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자극이 면역계에 미치는 영향
우리의 인체는 바깥을 덮고 있는 피부와 안쪽의 표면을 덮고 있는 점막조직이 있다. 이들은 모두 상피세포로 이루어져 있어 병원체라든가 이물질들로부터의 침입을 막아주는 방어벽 구실을 하고 있다. 피부 같은 상피조직은 케라틴이라는 단백질로 코팅되어 각종 병원균은 물론, 수분과 같은 액체의 이물질들이 절대 침투할 수 없게끔 되어 있다. 피하에 있는 모낭의 피지선은 지방산과 젖산을 분비하여 피부 표면에서 병원체가 잘 자라지 못하게 한다. 피부가 아닌 몸 안의 위장관이나 호흡기, 비뇨기관, 혈관 같은 내부의 표면인 점막은 피부처럼 완벽한 방어벽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병원체나 이물질들이 쉽게 침투할 수 없도록 끈적거리는 점액질로 덮여 있다. 이 점액질에는 당단백질과 각종 효소들이 있어서 이들이 병원체나 이물질들의 침투를 방어하고 있다. 또한 모든 상피조직은 '디펜신'이라는 항미생물 펩타이드를 분비하여 몸 안으로 침투하려는 각종 병원체를 죽이기도 한다. 눈물이나 침 속에는 라이소자임이라는 효소가 병원체를 죽여 입안과 눈을 질병으로부터 보호를 해준다.
인체의 바깥을 덮고 있는 피부는 상처가 나지 않는 한, 병원체가 침투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나 몸 안의 점막은 주위 환경 또는 내부조직과 소통하도록 특수화되어 있어서 병원체가 비교적 용이하게 침투할 수 있다. 몸 안의 내부 표면을 점막이라고 하는 이유는 항상 점액으로 젖어있기 때문이며 이 점액에는 앞에서 말한 당단백질과 효소들 뿐만 아니라 병원체의 침입을 막기 위한 항체와 백혈구들이 진을 치고 감시를 하고 있다. 피부는 인체를 구성하는 데 30%에 지나지 않으나 몸 안의 점막조직은 7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병원체로부터 인체를 방어하기 위한 면역기구들의 역점은 점막조직에 결집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부에서는 상처가 발생해야만이 상처부위로 침투하려는 병원체를 물리치기 위한 면역세포들의 반응인 염증반응이 발생하지만, 몸 안의 점막조직에서는 상처 뿐만 아니라 병원체가 점막조직에 달라붙는 것으로도 염증반응이 유발되는 것이다. 이 말은 피부에서는 병원체가 달라붙어 있다 하더라도 염증반응이 유발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병원체들은 그들이 생존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과 조건을 갖춘 인체의 몸 안으로 침투하려고 하며 그러므로 구강과 연결된 위장관이나 코와 연결된 호흡기는 병원체가 침투하는 길목이 되는 것이다. 특히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체는 숙주세포 안으로 반드시 들어가야만 증식이 가능하므로 필사적으로 구강이나 코를 통해서 몸 안으로 침투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툭하면 바이러스에 의한 감기에 잘 걸리고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하찮은 감기가 폐렴과 같은 심각한 질병으로까지 발전되기도 하는 것이다. 코나 입을 통해서 침투한 병원체를 물리치기 위한 최전방의 진지가 있는데 이것이 목구멍의 전체에 원형으로 구성되어 있는 편도선이나 아데노이드로서 이들을 2차림프기관이라고 한다. 2차림프기관에는 병원체를 제거하는 각종 백혈구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이다. 병원체가 코를 통해서 침투를 하게 되면 코의 점막이 자극되어 병원체를 씻어내기 위한 액체가 생성되고 병원체를 불어내기 위한 재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병원체가 목구멍까지 침투하면 목구멍 주위는 대식세포에 의한 염증반응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병원체를 물리치려는 면역세포들에 의한 염증반응을 선천성면역반응이라고 한다. 