鍼灸 小考/침구 개론

침 맞을 때 신경이 절단되면?

초암 정만순 2015. 7. 29. 20:27

 

침 맞을 때 신경이 절단되면?

 

침술을 배우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침을 놓다가 신경을 다치게 하거나 절단시키면 병신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침술을 배웠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침을 놓을 때 신경을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으로 배웠다고 한다. 내가 처음 침술을 배울 때 어느 노인이 쓴 침술 책에서 "침을 놓을 때 신경을 피해서 자침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경혈에 침을 놓아야 한다"고 기술해 놓은 걸 본 적도 있었다.

이와 같이 침술의 대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침술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 모두가 경혈에 침을 놓을 때 신경을 피해야 하며, 만약에 침으로 신경을 손상시키게 되면 사지마비나 전신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두려움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침술사들이나 한의사들의 침 놓는 수법은 신경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천편일률적으로 표피에다 침을 살짝 찌르는 침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한 젊은 한의사가 침술을 배우는 동안 대추혈에 침을 자입하는 걸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놀라워 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의과 대학 다닐 때 침구학 교수로부터 대추혈에는 침을 찌르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척수(spinal cord)를 다치게 하여 전신마비를 초래케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침으로 신경을 건드리면 위험한 것일까? 그리고 침으로 신경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걸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침으로 경혈을 찌르는 주목적은 신경섬유나 혈관을 자극하는 것이며, 따라서 침으로 신경을 다치게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황제내경을 비롯한 고대의 침구학과 관련된 문헌이나 서적은 물론, 현재 서점에 배포되어 있는 제대로 된 침구학 서적들을 보게 되면 침으로 경혈에 자입 시 환자는 반드시 득기감(得氣感)을 느껴야 병이 치료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득기감은 환자가 침을 맞을 때 느끼는 침감(鍼感)으로써 시큰거림, 마비감, 욱신거림, 뻐근함, 촉전감 같은 것을 일컫는다. 득기가 없는 침술은 치료효과도 없다는 말은 선조들의 오랜 경험에서 얻어진 원칙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침을 놓아서 시큰거림, 마비감, 욱신거림, 뻐근함, 촉전감과 같은 침감을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피하나 근육 속에 있는 혈관과 신경섬유를 반드시 자극을 가해야만 한다. 침첨이 신경섬유를 자극하게 되면 시큰거림, 마비감, 촉전감과 같은 침감을 느끼게 되고, 혈관을 자극하게 되면 욱신거림과 뻐근한 침감을 느끼게 된다. 공교롭게도 수천 년 전의 옛날 사람들이 정해놓은 경혈들은 혈관이나 신경섬유를 자극할 수 있는 자리들이라는 점에서 그저 놀랍기만 하다. 

 

침을 놓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각 경혈마다 적정한 깊이를 정하여 침을 자입 후 반드시 수기를 통한 자극을 가해야만 한다고 수 없이 피력해 왔다. 특히, 침을 적정한 깊이로 꽂아 자극을 가하여 침이 꽂힌 자리에 가벼운 상처를 내 면역세포들로 하여금 염증을 유발시키고, 신경섬유를 자극하여 중추신경과 말초신경계 간의 의사소통을 촉진시켜 자연치유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몇 차례 강조했다. 또한 침의 신경에 대한 자극은 통증을 차단할 수 있는 기계수용체를 활성화시키고,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엔케팔린과 엔돌핀을 방출시킨다는 설명도 여러 번 했다.

어떻든, 대부분의 침쟁이들이 신경을 피해서 침을 놓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굵고 가느다란 신경섬유들이 전신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뻗어 있는데 아무리 가느다란 호침이라 하더라도 이런 신경섬유들을 피해서 침을 꽂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침으로 체표에 있는 경혈에 침을 깊숙이 찌르다보면 근육조직은 물론이고 혈관과 신경섬유를 얼마든지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침에 의해 혈관과 신경섬유가 손상되었다고 해서 다리마비나 팔마비 또는 더 심각한 전신마비 같은 것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 침 시술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0.2mm~0.4mm의 가느다란 호침으로 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사고를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침으로 신경섬유를 거칠게 자극하여 심한 손상을 입혔거나 신경섬유가 절단되는 손상을 가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재생이 된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해부학적으로 호침보다 더 가느다란 신경섬유나 혈관은 얼마든지 몸의 여기저기에 분포해 있고, 심지어는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아주 가느다란 혈관과 신경섬유들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미세한 신경섬유나 혈관들은 침의 자극으로 형편없이 망가질 것이다. 그럼에도 침 자극으로 인한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것은 신경조직이나 혈관조직들의 놀라운 재생력 때문이다.

