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나무
허약한 양기 늘리는 광나무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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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수장(收藏)의 계절이라고 한다. 모든 것을 거두어 곳간에 쌓아두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겨울에는 모든 생명이 힘을 안으로 거두어들여 쌓은 다음 곳간의 문을 닫아걸어 감추어 두고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한다.
겨울은 음기(陰氣)가 성행(盛行)하는 계절이다. 음기는 살아나서 왕성하고 양기(陽氣)는 깊이 숨어서 잠들어 있다.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모든 기운을 모두 안으로 움추려 감추어 놓고 잠을 잔다. 겨울에는 모든 것이 내면(內面)으로 수축(收縮)하고 동면(冬眠)한다.
겨울철에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마치 폐관수행(閉關修行)하는 수도자와 같다. 산천초목(山川草木)의 모든 기운이 뿌리로 내려가서 땅 속에 깊이 잠들어 있다. 오소리와 곰, 너구리, 개구리, 뱀, 도마뱀 같은 동물들도 몸통 속을 영양물질과 지방덩어리로 잔뜩 채운 채로 땅속에 있는 굴혈(掘穴)에서 몸을 웅크린 채로 잠을 잔다. 다람쥐와 청설모도 도토리와 밤 같은 먹이를 썩은 나무 구멍이나 토굴 속에 가득 쌓아놓고 까먹으면서 잠을 잔다. 겨울을 업신여긴다고 하여 능동초(凌冬草)라고 부르는 보리 싹조차 엄동설한(嚴冬雪寒)에는 파랗게 얼어붙은 채로 생장을 멈추고 한 길이나 쌓인 눈을 이불처럼 둘러쓰고 잠을 잔다.
천인상응(天人相應)이라는 옛말이 있다. 자연과 사람이 서로 상응한다는 뜻이다. 겨울에는 사람의 몸도 계절의 변화를 따라서 신진대사 활동이 느려진다. 곧 신체의 모든 기능이 반쯤은 잠들어 있고 반만 깨어서 활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도 자연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어서 생활해야 한다. 겨울에는 좋은 영양물질로 몸을 충분히 보양한 다음 따뜻한 아랫목에 두꺼운 이불을 덮고 누워 잠을 자면서 푹 쉬어야 한다.
겨울에는 콩팥을 보양하라
겨울철에는 해가 짧고 밤이 길다. 사람들이 일은 적게 하고 잠을 많이 자도록 조물주는 낮을 짧게 하고 밤을 길게 만들어 놓았다. 모름지기 겨울철에는 양식과 땔감을 곳간에 가득 쌓아놓고 군불을 따뜻하게 지핀 방 아랫목에서 기나긴 밤을 늘어지도록 하품이나 하면서 실컷 잠을 자고 실컷 쉬어야 한다.
겨울철에는 한껏 게으르게 사는 것이 좋다. 몸도 마음도 게을러야 한다. 쉬어야 할 때 쉬지 않으면 몸도 병이 나고 마음도 병이 난다. 겨울에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야 한다. 겨울에는 일을 절반만 해야 한다. 사람은 해가 있는 동안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들어가 쉬거나 잠을 자야 한다. 밖에 나가서 추위에 떨면서 일하지 말라. 집 안에서 쉬거나 자면서 겉을 채우려 하지 말고 비어 있는 속을 채워야 한다. 겨울에는 눈을 안으로 돌이켜 침잠(沈潛)하여 머릿속과 골수(骨髓)를 청명한 기운으로 채워야 한다.
겨울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양기(陽氣)가 충만해지고, 늦게까지 잠을 자야 음기(陰氣)가 보양(補養)되어 음양(陰陽)이 평형(平衡)을 이룰 수 있다. 음양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야 질병이 생기지 않는다. 양기가 모자라는 사람은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고, 음기가 부족한 사람은 늦게까지 자는 것이 좋다. 이는 겨울철에만 해당되는 말이다. 반대로 봄과 여름에는 일찍 일어나서 개미처럼 부지런하게 일을 해야 한다.
겨울에는 날씨가 춥고 햇볕이 부족하다. 겨울철의 한랭(寒冷)한 기후를 일러 한사(寒邪)라고 한다. 한사는 곧 찬바람이다. 한사는 도적처럼 순식간에 몸에 침입한다. 한사가 몸에 들어오면 양기가 손상을 입어 오한(惡寒)이 들고 감기가 걸리고 몸살이 난다. 양기가 상하면 생명력이 약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큰 병이 나기 쉽고, 병이 한 번 나면 회복되기 어렵다. 아궁이에 장작을 넉넉히 넣고 군불을 지펴야 긴 겨울밤을 추위에 떨지 않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것처럼 겨울철에 신장에 양기를 한껏 모아서 쌓아 두어야 한사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
신장은 양기를 거두어 저장하는 곳간이다. 곳간은 제일 깊은 곳에 감추어 두어야 한다. 신장은 몸 속 가장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다. 그렇다면 양기란 무엇인가? 양기는 햇볕과 별빛과 달빛에서 오는 기운이다. 하늘에 있는 뭇 별들의 기운이 가득 쌓여서 이루어진 것을 양기라고 한다. 식물은 햇볕을 받아서 영양분을 만들고 달빛과 별빛을 받아 생명력을 만들어 씨앗이나 뿌리에 저장한다. 식물의 신장은 씨앗이거나 덩이뿌리다. 그러므로 식물의 씨앗이나 뿌리에 양기가 제일 많이 축적되어 있다.
