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노거수 이야기
▲ 파계사 느티나무
살아있는 문화재, 대구 노거수를 소개합니다!
'노거수'란, 나무의 수령이 오래된 당산목, 풍치목, 정자목 등의 나무를 말하며, 이는 주로 한 마을을 대표하기도 하죠.^^
마을의 오랜나무 한 그루는 오랜 세월과 함께 그 지역의 상징적 존재로서 가치를 지니는데요. 랜드마크로서 자리매김하며 주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축제마당이 되고, 또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다양하게 활용됩니다.
또는 그 나무는 마을의 오래된 어른이 되어 민속신앙의 대상이 되며 마을사람들의 길흉화복을 같이 하는 동반자가 되기도 하죠.
따라서 나무는 그 지역의 사회, 문화, 자연, 환경을 파악하게 하는 산증거로서 학술적 가치와 관심이 집중되며, 각 도시마다 마을의 상징적인 나무를 보호수(노거수)로 지정하며 보호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 대구에도 약 47선의 노거수가 있는데요. 모두 알고 계셨나요?
1. 사과나무 |
▣ 소재지 : 대구 중구 달성로 56(동산동 194) 동산의료원
▣ 수 령 : 약 80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부지 내에는 붉은 벽돌의 옛 선교사 사택인 스윗즈주택(선교박물관), 챔니스주택(의료박물관), 블레어주택(교육, 역사박물관)이 있습니다. 이 중 스윗즈 주택 옆으로는 대구 사과나무의 시조격인 '2세 사과나무'가 있는데요.
이는 남산동 사택 정원에 자라고 있던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심은 것입니다. 줄기 부분의 부패로 외과수술과 지지대를 설치하여 보호하고 있으나,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사과나무의 현실을 감안하여 후계목이 함께 심어져 있습니다.
또한 그 주변으로 대구제일교회, 3.1만세 운동길, 계산성당, 이상화와 서상돈 고택 등이 있어 대구근대문화골목도 같이 둘러보기에 좋습니다.
▣ 사과나무 대구의 상징 이미지가 된 '사과'
대구 대표 이미지로 알려진 사과는 옛날부터 과실의 대표로 불리어 왔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우리나라에 외국 선교사를 통해 각 지방에 몇 그루씩의 사과나무가 들어와 재식되기는 하였으나 성공한 예는 드물었고, 대부분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정도였습니다. 그 뒤 해외의 선교사를 통해 들여온 다량의 사과묘목이 과수원을 조성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것이 경제적 재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과의 주성분은 탄수화물이며, 단백질과 지방은 비교적 적고, 비타민C의 함량이 특히 많습니다. 사과는 가식부가 95%이고 수분이 90%인데 생식용으로 많이 이용될 뿐만 아니라, 각종 음료와 양조의 원료로도 이용되며, 잼, 건과, 분말, 통조림 등의 가공품과 일부 약품에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상당한 열량이 있어서 보조식량으로의 이용도 가능합니다. |
2. 회화나무 |
▣ 소재지 : 대구 중구 달성공원로 35(달성동 294-1) 달성공원
▣ 수 령 : 약 300년
달성공원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친근한 도심 속 휴식공간입니다.
달성은 청동기시대 이래로 자연적인 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토성으로 국매에서 상곽 발달 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축성된 성곽으로 평가되고 있는데요.
자연과 역사의 흔적을 동시에 경함할 수 있는 이곳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산 교육장으로 손색이 없으며, 넓은 잔디광장 중간으로 나 있는 산책로 주변으로 보호수로 지정돼 있는 '회화나무'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신사를 철거한 자리에 심었다는 '소나무', 순종황제가 기념식수한 것으로 전해지는 '가이즈까 향나무'도 볼 수 있습니다.
3. 느티나무 1 |
▣ 소재지 : 대구 동구 내동 557
▣ 수 령 : 약 500년
고려조의 명현 안유선생의 후손인 추산 안황이 좋아한 나무라 하여 속칭 '안정자목'이라 불리워지고 있으며, 나무 아래에는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추산공 유적 안정자비가 서 있습니다.
순흥 안씨들이 이곳에 정착한 후 가뭄 때 먹을 물이 없어 걱정하던 중에 돌 사이에서 맑은 물이 나오는 샘을 발견하였는데, 가뭄 때나 장마 때도 일정하게 나오는 것을 신기하게 여겨 물의 이름을 옥정(玉井)이라 지어 옥정수라하고 그 마을을 옥정마을로 부르고 있습니다.
4. 느티나무 2 |
▣ 소재지 : 대구 동구 중대동 872-6
▣ 수 령 : 약 250년
이 나무는 현재 말라죽었다
파계사의 전설을 간직한 듯 네거리 입구에 수호신처럼 서 있으며, 조선 영조임금의 탄생설화와 깊은 관련이 있는 현응대사를 기리기 위한 나무로 '현응대사 나무'라고도 합니다.
숙종임금은 자신의 꿈 속에 나타난 영원선사(현응대사)에게 백일기도를 부탁하였고,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한 결과 이듬해에 왕자가 탄생했는데요.
그가 바로 조선 21대 임금인 영조임금입니다. 따라 크게 기뻐한 숙종은 영원선사에게 현응이라는 호를 내렸죠!
