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강판권의 나무 인문학

[나무와 성리학] ③ 소나무와 우주

초암 정만순 2019. 1. 8. 07:35



[나무와  성리학] ③ 소나무와 우주



경북 영주 소수서원에 있는 경렴정. 중국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주돈이를 기리려고 조선 성리학자들이 만든 정자다. 강판권 교수 제공
경북 영주 소수서원에 있는 경렴정. 중국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주돈이를 기리려고 조선 성리학자들이 만든 정자다. 강판권 교수 제공


“엄마, 난 어디서 나왔어?”

엄마는 아이의 이러한 질문에 당황하지만, 인류는 10만년 전부터 이 땅에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묻고 또 물었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정확하게 이해하기까지 실로 엄청난 시간이 걸렸지만,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중국의 성리학자들은 우주와 인간 탄생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지금부터 1000년 전 송대의 주돈이(1017~1073)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주돈이의 호는 염계다. 고향 호남 여산 염계에서 서당을 짓고 살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주돈이를 ‘염계 선생’이라 부른다. 염계는 중국 성리학의 이론을 세운 사람이다.
고려 말 안향(1243~1306)은 염계가 기초를 세운 성리학을 처음 도입했다.
우리나라의 성리학자들도 당연히 염계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경상북도 영주 소수서원의 경렴정(景濂亭)이 바로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이 염계를 존경한 증거이다.
경렴정은 염계 선생을 기리는 정자이다. 경렴정의 ‘경’은 ‘존경하다’, ‘흠모하다’의 뜻이고, ‘렴’이 바로 염계의 ‘염’이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염계는 만년에 병이 들어 경치 좋은 여산에서 살면서 우주와 인간 탄생의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가장 고민한 것은 우주 탄생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염계는 우주를 탄생시킨 것이 ‘무극’(無極) 혹은 ‘태극’(太極)이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을 만들고 글을 써서 <태극도설>(太極圖說)이라 이름 붙였다.
한국인 중 <태극도설>의 내용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림에 대해서는 아주 익숙하다.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가 바로 주돈이의 <태극도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주를 탄생시킨 태극은 음과 양을 낳았다.
그래서 음과 양의 원리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음양의 원리는 세상의 원리를 음과 양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자를 음, 남자를 양으로, 땅을 음, 하늘을 양으로 표현했듯이, 음과 양의 원리는 지금도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음양은 다시 오행, 즉 수·화·금·목·토를 낳았다. 음양과 오행을 합한 것이 ‘음양오행’이다.
오행은 다시 여자와 남자와 만물을 낳았다. 여자와 남자는 만물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존재였다.
결국 주돈이는 자신이 태극을 통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태극도설>은 우주 탄생의 비밀을 설명한 작품이자 성리학의 기초를 제공했다.
주돈이가 우주 탄생의 비밀을 푸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이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래서 주돈이의 <태극도설>은 인륜의 근원을 찾는 과정이었다.
주돈이보다 100년 뒤에 태어난 주희(1130~1200), 즉 주자가 성리학을 설명하기 위해 친구인 여조겸(1137~1181)과 함께 성리학의 입문서인 <근사록>(近思錄)을 편찬하면서 책의 첫머리에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넣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주돈이가 우주 비밀을 푸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고 살아가야 할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제사의 대상으로 나무를 선택했다
인간이 간택한 ‘우주목’은 정신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다
나무 없이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었다

주자는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통해 성리학을 집대성했다. 그래서 성리학을 ‘주자학’이라 한다.
주자는 주돈이의 태극을 ‘이’(理)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의미가 ‘성’(性)이다. 그래서 주자학을 ‘성리학’이라 부른다.
주자학은 불교가 성행한 당나라를 이은 송나라 시대에 유행했기 때문에 ‘송학’(宋學)이라 부른다.
그런데 주자는 북송시대의 정이와 정호 형제, 특히 정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성리학을 주자와 정이의 이름을 합쳐서 ‘정주학’(程朱學)이라 부른다.
정호와 정이 형제는 아버지의 권유로 주돈이에게 배웠다.
그러니 성리학은 주돈이에서 시작해서 정호와 정이로, 그리고 주자로 이어지는 긴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학문이다.
 서양 사람들은 성리학을 공자가 만든 유학과 구분하기 위해 ‘신유학’이라 불렀다.
성리학은 인간 존재의 원리를 이해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성리학을 ‘도학’(道學)이라 부른다
.

