飮食 漫步/식객유랑

[구활의 고향의 맛] 영하의 섬에서 가자미 

초암 정만순 2014. 2. 22. 10:28

[구활의 고향의 맛] 영하의 섬에서 가자미

 

나는 가자미를 좋아한다. 낚시로 낚는 것도 좋아하지만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가자미로 만든 음식은 생선회, 구이, 조림, 식해 등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계절과 요리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맛있는 것은 가자미회다.

가자미 생선회는 아이 손바닥만한 어린놈들을 뼈 째로 썬 것을 일본말로 ‘세꼬시’라 부르고, 조선 부채만한 큰놈들은 포를 떠서 회를 친다. 회를 뜨고 남은 대가리는 통마늘과 함께 뭉뚝 칼로 다져 만두 속처럼 만들어 ‘다데기’라 부른다. 그 맛은 회 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가자미는 종류도 다양하고 이름 또한 수없이 많다. 초심자들에겐 광어와 도다리의 구분이 항상 문제인데 그건 의외로 간단하다. 가게 주인이 광어라고 부르는 놈은 도다리가 아니라 광어란 사실이다. 상세하게 말하면 마주 보았을 때 눈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고 왼쪽에 달린 것은 광어다.

도반들과 함께 떠난 이번 음식여행의 목표는 통대구였지 가자미가 아니었다. 거가대교를 지나 장목에 있는 김영삼 전대통령 생가 앞에 도착하니 좌판 위에 엎드려 있던 도다리가 이 추위 속에서도 살아보겠다고 높이뛰기를 하고 있었다. 얼핏 봐도 한 무더기에 대여섯 마리가 얹혀 있는데 값은 1만원 정도일 것 같았다. “아주머니 이 고기 이름이 뭡니까”하고 능청을 떨었다. “도다리도 몰러.” 두 무더기를 싹 쓸어 담으니 한 마리를 덤으로 던져 준다. 열한 마리 2만원. 너무 싸다. 비닐봉지 속에서 생명의 아우성이 진동으로 느껴진다.

해변 풍광을 안고 달렸더니 눈과 코가 호사를 한다고 눈웃음 코웃음을 한몫 쳐댄다. “점심 먹을 자리 좀 찾아 봐. 등 뒤의 산이 바람 막아 주고 햇볕 좋은 잔디밭 말이야.” 절실한 간구는 하늘에 닿는다더니 그 자리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우린 여행 중에 좀처럼 식당에서 밥을 사 먹지 않는다. 야외 취사의 재미 때문인지 백수의 절약 정신 때문인지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작업은 도착 5분 내로 시작된다. 도마와 칼이 나오고 라면을 끓일 버너에 불이 지펴진다. 도다리가 부검대기실에서 기도하듯 숨소리 죽이고 기다리고 있다. 집도의인 나는 정성스레 뼈에서 살을 분리하고 살에서 껍질을 벗겨낸다. 헤랄드 다비드란 화가가 그린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뷰세스왕의 재판’이란 형벌 그림을 눈앞에 두고 보는 듯하다. 맥주에 위스키를 끼얹은 폭탄주로 음복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다리의 마지막 장례의식에 예가 아닐 것 같다. 목구멍에서 술 넘어가는 소리가 계곡물이 작은 폭포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처럼 들린다.

섣달은 산란기여서 도다리 회 맛이 별로일 철이지만 먹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구동성으로 “회 맛 하나 쥑인다”였다. 도반 중 한 사람이 눈밭 속에서 마른 억새를 꺾어와 맥주 캔에 꽂았다. 그건 우리가 부릴 수 있는 최상의 멋이자 풍류다.

서두에 가자미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얘기하면서 빠뜨린 게 하나 있다. 그건 눈과 입과 귀로 먹는 최상의 음식인 바로 시(詩)다.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란 시를 식탁의 갈대 옆에 함께 올린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중략)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시는 참 맛있는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