鍼灸 小考/기타 특수침

노현배 한침

초암 정만순 2015. 8. 6. 18:08

노현배 한침

 

 

간질 · 정신병 · 중풍 · 고혈압 등 무수한 환자 고쳐│간질에 '코침'하여 사혈시키면 90퍼센트 완치 가능
자궁출혈, 무를 이용해 치료하면 그 자리서 출혈 멈춰│백내장에 뱀 쓸개 이용해 치료하면 백태 사라져
치질 치료와 낙태 위한 '유산침'에도 일가견 있어│병자 고쳐 주고 면허 없다는 이유로 숱한 고발당해

 

노현배 전통 한침이어야 중병 고칠 수 있어


멀리 가야산이 보이는 경북의 한 고장에 사는 노현배(盧賢培 취재 당시 67세) 옹은 전통 한침(韓鍼)의 달인이다.

 

한침이라 함은 말 그대로 한국의 전통 침법을 말한다. 한국의 전통 침법은 일단 침술 도구로 요즘의 머리카락과 같은 호침(毫針)을 쓰는 것과는 달리 굵은 동침(銅針)을 쓴다는 점부터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자침(刺鍼)의 깊이도 요즘 표피만 살짝 찌르는 침과는 달리 혈에 따라 최소 1.5센티미터에서 최대 7~8센티미터에 이르기까지 깊이 찌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침구의 종주국으로서 한침이야말로 진정한 침이며, 이런 한침이어야 질병이 치료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침술은 그 본질이 자극이므로 우리 선조들이 지혜로써 개발한 그대로 동침으로 깊이 찔러 강자극(强刺極)을 해야 침술다운 침술이 될 수 있고, 질병 치료에 대한 침술의 효과도 발휘될 수 있다고 한다.

 

요즘처럼 호침으로 표피만 살짝 찌르는 침술은 일본식 침법으로 사람이 요령을 피운 결과라 한다. 그런 침법으로는 표피의 가벼운 병은 고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오장육부의 이상에서 기인한 중병은 고칠 수 없다고 한다.

 

 간질·정신병·중풍·고혈압·치질·부인병 등 무수한 환자 고쳐


그는 16세 때 의술을 시작하여 지난 50년 동안 이러한 한침과 간단한 약을 이용하여 간질·정신병·중풍·고혈압·구안와사증·관절염·치질·치루·부인병 등 주위에서 찾아오는 어려운 환자를 수없이 고쳤다고 한다. 지금껏 고쳐 준 환자 수를 꼽는다면 대략 20만 명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찾아간 날 노 옹은 아무런 시술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시술을 하지 않은 지도 5년째 접어든다고 한다. 이유는 의술이 뛰어나다는 걸 알고 환자가 몰리자 의료면허가 없는 걸 트집 잡아 시술을 하지 못하도록 주위에서 무면허 의료 행위자로 끊임없이 고발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간의 고발로 3번 형을 선고받았다. 그때마다 그는 사람을 살려 주고도 죄인이 된 게 너무 억울하여 세상을 한탄하기도 하고, 모든 의술을 포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환자들이 집에 찾아와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걸 외면하지 못하고 의술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접곤 했다고 한다.

 

 죽어 가는 사람 살려 주고 죄인 취급당해서야


그런데 1998년 돈을 옭아내려는 어떤 이의 무고한 고발로 2백만 원의 벌금형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은 후로는 세상 일에 환멸을 느껴 어떠한 환자가 찾아와도 모두 돌려보낸다고 한다.

 

그는 찾아오는 환자를 돌려보내고는 있지만, 병원에 실컷 다녔음에도 병을 고치지 못하고 고통받는 환자가 찾아와 애원하는 걸 살려 준 게 진정 죄가 되는 일인지, 또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이 가진 능력대로 환자에게 나누고 베푸는 게 진정 잘못된 일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아무튼 노 옹이 의술을 하고 있지 않아 그의 침술을 직접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을 통해서 전통 한침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침술
한침은 앞서 설명한 대로 침술 도구로 굵은 동침(銅針)을 쓴다. 자침(刺鍼)의 깊이는 혈에 따라 다른데, 대개 깊이 찔러 강자극함을 원칙으로 한다.

 

백회나 전중 혈과 같이 표피층이 얕은 경우에는 1.5센티미터 깊이로 침을 찔러 강자극을 하고, 환도 혈과 같이 표피층이 두터운 경우에는 7~8센티미터 깊이로 찔러 강자극을 한다.

 

침을 찌르면 표피층을 뚫을 때 아픔을 느끼다가 근육 신경을 지날 때 우리한 감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뼈와 가까이 있는 신경에 닿을 때는 저릿한 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침은 자극이 치료 효과를 발휘케 하는 본질이므로 자침의 깊이는 어떤 혈이든                   ▲침술 종주국답게 조선시대 때 
뼈에 가까이 있는 신경에 닿을 때까지로 정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용되었던 다양한 형태의 침들.

 인체 3백65개 혈 가리지 않고 당처에 침술


취혈점은 몸통과 사지 등 인체 3백65개 혈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그가 유일하게 금기하는 혈이라면 중완 밑의 건리와 상완 위의 축곡(註: 축곡이란 혈은 침구사전을 통해 찾을 수 없다. 거궐 또는 통곡 부근의 혈이라 사료된다) 혈이다.

 

오장육부를 직접적으로 찌르는 것도 치료를 위해 필요하다면 시술한다. 단 그럴 경우엔 침을 찌르는 깊이와 침을 찌르고 뺄 때 신중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침을 찌르는 깊이는 사람의 체격을 보아 정한다. 아무튼 인체 어디든 병이 있고 막히고 뭉친 곳이 있으면 침을 하는 것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취혈법은 환부를 중심으로 하여 아픈 부위 쪽의 관련된 혈에 집중적으로 침을 한 연후에 필요에 따라 환부 반대편의 대칭되는 부위에 침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런 취혈법은 오행의 상생상극의 원칙에 따라 인체를 조절하는 침법과, 환부 위치의 정반대 편에 침을 하는 좌통우침(左痛右鍼) 우통좌침(右痛左鍼)의 침법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침을 하면 막혔던 기혈 풀어지면서 병증 사라져


그는 이런 취혈법에 대해 침은 그 본질이 자극이므로 아픈 부위를 직접 찔러 자극을 가하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인체는 뇌에서부터 발끝까지 반으로 나누어져 제각기 기혈이 순행하고 있으므로 아픈 부위에 침을 하여 막힌 기혈을 뚫어 주어야 병이 낫지 정작 아픈 곳은 놔두고 반대쪽에 침을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라고 한다.

