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巨樹 保護樹 記念物/樹木 圖鑑

진달래

초암 정만순 2019. 6. 12. 22:16



진달래






진달래과에 속하는 낙엽관목. 학명은 Rhododendron mucronulatum Turcz. var. mucronulatum이다.

두견새가 밤 새워 피를 토하면서 울다가 꽃을 분홍색으로 물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두견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진달래꽃은 고향을 연상시키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민족적 정서에 닿아있는 꽃 중의 하나이다.

생명력이 강하여 척박한 산에서도 잘 자라고 쉽게 번진다.


키는 2~3m 정도 자란다.

타원형 또는 피침형의 잎은 어긋나는데,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뒷면에는 조그만 비늘조각들이 빽빽하게 나 있다.

분홍색의 꽃은 잎이 나오기 전인 4월부터 가지 끝에 2~5송이씩 모여 피는데, 통꽃으로 꽃부리 끝은 5갈래로 조금 갈라져 있다.

수술은 10개,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삭과로 익는다.



줄기껍질

어린 나무는 밝은 갈색을 띤다. 묵을수록 회색이 되며 가지 떨어진 자리에 불룩한 옹이가 생긴다.

밋밋한 편이다.

가지

햇가지는 밝은 녹색을 띠다가 점차 노란빛 도는 밝은 갈색이 된다.

묵으면 회색빛 도는 갈색을 띤다.



길이 4~7㎝ 정도의 잎이 가지에 어긋나게 달리며 가지 끝에는 5장씩 뭉쳐서 달린다.

끝이 뾰족하거나 점점 뾰족해지는 긴 타원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앞면에는 비늘조각이 조금 있고 뒷면에는 많다. 가을에 붉게 물든다.



4월 초에 잎보다 가지 끝에 진하거나 연한 분홍색으로 핀다.

곁눈에서 1~5송이가 나오며 지름은 3~4.5㎝ 정도 된다.

한 꽃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나온다.

암술은 1개, 수술은 10개다.

꽃부리는 5갈래로 갈라지며 겉에 잔털이 있다.


열매

10월에 길이 2㎝ 정도의 긴 원통 모양 열매가 붉은 노란색으로 여문다.

다 익으면 열매껍질이 5갈래로 길게 갈라져 씨앗이 나온다.

겨울에도 열매껍질이 가지에 매달려 있다.

용도    

        

꽃을 따서 먹을 수 있으므로 참꽃 또는 참꽃나무라고 부르는데, 제주도에서 자라는 참꽃나무와는 다르다.

꽃을 날것으로 먹거나 화채 또는 술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술을 빚어 먹을 경우 담근 지 100일이 지나야 맛이 난다고 하여 백일주라고도 하는데,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고 조금씩 먹어야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꽃과 잎, 줄기, 햇가지, 뿌리 등이 모두 식용이나 약용에 쓰이지만, 역시 꽃잎이 가장 널리 쓰인다.

한방에서는 말린 진달래 꽃을 두견화 혹은 영산홍이라는 약재로 사용한다.

혈액순환 장애, 기침, 신경통, 염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는 진달래 줄기로 만든 숯으로 승복을 염색하기도 했다.






한글명 진달래나무는 그 본명이 진달래꽃이다.

일찍이 15세기 후반 『구급간이방()』에 한자 (척촉화)에 대해 진imagefont욋곳(진달래꽃)으로 기록되었다. 진달래꽃으로 찜질하면 허리 통증에 좋다고 기록했다.

기록으로만 보더라도 무려 400여 년이 훌쩍 넘는 오래된 우리 식물이름이다.

15세기 『훈몽자회()』에서는 특히 꽃 종류를 분류해 둔 「화품()」 편에서 한자 (산촉)에 대해 진imagefont의로 기재했다.

때문에 중국 한자 표기 (진월배)나 한자명 (척촉)에서 유래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17세기 『향약구급방()』에 기록된 (진월배)는 우리 이름을 한자에서 차자()해 기재한 향명 표기일 뿐이다.

19세기 『물명고()』에서 한자 (두견)과 (춘견)에 대해 딘달늬로 기재했고, 20세기 초에 들어서는 진달imagefont, 진달내, 진달래로 기재되기도 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재될 정명은 진달래꽃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달래꽃과 철쭉나무는 진달래꽃속(Rhododendron)을 대표하는 관목 떨기나무다.

외형적으로 비슷하지만 그 생태성이 많이 다르다.

사는 장소가 다르고, 꽃 피는 방식이 다르고, 생태계의 선구자로서의 기여도가 다르다.

성미가 급한 것이 진달래꽃이라면 의젓한 것은 철쭉나무인데, 다발로 모여 나 낙엽을 붙잡아 주는 생태적 기능은 비슷하다.

진달래꽃은 철쭉나무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남쪽 비탈()처럼 따뜻한 곳을 좋아하고, 잎보다 꽃이 분명하게 일찍 핀다.

철쭉나무는 더욱 시원한 곳을 좋아하고, 잎과 거의 동시에 꽃이 핀다.

