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빼 드릴까요? 관충(關衝)
목으로 임신한 남자
지난 5월말, 대학병원엘 다녀왔다. 이유인즉슨 목이 부어서였다. 갑자기 목구멍에 뭔가가 생기더니 침을 삼키는 게 어색해졌다. 처음엔 그냥 살이 찐 줄로만 알았다. 흡사 두꺼비 같이 부어오른 목. ‘그래, 간식을 너무 흡입한 게야. 느낌 아니까~. 살이 쪄도 침 삼키는데 지장이 생기는군. 간식을 줄이자!’ 그런데 간식 때문이 아니었다. 간식을 줄여도 목은 점점 부어올랐다. 그렇다고 통증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뭔가가 걸려있는 듯한 이물감이 좀 있다고 할까. 급한 대로 한약 몇 첩을 다려먹었는데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선 병원엘 가보라고 성화였다. 미관상 좋지 않다나 뭐래나.(--;) 하지만 밥도 꼬박꼬박, 아주 잘 먹는 판에 이게 무슨 병이냐 싶어 한 일주일 뭉갰다. ‘밥 잘 먹는 병은 병도 아니다!’ 그런데 조금씩 밥을 삼키는 게 어려워졌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먹지 못한다면, 먹는 즐거움이 없다면, 살 수 없다!
그런데 웬걸. 의사가 목구멍을 요리조리 살피더니 대뜸 수술을 권한다. 혹이 생긴 것인데 떼어내면 아무렇지도 않고 회복도 금방이란다. 그러더니 정확하게 정체를 알아야 한다면서 초음파니 조직검사니 하는 것들을 먼저 받고 오란다. “이제 됐으니 나가서 스케줄을 잡고 가세요.” 설마 끝? 끝이다. “아니, 저 선생님. 이게 왜 생긴 건가요?” 궁금해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이 생기는 겁니다. 큰 문제가 아니니 염려마세요.” 문제. 그래, 그게 문제다. 이놈의 병원들은 여전히 이게 왜 생겼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모르는 게 틀림없다. 왜냐고? 느낌 아니까.^^ 과거 허리병 때문에 병원에 다닐 때랑 똑같은 패턴이다. 수술을 하고 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는 답변. 이게 진짜 문제다. 난 알고 싶다고! 이게 뭔지!
목! 목에 무슨일이!!
뭐 뾰족한 수가 없어 시키는 대로 접수를 하러 갔다. 수술은 죽어도 받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 이놈의 정체라도 알고 싶었다. 그런데 오 마이 갓! 대기환자가 넘쳐나서 무려 10일은 기다려야 한단다. 아픈 사람들이 줄을 섰다니. 할 수 없어 대기예약을 해놓고 돌아서려는 찰라. 간호사 아줌마 왈. “이 검사들을 받으려면 먼저 작은 병원 의사선생님의 소견서가 필요해요. 가져오셨어요?” “아니요. 그런 거 없는데요.” “그럼 곤란한데. 일단 길 건너에 이비인후과가 있으니까 거기 가서 대학병원에서 왔다고 하시고 소견서를 좀 써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다시 오세요.” 허리가 아픈 이후론 병원을 다녀본 적이 없는지라 이런 절차가 있는지도 몰랐다. 아, 피곤이 몰려온다. 아주 많이.
길 건너 이비인후과에 도착.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대학병원에서 하기로 한 검사들을 그날 몽땅 다 할 수 있단다. 초음파도 당장, 조직검사도 당장. 심지어 의사마저 친절하다. 왠 봉이냐 싶어 얼른 대학병원 예약을 취소하고 초음파검사를 했다. 검사결과를 보더니 의사가 말한다. “이거 제법 큰대요. 직경이 6cm는 되요. 혹인데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니까 일단 조직검사를 해봅시다.” 얼떨결에 조직검사가 시작됐다. 부어오른 목에다 가느다란 주사기를 찌르더니 뭔가를 빼낸다. 아프다. 돈도 무진장 깨져 마음도 아프다. 조직검사 결과는 며칠 기다려야 한다며 의사가 초음파사진을 가져가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녀석, 꼭 임산부들이 초음파검사를 하면 나타나는 그 녀석처럼 생겼다. 사람들에게 보여줬더니 목으로 임신을 했다는 둥, 목에 자근근종이 생겼다는 둥 아주 난리다. 아, 내가 무슨 자웅동체냐! 그런데 이비인후과에서도 이것이 왜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과도한 스트레스? 피로누적? 만국민의 질병원인이 그냥 이 병에도 원인이란다. 젠장. 그럼 대체 이것의 정체는 뭘까. 난 왜 목으로 임신한 남자라는 오명을 써야 했을까. 대체 넌 누구냐?
