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林 江湖/기타 무술

랑의 무예 - 한풀

초암 정만순 2022. 8. 16. 18:15

랑의 무예 - 한풀

 

자음과 모음 조합하듯 갖은 기술 만드는 ‘무술의 한글’

 

동아시아 고대사를 보면 대체로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선진문화가 이동하는 경로를 갖는다.

고대사 중에서도 상고시대, 즉 삼황오제 시대는 물론이고, 주(周) 이전 하은(夏殷)의 문화, 다시 말하면 당시 동이족이 개입한 문화에 대해서는 한국과 중국이 함께 이룩한 문명의 성격이 강하다.

 

문화란 돌고 도는 경향이 있어서 그 원류가 불분명한 경우도 없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크게 보면 한국에서 이주한 세력이 일본의 지배층이 되어 고대사를 이끌었고, 일본 왕가는 핏줄로 한국과 섞여 있다.

혈통뿐 아니라 고대문화의 한일관계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경우가 많다.

동아시아 무예사에서 ‘택견(태껸)-테고이(手乞)-태권(跆拳)’의 발음(언어학자는 能記라고 한다)이 유사한 것은 아무래도 범상치 않다.

문화의 끊임없는 교류를 말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의 택견은 그 옛날(신라 혹은 가야시대로 추정됨)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것은 오늘날 일본에서 테고이(手乞)로 남아 있다. ‘테고이’는 일본 고무예(古武藝)의 대표적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가라테 시연을 보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은 ‘태껸’을 떠올리고, ‘태껸이구먼!’이라고 했고, 그 발음으로 인해 한국의 무예가들은 일본의 가라테를 발판으로 다시 태권(跆拳·태권도)을 재창조해냈다.

물론 이 같은 창조에는 전통 택견이 큰 몫을 했다.

전통 택견은 태권도뿐만 아니라 합기술(대동류 유술)에 기술적 기반을 둔 ‘한풀’의 재창조에도 크게 기여한다. 이것이 무술의 본능이다.

한국의 태권도가 일본 가라테의 도움을 받은 반면에 일본의 대동류 및 합기도라는 것은 한국의 택견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테고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테고이 무예의 전통을 오늘에 되살려 1965년 재창조한 것이 ‘한풀’이다.

한풀은 1985년 택견을 만나면서 우리 고유의 정통성을 확보하게 된다.

‘한풀’은 한민족이 잃어버린 ‘고(古)무예’를 되살린 오늘의 무예이다.

이것을 두고 법고창신, 온고지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한풀’의 뜻은 ‘크고 바른 하나 되는 기운의 무예’이다.

크고 바르게 되자면 하나가 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하나 되는 기운의 무예’ ‘한 기운의 무예’이다.

‘한풀’은 ‘랑(郞)의 무예’라고도 한다.

‘랑의 무예’는 쉽게 말하면 ‘화랑도의 무예’라는 뜻이다.

‘한풀’은 대중적으로 보면 합기술(合氣術)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합기도(合氣道)라는 말이 일본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덕암의 무예를 순우리말로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의 고견을 들어 ‘한풀’(1965년 4월)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일제 식민시절엔 선진 일본문화가 물밀 듯이 한반도에 역류하여 들어왔는데 그 가운데는 오래전 우리에게서 흘러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들이 많다.

물론 그 옛날 흘러간 것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있다가 그대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 것은 없다.

그동안 일본이 자신의 문화로 갈고 닦은 것이다. 문

화란 결국 사용하는 자가 주인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소유를 무시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원류는 추적할 만하다.

그 속에 문화의 원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랑의 무예’도 그러한 경우이다.

흔히 우리는 ‘랑’(郞)을 ‘사내’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후대에 한자를 붙인 것이고, 그 이전에는 ‘더불어’의 뜻이고, ‘더불어 하나 됐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할 때의 랑, ‘너랑 나랑’할 때의 랑이 그 흔적을 가지고 있다.

 

‘랑의 무예’의 마지막 형태가 신라의 ‘화랑’이다.

그러고 보면 ‘아리랑’의 랑도 범상치 않고, 갓 결혼한 남자를 지칭하는 ‘신랑’의 랑도 예삿일은 아니다.

한민족은 어쩌면 ‘랑’을 지향하는 민족인 것 같다.

흔히 우리 고대문화의 원형은 천지인 사상이라고 한다.

‘랑의 무예’는 영(靈·넋)과 혼(魂), 몸뚱이(魄)가 하나 되는 것을 지향하는, 무예의 ‘인중천지’(人中天地)를 실천하고 있는 무예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신(神)은 예전에 ‘검’이라고도 했는데 이 ‘검’자도 심상치 않다. 왜 검이 신이고, 칼의 옛 이름이 검(劍)이고, 왕을 왜 임금(임검)이라고 하는가. 임금은 실은 ‘검임’의 말바꿈이다.

‘검’자에 ‘이다’ ‘되다’의 서술어가 붙어서 ‘검이 된’의 뜻에서, 다시 그것이 명사화되어 ‘검이 된 자’의 뜻이다. ‘검이 된 자’는 ‘임금’이고 바로 ‘랑이 된 자’를 말한다. 그 옛날의 지도자는 바로 ‘랑’이 되는 것이 필수과정이었던 것이다.

