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水 天下/周遊天下

중국 감숙성 (황하 석림/ 구마라즙사/ 칠채산/ 와불사/ 감숙박물관/ 수차원) 탐방기

초암 정만순 2016. 10. 5. 17:57



중국 감숙성

황하 석림/ 구마라즙사/ 칠채산/ 와불사/ 감숙박물관/ 수차원



탐방일시 : 2016.9.27 ~ 10.2(4박 6일)



"설명 자료 및 지도는 많은 선답객의 탐방기와 인터넷 자료를 참고/인용했음을 말씀드립니다"








 






실크로드


인류가 만든 길 중에서 가장 위대했던 길, 실크로드 ~~
장안에서 지중해 연안까지 이어지는 동서양의 무역로 서역의 포도, 석류, 호도, 마늘, 수박, 목화가 유입되고
중국의 비단와 종이가 로마제국까지 흘러갔던 이 길은 열사의 사막과 고원의 산맥을 통과해야 했던 험로였다.
낙타를 이끌고 사막을 넘어가던 대상들은 뜨거운 한 낮에는 그늘에서 자고 밤에만 걸었다.
이정표도 없이 별빛을 보고 방향을 잡아 걸어야 했던 길~~ 
그 길은 호화롭던 왕국의 도시들을 연결하던 혈맥이었고 부와 영화를 축적하던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다.
그 길은 한 무제가 흉노와 결전을 앞두고 동맹을 구하기 위해 월지국으로 장건을 파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장건은 그곳에서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번성한 나라들을 보았고 베일에 싸인 서역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되었다.
흉노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하여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후 그가 13년 동안 떠돌며 보고 들었던 정보들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서안 난주 돈황을 지나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 고원을 지나 지중해까지 총 6,400킬로에 이르던 실크로드
무역품만이 아닌 정치, 경제, 문화가 교류되었고 전쟁보다 더 무서운 힘으로 세계사의 명운을 돌려놓았다.

한(漢)에서 당(唐)나라 시대까지 황금기를 구가했던 실크로드는 당의 멸망과 함께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슬람국가가 번성하면서 바닷길이 개척되었고 십자군 전쟁과 징키스칸의 원정으로 길들은 창검과 군마들이 휩쓸고

다녔다.
1400년대 명나라가 쇄국정책을 펼치면서 서역으로 가던 길이 막혔고 실크로드는 화적들과 승냥이 떼가 출몰하는

잊혀진 길이 되었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통과하던 서역 북로와 남로 오아시스길 위의 유적들은 모래폭풍 속에 미라처럼 묻혀갔다.
이 길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제국주의 침탈의 첨병이었던 고고학자들에 의해서다.
돈황의 막고굴에서 도굴되었던 고문서들이 각국의 도서관에 수장되어 실크로드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주게 된 것이다.

이번에 찾아가는 실크로드 여정은 돈황이나 우루무치, 쿠차, 호탄, 카슈가르를 가는 정통 코스는 아니다.
난주에서 돈황으로 가는, 치렌산맥을 따라 무위, 장액, 돈황으로 이어지는 하서주랑(河西柱廊) 길이다.


감숙성의 지리와 기후


간쑤 성은 중국 서부, 황하 상류에 위치하며, 지역이 드넓다.

북위 32°11′~42°57′, 동경92°13′~108°46′ 사이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샨시(陕西)(섬서), 남쪽으로는 쓰촨(四川)(사천), 서쪽으로는 칭하이(青海)(청해), 신장(新疆)(신강), 북쪽

으로는 네이멍구(内蒙古)(내몽고), 닝샤(宁夏)(영하)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간쑤 성의 지형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산지, 고원, 평야, 하곡, 사막이 뒤섞여 분포한다.

지세(地势)는 서남에서 동북으로 기울어져 있고, 폭이 좁고 긴 모양이다.

동서로 1655km, 남북으로 530km이며, 각 현의 특징에 따라 대략 6개의 큰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룽난(陇南)산지이다.

이곳은 첩첩이 산봉우리가 있고, 산이 높으며 계곡이 깊다.