 

중풍으로 인한 반신불수된 현상을 보더라도 인체의 기혈 순환 통로는 오른쪽과 왼쪽이 각기 분명히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결국 오른쪽의 기혈은 왼쪽으로 가지 못하고, 왼쪽의 힘은 오른쪽으로 가지 못하다는 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침을 찌르면 침의 자극에 의해 뭉쳐 있던 근육과 지방이 삭아져 막혔던 기혈이 풀리고 이로 인해 병증이 사라지게 되므로, 이런 점에서도 필히 아픈 부위를 중심으로 침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는 병이란 기혈 소통이 막혀 생긴 현상이라고 한다. 즉 기혈 소통이 막혀 근육 뭉쳐짐으로써 신경 통증이 발생하고, 나아가 마비와 염증과 종양과 암적 현상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따라서 질병 치료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부위를 중심으로 침을 하여 막혔던 기혈을 뚫어 주고, 소통을 원활히 이루어 주는 게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침을 찌르는 방법과 자극의 방법은 먼저 침을 찌를 때 시계 방향으로 침을 돌리면서 서서히 찌른다. 그리고 침을 필요한 깊이만큼 찌르면 침 끝을 긁고 튕기기도 하고, 시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돌리기도 하면서 강자극을 준다. 침을 뺄 때에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서 서서히 뺀다.

 

침을 찌르고 뺄 때 서서히 하는 것은 침을 찌른 곳이 자연적으로 메워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특히 침을 빼기 전에는 침 끝을 튕기고 긁는데, 그렇지 않으면 근육이 침을 물고 있어 침에 살이 묻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침을 찌르고 빼기까지의 시간은 5~10초 정도이다.

 

 간질에 ‘코침’을 하면 90퍼센트 완치 가능


그는 이런 한침의 침법을 기본으로 하여 질병에 따른 치료법을 많은 임상을 통해 고안해냈다고 한다. 또한 침뿐만 아니라 간단한 약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법도 고안하였다고 한다. 치료 효과는 그간의 임상 경험으로 볼 때 보통 80퍼센트 이상이라고 한다. 

일례로 간질의 경우는 ‘코침’을 하는데, 간질은 뇌에 탁혈(濁血)이 돌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므로 치료를 위해 먼저 뇌로 가는 동맥이 통하지 않도록 넥타이 등으로 목을 조인다. (註: 목 옆의 뇌로 올라가는 외경동맥과 정맥을 조이되 기도를 오랫동안 조이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러면 얼굴이 새빨개지는데, 이때를 이용하여 코 안에 10센티미터 깊이로 동침을 찌른다. 그리고 침을 빼고 목에 조였던 끈을 풀면 새카만 피가 맥주잔으로 반절 정도 빠져 흘러나온다. 이 새카만 피는 뇌신경에 이상을 일으키는 탁혈이다. 이 탁혈이 빠져나옴으로써 발작 증세가 점차 사라진다고 한다. 

시술 횟수는 발작의 빈도를 보아 가며 하루에 오전 오후 두 차례 하기도 하고, 2~3일에 한 번씩 하기도 하고, 일주일이나 10일 내지 20일에 한 번씩 하기도 한다. 또한 발병 기간과 몸의 다른 병적 증상에 따라 ‘코침’ 외에 중완·하완·견정 혈 등에 침을 하는 것을 겸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양약(洋藥) 복용 등으로 인한 몸의 쇠약한 정도와 피로와 부종과 정신 불안 등을 살펴 심신을 안정시키고 보해 주는 약을 쓰도록 일러 주기도 한다.

 

 10살 이전에 나타난 간질은 태중에서 놀랬기 때문


그는 그간의 임상 결과 이런 간질 치료법으로 10살 이후에 간질이 나타난 사람의 경우는 열에 아홉은 완치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10살 이전에 간질이 나타난 환자의 경우는 완치가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10살 이전에 나타나는 간질은 대부분 태중(胎中)에서 태아가 놀랜 적이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한다. 그런 경우에는 태아가 형성되면서 이미 오장에 경풍이 일었기 때문에 그 근본적 이상을 해소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임신 중에 산모는 갑자기 찬물을 몸에 끼얹는다든지, 갑자기 뜨거운 물에 뛰어든다든지, 충격적인 일을 접한다든지 하는 것으로 태아를 놀라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신 항상 태중을 쓰다듬어 태아를 안정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각종 정신이상 증세에 대한 치료 방법


정신이상은 그 발생 원인을 강제 성추행이나 애정 결핍 등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돈에 집착 등 지나친 욕심으로 인한 심신의 피로와, 성적(性的) 욕구를 해소하지 못함으로 인한 정서 불안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원인을 살펴 대처하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먼저 강제 성추행 등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발생된 경우는 대인 공포증이나, 흉기로 남을 상하게 하는 등 광증(狂症)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바로 침을 시술할 수 없다고 한다.

 

이 경우는 침 시술에 앞서 먼저 약을 써서 정신적인 안정을 도모해야 하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 연후에 정신의 안정 상태를 보아 ‘코침’을 하여 뇌에 흐르는 탁혈을 사혈(瀉血)하고, 풍시와 견정 혈에 침을 하면 이내 치유가 가능하다고 한다. 

정신적 충격을 안정시키는 약은 증상에 따라 여러 가지를 가미할 수 있는데, 여자가 강제 성추행을 당해 놀란 나머지 정신이 혼미한 경우에는 경면주사(수비 법제한 것) 4돈, 활석 5돈, 사향 3푼을 하루 한 차례씩 7일간 복용시키면 적당하다고 한다. 

그는 지금부터 30여 년 전 경북 구미의 갑부로 소문난 집안의 5대 독자의 정신이상을 위의 방법으로 고쳐 주는 등 그간 많은 정신이상자를 고쳐 주었다고 한다. 당시 구미의 외동아들은 방 안에서만 생활하며 그의 할머니만 상대했다고 한다. 반면 부모를 보면 흉기로 찌르는 등 광증을 보였다고 한다. 체격이 워낙 커서 다른 이들이 어쩌지도 못했는데, 치료 후 온전한 정신을 되찾고 양처럼 순해졌다고 한다.

