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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목정과 배롱나무꽃

초암 정만순 2020. 7. 25. 13:49

하목정과 배롱나무꽃

 

 

* 탐방일 : 2020. 07. 26 (일)

 

 

# 동영상

 

 

 

 

달성 하목정(達城 霞鶩亭)

 

 


대구 달성군은 2020. 6. 30일, 문화재청이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 소재 ‘달성 하목정’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고시한다고 밝혔다.

 



보물 제2053호로 지정된 ‘달성 하목정’은 낙포 이종문(1566~1638)이 1604년경에 건립한 정자형 별당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과 정면 1칸, 측면 4칸의 방들이 서로 붙어서 전체적으로 ‘丁’자형의 독특한 평면으로 구성돼 있다.

또 하목정은 주인과 하인이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며, 공적 목적이 큰 커다란 사랑대청을 가지면서도 사랑윗방 앞에 개인적인 공간인 누마루를 설치, 조선 중·후기 별당건축의 한 예를 보여준다.

가구구성은 5량과 3량의 두 가지로 이뤄져 있다. 전체적인 가구의 구성은 두꺼운 부재를 사용하면서도 건물고를 높여 건물이 둔중해 보이지 않으면서 당당한 기품과 함께 시원한 공간감을 준다. 또 중대공과 대공을 포대공으로 꾸미는 등 고급 장식과 치장을 곁들이면서도 화려해 보이지 않는 건물이다.

하목정의 창틀에서 주목되는 것은 영쌍창(欞雙窓, 중간설주)의 흔적이다. 사랑윗방의 정면 창호, 대청 측면 부분, 대청 배면의 어칸 부분의 창 윗틀에서 영쌍창의 홈 흔적이 보인다. 이런 영쌍창의 모습은 17세기 이전의 사랑방이나 안방의 전면 창호 또는 대청의 창에서 많이 쓰이던 것으로, 18세기에서도 일부 이어져왔던 수법이며, 건축의 연대를 파악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다.

또 일반적인 와가는 지붕의 모습을 날렵하게 보이기 위해 처마 모서리를 뾰족하게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목정은 초가지붕의 모습과 같이 둥글게 만든 방구매기 수법을 사용했다. 이런 수법은 청도 선암서원(경북도 유형문화제 제79호)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처마구성 방식이다.

하목정은 마루 청판 밑의 자귀질(나무를 깎아 다듬는 도구인 자귀로 나무를 깎는 일) 자국, 목구조 구성부재의 원형적 형태, 사랑윗방 창호 등에서 확인되는 영쌍창의 흔적 등에서 창건 당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가구부재의 치목을 그대로 유지해온 것이 놀라울 정도로 보존상태가 탁월하다.

이런 건축적 특성을 종합해 볼 때, 하목정은 조선 중기에 건립된 평면형태가 독특한 ‘丁’자형의 정자형 별당 건축으로, 공간구성과 세부기법 및 의장 등에서 많은 특색을 가지고 있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의 역사적, 건축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달성군에서 동산문화재가 아닌 건조물(건축물)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지난 2007년 이후 처음이다. 이번 지정으로 달성군은 국가지정문화재 12건, 시지정문화재 35건 등 총 47건의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게 됐다.

이와 관련 김문오 달성군수는 “새로 지정된 문화재에 대해서는 우선 소유자와 협의해 보존관리 대책을 수립하고, 장기적으로는 군 홍보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초가지붕 처럼 모서리 둥글게…서까래 끝에 사각 서까래 설치

 

하목정의 특색은 사대부 집에서 보기 힘든 지붕 서까래 끝에 네모진 짧은 서까래를 설치한 '부연'과 처마 모서리를 둥글게 만든 '방구매기처마' 이다.

하목정은 건물 구조상 사랑채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과 정면 1칸, 측면 4칸의 방이 서로 붙어서 전체적으로 '丁'자형으로 구성돼 있다.

본래는 현재의 하목정(정자)인 사랑채와 안채, 사당, 행랑채, 중사랑채, 도장채 등으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하목정과 안채, 사당만 남아 있다. 문헌상 안채는 대청 6칸 등 모두 합해서 11칸이나 되는 큰 집이었다.

정면에서 왼쪽 건물이 하목정이며, 가장 뒤편 건물이 사당이고, 그 아래가 안채다.

하목정은 다른 정자와 비교할 때 공간 구성이 특이하다.

