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일지라도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하면 여운은 더 길다. 이번 순례도 기억에 오래 남을 행운이었다. 이름 있는 시사주간지 편집장을 지냈던 소종섭과 함께 김시습이라 해야 고개를 끄덕이는 설잠(雪岑)스님을 만나러 무량사를 찾았기 때문이다.

무량사는 찾을 때마다, 마음 속 저 깊은 무의식에서 무슨 얘기가 들리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소리를 찾지 못하고 아쉬움을 안고 뒤 돌아 나오던 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무량사는 만수산에 안겨있다. 산은 만수산(萬壽山)이요 절은 무량사(無量寺)다.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의 뜻은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생명, 비추지 않은 곳이 없는 광대한 빛, 이런 뜻이다.

   
산정무한(山情無限)이라 했던가. 연락 없이 와도 부담이 없는 곳이 이곳 만수산 무량사다. 옛 터 어딘가에 있을 그 우물에 쉬고 계실지도 모르는 부처님의 빛을 찾기만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을 맡겨 볼만한 청한당 마루, 매월당 김시습의 진영이 있는 영정각과 승탑 등도 빼놓지 말고 보아야 할 곳이다.

일주문의 앞면에는 만수산무량사(萬壽山無量寺), 뒷면에는 광명문(光明門)이다. 당연히 무량사 주불은 극락세계 아미타불이시다. 아미타불이 상주하시는 만수산에 극락정토가 펼쳐진 세상이라는 뜻이리라. 통일신라 때 범일 국사가 산문을 열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한량이 없는 목숨은 무슨 뜻일까? 백년도 못사는 우리들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서 걷다가, 왼쪽에 비구니 스님이 무량사에 땅을 헌납한 뜻을 기리는 비석을 발견하였다.

세상에 좋은 일을 해서 그 귀한 뜻과 이름이 후세에 오래도록 전해지니 한량이 없는 목숨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이름표 없는 다리도 있다. 다 소중한 일이다. 마음을 씻으며 다리를 건너니 천왕문 옆 당간지주 앞에 섰다.

당간지주를 더러 봤지만 무량사 당간지주는 쉽게 말하기 어렵다. 금산사 당간지주처럼 섬세한 멋을 부리지도 않았고, 미륵사 당간지주와 키를 잰다면 동생뻘도 안된다. 그러나 다른 여타의 당간지주에도 밀리지 않는 당당함이 있다. 철로 만든 당간(幢竿)은 대원군이 일부 가져가고, 나머지는 일제 때 다 빼았겼다. 그래도 당간지주는 우뚝하다.

3배를 올리면서도 부처님을 쳐다봤다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욕심내려 놓고

그저 마음을 편안히 하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옛날에는 부처님을 모신 절에 당기(幢旗), 번기(幡旗)를 걸어서 부처님과 법회를 장엄하였던 귀한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당간은 대부분 사라지고 당간지주만 남아서 유물 역할만 하고 있다. 요새 가끔 괘불재를 하는 사찰에서 괘불대나 당간을 새로 만드는 곳이 있다.

그러나 스텐 파이프로 제작하여서 재미가 덜하다. 이왕이면 당간 한마디 한마디를 투박한 느낌을 살린 주물이나 구리, 석재 등의 재료를 쓰되, 옛 당간을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하늘 높이 솟은 용두가 부처님의 법회를 알리는 깃발을 물고, 부처님 법문을 바람에 실려 온 세상에 전하듯이, 이 시대에 맞는 형식과 수행문화로 당간이 복원되기를 발원한다.

무량사에 가면 천왕문에서 잠시 머물러 마당을 바라보면 좋다. 극락전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을 천천히 보여주려는 듯, 가지를 밑으로 드리운 소나무와 느티나무를 일부러 사선으로 심어 놓았다. 다시 생각하면 극락전과 석탑 그리고 석등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어 생기는 직선적 긴장감을 나무를 한쪽으로 치우치게 심어 불균형의 조화를 만들고, 그것이 오히려 탑과 극락전으로 중생을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한다.

극락전은 언뜻 봐서도 아름답다. 자세히 보다보면 더 아름답다. 특히 어간문 문살과 서까래 밑 단청의 아름다움은 꼭 볼 일이다. 영원한 생명이신 아미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면서도 부처님을 쳐다봤다.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욕심 내려놓고, 그저 마음을 편안히 하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주지 스님을 뵈었다. 누군가 산정무한(山情無限)이라고 했다. 미리 연락도 없이, 방문 앞에서 주지 스님을 찾는 불청객을 따뜻하게 맞아 주신다. 곧 정월 방생법회를 계획하고 계셨다. 보통 버스 한 대나 두 대를 준비했단다. 이번에는 여덟 대는 될 것 같다고 한다.

1년 만에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산사음악회, 불교대학, 각종불사를 비롯한 사찰의 제반 사항을 사찰 운영위원회에서 의논한 결과라고 한다.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었다. 지역단위 회장단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찰 운영위원회에서 사찰의 대소사를 터놓고 의논한 결과라 한다. 기분이 좋았다. 다른 얘기는 물어보지도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법당에 불교대학 강의 때 쓴다는 경상(經床)이 가지런히 쌓여 있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스님은 구 무량사지를 복원하고자 발원하였다. 구 무량사지 어딘가에 있을 우물을 꼭 찾아내어, 그 우물에 쉬고 계실지도 모르는 부처님들의 빛을 반드시 찾아드리고 싶다는 원을 세웠다. 지역사회를 위해 불교적 가치가 잘 발현되는 힐링센터도 계획하고 있었다.

김시습 설잠스님을 뵈러 영정각으로 올라갔다. 누가 조금 전에 향을 꽂고 참배하였나 보다. 잠시 앉아 참선을 하였다. 무량사에 갈 때 마다, 뭔가 알 수 없는 답답함으로 말없이 앉아 있다가 나오던 일이 생각났다. 가만 생각하니, 설잠스님 김시습의 얘기가 허공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인가 싶었다.

아직도 얘기는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다 듣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세상을 향해 옳은 말 한마디 던지고 싶었던 그가 이해될 것 같다. 스님이 되어서도 세상을 놓을 수 없었던 그를 이해해야 되겠다. 세상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끝내 무량사에서 돌아간 그를 이해해야 되겠다.

곧 얼음이 풀린다. 청한당 마루에 앉아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을 맡기러 또 와야겠다. 산문을 나서며 매월당 설잠대사 승탑을 참배하였다. 승탑을 둘러싼 솔향 속에 매화 향기 분명하다.

소종섭에게 물었다. “무량사를 참 좋아 하는 것 같네요. 이유가 있습니까?” 거사 왈, “저는 무량사에서 태어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