신장에 양기가 충만해야 추위를 이겨낼 수 있고 면역력과 생명력, 종족을 보존하는 능력 곧 생식력이 강해진다. 신장의 양기가 약해지면 신진대사 기능이 약해지고 문란해져서 갖가지 질병이 생긴다. 그러므로 반드시 겨울에는 훌륭한 영양물질로 섭생(攝生)을 잘 해서 신장을 조양(調養)해야 한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 ‘겨울에 폐를 보양하지 않으면 신장이 상하고 다음해 봄에 기운이 부족하게 되어 위장에 병이 생긴다(冬氣之應 養藏之道也 逆之則傷腎 春爲痿厥 奉生者少)’고 했다.
우리 옛 속담에도 ‘겨울철에 보신(補腎)을 잘 하면 이듬해에 호랑이도 때려잡을 수 있을 만큼 기운이 나고, 반대로 겨울철에 보신을 못 하면 다음해에 병이 나서 고생을 한다’고 하였다. 겨울 동안 충분히 쉬면서 신장에 기운을 보충해 두지 않으면 반드시 이듬해에 큰 병이 생긴다. 마치 휴대전화기의 배터리를 미리 충분히 충전해 두지 않으면 그 다음날 전력이 모자라 휴대전화기를 제대로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광나무 열매가 콩팥을 보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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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부족해지기 쉬운 신장의 양기를 보충하는데 가장 좋은 약재가 광나무 열매다. 광나무는 잎과 열매가 모두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래서 빛 광(光) 자를 써서 광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광나무 열매를 한자로는 여정실(女貞實), 또는 여정자(女貞子)라고 부른다. 이는 여인의 정조를 곧게 만들어 주는 열매라는 뜻이다. 여인이 정기가 부족하면 절개를 잃어버리고 바람이 나기 쉽다. 정기(精氣)는 마치 깃털과 같아서 미약한 바람에도 이리저리 흩날려서 사라지기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정기는 한 곳에 차곡차곡 모아서 쌓아서 눌러 두어야 바람에 날리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정기는 실꾸리에 실을 감듯 몸속 한가운데 차곡차곡 감아서 쌓아두어야 한다.
여인이 광나무 열매를 늘 먹으면 정기(精氣)가 콩팥에 쌓여 성품이 정숙해져서 음란한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어디 여자만 그렇겠는가. 남자도 정력이 허약한 사람이 여색을 밝히기 마련이다. 콩팥에 정기가 가득 쌓여 있는 남자는 함부로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굳센 것은 바람에 잘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여정실이라는 이름은 여자를 더 여자답게 만들어 주고 남자를 더 남자답게 만들어 준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누구든지 여정실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예사롭지 않은 약효가 있는 약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광나무 열매는 겨울철에 콩알보다 약간 작은 열매가 까맣게 익어 반짝반짝 윤이 난다. 열매가 작으면서도 야무지다. 매끈한 표면에는 밀랍이 서리처럼 하얗게 붙어 있다.
광나무의 작고 까만 열매에는 햇볕과 달빛, 별빛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 마치 온갖 빛을 모아서 쌓아두는 축전지와 같다. 광나무는 이른 봄부터 겨울까지 긴 시간동안 잎에서 햇빛과 달빛, 별빛을 욕심껏 받아들여 열매에 저장한다. 광나무 열매에는 일 년 동안 우주에서 받아들인 뭇 햇빛과 별빛이 켜켜이 쌓여 있다. 광나무 열매는 온갖 빛을 모아 응축시킨 덩어리와 같다. 음기가 가장 왕성한 겨울철에 저 홀로 양기를 가득 모아서 쌓아 둔 것이 광나무 열매다.
광나무 열매는 동짓달 동짓날 자시(子時)에 채취한 것이 가장 약효가 좋다고 한다. 한 해 중에서 음의 기운이 극치(極致)에 이르렀을 때가 동짓날 자정이다. 극즉반(極則反)의 이치에 따라 계절의 음기가 가장 강할 때 광나무 열매의 양기는 가장 강해진다. 동짓달에 채취한 광나무 열매에는 북두칠성의 청명강기(淸明罡炁)가 가득 깃들어 있어서 아주 훌륭한 불로장생(不老長生)약이 된다. 북두칠성은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는 별이다. 그러므로 광나무 열매는 꼭 동짓날 한밤중은 아니더라도 동지 무렵에 채취한 것이 약효가 제일 좋다.
