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숲6기 노거수 탐방 계획(2020.06.13)
일자 : 2020년 6월 13일
집결지 / 시각 : 미정
장소 : 달성 하빈면, 성주군 대가면, 성주군 수륜면
탐방 경로 :
달성 하목정 배롱나무 -> 대가면 금산리 느티나무-> 대가면 도남리 배롱나무 ->
대가면 도남리 말뚝소나무-> 수륜면 신파리 은행나무 -> 수륜면 계정리 왕버들 ->
수륜면 회연서원 느티나무
달성 하목정(霞鶩亭) 배롱나무
하목정[ 達霞鶩亭 ]
1995년 5월 12일 대구시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12월 3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053호로 승격하였다.
1604년(선조 37)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이 세운 정자이다.
‘하목정’이라는 정호(亭號)는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이곳에 머문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이종문의 맏아들 이지영(李之英)에게 써준 것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우측 1칸에는 앞쪽으로 누 1칸을 첨가하고 뒤쪽으로 방 1칸을 더 만들어 평면이 정자형(丁字形)으로 구성되었다.
처마곡선이 부채모양의 곡선으로 된 특이한 형태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내부에는 김명석(金命錫), 남용익(南龍翼) 등 여러 명인들의 시액(詩額)이 걸려 있다.
당시 일반 가옥에서는 서까래 위에 부연(附椽)을 달지 않는 것이 관례였으나 인조의 명으로 부연을 달았다.
소유자는 이종국 외 1명이다.
이 가옥은 성주대교가 바라다 보이는 곳의 마을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이 선조 37년(1604)에 세운 정자로, 안채와 사당을 갖춘 사대부집의 규모다.
‘하목정’이라는 정자형 사랑채의 이름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서 잠깐 머물렀던 인조(재위 1623∼1649)가 나중에 이종문 선생의 첫째 아들인 이지영에게 직접 써주었다는 현판으로, 이 편액은 지금도 정자에 당당히 걸려 있다.
하목정은 낙동강이 정자 아래로 흐르는 아침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따오기가 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지어진 이름이라지만, 현재는 낙동강 물길이 바뀌고 대구와 성주를 잇는 30번 국도의 다리인 성주대교로 인하여 편액의 의미와 같은 옛 풍경은 느낄 수 없다.
하목정의 사당은 안채의 지붕선보다 매우 높게 자리하여 마을 앞에서 보면 안채 위에 사당이 올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당 앞의 배롱나무는 수백 년 세월의 표현인지 가지가 바닥을 기어가면서 사방으로 뻗어 사당 앞마당이 배롱나무에 의해 공간을 만든 것처럼 느껴지는데 여름에는 빨간 꽃들이 사당을 온통 뒤덮어 감싸고 있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없는 배롱나무의 멋들어진 어울림을 느낄 수 있다.
또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낙동강 쪽을 보노라면 이 집 주인이 강가의 물을 산보다 더 좋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정자 한 켠에 연지를 조성하였는데 이상하게도 물이 한 점도 없다.
이는 이 곳 지반이 모래라서 물이 고이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양반집 사랑채에는 무조건 연지가 있어야 된다는 무지가 낳은 문화재 복원의 실패 사례다.
종손의 말에 의하면 지금도 하목정에는 물이 나지 않으며, 예전부터 마을 아래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한다.
사랑채로 사용하는 하목정은 전면 네 칸에 측면 두 칸 규모이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모양은 동서쪽인 낙동강을 바라보는 ‘ㅜ’자형 구조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건물이 높아 마루에 올라가려면 두 개의 섬돌을 거쳐야 하며, 일반적인 가옥의 대청마루보다 높아 시원스러운 맛이 있다.
또 일반 백성들의 주택에는 서까래 위에 덧서까래인 부연을 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지만 인조가 왕명으로 이 집에는 부연을 달도록 허락해 줌으로서 겹처마 구조로 되어 있다.
기와지붕을 한 하목정 처마 끝을 초가집에서나 봄직한 방구매기한 모양으로, 처마 끝을 부채 모양으로 곡선 처리하여 귀솟음의 날카로움을 없앤 것이 이 집의 멋 가운데 하나다.
현재 사랑 도리와 보에는 김명석, 남용익 등 많은 선비들이 하목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현판들이 걸려 있다. 특히 기둥은 관아 건물이나 사찰 건물에서나 사용했음직한 굵은 원기둥이 듬직하며 나뭇결이 잘 표현되고 튼튼한 느티나무 기둥을 전면에 세워 나무 목질의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고 있다.
또 팔작지붕에서 천장가구 구조로 많이 사용하는 가구법인 눈썹반자를 아름답게 표현해 선자연 서까래와 종도리가 만나는 부분을 슬기롭게 표현하였다.
여기에 건물의 전체 기둥이 한 아름 크기의 원주로 되어 있어 튼튼하고 우람한 동시에 천정을 높게 하여 날렵한 느낌도 살렸다.
이 가옥은 한국전쟁 때 하목정인 사랑채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현재 있는 ‘一’자형 안채만 최근에 복원해 놓았다. 안채 앞에 행랑채 곳간채 등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빈 공터만 남아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 1043-1번지
보물 제2053호
대가면 금산리.웃상삼 느티나무
이 나무는 성주군 대가면 금산리 산 83번지에 위치하며 2005년도 8월 9일자로 리 보호수(05-28-01)로 지정된
당산목 느티나무로 수령 400년 생으로 높이가 25m 나무둘레 3.5m로 웃상삼 마을 도로 끝 언덕에 소재하고 있다.
