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나무
분류 | 녹나무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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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 | Lindera obtusiloba |
온통 잿빛의 삭막한 겨울 숲도 들판에 완연한 봄이 찾아오면 긴 겨우살이를 털고 새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인간 세계에 선각자가 있듯이 나무나라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생강나무라는 초능력 나무가 있다. 예민한 ‘온도감지 센서’를 꽃눈에 갖추고 있어서다. 생강나무는 숲속의 다른 나무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날 꿈도 안 꾸는 이른 봄, 가장 먼저 샛노란 꽃을 피워 새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숲속에서 자연 상태로 자라는 나무 중에 제일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나무가 바로 생강나무다.
가느다란 잿빛 나뭇가지에 조그마한 꽃들이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점점이 박혀 있는 화사한 꽃 모양은 ‘봄의 전령’이라는 그의 품위 유지에 부족함이 없다.
생강나무는 지름이 한 뼘에 이를 정도로 제법 큰 나무로 자라기도 하지만, 우리가 산에서 흔히 만나는 나무는 팔목 굵기에 사람 키를 약간 넘기는 정도의 자그마한 것이 대부분이다.
인가 근처의 야산에서는 2월 말쯤에, 좀 깊은 산에서는 3~4월에 걸쳐 꽃을 피운다. 한번 피기 시작한 꽃은 거의 한 달에 걸쳐 피어 있으므로 나중에는 진달래와 섞여 숲의 봄날을 달구는 데 한몫을 한다.
꽃이 지고 돋아나는 연한 새싹은 또 다른 귀한 쓰임새가 있다.
차나무가 자라지 않는 추운 지방에서는 차 대용으로 사랑을 받았다. 차(茶)문화가 사치스런 일반 백성들은 향긋한 생강냄새가 일품인 산나물로서 즐겨왔다. 이후 생강나무는 주위 동료나무들과 어울려 ‘초록은 동색’이 된다.
까맣게 잊어버린 생강나무는 가을 단풍철이 오면서 다시 한 번 우리의 눈길을 끈다.
봄의 노란 꽃 영광이 아쉬운 듯, 셋으로 갈라진 커다란 잎은 노란 단풍으로 물든다. 생강나무의 한해살이는 노란 꽃으로 생명을 시작하여 노란 단풍으로 마감한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콩알 굵기만 한 새까만 열매가 눈에 띈다.
처음에는 초록빛이었다가 점차 노랑, 분홍을 거쳐 나중에는 검은빛으로 익는다. 이 열매에서 기름을 짠다. 이 기름으로 옛날 멋쟁이 여인들은 머릿결을 다듬었으며, 아울러 밤을 밝히는 등잔불의 기름으로도 사용하였다. 남쪽에서 만나는 진짜 동백기름은 양반네 귀부인들의 전유물이었고, 서민의 아낙들은 주위에서 흔히 자라는 생강나무 기름을 애용했다. 그래서 머릿기름의 대명사인 ‘동백기름’을 짤 수 있는 나무라 하여, 강원도 지방에서는 아예 동백나무(동박나무)라고도 한다. 춘천 태생의 개화기 소설가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은 사실 생강나무 꽃이 맞다.
생강나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미료로 쓰는 생강과 관련이 깊다.
나뭇잎을 비비거나 가지를 꺾으면 은은한 생강냄새가 난다. 식물이 향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유(精油)라고 하여 여러 가지 화합물을 가지고 있는 성분 때문이다. 생강나무는 잎에 정유가 가장 많고 다음이 어린 줄기이며, 꽃에는 정유가 거의 없다. 생강과 생강나무의 정유 성분을 보다 세밀히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둘 다 β-유데스몰(β-eudesmol)과 펠란드렌(phellandrene)이라는 성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쨌든 이들 때문에 우리는 생강나무에서 생강냄새를 맡을 수 있다.
옛사람들은 음식물을 잠시 저장할 때 개미나 파리가 모여드는 것을 막기 위하여 생강나무의 어린 가지 껍질을 벗겨서 걸어 놓았다고 한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는지 흥미롭다.
그 외에 생강나무는 민간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산후조리, 배 아플 때, 가래를 없애는 데에도 가지를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호사설(星胡僿說)》각주1) 〈만물문〉 편에 보면 “속칭 아해화(鵝孩花)라는 것이 있어, 누른 꽃은 거위 새끼의 털처럼 보들보들하고, 향기는 생강냄새와 흡사한데, 봄철이 오면 다른 꽃보다 제일 먼저 핀다.