신경세포는 세포체와 세포체에서 여러 방향으로 나무 가지처럼 형성된 수많은 수상돌기, 그리고 한 방향으로 가지를 내며 뻗어 있는 선으로 된 축삭을 포함한다. 신경세포를 신경해부생리학에서는 뉴런(neuron)이라는 용어로 더 자주 사용된다. 신경세포에서 뻗어나온 축삭은 전류를 흐르게 하는 전선과 같으며, 축삭을 통해 전기신호에 의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을 포함한 모든 포유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말초신경계의 축삭은 부상으로 인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다시 재생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러나 중추신경계의 축삭은 절단되는 손상이 발생하면 영원히 재생되지 않는다. 어류인 물고기나 양서류의 개구리 같은 동물들의 중추신경계 축삭은 절단이 되더라도 재생되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의 중추신경계는 뇌와 척수이다. 뇌는 두개골 안에 집단으로 이루어진 신경계이며 척수는 뇌로부터 등으로 뻗어 있는 척추뼈 안에 있는 한 줄기의 신경집단체이다. 팔과 다리, 복부 안의 장기로부터 중추신경인 척수로 연결되어 있는 체성신경과 자율신경을 말초신경계라고 하는데, 감각정보를 척수로 전달해주는 입력신경과 뇌에서 척수로 내려온 운동정보를 내장과 팔, 다리로 전달해주는 출력신경으로 구성돼 있다. 한편 눈, 귀, 코, 입, 혀, 안면근육들을 지배하는 12쌍의 뇌신경이라는 말초신경계도 있다.

인체에는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천여 개에 달하는 침을 놓을 수 있는 경혈이 분포되어 있다. 이들 경혈들은 독맥이라는 경락상에 있는 경혈을 제외하고는 모두 말초신경계에 분포되어 있다. 머리 부위에도 경혈이 수십 개가 있지만 이들 경혈에 침을 찔러서 두개골 안의 중추신경을 자상할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왜냐면 호침으로 두개골을 뚫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침으로 중추신경의 축삭을 다치게 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다만 척추뼈 위에 있는 경혈들에 대해서 깊게 침을 찌르게 되면 중추신경인 척수를 자극하게 되는데 척수는 연필보다 더 굵은 조직으로서 경질막이라는 단단한 구조로 척수막을 형성하고 있다. 척수에 대한 자침은 척수의 경질막을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뒷목에 있는 아문혈을 깊게 자입하여 침감이 사지로 방산되도록 자극을 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도 나 자신의 아문혈에 침을 깊숙이 자입하여 사지로 방산되는 침감을 강하게 여러 번 느껴보고는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독맥상에 있는 경혈들은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은 전문가의 지도없이 해당혈에 함부러 침 놓는 것을 삼가해 주십시오.)

 

결국, 침을 체표에다 살짝 꽂아 놓는 침법이 신경이나 혈관을 손상시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면 침을 버리거나 다시 공부해야 할 것이다. 침술은 어떤 의술보다도 안전하고 효과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침술과 인체에 관한 이해의 부족으로 침을 자신있게 놓지 못하고 그 효율성을 널리 알릴만한 침쟁이들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침쟁이들이 침술을 자랑하기 위해 기껏 한다는 소리는 침으로 못 고치는 병이 없다며 침술을 지나치게 신비화시켜 허무맹랑하게 떠벌리는 것이 고작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대중들로부터 침술이 인정 받지 못하고 점점 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반인들의 침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침을 잘 못 맞으면 불구가 된다, 죽는다'라는 터무니 없는 지독한 오해들이 중국처럼 침술의 저변확대나 활성화를 어렵게 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게 침 시술자들의 침술에 관한 무지와 고리타분한 이론에 갇혀 엉터리 침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 놓은 결과이다. '침 놓을 때 신경을 피해야 한다. 침으로 신경을 건드리면 위험하다'는 그릇된 지식이 침쟁이들의 뇌리를 맴돌고 있는 한 우리나라 침구계의 앞날은 암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