영원선사는 파계사 성전암에 기거하며 수도했는데, 출타할 때에는 큰 범이 항상 이 나무 아래에서 대사를 기다렸다가 태워다녔다고 하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5. 느티나무 3 (2그루) |
▣ 소재지 : 대구 동구 팔공로 23길 25-4 불로동 671-1
▣ 수 령 : 약 200년
멀리서 보면 마치 2그루 같이 붙어 있으며, 옛날 이곳 불로동이 생길 당시 3성인 민씨, 서씨, 홍씨가 심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마을이름의 유래를 보면 왕건이 동수전투, 즉 공산전투에서 패하여 도주하다 이 지역에 이르자 노인과 부녀자는 모두 피난가고 없고 어린아이 등 젊은 사람만 살고 있었다고 하여 '불로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 느티나무_ 크고 작은 전설이 깃든 마을의 신목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는 성질이 있는 '느티나무'는 한군데 모아 심으면 가지가 뻗지 못해 스스로 죽게 됩니다. 이로 인해 느티나무는 여러 그루의 군집으로 자라는 것을 싫어하는 섬세한 성질이 있습니다. 느티나무가 마을의 정자나무나 당산나무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대부분 그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였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의식이 강한 농민들에게 있어 당산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각종 재해, 무병장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올린 나무이자 가가호호의 소망과 소원을 풀어주는 나무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당산나무는 신령이 길들여 있다 해서 신목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
"그 마을의 노거수 하나만 보아도 열은 알 수 있다?!"
마을을 대표하며 오랜 세월 주민들과 함께 해온 노거수들! 그것만 보아도 그 지역의 문화, 자연, 환경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데요.
하지만 도심 집중 현상으로 사람들의 이동이 많아지며 노거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떨어져 갔고, 도시화로 인해 노거수의 존재 또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 일상 속에서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린 우리 주변 풍경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다시 유도하고자 대구의 노거수를 소개하는 시리즈를 제작하게 됐는데요!
▲대구 평광동 사과나무
오늘도 옻골마을의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부터 유명한 평광동 사과나무까지, 대구의 5가지의 노거수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수령과 유래는 어떻게 되는지, 여러분도 함께 볼까요?^^
▣ 소재지 : 동구 둔산동 365(옻골마을) ▣ 수 령 : 약 350년 옻골은 경주최씨 광정공파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북으로는 큰 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동으로는 검덕봉이 있으며 서로는 긴 등이 내려와 못 안골로 이어져 있는 풍소길지입니다. 옛날에는 시냇가에 옻나무가 많이 있어 칠계 즉, 옻골이라 부르게 됐으며 지금까지 400여 년 동안 자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는데요. 왕건이 견훤과 싸우기 위하여 군대를 주둔한 데서 둔산이라는 설과 조선시대에 이곳에 군사를 주둔시키는 군영지가 있다고 하여 둔산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 소재지 : 동구 둔산동 340(옻골마을 입구) ▣ 수 령 : 약 350년 옻골마을 입구에 숲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마을의 터가 주변보다 높아 금호강 지류들이 훤히 내려다 보이므로 악기를 막으려 마을 앞에 동서방향으로 길게 병풍처럼 나무를 심었습니다. 마을 뒷산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는 거북같이 생겼다하여 일명 생구암이라 부릅니다. 풍수지리상 거북은 물이 필요하다 하여 서쪽 느티나무 바로 앞에는 인공 연못을 조성하였으며 동쪽은 양의 기운을 받기 위해 숲을 조성하지 않고, 서쪽은 음의 기운을 막기 위해 연못 주위에 울창한 느티나무와 소나무 숲을 조성했는데요. 조선 숙종 때 조성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죠.^^
▣ 소재지 : 동구 신숭겸길 17(지묘동 526) ▣ 수 령 : 약 400년 신숭겸 장군 유적지 내 표충단 주위를 5그루가 빙 둘러싸고 자라고 있으며, 꽃이 필 때는 주변이 온통 붉은 색으로 변할만큼 화려하게 피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표충단은 신숭겸 장군이 이곳 공산전투에서 후백제군과의 처절한 싸움 끝에 왕건을 살리고 대신 장렬히 전사한 곳이라고 합니다. 또 이것이 있는 지묘동은 공산전투에서 왕건이 견훤에게 패하여 도망갈 때 신숭겸 장군 등이 기묘한 술책으로 탈출시켰다는 유래와 함께 왕건을 대신하여 죽은 신숭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지묘사란 절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합니다. [배롱나무_ 100일 동안 피는 원거리 얼짱 꽃나무]
▣ 소재지 : 동구 도평로 116길 194(평광동 971) ▣ 수 령 : 약 80년 서양 사과의 도입은 개항(1876년) 이후의 일로, 대구는 미국 의료선교사인 '존슨박사'가 1899년 10월 미국 미조리주에 있는 사과나무를 주문하여 남산동 자택(구 제일교회 부지) 정원에 재배한 것이 대구 서양 사과나무의 효시입니다. 이곳 평광지역에는 1917년경 과원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이 사과나무는 1935년 우채정씨의 선친이 심은 5년생 홍옥, 국광 등 100여 그루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홍옥나무인데요, 현재까지도 매년 많은 열매를 맺고 있어 유전자원으로도 그 가치가 크고, 우리나라 사과재배사를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나무입니다.
▣ 소재지 : 동구 도동 산 180 ▣ 수 령 : 약 100년 중국 특산으로 알려져 왔던 측백나무가 단양, 영양, 울진, 안동 등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었는데요. 그 자생지 중에서도 대구 도동의 측백수림이 가장 남쪽에 있는 곳으로서 그 식물 지리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 1호로도 지정되었습니다. 처음 지정될 당시에는 수령 100년, 밑둘레 20cm, 높이 10cm나 되는 수천그루가 자생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나 지금은 높이가 100여 미터 안팎의 절벽에 5- 7cm 정도되는 700여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넌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니?"
