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林 江湖/기타 무술

원구(圓球)의 무예 - 원화도

초암 정만순 2022. 8. 16. 17:54

원구(圓球)의 무예 - 원화도(圓和道)

 

 

춤추고 노래하고 하늘에 빌던 자연스런 몸짓을 무도로 체계화

 

한국 무술 가운데 가장 한국적이고 때로는 평범한 것 같은 무술이 원화도이다.

원화도는 특별히 어느 누구 한 사람, 또는 어떤 집단에만 은밀하게 비전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조상이 언제 어디서든지 해오던 아주 간단하고 작은, 그러나 긴요한 ‘삼무(巫, 舞, 武)’ 동작을 말하며 그 시원은 ‘비손’(비는 손)에 있다.

일상의 삶 속에서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두 손을 비비며 살아온 한민족. 지구상에서 가장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 한민족이다.

그래서 한민족은 문명권에서 살면서도 한 번도 먼저 남의 나라를 침공한 적이 없다.

그러한 수비적 자세는 때로는 역사에서 온갖 어려움을 불러오기도 했다.

 

수많은 외세의 침공, 그리고 가장 최근세사에서 일제의 강점과 식민통치, 남북분단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질곡 속에서 우리 문화의 정수는 부분적으로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단절의 아픔을 맛보았다.

무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한국적인 무예, 원화도의 부활은 한봉기(韓奉基) 선생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원화도는 한봉기 선생이 정리하기 시작하여 어언 30년에 이르고 있다.

원화도는 원의 회전과 공격과 방어를 하나의 동작으로 구현하는 전통 창시무술이다.

원화도는 1972년 3월에 출발하였고, 1976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한 선생은 통일교 문선명 총재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계의 선인들로부터 전수를 받았다고 한다.

한 선생은 명상수련 도중 한 사람 앞에 4수씩 3000명의 선인으로부터 1만2000수를 전수받았다고 한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 같지만 아마도 한 선생의 열성에 감복한 신선들이 도왔거나, 아니면 한 선생이 스스로 연구에 열중하다 보니 꿈에서도 스스로 현몽하게 되었을 것이다.

원화도의 이런 유래는 도리어 대중화하는 데 장애요인이 되기도 했지만 사실인 것을 어찌하랴.

서울 성동구 화양리 작은 셋집에서 숙식과 도장을 겸하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는데 어떤 때는 양식거리가 없어 굶기를 다반사로 하였다고 한다.

현재 세계원화도연맹 부총재로 있는 전기화(全基華)씨는 당시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어느 날 도장에 들렀는데 선생님은 며칠을 굶었는지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제대로 먹지를 못하고 힘든 무예를 연구하고 연마하였으니 민족무예의 복원이라는 사명감 없이는 한시도 끌어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봉기 선생은 원화도를 다 배우고 개발하는 데 약 6년이 걸렸다고 한다.

원화도의 기술은 본래 공격수 6000수, 상대수 6000수 등 총 1만2000수로 추정하고 있으나 현재는 8방향 5가지씩 총 40개(8×5)의 기본형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의 기본형 이전에 팔괘의 원리를 기본으로 한 기본형이 있었다.

팔괘를 기본으로 하는 기본형은 한 가지 기술로 짧게 구성되었으며, 방향은 다시 3방향으로 나누어 총 24방향(3×8)이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신바람의 민족이었다. 천지신명을 믿는 소박한 믿음의 동작이 어깨를 타고 온몸으로 흐를 때 희열을 이기지 못해 드러내는 것이 몸짓이요 신바람인 것이다.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것을 까마득히 잊은 듯하나, 언제라도 바람이 불기만 하면 ‘소리를 내는 갈대처럼’ 우리는 저절로 신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신바람은 더러는(평화로운 때) 춤으로, 더러는(위급할 때) 무도로 나타났으며, 더러는 어울려 노는 놀이로 나타났다. 예부터 가무를 좋아하던 우리 민족이 아닌가. 원화도는 춤추고 노래하고 하늘에 빌고 하던 우리 민족의 자연스러운 몸짓이 무도로 정리된 것이다.