누(樓)와 방이 앞뒤로 덧달려 있고 6칸짜리 넓은 누마루 대청 앞이 개방돼 시원한 느낌을 준다.

누마루 뒤쪽인 丁자의 날개 쪽에는 3개의 온돌방과 1개의 마루방이 나란히 붙어 있는데, 2개의 가운데 방에는 퇴를 빼내어 2단짜리 벽장을 설치했다.

원래는 대청과 방 사이에 4분합문이 설치돼 있었으나 현재는 한쪽만 남고 뒷방에는 문짝 겉에 덧다는 미닫이문만 남아 있다.

 

하목정에서 눈여겨봐야 할 건축의 진수는 처마와 부연(附椽)이다.

대부분의 다른 정자가 갖지 못한 부연을 달고 있어 차별화된다.

원래 조선시대에는 사대부가 짓는 정자라도 부연을 다는 게 금지돼 있었다.

그러나 하목정에는 지붕 서까래 끝에 부연이라 하여 네모진 짧은 서까래를 설치했다.

부연은 처마를 위로 들리게 해 날아갈 듯한 곡선을 이루게 하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삼국시대 이래 고급 건축에만 이 같은 건축기법을 사용했다.

일반적인 와가에서 지붕의 모습을 날렵하게 보이기 위해 처마 모서리를 뾰족하게 하는 것이 통상적인데 반해 하목정은 초가지붕의 모습과 같이 둥글게 만들었다.

이런 지붕처마를 '방구매기처마'라고 부른다.

청도의 선암서당과 더불어 우리나라 건축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처마 양식이다.

방구매기처마는 처마에 안 허리 곡선을 주는 대신 반대로 추녀를 짧게 해 둥근 처마를 이루는 기술을 말한다.

게다가 처마 아래에서 모서리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금방 펼친 듯한 부챗살 하나가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위용을 자랑하며 하늘로 치솟는 여느 처마와는 다르다.

 

 

하목정은 성주대교가 바라다 보이는 곳의 마을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이 선조 37년(1604)에 세운 정자로, 안채와 사당을 갖춘 사대부집의 규모다.

‘하목정’이라는 정자형 사랑채의 이름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서 잠깐 머물렀던 인조(재위 1623∼1649)가 나중에 이종문 선생의 첫째 아들인 이지영에게 직접 써주었다는 현판으로, 이 편액은 지금도 정자에 당당히 걸려 있다.

하목정은 낙동강이 정자 아래로 흐르는 아침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따오기가 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지어진 이름이라지만, 현재는 낙동강 물길이 바뀌고 대구와 성주를 잇는 30번 국도의 다리인 성주대교로 인하여 편액의 의미와 같은 옛 풍경은 느낄 수 없다.

 

 

하목정 편액과 천장가구

 

하목정의 사당은 안채의 지붕선보다 매우 높게 자리하여 마을 앞에서 보면 안채 위에 사당이 올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당 앞의 배롱나무는 수백 년 세월의 표현인지 가지가 바닥을 기어가면서 사방으로 뻗어 사당 앞마당이 배롱나무에 의해 공간을 만든 것처럼 느껴지는데 여름에는 빨간 꽃들이 사당을 온통 뒤덮어 감싸고 있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없는 배롱나무의 멋들어진 어울림을 느낄 수 있다.

 

 

또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낙동강 쪽을 보노라면 이 집 주인이 강가의 물을 산보다 더 좋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정자 한 켠에 연지를 조성하였는데 이상하게도 물이 한 점도 없다.

이는 이 곳 지반이 모래라서 물이 고이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양반집 사랑채에는 무조건 연지가 있어야 된다는 무지가 낳은 문화재 복원의 실패 사례다.

종손의 말에 의하면 지금도 하목정에는 물이 나지 않으며, 예전부터 마을 아래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한다.

 


사랑채로 사용하는 하목정은 전면 네 칸에 측면 두 칸 규모이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모양은 동서쪽인 낙동강을 바라보는 ‘ㅜ’자형 구조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건물이 높아 마루에 올라가려면 두 개의 섬돌을 거쳐야 하며, 일반적인 가옥의 대청마루보다 높아 시원스러운 맛이 있다.

또 일반 백성들의 주택에는 서까래 위에 덧서까래인 부연을 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지만 인조가 왕명으로 이 집에는 부연을 달도록 허락해 줌으로서 겹처마 구조로 되어 있다.

