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냉증 - 침구 및 약물요법
수족냉증(手足冷症)은 말 그대로 손발이 냉한 증상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손발이 차고 시리다는 개념으로만 이해한다면 곤란하다.
병변(病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신 증상을 살펴야 한다.
수족냉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위(脾胃) 기능과 심장 기능이 약하다.
팔과 다리를 사말(四末)이라고 하는데, 전통의학에서는 비주사말(脾主四末)이라고 하여 수족냉증이 비위의 기능과 직결되어 있다고 본다.
또한 심장이 약하면 동맥의 박동과 순환이 약해져서 사지 말단까지 밀어내고 끌어 올리는 기능이 약해지므로 손발이 냉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 극심한 저혈압이나 빈혈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노인들이 극심한 수족냉증을 호소할 때는 사지의 동맥경화를 살펴야 한다.
그' 밖에도 갑상선기능저하증이나 심인성(心因性) 증상도 살펴보아야 한다.
오랜 임상을 바탕으로 살펴보자면, 수족냉증은 선천적으로 비위 기능이 약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이런 사람들은 수족냉증과 더불어 대부분 몸이 수척하고 얼굴이 창백하다.
또한 복진(腹診)을 해 보면, 배꼽 주변이 딱딱하게 굳어 냉적(冷積)이 형성되어 있다.
또 입이 짧아서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고, 늘 피곤함을 호소한다.
이때 단순히 수족을 덥혀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섭생과 심리 상태까지 바로잡아 주어 삶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야 한다.
침구 요법
대부분의 병증에서도 온침(溫鍼)의 위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지만, 수족냉증에는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한다.
전체 치료와 국소 치료를 병행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환자들에게서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단, 끈기가 필요하다.
전체 치료는
등에 있는
대추, 신주, 신도, 신당, 고황, 격유, 간유, 비유, 신유, 회양 혈에 온침한다.
복부에서는
중완, 신장, 영허, 활육문, 기해, 관원, 귀래 혈에 온침한다.
사지에서는
백회, 양로, 신문, 음시, 지기, 대도, 연곡, 팔사, 팔풍, 양계, 양지 혈에 온침한다.
이상 중요한 혈(穴)들을 나열하다 보니 많은 혈 자리들이 기록되었는데, 실제 임상에서는 상기의 모든 혈들을 한꺼번에 자침하지는 않는다.
대신 체력과 증상을 감안하여 자침 횟수와 혈수(穴數)를 가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족냉증과 더불어서 심한 빈혈과 저혈압이 병행해서 나타난다면, 침구 혈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
또 자극도 상당히 신중하게 하여 약한 자극을 주는 것이 원칙이다.
각 분야의 침구 전문가들 중에서 자신의 침법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가끔 있다.
예를 들어 오행침(五行針)을 전문으로 하는 분들은 심정격(心正格)이나 방광승격(膀胱勝格) 같은 처방을 선호한다.
또한 이침(耳針)을 하는 분들은 이침이 최고라고 할 것이요,
수지침을 하는 분들은 수지침이 최고라고 주장할 것이다.
어쨌든 “꿩 잡는 게 매”라고 했듯이 치료만 되면 그것이 최고다.
하지만 임상을 하다 보면 어느 한 분야의 전문 치료에만 집착하는 것보다는 근본 원인을 찾고 전체적인 안목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약침요법, 매선침요법, 흡각요법, 반지요법, 요가요법, 절요법 등을 가감하여 응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노인들이 동맥경화로 인한 수족냉증이라면 지체하지 말고 반드시 흡각요법을 시행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기존 의자(醫者)들의 실력에 온침을 꼭 활용해 주길 부탁한다.
약물요법
사지 냉증에 쓸 수 있는 처방은 수없이 많지만, 여기서는 필자가 애용하는 핵심 처방 하나만 소개하고자 한다.
처방명은 ‘가미이중탕(加味理中湯)’이다.
기본 처방(이중탕)은
인삼·포건강·백출·자감초 각 4그램이다.
여기에 부자 4그램을 가미하면 ‘부자이중탕(부자理中湯)’이 된다.
이 ‘부자이중탕’에 육계·세계지(細桂枝)·오수유·오미자·오약·위령선 각 4~8그램,
산사 4그램을 가미하면 더욱 효과가 크다.
한습(寒濕)한 체질이면 목향·진피·사인을 각 4~8그램 가미한다.
한조(寒燥)한 체질이면 같은 소화제라도 맥아·신곡을 4~8그램 가미하는 것이 좋다.
상기 처방은 어디까지나 기본 처방이니 체질과 체력에 따라 약량(藥量)을 대폭 줄여서 조금씩 써야 할 때가 있고, 반대로 약량을 2배 내지 3배로 대폭 늘려서 써야 할 때도 있다.
모든 책에 기록되어 있는 그 어떤 처방이라도 어디까지나 평균을 감안하여 기록해 놓은 것이니 의자의 깊은 직관과 경험이 필요하다.