식생이 풍성하며 곳곳에 맑은 물이 쉬지 않고 흐른다.

이 지역은 대략 웨이수이(渭水)이남, 린탄(临潭), 디에부(迭部) 일대의 동쪽을 포함하며, 친링(秦岭)의 서연 부분이다.

산지와 구릉은 서고동저 지형이고, 푸른 산이 맞대있고, 계류가 출렁이며, 산봉우리가 높고 비탈이 가파르다.

남강의 섬세함과 북국의 거침이 이곳에서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두 번째는 룽중(陇中)황토고원이다.

간쑤 성 중부와 동부에 위치하며 동쪽 샨시(陕西) 성과 간쑤 성의 경계에서 서쪽 냐오샤오링(鸟鞘岭) 부근까지이다.

이곳에는 석유와 매탄이 풍부하며, 유명한 산인 다촨(大川)(대천)이 있다.

황하는 이곳을 흘러지나 류자샤(刘家峡), 옌궈샤(盐锅峡), 바판샤(八盘峡) 3대 저수지는 지난다.

세 번째는 간난(甘南)(감남)고원이다.

이곳은 “세계의 용마루”라 불린다. 칭짱(青藏)고원 동부 가장자리 모퉁이에 위치하며 지세가 높아 평균 해발 3000m를

넘는 전형적인 고원지대이다. 이곳은 초원이 넓게 펼쳐져 있고, 수초가 풍부하여 간쑤 성의 주요 목축지 중 하나이다.

네 번째는 하서주랑(河西走廊)이다.

북서부 치롄(祁連)산맥 이북 허리산(合黎山)(합려산,2663m)과 룽서우산(龍首山)(용수산,2895m) 이남에 위치한다.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폭이 좁고 긴 지대이다.

 해발 1000~1500m사이에 있으며, 길이는 약 1000여km , 폭은 수 킬로미터에서 백여 킬로미터까지 일정하지 않다.

허리회랑의 지세는 평탄하며, 기계 경작의 조건이 좋고, 태양열이 충분하고, 수자원이 풍부하다.

농업발전의 전도가 유망하여 간쑤 성의 주요 상품 식량기지이다.

간쑤주랑(甘肅走廊)이라고도 칭해지며 동쪽 오초령(烏鞘嶺)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위먼관(玉門关, 옥문관)에 이르는

약 900㎞구간의 서북에서 동남 방향으로 펼쳐있는 폭이 수 ㎞에서 100㎞가까이 되는 좁고 긴 평지. 남북은 치롄산

(祁连山, 기련산)과 아얼진산(阿尔金山), 북쪽은 마종산(马鬃山), 허리산(合黎山, 합려산), 룽서우산(龙首山, 용수산)으로

막혀있으며  황하(黄河) 서쪽에 위치하여 허시주랑(河西走廊)이라고 명명되었다.

지리적으로 간쑤성(甘肃省, 감숙성)의 란저우(蘭州) 및 우웨이(武威, 古稱 涼州), 장예(张掖), 저우취안주천(酒泉) 및

둔황(敦煌)의 하서4군(河西四郡)을 포함한 지역이며 민족적으로는 한족(汉族), 몽고족(蒙古族), 유고족(裕固族), 티베트족

등의 민족이 거주하며 고대 사주지로(絲綢之路)의 일부분으로 중국이 서방세계로의 정치, 경제 및 문화의 교류를 위한

통로였다.

다섯 번째는 치롄산맥((祁连山脈)이다.

치롄산지는 허시주랑 남쪽에 위치하며 길이는 1000여km 이고, 대부분 해발 3500m 이상이다.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으며, 빙하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어 허시주랑의 천연 고체 저수지이다.

식생은 수직으로 뚜렷하게 분포하는데, 황량한 사막, 목초지, 삼림, 빙설이 찬란한 색채의 입체적 화면을 조성한다.

여섯 번째는 허시주랑 이북지대이다.

이곳은 동서로 1000여m 이며, 해발 1000~3600m의 지대이다.

사람들은 보통 북산산지라고 부른다.