▣ 소재지 : 동구 용수동 420 ▣ 수 령 : 약 300년
예전에는 음력 정원 대보름날 새벽이면 이 느티나무에서 당굿을 행하였으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없어지고 지금은 당나무와 돌로 조산한 당만 남아있습니다.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배씨와 구씨가 마을 입구에 나무를 심고 돌을 쌓아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며, 섣달 그믐날에 당굿(농악)을 쳐서 신대가 가는대로 따라가서 멈추는 집이 제관이 되었는데, 제관의 책무를 거부하면 벌을 받는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 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소재지 : 서구 평리3동 707-49
▣ 수 령 : 약 250년
원래는 2그루가 있었으나 동공이 있던 나무는 고사하고, 살아있는 한 그루는 지금도 마을을 지키는 영험한 나무로 지금까지도 주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당제를 지내고 금줄을 쳐놓으며 이 나무를 신성시하고 있는데, 옛날엔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이곳을 지나면서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해 달라고 이 나무에 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보호수 옆으로는 보호수 유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회화나무_ 우리 선조들이 선택한 최고의 길상목]
▣ 소재지 : 북구 도남길 45-7(국우동 685)
▣ 수 령 : 약 400년
이 탱자나무는 개인 주택의 생울타리용으로 심은 듯하며, 수령이 약 400년 정도의 노거수목으로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 10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총 나무 3그루가 함께 자라고 있는데, 맨 서쪽 언덕에 있는 나무는 근원 부위에서 가지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고 둥치의 둘레가 1.7m에 이르며, 동쪽의 나무는 둥치 밑둘레가 1.5m에 이릅니다. 이곳 국우동에 있는 3그루의 탱자나무는 인천 강화군 갑곶리(천연기념물 제 78호)와 사기리(천연기념물 제 79호), 경북 포항시 보경사(경상북도 기념물 제 11호)의 탱자나무와 비교해도 크기와 수령이 뒤지지 않는 것들입니다.
▣ 소재지 : 북구 매천로 37길 29-12(매천동 117-3)
▣ 수 령 : 약 800년
마을 중앙의 약간 높은 곳에 자라고 있어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듯한데요. 이 마을 이름(매천)의 유래를 보면, 광해군 때 아헌 송일기 선생이 사간원으로 있으면서 광해군의 폭정을 간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자 자신의 호를 '벙어리'라는 뜻에서 '아헌'으로 고치고 지금의 이곳으로 내려와 매양서원을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였다는 데서 '매남'이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또 앞의 하천인 팔거천과 뒤쪽 소나무로 둘러싸였다는데서 '송천'이라는 이름도 유래됐는데, 해방 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매남과 송천을 합하여 '매천'으로 부르게 됐습니다.
▣ 소재지 : 북구 도남동 산 87 ▣ 수 령 : 약 250년 국우 터널을 빠져나와, 북쪽 골짜기로 접어들어 국우동을 지나 한참 들어가다 보면 도남동이 나옵니다. 해발 660m의 도덕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도남동이라 부르게 됐다고 하는데요. 이 노거수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농로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이 마을 유지( 마을 또는 지역에서 명망 있고 영향력을 가진 사람)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이 나무를 잘 가꾸고 숭상하면 마을은 번성하고 풍년이 든다고 하여 그때부터 나무를 잘 가꾼 결과 모든 일이 순조로워졌다고 합니다, 현재 정월 대보름에는 가장 깨끗한 집을 선택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당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
16. 북구 팽나무 |
▣ 소재지 : 북구 구암로 21길 41(읍내동)
▣ 수 령 : 약 300년
경주배씨 달성파 성택문중 원모제 앞뜰에 자라고 있는 거수목으로, 나무 그늘 때문에 주변이 시원할 정도라고 합니다. 가지는 원모제 담을 넘어 공터까지 뻗어 있으며 바로 옆에는 학문을 가르치는 구천서당이 있습니다. 문중에 따르면, 이 나무의 수령이 500년은 된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매우 귀중하게 여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원래 이 마을은 칠곡도호부가 있던 읍내였으며, 읍내동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17. 북구 모감주나무 |
▣ 소재지 : 북구 산격동 산4-1 (대불공원)
▣ 수 령 : 약 100년
이 모감주나무는 원래 북구 고성2가에 있었으나, 도로개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대불공원 내 지금의 자리에 옮겨 심은 것입니다. 이것이 있는 '산격동'의 이름의 유래를 보면, 처음에는 이 지역의 뒷산이 매의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순 우리말인 '미지미'로 불렸으나, 나중에 '메잠'으로 불렸는데요, 이는 '산의 언덕'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그 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현재의 '산격'이라고 부르게 됐죠! 또 다른 유래를 보면 연암산(현재 경북도청 뒷산)이 우뚝 솟아 아래로 절벽이 끊어지면서 앞에 금호강과 넓은 평야가 펼쳐졌는데, 이 연암산 사이를 가로막는 간격이 벌어져 있다 하여 '산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팽나무_ 태풍을 막아주는 남부지방의 장수목]
