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꽃잎이 다섯 장이다. 성리학자들은 다섯 장의 꽃잎을 평화, 화해, 행운, 관용, 인내로 의미를 부여했다. 탁기형 선임기자
[나무와 성리학] ① 매화와 격물(格物)
퇴계 이황(1501~1570)
1570년 음력 12월8일, 임종 직전의 퇴계 이황(1501~1570·사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상좌도 봉화현감으로 있던 아들 준의 얼굴이 보였다.
퇴계는 온 힘을 다해 손짓했다. 그 손짓을 보자마자 남편 옆에 있던 며느리 봉화 금씨가 책상 위의 화분을 가져왔다.
화분의 나무는 매실나무였다. 퇴계는 매실나무를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가족들은 퇴계의 그런 행동에 익숙했다. 퇴계는 화분의 매실나무에 꽃이 피면 늘 그런 자세로 향기를 맡곤 했다.
방 안에 매향이 가득했다. 준은 나이 들면서 점차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매실나무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나무마다 손으로 만져보는 장면을 수없이 보았다.
퇴계는 아들 준에게도 나무를 만져보게 했다. “준아. 매실나무를 만지는 것이 바로 <대학>에 나오는 격물(格物)이다.”
격물의 ‘격’은 ‘이르다’, 즉 ‘이를 지(至)’와 같은 뜻이다. 격물의 ‘물’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뜻한다.
<대학>에서 격물,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등 8가지 공부의 방법 중 격물을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각각의 물마다 들어 있는 이치를 직접 파악해야만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인 ‘명명덕’(明明德), 즉 밝은 덕을 밝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격물은 각 사물에 들어 있는 이치를 직접 관찰해서 모든 사람이 하늘에서 받은 밝은 덕을 드러내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공부과정이다.
퇴계는 아들이 매실나무를 만지고 자세를 바로하자 다시 눈을 감았다.
가족들은 퇴계가 다시 눈을 감자 운명의 순간을 직감했다. 그는 눈을 감고 마지막으로 입을 뗐다.
그러나 가족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번갈아 되물었다.
퇴계는 한참 만에 간신히 입을 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매화분에 물을 주거라.”
평생 백 수가 넘는 시를 쓰고, 칠십 평생을 살다 운명하는 순간까지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긴 퇴계. 그가 그토록 매화를 사랑한 연유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매일 매실나무를 보면서 격물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후조당 아래 한 그루 매실(後凋堂下一株梅)/ 봄 저물어 빙상에서 홀로 피었네(春晩氷霜獨擅開)/ 어찌 말하랴 조정의 문서가 전날 내려와(豈謂天書下前日)/ 아름다운 약속이 깨어졌음을(能令佳約坐成頹)
매실이 나를 속인 게 아니라 내가 매실을 저버리니(梅不欺余余負梅)/ 맑고 깊은 회포를 서로 펴는 것이 막혔네(幽懷多少阻相開)/ 풍류가 도산 절우사에 있지 않았다면(風流不有陶山社)/ 심사가 여러 해 전부터 모두 무너졌으리(心事年來也盡頹)
두 편의 시는 퇴계가 죽기 6개월 전인 한식 때 지은 마지막 작품이다.
퇴계는 후조당의 주인인 김언우와 매실나무를 감상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미안한 마음에 두 편의 시를 그에게 보내 한바탕 웃고자 한 것이다.
시 속에서 퇴계는 매실나무의 꽃을 보지 못해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
특히 약속을 어긴 것과 관련해서 매화를 속였다는 표현이 가슴을 울린다.
절우사는 현재 도산서원 내 도산서당 동편의 매화밭이다.
절우사는 은자를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중국 동진시대의 도연명(365~427)이 사랑한 소나무와 국화와 대나무에 매화를 보태서 만든 퇴계의 격물 공부 공간이었다.
도산서당을 완성한 퇴계는 개울가의 매화를 만난 후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개울가에 영롱한 매화 두 가지 서 있는데(溪邊粲粲立雙條)/ =앞 숲에 향기 미치고 다리에 꽃빛 비추네(香度前林色映橋)/ 서리 바람 일으켜 쉽게 얼까 걱정하지 않지만(未
慝風霜易凍)/ 다만 따스한 기운 받아 옥빛이 사라질까 걱정이네(只愁迎暖玉成消)
도산서원 전경. 강판권 교수 제공
임종 직전 퇴계가 손짓했다
며느리가 매실나무를 가져왔다
“매실나무를 만지는 게 격물이다”
퇴계가 마지막으로 입을 뗐다
“매화분에 물을 주거라”
며느리가 매실나무를 가져왔다
“매실나무를 만지는 게 격물이다”
퇴계가 마지막으로 입을 뗐다
“매화분에 물을 주거라”
매실 꽃잎은 얼음처럼 맑다
꽃잎 다섯장은 평화, 화해, 행운, 관용,
인내를 뜻했다
꽃받침은 뒤로 젖혀지지 않되 둥글다
선비들은 이런 꼿꼿함을 사랑했다
꽃잎 다섯장은 평화, 화해, 행운, 관용,
인내를 뜻했다
꽃받침은 뒤로 젖혀지지 않되 둥글다
선비들은 이런 꼿꼿함을 사랑했다
퇴계는 나이가 들면서 도산서당에도 자주 매화를 보러 가지 못했지만, 때론 매화를 찾아가 겨울의 추위로 상한 꽃봉오리를 본 후 안타까운 심정을 시로 남기기도 했다.
