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풍수지리

十勝之地 풍기 금계촌

초암 정만순 2021. 1. 23. 07:28

十勝之地 풍기 금계촌

 

 

 

▲ 십승지로 알려진 풍기 금계리 일대.

가운데 높은 능선이 주맥이다.

이 맥은 멀리 풍기읍 시가지까지 흘러간다.

금계촌은 인근 욱금리와 삼가리를 아우르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주맥 능선 오른쪽에 보이는 고개가 삼가리로 가는 길이다.

 

▲ 금계촌을 나타낸 십승지 지도.

사방으로 소백산이 둘러싸고 있다.

통로는 오직 물이 나가는 수구쪽 뿐이다.

 

 

십승지=

삼재(三災), 전쟁이나 흉년, 전염병 등이 돌아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땅으로, 일상 생활터전과는 달리 천재지변을 피할 수 있는 대표적인 열 곳을 말한다.

지형이 험준한 태백산과 덕유산 사이에 절반이상이 분포한다.

십승지는 조선후기 크게 유행했던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의 핵심내용 중의 하나로, 여러 비결서(秘訣書)에 모두 60여 곳이 수록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명이 구체적으로 표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고증하기가 쉽지 않다.

그 중 풍기 차암 금계촌(豊基 車岩 金鷄村)은 그 동안의 연구결과로 인해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인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정감록은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회자되는 책이다.

소설로, 논문의 주제로 이 만큼 관심을 끄는 책도 아마 드물게다.

'감결''남사고산수십승보길지지'등 전해져오던 여러 비결서들을 모아 1920년대에 한권으로 묶어 통칭 '정감록'이라 불리기도 한다.

 

잦은 외적의 침입과 끝없이 이어지는 흉년, 거기에 탐관오리들의 횡포는 조선 후기의 민중들에게 희망 보다는 암울함을 안겼다.

이들 민중들의 염원을 충족시켜준 게 정감록이다.

지긋지긋한 조선왕조의 몰락과 새 지도자의 탄생, 좋은 세상을 기원하며 힘든 세상을 잠깐 등질 수 있는 이상향의 제시는 이들에게 삶의 새 활력소가 됐을 지도 모른다.

 

정감록의 기원은 평안도 지역이었을 것이라는 게 일반론이다.

조선왕조의 서북지방 홀대와 잦은 대륙과의 마찰, 때맞춰 계속 된 가뭄 등은 자연스레 이상향을 꿈꿀 수밖에 없었을 거란 얘기다.

19세기초 홍경래의 난이 좋은 예다.

좀 더 나은 삶을 원했던 그들은 그 이상향의 땅을 찾아 남쪽으로 이주했다.

그것도 몸을 숨기기에 적당한 산간을 찾았다.

실감나게도 십승지로 꼽히는 지역엔 지금도 그들의 후손들이 많이 거주한다.

 

십승지의 특징은

첫째로 사방이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거다.

외부와의 차단, 좋은 세월을 기다리기엔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

그러기에 통로는 단 한 곳이 된다.

통로라 해도 병뚜껑처럼 좁다.

이런 지형은 안에선 밖의 동정을 알 수 있지만, 밖에선 마을이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그저 가파른 능선만이 보일 뿐이다.

 

다음으로 물이 흘러야 한다.

자손대대로 이어살기엔 다소 미흡하지만 새 세상이 올 때까지 의식주는 해결돼야 한다.

그러자면 자연히 얼마간의 논밭이 필수적이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지역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전략적으로 무가치한 곳도 주요 조건이 된다.

그만큼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십승지는 양기(陽基) 풍수이론, 즉 취락입지 조건엔 대체로 어긋난다.

발전보다는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요, 피난과 자손을 보존할 수 있는 땅이란 얘기다.

 

풍기 금계촌은 십승지 중에서 으뜸으로 꼽힌다.

주위 산세를 보면 그 조건에 딱 들어맞기도 하다.

사방으로 소백산의 험준한 능선들이 둘러싼다.

오직 전면의 물이 나가는 한 곳만이 통로가 된다.

거기에다 적당히 논밭이 있어 의식주 해결에도 문제가 없다.

죽령으로 통하는 길이 인근을 지나도 백호 쪽에 긴 능선이 있어 마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금계촌을 지금의 풍기읍 금계리와 욱금리, 삼가리를 아우르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제법 넓은 명당이 있는 금계리와는 달리, 소백산 등산의 시발점 중 한 곳인 삼가리는 전혀 딴판이다.

좁은 V자형 협곡에 바람소리만 매섭다.

그러나 그곳엔 소백산이 있다.

넉넉한 소백산이 품은 나무열매, 갖가지 나물 등을 무한정으로 인간에게 안긴다.

그러기에 세상사에 찌든 육신을 한때나마 이런 곳에서 재충전해 봄직도 하다.

십승지를 음미하면서 말이다.

격암 남사고는 소백산을 '사람을 살리는 산(活人山)'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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