飮食 漫步/요리

음식디미방(요리서적)

초암 정만순 2021. 8. 4. 17:09

음식디미방

 

 

1670년경

[ 閨壺是議方 ]

 

목차

  1. 장계향의 당부
  2. 400년 전의 진귀한 음식 조리법 146가지
  3. 『음식디미방』에 기록된 음식 내용
  4. 어머니의 어머니에게서 내려온 비법, 맛질방문

조선시대의 식품 조리서는 주로 남성에 의해 한문으로 쓰였고, 중국의 문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경우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당대 여중군자(女中君子)로 불릴 정도로 덕망이 높은 여성이, 오랫동안 가정에서 실제로 만들어왔거나 외가에서 배운 조리법 백여 가지를 후손에게 전해주기 위해, 그것도 많은 여성들이 쉽게 읽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한글로 정리한 책이 있었다.

1670년(현종 11년)경에 정부인 안동 장씨라 불리던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 남긴 『음식디미방』이다.

 

가로 18cm, 세로 26.5cm 크기 종이에 표지 포함 30장의 책으로, 표지에는 『閨壼是議方(규곤시의방)』이라는 한자 제목이 붙어 있고 본문 첫 줄에 한글로 ‘음식디미방’이라 적혔다.

『규곤시의방』이라는 제목은 추후 자손들이 격식을 갖추기 위해 붙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규곤(閨壼)은 여자들이 거처하는 안방을 이르니 ‘부녀자들의 길잡이’ 정도로 풀이해볼 수 있겠다.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라는 말은 찬자가 직접 지은 것으로,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란 뜻이다.

 

찬자인 안동 장씨는 조선 중기 학자인 경당 장흥효(敬堂 張興孝, 1564~1633)와 안동 권씨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시와 서예, 문학에 뛰어났다 한다.

13세에 지은 「학발시(鶴髮詩)」 등의 작품도 알려져 있다. 19세(1616년, 광해군 8년)에 석계 이시명(石溪 李時明)과 혼인하였고, 43세가 되던 1640년 지금의 재령 이씨 종가가 있는 경북 영양군 석보면으로 이주하였다. 슬하에 6남 2녀를 두었으며 그중 이휘일(李徽逸)과 이현일(李玄逸)을 학행으로 이름난 인물로 키워냈다. 이현일이 이조판서에 오르면서 안동 장씨는 정부인(貞夫人)이 되었다.

 

이현일이 쓴 『정부인 안동 장씨 실기(貞夫人 安東 張氏 實記)』에는 안동 장씨 평생의 자취를 적은 글과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안동 장씨가 출가하여 64년 동안 공경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을 극진히 섬기며 존경하였고, 자손들을 훌륭하게 길러내었다며 그 공덕을 기렸다. 재령 이씨 문중에서는 후손들이 신위를 영구히 사당에 두고 지내는 불천지위(不遷之位) 제사를 모시고 있다.

 

『음식디미방』은 우리 옛 조리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책이지만, 얼마 전까지도 찬자의 이름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던 2002년, 안동 장씨 신위 뒷면에 ‘계향’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음이 밝혀졌고, 2012년 ‘장계향’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이후 학계에서 다양한 연구가 발표되며 삶이 재조명되었고 위대한 어머니이자 걸출한 여성 인물로 주목받게 되었다.

1997년에는 재령 이씨 후손인 소설가 이문열이 『선택』이라는 소설에 안동 장씨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 시대 여성의 삶을 소개하기도 했다.

 

장계향의 당부

 

표지 안쪽에는 당나라 시인 왕건(王建)의 신가낭(新嫁娘, 새색시)이라는 시가 적혀 있다.

三日入廚下 洗手作羹湯
未諳姑食性 先遣小婦嘗

시집간 지 사흘 만에 부엌에 내려가
손을 씻고 국을 끓이네
아직 시모의 식성을 알 수 없으니
소부를 시켜 먼저 보내드려 맛보시게 하였다

조심스럽게 음식을 준비하는 며느리의 긴장감이 나타난 이 시를 통해 안동 장씨는 정성과 배려를 담아 음식을 준비하는 며느리의 몸과 마음가짐을 보여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뒤표지 안쪽에는 이 책을 다 쓴 후 자손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글이 적혀 있다.

『음식디미방』 표지자손들이 격식을 갖추기 위해 ‘규곤시의방’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표지 안쪽 면에 적힌 시며느리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에 대해 적혀 있다.

책 맨 뒷부분에 책이 상하지 않게 보관하라는 당부의 글이 쓰여 있다.

이 책을 이리 눈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라.
딸자식들은 이 책을 베껴 가되 가져갈 생각을 말며
부디 상치 말게 간수하여 쉬이 떨어버리지 말라.

이런 당부의 말을 남긴 지혜와 또 삼백 년이 넘도록 그 말을 지킨 후손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음식디미방』을 펴볼 수 있게 되었다.

 

400년 전의 진귀한 음식 조리법 146가지

 

책의 개괄적인 구성은 면병류와 어육류를 포함한 전반부와 ‘주국방문’이라 하여 술과 식초를 다룬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 뒷부분에 각각 아무것도 쓰지 않은 종이 3장씩을 두어서 쉽게 구분이 된다.

이 여분의 종이는 추가로 음식 조리법을 적으려고 남긴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모두 146종의 음식 조리법이 수록되었다. 전반부에는 국수와 만두, 떡, 과자 등 곡물 음식이 포함된 면병류(麵餠類) 18종, 어육류로 분류한 음식 37종, 따로 분류한 용어는 없지만 채소 음식과 식품 저장법 20종과 맛질방문이라고 표기된 음식 17종이 있다.

