飮食 漫步/식객유랑

[구활의 고향의 맛] 꿈에 만난 뿔소라 

초암 정만순 2014. 2. 22. 10:30

[구활의 고향의 맛] 꿈에 만난 뿔소라

 

엷게 썬 소라 회의 꼬들꼬들한 맛 ‘전복이 부럽지 않아’

‘전복 먹을래, 소라 먹을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복을 먹겠다고 한다. 조개 맛을 제대로 아는 이는 전복 대신에 소라를 택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 그들이 고수다. 소라는 민소라와 뿔소라로 구분된다. 소라껍데기에 울퉁불퉁 뿔이 나있고 껍질이 단단하여 망치질해도 잘 깨지지 않는 것이 맛있는 뿔소라다.

뿔소라는 껍질째 ㎏ 단위로 사야 하지만 먹을 수 있는 알갱이 살은 얼마 되지 않는다. 소갈비도 살점 값으로 사지만 뼈는 못 먹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장을 떼 내고 살만 엷게 썬 소라 회를 참기름 소금에 찍어 먹으면 전복이 별로 부럽지 않다. 살이 얼마나 단단한지 이보다 더 꼬들꼬들한 것이 세상천지에 또 있을까? 다만 소화 흡수율이 낮은 것이 탈이다.

대부분의 먹거리는 삶아 먹는 것보다 구워 먹는 게 더 맛있다. 조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조개류는 숯불을 피워 아가리가 하늘을 향하게 하여 구우면 조개껍데기가 솥이 되고 냄비가 되어 맛있게 익는다. 뿔소라는 여느 조개보다 단단한 껍질에 태극 문양의 뚜껑까지 덮여 있어 압력솥 내지 돌솥 같은 기능을 한다. 소라 속에는 짭짤한 간물이 배어 있어 초고추장이나 양념장에 찍어 먹지 않아도 된다. 부족이 곧 순수며 순수는 없음과 통한다.

나는 요리사가 되어야 할 사람이다. 첫발을 언론계에 들여놓아 빼지도 박지도 못하고 기자라는 한 가지 직업에 평생을 소진하고 말았다. 요즘도 붓을 들 때마다 회칼을 들고 있어야 할 사람이 길을 잘못 들어 평생 ‘이 고생을 하고 있구나! ’하고 나를 위로하곤 한다. 나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친구들에게 먹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단골 식당은 대체로 허름하다. 그런 밥집 주인은 나이가 육십 줄을 넘어선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들이다. 어쩌다 산지에서 갖고 온 감성돔이나 민어 등 싱싱한 생선을 가져가서 내가 직접 회를 치거나, 문어나 낙지를 삶거나, 소라와 고둥을 구워도 싫어하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식당이 깨끗하고 실내장식이 번지르르한 곳은 아예 주방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한다. 나는 그런 화려한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밥맛도 없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근무할 때다. 논설위원들은 일찍 출근하여 사설을 쓰든 칼럼을 쓰든 오전 11시가 되면 일이 끝난다. 점심을 먹는 단골집이 지금은 없어진 대구 염매시장 안 풍곡식당이다. 구석방의 앉을 자리를 정해두고 슬슬 시장을 한 바퀴 돌다 보면 맘에 드는 먹거리가 반드시 눈에 띄게 마련이다.

물 좋은 돌 문어를 만나면 얼씨구나! 하며 삶아 먹고, 뿔소라가 보이면 구워 먹기가 번거로워 그것도 삶아 먹는다. 한 번은 민 고둥 몇 마리를 삶아 먹는데 살 속에 들어 있는 독소인 노란 곱을 빼내지 않고 그대로 먹었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노랗게 변하더니 온통 세상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바로 병원으로 가 해독주사를 한 대씩 맞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추석 전후 송이 철이 오면 가장 신이 난다. 다행스럽게도 송이가 풍년인 해에는 B급이 10만원 내외로 떨어진다. 그러면 송이파티 참가 희망자를 모집하여 식당 아주머니를 앞세우고 장보기에 나선다. 인원이 많아 송이가 모자랄 성싶으면 소고기를 한 근쯤 사서 보태면 도리어 푸짐한 만찬 식탁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논설실 송이파티’는 신문사 내에서도 명품 프로그램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유능한 셰프(chef)의 눈에는 음식 재료가 아닌 것이 없다. 중국인들은 책상다리를 빼곤 모든 것이 음식재료란 말이 있다. 나는 셰프는 아니지만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면 동료들과 함께 점심 한 끼를 즐길 거리는 무엇으로라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루는 시장의 돔배기 가게 상어껍질을 헐값에 수거해 와 펄펄 끓는 물에 튀겨 낸 다음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요리를 즉석에서 만든 적이 있다. 그 맛 또한 기가 막힌다.

내가 속해 있는 ‘일생 스쿠버’ 팀들은 울릉도 통구미 앞 바위 벼랑 밑에 뿔소라가 엄청 널려 있는 비밀의 장소를 알고 있다. 안줏거리가 없으면 두 사람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 30분 정도 작업하면 네댓 사람이 충분하게 먹을 양을 잡아 온다. 지난밤 새벽, 화덕에 참숯불을 피우고 뿔소라를 구워 먹는 신나는 꿈을 꾸었다. 그것 먹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달래느라 이 글 한 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