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巨樹 保護樹 記念物/경북 노거수

선비 집안의 꿀밤나무

초암 정만순 2018. 10. 1. 14:10




선비 집안의 꿀밤나무

                             

                                 
꿀밤나무라고 하면 상수리나무와 도토리나무를 모두 가리킨다.
참나뭇과에 속하는 나무들이다.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상수리 열매와 도토리 열매를 '꿀밤'이라고 부른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그냥 도토리라고 부르지 꿀밤이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조선시대 쌀이 부족한 데다가 흉년이 들면 안동·예안 지역에서는 도토리·상수리 열매를 먹었다.
배고플 때 먹으면 꿀밤이었던 것이다.
비가 오지 않아서 흉년이 들면 곡식은 자라지 못하지만, 도토리는 자랄 수 있었다.
도토리·상수리나무는 뿌리가 땅 밑으로 깊게 들어가는 습성이 있어서
가뭄이 들어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쪽 지역에서 도토리는 마지막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구황(救荒)식품이었던 것이다.
도토리·상수리의 떫은 맛을 제거하기 위해서 일단 물에 불려야 한다.
그리고 솥에 약간 찐 다음에 말려서 가루를 낸다.
이 가루를 보리나 다른 곡식 가루와 섞어서 죽을 쑤어 먹으면 흉년에 아사(餓死)는 면하는 것이다.
굶어 죽는 상황을 면하게 해주니 이것보다 더 귀중한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꿀밤나무라고 부를 만하다.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의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1431~1517) 선생 종가 앞에도
오래된 꿀밤나무가 있었다.
보백당은 후손들에게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이라는 유훈을 남긴 인물이다.
'우리 집에 보물이 없는데, 보물은 오로지 청백뿐이다'는 뜻이다.
20년 전 처음 보백당을 방문해서 현판에 쓰인 이 문구를 보았을 때
'우리 선비들이 이런 사람들이었구나, 이렇게 고결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동네 앞 성황당 주변에는 500~600년 된 꿀밤나무가 15그루쯤 남아 있다.
종택 담장 옆에도 2그루가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죽고 남은 것이 이 정도이다.
선조들이 흉년의 비상시에 먹으려고 심어놓았던 나무들이다.
흉년에 자기 집만 먹느냐? 그럴 수가 없다.
양반은 주변 공동체를 배려해야 하는 사람이다.
배려하는 사람이 선비이고, 양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