인후(咽喉)와 그놈들
병원에서 돌아온 후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게 왜 생긴 건지. 일단 기억을 되짚어봤다. 임신(?)을 하기 전 주. 그야말로 죽음의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월요일-세미나, 화요일-세미나, 수요일-혈자리 원고 마감, 목요일-2시간짜리 강의 2개, 금요일-세미나, 토요일-청소년 강의, 일요일-감이당 대중지성, 다시 월요일-세미나 발제. 아, 이때가 기억에 떠올랐다. 세미나 발제를 하고 있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더니 목으로 뭔가가 치미는 느낌. 머리는 멍하고 발제는 해야 하고 몸엔 기운이 쫙 빠지는 느낌. 맞다. 이때였다. 이 순간 난 임신을 하게 된 것이었다. 간신히 발제를 마치고 세미나를 시작한 그때, 사람들이 목이 부어올랐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 이게 문제였어.’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다가 화를 자초했던 셈이다. 지난 번 노궁혈에서 보셨다시피 피로는 화(火)를 부른다.(노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얼굴의 열감, 몸의 피로, 멍함. 이것은 모두 화(火)의 징조였다. 목에 들어선 그 아이(?)도 이 화(火)의 자식이었다.
인후병은 다 화열(火熱)에 속한다. 비록 여러 가지 종류가 있고 경중의 차이가 있으나 그것은 다 화(火)의 미심(微甚) 때문이다.
─『동의보감』, 「외형편·인후(咽喉)」, 법인문화사, p.709
인후에 생기는 병의 원인이 다 화열이라니. 그런데 금방 이해가 된다. 감기에 걸려 몸에서 열이 날 때 목이 붓고 아팠던 기억.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보셨으리라. 인후(咽喉)는 목에 있다. 목은 우리 몸의 양기가 모이는 곳이다. 경맥으로 보자면 얼굴로 향하는 양경맥(陽經脈)들이 이 목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간다. 즉, 양기의 통로인 셈이다. 하여 옛날엔 목에서 양기의 상태를 파악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짚고 있는 손목은 음기의 상태를 판별하는 장소였다. 그만큼 양기가 충만한 곳이 바로 목인 것. 그래서 겨울에 목만 따듯하게 해도 온몸이 다 따듯하다. 양경맥의 통로를 따듯하게 해서 몸 전체를 데우는 것이다. 이렇게 따듯한 곳에 화(火)의 기운이 덮치니 그만 병이 생기고 만 것이다.
사실 인후(咽喉)는 무척이나 중요한 통로다. 후(喉)는 코에서 들어오는 천기(天氣)를 폐에 전해주는 호흡의 통로다. 인(咽)은 입으로 들어오는 지기(地氣)를 위(胃)로 전해주는 음식의 통로다. 먹고 숨쉬기. 인후를 통해야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이렇게 중요한 통로가 화열로 인해서 막히는 것을 한의학에서는 ‘후비(喉痺)’라고 통칭한다. 감이 잘 잡히지 않으실 테지만 비(痺)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그림이 그려지실 거다. 비(痺)는 질병을 뜻하는 역(疒)과 낮다는 뜻을 가진 비(痺)로 이루어진 글자다. 비(卑)는 원래 손잡이가 달려 있는 둥근 술통을 손으로 들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 위에 네모 난 것이 술통이고 아랫부분이 사람의 손이다. 술시중을 드는 사람들이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었기에 낮다는 뜻을 가지게 됐단다. 역(疒)은 사람 인(人)과 평상을 뜻하는 장(爿)이 합쳐진 글자다. 사람이 병에 걸려 침대에 누운 모양을 본떴다. 한자 가운데 이 역(疒)이 들어간 글자는 다 앓아누운 병에 걸렸다고 보시면 된다. 종합해보면 이렇다. 술통모양의 뭔가가 생겨서 몸의 통로를 막아선 것, 그것 때문에 앓아눕게 된 것. 이것이 비(痺)의 뜻이다. 그러니까 후비란 지금 인후에 술통 같은 덩어리가 생겨서 그 통로를 틀어막았다는 것이 된다. 바로 그 아이였던 것.