진달래꽃은 촉촉한 곳을 매우 싫어하고, 영양분이 풍부한 곳에서는 다른 식물과의 경쟁에서 밀려난다.

그래서 늘 척박한 산지에서 자주 관찰된다.

때문에 자연림이 발달해야 할 곳에 진달래꽃이 만발한 산비탈이 있다면, 분명 산불이나 벌채로 수 년 또는 십수년 전에 훼손된 곳이라는 것을 지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소월의 ‘영변의 약산 진달래’는 파괴된 자연을 읊은 시가 된다.

지금도 북녘의 벌거벗은 산하에 진달래꽃이 만발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잘 보존된 온대림 숲속에서는 진달래꽃이 보이지 않는다.

 진달래꽃이 사는 숲은 이차림이다.

산불이 나고, 벌채하고, 조림한 곳에 진달래꽃이 큰 무리를 이루는 것은 자연이 교란되어 이차적으로 만들어진 경관이다.

그런데 진달래꽃이 나타나는 자연식생이 있다.

산지 암벽 틈에서 낙락장송과 다소곳이 어우러진 위극상(, pseudoclimax)의 전형적인 지속식물군락()이다.

지질 역사가 장구한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자연의 교향악이고, 척박한 곳에서 인내하며 살아가는 대표적인 생명의 다큐멘터리다.

진달래꽃은 키 작은 나무인데도 수명이 따로 없다.

아주 오래 살며, 정확한 나이를 알 수가 없다.

그냥 다발을 만들고 있는 수와 굵기로 대충 추정할 뿐이다.

오래된 것일수록 다발이 크고 줄기가 굵다.

진달래꽃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인간의 논리다.

산불이 나거나 벌채하면, 다시 그루터기로부터 시작한다.

늙으면 생식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순리이지만, 꽃이 피지 않는 늙은 진달래꽃은 본 적이 없다.

생물학적으로 수명이 다해 늙어서 죽은 진달래꽃도 본 적이 없다.

 결코 그 끝을 알 수 없는 진달래꽃의 태생적인 업보다.

철쭉나무도 마찬가지로 다발식물체의 유전형질을 가졌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진달래꽃 종류의 분재에 흥분하는 것이다.

진달래꽃은 준특산(, subendemic)이라 할 정도로 우리나라 온대림식생을 대표하는 관목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진달래꽃을 포함해 진달래꽃속의 종 다양성이 풍부하다.

오래된 지질 역사를 표징하는 마그네슘(Mg++) 이온이 빈약한 토지를 진단하는 생태적 특질에서 비롯한다.

진달래꽃은 그 가운데, 아주 깊은 땅속에서 만들어진 후 땅 위로 솟아 오른 지 적어도 1억5천만 년 전의 화강암처럼 조립질() 토양이 넓게 발달한 암석권을 좋아한다.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쓰시마()에서만 진달래꽃이 분포한다.

쓰시마는 대부분의 일본열도처럼 화산섬이 아니다. 대륙 한반도에 이어져 있던 섬으로 바닷물이 갈라놓은 것이다.
부산 영종도나 거제도처럼 한반도 남해안의 지질과 그 속성이 똑같은 화강암이 넓게 차지하는 지사()가 오래된 섬이다.

진달래꽃의 일본명도 겐까이쭈쭈지(, 현해척촉)로, ‘현해탄 진달래꽃’이란 의미다. 중국에서도 한반도를 향하는 일부 화강암 지역에 분포한다.

러시아 연해주에는 신갈나무 우점림 속에 두서너 평 정도의 진달래꽃이 자생하는 동북아 최북단 분포지가 있다.

이처럼 진달래꽃은 한반도가 분포중심지이고, 모름지기 한국인의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은 민족식물이다.

견고한 편이고, 잎끝()이 짧고 뾰족한 모양에서 무크로눌라툼(mucronulatum)이란 종소명을 얻었다.

그런데 진달래꽃은 서식처 조건에 따라 잎의 질감이나 꽃 색감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한반도 최남단에 사는 진달래꽃과 최북단 연해주의 진달래꽃 모양이 다르게 보이는 까닭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력 삼월삼짇날에 새콤한 맛이 나는 진달래 꽃잎으로 부쳐낸 화전을 안주 삼아 작년에 담근 두견주를 마셨다고 한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먹거리의 즐거움을 준 진달래꽃은 참꽃이 되었고, 먹으면 배탈이 났던 철쭉은 개참꽃이 되고 만 것이다.

한글명 진달래꽃은 진달래와 꽃의 합성이고, 15세기 후반 최초 한글기재에서 (척촉화)를 진imagefont욋곳으로 표기했으니, 한자 표기 (척촉)에서 유래하는 지금의 철쭉 종류를 진달래(진imagefont외, 진imagefont이)로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 이름 진달래의 어원을 짐작할 수 있다.

진한 분홍빛을 의미하는 사라져버린 우리말과 관련있는 지는 모를 일이지만, 진득진득한 철쭉 종류 진득이의 새싹에서 전화한 이름임에 틀림없다.

