仙道 丹功 佛敎/기공 명상

몸으로 체험하는 기의 세계

초암 정만순 2017. 6. 2. 17:51

몸으로 체험하는 기의 세계

 

 

 

 

기의 관점에서 보는 몸과 마음

 

  기는 일상적인 감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즉 우리가 긴장되어 있을 때는 기를 느낄 수 없다. 원래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활동하고 있을 때는 기가 감지되지 않는다. 원래는 몸에 마음이 스며들어 있지만, 마음에 집착이 생기면서 몸을 주위세계와 에너지적 교류를 하는 장場으로서 보지 않고 긴장된 마음의 경계, 벽으로 파악할 때는 몸과 마음이 대립되는 상태가 되어 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의식이 이완되면서 온몸으로 확장되어 몸과 마음이 하나될 때 기는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것 또한 차원의 변화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색깔, 소리, 맛, 냄새, 촉감 등은 일상생활 속에서 감각기관이 마비되지 않았다면 쉽게 느낄 수 있다. 내 몸을 외부세계와의 경계로 여기더라도, 다시 말해 어느 정도 긴장이 되어 있더라도 앞의 감각은 강한 자극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잘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느낀다는 것’은 의식, 마음의 작용이다. 그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뇌 속에 있는가? 가슴, 심장 속에 있는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마음, 의식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며 몸과 떨어져 있지 않다. 마음, 의식은 몸 전체에 걸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긴장되어 있을 때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몸의 세계, 마음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의식, 마음이 어느 정도 긴장되어 있더라도 강한 자극을 받는 순간에는 마음이 몸에서 일어나는 자극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 순간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완되어 있을 때는 항상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있다. 이때는 오감수준의 강한 자극이 아니라 미세한 기의 흐름도 느낄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기氣라는 것은 얼른 보아 분리되어 있는 것 같은 몸과 마음의 양자를 통일적으로 잇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으면 해당 부위의 몸은 비정상상태가 된다. 이때 그 부위를 관할하고 있는 마음, 의식의 상태도 기능이 저하된다. 겉으로는 몸과 마음의 상태가 따로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의 장場으로 살펴보면 연관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마음의 병’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몸과 분리된 마음만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올바른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했더라도, 몸과 마음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그 시스템에 장애가 초래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더욱이 병적 증세가 발생하는 순간에도 몸과 연결된 시스템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마음에서만 단독으로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겉으로 볼 때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한의학에서는 겉으로 병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기혈의 흐름이 부조화된 상태를 ‘미병未病’이라고 보고, 이것을 개선하는 것을 양생養生의 목표로 삼았다.

 

  여기서 기혈이 부조화된 것은 진맥이나 촉진 등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단할 수 있지만 기의 감각을 알게 되면 부조화된 기의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몸의 장애는 물론이고 정서적 변화, 스트레스로 인한 심신장애 등 몸과 마음, 의식의 변화에 따라 생체장(기의 형태장)이 변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기는 기능적 측면에서 서로 달리하는 몸과 마음을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숨겨진 질서’의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의 세계는 ‘드러난 질서’에 속하는 몸과 마음의 이면에서 작용하면서 양자를 통일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세계이며, 우리가 수련을 통해서 이러한 기의 세계를 느낀다는 것은, 그 높은 차원에 들어서서 현실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 서게 될 때, 병과 건강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대책도 달라진다. 모든 것을 본성을 갖는 존재로 보는 사유방식은 병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사유방식에서는 병을 내 몸의 안이나 밖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 병을 외적 대상으로 삼아 내 몸은 초긴장이 되어서 경계를 하고 치열하게 혈전을 치르게 된다. 물론 여기서 그러한 병적 상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현상을 어떤 맥락 속에서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대응이나 마음상태가 전혀 다를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그 결과마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세계는 연속적인 흐름을 갖는 하나의 전체이다. 따라서 병들고 건강한 것은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식생활, 환경 등의 주변세계로 이어지는 맥락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병을 그 맥락 속에서 보지 않고 외적 대상의 고립된 실체로 가정하면 그것을 이기기 위한 나 자신도 고립된 본성을 갖는 실체가 되며, 이러한 사고 자체가 나를 세계로부터 유리시키게 된다. 더욱이 나에 의해 약간은 허구적으로 각색된 병과 싸우기 위해서 나를 초긴장시키는 것은 나를 우주적 기의 흐름으로부터 차단하여 스스로 폐쇄회로가 되는 것인 만큼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서양의학과 한의학에서 잘 드러난다. 서양의학은 분석적이고 환원주의식으로 보기 때문에 인체를 유기적으로, 상호 관련된 것으로 보기보다는 일종의 기계부품들이 결합된 것처럼 보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피부과나 이비인후과의 경우도 눈에 드러나는 각 기관을 중심으로 치료하지, 한의학처럼 장기와의 연관성을 파악하여 장기의 기운상태를 높임으로써 각 기관이 그 결과로서 치유되는 것은 상정하지 않는다. 눈에 드러난 세계 중심으로 보는 서양의학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은 ‘세균학설’이다.