이곳은 텅거리(腾格里)사막과 바단지린(巴丹吉林)사막과 가까우며, 모래 바람이 사납고, 산에 암벽이 드러나 있다.

황량한 사막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하나하나의 산 가운데는 평원으로, 경작이 어려운 땅이기 때문에 인가가 드물다.

왕유의 사지재상(使至塞上)의 “넓은 사막에 한 줄기 연기가 곧게 섰고, 길게 뻗은 강물 위에 지는 해가 둥그네

(大漠孤烟直,长河落日圆)”라는 시구의 고비사막 풍경을 느낄 수 있다.

간쑤는 산이 많은 성(省)이다.

가장 주요한 산맥은 처음에 언급한 치롄산, 냐오샤오링, 류판산이고, 그 다음으로는 아얼진(阿尔金)산, 마종(马鬃)산,

허리산, 룽서우산, 시칭(西倾)산, 쯔니우링(子牛岭)산 등이 있다.

대부분의 산맥이 서북에서 동남 방향이다.

성 내의 삼림자원은 이러한 산지대에 집중해있고, 대다수 하류도 이 산맥들에서 형성되어 각 분류(分流)의 발원지가 된다.

간쑤 성은 황토지대이며, 칭짱(青藏), 몽고 삼대 고원과 합쳐지는 지대이다.

지역 내의 형세가 복잡하고 산맥이 가로 세로로 교차하며 해발고도 차이가 현저하다.

고산, 분지, 평원, 사막 등이 아울러 있어, 산지형 고원 지모이다.

동남에서 서북으로 북아열대 습윤 지대부터 고한(高寒)지대, 건조지대까지 다양한 기후 유형을 가지고 있다.

간쑤 성의 기후는 건조하고, 일교차가 크며, 일조량이 풍부하며, 태양 복사열이 강하다.

연평균 기온은 0℃~14℃이며, 동남에서 서북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허시주랑의 연평균 기온은 4℃~9℃이며, 치롄산은 0℃~6℃, 롱중은 5~9℃, 롱동은 7℃~10℃, 간난(甘南)은 1℃~7℃,

롱난은 9℃~15℃ 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300mm 정도이고 강수량의 지역차가 크다.

42mm~760mm 사이로 동남에서 서북으로 갈수록 강수량이 감소한다.

강수의 계절적 분배가 고르지 않고, 주로 6월~9월에 집중적이다.

간쑤성은 일조량이 많아 태양에너지가 풍부하고, 동남에서 서북으로 갈수록 증가한다.

일조량이 가장많은 곳은 허시주랑으로 2800h~3300h 이며, 일조량이 가장 적은 곳은 롱난으로 1800h~2300h이다.


◆ 체렌(기련)산맥 :

감숙성과 청해성에 걸쳐 있으며 북서쪽은 알타이산맥에 접하고 동쪽은 란주에 다다르며 남쪽은

청해호수까지 서로 연결되는 거대한 산맥이다.

이 산맥은 평균해발이 4.000m이상이며 일부는 빙하가 발달한 6.500m급의 고봉이 늘어서있어 하서회랑의 오아시스

도시들에 천연의 물을 공급하는 내륙하천의 수원이 되는 산이다. 흉노족 언어로 하늘이라는 뜻이다.


◆ 란주 :

해발 1.500여m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크로드의 본격적인 시작지로 황하강이 흘러가고  주위의 모든 길들이 이곳 란주로

통하여 교역의 중심지적인 역활을 했던 곳이다.

◆ 황하석림 :

신생대 3기 후반에 만들어진, 약 210만년전에 형성된 지형이다. 
기암괴석이라고들 칭하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흙과 모래와 역암이 쌓여진 형태로 구비 구비 협곡을 이룬 지형은 무협지의

장면처럼 신비롭고 신기한 곳이다.
양가죽으로 만들어진 배를 타고 황하강을 건너 석림으로 들어갑니다.경태(景泰) 황하석림(黃河石林)은 황하강기슭에

바위의 숲이 펼쳐져 장관이다.