여기서 잠깐. 이왕 인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인후에 생기는 질병들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고 가자. 감기에 걸리거나 피곤 때문에 갑자기 목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먼저 급후비(急喉痺). 요놈은 갑자기 나타나는 후비다. 가끔은 죽는 경우도 생겼는지 『동의보감』에서는 아예 따로 챕터를 마련해뒀다. 잠시 감상해보자.
<영추>에서는 “종기가 인후에 생긴 것을 맹저(猛疽)라 한다”라고 하였다. 이 병은 치료가 늦으면 인후가 막히고, 인후가 막히면 숨이 통하지 못하게 되며, 숨이 통하지 못하면 한나절이 못되어 죽는다. 갑자기 목구멍이 막혀서 갑자기 죽는 것을 주마후비(走馬喉痺)라고 한다. (중략) 만약 갑자기 목이 붓고 아파서 물도 넘기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게 되면 잠깐 사이에 죽게 되니 참으로 놀랄만한 병이다.
─ 『동의보감』, 「외형편·인후(咽喉)」, 법인문화사, p.711-712
헉! 갑자기 급사해버리는 아주 무서운 병이다. 그냥 목이 붓는 문제만이 아닌 것. 자다가 갑자기 기도가 막혀서 죽는 게 떠오른다. 안 돼~^^ 다음은 쌍유아(雙乳蛾)와 단유아(單乳蛾)라는 놈들이다. 이들은 흔히 편도선염이라고 불린다. 감기에 걸려서 편도선이 부었을 때 이 아이들이 나타난다. 목구멍의 양쪽 편도선이 다 부은 것을 쌍유아, 한쪽만 부은 것을 단유아라고 부른다. 유아(乳蛾)라는 이름이 붙은 건 부어오른 모양이 꼭 젖꼭지나 누에고치처럼 생겼다고 해서다. 양쪽이 다 부은 쌍유아가 더 고치기 어려울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반대다. 한쪽만 부어오른 단유아가 더 치료하기 어렵다.
다음은 전후풍(纏喉風). 이놈은 열이 인후에 맺혀서 목둘레가 붓는 증상이다. 대체로 이것에 걸리면 귀부터 턱까지 빨갛게 되고 붓는다. 이놈이 생기는 이유는 과도한 주색잡기, 과도한 감정노동에 의해서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낮엔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밤엔 주색잡기에 몰두하면 전후풍이 찾아온다. 흡사 살이 쪄서 생긴 투턱-시스템(턱과 두툼한 턱살이 이루는 이중주)과 혼동하기 쉬운데 그것과는 좀 다르다. 요놈이 찾아오면 처음 이틀 동안은 가슴이 아프다가 갑자기 인후가 붓고 손발까지 싸늘해진다. 결국엔 숨이 막혀서 치료 불가능한 상태로 빠져버린다. 무서운 놈이다.
켁켁.... 뱉고 싶어도 뱉을 수 없는 매핵기의 고통
마지막으로 매핵기(梅核氣). 이름처럼 매실씨만한 것이 목에 생겨서 뱉으려고 해도 뱉어지지 않고 삼키려고 해도 삼켜지지 않는 것. 이게 매핵기다. 후비의 한 종류인데 내가 걸린 것은 이것과 가깝다. 매핵기는 과로로 인한 열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그 주요 원인은 칠정상(七情傷)이다. 가슴에 맺혀 풀리지 않는 감정 때문에 기가 울결(鬱結)되고 담이 생기고 이게 목구멍에 자리 잡은 것이다. 실제로 목이 부어올랐을 때 감정을 많이 써야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것이 열을 타고 올라와서 목에 자리 잡고 삼켜지지도 않고 뱉어지지도 않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 재밌다. 소화시킬 수 없는 감정이나 그렇다고 잊어버릴 수도 없는 감정이 몸에 이런 것들을 만든다. 암도 이런 것들에 의해서 생기는 게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몸은 아주 정직하다. 일상의 마음가짐,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것들이 몸에 그대로 새겨진다. 하여, 『동의보감』에서 어떻게든 이 몸을 편안하게 해주라고 강조하는 이유를 알겠다.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진짜 자기를 배려하는 기술이라는 것. 이 몸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일상을 아주 청정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곧 양생(養生)임을 강조하는 것. 일상이 곧 몸이라는 이 진실! 인후로부터 다시 배운다.^^ 대충 이런 것들이 인후에 생기는 문제들이다. 이 문제들의 공통원인은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모두 화열(火熱)이다. 그런데 이 화열이 어떻게 해서 목을 붓고 아프게 만드는 것일까.