후반부에는 51종의 술 양조법과 3종의 식초를 담그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에 등장한 발효떡인 상화(霜花)의 구체적인 조리법이 문헌상 처음으로 설명되었다.

지금의 다식 만드는 법과 달리 오븐에 굽듯 기왓장에서 굽는 다식법도 소개되어 있다.

 

다양한 육류 조리법도 나오는데 개장꼬지느르미, 개장국느르미, 누런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등 다양한 개고기 조리법이 적혀 있고, 당시에도 귀했을 법한 재료인 곰 발바닥을 이용하는 웅장 조리법과 훈연에 의한 고기 저장법도 소개되어 있다.

 

『음식디미방』에는 느르미로 대구껍질느르미, 개장꼬지느르미, 개장국느르미, 동아느르미, 가지느르미가 나온다. 이 시대의 느르미는 재료를 익혀 꼬치에 꽂고 밀가루즙을 걸쭉하게 만들어 끼얹는 조리법이었다. 1800년대부터는 이런 느르미가 사라지고 재료를 꼬치에 끼워 밀가루와 달걀 물로 옷을 입혀 지지는 누름적으로 바뀐다. 이 책에 수록된 잡채도 여러 가지 채소를 볶아 밀가루와 된장을 푼 즙에 버무리는 것으로, 지금의 당면이 들어가는 잡채와는 많이 다르다.

 

마른 해삼, 마른 전복, 자라, 꿩, 참새, 곰 발바닥 등 오늘날 흔히 쓰이지 않는 재료들의 손질법이나 조리법도 많이 등장한다.

고추가 식재료로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이전 시기여서 고추가 쓰이지 않았으며, 매운맛을 내는 조미료로 천초와 후추, 겨자 등이 사용되었다.

 

 

『음식디미방』에 기록된 음식 내용

 

분류음식명면병류어육류저장법 및 기타 음식맛질방문주류 및 초류

면, 만두법, 세면법, 토장법 · 녹도나화, 착면법, 상화법, 수교의법, 증편법, 석이편법, 섭산삼법, 전화(화전)법, 빈자법, 잡과편법, 밤설기법, 연약과법, 다식법, 박산법, 앵두편법
어전법, 어만두법, 해삼 다루는 법, 대합, 모시조개 · 가막조개, 생포 간수법, 게젓 담그는 법, 약게젓, 별탕(자라갱), 붕어찜, 대구껍질느르미, 대구껍질채, 생치침채법, 생치잔지히, 생치지히, 별미, 난탕법, 국에 타는 것, 소고기 삶는 법, 양숙, 양숙편, 족탕, 연계찜, 웅장, 야제육(멧돼지), 가제육(집돼지), 개장, 개장꼬지느르미, 개장국느르미, 개장찜, 누런 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고기 말리는 법, 고기 말려 오래 두는 법, 해삼 · 전복, 연어란(연어알), 참새
복숭아 간수법, 건강(말린 생강)법, 수박 · 동아 간수법, 가지 간수법, 동아느르미, 동아선, 동아돈채, 동아적, 가지느르미, 가지찜 · 외찜, 외화채, 연근채 · 적, 숙탕, 순탕, 산갓침채, 잡채, 동아 담는 법, 고사리 담는 법, 마늘 담는 법, 비시나물 쓰는 법
청어젓갈, 설류탕, 숭어만두, 수증계, 질긴 고기 삶는 법, 닭 굽는 법, 양 볶는 법, 계란탕, 난면법, 별착면법, 차면법, 세면법, 약과법, 중박계, 빙사과, 강정법, 인절미 굽는 법
주국(술과 누룩)방문, 순향주법(술독, 술 빚는 법, 주의해야 할 점, 술 빚어 놓고 주의해야 할 점), 삼해주(스무말비지), 삼해주(열말비지), 삼해주(2), 삼오주(2), 이화주누룩법, 이화주법(한말비지), 이화주법(다섯말비지), 이화주법(2), 점감청주, 감향주, 송화주, 죽엽주, 유화주, 향온주, 하절삼일주, 사시주, 소곡주, 일일주, 백화주, 동양주, 절주(2), 벽향주(2), 남성주, 녹파주, 칠일주, 두강주, 별주, 행화춘주, 하절주, 시급주, 과하주, 점주, 점감주, 하향주, 부의주, 약산춘, 황금주, 칠일주, 오가피주, 차주법, 소주(2), 밀소주, 찹쌀소주, 초 담그는 법, 초법, 매실초

 

※ 괄호 안의 숫자는 같은 요리를 만드는 방법의 수를 표기함
출처: 궁중음식연구원

 

어머니의 어머니에게서 내려온 비법, 맛질방문

 

본문 속에는 음식명 아래 ‘맛질방문’이라고 표시한 음식 17가지가 나온다.

맛질방문은 맛질 마을의 조리법을 말하는데 맛질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은 여러 곳이 있다.

그중 장계향과 연관이 있는 곳은 외가 안동 권씨 집성촌인 예천의 맛질과 봉화의 맛질인데, 장계향 부모의 족보나 행적을 추적해나가다 장계향의 외가가 봉화의 맛질(지금의 경북 봉화군 명호면 일대)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봉화의 맛질은 음식 맛이 좋은 고을이라는 뜻의 ‘미곡(味谷)’에 유래를 두고 있어 『음식디미방』에서 말한 맛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음식 설명에 붙은 ‘맛질방문’이란 표시는 그녀의 외가나 친정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음식 조리법을 소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딸들에게 이 『음식디미방』의 내용을 베껴 가라고 당부했으니 어머니의 어머니에게서 내려온 비법은 아마 시집 간 딸들에게도 이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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