뭇 산의 품속에 안긴 석림은 환경이 아늑하고 공기가 맑으며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황금색의 바위산이 숲을 이룬 황하석림은 부지가 10제곱 킬로미터에 달하여 웅장하기 그지없고 아아한 바위산과 유유한

황하강물이 아름다운 자연의 정원을 펼쳐준다.

황하석림은 400만년전에 연산(燕山)운동으로 지각이 상승하고 강바닥이 내려앉으면서 그 과정에 바람과 빗물의 영향으로

붉은색의 사암이 천태만상의 바위숲을 형성하게 되었다.

황하 경태석림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에 끌려 많은 드라마들이 이 곳을 촬영지로 선택했고 그러면서 널리 홍보되어

황하석림은 2004년 국토자원부로부터 국립지질공원으로 명명되었다.


황하석림은 황하강과 바위의 숲 석림, 고비사막, 오아시스, 시골 등 다양한 경관이 어울려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험준하면서도 기이하고 옛스러우면서도 은은한 이 곳에서는 탐험과 표류, 등반, 레저 등을 즐길수 있다. 

10제곱 킬로미터의 넓은 땅에 80-100m 높이의 황금색 바위산이 수풀을 이루고 바위산은 산마다 깎아지른듯 아찔하고

바위산 사이에는 꼬불꼬불한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바위산의 숲이 황하강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어 정적인 경관속에 동적인 역동성을 보여준다. 깎아지른듯한 바위산이

황하강을 사이두고 푸른 숲이 은은한 오아시스와 마주하면서 선명한 대조를 형성한다.

색채와 모양, 험준함과 은은함, 곡직과 명암, 옛스러움과 새로운 것이 어울린 황하석림은 자연이 조성한 거대한 정원임이

틀림이 없다. 사람들은 바람과 물이 만든 황하석림을 보면서 인간의 정서를 가미한다.

그래서 황하석림에는 달을 바라보는 바위와 달빛아래의 연인, 하늘에서 날아온 바위, 다섯 손가락 산, 산타 할아버지,

관문을 지켜선 사자, 머리를 돌린 사냥매, 물을 마시는 코끼리 등 명소들이 생겨났다. 

명소 입구에 준비된 말이나 나귀가 이끄는 원초적인 축력 차량을 타고 돌숲사이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황하강물에 씻긴 먼 옛날의 바위들이 각자 다양하고 형상적인 모습으로 줄지어 서서 맞이한다. 아이한 산봉이 어깨겯고

푸른 하늘 높이 솟아 걸음마다 다른 경관을 펼친다


석양을 바라보며 험준한 산길을 따라 정상에 올라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발아래 봄바람에 솟아나는 죽순의 바다가

펼쳐진듯 착각하게 된다. 죽순이 금방 자라서 키높은 대나무가 된 듯 석림은 바위산의 바다이다. 

황하강물은 용만촌(龍灣村)에 이르러 기슭에 직각으로 솟은 바위산에 부딪쳐 방향을 바꾸어 굽이를 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아아한 낭떠러지의 바위산과 황하강물, 맞은켠에 펼쳐진 벌판이 조화의 극치를 이룬다. 

전망대를 내려 22굽이를 돌고 대추나무숲과 밭을 지나면 황하강 기슭에 이르게 된다. 강가에 서서 머리 돌려 석림을

바라보면 줄지은 바위산이 손에 손을 잡고 아아하니 웅장하다


◆ 무위 :

무용위력(武勇威力)이라는 글에서 나왔으며 한무제 이전에는 흉노족의 땅이었다. 
한나라 시대의 유물들이 많은 곳이데 청동제의 말과 기마, 마차의 용 등이 뛰어난 작품이다.


◆ 칠채산 :

* 이 사진은 칠채산에 비가 온 후 채색이 가장 찬연하게 드러날 때 최고급 카케라와 최고 기술자가 찍은 사진으로

   저의 실경 사진과는 차이가 있으니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숙성에서 신강 위그르로 가는 중간 길목이며 중국의 유네스코 등록 산중에 3대명산으로 꼽힌다.