한편, 수지상세포라고 하는 백혈구는 병원체를 붙잡아 근처에 있는 2차림프기관인 편도선으로 끌고 가서 림프세포들에 의한 후천성면역반응이 일어나도록 유도를 한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병원체의 침입은 후천성면역반응 단계에서 완전히 종결되어 더 이상의 병원체의 감염은 없게되며 따라서 병원체에 의한 질병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병원체는 폐, 간, 위, 심장 등의 오장육부를 침범하여 죽음으로까지 몰고갈 수 있는 심각한 염증을 유발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하여 건강한 신체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백혈구들로 구성된 면역기구는 우리를 공포스러운 질병으로 부터 보호해주는 장치이기는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 허술한 면역계를 이루고 있기도 하며 철통 같은 면역계를 갖춘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완벽한 면역계를 갖추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 왜냐하면 인체를 침투하는 병원체들도 인간이 갖춘 방어장치인 면역계를 무력하게 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끊임없는 진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완벽한 면역계를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면역계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는 나쁜 생활습관이나 식습관을 버리는 등의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 함으로써 완벽에 가까운 면역계를 갖출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면역계를 이루고 있는 주역들은 바로 백혈구이다. 백혈구는 대충 5종류로 나뉘며 이들이 하는 역할은 각 백혈구마다 다르다. 대식세포로 알려진 백혈구는 말 그대로 병원체나 인체에 해가 될 수 있는 이물질을 대량으로 잡아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백혈구이다. 그래서 대식세포를 청소세포라고도 한다. 대식세포가 맡은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어느 조직에 상처가 났거나 병원체가 침투하면 염증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대식세포는 우리 몸의 어느 부위에서나 비활성의 상태인 단핵구로 상주하고 있다. 단핵구가 세균이나 바이러스, 진균과 같은 병원체에 감염되면 대식세포로 변하며 대식세포는 병원체를 잡아먹는 등의 선천성면역반응인 염증반응을 유발시킨다. 대식세포는 한편으로는 잡아먹은 병원체를 안에서 조각을 낸 다음 대식세포의 표면에 제2급 MHC클래스 분자를 통해 병원체조각(항원)을 후천성면역반응을 일으키는 헬퍼 T 세포에게 제시를 한다. 대식세포가 제시한 항원에 반응 할 수 있는 특이적인 헬퍼 T 세포가 혈관과 림프관을 순환하다 대식세포의 표면에 있는 'MHC-항원복합체'와 헬퍼T 세포의 표면에 있는 특이적인 수용체가 결합한다. 이로써 대식세포 자체는 더욱 효과적으로 병원체를 제거하기 위한 염증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분화됨과 동시에 헬퍼 T 세포를 중심으로 하는 후천성면역반응이 유발되어 병원체를 제거하는 치밀한 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따라서 대식세포는 선천성, 후천성 면역계를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사령관 같은 아주 중요한 백혈구이다.
후천성면역반응만을 유발시키는 데 대단히 중요한 백혈구인 수지상세포가 있다. 수지상세포는 모양이 나뭇가지 처럼 생긴 데에서 유래되었는데 움직이지 못하는 대식세포와는 달리 수지상세포는 여기저기를 움직여 다닐 수 있는 이동성 백혈구이다. 가령, 허벅지가 가시에 긁혀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면 상처난 부위에 상주하고 있던 미성숙의 수지상세포인 랑게르한스세포가 상처부위로 이동하여 상처부위를 통해 침투한 병원체를 붙잡아서 서혜부 쪽에 있는 2차림프기관으로 가져간다. 2차림프기관에 도착한 랑게르한스세포는 그곳에서 성숙한 수지상세포로 자라고 감염부위에서 붙잡아 온 병원체를 조각내어 제1급MHC클래스 분자를 통해 수지상세포의 표면에 조각난 병원체(항원)을 제시한다. 이렇게 제시된 항원과 특이적인 반응을 할 수 있는 세포독성 T 세포가 혈관과 림프관을 떠돌다 2차림프기관으로 들어와 수지상세포의 표면에 있는 MHC-항원복합체를 인식하고 자신의 표면에 있는 수용체와 결합하면 세포의 분열이 일어나 더 많은 세포독성 T 세포가 증식하며, 세포분열에 의해 증식된 세포독성 T 세포들은 허벅지의 찢어진 상처로 몰려가 병원체에 감염된 세포들을 모두 제거해 버린다. 물론, 이와 같은 후선성면역반응이 있기 전에 선천성면역에 의해 병원체가 상당히 감소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감염부위로부터의 병원체와 병원체에 감염된 세포의 완벽한 제거는 항상 후천성면역반응에 의해 이루어진다.