<내경>에서는 “사기(邪氣)가 일음(一陰, 厥陰)과 일양(一陽, 少陽)의 두 경맥(經脈)에 맺힌 것을 ‘후비(喉痺)’라 한다”라고 하였다. 왕빙주에서는 “일음(一陰)은 심포(心包)의 경맥을 말하는 것이고, 일양(一陽)은 삼초(三焦)의 경맥을 말하는 것이다. 삼초의 경맥과 심포의 경맥은 다 후(喉)에 통하여 있으므로 이 경락에 열이 맺히면 후비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중략) 상화의 기운이 급하면 몹시 부어서 감각이 둔해지면서 후비가 된다. 후비가 심해지면 숨이 통하지 못하고 담(痰)이 막혀 죽게 된다.
─『동의보감』, 「외형편·인후(咽喉)」, 법인문화사, p.709
좀 어렵다. 하지만 찬찬히 보면 된다. 보시다시피 후비의 주원인은 심포경과 삼초경에 몰린 열이다. 지난 번 심포경을 할 때 봤던 것처럼 심포경은 화(火)의 기운을 가진 경맥이다. 그의 짝인 삼초경 또한 화(火)의 기운인 것은 물론이다. 이 심포경과 삼초경이 모두 인후와 통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따듯한 기운이 흘러 다니는 이 경맥에 열이 몰리고 그게 목을 타고 올라가다가 인후를 틀어막고 후비가 된 것이다. 결국 문제는 심포경과 삼초경에 열이 몰린 결과라는 것. 이미 심포경에 대해선 다뤘기 때문에 이번엔 삼초경을 중심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보자.
요물~ 삼초, 물불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일단 삼초(三焦)라는 게 어떤 장부인지부터 살펴보자. 사실 삼초는 유형의 장부가 아니다. 형체가 없다는 말이다. 대신 몸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에 장부 가운데 하나로 취급한다.
삼초란 몸통의 빈곳을 가리켜 하는 말인데, 장위(腸胃)까지 포함하여 맡아보는 총사(總司)이다. 가슴 속 횡격막 위를 상초(上焦)라고 하고, 횡격막 아래에서 배꼽 위까지를 중초(中焦)라고 하며, 배꼽 아래를 하초(下焦)라고 하는데, 통틀어 삼초라고 한다.
─『동의보감』, 「내경편·삼초(三焦)」, 법인문화사, p.441
쉽게 말해 몸에서 빈공간은 다 삼초다. 이 빈공간은 삼초가 총책임을 맡고 있다. 인후라는 호흡, 음식물의 통로 또한 삼초의 나와바리(?)인 셈이다. 인후뿐만 아니라 장위(腸胃)로 통칭되는 소화기관도 뚫려있는 통로이기에 삼초의 통제를 받는다. 먹고 싸고 숨 쉬는 것을 관리하는 것이 삼초라는 것이다. 삼초 가운데 상초는 피부와 살 사이를 따듯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오장 가운데 폐와 심이 상초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상초에서 심의 뜨거운 화기(火氣)를 폐가 온몸으로 퍼트리면서 몸을 따듯하게 한다. 중초는 온몸의 영양분을 대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중초에 속해 있는 비위(脾胃)가 음식물에서 엑기스를 뽑아서 폐로 올리고 그것을 폐가 온몸으로 퍼트린다. 하초는 배설을 주관한다. 항문을 열어서 밖으로 노폐물을 내보내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 결국 몸으로 들어오는 천기와 지기 그리고 배설까지를 모두 삼초가 주관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삼초가 각각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상중하 삼초는 통하여 하나의 기로 되어 몸을 보위한다.”(『동의보감』) 또한 “삼초라는 것은 음양을 이끌며, 청탁(淸濁)을 분별하여, 기를 주관하고 제자리로 보내는데, 이름은 있으나 정해진 형체는 없다. 가슴속에 붙어 있으면서, 호흡에 상응하여 기혈(氣血)을 주행시킨다. 대저 기는 위로는 머리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못하고, 혈은 발까지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지 못한다. 모두 삼초의 운용하는 바에 따라 북돋아서 밀고 채찍질하여 부수면 기혈이 이로 말미암아 관통되는 것이다.”(『의학입문』) 즉, 몸의 음양, 청탁의 분별, 기혈순환 자체가 삼초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의학입문』엔 삼초에 대해 찬사까지 등장한다.