바위산의 모습이 무지개처럼 일곱가지의 색을 띄고 있어 칠채산으로 불린다.

아주 오랫동안 수 많은 지질운동으로 인하여 풍화와 퇴적작용을 거쳐 지금의 환상적인 단층의 모습이 만들어진 곳이다. 

중국 간쑤성 장예시에 자리한  칠채산(七彩山)은 도심에서 차로 30∼4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장예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꼽히는 칠채산은 1~4구역으로 나눠 전망대를 올라 둘러보는 코스로 이뤄져 있다.
칠채산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1구역 전망대에 오르면 510㎞에 걸쳐 알록달록 산들이 무지개 병풍처럼 펼쳐진

장관에 탄성이 절로 난다.
이렇게 다채로운 색층을 형성한 흙산을 단하지모(丹霞地貌) - 이는 오랜 세월 동안 지질운동을 수만 번 거친 붉은색

사암이 풍화와 퇴적작용으로 단층화된 특이한 지형을 말하는 것.
산의 이름도 일곱 가지 색을 띤다 해서 칠채산이라 불린다. 

이국적이다 못해 그림을 보는 듯한 신비로운 풍광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산의 색 중 흰색은 소금을 뜻하며 이는 칠채산이 과거에 바다였을 것이란 설과 함께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색깔로

대자연의 대지예술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이곳의 주요 관광코스는 4구역으로 구성돼 있으며 칠채산을 대표하는 환상적인 풍경은 네번째 전망대에서 만날 수

있다.
일곱 가지 색깔의 스펙트럼으로 겹겹이 쌓여진 지형은 한마디로 무지개로 만든 산이라 해야 할 듯.
마치 병풍을 두른 듯 무지개산이 좌우로 끝없이 펼쳐지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산등성이는 색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수채화 같다. 


자 이제 슬슬 가볼까요!


인천공항을 떠나 감숙성. 란저우시 공항에 도착하여 하루밤을 묵은 후 석림을 향해 길을 재촉하면~~


황하석림 매표소 입구에 있는 석림 심볼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석림은 중국 국가지질공원인데요~~


석림으로 가기위해선 황하를 건너야 합니다~~

이제 황하를 건너기 위해 강변을 향해 가파른 길을 내려 갑니다.

주위는 온통 기암의 장벽들이 솟아있어요~~





캬~~ 죽입니다~~


황하 건너 석림이 그림처름 솟아있고~~


계곡으로 내려선 후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용객잔에서 중국식 음식으로 요기를 한 후~~


드디어 황하를 마주 대합니다~~



말로만 듣던 중국의 문명의 요람인 황하를 눈앞에서 보니 그냥 가슴이 울렁울렁 감격이 넘쳐나요~~


이제 양피 뗏목을 타고 황하를 건넙니다~~

양가죽에 바람을 불어 넣어 만든 뗏목인데 아주 안정감이 있고 날씨도 쾌청하여 절로 콧노래가 나옵니다~~



대기 중인 양가죽 뗏목들~~


어기여차 노저어라~~


아아! 황하 너머 석림의 거대한 장벽이여~~

대자연 속의 인간은 한갖 미물에 불과한것을~~





 드디어 황하를 건너 석림 입구에 도착~~

양가죽뗏목을 정리하여 당나귀차에 싣고 건너쪽으로 가기위헤 정리 중~~


거대한 협곡을 이룬 석림 초입부입니다~~

석림 탐방로는 경사가 완만하고 노폭이 넓을뿐만 아니라 양옆으로 거대한 봉우리가 끝없이 솟아있어 수월하면서도 웅장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답니다~~


이제 당나귀차를 타고 석림 관람길에 나섭니다~~

물론 도보도 가능하나 당가귀차를 타고 가는 낭만의 여정 또한 여행의 별취가 아닐런지요~~

말타고 가는 분들도 있어요~~ 


구비구비마다 기기묘묘한 봉우리의 큰 잔치 마당이 펼쳐져 전혀 지루한 줄 모른답니다~~





길게 늘어서 유유히 이동하는 당나귀차 군단들~~


저를 태우고 가는 당나귀차 주인 아줌마의 뒷모습이 어딘지 애처로와 보여요~~

당나귀차를 모는 대부분이 여성이랍니다~~







드디어 협곡 종착역에 도착했네요~~



협곡 탐방을 마쳤으니 이제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 석림 전체 및 황하를 내려다 보는 조망을 즐겨야 겠죠~~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보는 조망이 그야말로 일망무제!

