飮食 漫步/식객유랑

현풍장 수구레 국밥 

초암 정만순 2014. 2. 5. 19:33

현풍장 수구레 국밥

 

 

장날 먹던 국밥의 추억…평일에도 손님

줄이어

수구레는 소의 가죽과 고기 사이의 부위로 딱히 고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계도 아니다. 소 한 마리에서 수구레는 약 2㎏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수구레는 약간 질긴데다 손질하기가 다소 힘들어 처음에는 버려지다시피 한 부위였다. 이제는 도축기술의 발달과 조리법이 개발되면서 전국의 5일장에 수구레 국밥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대구 달성군에서 제일 큰 전통시장은 현풍장이다. 5일 단위로 열리는 현풍장날에 가장 많이 손님들이 붐비는 곳은 단연 수구레 국밥집이다. 사전적으로는 수구레가 맞지만 이곳 현풍장에서는 ‘소구레’로 통한다. 장터 한복판에 다닥다닥 붙은 국밥집 거의가 ‘소구레’라 적힌 간판을 내걸고 손님들을 맞는다. 현풍장에서 수구레 국밥집은 30여 년의 전통으로 최고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그저 한 두 곳 식당이 상호도 따로 없이 주로 장날 위주로 손님을 맞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국밥집이 10여 곳 가까이 늘어난데다 장날, 평일 가릴 것 없이 손님들이 찾는다.

현풍장의 수구레 식당들은 국물에 밥이 따라나오는 수구레 국밥과 밥 대신에 삶은 국수를 말아먹는 수구레 국수가 기본메뉴. 손님들의 주문에 따라 수구레 무침이나 볶음도 내 놓는다. 수구레 국밥은 5천원, 국수는 4천원, 볶음은 1만원 씩을 받아 다른 음식에 비해 저렴한 수준이다.

수구레는 콜라겐과 엘라스틴이 많이 함유돼 있는 반면 지방이 거의 없고 차지며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웰빙 음식이다. 막상 입에 넣을 땐 비곗덩어리 같은데 꼬들꼬들함과 부드러움이 비계와는 확연히 다르다.

“확실히 따져 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손녀가 올해 23살이 된 것으로 치면 현풍장에서 30년 가까이 수구레 국밥을 팔았지.” 현풍장에서 수구레 국밥집의 원조격인 이상선(70) 할머니. 9년 전 베트남 하이퐁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며느리 호앙허항(31) 씨와 함께 국밥집을 꾸려나가고 있다. 현풍장 먹거리 골목 맨 끝 집 ‘신 현대식당’이란 상호를 달고 있지만 이제는 장터에서 ‘베트남 며느리 집’으로 더 잘 통한다.

처음엔 한국말이 서툴러 장에 나오는 것조차 꺼려했지만 이제는 본래 한국사람보다 더 유창하게 구사할 정도로 한국사람이 다 됐다. 현풍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손님들에게 정감을 주는 베트남 며느리는 이름을 ‘황수경’으로 바꿨다. 8살, 6살, 2살 등 3명의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우리 집 수구레 국밥은 소머리나 잡뼈 등을 푹 삶아낸 국물에 미리 손질해 둔 한우 수구레와 소 부산물인 선지와 무, 콩나물, 파, 고추, 마늘 같은 갖은 양념을 넣어 칼칼하게 끓여냅니더. 맛이요, 아예 쥑입니더.”
황 씨는 시어머니 대신에 수구레 국밥 레시피를 줄줄 외우듯 설명할 정도로 이젠 장터 국밥 주인이 다 됐다. 국밥에 들어가는 각종 음식재료도 황 씨가 시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척척 알아서 다 고르고 사서 댄다.
대구에서 추석 대목장도 볼 겸 고향인 현풍장을 찾았다는 김동화(62`수성구 신매동) 씨 부부는 “온 김에 수구레 국밥을 먹고 싶어 들렀는데 평소 자주 먹는 소고기 국밥하고는 수구레 국밥 맛이 또 색다르다. 식감이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좋다”고 했다.

이상선 할머니는 “내보다 며느리가 더 낫지. 몸도 재빠르고, 국물 맛내는 것도 그렇고….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지. 처음 베트남에서 올 때는 뭘 하겠나 싶었는데 우리 집 대들보가 다 됐어. 부모 섬기는 일도 잘한다”며 치켜세워준다.

황 씨도 시어머니를 아무 스스럼없이 ‘엄마’라고 부른다. 처음부터 시어머니는 이국만리에서 시집온 며느리에게 호된 시어머니 노릇은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딸처럼 대하자 싶어 호칭부터 그냥 ‘엄마’라고 부르라 했다고 한다. 이 고부는 인근 5일장인 창녕장날(3`8일)에는 창녕장에서 노점식 수구레 국밥집을 연다. 지난해 한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인 ‘1박 2일’ 전국 5일장 특집 중 창녕장 편에서 개그맨 이수근이 이 고부가 운영하는 국밥집을 찾아와 먹고 가는 바람에 창녕에서도 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방송에 나간 이후 창녕장 국밥집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찾는 손님들이 평소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그래서 창녕장날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내려간다. 황 씨는 “바쁜 장사일과 애들 키우느라 베트남에 있는 친정도 한동안 못 갔는데 일부러라도 짬을 내 다녀오고 싶다. 친정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 현풍장의 구수하고 담백한 수구레 국밥 맛을 보이고 돌아오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