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한 손바닥 이야기, 노궁(勞宮)
내 별명은 땀다수다. 그렇다. 난 땀이 많다. 어릴 적부터 시도 때도 없이 땀을 흘렸다. 엄마는 몸이 허해서 그런 거라며 매년 개를 잡아 먹였다. 아직도 엄마는 그렇게 믿고 있다. 매년 개를 잡아 오신다. 그럼 지금은? 여전히 땀, 다수를 흘리며 산다. 개들아, 진심으로 미안하다! 결국 그 개떼들로도 막지 못한 이 땀 때문에 저런 민망한 별명까지 얻게 된 것. 젠장! 땀은 언제나 내 삶의 끈적한(!) 동반자다.
누구나 그렇지 않으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아직까지 나는, 겨울에도 나처럼 땀을 흘려대는 사람을 본 적 없다. 그 추운 겨울날에도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나고, 밥을 먹을 때도, 가만히 있을 때도 땀이 난다. 이 웬수 같은 땀 때문에 늦여름 모기들도 마지막 남은 힘을 내 살들을 향해 쏟곤 한다. 덕분에 난 기피 대상 1호였다.(아~ 이 트라우마...) 여름이면 땀 냄새가 풀풀 풍기고, 누구 말마따나 겨드랑이에선 온천이 터졌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요즘도 그렇다. 내 엉덩이에선 사시사철 땀띠가 떠날 날이 없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베이비파우더를 사다 바르자니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아 참고 사는 중이다.(--;)
문제는 손에서 나는 땀이다. 원고를 쓰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손바닥에 땀이 맺힌다. 컴퓨터의 열기와 내 몸의 열기가 만나 땀방울로 변하는 것이다. 뒤이어 손바닥이 울긋불긋해지며 가려움증이 일어난다. 이 가려움증은 손바닥이 벌겋게 부어오를 때까지 긁고 또 긁어야 해소된다. 때론 이 손에서 계란후라이(?)가 가능할 정도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난 아직도 악수하는 것을 좀 꺼린다. 이 몹쓸 놈의 열과 땀 때문이다. 그럼 대체 이놈의 손바닥 땀과 열은 어디서 온 것일까. 오늘은 그 화끈한 손-이야기를 해보자.
호모 하빌리스 혹은 고수(高手)들의 손
우선 손에 대한 이야기부터 좀 해보자. 손은 발과 함께 우리 몸의 말단(末端)이다. 몸의 가장 끝에 붙어 있는 놈들이라는 뜻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발은 땅을 닮아 네모나게 생겼다. 그럼 손은? 안타깝게도 손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한동안 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원래 네발짐승에서 진화한 것이니까 손도 발처럼 땅을 닮아 평평한 거야. 요샌 생각이 좀 달라졌다. 진화학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네 발로 걷던 종족의 후예가 아니다. 어찌 된 이유인지는 몰라도 우리들의 조상은 어느 날 갑자기 두 발로 서게 됐다. 네발로 걷다가 점차 허리가 펴지면서 직립보행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 우리는 어느 순간 한 방에 서서 걷게 된 것이다.
진화학자들은 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존재)’를 ‘호모 하빌리스’라고 부른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인간, 도구를 이용하기 시작한 인간. 바로 이들부터다. 이때부터 손은 무척이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지상에 딱 붙어 있어야 하는 발과는 달리 몸에서 가장 자유로운 부분이 된 것이다. 호모 하빌리스는 이 자유로운 손으로 도구를 만들고 노동했다. 지상으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멀어진 손에 의해 문명이 꽃피우기 시작했다는 것. 아, 그렇게 생각하니 이 손이 좀 달리 보인다.^^ 노동에서도 손은 중요한 요소였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들이 흔히 쓰는 말 속에 남아 있다. 노동력이 필요로 할 때 쓰는 말. 일손이 필요하다, 손길이 필요하다. 여기 모두 손이 들어가 있다.
동양에서는 이 위대한(?) 손을 수(手)라는 글자로 상형했다. 이 글자는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손목과 다섯 손가락을 상형한 글자다. 가운데를 꿰뚫고 있는 획을 중심으로 5개의 가지가 보이시는지. 그게 손가락이다. 흥미로운 건 손 수(手)의 특별한 용법이다. 동양에선 한 분야에 엄청난 내공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고수’라고 부른다. 여기에 손이 있다. 고수(高手). 뛰어난 재주를 가진 손. 여기에 왜 손이 들어가 있는 걸까. 이건 고수가 되기까지의 수련과정을 떠올려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고수가 되기 위해선 초식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최고의 경지까지 올라가야 한다.
