賢者 殿閣/조용헌 살롱

칠곡의 梅院마을

초암 정만순 2014. 3. 24. 09:10

 

칠곡의 梅院마을

 

조선시대 명문 양반들이 살았던 동네들을 찾아가 보면 한결같이 명당이라는 점에 놀란다. 터가 안 좋은 데가 없다.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의 매원리(梅院里)도 그런 터이다. 17세기 초반부터 광주이씨(廣州李氏)들의 세거지이다.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영남의 명촌(名村)으로 꼽힌다.

매원(梅院)은 동네 터가 '매화 꽃이 떨어진' 매화낙지(梅花落地) 형국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름이 '매원'이 되었다. '매처학자'(梅妻鶴子·매화를 부인으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매화가 있으면 학이 있기 마련이다. 매원의 뒷산은 소학산(巢鶴山)이라고 불린다. '학의 둥지'라는 뜻이다. 어디 그뿐인가. 반경 1㎞ 이내로 황학산(黃鶴山), 유학산(遊鶴山)도 포진하고 있다.

날짐승인 학이나 봉황이란 이름이 들어가는 산은 가운데에 볼록한 봉우리가 하나 있고, 양옆으로 약간 낮은 높이로 역시 볼록한 봉우리가 있다. 가운데 봉우리는 학의 머리이고, 양옆은 날개에 해당한다. 3개의 학산이 바깥에 있고 그 안으로는 황학동(黃鶴洞), 학명동(鶴鳴洞), 학산동(鶴山洞), 학하동(鶴下洞), 학상동(鶴上洞)이 안겨 있다. 온통 학이다.

동네 앞으로는 동정천(東靜川)이 흐르면서 주변의 논밭에 젖줄을 대주고 있다. 전답만 풍부한 게 아니라 낙동강에 배를 타고 오르내리기도 좋은 위치였다. 돌밭나루터가 10리 밖에 있다. 왜상(倭商)들이 배를 타고 낙동강을 올라오다가 무거운 화물은 화원에 내려놓았다. 부산에서 돌밭까지는 강을 따라 300리 거리이다. 가벼운 물건인 소금이나 곡물과 같은 일상용품은 돌밭나루터에 내려놓았다고 한다. 돌밭나루터가 커져서 왜관(倭館)이 된 것이다.

당쟁이 가장 치열했던 숙종조에 매원과 돌밭의 '광리(廣李)'들은 남인(南人)의 선두에 서서 반대파인 노론(老論)과 싸웠다. 경신환국(1680)과 갑술환국(1694)에서 노론의 집중 공격으로 피를 많이 흘린 집안 중의 하나가 이 집안이다. 당쟁에 시달린 이 집안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내린 유훈은 '절대로 높은 벼슬을 하지 말라'였다. 6·25전쟁 때 폭격으로 이 동네의 수 백채 고택들이 피해를 입었다. 서울대 총장을 지냈던 이수성이 이 집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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