돈에 집착 등 지나친 욕심으로 인한 심신의 피로로 발생된 정신이상은 그 증상이 남을 해치는 행동이 없이 말이 많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바로 침 시술에 들어가 ‘코침’을 하여 뇌에 흐르는 탁혈을 사혈(瀉血)하고, 풍시와 견정 혈에 침을 한다. 그리고 그 밖의 몸의 불편한 증상을 살펴 시술을 가미하면 정신 치유뿐만 아니라, 쇠약했던 몸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성적 욕구불만이나 상사병(相思病)으로 인한 정신이상의 경우는 ‘코침’과 풍시와 견정 혈에 침을 하는 한편, 음증(陰症)을 풀기 위해 음교와 삼음교 혈에 침을 한다. 음교와 삼음교 혈에 침을 할 때는 아랫배가 저릿할 정도로 깊이 침을 찔러야 한다. 그리고 막힌 성호르몬의 배수를 위해 침술에 앞서 성적 해소도 필요하다고 한다.

 

여자의 경우엔 쇠간을 가로 4센티미터 세로 15센티미터 두께 6센티미터로 잘라 음문을 자극케 하면 쇠간이 꾸들꾸들 굳어지면서 하얀 호르몬이 배설된다고 한다. 3~4회 정도 하면 막혔던 성 호르몬이 모두 배설되면서 정신적인 안정이 되찾아진다고 한다. 

그는 간질과 정신이상은 사람을 폐인으로 만드는 병인지라 그 병만은 꼭 고쳐 줄 생각으로 그간 많은 연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혈에서인가 기혈이 막혔기 때문에 간질이나 정신병이 나타난다는 생각에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위와 같은 독특한 치료법을 창안해냈다고 한다.

 

 머리에서 사혈 빼내면 즉시 혈압 떨어져


중풍과 고혈압의 경우 역시 ‘코침’을 위주로 시술한다. 고혈압은 ‘코침’을 하여 사혈을 하면 그 즉시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몇 차례의 시술로 혈압이 안정된다고 한다. 중풍은 ‘코침’을 한 연후에 마비된 부위를 중심으로 경맥(經脈)을 따라 침을 하여 강자극을 한다.

 

또 중풍으로 쓰러져 인사불성인 경우에는 아래턱이 끝나는 귀밑의 아시혈에 침을 찌른다. 이 아시혈은 인체의 급소로서, 양쪽에 침을 하여 동침이 서로 맞닿을 정도의 깊이로 찌르면 강한 자극에 의해 정신이 깨어나고 말문이 터진다고 한다.

 

중풍은 발병한 지 3개월 이내가 치료의 시한이라고 한다. 그리고 혈압으로 인한 중풍은 침으로만 치료해도 치료가 가능하나, 기(氣)가 부족한 증상은 침과 함께 약도 겸해야 한다. 

구안와사는 환자를 똑바로 세워 차렷 자세를 취하게 한 후 가운뎃손가락이 닿는 곳(=풍시 혈)을 취혈점으로 잡는다. 그리고 환자의 가운뎃손가락의 길이를 재서 그 길이만큼 양쪽 다리의 풍시 혈에 동침을 찌른다. 그리고 침을 돌리고 긁고 튕기는 방법 등으로 자극의 강도를 높인다.

 

처음에 마비된 쪽은 감각이 없으나 강자극을 계속하면 신경이 되살아나 근육이 침을 꽉 무는 감각이 잡힌다. 이때 환자에게 ‘아’와 ‘오’를 반복해서 외치게 한다. 그러는 중에 서서히 안면 마비가 풀리면서 입과 눈이 바로 돌아오게 된다.

 

 인조 뼈를 넣은 경우에는 관절 치유 불가능


무릎관절염은 무릎 주위의 독비·슬안·슬하·슬관 등의 혈에 침을 하는데, 굳어진 근육을 지나 뼈에 닿을 정도까지 깊이 침을 찌른다. 대개 침이 굳어진 근육을 지날 때 침 끝이 딱딱한데, 그 부위가 지나면 침이 사뿐히 들어간다. 침은 사뿐히 들어가는 감각이 느껴질 때까지 찌른다.

 

침을 찌르면 뭉쳐 있던 근육과 지방이 삭아져 막혔던 기혈이 풀리고 소통됨으로써 점차 염증이 사라진다. 무릎이 시큰시큰한 경미한 증상은 침 한 번만 맞아도 낫는다고 한다. 그러나 인조 뼈를 넣은 경우에는 기혈순환이 완전 차단되었기 때문에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디스크는 기혈이 소통되지 않아 추간판이 삭아진 경우와 추간판과 그 주위가 부은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시술은 추간판이 탈이 난 관절 중앙에 침을 하고, 그 양쪽에 침을 한다. 침은 관절 앞 부분이 닿을 정도까지 찌르는데, 신경이 통하여 발바닥까지 저릿한 감각이 와야 한다.

 

목 디스크의 경우는 3번 정도 시술하면 뭉친 게 풀어져 기혈이 소통됨으로써 완치가 되고, 허리 디스크는 10번 정도 시술하면 완치된다. 심신이 쇠약한 사람인 경우에는 침 이외에 몸을 보하는 약을 겸하도록 일러 주기도 한다.

 

 자궁물혹 일주일 정도 침 맞으면 풀려 나와


자궁물혹은 물혹이 잡히는 곳을 촉진하여 동침을 찌른다. 침이 들어갈 때 물혹이 있는 부분에서는 빡빡한 감이 있지만, 물혹을 뚫고 지나가면 수월하게 침이 들어간다. 그 감각을 잘 감지하여 물혹을 완전히 관통하도록 침을 찌른다.

 

침을 찌르는 수는 물혹의 크기에 따라 다른데 물혹이 큰 경우에는 3~4군데 찌른다. 매일 한 번꼴로 일주일 정도 침을 하면 기혈이 소통되면서 물혹이 완전히 풀려져 나온다. 

치질은 약솜에 소독약을 묻혀 항문을 닦아낸 후 항문을 뒤집어 보면 치핵 주위로 파란 핏줄이 얽혀 있다고 한다. 이것은 죽은 피가 뭉쳐 있는 현상으로, 이것이 치핵을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치핵보다는 죽은 피를 제거하는 게 치료의 관건으로서, 치핵을 건들 필요 없이 파란 핏줄을 침으로 걷어내 죽은 피를 뽑아내면(=瀉血) 자연히 치핵이 사라진다고 한다.

