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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門에서 華岳까지] (2)왜 이 산줄기인가

초암 정만순 2014. 2. 17. 18:03

[雲門에서 華岳까지] (2)왜 이 산줄기인가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갈래로 나뉘어진 한국의 산과 산…

 
 
 
온 나라 산은 모세혈관 같은 줄기와 줄기로 이어져 결국엔 하나의 중추 줄기에 모여 달린다. 그 큰 산줄기가 백두대간이고 거기서 정맥이 갈라져 나가며, 정맥에서 기맥이 또 가지를 친다. 그 중 하나인 비슬기맥은 무려 300만 명 이상이 기대어 사는 언덕이다.
 
그래픽-고민석
 
대구 앞산은 백두산과 연결돼 있을까, 끊어진 별개일까? 비슬산은 팔공산과 이어져 있나 떨어져 있나? 청도 운문산에서 출발해 산줄기만 계속 타면 전북 진안의 마이산까지 갈 수 있다?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터무니없게 들릴 수 있는 퀴즈다. 하지만 그 답에 산줄기 철학의 요체가 스며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대로 답할 줄 모르고는 산줄기를 살피러 나서봐야 허사라는 말이다.

산줄기가 연결됐다는 것은 물론 끊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무엇이 산줄기를 끊을까? 물, 물줄기, 물길이다. 쭉 이어져 가던 산줄기가 계곡을 만나 끝나버리면, 그래서 그 산줄기를 타고 걷던 사람이 물길로 내려서지 않을 수 없다면, 그게 바로 산줄기가 끊긴 것이다. 산줄기는 물을 건널 수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 물도 산줄기를 넘을 수 없다. 물길 또한 산줄기에 의해 끊기는 것이다.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 발문은 ‘山自分水嶺’(산자분수령)이란 단 한 문장으로 그 이치를 압축해 놨다. 수계(水系), 즉 물이 흐르는 계통을 나누는 게 산줄기라는 말이다. 물은 산을 나누고, 산은 물을 나누는 것이다.

그럼 산은 서로 끊어졌다는 말인가 붙었다는 말인가? 우리가 보기에는 이어진 곳도 있고 끊어진 곳도 있는데?

그렇다. 우리가 보는 산과 산은 이어진 것도 있고 떨어진 것도 있다. 그러나 틀림없는 사실 하나, 그것은 섬에 있거나 혼자 섬이 돼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산이 인접 다른 산 하나와 꼭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 둘 사이로는 물길이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는 그 연결망을 통해 전국의 산이 하나로 이어진다. 감자 줄기를 뽑아 올리면 많은 씨알들이 가느다란 줄로 연결돼 함께 들려 올라오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참 묘한 일이다. 이 이치는 18세기 관찬(官撰) 지리학자 여암 신경준이 ‘산수고’(山水考)라는 저술에서 극명히 설명해 놨다. “만 가지 다른 것이 모여 하나로 합하는 게 물이다.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갈래로 나뉘는 게 산이다. 천하의 형태는 산천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어져 있는 것은 우리나라 산 끼리만도 아니다. 우리 모든 산은 백두산을 통해 다시 중국의 산으로 이어져 간다. 백두산이 중요한 것은 그래서다. ‘백두대간’이란 게 설정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 있을 터이다. 우리는 산줄기에 까막눈이지만, 선조들은 옛날에 이미 그것까지 알았다.

그럼, 전국의 그 수많은 산들은 대체 어떤 체계 아래 서로 이어져 있을까? 산림청이 2년 전 지도이름이 나타나는 산을 조사했더니 남한에 있는 것만도 무려 4천440개나 됐다는데.

아마 감자 씨알들이 달릴 때 그러하듯, 먼저 가장 큰 줄기가 있을 것이다. 거기서 갈라져 가는 두 번째 중요한 2차산줄기가 있을 터이며, 그 이하에도 그렇게 분기돼 가는 순차가 있을 것이다.

선조들은 산줄기들이 그처럼 갈라져 나가는 양상을 족보로 정리했다. 그게 ‘산경표’(山經表)다. 이것을 실제 관계에 따라 그림으로 그려나간 건 ‘산경도’(山經圖)다. 산줄기 그림이란 뜻이다.

거기서 우리 중추 산줄기로 파악된 게 ‘백두대간’(白頭大幹)이다. 백두산에서 두류산(지리산)까지 이어 달리는 큰 산줄기다. 거기서 갈라져 나가 바다에까지 이어달리는 2차산줄기는 ‘정맥’(正脈)으로 분류했다.

정맥이라는 울타리가 생기면 그것에 에워싸여 역시 바다에까지 이어가는 큰 물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같이 형성된 물길의 권역을 해당 강의 ‘유역’(流域)이라 한다. 이런 강 중 남한에 있는 게 흔히 말하는 ‘4대강’이다.

정맥이 그러하듯 이들 강 역시 백두대간에서 발원한다. 그러니 4대강을 에워싼 산줄기 중 핵심은 말할 필요 없이 백두대간이다. 그리고 흐르는 물길 양편에 정맥들이 늘어서서 울타리가 돼 준다. 그 정맥들의 이름은 강의 명칭에다 방위를 더해 조합된다. 한강 남쪽 것은 ‘한남정맥’, 북편 것은 ‘한북정맥’이다.