성주에서 대가면 소재지를 지나 가천방향으로 가다 땅고개 가기전 우측 금산2리 표지판 방향으로 400 여m
웃상삼(上上三)이란 지명은 마을이 골짜기 안의 높은 곳 에 위치하여 가야산(伽倻山).다락산(多樂山).칠봉산(七峯山)의 세 산봉우리를 볼수 있다고 하여 삼산(三山)이라 불렀으며 상삼(象三).상삼(上三) 마을보다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있어 웃상삼 이라 한다.
대가면 도남리 배롱나무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134번지 자리섬 부락 입구 도남재 사당 앞에 정자목 배롱나무 2그루가 있는데
수령은 300년.높이는 12m.둘레는 1m로 2005년9월21일자로 리 보호수로 지정
대가면 도남리 말뚝소나무
대가면 도남리 687 뒷개(後浦)마을과 갈밭(新安.蘆田)마을 중간지점 대천 금수간 도로변 갈밭마을
진입로 초입에 있는 노목
높이5m.둘레가 약4.5m 뻗은 가지가 동서와 남북이 각 15m로 지상 1.5m에서 부터 가지가 뻗어
우산 모양을 형성 하고 있습니다.
수령은 39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마을에 서암 배덕문(書岩 裵德文)이 480년전 처음 들어와 살때 마을 형상이 풍수설에서 말하는
행주형(行舟型)이라해서 갯포(浦)자를 붙여 뒷개라 했는데 배가 있으면 포구(浦口)가 있듯이 이곳
배씨들 마을은 모두 포와 관련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자리섬(全仁:席島).청룡(靑龍)등 바닷가에서
볼수있는 이름이다.
이 소나무는 배덕문의 손자 등암 배상룡(藤菴 裵尙龍) 이 행주형 마을에 배를 묶어둘 말뚝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1620년(광해군 12년)경 심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대가면 도남리 687 뒷개(後浦)마을과 갈밭(新安.蘆田)마을 중간지점 대천 금수간 도로변 갈밭마을
진입로 초입에 있는 노목
높이5m.둘레가 약4.5m 뻗은 가지가 동서와 남북이 각 15m로 지상 1.5m에서 부터 가지가 뻗어
우산 모양을 형성 하고 있습니다.
수령은 39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마을에 서암 배덕문(書岩 裵德文)이 480년전 처음 들어와 살때 마을 형상이 풍수설에서 말하는
행주형(行舟型)이라해서 갯포(浦)자를 붙여 뒷개라 했는데 배가 있으면 포구(浦口)가 있듯이 이곳
배씨들 마을은 모두 포와 관련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자리섬(全仁:席島).청룡(靑龍)등 바닷가에서
볼수있는 이름이다.
이 소나무는 배덕문의 손자 등암 배상룡(藤菴 裵尙龍) 이 행주형 마을에 배를 묶어둘 말뚝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1620년(광해군 12년)경 심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수륜면 신파리 신당(新堂)은행나무
수륜면 계정리.원기 왕버들나무
아래의 왕버들 나무는 성주군 보호수로 성주군 수륜면 계정리 620번지 원기부락 앞 좌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2년 10월25일자로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300 여년된 노거목 입니다.
원기(元基)부락의 유래는 웃딩기 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1600 년경 두릉곡 社氏와 성산(星山)이씨(李氏)가 개척하여 뒷산이 닭이 우는 형상이라 하여 嗚鷄라는 마을이 있었으며 이 마을은 딩기 마을 위에 있다하여 웃딩기라 칭하게 되었고 1700년경 사람들이 집단으로 와서 정착 하였다고 합니다.
( 촬영 2014.4.14)
수륜면 회연서원 느티나무
회연서원
1974년 12월 10일 경북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신정리 봉비암 아래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한강 정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영남 5현(김굉필·정여창·이언적·이황) 가운데 1명인 정구가 1583년(선조 16)에 세워 제자들을 교육하던 회연초당(檜淵草堂)이 1627년(인조 5) 지방사림의 여론에 따라 서원이 되었으며, 1690년(숙종 16) 사액을 받았다.
경내에는 지경재·명의재·양현청 등이 있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양현청은 없어졌다. 현판은 한호가 쓴 것으로 유명하며, 1977년 사당과 동·서무를 고쳐 세우고 담장을 쌓았다.
정구의 문집판인 《심경발휘(心經發揮)》가 보관되어 있다.
사우에는 정구와 이윤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토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동재·서재는 수학하는 유생들이 거처하는 곳이며, 신도비의 비문은 신흠(申欽)이 정구와 이윤우의 학문·덕행 및 공적을 찬양한 글이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2월 중정(中丁 : 두 번째 丁日)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4두(豆)이다. 유물로는 용두장(龍頭杖)과 가죽신·창의 등 여러 점이 보관되어 있으며, 소장전적은 목판본과 《심경발휘 心經發揮》 외에 수십권이 보관되어 있다.
재산으로는 전답 4,600평, 임야 9,000평, 대지 1,500평 등이 있다.
느티나무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 258번지 회연서원 입구 왼편에 소재한 느티나무
높이가20m 둘레가3.7m 수령이 약430년
1982년 10월 26일자로 고유번호 11-24-1번으로 군 보호수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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