황홀한 광경 그대로 입니다~~



케이블카 정착장에서 내려 봉우리 전망대에 올라섭니다~~

사방으로 몇군데의 전망대가 있어요~~



오우~~ 참으로 웅장하고 오묘한 하늘의 신공을 보는듯한 광경이 눈아래 펼쳐집니다~~

직법 보지 않고는 말하지 마시라~~














구경을 마치고 이제 다시 황하를 건너러 나귀차를 타고 갑니다~~


우리를 태워준 고마운 나귀차는 주인과 함께 마을로 돌아가고~~


황하를 건너 시가지로 들어왔으니 이제 저녁을 먹어야 겠죠~~

흥건대주점이예요~~ 대주점의 뜻은 술파는 주점이 아닌 호텔이라는 뜻이랍니다~~


버스를 타고 다음 여정을 위해 북쪽으로 이동합니다~~

좌우로는 온통 나무 한그루 없는 황량한 산맥이 연이어 달리는데 기련산맥의 일부입니다~~



무위시에 도착했어요~~



답연비마 동상~~

무위시는 인구 약 170만 정도로 청동마상이 출토된 곳으로 유명한데 이 마상 동상의 이름은 답연비마랍니다~~

답연비마란 제비등을 밟고 날아가는 말이란 뜻인데 과거 한나라 시절 이 지방에서 산출되는 말들이 힘이 세고 빨라 붙인

이름인듯~~


실제 크기는 길이 40센티 정도~~

실물은 감숙성박물관에 있다고 하는데 저는 보지 못했네요~~



뇌대에서 출토된 청동상들을 확대 조성해 놓은 광장의 모습~~


뇌대관입니다~~

여기서 수많은 청동상들이 출토되었다 합니다~~



뇌대관을 떠나 구마라즙사로 갑니다~~


구마라즙사와 구마라즙설사리탑


구마라집(鳩摩羅什) 삼장(三藏)법사는 원래 서역의 구자국(龜玆國) 사람이다.

법사는 일곱 살에 출가했는데, 하루에 무려 1천 개의 게송(偈誦)을 외우는 신동(神童)이었다. 아들이 범상치 않음을 안 법사의

어머니가 그를 이웃 나라 월지국(月支國)의 한 선인(仙人)에게 데려갔다. 구마라집의 상호(相好)를 본 선인은 법사의 그릇됨을

알아 보고 이렇게 말했다.

" 이 아이가 35살이 되면 널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서 수많은 사람을 제도할 것입니다."

법사의 어머니는 아들이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을 믿고 이렇게 격려했다.

" 부처님의 한량없는 가르침을 동방에 전해 진리의 등불을 크게 밝히는 일은 실로 너의 두 어깨에 걸려 있다. 부지런히 공부에

힘써야 하느니라."

법사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더욱 불법을 배우고 연구(硏究)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이 무렵 중국은 오호육십국이 군웅할거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는데 특히 관중(關中)에 웅거하고 있던 전진(前秦)의 세력이

강성했다. 전진의 세번째 황제는 부견(符堅)이란 인물로 불법을 숭신(崇信)하는 임금이었다. 어느 날 황제에게 태사(太師)가

찿아와서 이런 말을 아뢰었다.

" 신이 관찰하니 상서로운 별(德聖)이 서족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훌륭한 인물이 그쪽에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만약 그를 데려온다면 나라에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황제는 태사의 말대로 사람을 시켜 '서역의 떠 있는 별'과 같은 인물을 찿아내게 했는데, 그가 바로 구마라집 삼장법사였다.