기와지붕을 한 하목정 처마 끝을 초가집에서나 봄직한 방구매기한 모양으로, 처마 끝을 부채 모양으로 곡선 처리하여 귀솟음의 날카로움을 없앤 것이 이 집의 멋 가운데 하나다.

현재 사랑 도리와 보에는 김명석, 남용익 등 많은 선비들이 하목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현판들이 걸려 있다.

특히 기둥은 관아 건물이나 사찰 건물에서나 사용했음직한 굵은 원기둥이 듬직하며 나뭇결이 잘 표현되고 튼튼한 느티나무 기둥을 전면에 세워 나무 목질의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고 있다.

또 팔작지붕에서 천장가구 구조로 많이 사용하는 가구법인 눈썹반자를 아름답게 표현해 선자연 서까래와 종도리가 만나는 부분을 슬기롭게 표현하였다.

여기에 건물의 전체 기둥이 한 아름 크기의 원주로 되어 있어 튼튼하고 우람한 동시에 천정을 높게 하여 날렵한 느낌도 살렸다.

 

 

박공널판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름다운 하목정

 

 

박공[ 牔栱 ]

뱃집 양편에 八자 모양으로 붙인 두꺼운 널을 말하는데, 이 중 박공지붕은 지붕면이 양쪽 방향으로 경사진 지붕을 말하며, 박공벽은 박공지붕의 측면에 생기는 삼각형 벽을 말한다.

 

 

박공지붕 ·박공벽 등의 약칭으로도 사용된다.

박공지붕이란 지붕면이 양쪽 방향으로 경사진 지붕을 말하는데, 재료가 적게 들고, 구조가 간단하여 실용적인 건축물에 많이 사용된다. 책을 펴서 엎어 놓은 것 같은 형태, 즉 八자형을 하고 있으며, 뱃지붕 또는 맞배지붕이라고도 한다.

박공벽은 박공지붕의 측면에 생기는 삼각형 벽을 말하며, 건물의 구조에 따라 의장(意匠)이 다르다.

 

 

기와집 추녀에서 보기 드문 원형 곡선의 방구매기

 

방구매기

 

 

지붕에서 양쪽 추녀를 조금씩 잘라서 처맛기슭을 둥그스름하게 함. 또는 그런 일.

귀에 오는 이엉이나 기와를 둥글게 덮기 위해서 한다.

 

 

부연(附椽)

 

 

 

부연은 겹처마에서 처마 끝에 걸리는 방형 서까래인데 처마를 깊게 할 목적으로 사용하지만 장식적인 효과도 있다.

여러 채의 건물이 있는 경우 정전과 중심건물은 부연이 있는 겹처마로 하고 행랑채 등 기타 부속건물은 홑처마로 하는 경우가 많다.

살림집에서도 안채와 사랑채 등 중요건물은 부연이 있는 겹처마로 하고 행랑과 부속건물은 홑처마로 한다. 같은 건물에서도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때는 전면만 부연을 달고 나머지는 홑처마로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는 부연이나 서까래의 끝부분을 한복 소매처럼 살을 걷어내는 소매걷이를 한다.

소매걷이 시점은 말구에서 3분의 1지점 정도부터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하면 둔탁해보이지 않고 날씬하고 힘 있어 보인다.

또 서까래나 부연의 말구를 직절하지 않고 빗 자르며, 양 옆면도 밑 부분이 폭이 좁고 위가 넓은 역사다리꼴로 만들어 밑에서 올려다봤을 때 시각적인 안정감과 위가 좁아 보이는 착시현상을 없애준다.

이러한 착시현상의 교정은 한국건축에서는 곳곳에 나타나며 한국건축이 아름답고 세련되게 보이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부연은 서까래 위에 열을 맞춰 걸기 때문에 서까래와 숫자가 같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선자연의 초장과 이장 사이에 부연을 하나 더 넣어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세발부연이라고 한다.

 

 

@ 사진첩

 

주차장

 

하목정 입구

버물로 지정 되었으나 표석은 바뀌지 않았네~~

하목정 정면

사랑윗방

부연

대청

하(노을) 목(따오기) 정(정자)

 

 

대청창

창뒤로 보이는 배롱나무

대청 측면의 편액

천정 가구

액자 속 풍경같은 배롱나무 꽃

대청 가구

낙동강변을 향한 측문

하목정 측면

 

모과나무

불게 타는 배롱나무 꽃

 

연못

 

 

 

성주대교가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