아! 삼초의 묘용을 보고난 뒤에야 장부의 차이와 동일한 점을 알 수 있도다. 같으면서 다른 것을 구분하여 나누니 12개가 되고, 합치면 삼초(三焦)라 하는 것이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삼초는 일초(一焦)이며, 초(焦)는 원(元)을 뜻하니, 일원(一元)의 기(氣)를 가리키는 것일 뿐이다.
─ 이천, 『의학입문』, 법인문화사, p.386
삼초의 운용원리를 터득해야 비소로 12장부의 차이와 동일성을 알 수 있다는 것. 주목해야할 것은 삼초를 일원(一元)의 기로 봤다는 점이다. 일원의 기란 태극이 음양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기라는 뜻이다. 태극기의 태극처럼 음양이 서로 맞물려 계속해서 운동하고 있는 상태. 이게 일원의 기, 태극의 기다. 그러니 삼초란 음양이 맞물려서 돌아가듯 우리 몸을 태극의 상태로 만들어주는 통로인 셈이다. 이 통로를 타고 물과 불, 수화(水火)가 순환한다. 그러고 보면 참 멋지다. 빈곳, 유형이 아닌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몸 전체의 균형을 유지한다니. 보통은 비어 있고 형체가 없는 것일수록 사소하게 취급될 가능성이 큰데 삼초는 이 시선을 전환할 때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묘한 장부인 셈이다. 순환은 바로 여기서 일어난다.
또 하나. 삼초는 한의학에서 결독지관(決瀆之官)이라고 불리는 장부다. 이는 몸 안에 있는 물길을 통하게 하고 수액대사를 주관하는 관리라는 뜻이다. 앞서 봤듯이 혈과 기를 순환하게 하는 기능 때문에 이런 관리로 임명된 셈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순환자체에 문제가 생기고 기혈의 통로가 막히는 것은 대부분 삼초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내 몸에 들어선 그놈도 바로 이 삼초, 특히 상초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불(火)은 밑으로 내려가고 물(水)은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긴 것. 그러니 일단 치료를 하려면 막힌 삼초의 통로를 뚫는 것이 급선무다.
경맥에서는 삼초의 경맥을 수소양삼초경(手少陽三焦經)이라고 부른다. 소양이란 상화(相火)의 기운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장마철이 끝나고 아주 따갑게 내리쬐는 늦여름의 햇빛이 이 상화의 기운이다. 좀더 나가보자면 우리 몸엔 화(火)가 둘이다. 하나는 군화(君火), 다른 하나는 상화(相火). 군화는 심(心)이 주관하는 불로 혈(血)의 따듯한 기운이 이 군화의 기운이다. 군화의 따듯한 기운을 옮기는 혈은 물과 불이 만나서 생긴다. 불기운을 제어할 물기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불이라 하여 ‘뿌리가 있는 불’이라고 불린다. 반면 상화는 이 뿌리가 없다. 제어해줄 장치가 없는 불. 하여, 쉽게 망동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쁘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미 보셨다시피 삼초의 상화-기운이 작동해야 몸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즉,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화마(火魔)가 되기도 하고 생명의 불이 되기도 하는 것. 그게 상화다.