후천성면역반응에 의해 대부분의 병원체가 제거됨에도 불구하고 면역반응이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면역력이 떨어진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체를 물리치기 위한 정상적인 염증반응은 비정상적인 염증인 만성의 염증으로 발전되고 실패만 거듭하는 후천성의 면역반응과 비정상적인 만성의 염증을 되풀이 하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조치라고는 항염증제와 진통제를 투여하여 증상을 억제시키는 일이다.
만성 염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침 자극은 실패한 후천성의 면역반응과 되풀이되는 만성의 염증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이상적인 치료가 될 수 있다. 이럴 때 침을 아무렇게나 찔러서 될 일이 아니며, 염증 부위에 침을 찔러 독특한 행침법을 실시하면 대식세포가 흥분하여 정상적인 염증반응을 유발시킨다. 아울러 침의 수기법에 자극된 랑게르한스세포는 자침으로 인한 상처 부위에서 감염된 병원체를 붙잡아 2차림프기관으로 이동한다. 2차림프기관에서 병원체에 감염된 수지상세포를 인식한 세포독성 T 세포가 세포분열을 하여 침 자극으로 상처가 난 부위로 몰려가고, 상처로 인해 병원체에 감염된 세포들을 제거한다. 이때 이미 존재하는 만성의 염증부위들에서 유래한 병원체에 새로운 후천성면역반응을 유발시켜 실패한 이전의 후천성면역반응을 성공적인 후천성면역반응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어떤 질병이나 만성통증에 대한 침의 자극은 앞에서 설명한 면역기구가 병원체를 물리치기 위한 면역반응을 유발시킨다. 인체에 대한 자침은 백혈구들이 침을 심각한 이물질의 침투로 인식하여 활성화된다. 즉 자침으로 인한 손상된 조직은 실제로 병원체에 감염되었으므로 면역계는 선천성, 후천성면역반응을 유발시킴으로써 활성화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침의 자극으로 질병에 대한 100%의 성공적인 자연치유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백혈구들의 능력으로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조직이 손상되었다면 침술로도 안 되는 것이다. 침술은 백혈구들의 자연치유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백혈구들에 의한 복원능력 이상으로 조직이 손상되었다면 침술치료는 자제를 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침술치료를 강행했다가는 더 심각한 상태로 악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면역계의 일차적인 면역반응의 실패로 염증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라면 성공적인 면역반응이 진행되도록 침의 자극으로 유도할 수 있다. 단, 백혈구들이 복원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조직이 손상되지 않았을 때 침술치료는 가능해지며 이것이 바로 침을 맞으면 병이 낫는 이유이다.
침이 어떤 기전으로 질병을 치료하거나 완화시키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침쟁이들이 없다. 그들은 침이 기와 혈을 원활하게 소통시킬 수 있게 하기 때문이라는 막연한 답변들을 할 뿐이다. 그래서 침으로 자극하는 방법에 관한 모호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며 치료효과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 있지 않은 것이다. 음양론적인 경락설에 근거하여 침술 효과의 기전을 이해한다는 것은 애매모호해서 침 시술에 관한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인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리적인 제반 현상을 과학적인 지식으로 정확하게 이해되었을 때 침술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메커니즘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침술은 과학화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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