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聖經 속 植物

돌무화과나무(뽕나무)

초암 정만순 2018. 7. 22. 09:49



돌무화과나무(뽕나무)

[--, sycamore-fig tree]



[성서식물] 삭개오의 뽕나무는 돌무화과나무


예수님을 보기 위해 삭개오가 올라갔던 나무로 개역개정판에 단 한 차례 언급된다.

헬라어로 ‘쉬카모레아’인데 ‘쉬콘’(무화과)과 ‘모론’(뽕나무)의 합성어로 ‘무화과 뽕나무’로 불린다.

이는 무화과 비슷한 열매가 맺히는 뽕나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팔레스타인에서는 가장 흔하고 무화과보다 다소 질이 떨어지긴 하지만 열매도 많이 맺혀 가난한 자들의 식량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개역한글판에서는 ‘뽕나무’(눅 19:4). → ‘뽕나무’를 보라.

출처

라이프성경사전 이미지       



성경 식물 - 뽕나무(돌무화과나무)



삭개오와 돌무화과나무


누가복음 19

1.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삭개오를 만나 그와 그 집안을 구원하시는 내용입니다.

여리고는 가버나움과 함께 유대에서 세금이 가장 많이 징수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모든 세리들이 경쟁적으로 근무하고 싶었던 곳입니다.

당시는 현대처럼 정해진 세법과 세율이 없었기에 로마당국의 할당량에다가 재량 껏 세금을 부과하면 그것으로 부를 축척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버나움에 근무했던 마태도 매우 능력이 있었던 세리이었지만, 그보다 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의 삭개오입니다. 그는 세무서장이었던 것입니다.

그 직함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탁월한 사람인지 그리고 얼마나 착복하였는지 한 마디로 성경은 세리장이요 부자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보고자 했습니다.

그는 부자 관리처럼 예수님을 찾아 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예수님 앞에 나서서 죄인이라는 것도 밝힐 수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만나고 싶은 열망은 강했다고 봅니다.

앞에 놓여져 있는 장애물 즉, 주님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과 그리고 자신의 키가 작다는 점을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뛰어난 행정력으로 예수님의 길을 간파하였고 나무에 오름으로 그런 장애물을 넘었던 것입니다.

과연 한 나라의 가장 큰 세무서장다웠습니다.

그는 아마 그런 기지로 그 자리에 올랐을 것입니다. 장애물은 넘으라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다른 해설이 있습니다.

왜 하필 삭개오는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 갔을까요? 올라가기 쉬워서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올라가서요?

놀랍게도 후자가 맞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오랫동안 선교사님으로 계셨던 분의 글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돌 무화과 나무는 잎만 무성하고 실은 열매는 너무 떫어 먹을 수 없는 나무랍니다.

하지만 열매가 익을 때에 바늘로 작은 구멍을 내고(편칭해주고) 올리브 기름을 바르면 먹을 수 있는 무화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부들이 그런 작업을 하려고 나무에 올라갔는데 삭개오가 편승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므로 삭개오는 티도 내지 않고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더구나 잎이 무성하니 사람들의 시선도 피할 수 있고요.

그로서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어 돌 무화과 나무에 올라 간 것입니다.

 

삭개오는 나무에서 급히 내려와 예수님을 즐겁게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 고백은 자기 소유의 절반과 착복한 것의 4배를 갚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기부금은 수입의 20%정도라는 랍비들의 규정이 있었습니다.

또한 레위기와 출애굽기에 따르면 부당이득은 1/5를 더하여 상환해야 하고, 도둑질한 것은 4배로 갚아야 한다는 규율이 있었습니다.

소유의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했으니 그의 자선금은 파격적인 것이었고, 네 배로 갚겠다고 했으니 불법 수익에 대하여서는 최대로 변상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정말 그렇게 했다면 그는 남는 재산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부자 관원이 하지 못한 숙제를 그가 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

 

그는 세리장으로서 온갖 욕을 먹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집에 들어가자 뭇 사람들이 수근 대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여태껏 수근 댄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경우는 일반백성들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원망의 대상이었는지 알만한 구절입니다.

그는 자책감과 소외감으로 괴로워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때 주님이 그를 초청했다는 사실은 어두운 밤바다에서 헤매던 조난선이 항구를 만난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다만 남편을 잘 못 만나서, 아버지를 잘 못 만나서 죄인처럼 살았던 그 집안에 구원이 임했던 것입니다.







'숲과의 對話 > 聖經 속 植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람나무(올리브나무)  (0) 2018.07.22
가시까마중  (0) 2018.07.22
깟(고수)  (0) 2018.07.22
에셀나무(위성류)  (0) 2018.07.22
시트론  (0) 2018.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