이 상화의 기운을 망동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성욕과 감정이다. 과도한 성욕,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 상화를 망동하게 해서 열을 만들고 몸의 통로들을 막아버린다. 생각해보시라. 성욕이 항진될 때, 감정이 해소되지 않을 때 몸이 후끈후끈해지지 않는가. 문제는 이 요동치는 불을 어떻게 끌 것인가에 있다. 일단 모든 의서에서는 마음수양을 권한다. 성욕을 억제하고 감정의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살라.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냐고요~. 그게 안 돼서 지금 목으로 아이를 밴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혈자리에서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 이 상화 때문에 생긴 후비는?
후비(喉痺)-고(go)~, 관충
커플링을 끼는 곳이 바로 관충혈입니다.
혈자리에서는 이때 관충(關衝)을 찌른다. 망동하는 상화의 기운을 식히고 내려주기 위해 수소양삼초경의 정혈(井穴)인 관충을 자극한다는 것. 원리는 간단하다. 삼초경의 정혈인 관충은 오행상 금(金)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혈자리다. 즉, 늦여름의 따가운 상화를 서늘한 가을의 금(金)기운으로 제압하겠다는 것. 실제로 감정으로 인해 몸에서 열이 나고 성욕이 망동할 때는 관충에서 피를 내면 화열이 좀 가라앉는다. 관충의 서늘한 금기운이 경맥 속으로 퍼지면서 화열을 내려주는 것이다. 여기엔 재밌는 원리도 숨어 있다.
오수혈 특집편에서 보셨듯이 양경맥의 정혈은 오행상 모두 금(金)이다. 반면 음경맥의 정혈은 목(木)이다. 양경맥들은 양의 성질을 가진 기가 흘러 다니는 곳이기에 쉽게 뜨거워지고 흩어진다. 이것을 제어하기 가장 좋은 오행은 단연 금기(金氣)다. 하여, 양경맥의 정혈, 경맥의 기가 가장 강밀하게 모이는 곳의 오행이 금(金)이 된 것이다. 음경맥은 반대다. 음기가 흘러 다니는 이곳은 쉽게 차가워지고 뭉치기 쉽다. 이 뭉치고 막힌 것을 뚫는 데는 목기(木氣)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음경맥의 정혈은 목(木)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삼초경의 가을, 관충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을까. 관충은 반지를 끼는 약지 손가락 바깥쪽에 있다. 여기서 퀴즈 하나. 왜 우리는 반지를 약지에 낄까. 가만히 주먹을 말아쥐고 엄지손가락부터 하나씩 펴보자. 약지에 이르는 순간 잘 펴지지 않는다. 혼자서는 잘 펴지지 않고 새끼손가락과 함께 펼 때 쉽게 펴진다. 그래서 결혼반지를 여기에다 낀단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어야 펴지는 손가락. 믿거나 말거나.^^ 경맥의 차원에서 보면 약지는 상화의 기운, 삼초경이 흘러가는 손가락이다. 몸에서 가장 핫(hot)한 기운이 흘러 다니는 곳이기에 여기에 금(金)의 기운을 가진 반지를 낀다. 성욕과 연동되어 있는 상화의 기운을 금기운으로 누르고 눌러놓는다는 의미다. 다른 상대에게 한 눈 팔지 말라는 경고, 족쇄인 셈이다.^^
관충은 소충(少衝, 새끼손가락)과 중충(中衝, 가운데손가락)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서 관충(關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관충은 열을 내리는 것뿐만 아니라 갑자기 정신을 잃었을 때도 쓰는 구급혈 가운데 하나다. 너무 열을 받아서 갑자기 졸도를 하는 경우엔 소충, 중충과 함께 관충을 따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내 목에 생긴 후비(喉痺)를 치료하는 데도 관충만한 혈이 없다. 이밖에도 관충은 가슴이 답답하면서 눈이 충혈되는 경우에도 사용한다. 그러나 꼭 기억해둬야 할 것은 열을 식히고 화(火)를 가라앉힌다는 것. 화열을 잡는데 매우 중요한 관문(關)이자 요충지(衝)가 관충이라는 것이다.
