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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주작`덕룡산 

초암 정만순 2014. 2. 22. 10:11

강진 주작`덕룡산

강진(康津)의 봄은 꽃들의 계주(繼走)로 바쁘다. 주작산 진달래는 동백을 밟고 오고 진달래는 다시 모란에게 자리를 내준다. 계절의 순환처럼 꽃들도 순리대로 순서를 찾아서 온다.

모란이 마지막 꽃잎을 떨어뜨리면 강진은 비로소 ‘봄을 여읜’ 슬픔에 잠긴다. 지금 강진은 ‘십일홍(十日紅)’시효에 쫓긴 진달래가 마지막 정염을 불태우고 있다. 모란에게 등을 떠밀린 진달래가 마지막으로 펼치는 핑크빛 화원(花園)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예부터 강진은 ‘8대 명혈(名穴)’로 이름을 떨친 곳. 전국 풍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봉황이 둥지를 틀고 후덕(厚德)한 용이 길게 누웠다는 주작, 덕룡. 그 산세를 좇아 영랑(永郞)이 생가 터를 잡았고, 다산(茶山)은 아예 산속으로 깃들었다. 규석, 고령토가 풍부한 토질 덕에 강진은 고려부터 조선까지 우리나라 청자 생산의 중심이었다. 산세도 호기롭다. 호남정맥의 땅끝기맥이 만덕산에서 솟아올라 석문산`덕룡산`주작산`두륜산을 거쳐 달마산까지 100리길로 내달렸다.

#설악의 공룡과 지리산 세석을 옮겨 놓은 듯

산꾼들은 주작, 덕룡엔 설악산과 지리산의 특징이 축소돼 있다고 말한다. 주작의 암릉은 공룡 능선과 비슷하고 덕룡의 평원은 세석평전과 닮았다고 말한다. 덕분에 암릉 산행과 봄꽃 산행을 한자리서 즐길 수 있다.

산행은 두륜산과 경계를 이루는 오소재에서 출발한다. 작천소령까지 이어지는 8km 암릉은 봉황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비상하는 형세다.
정상이 400m급이라고 얕보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20리길에 펼쳐진 암릉 각(角)은 베일 듯 위태로워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는 느낌이다.

산꾼들은 1,000m급의 산세에 견줄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오금을 저리게 하는 칼날 능선, 머리가 쭈뼛 서는 절벽들, 만상(萬象)으로 연출된 만물상의 긴장스런 배치는 등산객들의 긴장을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군데군데 급경사길은 로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협곡사이에서 주작(朱雀)의 겨드랑이를 간질이는 호사를 만끽할 수 있다.

#20리길 암릉의 행렬, 롤러코스트 타는 기분

두 산의 경계인 작천소령에 이르면 덕룡산이 태산처럼 앞을 막아선다.
주작의 암릉에 시달린 일부 등산객들은 덕룡산행을 포기하고 수양리 쪽으로 빠져 버린다.
덕룡산 정상에서 서봉에 이르는 10리길엔 탁 트인 평원이 자리하고 있다. 누구는 덕유평전과 닮아 있다고 하고 누구는 세석평전과 같다고 한다.
수백만평 평원을 따라 진달래가 꽃물결을 이루었다. 바위 산행에 지친 산꾼들에겐 이제야 꽃이 눈에 들어온다.

덕룡의 진달래는 꽃잎이 투명하고 맑으며 담백한 색조를 자랑한다. 여인으로 비유하자면 성장(盛粧)미인보다는 담장(淡粧)미인에 가깝다.
덕룡산 정상은 472m밖에 안 되지만 주변의 고봉(高峰)들을 물리친 덕에 진달래 군락지며 주변의 일대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서봉(西峰) 밑에 펼쳐진 강진평야의 보리밭 물결과 자운영 군락지는 산꾼들을 순식간에 목가(牧歌)의 서정으로 빠지게 한다. 강진 앞바다의 물결도 멀리서 평화롭고 어깨를 나란히 한 두륜산과 달마봉과 북쪽으로 멀리 장흥의 천관산과 일림산도 조망을 보탠다.

#산위엔 진달래 군락, 산 밑엔 보리밭 물결

강진과 해남의 진달래 산행은 이번 주로 피날레를 맞을 것 같다. 꽃 진다고 서러워할 일도 아니다. 꽃 진자리를 딛고 연둣빛 신록이 돋기 시작할 것이므로. 절벽위에서 한들거리던 분홍 물결들은 이제 옅은 초록의 파스텔톤으로 대치될 것이다. 진달래가 모란에게 자리를 내 주었듯.
귀갓길엔 탑동의 영랑 생가를 들러볼 만하다. 감성(感性)을 활짝 열어 놓는다면 그 곳에서 ‘찬란한 슬픔의 봄’과 조우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