잠시 영화에서 봤던 쿵푸의 고수들을 떠올려보시라. 각고의 노력 끝에 이 고수들이 도달하는 최고의 경지는 자유였다. 이렇게 해도 통하고 저렇게 해도 통하는 경지. 아무렇게나 해도 도(道)를 벗어나지 않는 상태. 공자는 이런 경지에 일흔이 되어서야 도달했다고 선언한 바 있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이 경지가 실로 어떤 경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되었건 그 상태는 손으로 표현됐다. 대체 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그러한 높은(高) 경지는 손수(手)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경지라는 것. 둘째, 몸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역이 손이듯 자유자재의 경지, 즉 궁극(高)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표현하기 위해 손(手)을 썼다는 것. 자발성과 궁극. 다시 한 번 이 손이 달리 보인다.
마지막 셋째. 손에서 유심히 봐야 할 것은 5다. 5개의 손가락. 이것이 의미하는바 또한 심상치 않다. 5라는 숫자는 여러 가지 상징이 있겠지만 흔히 오행(五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운행. 이 오행의 출발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계절과 계절 사이의 환절기라는 시간성으로부터 왔다. 1년의 시간적 변화와 마디를 표현하면서 그것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 그것이 오행이 의미하는 바다. 자연은 이 오행의 리듬 위에서 생장화수장(生長化收藏)이라는 구체적인 변화들을 낳는다. 태어나고 자라고 변하고 거두고 감추는 시간의 법칙.
이 시간의 법칙 위에서 생멸 또한 무수히 반복된다. 봄엔 태어나고 여름엔 자라고 환절기엔 변하고 가을엔 거두고 겨울엔 죽인다. 그런 점에서 5란 생성과 소멸, 변화와 수렴이라는 우주적 법칙을 상징하는 기호였다. 손가락은 그 법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기에 고수(高手)란 이 우주적 법칙을 마스터한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허나, 그는 늘 최고의 위치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내려가야 할 때는 내려갈 줄 아는 것. 그것이 우리가 무술영화에서 봐왔던 절대 고수들의 행로였다. 우주적 시간성을 거스르지 않는 존재. 손은 그 원리를 숫자 5로 구현했다. 허...참! 이렇게 보니 또 손이 달라 보인다. 질문마저 든다. 난 이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손에 새겨진 운명처럼, 까짓것 자유? 나 그거 하련다.^^
손, 양기의 전광판
그럼 한의학에서 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경』에서는 “사지는 모든 양(陽)의 근본이므로 양이 성(盛)하면 사지가 충실하다”라고 하였다. 또한 『영추』에서는 “모든 양(陽)은 기(氣)를 사지에서 받아들인다”라고 하였다.
─『동의보감』, 「외형·수(手)」, 법인문화사, p.836
보시다시피 사지(四肢), 즉 팔다리는 양의 근본이다. 하여, 사지가 길면 길수록 양기가 강하고, 사지가 짧으면 짧을수록 음기가 강하다. 요즘처럼 긴 다리와 허리, 긴 팔을 가진 체형이 유행(?)인 시대엔 당연히 양기가 치성한 몸들이 많다. 양기는 기본적으로 발산하는 기운이다. 밖으로 내뿜는 기운이다 보니 어딜 가나 사람들 눈에 금방 띈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훤칠하게 뻗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 그 사람이 예쁘고 쭉쭉 빵빵 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양기의 영향이 더 크다.(진짜? --;) 물론 눈에 잘 띈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강하게 양기를 내뿜는 신체구조가 감수해야 할 것도 만만치 않다. 전체적으로 양기의 소모가 크다는 것. 쉽게 배터리가 방전된다는 것. 쉽게 늙는다는 것. 좀 안타깝지만 원리적으로는 그렇다.
우리 몸에서 이 팔다리의 역할은 일종의 안테나다. 몸속의 양기는 그 원천을 이 안테나, 사지를 통해 받아들인다. 그럼 음기의 원천은 어디냐고? 단연 음식물이다. 잘 먹어야 살이 오르는 건 이 때문이다. 양기는 흩어지는 성질이고 음기는 뭉치는 성질이다. 다 같은 기(氣)이지만 그 성질이 발산이냐 수렴이냐에 따라 양기와 음기로 구분되는 셈이다. 이 방향성이 다른 기(氣)의 운동이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음양의 평형(平衡)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요즘처럼 많이 먹고 거의 걷지 않는 생활패턴에선 쉽게 음의 벡터가 우세해진다. 몸에 차곡차곡 쌓인 고깃덩어리들. 그것들이 다 음기의 소행이다. 이 뭉친 음기를 흩어버리는 작용은 양기가 한다. 고로, 사지를 팍팍 써야 음양의 평형이 이루어진다.