진달래 종류이건 철쭉 종류이건 진달래꽃속(Rhododendron spp.)은 모두 우리 습속에 깊숙이 자리했던 민족식물자원이다.

우리에게 가장 오래된 차() 가운데 하나는 진달래꽃속 어린잎을 우려마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도 어느 구석에서 살던 진달래꽃이 Berg란 채집자에 의해 영국 에딘버러(Edinburgh) 왕립식물원에 입양된 일이 1976년이 처음일 정도로 서양인에게 우리의 진달래꽃은 낯선, 그냥 하나의 식물일 뿐이었다.

서양인에게 로도덴드론(Rhododendron spp.)의 문화가 있듯이, 우리에게 동아시아 최고의 진달래꽃 문화가 있다.

속명 로도덴드론(Rhododendron)은 Nerium oleander란 식물의 고대 희랍 명칭에서 유래하며, 장미나무(rose-tree)란 뜻이다.

서양에 장미꽃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진달래꽃이 있다.


진달래꽃은 산 넘어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을 완연히 느낄 때 즈음에 피기 시작한다.

동네 앞산은 물론 높은 산꼭대기까지 온 산을 물들이는 꽃이다.

진분홍 꽃이 잎보다 먼저 가지마다 무리 지어 피는 모습은 고향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잠시 유년의 추억으로 되돌아가게 해준다.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고 노래했다.

꽃 대궐의 울타리는 산 능선을 이어 달리듯 펼쳐진 자그마한 키의 아기 진달래 꽃밭으로 만들어진다.

더 예쁘게 만들기 위하여 육종이란 이름의 성형수술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예쁜 자연 미인이다.

진달래는 비옥하고 아늑한 좋은 땅은 우악스런 경쟁자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생존의 극한 상황인 산꼭대기로 쫓겨난 나무나라의 가난한 백성이다.

바위가 부스러져 갓 흙이 된 척박하고 건조한 땅, 소나무마저 이사 가고 내버린 땅을 찾아 산꼭대기로 올라왔다.

잎파랑이란 공장을 돌리는 데 꼭 필요한 수분이 부족하고 대부분의 식물들이 싫어하는 산성토양에 적응하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가난하지만 이웃과 사이좋게 오순도순 모여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이런 땅에는 경쟁자가 많지 않다.

 형제간인 철쭉이나 산철쭉이 경쟁자이나 서로 뒤엉켜 이전투구를 벌이지는 않는다.

적당히 영역을 나누어 살아간다.

다만 진달래 꽃밭이 엉뚱한 이유로 차츰 없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산림보호 정책의 성공으로 숲이 우거지면서 진달래가 터전을 마련할 양지바른 땅이 자꾸 줄어들기 때문이다.

남부지방에서는 진달래보다 참꽃나무란 이름에 더 친숙하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진달래가 필 즈음이면 대체로 먹을 양식이 떨어져 배고픔이 일상일 때이다.

굶주린 아이들은 진달래꽃을 따먹으며 허기를 달랬으므로 진짜 꽃이란 의미로 참꽃이란 이름을 자연스럽게 붙였다.

식물도감에 보면 제주도에 참꽃나무가 있다고 나와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참꽃’은 진달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진달래란 말의 어원은 달래에 접두어 진(眞)이 붙은 형태로 짐작하고 있다.

달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봄나물뿐만 아니라, 달래란 이름이 흔하듯이 꽃을 나타내는 다른 뜻도 있었던 것 같다.

같은 진달래도 토양산도와 유전형질에 따라 빛깔이 조금씩 달라진다.

빛깔에 따라 꽃잎 색이 연한 연(軟)달래, 표준색깔의 진(眞)달래, 아주 진한 난(蘭)달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어린 소녀 시절부터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하는 젖꼭지 빛깔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의 옛 문헌에 나오는 진달래는 모두 두견화(杜鵑花)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중국의 전설에서 유래한다.

중국의 촉나라 망제(望帝) 두우는 손수 위기에서 구해준 벌령이란 신하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국외로 추방당한다.

억울하고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죽어서 두견이가 되어 촉나라 땅을 돌아다니며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어댔는데, 그 피가 떨어져 진달래꽃이 되었다는 것이다.

두견이의 울음소리가 중국 사람들에게는 그네들 발음으로 돌아감만 못하다는 뜻의 ‘부루구이(不如歸)’라고 들리는 듯하여 이런 전설이 생겼다는 것이다.


서울 수유리에 있는 4월 학생혁명 기념탑에는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피어나리라”라는 신동엽 시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진달래는 이렇게 안타까운 비극의 현장에 있었던 꽃인가 보다.

진달래는 전국 어디에서나 자라며 키가 3미터 정도이고 밑에서부터 여러 개의 줄기가 올라와 자란다.

우리나라 산의 큰 나무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대표라면 작은 나무의 대표는 진달래다.

이처럼 진달래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꽃으로 모두가 좋아하는 대표 꽃이다.

선비들의 시가 속에 수없이 등장하며 꽃잎을 따다 두견주를 담아 마시고 꽃전을 부쳐서 나누어 먹으며 봄날의 하루를 즐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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