‘랑’이란 결국 오늘날 문무가 겸전된 자를 말한다.

그 무예의 전통이 가장 타락하여 구한말에는 ‘화랭이’가 되었고, 그래서 결국 나라가 망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일제 식민의 시절에 일본으로부터 ‘랑의 무예’가 조상을 찾아온다.

문화의 흐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DNA 같은 것이 있어서 제 조상을 찾는지도 모른다. 일본인의 이름에 유독 ‘랑(郞)’이라는 글자가 많은 것은 한국문화의 정수를 일본이 갖고 있는 것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한풀’이 처음 우리나라에 상륙할 때는 이름이 ‘대동류(大東流)’ 혹은 ‘대동류유술(大東流柔術)’, ‘야와라’였다. ‘한풀’이라는 이름을 지을 때 최현배 선생은 고민이 컸다.

주시경 선생이 훈민정음을 ‘한글’이라고 지은 기억을 되살려 ‘크고 바른’의 의미를 되살려 ‘한’자를 쓰고 나머지는 ‘기운’을 뜻하는 순우리말의 ‘풀’이라는 말을 보태 ‘한풀’이 탄생했다고 한다.

기운의 순우리말은 ‘풀’이다.

우리는 지금도 ‘풀이 죽었다’라는 말을 쓴다.

바로 기운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기’라는 말도 순우리말인데도 한자말로 ‘기(氣)’자를 많이 쓰기 때문에 ‘풀’자를 선택했다.

‘한풀’이 후일 동아시아에서 우리 문화의 독자성이나 차별성을 줄 것으로 짐작했음은 물론이고, 그때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다.

대동류는 ‘합기도’를 다룰 때 이미 소개한(세계일보 2010년 2월16일자) 덕암(德庵) 최용술(崔龍述·1899∼1986)에 의해 국내에 전해졌다. 결국 한풀은 대동류의 전통 위에 새롭게 정리 개발된 ‘전통적 창시무술’이 된다.

 

한풀은 최용술에게 가장 오랜 기간 수련을 하였고, 수제자 김정윤(金正允·1936∼)에 의해 탄생했다.

김정윤은 ‘한풀’을 창시하고 을지로에 ‘한풀수련소(밝터)’라는 간판을 내건 1965년 5월부터 2000년까지 신현배·이승희·김성열·정영태 등 100여명의 사범을 배출했다.

현재는 그를 잇는 신상득(申相得·48) 가승(스승에 가까이 다가간 제자라는 뜻의 순우리말)이 충무로에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신상득 가승은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합류하여 ‘한풀의 역사’를 밝히기 위해 일본 현지 답사를 통해 ‘랑의 환국’(2005년, 이채) 전3권을 집필하는 한편 한풀의 부흥을 위해 열을 다하고 있다.

그는 1982년 신학공부를 할 때 한풀수련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28년간 한풀에 몸담아왔다.

50년대까지 최용술의 대동류는 야와라·유술·합기유술·유권술·유은술·기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다가 1960년대 들어 최용술의 제자들에 의해 합기도·국술·한풀 등이 탄생한다.

이 중 합기도는 대한합기도·국술원·국제연맹합기도 등 큰 단체에서부터 수도관·용술관·정기관 등 작은 단체까지 다양하게 분파된다.

이러한 제 유파의 수장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인물이 바로 김정윤이다.

김정윤은 1960년대에 초반 20대의 나이로 ‘합기술’ ‘기도’라는 책을 펴냈으며, 또한 2000년대에는 택견의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였던 송덕기 옹의 시연을 담은 ‘태견원전’(한풀에서는 택견을 태견이라고 한다)이라는 책을 냈다.

당시 이 책은 한국 무술의 뿌리를 알려주는 것으로 무예계에선 저마다 전범으로 삼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풀’이 택견을 만나면서 한 단계 진화하고, 민족무술과 그 원류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택견과 한풀이 만나서 이룩한 문화의 확대재생산의 일종이고, 이는 택견과 한풀의 공동의 공일 것이다.

택견의 대명사인 품밟기는 상대를 어르는 기술이다.

공격하는 듯하면서 물러나고, 물러나는 듯하면서 공격하는, 상대를 종잡을 수 없게 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다. 택견의 여러 기술은 대동류와 통하는 것이 많았다.

택견의 과시(꽈시, 꺽과시)는 대동류의 야추노바쿠(野中幕)라는 관절기를 통칭하는 것이었다.

한풀의 화려한 관절기는 이것을 원류로 한다.

대동류의 혈(신경)차단기는 택견의 ‘물주’, 힘빼기(力의 拔)는 품밟기, 활갯짓에 해당하는 것이다.

대동류의 매발톱수(다카노쓰메카타)는 월정(月挺)이었고, 미키리(見切)는 택견의 눈재기였다.

