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곤충류

꽃처럼 위장한 곤충들

초암 정만순 2017. 7. 18. 16:59


꽃처럼 위장한 곤충들


[if 사이언스 샷]

꽃에 숨어 지내는 게거미
어떤 꽃서 생활하냐 따라 자라면서 몸 색깔 달라져
몸으로 자외선 반사해 다른 꽃보다 꿀벌 더 유인

꽃 아니야? 난초사마귀
몸색깔은 희거나 분홍빛… 하트모양 발은 꽃잎 닮아
꿀벌에겐 난초꽃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보여


노란 꽃 속에 꿀벌이 파묻혀 있다. 달콤한 꿀과 꽃가루에 취해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꿀벌의 운명이 180도로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마치 꽃잎이 살아 움직이듯 꿀벌의 몸을 꽉 잡고 있다. 바로 꽃 속에 몸을 감춘 '게거미(crab spider·위 사진)'가 꿀벌을 낚아챈 것이다.

자연에서는 속고 속이는 일이 다반사다. 포식자도 피식자도 몸을 숨기고 서로의 눈을 피한다. 거미집을 짓지 않는 게거미는 먹잇감이 자주 찾는 곳에 숨어 꿀벌이나 나비, 파리가 오기를 기다린다. 흉칙한 포식자가 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위장한 것이다. 미국 러트거스대 연구진은 같은 게거미라도 숨어있는 꽃에 따라 자라면서 색이 달라진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노란 꽃이 사냥터이면 노란 게거미로, 흰꽃이 지천이면 흰 게거미가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끈기 있는 사냥꾼이라도 사냥감이 매복한 곳을 지나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게거미는 속절없이 허탕을 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마련했다. 바로 사냥감을 직접 불러 모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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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미디어


브라질 연방 고이아스대의 펠리페 고리스제브스키 박사는 최근 게거미의 능력이 단순히 꽃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진화'에 발표한 논문에서 "게거미는 자외선을 반사해 자신이 숨어 있는 꽃을 꿀벌이 더 찾게 한다"고 밝혔다. 숨어서 먹잇감을 기다리지 않고 먹잇감이 제 입으로 들어오는 기술을 쓴다는 것이다.

고리스제브스키 박사 연구진은 호주와 유럽, 말레이시아에서 68종의 게거미를 채집했다. 이 중 주로 꽃에서 사냥을 하는 게거미일수록 자외선을 더 많이 반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꿀벌의 눈에 자외선은 꽃이 밝게 빛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연구진은 "거미가 반사하는 자외선은 꽃이 꿀벌을 꽃가루가 있는 쪽으로 유인할 때 이용하는 밝은 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꽃과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위장하는 포식자는 또 있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 주로 사는 난초사마귀〈아래 사진〉이다. 애기사마귀과(科) 난초사마귀속(屬) 곤충으로 꽃사마귀라고도 부른다. 몸 색깔이 난초꽃처럼 희거나 분홍색이고 발은 하트 모양으로 납작한 게 영락없이 난초 꽃잎을 닮았다. 사마귀는 꽃인 줄 알고 찾아온 꿀벌과 나비를 살포시 움켜잡고 맛있게 먹는다. 100여년 전 세계적인 자연사학자 알페레드 러셀 월리스도 난초사마귀가 꽃을 모방한 의태(擬態)로 먹잇감을 속인다고 기록할 정도로 유명한 곤충이다.

난초사마귀 역시 최근 연구로 단순히 몸을 숨기기 위해 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난초사마귀는 실제로 꽃에 숨지 않았다. 호주 매커리대의 제임스 오핸런 교수 연구진은 2014년 국제학술지 '행동 생태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난초사마귀는 난초에 숨지 않으며 꿀벌도 실제 난초보다 난초사마귀를 더 찾는다"고 밝혔다. 즉 사마귀는 독자적으로 먹잇감을 유인하는 것이지 꽃에 숨어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난초사마귀 역시 게거미처럼 먹잇감을 적극적으로 유인하기 위해 독특한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실 난초사마귀는 특정 난초를 닮은 것도 아니었다. 영국 서식스대 제임스 길버트 박사는 "난초사마귀에게는 모양보다는 색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사람은 자세히 보면 난초사마귀와 실제 난초 꽃을 구분할 수 있지만 꿀벌의 작은 뇌는 그렇게 힘든 작업을 하지 않는다. 사마귀로서는 꿀벌의 눈에 더 밝고 화려한 커다란 꽃으로 여겨지기만 하면 된다.

자연에는 이처럼 감각 신호를 조작해 먹잇감을 유인하는 포식자가 많다. 볼라스 거미는 나방 암컷의 성페로몬을 흉내내 수컷 나방들을 유인한다. 포식성 포투리스 개똥벌레는 다른 종의 개똥벌레 암컷이 짝짓기할 때 내는 빛 신호를 흉내내 수컷들을 유인한다. 그래도 게거미나 난초사마귀에게 잡힌 곤충은 꽃에서 최후를 맞으니 더 나은 죽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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