그래서 원화도는 무당 무(巫)자 무도(巫道), 춤출 무(舞)자 무도(舞道), 그리고 호반 무(武)자 무도(武道)로 구성된다. 이른바 ‘삼무’이다.

삼무는 제1의 무도(巫道), 제2의 무도(舞道), 제3의 무도(武道)를 한꺼번에 이르는 말이다.

무도(巫道)란 ‘하늘을 아는 무도’로서 만상의 근원이 하늘에 있음을 아는 무도이다.

나아가 하늘의 조화와 순리를 따라 사는 삶을 말한다.

‘하늘을 안다’함은 곧 ‘하늘의 뜻을 안다’함이며, 그 하늘의 뜻이란 ‘널리 사람을 유익하게 함’인 홍익정신이다. 이것은 이기(利己)와 이타(利他)를 함께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이다.

우리의 옛 조상은 하늘로부터 왔다고 하여 하늘백성(天孫民族)이라 한다.

그러기에 하늘의 뜻을 알아 나라를 세울 때도, 백성을 다스릴 때에도 하늘의 뜻을 좇았다.

한 해를 여닫을 때도 감사와 반성으로 기원(祈願)했으며, 한 달과 하루를 보내고 맞음에도 하늘의 뜻을 따르려 기원했기에 제사(祭祀)지내는 제천민족(祭天民族)이라고도 했다.

이런 제1의 무를 오늘의 의미에서 특정 종교의 것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제2의 무도(舞道)란 ‘사람을 아는 무도’이다.

사람을 아는 무도(舞道)란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삶을 말한다.

공동체적 삶이란 너와 내가 따로 존재함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는 홍익(弘益)의 삶을 말하며, 우리 모두가 더불어 하나임을 말한다.

이를 나타내어 감사하며 축수(祝手)하는 신앙이 가무(歌舞)로 나타났으며 가무(歌舞;群舞)야말로 민족이 하나임을 자각하게 하는 생활(生活)이요 신앙(信仰)이었다.

제3의 무도(武道)란 순응과 조화, 절제와 규범을 말하는 무도이다.

순응(順應)과 조화(調和)라 함은 자연의 섭리에 대하여 경건함이요, 절제와 규범이라 함은 사람과 삶에 대한 엄중한 질서와 규범을 말한다.

이것은 바로, 이기(利己)와 이타(利他)의 공존을 위한 것으로, 결코 이기를 위하여 이타가 희생되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이타만을 위하여 이기 또한 무시되어서는 안 됨을 뜻한다.

언제 어디서든지 우리가 눈을 감으면 우리들 마음의 눈에 선하게 되살아 비쳐오는 여러 몸짓, 춤 같기도 무도 같기도 하며, 서로 어울려 노는 놀이 같기도 한 것, 이것이 어느 한 사람으로 출발했다면 이는 어리석은 말이 된다.

노래를 좋아하는 이는 소리꾼이 되었고, 춤을 좋아하는 이는 춤꾼이 되었으며, 무도를 즐긴 이는 무사가 된 것이리라.

원화도 작명의 ‘원화’(圓和)는 ‘여러 원(圓)의 어울림(和)’을 뜻하고, 도(道)는 ‘할 짓과 말 짓’을 구별함을 뜻한다.

원화도는 원(圓)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구(球)를 추구하는 운동이다.

무술을 하면 결국 신체를 움직여야 하고, 신체를 움직이는 것은 원구(圓球)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원화도는 운동되어지는 모든 형태가 원을 그리는 것과 같이 구성되어 진행되며, ‘수직의 원’과 ‘수평의 원’을 기본으로 하여 그 기울기의 변화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구(球)를 추구하게 된다.

구는 지속성·영원성을 갖게 하고, 이 구의 변화 즉, 회전방향(각도), 회전거리(모양), 회전속도, 그리고 힘의 강약에 의하여 여러 가지 공방의 형태가 나타난다.

인간의 행동양식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나를 기준으로 하면 ‘가는 움직임’과 ‘오는 움직임’,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말하면 ‘미는 움직임’과 ‘당기는 움직임’이다.

이것에 영원성을 부여하는 것이 원운동이 된다.