 

사혈침 대신 20cc 주사기를 이용하여 죽은 피를 뽑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1주일마다 1번씩 3회 반복 치료하면 완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무좀은 모세혈관에 이미 병균이 들어 있기 때문에 피부에 약을 바르거나 겉의 껍질이 벗겨진다 해도 낫지 않기 마련이라고 한다. 무좀을 완전히 치료하려면 겨울에 치료하는 게 적절한데, 환부를 보면 그 주위에 파란 핏줄이 얽혀 있다고 한다. 이 파란 핏줄을 동침으로 따서 죽은 피를 깨끗이 뽑아내면 여름에 절대 무좀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버거씨병, 막힌 혈맥 뚫어주면 낫기 마련


버거씨병은 발가락 등의 말초 부위의 혈맥이 막혀 피가 공급되지 않음으로써 살과 뼈가 썩어 오는 병이다. 피가 공급되지 않으니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아 양의학적인 시술로 썩은 살과 뼈를 잘라낸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따를 수 있다. 또한 혈맥이 막혀 있으니 썩은 부위를 잘라냈다 해도 또 다시 썩게 된다.

 

하지만 막힌 혈맥을 뚫어 주면 썩었던 살과 뼈가 다시 살아나게 된다. 따라서 버거씨병은 환부 주위와, 환부와 관련된 경맥에 하루 3~4차례 침을 하여 강자극을 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대개 15일 정도 반복 시술하면 치유가 가능하다. 

‘유산침’은 음교·거요(족소양담경혈) 등의 혈에 동침을 찌르는데, 음교 등의 혈에 침을 하면 태아의 심장과 머리에 침이 지나가는 감각이 느껴진다고 한다. 또 거요 혈에 침을 하면 난소가 부어올라 골반이 벌어지면서 태아가 낙태되어 빠져나온다고 한다.

 

이 ‘유산침’은 서양의학의 인공 중절 수술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고안하여 어쩔 수 없이 해 주는 경우가 있지만, 한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 시술 후 괴로움이 크다고 한다. 그의 아내도 다른 시술은 다해도 ‘유산침’만은 하지 말라고 종용한다고 한다.

 

 토종꿀과 비누 이용하면 치루 근치 가능


한편 그는 침 이외에 간단한 약을 써서 병을 치료하기도 하는데, 이 비방은 그의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한다. 

치루는 진짜 토종꿀을 구해 꿀과 빨랫비누 긁은 것을 한 숟갈씩의 비율로 넣는다. 그리고 이것을 끓인 다음 한지를 꼭꼭 말아 만든 심지 전체에 묻혀 치루공에 밀어 넣는다. 한지 심지의 굵기는 치루공에 빡빡하게 찰 정도여야 하고 밀어 넣는 깊이는 생살이 닿아 아프다고 할 때까지이다. 심지는 매일 갈아 주는데, 15회 정도 하면 완치된다. 3년 이상 된 경우에는 30회 정도까지 하기도 한다. 

자궁출혈은 무를 이용하여 치료하는데, 하혈이 심한 경우이든 약간씩 핏기가 보이는 경우이든 상관없이 즉시 출혈이 멈춰진다. 그는 양방에서 출혈을 멈추게 하기 위해 파혈된 혈관을 레이저로 지지는 시술을 하는데, 이것은 피의 흐름을 아예 막아 결국은 자궁암 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를 이용한 지혈법은 안전하면서도 치료 효과가 아주 빠른 방법이라고 한다. 만약 레이저 수술과 무즙 복용을 동시에 시술할 경우, 양의사가 레이저 수술을 하기 위해 파혈된 혈관을 찾기도 전에 무즙을 복용한 사람은 벌써 자궁출혈이 멈춰 자리를 털고 일어설 것이라고 한다.

 

 뱀 쓸개 찍어 넣으면 백내장 사라져


백내장은 뱀 쓸개를 이용하여 치료하는데, 하루에 한 번씩 2~3일간 치료하면 눈에 끼인 백태가 사라진다. 백태가 눈동자를 다 덮은 사람도 동자가 죽지만 않았다면 5회 정도 만에 완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 방법은 양방적인 레이저 수술과 달리 눈동자가 손상되는 부작용도 없을 뿐더러 경제적이면서도 효과도 빠른 치료법이라고 한다.

 

 

 

 

 

무

토종꿀

 
◀무(오른쪽)는 자궁출혈에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고, 토종꿀(왼쪽)은 치루 치료에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는 이러한 방법으로 그간 각종 질병에 걸려 병원을 전전하다 못 고치고 찾아온 환자를 지금껏 대략 20만 명은 고쳐주었을 것이라고 한다.

 

환자들은 디스크를 고치고 가면 그가 디스크 전문인 줄 알고 그 마을에서 디스크 환자가 집단으로 찾아오고, 치질을 고치고 가면 그가 치질 전문인 줄 알고 그 마을에서 치질 환자가 집단으로 찾아오고, 관절염을 고치고 가면 그가 관절염 전문인 줄 알고 관절염 환자가 집단으로 찾아온다고 한다. 

아무튼 현재 그가 시술을 하지 않아 그의 구체적인 시술 방법이나 환자들로부터의 구료담을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아쉬우나마 필자의 수소문으로 전에 그에게 치료를 받았던 몇몇 사람으로부터 구료 사례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

 

 경북 포항시에 사는 하권수(취재 당시 70세 남자) 씨.


그는 18년 전에 중풍으로 쓰러졌다가 10년 만에 재발하였다. 그 후유증으로 반신불수의 상태가 되었고, 혀가 굳어져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목 또한 뻣뻣하고, 두통이 심하였다. 

3년 동안 고생하다 7년 전에 노 옹의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치료를 받았다. 당시 노 옹이 코에 깊숙이 침을 하자 코에서 피가 소주잔으로 한 잔 이상 나왔다.

 

그리고 심하던 두통이 사라졌다. 또한 1년 정도 침을 맞으면서 반신불수 되었던 것이나 목이 뻣뻣한 게 사라졌다. 현재는 약간의 언어장애만 남아 있는데, 그 뒤 노 옹에게 치료를 받으려 해도 더 이상 시술을 하지 않아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경남 합천군에 사는 전성윤(취재 당시 65세 여자) 씨.


