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하라! 중충
귀신(?) 보고 졸도하다
십 년 전 일인 것 같다. 여동생이 결혼하기 전이니까. 오랜만에 일본에서 친구가 와 집 근처에서 만났다. 주말 저녁이라 동생도 자리를 함께했다. 고기를 굽고, 맥주로 건배도 하고, 밀린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참 떠들고 있는데 옆에 앉은 동생이 화장실에 갔다 온다면서 일어났다.
‘아니, 벌써 물 버리러 간다고? 식당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테이블에는 이미 맥주병이 잔뜩 쌓여 있었다. 동생은 술을 빨리 마시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날은 술을 너무 빨리 마시는 거였다. 술병이 금세 비었다.
“야, 좀 천천히 마셔. 누가 뺏어 먹냐?”
나는 친구와 얘기하는 간간이 동생에게 눈을 흘기면서 이렇게 핀잔을 줬다. 동생은 화장실에 갔다 와서 우리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더니 어느새 저대로 맥주잔을 기울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냉면으로 입가심을 하고 집에 가서 차 한 잔 하려고 일어섰다. 계산을 하는데 술값이 고깃값만큼 나왔다. 이런 술고래 같으니라고.
“언니, 내가 오늘 너무 많이 마셨지? 담엔 내가 살게.”
쩝~. 동생은 기분 좋게 술이 올라 있었다. 집에까지 걸어가는데 동생이 갑자기 화장실에 간다면서 건물 안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집에 가서 해결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동생이 푹! 하고 주저앉는 거였다.
“왜 저래, 술 취한 거야?”
나는 구시렁거리면서 동생에게 다가갔다. 아뿔싸! 동생은 의식이 없었다. 정신을 잃고 사지가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랐다. 동생을 안고 이름을 계속 불렀다. 미동도 없었다. 얼굴을 때리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정신 차리라는 말을 계속 했던 것 같다. 한 십 분쯤 흘렀을까? 동생은 깜빡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눈을 떴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너 어떻게 된 거야? 기억 안 나?”
동생은 방금 전에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자기가 누워있는 게 이상했던지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났다. 친구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은 그제야 나에게 이상한(?) 소리를 했다.
“언니, 나 귀신 봤어. 건물로 들어서는데 귀신이 내 앞에 있었어.”
뭐라? 귀신이라고?
순간 소름이 확 끼쳤다. 동생이 귀신을 봤다는 것보다 귀신을 보는 동생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너 한약 좀 달여 먹어야겠다. 오늘은 푹 자고 내일 한의원에 가자.”
동생과 나는 그날 이후 한약을 한 달 정도 먹었다. 동생은 귀신 안 보는 약으로, 나는 놀란 가슴 진정시키는 약으로.(ㅋㅋ) 우리는 살면서 귀신 보고 졸도했을 때 같이 위급한 상황을 간혹 만난다. 그때마다 많이 당황하셨을 거다. 나도 많이 당황했다. 오늘은 이런 상황을 만났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고 헤쳐 나가는 법, 응급조치에 대해 알아보자.
졸도의 메커니즘
졸도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을 말한다. 이는 갑자기 일어나기 때문에 한의학에서는 바람의 성질을 닮았다 하여 중풍(中風)이라고 한다. 또 ‘갑자기 졸’자를 써서 졸중(猝中) 또는 졸중풍(卒中風)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중풍 초기 증상이다. 갑자기 눈앞이 아찔하고 어질어질하게 되어 쓰러져 의식이 없는 상태. 참, 당황스런 시츄에이션이다.
그런데 졸중은 특징이 있다. 『의학강목』 「심여소장부(心與小腸部)」에서 “졸중은 갑자기 인사불성 하여 완전히 죽은 시체와 같은데, 다만 기(氣)가 끊어지지 않고 맥(脈)의 박동은 평상시와 같으나 혹은 맥이 질서가 없거나, 혹은 잠깐 대(大)하다가 잠깐 소(小)하거나, 혹은 미세하면서 끊어지지 않고, 심흉부가 따뜻한 것이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의식은 없는데 죽은 건 아니다. 왜냐? 기는 끊어지지 않고 심흉부는 따뜻하니까.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졸중은 어찌하여 생기는 것인지? 대체로 『동의보감』은 화(熱) 때문에 생긴다고 말한다.