우리 선조들이 신목으로 여긴 3대 당산나무 중 하나인 '팽나무'는 남부지방의 정자나무인 동시에 당산나무로 알려져 있는데요, 따라 지금도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마을 어귀나 성황당 부근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팽나무의 이름은 지방에 따라 포구나무, 자단수, 청단, 박자수, 목수과자, 달주나무, 편나무, 매태나무 등 그 이름이 다양하며 전국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우리민족과 친숙한 나무입니다. 또한 팽나무는 나무의 뿌리가 강건해 강풍이나 태풍에도 잘 견디는 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이런 강인함 때문에 우리나라 선비들은 팽나무를 자신의 정원에 키 큰 나무로 심었다고 해요.^^ 햇빛을 좋아할 뿐 아니라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데요, 5월에 피는 팽나무 꽃은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나중에 황색으로 낙엽이 집니다. 열매는 등황색으로 사람이 먹지 못하지만 새의 좋은 먹이가 됩니다. |
[모감주나무_ 황금빛 꽃이 아름다운 모감주나무]
'모감주나무'는 국내에 자생지가 있는 우리나라 특산나무이자 한국풍 정원에 어울리는 나무입니다. 꽈리형으로 열리는 열매가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여름에 황금빛으로 피는 꽃이 더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열매에는 염주모양의 씨앗이 들어있어 이 씨앗으로 염주를 만들기도 하는데요, 이로 인해 '염주나무'라고도 불렀으며 예로부터 스님들의 염주로 귀하게 쓰여 졌습니다. 또한 모감주나무 꽃에는 사포닌 성분 등이 들어있어 간염, 요도염, 장염에 효과가 있고 눈이 빨갛게 되었을 때도 효과가 좋습니다. |
18. 수성구 은행나무 |
▣ 소재지 : 수성구 범어동 836(범어네거리)
▣ 수 령 : 약 500년
세조 14년(1468년)경 상동 268번지 부근에 심었다고 전해져 오며, 상동동서도로확장공사로 인해 1981년 정화여중/고 교정으로 옮겨 심었다가 2001년에 다시 현재의 범어네거리 교통섬 안으로 옮겨 심었다고 합니다. 당시 마을 노인들이 나무 그늘에 멍석을 펴고 옻놀이를를 주로 즐겼는데요. 어느 날 하루는 이곳을 지나던 소년이 멍석에 물을 뿌리고 난 뒤 번쩍 들어 나무 위로 내던졌는데, 멍석이 마치 연처럼 나무 위로 훨훨 날아갔다고 합니다. 이 일이 있었던 후로 이 은행나무 밑에 물을 뿌려 주는 사람에게는 힘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19. 수성구 느티나무(3그루) |
▣ 소재지 : 수성구 수성1가 642(신세계아파트 주변)
▣ 수 령 : 약 270 - 350년
수성1가 신세계유치원 옆에 있는 느티나무로, 마을향토진흥회에서 매년 정월대보름에 동민들의 복을 빌고 마을의 안녕과 평온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오고 있는데요. 동제를 다 지낸 후에는 신성구역을 표시하는 금줄을 쳐놓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병사가 이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하면서 무례한 행동을 하여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져 오고 있으며, 지금도 이 나무 주위에는 철책을 둘러 마을에서 엄격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대구 노거수 이야기 그 일곱번째. 오늘은 달성군에 있는 노거수들의 이야기인데요. 한천서원 앞에서 1,000년이란 시간을 한결같이 지켜온 은행나무부터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동서원의 은행나무까지, 그들의 깊은 역사와 숨겨진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넌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니?"
▣ 소재지 : 동구 용수동 420 ▣ 수 령 : 약 300년
예전에는 음력 정원 대보름날 새벽이면 이 느티나무에서 당굿을 행하였으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없어지고 지금은 당나무와 돌로 조산한 당만 남아있습니다.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배씨와 구씨가 마을 입구에 나무를 심고 돌을 쌓아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며, 섣달 그믐날에 당굿(농악)을 쳐서 신대가 가는대로 따라가서 멈추는 집이 제관이 되었는데, 제관의 책무를 거부하면 벌을 받는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 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소재지 : 서구 평리3동 707-49
▣ 수 령 : 약 250년
원래는 2그루가 있었으나 동공이 있던 나무는 고사하고, 살아있는 한 그루는 지금도 마을을 지키는 영험한 나무로 지금까지도 주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당제를 지내고 금줄을 쳐놓으며 이 나무를 신성시하고 있는데, 옛날엔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이곳을 지나면서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해 달라고 이 나무에 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보호수 옆으로는 보호수 유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회화나무_ 우리 선조들이 선택한 최고의 길상목]
▣ 소재지 : 북구 도남길 45-7(국우동 685)
▣ 수 령 : 약 400년
이 탱자나무는 개인 주택의 생울타리용으로 심은 듯하며, 수령이 약 400년 정도의 노거수목으로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 10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총 나무 3그루가 함께 자라고 있는데, 맨 서쪽 언덕에 있는 나무는 근원 부위에서 가지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고 둥치의 둘레가 1.7m에 이르며, 동쪽의 나무는 둥치 밑둘레가 1.5m에 이릅니다. 이곳 국우동에 있는 3그루의 탱자나무는 인천 강화군 갑곶리(천연기념물 제 78호)와 사기리(천연기념물 제 79호), 경북 포항시 보경사(경상북도 기념물 제 11호)의 탱자나무와 비교해도 크기와 수령이 뒤지지 않는 것들입니다.
▣ 소재지 : 북구 매천로 37길 29-12(매천동 117-3)
▣ 수 령 : 약 800년
마을 중앙의 약간 높은 곳에 자라고 있어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듯한데요. 이 마을 이름(매천)의 유래를 보면, 광해군 때 아헌 송일기 선생이 사간원으로 있으면서 광해군의 폭정을 간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자 자신의 호를 '벙어리'라는 뜻에서 '아헌'으로 고치고 지금의 이곳으로 내려와 매양서원을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였다는 데서 '매남'이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또 앞의 하천인 팔거천과 뒤쪽 소나무로 둘러싸였다는데서 '송천'이라는 이름도 유래됐는데, 해방 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매남과 송천을 합하여 '매천'으로 부르게 됐습니다.