7년 전에 허리의 물렁뼈가 툭 튀어나오는 등 요통이 심해 기어다니다시피 했다. 1년 동안 양방병원과 한방병원에 가서 갖은 치료를 했으나 낫지 않고 고통만 더해 갔다. 우연히 동네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고 노 옹에게 가서 3~4일에 한 번씩 근 10개월 동안 침술 치료를 받고 지금껏 아무런 이상이 없이 지내고 있다.

그는 당시 치료를 받으러 다니면서 본 결과 노 옹이 병원을 전전하다 고치지 못하고 온 환자를 숱하게 고쳐 보내는 등 병을 고치는 데 박사라고 한다.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의 처지를 이해하여 치료비를 받지도 않고,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차비까지 쥐어 보내는 등 돈 없고 병든 사람에게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한다. 면허가 없어 시달린 나머지 지금은 의술을 접고 있어서 그렇지 의술 능력이나 인품으로 볼 때 아깝기 그지없다고 한다.

 

◈ 경남 합천군에 사는 전영호(취재 당시 68세 남자) 씨.


그는 10여 년 전에 허리 디스크로 심하게 고생하였다. 평소에도 허리가 좋지 않아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하루는 일어서려고 하는데 허리가 뜨끔하고 눈에서 불이 번쩍 일면서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양방병원의 진단은 추간판이 튀어나온 디스크로서 수술할 도리밖에 없다고 하였다. 수술 후 퇴원하여 양방병원에서 받아 온 진통제와 소염제를 복용했지만 허리 통증은 여전하였다.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거의 누워 지내다시피하고 있는데, 동네 사람이 병문안을 와서 노 옹에게 한번 치료받아 보라고 하였다. 

노 옹에게 침을 맞을 초기엔 멀리서 왕래할 수 없어 인근에 머물면서 이틀에 한 번꼴로 침을 맞았다. 약 한 달 정도 침을 맞자 통증이 상당히 완화되고 걸어 다닐 수 있었다.

 

그 뒤엔 집에 와서 3~4일에 한 번꼴로 다니면서 침을 맞았다. 침을 맞은 지 3개월쯤 되었을 무렵에는 거의 통증이 없어 7~10일에 한 번씩 다니면서 침을 맞았다. 전체적으로는 1년 정도 침을 맞았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오랜 지병이었던 디스크가 재발하는 일 없이 지내고 있다.

 

◈ 경북 영주에 사는 정영진(취재 당시 55세 남자) 씨.


집안의 막내 아들이 돌 무렵에 홍역 후 눈병을 앓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눈병이라 생각하고 약국에 가서 안약을 사서 넣었다. 그러나 병은 점점 악화되어 눈이 빨갛게 충혈이 되었다. 인근의 안과를 2년간 다녔으나 병은 나을 기미가 없이 눈은 더욱 새빨갛게 충혈되었다.

 

나중엔 서울의 가장 큰 양방병원과 유명하다는 안과를 다녔다. 그러나 병은 여전히 점점 더 악화되어만 갔고, 눈이 충혈되는 원인이나 병명도 알 수 없었다. 그 사이 시력은 날로 떨어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선 칠판의 글씨를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3학년 무렵엔 시력이 거의 상실되기 직전의 상태로서 눈이 부셔 햇빛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러다 아이가 병을 낫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당시 대구에 있는 양방병원에 다니던 중 우연히 어떤 사람이 "병원에서 못 낫는 병은 노현배 옹을 찾아가면 나을 수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처음엔 그 많은 곳을 다녔어도 낫지 못한 병을 간판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낫게 해 줄 수 있겠느냐고 의심도 하였다.

그래도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아갔는데, 노 옹은 신중히 진맥을 하더니 아이가 어릴 적 경기를 하여 나쁜 피가 이마에 뭉쳐서 생긴 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밤에 잠을 자다 여러 번 깜짝깜짝 놀라 깨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실 아이는 평소에 이마에 뭔가 있는 것 같다고 가족들에게 호소하였다. 또한 평소에 모르는 일이었지만, 아이에게 물은 즉 아이는 자다가 자신도 모르게 2~3번씩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다고 했다. 

노 옹은 자신을 믿고 침을 맞아 보겠느냐고 물었다. 너무도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한 터라 침을 맞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노 옹은 넥타이로 아이의 목을 졸라맨 다음, 아이의 얼굴이 상기된 나머지 파랗게 되자 코 안쪽에 대침을 깊이 찔렀다.

 

그리고 침을 빼고 넥타이를 풀자 죽은 피가 소주잔으로 반 잔 넘게 나왔다. 아이는 그 즉시 힘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일어나더니 첫 마디로 대뜸 “어! 내 이마에 있던 게 없어졌네”라고 하였다. 

아이는 다음날 아침 일어나 햇빛을 보아도 눈이 부시지 않다고 하였다. 그 뒤로 아이의 눈에서는 핏발도 사라지고 시력이 날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간 시력이 계속 악화되어 안경도 수십 개 다시 맞췄었는데, 안경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눈이 오랫동안 좋지 않다 보니 합병증으로 생겼던 눈동자에 백태 낀 것도 노 옹이 알려 준 대로 뱀과 산모의 모유를 이용하여 완전히 없앴다. 노 옹은 아이의 병이 조금만 더 지속되었다면 완전히 실명하였을 거라 하였다. 

오랫동안 고생했던 아들의 병을 간단히 해결한 그는 노 옹의 의술이 뛰어남을 알고 큰딸의 치질도 치료가 가능한지 문의하였다. 노 옹은 큰딸의 항문을 손가락으로 뒤집더니 항문 안쪽에 좁쌀처럼 돋아나 있는 것을 모두 침으로 따 사혈을 시켰다.

 

그리고 약을 찍어 발라 주었다. 큰딸은 고통이 심한지 치료 후 20~30분간 아프다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런데 그 뒤 치질이 말끔히 사라져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리고 둘째 딸은 심한 허리 디스크로 허리에 1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간 병원에 다녔지만 치료가 되지 않아 고생이 심하였다. 노 옹은 허리를 손으로 만지더니 뼈가 툭 튀어나온 곳에 대침을 깊이 찔렀다.

 

그리고 며칠 지나 보아 허리 통증이 남아 있으면 한 번 더 와서 침을 맞으라고 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이후 둘째 딸은 허리 통증이 점점 사라지면서 허리에 툭 튀어나왔던 뼈도 없어졌다. 그리고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아무 이상 없이 지내고 있다. 

