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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리 뚝향나무(경북기념물)

초암 정만순 2020. 9. 15. 17:29

명대리 뚝향나무(경북기념물)

 

 

@ 탐방일 : 2020. 09. 13

 

 

청도 명대리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각북면과 이서면이 접해 있는 명대리는 계명과 송동 그리고 미대가 합해서 만들어졌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된 마을 중 명동과 미대동을 이름을 따서 명대동[리]이라 하였다.

마을로는 계명동, 나부실, 솔동, 미대(美垈)가 있다. 계명동은 명대 1리의 본 마을이다.

계명동의 원래 이름은 기밍동이다. 기밍동의 어원은 알 수 없다.

나부실은 마을 뒤 산의 형태가 나비 모양을 닮아서 나부실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메꽃의 줄기 모양을 하여 나복(蘿葍)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밀주지』에는 만호 신몽태가 살았던 곳이라는 기록이 있다.

솔동은 마을 입구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소나무가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솔동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미대 또는 미태는 『밀주지』에는 마을 동남쪽에 삼사암이라는 바위가 있고, 바위 아래쪽에 있다고 해서 미태라고 하며 미태가 변해서 미대로 변했다고 한다.


명대리는 본래 대구군 각북면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청도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기명동과 미대의 이름을 한자씩 따서 명대동이라 하였다.

1988년 명대동에서 명대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남북으로 긴 골짜기의 아래위로 형성된 마을이다.

서쪽 고개 너머에 우산리가 있고 북쪽으로는 산을 경계로 이서면 칠엽리가 있다.

마을 앞으로는 청도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뒷산은 홍두깨산의 한 자락으로, 골이 길게 이어져 있다.

골 가운데에 논이 있으며 경지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계곡 간에 형성된 경작지는 산골이면서도 상당히 큰 두락을 이루고 있어서 기계농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계곡 좌우로 산의 비탈진 곳에는 밭을 만들어 복숭아와 감을 재배하고 있다.


2012년 7월 현재 면적은 2.70㎢이며, 총 93세대에 186명[남자 90명, 여자 9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이서면 대전리·가금리, 서쪽은 각북면 우산리·풍각면 현리리, 남쪽은 풍각면 송서리, 북쪽은 이서면 칠엽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로 명대 1리와 명대 2리가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계명동, 나부실, 솔동, 미대(美垈) 마을이 있다.

인구에 비해 경작지가 많은 명대리 입구에는 비육우를 기르기 위해서 우사가 들어와 있으며, 논은 2모작으로 양파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명대리 남쪽으로 인접하여 지방도 902호선이 지나고 있다.

재궁골에는 김해 김씨 삼현파의 가장 어른인 절효 김극일의 묘와 묘재(墓齋)가 있다.

 

 

뚝향나무

 

 

향나무와 비슷하지만 똑바로 자라지 않고 줄기와 가지가 비스듬히 자라다가 전체가 수평으로 퍼지는 것이 다른 점이다.

키는 3~4m 정도까지 자라지만 가지가 옆으로 길게 뻗어 수관 지름이 4~5m에 이르기도 한다.

잎은 대부분 바늘잎인데, 가시처럼 날카로워 가까이 접근하기 어렵다. 가지는 길게 발달한다.

특히 늘어진 가지가 땅에 닿으면 뿌리가 잘 나오기 때문에 한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면 주위를 숲처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원래 저수지나 밭둑의 토양유실 방지 등 사방 재해 방지용으로 심겨지기 시작했다.

나무 이름도 둑에서 자라는 향나무라는 뜻에서 뚝향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최근에는 꺾꽂이로 번식시켜 정원용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함경북도와 평안북도를 제외한 전국의 표고 100∼1,300m 지역에 분포한다.

뚝향나무는 향나무의 변종 중 하나로 우리나라의 특산식물이다.

앉은향나무라고도 한다.

학명은 Juniperus chinensis var. horizontalis Nakai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의 주하리 뚝향나무(천연기념물 제314호)와 청도군 각북면의 명대리 뚝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100호)는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주하리 뚝향나무는 줄기가 비틀려 꼬였고 지상 1.3m 높이에서 여러 개의 가지를 내어 사방으로 뻗었는데, 밑으로 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30여 개의 철재 지주를 받쳐두고 있다.

명대리 뚝향나무는 가지에서 뿌리가 나와 마치 세 그루처럼 보이나 전형적인 뚝향나무의 수형을 유지하고 있다.

 

명대리 뚝향나무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명대리에 있는 수령 약 350년의 뚝향나무.

 

청도 명대리 뚝향나무는 청도군 각북면 명대리 나북 마을 운계사() 앞에 자라고 있다.

 

청도 나들목에서 서쪽인 창녕 방향으로 국도 20호선을 따라 약 12㎞ 정도 가면 이서 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서 북쪽인 명대리 방향으로 우산 1길을 따라 약 1.1㎞ 가면 명대교가 나온다.

명대리와 나북 방향으로 2.7㎞ 정도 더 직진하면 나북 마을 운계사 앞 우물가 언덕배기에 뚝향나무가 있다.

1994년 9월 29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00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나무 앞에는 경상북도 기념물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고, 보호 구역을 설정해 편책을 둘러 감싸고 있다.