양나라 원제가 말한 아아화(鵝兒花)와 같은 꽃이다”라고 나와 있다. 이는 생강나무와 관련된 유일한 옛 기록이다.
산속의 생강나무보다 조금 앞서서, 마을 부근의 빈터나 밭둑에는 얼핏 보아 생강나무 꽃과 너무 닮은 노란 꽃을 피우는 또 다른 봄 나무가 있다. 바로 산수유다.
잎이 피고 나면 두 나무의 차이는 너무도 뚜렷하지만, 꽃만 보아서는 조금 혼란스럽다. 꽃이 피어 있을 때 구별하는 방법은 이렇다. 두 나무 모두 여러 개의 작은 꽃이 모여 핀다. 산수유는 꽃대가 길고 꽃잎과 꽃받침이 합쳐진 화피(花被)가 여섯 장이며, 생강나무는 꽃대가 거의 없다고 해도 될 만큼 짧고 꽃잎도 네 장이다.
외국어 표기 | 三桠乌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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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 | Lindera obtusiloba Blume |
과 | 녹나무과(Lauraceae) |
형태분류
줄기: 하록(夏綠) 관목 또는 아교목(亞喬木)으로 암수딴그루(雌雄異株)이고, 수피에 암회갈색 피목(皮目)이 발달한다.
식물체에 상처를 내면 생강냄새가 난다.(비교: 산수유는 생강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잎: 어긋나며(互生), 3~5개로 깊은 굴곡이 지며, 약간 광택이 나기도 한다.
꽃: 꽃자루(花柄) 없이 이른 봄(4월)에 잎보다 먼저 피며, 황색 꽃잎이 6장이다.
열매: 물열매(漿果, 液果)이며, 9월에 황적색에서 흑자색으로 익는다.
염색체수: 2n=241)
생태분류
서식처: 산정부 관목림, 산지 숲속, 숲 가장자리, 계곡, 숲정이 등, 반음지~양지, 적습(適濕)
수평분포: 전국 분포(개마고원 이남)
수직분포: 산지대 이하
식생지리: 냉온대~난온대, 중국(주로 동부), 일본(혼슈 이남), 부탄, 인도, 네팔 등
식생형: 산지 삼림식생
종보존등급: [IV] 일반감시대상종
사람들의 녹색갈증이 증폭되는 계절, 긴 겨울의 끝자락, 이른 봄 산비탈에 핀 노란 꽃나무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많은 사람들이 산수유로 오해하는 생강나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산수유는 사람이 심어 키우던 것에서 유래한 개체들로, 산간 마을 인근 개울가나 산비탈로 탈출해 퍼져나간 것이다. 산수유는 야생으로 퍼져나가 군락을 이루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없으면 사라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천이가 진행되어 자생하는 토종식물들에게 파묻히기 때문이다. 산수유는 한반도에 자생하는 식물이 아니라, 중국 식물이다.
생강나무는 한반도 자생의 고유식물이다. 산수유는 밝은 곳에서만 살지만, 생강나무는 밝은 곳에서도 숲속에서도 잘 산다. 산수유는 층층나무과이며, 생강나무는 녹나무과다. 이처럼 두 종은 계통분류가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크게 다르다. 도시 공원, 학교 정원에 산수유만 가꿀 것이 아니라, 토종 생강나무도 심어 볼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생강나무는 벚나무나 개나리를 대신하는 진정한 봄의 전령사이고, 그럴 자격이 있다. 생강나무가 지고나면 그 다음에 진달래 종류가 계절을 이어간다.
봄을 여는 꽃나무들은 대부분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생태분류에서 ‘vernal plant’라고 한다. 굳이 번역한다면, ‘봄빛을 알리는 식물’ 정도다. 이들 봄빛 나무들은 우리나라 온대 활엽수림을 특징짓는 생태형질로, 일찍 겨울잠에서 깬 허기진 곤충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중요한 식량자원이다. 그래서 한반도 자연의 관목 가운데 대표종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 생강나무를 들 수 있다.
생강나무는 황해를 가까이하는 중국 땅 일부지역과 일본 혼슈(本州) 이남의 서남부 일부지역에만 분포하며, 대부분 지면(地面)이 드러난 지질역사가 오래된 지역, 주로 화강암이 우세한 지역에서 분포한다. 만주나 연해주에서는 너무 추워서 살지 못한다. 한반도 개마고원 이남에 널리 분포하는 낙엽활엽수림을 대표하는 식물사회, 신갈나무-생강나무군단2)을 특징짓는 검색키가 되는 식물종이다. 그래서 생강나무는 가장 한반도적인 관목이 되는 셈이다.