대체로 습(濕)은 담(痰)을 생기게 하고, 담은 열(熱)을 생기게 하며, 열은 풍(風)을 생기게 한다. 풍병(風病)은 흔히 열이 심한 것에 기인한다. (…) 이것은 섭생을 잘하지 못하여 심화(心火)가 갑자기 성(盛)해진 데다가 신수(腎水)마저 허약하여 심화를 억제하지 못해서 생긴 것으로서, 이와 같이 되면 음(陰)이 허(虛)해지고 양(陽)이 실(實)해지면서 열기가 몰리므로 정신이 흐려지고 근육과 뼈마디를 놀리지 못하며 졸도하여 아무 것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 『동의보감』, 「잡병편」, ‘풍’(風) 법인문화사, 1018쪽
졸중은 열이 심해서 생긴다. 주로 명치끝에 열이 몰리면서 일어난다. 이것은 감정과도 연동된다. 대체로 기뻐하고 성내고 생각에 잠기고 슬퍼하고 무서워하는 감정이 지나치면 열도 그에 따라 심해진다. 또 졸중은 살찐 사람에게 많이 발생한다. 살이 찌면 주리가 치밀해서 잘 막히고, 그렇게 되면 기(氣)와 혈(血)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졸중은 50세가 지나 기운이 쇠약할 때 흔히 생긴다. 혈과 기는 같이 움직이는데 기운이 달리면 혈의 움직임이 느려지게 되고 한곳에 머물러 있게 되면서 막히게 된다.
졸중은 일종의 마비상태다. 몸의 감각을 잃어버려 소통이 안 되는 상태. 기운이 허해서 잘 통하지 않든, 열로 인해 진액이 타버려 열이 몰리든 결과적으로 몸 안이 막히고 바깥의 기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다. 안팎이 꽉 막힌 상태. 이제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빨리 기를 돌리고 담을 흩어라
졸중풍으로 쓰러져 위급할 때에는 우선 막힌 기를 통하게 할 수 있는 공기가 잘 통하는 곳으로 옮긴다. 머리에 피가 공급될 수 있도록 머리를 낮게 해주고 신체를 조이고 있는 허리띠, 넥타이, 브래지어 등을 풀어 준다. 다음은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구체적인 설명을 보자.
엄지손가락으로 인중 부위를 꼭꼭 눌러주면 곧 깨어난다. 혹은 빨리 다른 사람에게 환자의 양팔과 양다리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자주 주물러 주게 하면 담기(痰氣)가 곧 흩어져서 심장으로 치밀지 못하게 되므로 곧 깨어난다. 혹은 빨리 삼릉침(三稜鍼)으로 열 손가락의 손톱 옆에 있는 열 개의 정혈(井穴)을 찔러 나쁜 피를 뺀 다음 양쪽 합곡혈과 인중혈에 침을 놓아 기를 돌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동의보감』, 「잡병편」, ‘풍’(風) 법인문화사, 1025쪽
얼마나 급했으면 설명에 ‘빨리’가 계속 붙어 있다. 그렇다. 한시가 급한 시점이다. 인중 부위는 코와 윗입술 사이에 오목하게 골이 진 곳이다. 그곳은 척추를 따라 윗입술에 이르는 독맥이 흐르는 곳. 독맥은 척추 속에 있는 척수를 따라 인체의 물 기운이 올라가는 길인데 뇌척수신경과 관련이 있다. 양기의 원천이 흐른다. 인중 부위를 눌러주면 독맥을 자극하게 되므로 막힌 기를 빠르게 돌리면서 뭉친 열을 식혀준다. 응급처치로 딱 이다. 또 팔다리를 위에서 아래로 주무르면 담으로 생긴 열기가 머리로 올라가지 않고 내려가게 되니 이것도 비상시엔 좋은 방법이다.
비상시에는 당황하지 말고 인중을 누르거나, 정혈을 찌르세요.