김정윤의 스승, 덕암 최용술은 살아있을 제에 합기도 계통의 도주(道主)로 숭앙받았다. 실지로 그가 한국 무예계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한국 현대무술의 중흥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합기유술의 지도를 보면, 일본의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의 ‘아이키도’(合氣道) 계통이 있고, 일본의 대동류유술 계통이 있고, 그리고 가장 폭넓은 제자와 지지층을 거느리고 있는 최용술을 도주로 삼는 합기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기(合氣)라는 이름의 사용은 마치 합기도 계통 전부가 일본의 ‘아이키도’에서 전수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합기도인 가운데는 합기도의 이름아래 전해진 대동류의 무술이 다른 이름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일찍부터 있어왔다.

합기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 대동류계통의 무술로는 ‘한풀’ 이외에도 ‘국술’ 등 여러 창시무술이 있다.

이 가운데 대동류의 전통에 가장 충실한 무예가 ‘한풀’이다.

그러나 김정윤은 한풀을 창제하면서 대동류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는 우리 무예로의 재탄생을 주창하는 것이었다.

김정윤은 가장 최근(2010년 2월)에 낸 저서에서 덕암의 무예이름을 ‘大東武’(밝터)라고 명명하여, 한풀과 차별화를 기했다.

 



한풀의 기술은 참으로 방대하다. 최용술의 방대한 기술을 일정한 원리와 공식을 찾아내 정리한 기술이다. 흔히 격투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술인 손파람을 12기본기법으로 정리하였다. 12기본기법은 기본형·이동기술·공격기술·방어기술·공격방어기술로 나뉜다. 기본형은 몸맨두리라고 하는데 공격과 방어를 위해 취하는 기본자세로 겨룸새·투그림새·몸한새가 있다.

이동기술에는 걸음새·뜀새·구르기가 있고, 공격에는 지르기·후리기가 있고, 방어에는 걷어내기·비켜나기·채기·받아내기 등이 있고, 공방에는 몸풀어나기·태질(태지기) 등이 있다.

손파람은 대표적인 맨몸기술이며 이 중에서 맨손으로 하는 기술을 손따수라고 한다. 맨몸기술에는 이밖에도 다리로 상대를 차고, 넘기고, 꺾는 다리수와 가장 기술의 양과 폭이 큰 꺾과시(관절기술)가 있다. 꺾과시 기술만도 이루 헬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한풀에는 맨몸기술 외에 무기를 사용하는 무기술과 던지기를 하는 팔매가 있다. 무기술에는 목검을 사용하는 빌랑대와 검을 사용하는 검랑대, 막대기를 사용하는 지팡대가 있다. 팔매에는 사슬(쇠·가죽·천)과 활, 태(칼 던지기)가 있다. 한풀에 현전하는 대동류에는 보이지 않는 이런 폭넓은 기술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풀의 기술은 마치 ‘한글’이 자모음을 조합하여 글자를 만들 듯이 그렇게 무술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술의 한글이라고 할 수 있다.

한풀의 기술은 줄잡아 보면 손파람·꺾과시·빌랑대·다리수·풀달기술(기운을 닦달해서 상승·집중시키는 수련) 등 크게 5가지로 분류된다.

김정윤은 대동류가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고대무술이었고, 일본의 다케다 소카쿠(武田忽角源正義·다케다 소카쿠 미나모토노 마사요시)를 징검다리로 다시 한국의 최용술에 넘어온 것이라는 점, 이에 앞서 신라 화랑의 후예 ‘신라(시라기) 사부로 미나모토노 요시미쓰(新羅三郞源義光)’를 시조로 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대동류가 우리의 전통 무예와 어딘가에 연결점이 있을 것이라는 데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해왔다.

그것이 바로 한국의 택견이었다.

김정윤은 후쿠시마(福島) 아이즈(會津)를 비롯하여 일본 전역을 탐방하면서 ‘웅야’(熊野·구마노) 혹은 ‘우흑’(羽黑·하구로) 등 일본신사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무인상 ‘테고이(手乞)’상이 있음을 보게 됐다.

일본에서는 ‘테고이’를 일본 무술과 씨름의 원류로 보고 있다. ‘테고이’라는 일본 발음은 한국의 ‘택견’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는 일본탐방에서 도리어 우리의 신선교(神仙敎)의 전통을 그들이 잇고 있으며, 그들의 신도(神道)가 바로 그러한 전통의 연속임을 알았다. 말하자면 일본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고대의 문화가 남아 있었다. 테고이는 일본에서 발견한 ‘잃어버린 택견’이었다. 

오늘날 택견은 그 옛날 우리 화랑무술의 일부가 남아 있는, 마치 구한말에 놀이처럼 취급된 일종의 유실된 형태였는데, 그나마 무형문화재가 됨으로써 기사회생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것이 무예의 본능이다.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끈질긴 것이 무예이다. 이것은 또한 기(氣)의 전통이기도 하다. 기(氣)는 책으로 전해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반드시 실기로서, 실천으로서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武林 江湖 > 기타 무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혈기도(穴氣道)  (0) 2022.08.16
원구(圓球)의 무예 - 원화도  (0) 2022.08.16
東南亞 武術 - 시라트   (0) 2018.01.14
편술(채찍)  (0) 2017.12.01
천일취팔선권(天一醉八仙拳)   (0) 2017.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