 

  이 학설은 질병을 외부의 세균에 인체가 감염된 결과하고 본다. 이에 따라 그 세균을 발견하고 죽이는 의학연구와 제약기술이 크게 발전해 왔다. 물론 이러한 서양의학의 발전은 전염병이라든지 전쟁시기의 환자치료에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러나 심신계통 질환의 치료에서는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한의학이나 기공에서는 병과 건강에 대해서 보는 관점이 다르다. 한의학이나 기공에서는 병을 고정된 객관적 실체로 보기보다는 몸의 기능적 상태에 따라 건강할 수도 병이 들 수도 있는 것으로 본다. 몸의 기능적 상태는 외적인 요인, 내적인 요인, 불외불내인不外不內因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데, 이 모두가 몸을 전체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자연적 조건, 즉 한기寒氣, 바람, 습기, 더위, 지역의 기운, 우주의 기운 등의 외인外人과 음식물, 과로 등의 불외불내인不外不內因이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들에 의해 우리 몸의 균형이 무너질 때 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외기外氣가 곧바로 외사外邪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내 몸의 기운이 균형을 이루고 있고 원기가 왕성하면 외기가 병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서양의학의 세균학설과 달리 세균, 미생물이 우리 체내에 들어오더라도 면역이나 원기가 왕성하다면 병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앞에서 말한 ‘미병未病’은 겉으로 보기에 지금은 병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기가 부조화된 상태여서 기의 조화, 원기의 보충이 필요한 상태라고 보는 것이다.

 

  특히 한의학의 허虛와 실實의 개념은 병과 건강에 대한 인식의 시야를 넓혀 준다. 허虛는 정기가 부족한 상태를 가리키고 실實은 사기邪氣가 왕성한 상태를 말한다. 물론 두 가지 모두 내적인 균형을 잃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 상태를 달리 표현하는 것은 인체 내부에서의 기 흐름과, 인체와 우주 사이에서의 기 흐름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체 내에서는 기가 막힘없이 잘 흘러야 하며 기가 골고루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또한 인체는 우주와의 기순환이 원활하여 소통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허와 실의 상태는 그러한 인체 내부와 우주의 흐름에 장애가 생길 때 그 양상에 따라서 달리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의학 이론을 처음 접할 때 허의 문제점은 쉽게 이해하는데 실의 상태가 문제라는 데 대해서는 조금 낯설어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병과 건강에 대한 서구적인 ‘실체’의 개념과 동양적인 ‘흐름’의 개념의 차이가 잘 나타나는 부분이다. 한의학에서는 인체 내부뿐만 아니라 인체와 우주 사이에서도 정체되어 흐르지 않는 부분은 그 자체로서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어느 부분에서 내부 흐름에 막힘이 있고 외부와의 소통에 폐쇄적인 긴장이 나타날 때 그 부위는 울혈, 울체되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 이것은 흐름상 항상 그 반대 부위에 허의 상태를 동반하여 그 부위에 기능부전 상태를 초래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두고 비아냥거리면서 ‘기가 센 사람’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허와 실의 개념에 비추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즉 지나치게 설치고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경우는 자기 내부에서 기의 불균형이 생겨 한 쪽으로 편벽되게 나타난 것이고 우주와의 흐름에서도 긴장된 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처럼 허와 실의 개념은 그 배후에 중도, 중용의 가치관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도, 중용의 차원은 허와 실이 나타나는 신체부위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인체 내부 전체, 나아가 전 우주적 기의 흐름의 차원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병과 건강도 고정된 실체의 개념이 아니라 그 근원에서는 인체 내부와 인체와 우주 사이의 기의 흐름이라는 맥락 속에 나타나는 유동적인 어떤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