황제는 대신을 보내 구마라집 삼장법사를 데려오게 했으나 구자국에서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황제는 장군 여광(呂光)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마라집 삼장법사를 강제로 데려오게 했다. 여광은 군사를 이으켜 구자국을 토벌하고 마침내

구마라집 삼장법사를 모시고 관중으로 향했다. 그러나 일이 이상하게 되느라고 여광이 양주(凉州)에 이르렀을 때 황제는 부하

였던 요장(姚장)의 모반으로 살해되고 말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여광은 발길을 멈추고 관외(關外)에 웅거하면서 나라를 세우고

이를 후량(後凉)이라 했다.

한편 부견을 죽인 요장은 후진(後秦)을 세워 나라를 다스리다가 아들 흥(興)에게 물려주고 죽고말았다. 흥이 등극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 문득 대궐에서는 상서로운 일이 연이어 생겼다. 대궐 뜰에 있던 두 그루의 나무가 합쳐져서 연리수(連理樹)가 되고 소요원(逍遼園)에서는 파가 갑자기 향기로운 이초(苡草)로 변한 것이었다. 이에 요흥은 상서로운 징조를 감지하고 군사를 일으켜 여광의 후량을 쳐서 굴복받고, 여광에게 있던 구마라집 삼장법사를 장안으로 초치하여 국사(國師)의 예(禮)로 대우했다. 구마라집 삼장법사을 모셔온 요흥은 자주 소요원에 나아가 여러 스님들과 함께 설법 듣기를 즐겨했다.

이미 중국에 온 지 한참이 된 법사는 벌써 한문에 통달해 있었다. 법사가 한문으로 번역된 경전과 서역본 경전을 대조해 보니

틀린 데가 많았다. 법사는 홍시(弘始) 8년(406년)에 요흥의 후원으로 초당사(草堂寺)에 역경장(譯經場)을 설치하고 수천명의

스님들과 함께 이미 번역된 경을 대조하면서 틀린 데를 바로잡았다. 법사는 특히 <법화경>에 관심이 않아 정성을 다해 번역하였다. 이 경이 바로 우리들이 수지독송하는 (묘법연화경) 28품(권제칠)이다.

법사는 입적(入寂)하기 전 제자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 <법화경>을 비롯한 많은 경전들을 널리 유포해 불법을 이르켜 주기 바란다. 만약 나의 번역에 잘못이 없다면 내가 죽은 뒤 화장을 해도 경을 강설하던 혀는 타지 않을 것이다."

제자들이 다비를 했는데 과연 법사의 말대로 다른 법체(法體)는 다 재가 되었으나 혀만은 타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양고승전>과 <남산감통전(南山感通傳)>에 자세히 나온다.




라즙탑원에 들어서면~~


첫눈에 확들어오는 웅장한 구마라즙 설사리탑이 저를 압도합니다~~

설사리탑이란 구마라즙 열반후 다비(화장) 후 혀에서 나온 사리를 수습하여 세운 탑입니다~~












대웅전~~


하룻밤 묵으러 일단 서일국제주점에 여장을 풀고~~


무위시 시장 구경에 나섭니다~~


아하 이 시장 이름이 재취업시장이군요~~


구경을 마치고 비슷비슷한 중국 호텔식으로 저녁을 얌냠~~

나는 잘 넘어 가는데 억지로 떠 넣는 분들도 많은듯~~

해외에 나오면 현지식을 고집하는게 제 소신이라 일행이 내놓은 김, 김치, 양념장, 고추장, 라면 등등은 일체 사절했읍니다~~



이제 밤도 저물어 꿈나라로~~


대주점 창문을 열고 내다본 무위시가 도시구역 정리 모범 도시군요~~


이제 북서쪽 장액시로 갑니다요~~

대불사와 칠채산 탐방을 위해~~


다 똑같은 풍경이예요~~

좌우로는 산맥~ 가끔씩 넓어지는 초지와 간간이 보이는 촌락들~~








아니 이건 뭐예요? 아하 장성이군요~~

중국 동쪽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서쪽에 장성이 있다더니 진흙으로 쌓은 장성의 일부가 흔적을 보이네요~~






대불사 앞 광장~~


대불사입니다~~


큰 부처가 모셔져 있다 하여 대불사라고 한다. 