주변에는 뚝향나무를 찾는 사람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의자를 설치해 놓았다.


청도 명대리 뚝향나무는 나무 아래에 옹달샘이 있고, 그 주위에 묘하게 얽힌 가지가 역동성을 느끼게 하며 푸른 잎이 넓게 퍼진 것이 장관이다.

옛날부터 마을 주민들이 정성을 들여 관리했기 때문에 선조들의 자연보호 사상이 후세에 귀감이 되어 경상북도 기념물 제100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청도 명대리 뚝향나무의 수령은 약 350년 되었다.

나무의 높이는 5m, 밑둥치 둘레는 97.4㎝, 동서 간의 수관(樹冠) 폭이 27.6m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그 규모가 크다.
가지가 언덕에 닿은 부분에서 새 뿌리가 나와 마치 버팀목을 세워 놓은 듯이 보이며, 언뜻 보면 세 그루인 것 같지만 한 그루이다.

두 그루처럼 보이는 부분은 원뿌리에서 뻗어 나온 새끼 그루로서 뚝향나무의 전형적인 분지(分枝)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줄기가 바로 서지 못하고 가지가 수평으로 퍼져 있으며, 비늘잎과 바늘잎 두 가지 형의 잎을 함께 가지고 있다.
나무 전체를 사각형의 철제 막대 관으로 받치고 있으나, 거대한 줄기를 형성한 수세(樹勢)가 왕성한 나머지 무게가 무거워 가지는 여러 개로 갈라지고 처져서 땅에 닿아 있다.

청도 명대리 뚝향나무를 언제 심었는지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나라에서 하사한 땅에 심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 효자인 김극일(金克一)[1382∼1456]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운계사는 절효 김극일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김극일은 생전에 효가 지극하여 부모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아침, 저녁으로 30리[약 11.79㎞]나 되는 부모의 묘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칭송하고 후세에 귀감을 삼고자 호를 절효(節孝)라 했다고 한다.

청도 명대리 뚝향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보살핌 속에서 지내온 나무로 뚝향나무 본연의 자연 수형(樹形)을 이루고 있다.

 

 

모암제

 

 

 

청도에서 제일가는 좋은 명당은 어디인가?

청도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말에의하면 "일(1등)은 나부실이요.이(2등)는 화산이다"

아니면 "일은 화산이요 이는 나부실이다" 라고 한다.

이만큼 두곳이 명당이라는것이다.

화산은 창녕과 달성에 인접한 풍각면에 위치하고 있고 나부실은 북쪽으로 가창,동쪽으로는

이서면과 인접해 있다. 나부실은 각북면 명대리 안쪽 자연부락이다.

지금은 3농가 들이 촌락을 유지하고 있다.

 

나부실에는 바로 김극일선생의 호를 딴 모암재가 있고 모암재위로 내려오는 내룡에는 김해김씨 삼현파 웃대어른의 산소가 있다.

나부실 일대는 토지 대부분은 깁극일선생의 사시호를 딴 절효문종의 종답들이다.

이같이 김해김씨 삼현파 절효문중이 청도제일의 터를 차치하고 있다.

 나부실로 들어가는 마을진입로는 나즈막한 야산이 양쪽으로 병풍처럼 바쳐주면서 무척 조용하기만하다. 모암제로 내려오는 내룡역시 온화하고 차분함이 느껴진다.

 

김극일(克一)선생의 자는 용협(用協)이고 호는 모암(慕庵)이며 사시호는 절효(節孝)로 본관은 김해(金海)로서 의홍현감 김서(金서)

선생의 아들이며 1382년 (고려 우랑 8년)에 태어나고 야은 길재(治隱 吉再)선생의 문인이다.

모암선생은 탁영 김일손 선생의 할아버지이고 삼족당 김대유 선생의 증조부이다. 세분을 삼현선생이라 일컫는다.

선생은 벼슬이 통덕랑 (通德郎) 사힌부지평 (司憲府持平)을 지내고 후에 향리에서 아들 육형제의 교육은 물론 후학들의 계도에 힘써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다.선생이 1456년 (이조 세조 2년 丙予)에 돌아가시니 향년 75세였다. 집의 (執義 )가 증직되고 생전의 출전지효를 칭송하고 후세의 귀감을 삼고저 향리유림과 제자들이 사시호를 절효(節孝)라 하였고 청도군 이서면 서원동에 있는 자계서원 (紫溪書際)에 봉안하고 향사 되었다

 

 

 

 

# 사진첩

 

여기서 5리만 가면 뚝향나무를 만날수 있다네요

모암제 가는 길 입구이기도 하구요

뚝향나무가 있는 곳 진입로 

 

드디어 뚝향나무를 만나다

 

뚝향나무를 받치고 있는 철가교

 

철가교 밑으로 도랑이 흐른다

 

 

 

운계사 옆 농가와 회화나무 고목

 

 

운계사

 

 

모암제는 뚝향나무 있는 곳에서 산골짜기를 200m 쯤 따라 올라가면 있다

모암제 앞 은행나무

 

모향제

 

행원문

 

 

모암제

 

모암제중수헌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