鍼灸 小考/침구 개론

침술의 기능(技能)적인 면

초암 정만순 2015. 7. 29. 12:40

침술의 기능(技能)적인 면

 

 

어떤 계기로 침술에 관심을 갖게되어 침술을 배우기로 마음을 먹는다. 여기저기 알아본 다음 어느 강습소에서 침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우선 14경락체계와 14경락에 배속되어 있는 361개의 경혈들에 대한 정확한 취혈법, 혈성, 해당 경혈에 침을 놓았을 때의 적응증과 침을 놓는 깊이, 몇 개의 침을 꽂을 것인가를 배울 것이다. 침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 이상이 걸리는 것 같다. 시간으로 따지면 수십 시간에 불과하나 주당 한 번 내지 두번 정도를 배워서 1년 이상을 채우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침술을 배우게 되면 당사자들은 당연히 제대로 된 침술을 배운 것으로 믿을 것이다. 왜냐하면 침술의 전문가로부터 체계적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상당한 수업료를 들여 배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은 직접 임상을 하여 효과를 보지 못할 때부터이다. 국내의 침술을 가르치는 곳은 물론, 해외의 침구대학 또는 이른바 한의과대학이라고 하는 곳에서조차 침술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지를 생각해 보면 참으로 고개가 갸우뚱해질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노릇이다.

나에게 침술을 배우러 오는 수강생 80% 이상이 이미 다른 곳에서 침술을 배웠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361개 경혈 하나하나에 대해서 위치, 취혈법, 적응증, 자침법 등을 일일이 배우고 외우게 한다는 것이다. 경혈에 침을 꽂아 자극하는 그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임상실습은 체표에 있는 경혈에 침을 살짝 찔러 놓는 것이 고작이라고 한다. 어떤 곳에서는 침을 경혈에 살짝 꽂아 놓고 거기서 더 이상 깊게 자입하거나 염전과 같은 자극을 하게되면 당장 책가방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라며 호통을 친다고 한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침술을 가르치는 곳이다.

침술(鍼術)은 말 그대로 침을 놓는 기술(技術)이다. 다시 말해서 침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손재주를 구사(驅使)해야 한다. 침으로 손재주를 잘 구사하기 위해서는 솜씨를 익혀야 하는 것이다. 솜씨를 익혀야 한다는 것은 기능적인 것 기술적인 것을 익혀야 한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침 시술자들이 환자들에게 침을 놓을 때 침을 체표에 살짝 꽂아 놓는 아주 단순한 방식만을 취한다. 체표에 침을 살짝 꽂아 놓는 것은 손을 놀릴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 무슨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겠느가. 체표에 있는 경혈에 침을 살짝 찔러 놓고는 어떤 질병이 호전되기를 바라고 있으니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격이 아닌가?

감나무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감나무에 달려 있는 감을 얻기 위해서는 감나무 아래에서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감나무 가지를 잡고 흔들어야 한다. 감나무를 살짝 잡고 감나무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마찬가지로 침으로 환자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침을 놓고 행침법(行鍼法)을 구사(驅使)해야 한다. 침을 체표에 살짝 꽂아 놓고는 질병이 낫기를 바란다면 얼마나 아둔한 짓인가 말이다. 생각해 보라! 침을 꽂아서 꽂혀 있는 침을 잡고 손으로 솜씨를 발휘해야 함에도 침을 살짝 꽂아 놓고기만히 있으면 인체에서 어떤 생물학적인 반응이 나타나겠느냐는 말이다. 감나무 가지를 잡고 흔들어야지 감나무 가지만 가만히 잡고 있으면 감이 떨어지겠는가? 감나무를 가만히 잡고만 있는데도 감은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떨어진 감은 감나무를 잡고 있기 대문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연히 저절로 떨어진 것에 불과하다.

침을 체표에 살짝 꽂아 놓기만 했는데도 환자의 질병이 나았다면 그야말로 우연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침술을 배울 때 행침법을 배우는 것, 즉 기술을 익히는 것이 매우 중요함에도 경혈의 위치를 외우는 데, 경혈들에 대한 적응증을 외우는 데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경혈의 정확한 위치는 환자들의 질병을 낫게 하는 데 아무런 관련성이 없으며, 침구이론에서의 경혈에 대한 적응증은 옛날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에 불과할 뿐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침술은 하나의 기술이다. 즉 침을 가지고 환자들의 적정한 인체를 자극하는 기술이다. 침으로 환자들의 인체를 자극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기술이 서툴면 환자들이 침을 맞는 과정에서 아주 고통스러워 할 것이며 효과 또한 떨어지게 마련이다. 침을 가지고 환자들의 인체를 자극하는 숙련된 기술을 익히는 것이 침술 교육의 목표이다. 기술이 숙련되면 기교(技巧)를 갖게 되는데 남다른 손재주를 구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숙련된 기교로 침을 가지고 환자들에게 시술을 하면 환자가 편안하게 침을 맞을 수 있으며 아울러 치료 효과도 바로 나타나는 것이다.

