의 마음이 진심과 성의 있음을 알고는 그 자리에서

“당신은 이미 반 되 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고 또 어떻게 한 알의 조 알 속에 세계를 감출 수 있는가를 듣지 않았는가? 내가 말한다면, 그 뜻은 즉 먼저 마음속에 아무런 물건(욕심)이 없어야만 능히 삼라만상을 둘러싸 안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여동빈은 황룡선사의 깊은 뜻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오도송을 지었다. 

 

황룡선사의 가르침에 오도송을 짓다 

 

황룡선사의 ‘먼저 마음속에는 물건(욕)이 없어야만(先要心中無物) 바야흐로 삼라만상을 싸안을 수 있다(方能包羅萬象)’는 한마디에 크게 깨달은 여동빈은 즉석에서 오도송을 지었다. 

 

棄却瓢囊擊碎琴 기각표낭격쇄금 

從今不戀汞中金 종금불연홍중금 

自從一見黃龍後 자종일견황룡후 

始覺當年錯用心 시각당년착용심  

하나있는 표주박 주머니도 버리고,거문고도 깨뜨려 버렸다. 

이제부터 불사약(금단)에 더는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네 

이제 황룡선사를 한번 만나본 후 

비로소 그 당시 마음 잘못 쓴 것을 깨달았다네 

 

여동빈은 낭랑히 오도송을 읊으면서 황룡선사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표연히 떠나갔다. 

 

여동빈, 신선이 되어 올라가다 

 


여동빈은 세상에서 백여 세까지 지내다가 무창 황학루 3층 누각 위에서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고 한다.

신선이 된 후 여동빈은 걸핏하면 인간 세상에 나타났다고 한다. 역대로 그가 인간 세상에 와서 놀다가 세상과 사람을 제도한 전설이 너무 많아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중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여동빈, 200여년 후 송(宋)나라 때 악양루에 출현 

 

송(宋) 경력 4년(1044년), 등자경은 중앙 정치무대에서 쫓겨나 파릉군 태수가 되었다.

부임한 다음해 그가 다스리던 파릉군은 정치를 잘하여 백가지 폐단이 바로 서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때 등자경은 당나라 때 연국공 장열(張說)이 세웠던 악양루가 낡아 보수를 하였다.

악양루 보수가 끝난 날 큰 잔치를 열었다. 연회가 막 시작되려고 하는데 등자경은 문득 이름만 적힌 명첩 하나를 받았다. 그 위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고 다만 화주(華州)도사가 삼가 문후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등태수는 사람을 보내 그 도사를 악양루 위로 올라오게 하였다. 얼굴을 보니 긴 수염이 가슴까지 드리웠고

등 뒤에는 장검을 메고 있는데 그 모습이 청수하고 기이한 도사였다. 도사는 누각 위로 올라와 등태수와 마주하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호쾌하게 술을 마시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좌중을 압도하였다. 

악양루 중창 경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술에 취한 후 각자 붓을 들고 시와 글을 짓기 시작했다.

화주도사 또한 붓을 들어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朝游東海暮蒼梧 조유동해모창오 

袖裏靑蛇膽氣粗 수리청사담기조 

三醉岳陽人不識 삼취악양인불식 

郞吟飛過洞庭湖 랑음비과동정호  

아침에 동해에서 놀다가 저물어 창오군(광서성)으로 간다.

소매 속 들어있는 단검(푸른 뱀)은 담력과 기력이 더욱 호쾌하다. 

악양루에서 크게 세 번 취했으나 사람들은 내가 여동빈인 것을 모르는데 

낭랑히 시를 읊으면서 동정호를 날아서 지나갔다.

 

등자경은 화주도사의 시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는 즉시 그 자리에 있던 화공에게 화주도사의

취한 모습을 급히 그리게 하였다. 그리고는 등태수는 친히 예를 취하면서 나아가 화주도사에게 성명을 물었다.

화주도사는 이미 모든 것을 알려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곧 성은 ‘여’요 이름은 ‘암’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마치고 큰 소리로 웃으면서 작별을 고하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등자경과 그 자리에 있던 문사들은 이때서야 비로소 그 도사가 당나라 때의 유명한 도사 여동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일화를 기리기 위해 이 악양루 우측에는 삼취정(三醉亭)이 세워져 있다.

이 삼취정은 청나라 건륭 40년(1775년)에 세워졌고, 그곳에는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모양의 여동빈 상과 그가 쓴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무기를 단검으로 만들다 

 

앞에서 나온 詩 수리청사담기조’(袖裏靑蛇膽氣粗소매 속 들어있는 단검(푸른 뱀)은 담력과 기력이 더욱 호쾌하다)에서 청사(靑蛇)와 관련하여 고사가 전해져 온다. 