▣ 소재지 : 북구 도남동 산 87 ▣ 수 령 : 약 250년 국우 터널을 빠져나와, 북쪽 골짜기로 접어들어 국우동을 지나 한참 들어가다 보면 도남동이 나옵니다. 해발 660m의 도덕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도남동이라 부르게 됐다고 하는데요. 이 노거수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농로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이 마을 유지( 마을 또는 지역에서 명망 있고 영향력을 가진 사람)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이 나무를 잘 가꾸고 숭상하면 마을은 번성하고 풍년이 든다고 하여 그때부터 나무를 잘 가꾼 결과 모든 일이 순조로워졌다고 합니다, 현재 정월 대보름에는 가장 깨끗한 집을 선택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당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 소재지 : 북구 구암로 21길 41(읍내동) ▣ 수 령 : 약 300년 경주배씨 달성파 성택문중 원모제 앞뜰에 자라고 있는 거수목으로, 나무 그늘 때문에 주변이 시원할 정도라고 합니다. 가지는 원모제 담을 넘어 공터까지 뻗어 있으며 바로 옆에는 학문을 가르치는 구천서당이 있습니다. 문중에 따르면, 이 나무의 수령이 500년은 된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매우 귀중하게 여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원래 이 마을은 칠곡도호부가 있던 읍내였으며, 읍내동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 소재지 : 북구 산격동 산4-1 (대불공원) ▣ 수 령 : 약 100년 이 모감주나무는 원래 북구 고성2가에 있었으나, 도로개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대불공원 내 지금의 자리에 옮겨 심은 것입니다. 이것이 있는 '산격동'의 이름의 유래를 보면, 처음에는 이 지역의 뒷산이 매의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순 우리말인 '미지미'로 불렸으나, 나중에 '메잠'으로 불렸는데요, 이는 '산의 언덕'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그 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현재의 '산격'이라고 부르게 됐죠! 또 다른 유래를 보면 연암산(현재 경북도청 뒷산)이 우뚝 솟아 아래로 절벽이 끊어지면서 앞에 금호강과 넓은 평야가 펼쳐졌는데, 이 연암산 사이를 가로막는 간격이 벌어져 있다 하여 '산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팽나무_ 태풍을 막아주는 남부지방의 장수목]
[모감주나무_ 황금빛 꽃이 아름다운 모감주나무]
▲모감주나무 사진 - 다채움 카페회원 분통이님
▣ 소재지 : 수성구 범어동 836(범어네거리) ▣ 수 령 : 약 500년 세조 14년(1468년)경 상동 268번지 부근에 심었다고 전해져 오며, 상동동서도로확장공사로 인해 1981년 정화여중/고 교정으로 옮겨 심었다가 2001년에 다시 현재의 범어네거리 교통섬 안으로 옮겨 심었다고 합니다. 당시 마을 노인들이 나무 그늘에 멍석을 펴고 옻놀이를를 주로 즐겼는데요. 어느 날 하루는 이곳을 지나던 소년이 멍석에 물을 뿌리고 난 뒤 번쩍 들어 나무 위로 내던졌는데, 멍석이 마치 연처럼 나무 위로 훨훨 날아갔다고 합니다. 이 일이 있었던 후로 이 은행나무 밑에 물을 뿌려 주는 사람에게는 힘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 소재지 : 수성구 수성1가 642(신세계아파트 주변) ▣ 수 령 : 약 270 - 350년 수성1가 신세계유치원 옆에 있는 느티나무로, 마을향토진흥회에서 매년 정월대보름에 동민들의 복을 빌고 마을의 안녕과 평온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오고 있는데요. 동제를 다 지낸 후에는 신성구역을 표시하는 금줄을 쳐놓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병사가 이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하면서 무례한 행동을 하여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져 오고 있으며, 지금도 이 나무 주위에는 철책을 둘러 마을에서 엄격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 소재지 : 수성구 지산동 1735(지산초등학교 입구)
▣ 수 령 : 약 400년
이 나무 아래에는 조선 초기에 세운 것으로 '효자하잠동지려비'가 있는데요. 이 비석에는 [가난하고 효성이 지극한 하잠동이 지성으로 어머니를 섬겼다. 어느 날, 어머니가 지병으로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있으면서 떡을 먹고 싶어 하자 나무를 팔아 떡을 사서 지게 위에 얹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자신도 굶주리면서도 그 떡을 먹지 않고 어머니께 드렸다]는 아름답고 애환스런 효행을 몸소 실천한 효자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분들에게 교훈을 주고도 있구요.^^
▣ 소재지 : 수성구 지산동 1719-9
▣ 수 령 : 약 400년
현재의 '지산동'이 주거지역으로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음력 정월 대보름에는 이곳에서 동제를 지내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했다고 하며, 나무는 옛날 이곳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양씨들이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무의 잎이 무성하게 피게 되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져 오고 있는데요. 현재는 지산동의 주 진입로로 변화하면서 보호수가 대로변 삼각지점에 위치하게 되어, 수목의 생육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나무와 함께 북쪽으로 약 30m 정도에는 상여집과 함께 느티나무, 회화나무, 굴참나무 등 여러 그루의 노거수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 소재지 : 수성구 범물동 464(어린이공원 옆)
▣ 수 령 : 약 200년
범물동 용지네거리 옆에 있는 어린이공원 골목 안으로는 건물에 둘러 싸여 자라고 있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모두 오랜 세월 풍상을 겪어온 노거수로서, 줄기 부분은 골이 깊게 패여 물이 고일 정도로 흡사 웅덩이 같아 보입니다. 또한 이 보호수 밑에는 효부이며 열녀인 '성주배씨효열지려비'가 있는데요. 이에 따라 당산제를 지낼 때 성주배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는 추모제도 함께 지내게 됐다고 합니다.
