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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초암 정만순 2014. 2. 19. 12:40

                                                 금산사

 

56억년이라는 미래도 한낱 숫자에 불과한 건 아닐까

 

 

 
 

800미터가 채 되지 않는 높지 않은 모악산이 커다랗게 느껴진다. 너른 김제 평야를 달려온 까닭일까. 세상 모든 일들은 생각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 상대적인 편견이 문득 나의 단순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오랜만에 접어든 산길이 반갑기까지 하다. 사찰을 향해 걷는 일주문 양옆으로 일찌감치 산 속 깊숙하게 물든 감미로운 산세가 나를 붙든다. 스케치북을 펴고 앉아 일주문의 풍경을 담아 본다.

현판에 씌어 있는 글씨 ‘모악산 금산사’. 백제시대에 창건한 이 천년고찰은 나와 같은 풋내기 절집 순례자들에게는 더 없이 흥미로운 곳이다. 빼어난 절경의 자연이나 잘 갖추어진 사찰의 가람보다도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방등계단이 그렇고, 3층의 커다란 미륵전 불당이 그렇다. 용도를 알 수 없는 노주석과 불상 없는 석련대가 늘어선 경내가 흥미롭고, 탑의 흔적을 간직한 대장전의 모습도 재미있다. 그 궁금증들은 내게 끊임없이 스케치북과 펜을 꺼내 들게 만들고 있었다.

   
 

금산사의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대략 백제 무왕(600년)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던 것이 지금같이 커다란 사찰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통일신라시대 혜공왕(766년)때 진표율사의 역할이 컸다. 어린 나이에 출가한 진표율사는 놀던 중 잡아 놓은 개구리들을 잊고 다음 해에 그 자리에 들렀다가 아직도 발버둥치고 있는 개구리들의 모습을 보고 깊은 뉘우침과 깨달음에 금산사로 출가하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가 계를 받는 일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결국 죽음을 마다 않고 참회를 멈추지 않았고, 이에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의 마음을 움직여 큰 가피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후에 진표율사는 금산사를 중창하고, 나아가 속리산의 법주사도 크게 일으켰으며, 금강산 등지에서 법회를 열며 남은 생을 중생들 교화에 힘썼다.

   
 

금산사는 호남 미륵신앙의 도량이다. 부처님은 스스로 깨달아 구원에 이를 것을 가르쳤지만, 모든 중생들이 수행을 통해 이에 도달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구원을 받지 못한 남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훗날 찾아올 구원의 신앙이 미륵부처님이다. 이곳에는 자신을 미륵이라 칭하며 민심을 모으려 했던 후백제의 견훤이 정변으로 아들들에게 유폐되었던 아이러니한 역사도 갖고 있다. 한때 3구역 3원 체제에 80여 동의 전각을 갖추었을 정도로 전성기를 보낸 금산사였지만 왜란의 화는 면치 못했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전각들이 불타 사라졌고, 인조 13년(1635)에 이르러서야 부분적인 중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유구들이 흩어진 경내에 서서 미륵전을 비롯해 여러 석물들의 예전 모습을 한동안 상상해 보았다. 늘 사라진 과거는 머릿속에서 더욱 부풀려지고 광대해지는 것만 같다. 마음을 정리하고 대적광전 옆으로 나 있는 길로 방등계단에 올랐다. 이곳에 서니 웅장해 보이던 미륵전도 친근하게 다가와 옆에 앉고, 녹음 속에 우거진 나무들도 먼발치 아래 다정하다. 다시금 상대적인 공간감에 자세를 조아린다. 아마 시간도 마찬가지일 게다.

   
 

미륵부처님이 온다는 그 아득한 미래는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이 새벽 졸음을 쫓으며 운전을 하며 휴게소를 향하던 끝없이 길게 느껴지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56억년이라는 오래된 미래도 결국 한낱 숫자에 불과한 건 아닐까. 하지만, 왠지 이렇게 방등계단 위에 서서 미륵전에 겹친 모악의 푸른 녹음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깨달음에도 이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봄빛 하늘의 한없는 아름다움을 한 줌 손 안에 움켜볼 수도 없는 어리석은 욕심의 자괴감 때문일까. 그래서 어느 대문호(大文豪)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건 지극히 불편한 일이라고 했던가. 결국 내게도 미래라는 것은 기다림을 수반한 평범한 인간으로써의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저 모악의 초록빛 속에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 내 몸을 숨기고 싶어졌다. 그저 이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산의 일부가 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해질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