 

일찍이 파릉현(현재 악양) 성 남쪽 백학산에는 큰 호수가 두 개 있었는데, 그 호수 가운데 이무기가 있어 민간에

피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던 여동빈이 법술로 이무기를 다스려 단검으로 만들어 항상 소매 속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  여동빈 점쟁이로 변신 

 

남송 때 비릉시에는 점을 잘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머리에는 푸른 두건을 메고 몸에는 누런 도복을 입고 있었다.

스스로 지명(知名)선생이라 하였다. 비릉군 태수 호도는 지명선생이 점을 기가 막히게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지명선생을 청해서 점을 쳤다. 

 

지명선생이 ‘당신의 수명은 매우 길고, 곧 당신의 관직에 변동이 있다. 변동 시기는 청명절 전 5일

또는 청명 후 7일이다.’고 하였다. 고을 태수 호도는 청명 5일 전에 과연 그가 자리를 바꾸어 형문군 태수로 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청명 후 7일이 되자 정식으로 이동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호도는 지명선생의 신기막측한 점술에 탄복하여 사람을 보내 그를 찾았으나 이미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호도는 후에 형문군 태수가 된 후 친구한테 남경의 석각에 새겨진 여동빈 상을 탁본한 그림을 받았다.

지명선생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때서야 지명(知名) 두 글자 중에는 지(知)자에 ‘口’, 명(名)자에 ‘口’가 있어 두 구(口)자를 합한즉

‘여(呂)’자가 아닌가? 호도는 그가 친히 겪은 이일을 자기 문집에 남겨 놓았다.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여동빈이 하루는 구름 따라 북방으로 갔다. 하루는 거지 한 명이 길바닥에서 굶주려 아사 직전까지 간 것을 보았다. 이미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하였다. 불쌍한 중생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여동빈은 법술을 사용해서 거지를 구해냈다. 

 

그 자리에서 돌을 금으로 만들어 거지에게 주어 살아가도록 하였다. 뜻밖에 황금을 얻은 거지는 기쁘기 그지없 었다. 그러나 곧 그 거지는 욕심이 발동하여 여동빈에게 ‘돌을 황금으로 만드는 손’을 달라고 하였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니! 

 

또 한 번은 여동빈이 기름장사로 변신하여 기름을 팔면서 악양에 갔다. 기름을 사는 사람들마다 더 달라고 요구했다. 다만 한 노파만 기름을 사면서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여동빈은 그녀가 신선공부를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제도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가서 한 줌의 쌀을 우물 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당신은 이 우물물을 팔면 부자가 될 것이다.’고 하였다. 그 노파는 여동빈이 간 후 우물속의 물이 전부 미주(美酒)로 변한 것을 알았다. 그 노파는 우물속의 술을 팔아 일 년 후에 부자가 되었다. 

 

그 후 어느 날 여동빈은 그 노파 집에 갔는데 마침 노파가 없고 그녀의 아들이 집에 있었다.

여동빈이 ‘당신들 집은 지난 일 년 동안 술을 팔아 부자가 되었는데, 느낌이 어떠한가?’하고 물었다. 

그 노파의 아들은 ‘좋기는 좋은데 단지 돼지 먹일 술 찌꺼기가 없어서 힘들다.’고 하였다. 

 

여동빈이 탄식하면서 인심이 탐욕스러워 부끄러움도 모른다’고 하면서 손을 들어 우물 속의 쌀을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며 갔다. 노파가 외출에서 돌아와서야 우물속의 술이 모두 물로 변한 것을 알았다. 

 

욕심은 끝이 없는가?

 

인간들에게 실망하면서 여동빈은 구름처럼 천지(天地)를 내 집으로 삼아 운유(雲遊)하였다 한다.

여동빈과 얽힌 이야기는 끝이 없으나 이 정도로 그칠까 한다. 

 

여동빈은 중생들이 명리재색(名利財色)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헛되이 죽음으로 가는 것은

경계한 듯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겨 후학을 경계하게 하였다. 

 

순양여조시(純陽呂祖詩) 

 

人身難得道難明 인신난득도난명 

塑此人心訪道根 진차인심방도근 

此身不向今生度 차신불향금생도 

再等何時度此身 재등하신도차신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도 밝히기도 어려워라 

사람마음 따라 도의 뿌리를 찾나니 

이 몸을 이 생애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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