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정경연의 풍수기행

옥천 중봉 조헌 묘 풍수

초암 정만순 2021. 4. 20. 07:50

옥천 중봉 조헌 묘

 

산과 물이 음양의 조화 이뤄

 

 

임진왜란 때 고경명, 김천일, 곽재우와 함께 4대 의병장의 한사람인 중봉 조헌(1544~1592)의 묘는 충북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산63-1에 있다.

조헌의 본관은 백천(白川)이다.

백천조씨가 명문으로 소문난 것은 조헌이 문묘에 배향되었기 때문이다.

문묘(文廟)란 공자의 사당을 말하고, 배향(配享)은 문묘에 신위를 모시는 것을 말한다.

문묘배향은 신라 성덕왕 16년(717) 왕자 김수충이 당에서 공자와 10철·72제자의 화상을 가져와 국학에 안치시키면서부터 시작하였다.

문묘에는 공자를 정위로 하여 4성(四聖: 안자·증자·자사·맹자), 공자의 뛰어난 10명의 제자인 공문십철(孔門十哲: 안연·민자건·염백우·중궁·재아·자공·염유·계로·자유·자하), 송나라 유학자인 송조6현(宋朝六賢: 정호·주희·주돈이·정이·소옹·장재), 우리나라의 동방18현(東方十八賢: 설총, 최치원, 안향 안유, 포은 정몽주, 사옹 김굉필,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하서 김인후, 율곡 이이, 퇴계 이황, 우계 성혼, 사계 김장생, 중봉 조헌,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남계 박세채)을 배향하였다.

유학을 숭상했던 조선시대에는 “정승 10명이 대제학 1명에 미치지 못하고, 대제학 10명이 문묘배향 1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문묘배향 인물의 후손들이 가문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갖는 이유다.

 

 

조헌은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에게서 배웠다.

조헌의 집은 매우 가난하여 추운 겨울에도 해진 옷과 신발을 신었지만 멀리 떨어진 글방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고 한다.

명종22년(1567)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외골수 유학자인 그는 선조가 절에 향을 하사하는 것을 반대하다 삭탈관직 당하기도 했다.

동인인 정여립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도끼를 들고 대궐에 가서 상소를 올렸다.

도끼 상소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차라리 도끼로 죽여 달라는 뜻을 담고 있다.

동인을 모함했다는 죄로 길주에 귀양 갔는데 선조 22년(1589) 정말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어났다.

귀양에서 풀려난 그는 옥천에 내려가 율곡의 학문을 계승한다는 뜻의 ‘후율정사(後栗精舍)’를 짓고 제자 양성과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는 곧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영규대사가 이끄는 승병과 합세하여 금산에서 700 의병으로 적의 대군과 싸우다 모두 전사하였다.

옥천의 유림과 주민들이 의병들의 주검을 거두어 한 곳에 합장하고 칠백의총이라 하였다.

조헌의 유해는 동생인 조범이 별도로 수습하여 옥천군 도리동에 안장했다가 인조 14년(1636)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조헌은 영조30년(1754)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되었다.

 

 

 

이곳의 산맥은 속리산에서 안성 칠장산까지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 구룡산(549m)에서 비롯된다.

구룡산에서 남쪽으로 금적산(652m)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금적지맥이라고 한다.

금이 쌓여 있다는 이름을 가진 금적산에서 출발한 산맥이 듬치재를 넘어 이곳 주산인 하마산(350m)을 세웠다.

하마산 중심으로 내려온 맥이 현무봉을 반듯하고 수려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세고 험한 산세를 순한 산세로 바꾸었다.

기가 세고 험한 것은 산이 높고 암석이 많은 것이고, 순하다는 것은 암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무봉에서 묘지까지 이어진 산줄기를 입수룡이라고 한다.

그 모양이 갈지(之)자로 변화가 활발하다.

입수룡의 변화 정도에 따라 혈의 크기를 판단한다.

빠르고 기세 있게 내려온 입수룡 상태로 보아 보통 자리는 아니다.

혈장의 필수 조건인 입수도두, 선익, 순전도 분명하다.

묘 아래로는 하수사가 좌측에서 우측으로 뻗어 혈장을 지탱해준다.

묘아래 물은 우측에서 좌측으로 흐르니 산과 물이 음양조화를 이루는 땅이다.

주변 산이 높으면 혈도 높은 곳에 위치하는 법이다.

조헌의 생전 삶처럼 그의 묘도 산과 물이 모두 원칙에 맞는 자리에 있다.

묘가 그 사람의 생전 삶을 닮고 있어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