동북아에서 분포중심지는 단연 한반도다. 그래서 영어명으로 ‘Japanese spicebush’라고 통용되지만, ‘Korean spicebush’라고 바꿔 부르는 것이 옳다. 일본에는 해양성기후를 특징지을만한 생강나무속(Lindera spp.)의 종 다양성이 풍부하고, 일본열도에만 분포하는 특산종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3)
다양한 생강나무속의 종들 가운데 생강나무는 유일하게 잎이 뾰족하지 않고, 그것도 뚜렷한 3맥을 따라 3갈래로 갈라진 손바닥처럼 생긴 종이다. 종소명 옵투질로바(obtusiloba)도 그런 잎 모양을 나타내는 라틴어다. 우리나라에는 생강나무속에 생강나무, 비목나무, 백동백나무가 있다.
이들 가운데 생강나무가 가장 북쪽의 추운 곳까지 살고, 백동백나무가 가장 남쪽의 따뜻한 곳까지 산다. 즉 생강나무는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백동백나무는 추위를 이기지 못하며, 비목나무는 생강나무가 사는 곳보다는 따뜻한 곳에 살고, 백동백나무가 사는 곳보다는 추운 곳에 산다. 따라서 남북으로 펼쳐진 한반도에는 남쪽에서부터 중부지방을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이들 3종의 분포양상이 점차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글명 생강나무의 최초 기재는 『조선식물명휘(朝鮮植物名彙)』4)의 강나무이며, 약재로 황미목(황매목), 유류재(油類材)로 동나무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생강나무는 줄기나 잎에 상처를 내면 진한 향을 발산하는데 그 냄새가 마치 생강 같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물파스 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일종의 소독제 같은 화학물질로 생강나무가 만들어 내는 방어물질이다.
일본명 단꼬우바이(檀香梅, 단향매)는 생강나무 재목(材木)에서 백단(白檀) 향기가 나고, 꽃은 매화(梅)처럼 일찍 피는 데서 유래한다.5) 한자명(三桠乌药, 삼아오약)은 나뭇가지가 3개로 갈라져 아귀진(三桠, 삼아) 오약(烏藥)나무(Lindera strychnifolia, 중국산 녹나무과 종류)라는 의미다. 동북아 삼국의 이름이 모두 서로 잇닿아 있다.
생강나무 이름에는 다양한 방언들이 있다. 생강나무 이름 자체와 잇닿아 있는 생앙나무, 한자명에서 유래하는 아귀나무, 아위나무, 아구사리, 아사리, 동백나무처럼 열매에서 머릿기름을 얻은 것에서 비롯하는 개동백나무, 산동백나무, 그리고 한자 檀香梅(단향매)에 잇닿아 있는 황매목(黃梅木) 등이다.6) 그만큼 생강나무가 지리적으로 개마고원(묘향산 해발 400m 이하)7)이남 한반도 전역에 널리 분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생강나무를 만나려면 반드시 산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산수유처럼 마을 근처에서 만나는 일은 드물다. 사람의 간섭이 미치는 서식환경을 싫어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생강나무 열매로 머릿기름을 이용하는 풍습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남부지방이나 바다 건너 일본에서 전래되어 온 동백나무 열매를 짜서 만든 머릿기름을 알고서야 생겨난 풍습일 것이다. 하지만 생강나무는 식용으로 대용차로, 약용으로 이용된 오래된 민족식물자원이다.
1755년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의 황매(黃梅)라고도 부르는 ‘아차(兒茶)’가 바로 생강나무인 것이다.8)
생강나무 열매는 겨울채비를 하는 산새들의 주요 식량자원이다. 9, 10월이 되면 새까맣게 익은 생강나무 열매 덕택에 숲속에는 한바탕 장마당이 선다. 도심 공원의 산수유도 좋지만, 생강나무를 심어보자는 것도 도심에 어렵사리 살아가는 야생 조류들에게 훌륭한 식량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고목이 되어도 위로 솟지 않고 관목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관리하기가 쉽고, 울타리 조경용으로 적합하다. 거기다가 봄에 가장 일찍 꽃이 피니 녹색갈증 해소에 크게 도움이 된다.
각주
- 1 北村, 村田 (1982a), Baranec & Murín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