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 遺跡 /山寺 情報

호압사

초암 정만순 2014. 2. 19. 12:44

                                              호압사

 

약사여래가 보듬고픈 속세는 어디까지일까

 

 

 
근래 들어선 팔각구층석탑은 월정사의 석탑과 닮았는데 절의 규모에 비해 크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뒤로 보이는 삼성각의 축대가 높아서인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맞아떨어져 안정감이 있다.

초겨울의 산길을 걷는 일은 다른 계절과는 사뭇 다르다. 여름내 들떠 있던 산의 모습은 한겨울의 공허함에 앞서 못 다한 이야기를 건네는 것만 같다. 스산한 바람이 산등성이를 따라 낮게 흐르고, 가지에는 단풍의 화려함이 아닌, 미처 떨구어 내지 못한 마른 나뭇잎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오솔길 옆으로 수북이 떨어진 볼품없는 낙엽 사이를 걸으면 자연스레 한 해를 돌아보게 되고, 삶에 대해 숙고하는 마음의 자세를 애써 외면하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완벽하거나 온전할 수 없는 인생은 모든 애환의 시작이 되고 동시에 끝이 되기도 한다.

불교에는 육체적인 질병에서부터 정신적인 아픔에 이르기까지 고통 받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붓다가 계시다. 바로 약사여래다. 오늘은 약사여래를 모시는 약사전이 본전으로 있는 드문 절집을 찾았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어느 오후 ‘호암산문’이라 쓰인 일주문을 지나 급한 경사에 숨이 턱까지 찰 무렵 도착한 곳. 바로 호압사다.

숨을 고르며 경내를 한바퀴 돌아본다. 보이는 곳이 전부인 크지 않은 절집이다. 하지만, 알차게 들어찼다는 느낌의 다소곳하면서도 정갈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동쪽으로는 호랑이를 닮은 바위산이라 하여 호암산이라 이름 붙은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바위들과 어우러진 소나무숲이 사찰 주변까지 감싸듯 내려와 있어 포근함마저 느껴진다. 석탑을 대신하여 서 있는 듯한 약사전 앞 거대한 두 그루의 느티나무는 경내에 힘겹게 올라선 방문객들을 가장 먼저 반기며 인사를 건네고 있다. 모두 500살이 넘는 서울시의 보호수로 호압사가 창건되던 조선 초기에 심어졌다고 전해지니 절의 이름이 생기게 된 흥미로운 창건 설화를 빼 놓을 수 없겠다. 

   
약사여래 부처님의 손에는 약사여래의 상징인 작은 약상자가 들려 있다. 체구의 표현이나 옷의 형태 등에서 조선 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하는데 금칠이 되어 있어 알아보기 힘들지만 사실 석불이라고 한다. 양 옆으로 협시보살인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연꽃을 들고 있다. 그림 오른편이 일광보살로 머리 위 보관에는 붉은 색의 원상이 있고 왼편은 월광보살로 보관에는 흰 색의 원상이 있다.

때는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직후 한창 궁궐을 짓던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낮에 지은 건물들이 밤을 지내고 나면 아침에 무너지길 반복하여 공사에 진척이 없었다. 태조의 근심이 날로 늘어가던 어느 날 그의 꿈에 반쪽은 호랑이에 반쪽은 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나 불을 뿜으며 공사현장의 궁궐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닌가. 놀라 깬 이성계는 무학대사를 찾아 대책을 의논했고, 무학대사는 그 원인을 호암산이 있는 삼성산 줄기로 지목했는데, 호랑이처럼 생긴 바위의 모양이 마치 한양을 정면으로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집어 삼킬 듯 포효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 이에 호랑이는 꼬리를 밟히면 꼼짝 못한다 하여 산봉우리 끝에 호랑이를 제압할 절을 지으니, 이 절이 바로 ‘호압사(虎壓寺)’다. 내용도 재미있지만, 당시 태조의 새 나라 건설이라는 큰 뜻에 주변 풍수까지 경계하며 세심하게 신경을 썼던 의미까지도 엿볼 수 있다.

내친 김에 호랑이 머리 위까지 걷기로 했다. 무채색이 되어 버린 숲 사이로 거대한 도시의 빌딩 숲이 또다른 무채색의 빛깔로 겹쳐진다. 수도 건설을 방해하던 호랑이의 기운이 지금까지도 잘 제압되어 온 까닭일까. 이 도시의 번식력은 실로 엄청나기만 하다. 끝도 없이 이어져 있을 것만 같은 발전된 오늘날의 서울. 과연 약사여래가 보듬어야 할 속세의 끝은 저 너머, 어디쯤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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