원화도의 기술이 그 원운동을 변화시키면 얼마든지 유도류와 같은 넘기기, 태권도류와 같은 치기, 차기 그리고 합기도류와 같은 관절죄기의 형태로 나타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원은 원화도 공방(攻防)의 기본 원리로서 공방의 모양이다.

모든 공방은 힘을 내뿜거나 끌어당김으로 이루어진다. 힘의 내보냄과 끌어당김이란 바로 생존의 원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 힘의 내보냄과 끌어당김, 또는 보내고 맞이함, 주고받음, 밀고 당김이 어느 한 순간에도 끊어짐 없이 영속(永續)되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을 보이는 선(線)으로 나타낸 것이 원이다.

원은 동작의 겉모양과 속모양, 그리고 그것들의 회전운동을 함께 나타낸 것으로 정원과 타원, 태극원을 포함하여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공방이 원 또는 타원, 태극원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무엇보다 우선될 일은 마음의 모양을 둥글게 하는 것이다.

화(和)란 어울림이다.

하나의 원에서 다른 원으로 옮겨가거나 옮겨올 때, 아무런 무리나 마찰이 없이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다. 어울림이란 음(陰)과 양(陽)의 조화, 강(剛)과 유(柔)의 조화를 말한다. 성급히 구는 상대에게는 느긋함으로, 느긋하게 구는 상대에게는 분주하도록, 힘을 위주로 하는 상대에게는 부드러움과 탄력으로 화(和)를 이루며, 발이 긴 상대에게는 짧은 동작으로 상대의 공격기지를 무너뜨린 다음 깊숙이 파고드는 방법 등이 화(和)이다. 이 화(和)를 제대로 이룰 때 더불어 이로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화란 스스로는 물론 상대와도 잘 어울림이다.

그러할 때 훌륭한 공방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공방 자체가 근본적으로 살상에 있지 않고 상대의 불의(不義)를 돌려 의(義)로 돌아오게 함에 있기 때문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고, 싸움에 임하게 될 경우에는 일격필살이 아닌 일격필활(一擊必活)의 정신으로 반드시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공방의 최종은 살상이 아니라 상생(相生)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화도의 궁극은 잘 어울려 사는 삶에 있다.

도(道)란 누구나 가고 오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길을 길답게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원화의 도란 길을 길답게 사용하므로 잘 주고 잘 받아 잘 어울려 사는 삶을 말한다.

따라서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상(傷)하게 한다는 논리를 원화도는 거부한다.

도(道)는 예(禮)와 통한다.

예(禮)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표현이다. 특히 무도에서 예(禮)는 생명과 통한다. 신뢰와 정성이 담기지 않는 예로서 시작된 무(武)는 생명을 다치게 한다. 무(武)에는 상해와 살상의 능력만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잡아 생명의 존귀함을 가르치고 실행케 하는 것이 도(道)이며, 도의 진정한 표현이 예(禮)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도(武道)의 참된 궁극은 ‘상생과 화합’이지 결코 ‘살상과 투쟁’이 아니다. 원화도의 궁극은 무(武)의 능력을 도(道)와 예(禮)의 경지로 정착시켜 이를 대중에 보급하여 서로 화합하고 공존(共存)하는 생활로 이끄는 데 있다. 따라서 무도(武道)의 궁극은 상생이어야만 한다.

원화도의 동작은 여럿이지만 실은 ‘비손=비는 손’에서 시작한다.

비손은 바로 원무(圓巫)이다.

예로부터 우리의 조상들이 하늘에 공(功)을 드릴 때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정성껏 비비는 제행(祭行)동작이다.

한 해와 한 달과 하루의 무사와 안일을 이 비손으로 기원(祈願)했다.

어쩌다 실족한 삶에 대하여도 이 비손으로 용서를 빌었다.

뿐만 아니라 나라의 평화와 안녕, 화합과 결속 그리고 반성과 다짐도 이 비손으로 축수(祝手)했으며, 삶과 죽음에도 이 비손으로 풀었으니 실로 비손이야말로 오랜 예부터 한민족에게 있어서 길흉화복(吉凶禍福)과 생노병사(生老病死)뿐만 아니라 인생사의 모든 문제를 맺고 푸는 열쇠요 믿음이며 신앙이었다.