대불전의 폭은 50m, 높이는 20m 이다. 대불사내에는 무려 34m나 되는 부처의 열반상이 누워있다.

그 주위에는 부처의 제자들과 18나한들이 부처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대불사에 있는 와불이 중국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길이가 34m나 되니 손가락 크기는 아마 1m도 더 되어 보인다.

이 중국최대의 와불臥佛(길이 35m)이 만들어진 것은 1098년, 마르코폴로가 이 곳 장액에 1년간 머물면서 이 대불에 대해

'동방견문록'에 기록했던 것이 그로부터 200년 후이다







수많은 기원문이 열매처름 주렁주렁~~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불사의 상징인 대불입니다~~

입불이나 좌불이 아닌 와불인데 듣던대로 그 크기가 어마어마합니다~~ 


인공 조명이 아주 미약하고 거의 자연 채광으로 되어있어 실내는 대체로 어두워요~~

제가 같을 때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후라쉬 없이 몰래 살짝 찍어봐요~~




대웅전 좌측벽면 벽화 ~~


대웅전 뒤편 불교유물관의 유물들~~







자 이제 칠채산으로 가볼까요~~


한국의 산과는 너무나 다른 이국적 모습의 칠채산에 그만 어안이 벙벙합니다~~

칠채산에는 다섯 구역의 조망처가 있는데 이곳은 제1구역입니다~~



아무튼 대단한 광경입니다~~

설명은 생략하겠으니 알아서 감상하세요. 사진은 넉넉히 뿌려 놓았어요~~
















등로변 쇠사슬에 소원패를 걸어놓고~~







한번쯤은 등산 인증을 받아야겠죠~~


여기서 부터 제4구역인가?

정리하다보니 헷갈리네요~~





























낙타타고 칠채산 유람하기~~

낙타는 안타고 사진만 찰칵~~  




소원정에도 소원패가 주렁주렁~~

무슨 소원들이 그리 많은지~~


제2지구로 이동하여 감상합니다~~















칠채산을 빠져나와 란주시로 갑니다~~

딜리는 차안에서 찍다보니 풍경이 이중으로 보이네요. 죄송해요~~






5시간 반을 달리고 달려 난주시에 다달았네요~~

감숙성의 대표적 유명 음식은 우육면인데 소고기국물 국수랍니다~~


어디 한번 먹어볼까요. 꽤 맛이 좋네요. 이곳에 오신다면 먹거리로 추천합니다 한번 드셔보세요~~



주방장 중 함분이 국수 제조 과정을 보여 주신답니다~~

어디 한번 볼까요~~




순식간에 뽑혀 나오는 국수발~~

손동작 조차 보이지 않을만큼 빠르네요 . 역시 대가의 솜씨입니다 짝짝짝~~


배도 부르고 하니 감숙성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감숙성박물관을 찿았읍니다~~


정면에 우뚝선 최신형 고층건물이 눈부셔요~~


박물관 규모도 대단하고 소장 유물도 무지 많습니다. 감상 한번 하세요~~










이제 수차원으로 갑니다~~


17미터 직경의 거대 수차로서 예전에 이 수차를 황하수를 퍼올려 란주 일대의 경작지에 물을 공급하여 농사를 지었다고 하니

그 공로가 대단하다 하겠네요~~

인류 문명사에 한 획을 긋는 귀중한 발명품임이 분명합니다~~






수차원 너머로 보이는 풍경들~~

황하의 도도한 흐름이 중국인의 기상을 그대로 나타 내는겄 같군요~~ 







수차를 천번이나 돌렸다는 굴레목~~





넘실대는 저 강물따라 세월도 흐르고 인생도 흘러흘러 어디로 가는고~~

변치않음이 없는 그곳에 참됨이 있는가 아니면 끝없이 변하는 그곳에 꿈이 있던가~~

이제 이 초암도 저 황하를 가슴에 담고 고국으로 간다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