이렇게 가족의 고질병을 노 옹을 만나 해결한 그는 신경통으로 시달리던 동네 사람 여러 명을 노 옹에게 데려가 치료받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네 사람 역시 한두 번의 치료를 받고 팔이 아픈 것 등 신경통을 나아 노 옹에게 항상 감사의 마음을 기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노 옹이 어떻게 의술을 연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의술이 대단한 분’이라고 한다. 또한 비록 의료 면허는 없지만,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귀하신 분’이라고 한다.

 

의료 면허가 있다면 뛰어난 치료법에 대해 논문도 발표하고 보호도 받았을 터인데, 그렇지 못하고 뛰어난 의술이 사장되게 되어 안타깝다고 한다. 그는 노 옹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예나 지금이나 인근에 가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들러 인사한다고 한다.

 

 증조부에게 전통 한침과 의술 배워


노 옹이 의술을 배운 것은
 16세 때로 그는 집안의 종조부(從祖父)로부터 한침을 물려받았다. 그의 고향은 충북 제천군 덕산면 신현리로 그의 종조부는 그곳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명의로서 인근에 이름 떨쳤다.

 

그는 종조부와 한 동네에 살면서 자연히 의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종조부가 “집안에서 대를 이어 의술을 할 사람은 너뿐이니 배우라”고 했다. 당시 전국적으로 장티푸스 등의 전염병이 많이 돌았는데, 그는 종조부와 함께 예방 조치를 취해 그의 동네에선 전염병으로 피해를 입는 일이 없었다. 

그의 종조부는 그에게 의술을 가르치면서 항상 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환자의 눈이 노란하면 신장과 간에서 병이 온 것이다. 만성되면 황달이 된다. 입술이 희면 폐 기능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입술이 검으면 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또 눈이 충혈되면 심화(心火)와 혈압으로 피로가 심한 증상이다. 안색이 검고 흰 사람은 몸에 기생충이 있기 때문이다” 등 그에게 의술을 가르치면서 관형찰색(觀形察色)에 따른 진단법부터 일러 주었다. 또한 “오른쪽은 인영(人影)이고, 왼쪽은 기(氣)이다. 손(=상체)은 태양이고, 발(=하체)은 태음이다”며 인체의 생리적 특성에 대해서도 일러 주었다. 

노 옹은 이런 인체의 생리적 특성상 열이나 화(火)로 인해 병이 오는 것은 오른쪽에 발병하고, 기가 부족해서 오는 병은 왼쪽에 발병한다고 한다. 중풍 환자도 이런 이유로 해서 오른쪽이 반신불수되는 경우도 있고, 왼쪽이 반신불수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열이나 혈압으로 중풍이 온 경우에는 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나, 기가 부족해서 중풍이 온 경우는 약과 침을 겸해야 한다고 한다. 낫기도 왼쪽에 중풍이 온 경우가 어렵고 재발 확률도 높다고 한다.

 

 신장염으로 고생하던 모친 침과 약으로 고쳐 줘


종조부로부터 의술을 배운 그가 자작으로 치료한 첫 환자는 그의 모친이다. 당시 그의 모친은 신장염이 심하였는데, 그는 침과 약으로 모친을 낫게 하였다. 전에도 그의 모친은 신장이 좋지 않아 아이를 출산한 후 눈을 뜨지 못할 정도의 심한 부종으로 생명이 위독했는데, 그의 종조부가 더덕 1킬로그램과 천궁 5백 그램을 함께 넣고 달여 그 물을 복용시켜 낫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23세 무렵 군대에 입대해서도 부대원이 아프면 주사기나 침을 들고 치료에 앞장섰다. 부대원의 맹장 수술도 군의관을 도와 집도하였다. 침술을 익히고 나니 사람의 몸이 어떻다는 걸 알게 되어 거침이 없었다.

 

독서 왜관에서 정신병과 자궁암 환자 고쳐 줘 명의로 소문나


군대 제대 후 그는 침술 공부에 더욱 정진하기 위해 1964년에 강원도 정선군 고한에 있는 고정암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침술 공부를 하는 한편, 인근의 장성·철암·도계 등지에서 찾아온 환자를 침과 함께 산에서 약초 뿌리 캐다 치료해 주었다.

 

그런 식으로 절에 온 환자를 속속 고쳐 주자 고정암은 그가 들어갈 때 신도가 3명밖에 안 되었는데, 3년이 되자 신도가 70명으로 불어났다.

 

그러자 나중엔 주지스님이 그에게 절을 인수하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23살에 결혼하여 처자식이 있는 처지라 거절    망중한을 이용하여 독서
하였다고 한다.                                                  
를 하고 있는 노현배 옹▶

고정암에서 나온 그는 30살 무렵에 경북 왜관군청 뒤에 침술원을 차렸다. 그곳에서 그는 정신이상자도 고쳐 주고, 자궁암 2기로 고름이 줄줄 흐르는 보건소 직원 숙모도 고쳐 주었다. 또한 많은 식구를 구걸하여 먹여 살리는 왜관 관터에 사는 예천댁이란 여인이 안쓰러워 구걸하더라도 점

 

을 보아 주고 관상을 보아 주면 남이 쉽게 동냥을 할 것이라는 생각 하에 자립하도록 점술과 관상학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실제 예천댁은 그 후 경제적인 자립을 하여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게 되었다. 아무튼 그는 그곳에서 젊은 나이이지만 명의 또는 도사라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도 나이 든 사람은 왜관군청 뒤의 명의라면 알고 있다고 한다.

 

  간질로 고생하던 경찰서장 즉석에서 고쳐 줘


현재 사는 곳엔 30년 전에 왔다. 당시 더욱 의술을 연마하겠다는 생각으로 해인사에 의술 공부하러 가는 도중 비가 와 현재 사는 곳의 한 여인숙에 하룻밤 묵게 되었다. 그리고 물건을 사기 위해 구멍가게에 갔는데, 구멍가게 주인이 중풍마비로 왼쪽 팔을 펴지 못한 채 고생하는 처지였다.

 

그게 딱해 보여 침을 하여 그 자리서 팔을 펴지게 해 주었다. 그러자 주인은 너무 신기한 생각으로 옆집에 가서 “내 팔이 펴졌다”고 자랑을 하였다. 