▣ 소재지 : 수성구 만촌동 511-1(2군사령부 내)
▣ 수 령 : 약 600년
처음에는 경북 칠곡군(대구시 북구 팔달동, 일명 장태실)에 있던 것을 주민이 2군사령부에 희사함으로써, 1979년 11월 초 당시 군사령관이었던 진종채 대장이 무열대 본관 앞으로 이식하였습니다. 특히 이 모과나무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자라왔고, 그 끈기와 기상은 무열인의 기백과 일맥상통한데요. 따라 1993년 11월 11일, 부대에서 별도로 이를 '무열수'로 명명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 소재지 : 달서구 도원동 670(어린이공원 내) ▣ 수 령 : 약 500년 이 나무에는 봄에 나뭇잎이 동시에 일제히 피면 모내기가 순조롭지 않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요. 그 위치는 도원지 바로 아래 자그마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도원지 남서쪽에 있는 산은 붓처럼 끝이 뾰족하게 생긴 봉우리가 셋이 있어 '삼필봉'이라고 하며 동남쪽에는 비슬산 자락에서 뻗어 나온 청룡산이 있습니다. 골이 매우 그윽하며 그 경치가 아름다워서 마치 중국의 무릉도원과 같다고 하여 도원골 또는 도원리라고 하였습니다.
■ 소재지 : 달서구 호산동 산1-2(성서우방유쉘 뒷산)
■ 수 령 : 약 300년
이곳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주민에게는 가정마다 행복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나무는 아파트 입구 오른편 등산로 입구에서 약 100m 안팎의 산중턱에 위치해 있는데요.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넓은 들판과 금호강, 낙동강이 아래에 펼쳐졌으나 지금은 앞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옛날 한씨, 박씨,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이곳을 범어, 강창이라 불렀는데, 범어라는 것 강에 물고기가 많이 뛰어올라 뜬다고 하여 칭한 이름입니다. 옛 이름은 머무동 또는 머무강창이며 이는 소금배가 머누는 동네라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합니다.
■ 소재지 : 달서구 대천동 354(대천동선사유적지내)
■ 수 령 : 약 350년
속 지명이 9정자 2암이라고 불리어 지며 1978년까지는 마을에서 동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절도 있었다고 하며, 약 30년 전까지는 수목 9그루와 사방 2.5m 정도 되는 바위 2개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수목 2그루만 남아있습니다. 이곳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마을에 한천 또는 복샘이라 불리는 샘이 들 가운데 있었는데, 여름에는 얼음 같은 찬물이 흘렀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서 주변에 기름진 옥토가 만들어졌는데요. 이를 따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서 '대천'이라 했다고 합니다.
[소나무(적송) _한국 전통 소나무 '적송']
■ 소재지 : 달서구 도원동 1006 ■ 수 령 : 약 200년 이 나무에는 나뭇잎이 동시에 싹을 띄우면 풍년이 들고 나무가 밤중에 소리 내 울면 마을이 편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요. 당산나무로서 정월대보름에 당제를 지낸 후에는 나무 주위에 금줄을 쳐놓아 신성시하고 있으며, '당산신위비'라는 표지석이 나무 바로 앞에 있습니다. 속칭 수(숲)밭골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박씨라는 선비가 490여 년전에 마을을 개척하면서 숲이 울창하여 추전이라 부르던 것이 현재의 수밭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 소재지 : 달서구 진천동 426(진천장의 어린이집) ■ 수 령 : 약 150년 원래 마을 가운데 당산목으로 심어졌으나 건물이 가까이 들어서면서 좁은 공간에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잎이 나는 방향에 따라 흉작을 예상한다는 전설이 있으며 매년 정월대보름 전날에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마을 앞으로 달비골과 수밭골에서 흘러내려 오는 하천을 복개하여 옛 정취를 느끼지 못하고 있죠. 마을의 샘인 미리샘은 수심이 약 1m 이상으로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이 좋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며 우물을 개수하다가 샘 둑에서 큰 지붕만한 향나무 뿌리를 발견하고 모두 신기해하였는데 이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이곳을 '미리샘'이라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 소재지 : 달서구 선원로 91-1(이곡동 1186-15) ■ 수 령 : 약 150년 처음에는 김해 허씨 문중의 효자문 안에 효자비석과 함께 정자목으로 관리되어 오다가, 성서택지개발에 따라 효자문 건물은 없어지고 비석은 와룡산 자락으로 옮겨져 현재에는 나무만 남아 있습니다. 이 마을은 예부터 배나무가 많아 배실, 뱃골 또는 한자표기로 이곡으로 불리던 마을로서, 처음에는 벽진 이씨가 삶의 터를 열였으나 나중에는 김해 허씨의 집성촌이 됐는데요. 그 외에도 의성 김씨와 수성 나씨, 경주 이씨, 창원 황씨 등 여러 성씨가 들어와 함게 살게 됐습니다.