그럼 내 후비도 이 관충으로 치료했냐고? 아니다. 아쉽게도 그때는 관충에 이런 효능이 있는지 몰랐다. 그럼 어떻게? 조직검사를 하기 위해 부어오른 목에 주사기를 찔러 내용물을 빼내고 얼마 후. 그냥 자연스럽게 가라앉고 말았다. 이비인후과 의사 왈. “그냥 물이에요. 지금은 가라앉았으니까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오세요.” 아, 이 무슨 쌩쇼였던가. 물덩어리를 빼려고 이 생고생을 다 했단 말인가. 헌데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그게 아주 훌륭한 치료였다는 것을. 그 검사가 아주 소중한 치료였다는 것을. 우연이 치유가 됐다는 것을.^^ 그러나 다음번에는 꼭 관충부터 터트려보리라.
인후가 갑자기 막히는 것은 다 상화(相火)에 속하는데, 이때는 오직 돌침으로 피를 빼주는 것이 제일 상책이다. 후비는 악혈(惡血)이 흩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대체로 이 병이 갑자기 생긴 것을 치료하려면 먼저 발산시켜야 한다. 그래도 낫지 않으면 담(痰)으로 보고 치료해야 한다. 담(痰)으로 보고 치료하여도 낫지 않으면 악혈을 없애야 하므로 침을 놓는다. 대체로 목구멍이 막혀 위급하게 되었을 때는 빨리 침을 써서 피를 빼주고 담을 삭이고 토하게 하는 것이 긴요하다. 만약 느릿느릿하고 급히 구하지 않으면 죽는다.
─『동의보감』, 「외형편·인후(咽喉)」, 법인문화사, p.719
tip. 인후에 생기는 황당사건들 치료법
1.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것. 아, 이럴 때 많다. 이럴 땐 어떻게? 일단 모든 물고기의 쓸개는 다 가시가 걸린 것을 내려가게 한단다. 쏘가리 쓸개나 가물치 쓸개, 붕어 쓸개가 특효. 그 가운데서도 섣달(음력 12월)에 잡은 것들이 효과가 크단다. 이 쓸개를 술에 타서 마시고 토를 하면 ok! 또는 잉어의 비늘과 껍질을 불에 태워서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먹으면 된다. 잉어나 물고기가 없을 때는? 조각가루를 코에 불어넣어서 재채기를 하게 하면 곧 튀어나온단다. 급할 때는 이렇게! 그런데 조각가루가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다.^^
2. 짐승뼈가 목에 걸린 것. 대체 뭘 먹은 거야?^^ 먹기도 쉽지 않은 짐승뼈가 목에 걸리면 치료하는데 돈이 좀 깨진다. 일단 상아(象牙)를 물에 갈아서 마시면 곧바로 내려간단다. 상아가 없으면 아주 드러운 방법이 동원된다. 개를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가 개가 침을 흘리면 그것을 그릇에 받아서 먹으면 된다. 여기엔 이런 후렴구까지 달려 있다. ‘귀신처럼 듣는다.’ 이유도 나와 있다. ‘개가 아무 뼈나 다 잘 먹기 때문이다.’ 헉! 개도 없다. 그러면 닭발 한 쌍을 태워 가루를 내서 물에 타먹으면 된다. 집에 호랑이뼈가 있으신 분들은 호랑이뼈를 타 드셔도 무방하다.^^
3. 잘못해서 물건을 삼킨 것. 흔히 발생하는 사건이다. 동전을 삼켰서 내려가지 않을 때는 호두를 많이 먹어서 동전을 녹게 만든다. 과연 얼마나 먹어야 할까.^^ 또는 꿀 2되를 우걱우걱 먹으면 된단다. 100원짜리나 10원짜리 꺼내려다가 돈 왕창 깨질 판이다. 은비녀나 나무개비를 삼켜서 고생하는 경우엔 흰사탕가루를 ‘몇 근’이나 먹으면 나온다. 진이 왕창 빠질 게 분명하다. 우리가 해 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어린 애가 돈을 삼켜서 나오지 않을 때는 아욱국을 끓여 식혀서 마시면 곧 나온단다. 신비의 아욱국. 먹고 싶다.^^
─『동의보감』, 「외형편·인후(咽喉)」, 법인문화사, p.721-723을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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