환자에게 침 시술을 한 다음에 환자에게 어떠냐고 물었을 때 환자의 입에서 "좋아졌습니다."라는 단호한 대답이 나와야 한다. "뭐~ 좋아진 것 같은데요."라고 하면 효과를 전혀 보지 못했다는 답변이다. 기교가 있는 침술로 시술을 하면 환자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리고 침을 체표에 살짝 꽂아 놓았다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 침을 뽑는 시술 행위는 얼마나 소극적인가. 환자들의 인체에 침을 꽂아서 행침법으로 자극하는 솜씨를 신중하게 구사하고 있을 때 환자가 시술자의 진지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바라보면서 감동을 하게 된다. 환자가 감동을 느끼게 되면 인체 안에서 대단히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백혈구들의 활성화가 배가가 되며 백혈구들의 활성화로 인해 환자의 불편한 어떤 증상도 모두 치유가 되는 것이다. 백혈구들(면역력이라고도 함)은 짜증, 분노, 두려움, 걱정, 슬픔과 같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는 억제가 된다. 환자가 기쁨, 즐거움, 희망, 감동과 같은 감정상태에 놓이게 되면 백혈구가 활성화가 되어 자연치유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침으로 환자들에게 시술할 때에도 적극적이고 정성을 다하면 환자는 감동을 하게 되고 감동을 받은 만큼 침술의 효과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환자의 인체에 침을 찔러 행침법을 하기 위해서는 유효적절한 기술이 요구되어지고, 그 기술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마음으로 집중하여 솜씨를 발휘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서툴면 환자가 침을 맞을 때 고통스러워지는 것이다.

침술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행침법의 매뉴얼을 정확하게 익히는 것이며 정확한 매뉴얼대로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하여 연습을 충분히 하여 숙련을 시켜야 한다. 행침법의 숙련도가 침술의 능력을 결정하는 것이다. 침술은 이렇게 익히는 것인데 경혈을 외우고 외운 경혈에 침을 찌르는 단순한 침술로 환자들의 질병이 고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어떤 곳에서는 침을 깊게 자입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한다. 침술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강습소에서 침을 살짝 찌르도록 가르치고 있는 데 대한 자부심일 것이다. 침을 인체에 깊게 찌르든 얕게 찌르든 행침법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행침법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행침법이 그렇게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은 아닌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침법을 구사하지 않는 이유를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짐작으로는 침술은 소중한 생명체인 사람을 대상으로 시술하는 것이기 때문에 침을 잘 못 찌르거나 함부러 자극하다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게 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엉터리의 침술을 가르치고 배우고 시술하는 것 같다. 

어떤 의술이 되었든 결국은 우리 몸 속의 의사인 백혈구들을 활성화시켜 백혈구들로 하여금 우리 몸의 질병을 치유하게 하는 것이다.

침술로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백혈구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침법이 구사되어야 한다. 침을 체표의 겉에다 살짝 찔러 놓으면 겉의 피부병과 같은 질환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그 밖의 질병들은 어느 정도의 깊이로 자입하여 반드시 행침을 해야 한다. 다만 행침을 할 때 환자가 고통을 느끼지 않아야 하며 환자가 편안하게 침을 맞을 수 있도록 행침하는 기술이 노하우이다.

침을 맞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외과적인 통증을 없애기 위함이다. 외과적으로 나타나는 통증을 없애기 위해서는 행침법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술법이다. 허리의 통증, 어깨의 통증과 같은 대표적인 외과적인 통증에 대해 많은 침쟁이들이 자신이 없어 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단순한 엉터리의 침법으로는 통증을 완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외과적인 통증은 침을 살짝 찌르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반드시 행침법을 구사해야 하며 그랬을 때 척수라는 중추신경계가 가지고 있는 통증의 조절장치를 작동시키거나, 또는 뇌간과 척수에서 베타 엔돌핀이나 엔케팔린과 같은 진통물질의 분비를 촉진시켜 통증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술법은 면역학이나 신경과학적인 깊은 이해에서 고안이 된 것이며, 침술은 인체에 침을 찌르기만 하는 단순함을 넘어 침술이 인체에 미치는 생물학적인(과학적인)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차원이 다른 제대로 된 침술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허리의 통증, 어깨통증, 무릎통증과 같은 근골격계의 통증이 아닌 오장육부의 통증이나 두통을 비롯한 자율신경계의 실조로 인한 건강의 평형상태가 깨졌을 때는 자극을 가하는 수기법이 필요없게 된다. 자율신경계의 흐트러진 균형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경혈에 침을 적정한 깊이로 꽂아두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도 반드시 득기감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깊이까지 침을 자입해야 한다. 침자의 깊이는 각 경혈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시술자는 많은 경험을 통해서 이들을 숙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시술자들은 어느 침자리나 할 것없이 천편일률적으로 침을 많이 꽂게되는데 이건 침술이 아니다. 실력 있는 침시술자는 환자의 상태를 보아 침 놓을 경혈자리를 최소로 취혈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단 한 개의 침으로도 고질적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환자들의 입장에서 침시술자가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침을 맞았을 때 득기감이 있어야 하며, 환자의 몸에 꽂힌 침의 갯수가 많지 않다면 대체적으로 엉터리 침술사는 아니라고 여기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