서쪽으로 가는 한강과 달리 낙동강은 남해로 흐른다. 그 유역 모양은 삼각형에 가깝다. 백두대간이 그 서편 빗변이다. 그래서 이 강의 외곽이 되는 정맥으로는 동편 빗변인 ‘낙동정맥’(洛東正脈)과 남편 밑변인 ‘낙남정맥’(洛南正脈)이 존재하게 된다.

선조들의 산줄기 단계 구분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더 낮은 단계의 구분도 꼭 필요하다. 그런 차 2004년에 ‘신산경표’라는 주목할 노작이 나왔다. 1대 25,000 지도에 이름이 실린 모든 산을 연결시켰다는 현대판 산경표다. 거기서 ‘지맥’이란 명칭이 곳곳에 부여됐다. 지금 널리 유통되는 정맥의 하위 개념이다.

그러나 정맥 이하 단계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되고 정리된 구분법이 없다. 어떤 사람은 ‘분맥’이란 용어를 쓰고, 사람에 따라서는 서로 다른 한자를 빌려 ‘기맥’이란 개념을 구사하기도 한다.

‘운문서 화악까지’는 낙동강 유역 경북 땅을 보는 얼개로 정맥 아래에 ‘기맥’이란 단계를 설정키로 했다. 흔히 쓰는 ‘岐脈’이 아니라 특별히 쓰는 ‘基脈’, 지형결정에 기본 되는 산줄기라는 말이다.

그보다 더 작은 물길을 경계 짓는 산줄기는 ‘지맥’(支脈), 그냥 골짜기나 하나 만드는 정도의 것은 ‘지릉’(支稜)으로 세분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산줄기 순차는 대간-정맥-기맥-지맥-지릉의 5등급이 될 터이다.

경북 땅에는 기맥을 최소 3개 설정할 수 있다. ‘수도기맥’ ‘팔공기맥’ ‘비슬기맥’ 등이 그것이다. 수도기맥은 백두대간의 초점산 구간에서 뻗어 나와 김천의 수도산에 이른 뒤 가야산 및 금오산으로 나눠 달리며 고령-성주-김천-구미 등등의 지형을 결정하는 산줄기다. 황강과 감천, 경남과 경북이 그로써 갈린다.

팔공기맥은 낙동정맥의 포항 죽장 지점에서 분파해 팔공산까지 달린다. 낙동강이 동서(東西)로 흐르는 구간에서 그 남쪽 분수령 겸 금호강 북편 분수령 역할을 맡는 것이다. 그 북편에 청송-군위-칠곡, 남편엔 죽장(포항)-영천-경산-대구 등이 분포한다.

비슬기맥은 낙동정맥의 경주-영천-청도 접합점 사룡산(四龍山)서 출발해 비슬산까지 이어간다. 금호강 남편 분수령과 밀양강의 서북편 분수령 기능을 함께 수행한다. 그 북에는 영천-경산-대구가 자리하고, 남에는 밀양강 상류 하천들(동창천-청도천)이 흐르며 그 물가에 청도가 있다.

하지만 비슬기맥은 밀양강 상류 하천들의 분수령 역할을 끝까지 수행하지 못한다. 사룡산-비슬산 사이만 비슬기맥이라 구분키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머지 일은 다른 보조 산줄기가 대행해 줘야 한다. 비슬산서 남으로 굽은 뒤 수봉산을 거쳐 천왕산에 이르고, 거기서는 동으로 방향을 바꿔 화악산-철마산으로 달리는 산줄기가 그것이다.

비슬기맥은 같은 이유로 금호강 남편 울타리 역할도 끝까지 수행하지 못한다. 이 역할은 비슬산서 출발해 청룡산-앞산(대구)-미군부대-영남대병원-심인고-소화성당-두류타워-반고개-애락원-이현공단-와룡산-궁산으로 이어가 강창교에서 생명을 다하는 산줄기가 맡는다. 이 산줄기로 인해 대구 시가지조차 두 개의 유역(수계)으로 나뉜다. 신천-달서천 유역과 대명천 유역이다.

정맥이나 기맥의 역할을 대행하는 이런 보조 산줄기는 ‘분맥’(分脈)으로 분류키로 했다. 어느 정맥의 분맥, 어느 기맥의 분맥… 하는 식이 될 것이다. 분신 역할을 하는 산줄기라는 뜻이다. 여기서 살핀 두 분맥 중 앞의 것은 ‘화악분맥’, 뒤의 것은 ‘청룡분맥’이라 불러 두면 될 듯싶다.

비슬기맥에서는 이들 분맥 외에 다른 여러 분맥과 지맥들도 갈라져 나와 대구-경산-영천-청도-창녕-밀양 등의 지형을 결정한다. 이들 산줄기에 의지한 인구가 무려 300만 명을 넘는다. 이 땅으로 봐서는 백두대간보다 더 중요하다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이 시리즈가 이쪽 산줄기들을 주제로 삼는 이유다.

그리고 이제 퀴즈에 답할 시간. 비슬산과 팔공산은 금호강에 의해 갈라져 있지만, 각각 비슬기맥과 팔공기맥을 타고는 낙동정맥으로 가서 연결된다. 운문산서 낙동정맥으로 이어 걷다가 태백 구간에서 백두대간으로 갈아 탄 뒤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남덕유산을 지난 즈음 호남정맥으로 바꿔 걸으면 마이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