■ 소재지 : 달서구 진천동 482-57(제림아파트 입구) ■ 수 령 : 약 500년 옛날에는 주민 중 마음씨가 고운 12명을 선발하여 매년 정월대보름 전날 저녁에 마을의 평화와 번영을, 동민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현재 보호수 바로 앞에는 이곳 주민들로 구성된 용천 친목계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나 설 등 우리 고유의 명절에 제를 올리는 '성황당'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소재지 :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 872 (한천서원)
■ 수 령 : 약 1,000년
매년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의 안녕과 평온을, 주민에게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냈으며, 가을에 낙엽이 질 때 나뭇잎이 멀리 날아가며 이듬해 풍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마을 이름이 행정인 것도 이 은행나무에서 유래됐으며 이 나무 뒷편으로는 고려 개국공신 태사 충렬공 전이갑과 충강공 찬의갑 형제를 배향한 한천서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소재지 : 달성군 구지면 구지서로 726(도동리 35, 도동서원)
■ 수 령 : 약 400년
도동서원은 조선시대 유학자인 한훤당 김광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세운 서원인데요. 이 서원은 소수서원, 병산서원, 도산서원, 옥산서원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서원 중 하나이며,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보존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현풍에서 도동서원 가는 도중에 있는 고개인 다람재 전망대에서 낙동강의 경관과 도동서원의 파노라마를 한눈에 조망한 후 골짜기를 내려오면 서원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서원 앞뜰에 있는 은행나무는 1607년(선조 40년) 안동부사로 재직 중이던 한강 정구 선생이 당시 서원이 사액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나무라 합니다.
■ 소재지 : 달성군 논공읍 노이리 1076
■ 수 령 : 약 400년
이 나무는 고려조 말엽 남평문씨 8세대가 살면서 심었다고 전해지며, 4 - 5월에 꽃이 활짝 피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들고 꽃이 드문드문 피면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당산나무로서 당제를 지냈지만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면서 더이상 당제를 지내지 않고 있으며, 지금은 나무 아래에 편의시설을 설치해 주민의 휴식처로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또 옛날 이 마을에는 절도 있었으며 연못에는 연꽃이 아주 많아 마을이름을 '연화정'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 소재지 : 달성군 현풍면 대리 603-7(십이정려각 옆)
■ 수 령 : 약 400년
암행어사 박문수가 영남지방의 민심을 살피면서 사찰할 때, 마을의 도둑을 잡아 이 나무 밑에서 죄를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이곳은 그늘이 좋아 여행객들이나 주민의 휴식처로 널리 이용되기도 하는데요. 이 나무 건너편에는 선조 31년(1598)에서부터 영조(1724-1776)때까지의 현풍곽씨 일문에 내려진 정려를 모은 현풍곽씨 12정려각(시 문화재자료 제29호)이 있으며, 예절이 바른 마을이라 하여 속칭 '솔례'라고 부릅니다.
■ 소재지 : 달성군 유가면 한정리 220-2 ■ 수 령 : 약 300년 - 500년 약 400년 전 곽여량 이란 분이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3그루가 하나의 숲을 이루고 있어 이 곳 사람들은 이 나무를 '삼정자목'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지역에서는 제일 큰 저수지인 달창지로 가는 길목에 있는데, 숲이 좋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나무 그늘 아래로 모여 쉬기도 하며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기도 하는 장소로 이용됩니다.
■ 소재지 : 달성군 구지면 창리 중앙1길 (창리 601) ■ 수 령 : 약 400년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고 있는 당산목으로, 공원 내에 있습니다. 나무 앞에는 화강암 제단이 놓여 있고, 제단에는 무진년 정월 대보름 창동에서 세웠다는 '창무진년정월십오일동'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서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강이 범람햐 피해를 많이 주어 낙동강의 홍수를 막고 마을을 지켜준다는 풍수설에 따라 심은 나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
37. 달성군 이팝나무 |
■ 소재지 :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 349
■ 수 령 : 약 400년
가창에서 청도방면으로 가다 스크린경마장과 마주보는 동편 농경지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데요. 이팝나무로서는 보기 드물게 굵은 노거수목으로 흰 꽃이 필때에는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장관을 이룹니다. 1921년도에는 이 나무 주변에서 길이가 약 20cm 정도 되는 흰 뱀이 나와 대홍수가 일어났으며, 1945년 4월경에는 귀가 달린 뱀이 나온지 몇달 되지 않아 해방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38. 달성군 굴참나무 |
■ 소재지 :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 1805-11(논공파출수 뒤)
■ 수 령 : 약 300년
약 300년 전에 이 마을에 살던 성산배씨 서을 가진 사람이 홍수를 막기 위해 심은 나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나무를 심은지 100년 되던 해에 대홍수가 나서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에 밧줄을 매고 피난하였다고 하며 그 후 더욱 이 나무를 소중하게 여겨 매년 정월 보름날 정성껏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시골 농가의 들판이나 골짜기, 해변가, 마을 개울가에서 볼 수 있는 이팝나무 꽃을 산뜻하고 가볍게 느껴지는 원뿔모양의 흰 꽃입니다. 벚꽃보다 조금 늦은 이른 5월에 피는 이 꽃은 밥알을 닮아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는 척도로 사용되었는데요. 꽃이 일시에 화려하여 피면 풍년이 들었고, 꽃이 잘 피지 않으면 가뭄이 심한 해라고 하여 우리 선조들은 이팝나무를 신목으로 여겼습니다. 이팝나무는 높이가 평균 20m에 달하는 나무로, 햇빛을 좋아하고 수분이 많은 비옥토에서 잘 자라며 공해, 소금기, 병충해, 추위에 강한 편입니다. |