다음의 처치는 침을 찔러 피를 내는 것이다. 열 손가락의 손톱 옆에 있는 정혈을 따는 것이다. 효과는 앞의 방법보다 빠르게 나타난다. 삼릉침은 날이 세모꼴로 된 침인데 피를 뽑는 데 쓴다. 정혈은 오수혈의 하나다. 손발가락의 끝에 위치하고 있는데, 물이 처음 솟아나듯 경기(經氣)가 시작되는 부위라는 뜻에서 우물 정(井)자를 썼다. 주로 구급 시에 많이 쓴다. 각 경(經)에 해당하는 정혈은 이렇다. 폐경-소상, 심포경-중충, 심경-소충, 대장경-상양, 삼초경-관충, 소장경-소택. 이렇게 여섯 개의 정혈을 양손 합치면 12개가 된다. 『동의보감』에는 이것을 간략하게 표현해 10개라고 한 것 같다.(‘오행의 스텝, 오수혈’을 참조하세요.)
침을 찔러 피를 내는 것은 막힌 기운을 뚫어주기 위한 것이다. 기혈이 뭉쳐 있으면 혈액이나 체온이 어느 한 곳에 집중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1차적으로는 심장이나 기관지, 호흡기로, 2차적으로는 뇌 부위에 집중된다. 이 집중현상을 순식간에 흩어주고 뚫어주는 것이 정혈에 피를 내는 것이다. 정혈 중에서도 기막히게 용한 곳이 있다. 그건 바로 오늘의 혈자리 중충이다.
내 몸의 엠블런스, 중충
이멀젼시!! 비상시에는 중충을 눌러주세요.
수궐음심포경의 기는 팔 안쪽 가운데를 지나 가운뎃손가락 끝으로 곧게 간다. 이렇게 경락이 곧게 돌진하는 곳은 빙 둘러가는 곳에 비해 행동이 빠르고 혈기가 왕성하다. 다른 손가락에 비해 혈행이 빠르고 움직이는 힘이 유달리 크다. 정혈 중에서 중충이 구급혈로 손꼽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충의 중(中)은 가운뎃손가락을 말한다. 충(衝)은 요충지다. '충(衝)'은 통로, 길, 막다른 곳의 뜻이 있다. 따라서 중충은 ‘가운뎃손가락의 막다른 곳’을 뜻한다. 위치는 가운뎃손가락 손톱 밑의 중점과 가운뎃손가락 손톱 모서리, 두 군데를 잡는다.
중충은 수궐음심포경의 정혈로서 오행상 목(木)에 속한다. 목은 봄의 기운이다.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돌파력이 제 성질이다. 몸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곧장 흐르는 빠르고 센 힘. 그 힘이 중충의 힘이고 목기(木氣)다. 여기에 뚫리지 않는 것! 있긴 있겠지만 드물다. 해서 중충은 안팎으로 꽉 막혀 마비된 몸을 빠르게 뚫어준다. 내 몸의 엠블런스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때 신속한 응급조치를 못하면 심장마비로 사망하거나 뇌출혈, 뇌경색으로 의식불명이나 반신불수라는 후유증을 겪게 된다.
심포경은 심을 싸고 있어서 신(神)을 주관하는 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심의 신지(神志)에 따라 심포가 의식과 감정의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국 마음(心)의 용법이 드러나는 곳이 심포다. 『동의보감』에는 중풍의 전조증상에 대해 이렇게 알려준다. “가운뎃손가락이 감각이 무디고 움직임이 둔하거나 쓰지 못하게 된 경우는 3년 안에 반드시 중풍이 올 것”이라고. 가운뎃손가락의 감각이 무딘 것은 심포경이 마비된 것이다. 곧 의식과 감정의 통로가 얼어붙은 것. 갑자기 졸도를 하고 인사불성이 되는 사람은 자신의 몸에만 신경을 쓸 일이 아니다. 심포, 곧 심뽀를 잘 써야 한다. 거기에는 분명 풀리지 않는 마음의 병이 있다.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 안팎이 소통되지 않는 마음. 그 꽉 막힌 마음을 풀어야 한다. 그 엉킨 실타래 끝에 중충이 있다. 그 끝을 잡고 나는 이렇게 외친다. 구급하라! 중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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