그 이야기를 안종호라는 씨름 선수가 듣고는 파출소장을 데리고 그가 묵고 있는 여인숙에 찾아왔다. 사연인 즉 경찰서장이 오랫동안 이름 모를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같이 가서 치료가 가능한지 한번 봐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서 진단을 해보니 간질이었다. 그는 경찰서장에게 ‘코침’을 하여 사혈을 시킨 후 기혈이 막힌 곳을 진단하여 중완 등 13군데의 혈에 침을 하였다. 경찰서장은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침을 맞고 그 날 이후 간질 발작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구멍가게 주인과 경찰서장의 고질병을 손쉽게 낫게 해 주자 제 2의 허준이 나타났다는 소문과 함께 연일 50~60명의 환자가 여인숙으로 찾아왔다. 결국 그는 찾아오는 환자를 뿌리치지 못하고 현재 살고 있는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가족의 백내장·디스크·치질·열병 고쳐 줘


그간 환자를 치료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을 들려 달라고 하자 그는 먼저 경북 영주에 사는 일가족의 병을 고쳐 준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처음 그 집안 부모는 아들의 병만이라도 고쳤으면 하는 마음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한다.

 

아들의 증상은 눈에 백태가 심하고 눈이 부셔 밝은 빛이 있는 곳에 가지를 못했다. 그 일로 여러 해 고생을 하며 병원을 전전했으나 고치지 못하고 거의 실명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그는 고질인 아들의 눈병을 ‘코침’과 뱀을 이용하여 수일 만에 고쳐 눈을 뜨게 해 주었다. 그러자 그의 의술에 탄복하여 치질로 고생하던 큰 딸이 뒤이어 찾아왔다. 치질 역시 항문에 끼인 사혈을 침으로 몽땅 걷어내 수일 만에 완치시켰다. 이렇게 병이 낫자 그 후 목 디스크로 고생하던 둘째 딸과, 열병(熱病)으로 고생하던 그 집 어머니도 치료를 원해 침술로 완치시켜 주었다고 한다. 

당시 그 집 아들의 나이가 11살이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요즘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가끔 인사하러 찾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찾아오면 고마운 일일 뿐 의료 면허가 없는 사람으로서 혹시 의료 행위의 증거가 될까 봐 아무런 연락처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고혈압으로 사경 헤매던 전직 대통령 인척 고쳐 줘


또 기억에 남는 일은 제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일로서 경남 합천에 사는 대통령의 가까운 인척이 심한 고혈압으로 경북 모 대학 양방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고 한다. 병원에 일주일째 입원하고 있었으나, 6백 내지 7백까지 올라간 혈압이 떨어지지 않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또 혈압이 6백 내지 7백까지 올라가니 약도 함부로 투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청와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가 오니 뚜렷한 해결 방법이 없는 양의사들로서도 잘못되었을 경우의 책임이 두려워 환자에게 손을 대지 않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저녁 늦게 환자의 막내동생이 그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며 왕진을 청하였다. “대학병원이면 박사가 우글거릴 텐데 돌팔이가 가서 무엇 하겠느냐”고 해도 “이미 병원에서는 포기했다. 동네 사람에게 수소문한 바 만병통치이며 손을 대면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막무가내였다. 

결국 채비를 챙겨 병원에 도착하니 밤 11시 40분이었다. 환자는 심한 혈압으로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 똑바로 누워 있지도 못하고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맥을 짚어 보니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따라서 양방병원에서 침을 놓을 형편도 아닌지라 퇴원을 시켜 집에서 차분히 치료할 요량으로 “어차피 병원에서 포기했으니 퇴원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병원 측에서는 밤 12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잘되었다는 듯이 즉각 퇴원시켜 주었다. 

병원에서 나온 그는 환자를 대구에 있는 환자의 맏형 집으로 옮겨 침을 놓았다. 그리고 하루 쉬었다가 다시 침을 맞으면 되는데, 2번 침 맞으면 걸어 다닐 것이고 3~4회 침 맞으면 혈압이 내려갈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하루 있다 가 보니 머리가 아파 정신을 못 차리던 환자가 일어나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맥을 보니 상당히 좋아져 있었다.

 

3번째 가 보니 환자가 돌아다녔다. 상태를 물으니 머리가 약간 띵하다고 하였다. 3번째 침을 놓아 주곤 “이제 혈압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을 터이고, 더군다나 가을 수확으로 농사일이 한창 바쁠 때이기도 하니 걱정 말고 집에 돌아가 농사일을 하라”고 이르고 돌아왔다. 그 후 환자는 합천으로 돌아갔고, 가을 수확이 다 끝날 무렵인 10월에 한 번 더 침 맞기를 원해 마무리로 침을 놓아 주었다.

 

 발꿈치 통증으로 7년 고생하던 환자 침 3번에 나아


또 기억에 남는 환자는 경주의 모 대학교 검도 강사로서, 6~7년 전에 그에게 찾아왔다고 한다. 환자는 발꿈치를 심하게 다쳐 7년 간 고생하고 있었다. 발꿈치가 아프니 구두를 신지 못하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아픈 쪽의 발엔 슬리퍼처럼 뒷굽을 구겨 신고 있었다.

 

7년간 한의사와 양방병원의 박사도 못 고쳤는데 치료가 가능하겠느냐고 묻기에 “2번 침을 맞으면 괜찮아질 것이다”라고 답변하였다. 그러자 “그 오랜 세월에 걸쳐 전국의 유명한 병원과 박사를 다 찾아다녀도 못 고친 병을 침을 2번 맞고 나을 수 있겠느냐”며 반신반의하였다. 

그런데 침을 2번 맞고 환자는 구두를 신어도 발꿈치가 크게 아프지 않다고 하였다. 발꿈치가 아프지 않자 3번째 침을 맞고 돌아갔는데, 정월 초하루에 아침 일찍 경주서 일부러 시간 내어 선물을 사가지고 찾아왔다. 그리고 고질병을 고쳐 준 데 대해 감사를 표시하면서 “형님으로 모시겠다” 하여 의형제를 맺었다고 한다.

 

 저혈압으로 죽음 직전 환자, 의사 호통 치며 살려내


또 한번은 10여 년 전에 가까운 친척이 저혈압으로 쓰러져 경북 모 한방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간 적이 있다고 한다. 환자는 기혈이 돌지 않아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하고 죽음 직전이었다. 침으로 응급 처치하면 소생할 수 있음에도 병원에선 환자의 혈압이 20 이하로 떨어진 상태에서 괜히 시술했다가는 자신들만 의료 사고로 몰린다며 시술을 기피하였다.