환갑을 지나면서 퇴계의 건강은 좋지 않았다.
66살 때는 왕명을 받아 영천으로 가다가 병이 나서 왕의 명을 받들지 못하고 그곳에 머물면서 군수 김세훈이 세운 쌍청당의 매화를 감상했으며, 돌아오면서 예천에 머물다 매실나무 가지를 꺾어 거처하는 곳까지 가져왔다.
퇴계는 꺾어 온 매실나무 가지를 책상 위에 두었지만, 매화의 향기가 줄어들까 차마 계속 바라보지 못했다.
퇴계가 매실나무와 대화하는 장면은 그의 매실나무 사랑이 얼마나 지독했는지를 잘 보여줄 뿐 아니라 격물의 극치를 보여준다. 퇴계는 매화를 ‘옥선’(玉仙)에, 매화는 퇴계를 ‘학’에 비유했다.
매화가 퇴계에게 보낸 ‘매화가 답하다’(梅花答)는 다음과 같다.
나는 관포에서 고산을 떠올리는데(我從官圃憶孤山)/ 그대는 구름 계곡 꿈꾸며 나그네 잠자리에 있구려(君夢雲溪客枕間)/ 웃으며 만날 것을 하늘이 도와주니(一笑相逢天所借)/ 선학이 사립문을 함께할 필요가 없으리라(不須仙鶴共柴關)
날이 갈수록 퇴계의 도산서당 매실나무에 대한 격물 횟수는 늘어났다.
어떤 때는 서당을 찾아 매실나무 시를 10수나 지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은 후로는 술을 먹지 않았지만, 서당의 매실나무 옆에 술 한 병을 두고 매실나무와 시로 대화하면서 술을 권하기도 했다.
퇴계가 유독 매실나무를 통해 격물한 것은 이 나무의 삶이 자신의 정신세계 혹은 이상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선비들은 매서운 추위를 뚫고 꽃을 피우는 매실나무의 의연한 기상을 사랑했다.
특히 퇴계는 매실나무의 꽃을 사랑했다.
퇴계가 매실나무의 꽃을 그토록 사랑한 것은 이 나무의 꽃이 다른 나무의 꽃과 달리 얼음과 옥처럼 맑기 때문이다.
장미과의 매실나무는 꽃잎이 다섯 장이다.
성리학자들은 다섯 장의 꽃잎을 평화, 화해, 행운, 관용, 인내로 의미를 부여했다.
매실나무의 꽃은 지난해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피고, 꽃자루는 아주 짧다.
매실나무의 꽃받침은 뒤로 젖혀지지 않고 둥글다.
이러한 꽃받침은 꽃잎이 뒤로 젖혀지지 않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선비들은 매실나무 꽃이 뒤로 젖혀지지 않는 이러한 꼿꼿한 모습을 사랑했다.
따라서 다섯 장의 꽃잎은 다섯 장의 붉은색 꽃받침에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꽃받침은 꽃잎이 떨어진 뒤에도 매실이 열려 자리를 잡을 때까지 남아 있다.
꽃받침은 둥글고 신맛을 내는 열매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순간까지 제 역할을 다한 뒤에 떨어진다.
꽃받침이 떨어지면 달걀형의 잎이 돋아 성장하는 열매를 보호한다.
갈잎 중간키 나무 매실나무는 늙어서도 아름답다. 짙은 회색의 껍질을 가진 매실나무는 살찌지 않고 마른 모습이다.
매실나무의 이러한 몸은 선비들이 꿈꾸는 모습이었다.
살찌지 않고 짙은 회색의 매실나무에서 꽃이 피면 꽃은 훨씬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퇴계가 임금의 요청에도 수없이 관직을 사양한 것도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 매실나무의 삶과 벌어지지 않고 오므라져 있는 매실나무의 꽃에서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도산서당의 매실나무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매실나무를 격물하기 위해 찾아다녔지만, 그중에서도 지리산 자락의 단속사지 옆에 살고 있는 ‘정당매’(政堂梅)를 잊을 수 없다.
정당매는 고려 말 대사헌을 역임하고 정당문학(벼슬 이름)을 지낸 강회백(1357~1402)이 심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600살의 매실나무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승용차로 3시간 이상을 달려 정당매를 만나러 간다.
나무와의 만남이 곧 격물이고, 격물이 곧 중요한 공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퇴계를 비롯한 성리학자들 중에서 위대한 스승으로 꼽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한 그루의 나무를 공부의 대상으로 삼아 격물을 실천했다.
인간은 누구나 격물을 통해 위대한 존재로 성장할 수 있지만, 퇴계처럼 한 그루의 나무를 절실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
정당매를 찾아가는 과정과 해후는 그 어떤 것보다 좋은 공부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