‘가미이중탕’은 평소에 추위를 많이 타고, 손발이 시리며, 조금만 찬 것을 먹어도 배가 아프거나 설사를 하는 사람들이 항상 차처럼 달여서 음용하면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가미방(加味方) 중에 세계지는 약력(藥力)을 손가락이나 발가락까지 끌고 가는 효능이 있다.
계지나무의 한 부분인 육계·계지·세계지 등은 모두 똑같이 뜨거운 약성을 발휘하지만, 그 약력이 작용하는 부위가 서로 다르다.
육계는 몸통과 오장을 따뜻하게 하고, 계지는 팔과 다리를 따뜻하게 하며, 세계지는 아주 세세하게 손가락이나 발가락 끝까지 들어가서 말초를 따뜻하게 해 주는 작용을 한다.
약량을 어느 정도로 하고, 약력(藥力)을 어디로 보내야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의자의 공부 수준에 달려 있다.
어느 정도 침리(鍼理)와 약리(藥理)가 트이면 한 사람의 몸을 한계 내에서 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치가 트이기 전에는 기본 처방을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더 오묘하고 쉽게 쓸 수 있는 처방들을 후학들이 끝없이 밝혀 주길 바란다.
후기
‘이중탕’은 『동의보감』과 『방약합편』에 실려 있지만, 본래는 장중경(張仲景) 선생이 창제하였다.
지금의 호남성(湖南省)의 수도인 장사(長沙)의 태수(太守)로 있으면서 평생을 의업(醫業)을 함께 했다.
당시 태수라는 관직은 지금으로 비교하자면 도지사 정도다.
장중경 선생은 『황제내경』 이후에 주옥같은 처방을 수없이 만들어 직접 임상에 응용하였는데, ‘이중탕’은 선생의 대표 저서인 『상한론(傷寒論)』에 실려 있다.
장중경 선생의 다른 저술로는 『금궤요략(金櫃要略)』이 있는데, 본래는 『상한론』과 『금궤요략』이 한데 합쳐져서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이라는 한 권의 책이었다.
『상한잡병론』은 모두 16권으로 존재하다가 6권이 분실되고, 10권만이 전해 내려왔다.
그러다가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고보형(高保衡), 손기(孫奇), 임억(林億)이라는 분들이 분실되고 유실된 여러 권의 책을 한두 권씩 일부 찾아내고, 또 일부는 서적을 보태어 한 권으로 묶으니 그것이 『금궤요략』이다.
『상한론』은 장중경 선생의 유지(遺志)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금궤요략』은 후대의 의가들이 약간의 편집을 하였다. 참으로 위대하고도 엄청난 연구가 이미 2천 년 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형언할 수 없는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상한론』에는 순한 처방도 많지만 ‘십조탕(十棗湯)’이나, 생부자를 가미하는 ‘사역탕(四逆湯)’과 같이 1~2첩을 까딱 잘못 쓰기라도 하면 극약(劇藥)이 되는 처방도 있다.
이런 처방은 가히 기발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런 점에서 장중경 선생의 임상이 당시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도 했겠지만, 일일이 후대에 밝히지 못하셨을 엄청난 문제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과도한 노고와 시도에 후학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전통의학에 뜻이 있거나 인연이 닿는 후학이라면 필히 『상한론』과 『금궤요략』을 단 한 번만이라도 꼭 필독해 주기를 바란다.
고인(故人)들의 과감하고도 현묘(玄妙)한 의학의 경지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상기에서 밝힌 처방보다 수족냉증에 쓸 수 있는 더욱 강력한 극약들이 많지만, 일반 독자들이 마음 놓고 쓰기에는 위험한 약재들이다.
일상생활에서 부담 없이 음료처럼 쓸 수 있는 처방으로는 수정과를 들 수가 있다.
보통 계피와 생강을 달여 곶감을 가미하는 것인데, 여기에 조금 더 약력을 높이려면 계피와 세계지를 함께 넣고 생강 대신에 건강(乾薑)을 가미하면 된다.
치질이 있는 환자에게는 인삼을 가미한다.
이때 인삼·계피·건강은 각 2그램, 세계지는 1그램에 해당하는 비율로 넣어서 차처럼 마시면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찬으로는 부추, 마늘, 양파, 고추 등을 늘 상식하도록 한다.
반면 오이, 포도, 참외, 키위 등 차가운 성질의 식품은 피하도록 한다.
가끔 유명 의사라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아침 공복에 일어나자마자 차가운 생수를 마시라고 권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렇게 하면 건강에 좋고, 변비가 해소되며, 피가 해독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소리다.
이런 방법으로 간혹 100명 중에 한두 사람이 좋은 효과를 본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특히 조금만 찬 음식을 섭취해도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는 냉체질인 사람에게는 거의 독약의 수준임을 알아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생수 1컵을 들이키는 사람 중에 폐인이 된 사람을 필자는 평생 임상을 하면서 숱하게 보아 왔다.
그런 환자 중에는 그 습관 하나만 바꾸어 줌으로써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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