경렴정 옆의 소나무는 조선 사람들이 하늘과 소통하고자 ‘우주목’으로 삼은 나무다. 경북 안동 제비원. 강판권 교수 제공
경렴정 옆의 소나무는 조선 사람들이 하늘과 소통하고자 ‘우주목’으로 삼은 나무다. 경북 안동 제비원. 강판권 교수 제공

 
성리학에서는 중용(中庸)을 중시한다.
첫 구절, 즉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에서 ‘성’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다.
하늘이 만물에 공통으로 부여한 성을 ‘본성’(本性)이라 부른다.
인간의 본성은 ‘선’(善)하다. 따라서 인간이 태어나서 해야 할 것은 본성의 회복, 즉 본성의 실천이다.
성인이나 일반 사람이나 태어나면서 하늘이 부여한 성은 모두 같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두 성인의 성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착한 성품을 잃어버린다.
공자, 석가, 예수 등을 세계 3대 성인이라 부르지만, 성리학에서 보면 성인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성인은 자신의 착한 성을 온전히 실현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착한 성품을 방해하는 것은 욕심이다. 성인은 자신의 욕심을 걷어낸 무욕의 실천자들이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도 무욕의 단계에 도달하면 누구나 성인이다.
성리학은 성인의 길을 찾는 공부이다. 이 길은 누구나 갈 수 있다.
그래서 성리학을 남에게 보여주는 공부, 즉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공부, 즉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부른다.
성인으로 가는 공부법은 <대학>(大學)에 있다. 그래서 성리학에서는 <중용>과 함께 <대학>을 중시한다.

인간은 일찍부터 하늘의 움직임에 큰 관심을 가졌다.
인간은 번개와 천둥, 홍수와 가뭄 등을 하늘의 소리로 생각했다.
인간은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제사를 지냈으며, 제사의 대상으로 나무를 선택했다.
인간이 갖지 못한 몇 가지 장점을 나무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로 향하는 나무는 대부분 인간보다 키가 훨씬 커서 하늘과 금방이라도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존재이다. 나무는 인간이 딛고 사는 땅의 소식을 하늘로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던 것이다.
인간에겐 없는 나무의 또다른 장점은 오래 산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간택’되는 것은 아니다. 나무를 간택하는 기준도 민족마다 다르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한 기준이었다. 인간이 간택한 나무를 ‘우주목’(宇宙木) 혹은 ‘세계수’(世界樹)라 부른다.
우주목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나무를 우주목으로 부르는 것은 나무가 바다 깊은 곳과 땅과 하늘, 즉 삼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로 여겼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무 없이는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소통할 수 없었다.

인간이 나무를 통해 세상과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숭배하는 나무가 자신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주목으로 삼은 소나무와 느티나무는 늘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소나무는 한국의 나무 중에서도 유일하게 설화가 남아 있는 나무이다.
다음의 소나무 설화는 안동 제비원에서 탄생했다.

“성주대신아 지신오/성주 고향이 어디 메냐/경상도 안동 땅에/제비원에 솔 씨 받아/소평 대평 던져 떠니/그 솔 씨가 자라나서/밤이 되면 이실 맞고/낮이 되면 태양 맞아/그 솔 씨가 자라나서/소보동이 되었구나/소보동이 자라나서/대보동이 되었구나/그 재목을/왕장목이 되었구나/그 재목을 내루갈 제/서른서이 역군들아/옥똑끼를 울러 미고/서산에 오라 서목 메고/대산에 올라 대목 메고/이 집 돌 안에 재여 놓고/일자대목 다 모아서/굽은 놈은 등을 치고/곧은 놈은 사모 맞차/하개 서개 터를 닦아/초가삼간 집을 짓고/사모에 핑걸 달고/동남풍이 디리 불며/핑겅 소리 요란하다/아따 그 집 잘 지었다/그것 모도 거기 두고/시간 살이/논도 만석 밭도 만석/해마다 춘추로 부라 주자/묵고 씨고 남는 것은/없는 사람 객을 주자.”

     
한국인들이 소나무를 사람과 같은 인격체로 여긴 것도 설화만큼 중요한 대목이다.
한국 사람들은 소나무를 아주 깨끗한 나무를 의미하는 ‘정목’(貞木), 다른 나무보다 뛰어나다는 뜻의 ‘출중목’(出衆木), 모든 나무의 으뜸이라는 뜻의 ‘백장목’(百長木)을 비롯해 도덕적으로 뛰어난 뜻을 가진 ‘군자목’(君子木) 등으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