사지 가운데 손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일단 손바닥에서 열(熱)이 나는 것은 사기(邪氣)가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손등에서 열이 나는 경우는 사기가 겉에 있다는 뜻이다. 가끔 주변 사람들의 손을 잡아보시라. 지긋이~^^ 이뿐만이 아니다. 손바닥에서 열이 나는 것은 뱃속이 뜨겁다는 것이고, 싸늘한 경우엔 뱃속이 차다는 뜻이다. 특히 나처럼 손바닥에 열과 땀이 극심한 경우엔 뱃속이 엄청 뜨겁다는 신호다. 또 엄지손가락 부위의 물고기배처럼 생긴 부분, 어제(魚際)의 색깔은 위(胃)의 상태를 알려준다.
위(胃) 속이 차면 손에 있는 어제(魚際)의 낙맥(絡脈)이 흔히 푸른색을 띠고, 위 속에 열이 있으면 어제의 낙맥이 붉은색을 띤다. 그곳이 몹시 검은 것은 사기(邪氣)가 오래 머문 비증(痺證, 기가 막혀서 생기는 여러 가지 질병)이란 것이고, 붉기도 하고 검기도 하고 푸르기도 한 것은 한기(寒氣)와 열기(熱氣)가 섞여 있다는 병증이다.
─『동의보감』, 「외형·수(手)」, 법인문화사, p.837
가끔은 죽을병도 손에 나타난다. “환자의 손바닥이 부어서 손금이 없어진 경우는 죽는다.”(『동의보감』) 오 마이 갓! 손금이 없어진 손이라니. 생각만 해도 무섭다. 손바닥의 두께를 보고 정력을 판가름하기도 한다. 손바닥이 두꺼우면 정력이 넘치는 사람, 손바닥이 얇으면 정력이 약한 사람. 옛날 어르신들이 솥뚜껑 같은 손을 좋아했던 이유를 알겠다.^^ 특히 손바닥에 살이 없고 심지어 딱딱하기까지 하면 소화기능이 영 꽝이다. 놀랍게도 암환자의 손바닥은 황토색에다 광택조차 없단다. 그러다가 칠흑처럼 검은빛이 나면 아예 고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손만 잘 봐도 이렇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외에도 손가락 모양이나 굵기, 색깔을 통해서도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이건 시간관계상(?) 패스!^^ 앞서 말했듯이 손과 발은 우리 몸의 말단이다. 몸의 군주이자 중심인 심(心)의 입장에서 보자면 변방이고 땅 끝인 셈이다. 중앙에서 가장 외딴곳. 이곳까지 따듯한 기운을 보내려면 양기가 필요하다. 뻗어 나가는 성질인 양의 기운이 충만해야 그 변방까지 온기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손과 발은 이 양기의 상태를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실시간 전광판 같은 곳이다. 사지말단까지 뻗어야 하는 양기가 어딘가에 막혀서 손발에 도달하지 않을 때는 금방 손발이 싸늘해진다. 몸 자체에 양기가 허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면 양기가 너무 많은 경우엔 손과 발로 양기가 몰린다. 그러면 손발이 뜨거워진다. 내 증상이 바로 이것이다. 양기 과잉, 목적(目赤) 지향적 남자의 증상!(넘치는 양기로 인해 눈에 불을 켠 남자! '대릉'편을 참조하세요.^^)
피로는 화(火)를 부른다
이미 알 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난 음허화동(陰虛火動)의 상태다. 이 병의 원인은 대체로 이렇다. “그런 사람은 음기(陰氣)가 허(虛)하고 양기(陽氣)가 지나치게 성(盛)하기 때문입니다. (…) 양기는 더욱 성해지고 음기는 더욱 허하고 적어져서 쇠한 음수(陰水)가 지나치게 성한 양화(陽火)를 꺼버릴 수 없어 양기만이 몸속에서 왕성해지는 것입니다.”(『동의보감』) 이치는 아주 간단하다. 물이 불을 끌 수 없는 상태다. 불이 너무 치성한 탓. 곧 대형화재의 위험 있는 수위. 그것을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이 손바닥과 발바닥의 열인 셈이다. 이 상태를 전문용어로는 오심번열(五心煩熱)이라고 부른다. 심(心)과 수심(手心) 그리고 족심(足心). 이 다섯 개의 심(心)이 모두 핫(hot)한 상태라는 것. 그런데 왜 이렇게 핫해진 것일까.
