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목본(사)

살구나무

초암 정만순 2017. 3. 19. 09:07



살구나무


살구나무


다른 표기 언어 Apricot , , アンズ杏子



요약 테이블
분류 장미과
학명Prunus armeniaca var. ansu

술집은 과음으로 병을 만들고, 의원은 병을 고치는 곳이니 서로 상극일 것 같다. 우리 속담에 ‘병 주고 약 준다’라는 말이 있는데, 중국고사에 보면 술집과 의원 모두 살구나무와 관련이 있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 803~852)은 “청명 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길 가는 행인 너무 힘들어/목동을 붙잡고 술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더니/손들어 멀리 살구꽃 핀 마을(행화촌)을 가리키네”라고 읊조렸다. 이후 행화촌(杏花村)은 술집을 보다 점잖게 부르는 말이 되었다. 또 오나라의 명의로 이름 난 동봉(董奉)은 환자를 치료해주고 돈 대신 앞뜰에다 살구나무를 심게 했다. 곧 숲을 이루었고, 그는 살구가 익으면 내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했다. 이후 사람들은 진정한 의술을 펴는 의원을 행림(杏林)이란 이름으로 대신했다.

살구나무는 중국이 고향 땅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이전일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살구는 복숭아, 자두와 함께 우리 선조들이 즐겨 먹던 옛 과일로서 제사에 올리는 제물로 빠지지 않았다.

서민의 생활상을 그린 옛 그림을 보면, 오막살이 윗녘에는 흔히 살구나무 한 그루가 연분홍 꽃을 매달고 있다. 매화가 양반들의 멋을 내는 귀족나무였다. 살구나무는 질박하게 살아온 서민들과 함께한 나무였다.

살구나무는 배고픔이 한창인 초여름에 먹음직스런 열매가 잔뜩 열리는 고마운 나무이며 먹고 난 뒤 남은 씨앗은 바로 약으로 쓰였다. 행인(杏仁)이라 불리는 살구씨는 만병통치약이었다. 동쪽으로 뻗은 가지에서 살구 다섯 알을 따내 씨를 발라 동쪽에서 흐르는 물을 길어 담가두었다가 이른 새벽에 이를 잘 씹어 먹으면 오장의 잡물을 씻어내고, 육부의 풍을 모두 몰아내며, 눈을 밝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살구나무가 많은 마을에는 염병이 못 들어온다는 이야기까지 있는가 하면, 열매가 많이 달리는 해에는 병충해가 없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최근 살구열매의 육질을 분석한 결과 비타민 A가 풍부하고, 신진대사를 도와주는 구연산과 사과산이 2~3퍼센트쯤 들어 있다고 한다. 이런 성분들은 특히 여름철 체력이 떨어질 때 크게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살구나무는 꽃과 과일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몸체의 쓰임도 요긴하다. 골 깊은 산사에서 스님이 두들기는 목탁의 맑고 은은한 소리는 찌든 세상의 번뇌를 모두 잊게 한다. 바로 살구나무 목탁에서 얻어지는 소리다. 몇 가지 나무가 알려져 있지만, 목탁은 역시 살구나무 고목이라야 제대로 된 소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맑고 매끄러운 흰 속살에 너무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재질을 가진 탓이리라.

꽃은 봄이 무르익어 갈 무렵 잎보다 먼저 연분홍색으로 피면서 한 해를 시작한다. 이어서 동그스름한 잎을 펼치고, 초여름에 들면 다른 과일보다 훨씬 먼저 붉은 기가 살짝 들어간 노란 열매가 열린다. 일찌감치 자식농사를 끝내버렸으니 이듬해까지는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다. 살구나무와 매실나무는 친형제나 다름없는 가까운 사이다.

한자 이름인 행(杏)은 원래 살구를 뜻하나 은행도 같은 자를 써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을 행단(杏壇)이라고 하는데, 그가 죽고 난 후 한참 뒤에 이곳을 세우면서 주위에 ‘행’을 많이 심어 행단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행단나무가 살구인지 은행인지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 땅에도 살구나무와 아주 닮은 나무가 있다. 중부 이북에서 주로 자라며, 줄기에 두꺼운 코르크가 발달한 개살구나무다. 열매는 살구보다 좀 작고 떫은맛이 강하여 먹기가 거북살스런 탓에 들여온 살구나무가 주인이 되고 우리 살구나무는 앞에 ‘개’가 붙어 버렸다. 맛 좋고 굵기도 더 굵은 수입 살구에 밀린 셈이다. 결국 우리의 개살구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처럼 볼품만 있고 실속이 별로일 때 쓰이는 말에나 등장하게 되었다. 깊은 산에서나 만날 수 있는 토종 개살구에게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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