39. 달성군 은행나무(11그루) |
■ 소재지 : 달성군 현풍리 대리 1042
■ 수 령 : 약 200년
현풍IC에서 현풍곽씨십이정려각을 지나 구지방면 구 길을 따라 가다 왼편 농경지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요. 11그루가 마치 1그루 처럼 보이는데 수형이 매우 좋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 나무는 당초 은행 종자 서말을 부었다고 전해지며 정월대보름에는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고 있는 당산나무로서 가을에 드는 단풍을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사실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이 가장 많은 고목으로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로 들어온 귀화식물인 은행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인데요. 거리를 나가면 도로가에 늘어선 은행나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가장 흔한 나무지만 놀랍게도 우리나라 땅에는 은행나무 자생지가 없습니다. 따라 대부분의 은행나무는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하나씩 심어온 나무라 할 수 있죠. 대단하죠?!^^
40. 달성군 느티나무 |
■ 소재지 : 달성군 현풍면 성하리 287-3(현풍휴게소)
■ 수 령 : 약 500년
중부내륙고속도로 구마지선 현풍휴게소(마산방면) 서편 나지막한 언덕에 서 있는 노거수로, 웅장하고 장엄하며 가지가 잘 발달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며 쉬어가곤 합니다. 정월대보름에는 마을의 평온과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는데, 정성이 부족하면 우환이 생긴다고 합니다. 언젠가 제사를 지내려고 제물을 차려 놓았는데 돼지가 나타나 아수라장으로 만들자 돼지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합니다. 또 1976년 고속도로공사를 할 때 장비로 이 나무 밑에 있는 주춧돌처럼 생긴 돌을 치우려고 하자 엔진이 작동하지 않아 운전기사가 혼이 난적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41. 달성군 배롱나무(2그루) |
■ 소재지 : 달성군 현풍면 삼강1길 22(대리 667-1)
■ 수 령 : 약 400년
현풍IC에서 현풍곽씨 십이정려각을 조금 지나 오른쪽에 있는 마을 안으로 올라가면, 배롱나무 2그루가 서원을 통하는 계단 양쪽에 자리잡고 있는데요. 꽃이 필 때에는 그 주변이 온통 붉은색으로 뒤덮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룹니다. 이 나무의 앞 건물은 포산구택이고, 뒤에는 솔례정사인데, 포산은 비슬산의 옛 이름으로 이 지방 곽씨의 본관을 나타내는 지명이며 솔례는 이 마을의 다른 이름입니다.
42. 달성군 소태나무 |
■ 소재지 :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 973
■ 수 령 : 약 500년
달창저수지가 바라 보이는 속칭 남통마을 저수지 옆에 있으며, 전에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동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지낼 사람이 없어 지내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 당제를 지낼 때에는 제주가 각 호주를 호명하면서 액운을 적은 종이를 태워 날려 보냄으로써 주민들이 아무 탈없이 평안히 지내도록 기원하고 당제를 지낸 후에는 금줄을 쳐 신성시 했다고 하는데요. 옛날 아기의 젖을 떼기 위해 이 나무의 수액을 발라 젖을 떼게 했는데 나무의 수액이 너무 쓴 것을 "소태같다"라고 하는 것도 이 나무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해요.
현재까지 약
304그루의 노거수가 보호수로 지정돼 있으며 앞으로도 노거수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관리도 강화할 예정이예요.^
43. 달성군 푸조나무 |
44. 달성군 시무나무(9그루), 팽나무(1그루) |
45. 달성군 돌배나무 |
■ 소재지 :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913(명적암 입구)
■ 수 령 : 약 300년
해발 550m 정도에 있는 용연사 부속암자인 명적암 바로 앞에 자라고 있는 노거수인데요. 진입로가 포장돼 있어 통행에는 불편이 없으나 산길이 오르막이라 찾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곳에 올라와 사방을 둘러보면 세상 모든 시름을 잊을 만큼 아름다우며 명적암을 인악대사가 열반한 곳이기도 합니다.
46. 달성군 소나무(반송) |
■ 소재지 : 달성군 유가면 양리 산3-1(도성암 입구)
■ 수 령 : 약 100년
유가사 주차장에서 임도를 따라 1km정도 올라가다 도성암 주차장에 도착하기 전 왼편에 있습니다. 보호수로 지정되기 전에는 주변 나무에 피압되어 아름다운 모습의 반송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으나 지금은 주변을 정리하여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곳 암자에서 비슬산 정상까지 가는 등산로는 경사가 급한 편이나 전망은 다른 코스에 비해 좋은 편입니다.
47. 달성군 회화나무(3그루) |
■ 소재지 : 달성군 화원읍 인흥3길 16(본리리 401-2, 인흥세거지 내)
■ 수 령 : 약 300년
화원 천내천을 따라 본리 1리(인흥) 방면으로 접어들면 시지정 민속자료 제3호(1975.12.30 지정)인 '남평문씨인흥세거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살림집 아홉 집이 우물정자형에 가까운 구도 속에 가지런히 앉아있고 곧은 마을 안길과 흙돌담장이 이어져 외관상 전체가 하나로 보이는 것이 특징인데요.
매년 6월이면 흙돌감과 능소화가 그려내는 색감은 세거지의 정감을 더해주고 있으며 회화나무 3그루가 보호수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주변으로 인흥서원과 화원자연휴양림, 마비정 벽화마을이 있습니다.
총 47개의 대구 노거수들 모두 잘 살펴 보셨나요?!
이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생물자원인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굴해 보호수로 지정하고, 관리해 나갈 예정인데요. 여러분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아껴주고 보호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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