오심번열이란 화(火)가 비토(脾土) 속에 몰린 것이다. 사지는 비토에 속하고, 오심번열은 심화(心火)가 비토 속으로 내려가 몰려서 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가 몰리면 발산시켜야 한다”는 것은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대개 남녀의 사지가 뜨겁고, 살갗과 근육이 뜨거우며, 골수 속은 화톳불을 놓은 듯이 뜨거워 만지면 손을 델 것 같은 것은 열이 비토 속에 잠복되어 있는 것이니, 혈(血)이 허한 틈을 타고 나오는 것이거나, 혹은 찬 음식을 과식하여 양기를 비토 속으로 눌러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동의보감』, 「잡병·화(火)」, 법인문화사, p.1182
핵심은 심화(心火)의 불이 비토까지 내려가서 흩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원인이 심화(心火)에 있는 셈이다. 그럼 이 심화는 어디서 생긴 것일까. 이미 보셨다시피 내 경우엔 음허화동 때문이다. 심화를 끌 신수(腎水)가 부족한 상태. 그럼 다른 경우엔? 대부분의 경우는 열심(熱心)히 한 탓이다. 즉, 극심한 피로 때문에 심(心)이 열 받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몸의 오심(五心)이 모두 뜨거워졌다는 것.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피로가 열과 화를 만든다? 기력이 쇠해서 몸이 차지고 늘어질 것 같은데 오히려 뜨거워진다? 사실이다.
피로는 지나치게 몸과 마음을 썼을 때 생기는 증상이다. 몸과 마음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양기를 쓰는 것이다. 문제는 그 양기를 과도하게 쓰는 것에 있다. 내 몸이 버틸 수 없을 만큼 양기를 발산해버리면서 생기는 문제. 이때 모자란 양기를 보충하기 위해 몸은 음기를 끌어다 쓴다. 구체적으로는 몸의 정(精)을 태워서 필요한 양기를 보충한다. 정(精)은 정액이기도 하지만 몸의 유형적 구성물 전체를 가리킨다고 봐도 무방하다. 살이나 뼈, 이것들 모두가 정(精)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결국엔 내 몸을 태우면서 양기를 만들어내는 것. 이 상태가 지속되면 살이 쪽쪽 빠지면서 양기를 잡아줄 수 있는 음기가 고갈되어 버린다. 마른 사람일수록 화를 잘 내고 몸에 열이 많은 이유도 이와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이렇게 피로해서 생긴 화(火)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흩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어떻게? 바로 이때 필요한 것이 노궁이라는 혈자리다.
만국의 노동자여, 노궁을 기억하라
노궁(勞宮)은 그 이름부터 노동, 피로와 관련되어 있다. 노궁의 노(勞), 그것이 노동을 뜻하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노동을 할 때 손바닥을 가장 많이 사용하기에 손바닥에 있는 이 혈자리를 노궁이라고 이름 붙였다고도 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와도 같은 혈자리인 것이다.^^ 이 노궁은 손바닥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손바닥을 위로 하고 주먹을 쥐었을 때 가운뎃손가락과 네 번째 손가락이 누르는 곳, 그 사이가 바로 노궁혈이다. 하여, 장중(掌中)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손바닥의 중앙에 있으면서 가장 힘을 많이 쓰는 곳. 이게 노궁이라는 혈자리다.
노궁은 육체와 정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대표적인 혈자리다. 피로로 인해서 생기는 열과 화를 가라앉히는 것이 노궁의 대표적인 효능이다. 간혹 피로해서 입술이 터지고 입안에 종기들이 났을 때는 아주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피로로 인한 화기망동에는 반드시 노궁을 써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 노궁은 손바닥의 땀이 많이 나는 증상에 효력을 발휘한다. 나처럼 손바닥에 열과 땀이 가득한 분들은 수시로 노궁을 마시지 해주시라.
그렇다면 노궁은 어떻게 이 화기를 제압하는 것일까.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노궁은 수궐음심포경의 형화혈(滎火穴)이다. 이제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 거다. 저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죄송--;) 노궁은 기본적으로 화(火)의 속성을 가진 혈자리다. 거기다 심포는 몸의 군주인 심(心)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장부다. 우리 몸에서 심(心)에 문제가 생기면 일단 심포부터 건드린다. 왕이 잘못되면 일단 그 호위무사나 어의, 내관들부터 벌하는 원리와 유사하다. 즉, 노궁을 조져서(?) 열 받고 화마(火魔)에 휩싸인 심(心)의 열을 뺀다는 것이다. 실제로 몸에 열이 나고 극도의 피로감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때 노궁을 눌러주면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도 난 엄청난 땀을 흘리며 여름을 났다. 엄마는 집 나가서 개고생하더니 또 몸이 허해져서 그런 거라며 개를 잡아오셨다. ‘엄마, 이제 개는 소용없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난 또 그 개를 먹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엄마의 마음을 고맙게 받을 수밖에.^^ 그러나 한 가지는 기억해두려고 한다. 이 불타는 손안에 땀과 열을 잡을 해법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노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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