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정경연의 풍수기행

영월 김삿갓 묘 풍수

초암 정만순 2021. 4. 20. 15:13

영월 김삿갓 묘

 

'산고곡심'의 흉지… 자손이 끊기는 절손 묘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1807~1863)의 묘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897-2에 있다.

김병연의 묘가 발견되고 지역이 외부에 알려지자 영월군은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09년 면의 명칭을 하동면에서 김삿갓면으로 바꾸었다.

본래 하동은 상동에서 발원하여 중동을 지나온 옥동천이 남한강과 합류하는 곳이다.

남한강을 따라 내려가면 단양과 충주, 여주, 이천, 양평을 지나 한양으로 갈 수 있다.

옥동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십승지로 알려진 상동이다.

숨어살면서도 외부 소식은 접할 수 있는 지역이다.

김병연은 안동김씨로 순조 7년(1807) 경기도 양주에서 김안근과 함평이씨 사이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조부는 선천부사인 김익순이다. 다섯 살이 되던 해인 순조11년(1811) 12월 평안도에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정감록사상을 이념으로 삼아 일으킨 대규모 반란이었다.

거병한지 열흘 만에 가산·곽산·정주·선천·철산 등 청천강 이북 10개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 과정에서 가산군수인 정시는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러나 선천부사 김익순은 무관 출신임에도 스스로 자기 몸을 묶은 뒤 항복해 버렸다.

홍경래의 난은 불과 5개월 만인 이듬해 4월에 진압되었다.

그러자 김익순은 마치 자기가 싸운 것처럼 꾸미기 위해 반란군 우두머리 김창시의 목을 1천 냥에 샀다.

그러나 돈을 지불하지 않아 들통이 나고 말았다.

김익순은 곧 처형되었고 그의 가문은 멸족의 위기에 빠졌다.

김병연의 아버지 김안근은 화병으로 죽고, 김병연은 형 김병하와 함께 하인 김성수의 도움으로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였다.

다행히 안동김씨가 세도한 탓에 얼마안가 멸문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었다.

어머니 함평이씨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강원도 영월 산속에 들어가 살았다.

그럼에도 자녀들에게 글공부를 시켰다.

김병연은 십대에 사서삼경을 통달하였으며 특히 시 짓는 재주가 특출하였다.

20살이 되던 해 영월 관아에서 백일장이 있었다.

여기에서 뽑히면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마침 시제가 ‘가산군수 정시를 찬양하고 선천부사 김익순을 규탄하라’는 것이었다.

김병연은 김익순이 자기 조부인줄도 모르고 ‘너의 치욕스러움은 만 번 죽어 마땅하다’며 통렬하게 질타하는 시로 장원급제하였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소식을 알리자 어머니는 기뻐하기는커녕 눈물을 흘리며 숨겨왔던 집안내력을 이야기 해주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이야기였다.

김병연은 희망이 없음을 알고 좌절하였다.

또 조부를 욕하였던 것에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다.

하늘을 쳐다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홀어머니와 아내와 어린 자식을 남겨둔 채였다.

삼천리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상류사회를 풍자하는 시를 짓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읊었다.

그렇게 한평생을 보내다 1863년 57세의 나이로 전라도 동복(화순)에서 객사하였다.

그의 시신은 차남인 김익균이 거두어 영월 집에서 가까운 노루목에 묻었다.

 

 

김삿갓은 떠돌다 상가 집에서 얻어먹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서 만난 지관들을 신날하게 조롱하곤 하였는데, 조지사(嘲地師)라는 시가 전한다.

지사를 비웃는 내용이다.

“가소롭다 용산에 사는 임처사여, 늘그막에 왜 풍수학을 배웠는가, 두 눈으로 천개 산봉우리를 꿰뚫어 보고, 두발은 만군데 산골짜기를 걸어 다녔겠지, 환히 드러난 하늘 이치도 미처 알 수 없는데, 깜깜한 땅속 이치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집에 가서 국화주나 얼큰하게 마시고, 달이 뜨거든 파리하게 여윈 마누라나 안아주게”

김삿갓이 살아있다면 왜 풍수를 무시하다 자손을 절손시켰냐고 묻고 싶다.

그의 묘는 맥이 미약한데다 물은 반배하며 급류로 흐른다.

안산은 그런대로 반듯한 것을 취하고 있지만 산이 높아 오히려 기에 눌린다.

풍수에서 피해야 할 곳은 산고곡심 즉,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은 곳이다.

김삿갓 묘는 바로 그런 곳에 있고 더구나 서북향이다.

행여 김삿갓이 유명하다 해서 그의 묘까지 명당이라고 우기는 풍수학인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