비손에서 다스리기와 다스려 치기로 발전한다.

다스리기란 생기를 일으켜 신체상의 결함 부위를 바로잡아 기능과 순환을 잘되게 하기 위한 비손은 ‘쓰다듬기와 비비기’를 말한다.

다스려 치기라 함은 ‘다스림과 치기’의 두 동작을 말한다.

치기란 손으로 두드림, 동물이 새끼를 나아 퍼뜨림, 식물이 가지를 내돋게 함과 같이 생육의 의미를 지닌다. 다스리기와 다스려 치기를 하기 위해서는 비손으로 ‘정심’(正心)하여 생긴 마음의 힘을 비손에 모아 ‘생기(生氣)손’이 되게 하여 신체상 필요로 하는 부위에 보내어 생기를 보내어 정기(精氣)를 북돋운다는 뜻이다.

이는 원화도의 몸 풀기의 기본 동작이다.

비손에서 춤사위로 발전하는 것이 원화도의 원무(圓舞)이다.

비손에서 양어깨를 타고 흐르는 동작은 춤사위와도 같아서 마음속으로부터의 신명(神明)을 불러 몸 밖으로 표출해 낸다.

비손에서 공방(攻防)으로 이어지는 원무(圓武)가 된다.

원무는 비손에서 이루어지는 원의 회전을 공방으로 부려 썼을 때를 말하며, 이를 회전공방이라 한다.

회전공방은 원화도에서 행할 수 있는 모든 동작을 가능케 하는데, 치기와 받아치기, 넘기기와 차기, 관절죄기와 봉 동작이 그러하다.

원(또는 원의 회전)은 꺾이는 각(角)이 없고 오직 360도 각에서 공방을 동시에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방어이면서 공격이고 또한 공격이면서 방어인 것이 일반 무도의 ‘직선 왕복형’의 동작과 큰 차이가 있다.

치기와 받아치기는 상해의 위험이 따르므로 수련 차원(상대에 대한 배려와 보호)에서 실행토록 하며, 다스려 치기의 방식으로 함이 유익하다.

다스려 치기는 공방적 요소와 보건과 놀이적 성향을 함께 느끼며 수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습은 충분히 하되 상해의 위험에서는 절대적으로 안전하다.

이때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은 ‘해야 할 것’(생각과 행위)은 반드시 하되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결코 하지 않아야 상대를 지키고 나를 제대로 지킬 수 있다.

무도 수련의 궁극의 목표는 상생(相生)이어야 하며, 보편적인 삶을 위한 무도만이 진정한 무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도(武道)란 무엇인가?

무(武)란 살상의 꾀하는 힘과 칼과 같다.

도(道)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케 하는 지혜이다.

지혜란 종과 횡을 상통케 하는 무한의 이치며, 상생하는 무궁의 조화이다.

이는 생명의 궁극이다.

그렇게 보면 삼무인 원무도는 없을 무(無)자를 보태 ‘사무(巫, 舞, 武, 無)’가 되는 셈이다.

없을 무(無)자는 자기를 비우는 것이며, 자기를 세상의 가장 작은 점으로 만드는 것(無所其內)이며, 자기를 세상의 가장 큰 원으로 만드는 것(無所其外)이다.

현재 세계원화도연맹본부는 경남 함안군 칠원면 장암리 902번지에 있으며, 1500여평의 부지에 실내 및 야외도장을 갖추고 있다.

지난 2월 작고한 한봉기 선생의 뒤를 아들 한형석 사범이 잇고 있다.

한편 서울(봉천동)과 전주(중화산동)에 지부가 있으며, 경기 가평군 설악면 소재 통일교의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가평교육원)에서는 전봉기씨가 가르치고 있다.

원화도 가평수련원에는 문선명 총재의 휘호 ‘신인지관계(神人之關係), 부자지인연(父子之因緣)’(1987년 9월 10일 서명)이 걸려 있다.

미국, 일본, 아일랜드, 독일, 오스트리아, 리투아니아 등 15개국의 해외지부에는 1000여명의 수련생이 있다. 한봉기 선생의 작고로 제2기를 맞고 있는 원화도의 발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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