 

그는 “이런 사람이 무슨 의사이냐”고 호통을 치곤 담당 의사에게 장침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리고 환자가 죽어도 자신이 책임질 터이니 중완과 단전에 침을 꽂으라고 하였다. 담당 의사는 장침을 꽂으며 얼굴이 새파랗게 되고 손을 덜덜 떨었지만 그는 더 깊숙이 꽂으라고 재촉하였다.

 

그 후 10분이 지나자 환자의 혈색이 돌아오면서 의식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1시간쯤 되어 혈압을 재어 보니 정상 혈압이 되어 기력을 회복하는 약을 지어 퇴원하였다고 한다. 병원 측에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환자가 소생하자 약 짓는 것도 그에게 물어 와 일러 주었다고 한다. 

이 밖에 경북도청 자재과장 부인이 구안와사증으로 고생하던 걸 고쳐 준 것과, 60년대 말 부인의 정신병을 고쳐 주니 남편이 선물을 사가지고 부인과 함께 인사하러 온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또 디스크 수술을 2번 해도 병세가 악화되어 3번째 수술 날짜를 받아 놓고 찾아온 경남 합천의 환자를 고쳐 준 것과, 전신이 아파 고생하던 올해 65세 된 여인을 고쳐 준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합천의 디스크 환자는 처음 올 때 걸음을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문지방도 못 넘을 정도의 중증이었으며, 전신이 아픈 여인은 고통이 너무 심해 거의 삶을 포기한 상태였다고 한다.

 

 어려운 병 고쳐 주고 받는 대가 없어


이렇게 어려운 병에 걸린 환자를 고쳐 주고 그가 받는 대가는 없다고 한다. 환자가 나은 후 감사의 표시로 가져오는 담배 몇 갑이나 술 한 병 등의 선물이 대가라면 대가라고 한다. 그는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면 될 뿐이지 의술을 이용하여 돈 벌 생각은 없다고 한다.

 

애초 환자를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들어 자신을 믿고 찾아온 사람에게 고통이라도 덜어 줄 생각으로 의술을 시작했던 것이라 아픈 사람에게 금전적인 부담까지 지워 줄 마음이 없다고 한다. 

집
그는 면허가 없는 사람 중에서도 조금이라도 침을 배우면 무슨 큰 기술을 가진 양 돈부터 벌려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큰 잘못이라고 한다.

 

환자가 면허가 없는 사람에게까지 찾아와 구원을 요청할 때는 분명 절박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니 이런 환자의 절박한 심정을 헤아려 병을 고쳐 주는 데 최선을 다하고 그걸로 만족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노 옹의 말을 들으며 그의 초라한 거처가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 노 옹은 환자들이 비가 샐 정도의 초라한 집에 사는 그를 보고

                                                                                                  ▲노현배 옹이 거처하는 집.

을 고쳐 준 대가로 얼마든지 돈을 요구해도 될 터인데 용한 사람이 왜 이렇게 사느냐고 오히려 걱정을 해 준다고 한다.

 

 돈을 뜯어내려는 사람에게 무고하게 고발당해


한편 노 옹은 자신은 아픈 자가 안쓰러워 성심을 내어 자신이 지닌 의술을 나누어 주건만 이를 받아 주는 세상의 인심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는 환자의 어려운 처지를 해결해 주고도 고발당하기도 하고, 돈을 옭아내려는 사람의 무고한 고발로 고생하기도 하는 등 그간 수많은 파란곡절을 겪었다고 한다. 

한번은 가정 형편이 아주 어려운 처지에다 아이가 5명인 부인이 임신을 하자 남편과 식구 몰래 낙태시키기 위해 ‘유산침’을 맞으러 왔다. 그리고 낙태하고 돌아가 몸을 보신하기 위해 가족 몰래 고기를 사다 급히 먹고는 체해 버렸다.

 

그런데 집에 들어온 시어머니가 아파서 끙끙대는 며느리의 모습을 보고 이유를 묻자 변명으로 유산시키고 나서 병이 났다고 둘러댔다. 그걸 시동생이 고발하여 그는 결국 엉뚱하게도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는 일을 당했다. 그 후 그 부인은 그를 볼 때마다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엉뚱하게 피해를 당하게 했다며 가슴 아파한다고 한다. 

또 한번은 1998년 5월의 일로, 그가 침을 놓아 준 적이 없는 사람이 돈 뜯어낼 목적으로 그에게 침을 맞고 부작용이 났다며 7천3백만 원 내라고 협박을 하였다.

 

그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고발을 했는데, 알리바이 등을 통해 고발자에게 침을 놓아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모두 입증하고, 또 찾아와 병고를 호소하는 다른 사람에게 대가 없이 봉사했음을 호소했음에도 무면허 의료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벌금 2백만 원과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런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할 길도 없고, 세상의 각박한 인심에 환멸을 느껴 그 후 모든 의술을 내던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손을 대면 뻔히 나을 환자를 돌려보낼 때는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능력과 성심보다는 학벌과 ‘간판’을 중시하는 세태


그는 현재도 그가 의술 행위를 하고 있는지 감시의 눈길을 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인해 양의사들이 파업을 할 때는 그가 경상북도 지역에서 소문이 나 있으니 갈 곳이 없는 환자들이 분명 ‘노 의원’ 댁에 갈 것이라는 추측으로 이웃에게 환자를 보는지 탐문하는 등 감시가 심했다고 한다. 

노 옹은 제5 공화국 전두환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가까운 인척을 고쳐 준 후 환자의 막내동생이 청와대에 특별히 부탁하여 침술 허가증을 해 주겠다고 하여 주민등록등본 등의 서류를 떼어 가지고 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고지식한 성격상 권세의 힘을 빌려 면허를 얻는 게 싫어 포기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대신 만(萬) 인간을 성심으로 나아 주면 그 공로를 언젠가는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간판’과 학벌만 중요하게 여길 뿐 사람의 성심이나 능력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는 가끔 인근의 한의대학 교수들이 와서 자문받길 원하나 학벌 위주의 사회가 싫어 거절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그간 면허가 없기 때문에 겪었던 설움과 고통과 안타까움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겠느냐며 말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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