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지 않은 이른 아침, 봉황산 초입에 들어서 예의 그 변함없는 사과밭을 지나 부석사 일주문에 들어섰다.

날아갈 듯 가벼운 느낌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부석사에서는 늘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 기분은 무량수전을 향하는 길에 점점 고조된다.

천왕문을 지나 산자락에 묻힌 듯 늘어선 전각들을 바라보며 아직 빛이 들지 않은 짙은 음영의 부석사를 본다.

모든 걸 받아줄듯 한 봉황산의 품에 푹 감싸여 있다.

산뜻해지는 마음으로 그 사이를 한 발짝 한 발짝 훌훌 털어 버리며 올라간다. 범종루를 지나고 안양루에 다다라 무량수전 앞마당에 서면 비로소 그 가벼워졌던 마음의 이유를 알게 된다.

검은 빛으로 힘 있게 뻗어나간 태백산맥. 시리도록 푸르게 물들어 있는 하늘 빛. 다시금 일출녘의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섰다. 하늘에 떠 있는 기분과 함께.

부석사의 창건 신화는 의상대사의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스님에게 정을 느꼈던 선묘 낭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결국 그의 수호신을 자처하며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는 애달픈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이후 의상대사가 왕명을 따라 봉황산에 절을 창건하려 하였는데 부근의 도적떼들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때 선묘가 변한 선묘룡이 나타나 거대한 돌을 들어 올려 겁을 주어 모두 쫓아 버린 후에야, 오늘날의 부석사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창건 신화에 나온 바위는 ‘浮石(부석)’이라는 두 글자가 적힌 채 무량수전 서편에 자리하고 있다.

어느 절이나 창건설화가 없지 않겠지만, 이토록 그에 얽힌 존재가 남아있고, 그것이 절의 이름까지 된 경우는 무척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는 석(石)자에는 점이 하나 더 찍혀 있는데 돌이 언제 다시 떠오를지 몰라 못을 쳐 놓은 것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부석사의 육중하면서도 날아갈듯 가벼운 역설적인 아름다움은!

이윽고 봉황산 위로 늦은 아침 해가 걸린다.

커다란 신라시대의 석등에 새겨진 연꽃의 단아함이 경내를 물들인다.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 돌아앉은 무량수전 독존의 아미타여래상은 불자들을 자연스레 서방정토를 향해 참배하도록 하고 있다.

찬란한 햇살은 이내 온 세상을 아낌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고루 어루만진다.

그 아래 부석사가 있고,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이 커다란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태고 적부터 시작되었을 다르지 않은 또 하루의 평범한 시작. 그런 일상의 소중함이 너무 감사하여 메고 있던 가방 끈을 꽉 쥐어 본다.

너무나 마음이 가벼워져 날아갈 것을 걱정이라도 하듯 홀가분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