광나무 열매는 모든 식물의 열매와 곡식과 과일 중에서 빛깔이 가장 검다. 쥐눈이콩이나 검정깨는 겉만 검지만 광나무 열매는 겉과 속이 다 먹처럼 까맣다. 열매 중에서 겉과 속이 다 검은 것은 광나무 열매 말고는 비슷한 식물인 쥐똥나무 열매나 구룡목(九龍木) 열매 같은 것밖에 없다. 광나무 열매는 모든 검은 것 중에서 가장 검다. 검은 빛깔을 오색지모(五色之母)라고 한다. 곧 모든 색깔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검은 빛깔에서 모든 색이 나왔다. 검은색에는 모든 색깔이 다 들어 있다. 그림물감의 삼원색을 모두 합치면 검은 색이 된다.
색깔이 검은 약재는 오장(五臟)을 모두 보양하는 효능이 있는데, 특히 콩팥을 보양하는 효력이 제일 높다. 검은 색은 콩팥으로 들어간다. 검은색은 모든 색을 받아들여 저장하는 색이고, 신장은 생명력과 생존력, 번식력, 면역력을 저장하는 곳간이다. 모든 힘은 콩팥에 저장되어 있다. 무엇이든지 빛깔이 검은 것은 신장에 좋은 영양이 되고 보약이 된다. 뼛속까지 검은 오골계(烏骨鷄)가 그렇고 속까지 까맣게 익은 오디가 그렇다. 광나무 열매는 빛깔이 가장 검기 때문에 콩팥을 튼튼하게 하는데 가장 좋은 보약(補藥)이 될 수 있다.일시적인 오류로 인하여 이미지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원본 이미지가 삭제되어 이미지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내 로딩이 불가능한 큰 사이즈의 이미지입니다.
콩팥 강화에 으뜸 이지환의 유래
광나무열매를 주요 재료로 해서 만든 것으로 이지환(二至丸)이라는 약이 있다.
이지환의 유래에는 다음과 같은 한 이야기가 있다.
중국 명나라 때 안휘성에 왕여계(汪汝桂)라는 의원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몹시 총명하였으나 몸이 몹시 허약했다.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가 되는 꿈을 품고 공부를 열심히 하던 중에 아버지가 큰 병이 들었다.
재산을 모두 탕진해서라도 고치려고 애를 썼으나 고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죽기 전에 “너는 과거를 봐서 재상이 되려고 하지 말고 의학을 공부해서 훌륭한 의사가 되어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과거공부를 포기하고 의학을 공부하여 몇 년 뒤에는 인근 고을에서 제일 이름난 의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허약한 체질을 타고난 데다 공부를 열심히 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한 까닭에, 마흔 살도 채 되지 않아서 머리카락이 하얗게 희어지고 눈과 귀가 어두워졌으며 기억력이 희미해지고 허리와 무릎이 시큰거리는 등 온 몸이 쇠약해져서 마치 칠십 살이 넘은 노인처럼 되고 말았다.
어느 날 왕여계는 제자들을 데리고 약초를 캐러 산에 갔다.
날이 저물어 하룻밤을 묵으려고 산속에 있는 절간으로 가던 길에 풍모(風貌)가 예사롭지 않은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산속에서 수행을 하는 도사(道士)로 나이가 백 살이 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눈과 귀가 아주 밝았고 정신이 총명했으며 목소리가 우렁차고 머리카락이 까마귀처럼 검었으며 걸음이 빠르기가 마치 나는 새와 같았다.
왕여계는 그 노인을 숙소로 모시고 온 다음 무릎을 꿇고 발밑에 엎드려 간청했다.
“스승님! 저는 몇 년 동안 의학을 공부했으나 허약한 체질을 바꾸지 못하고 온갖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제발 저에게 양생(養生)의 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은 잠시 그를 살펴보고 나서 절간 마당에 있는 광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나무의 열매를 따서 꿀과 술로 반죽한 다음 쪄서 날마다 밥 대신 복용하면 병이 나을 것이오.”
왕여계는 그 도인(道人)이 가르쳐 준 대로 광나무 열매를 따서 꿀과 술로 반죽하여 쪄서 밥 대신 먹기 시작했다. 그
러나 맛이 좋지 않고 먹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도인이 일러준 처방에 자신의 지혜를 보태어 먹기에 좋고 효과도 더 낫게 처방을 개량했다.
곧 한련초(旱蓮草)를 오랫동안 달여서 우러난 물을 풀처럼 될 때까지 농축한 만든 다음 광나무 열매 가루를 섞어 반죽하여 알약을 만들었다. 그는 광나무 열매 가루와 한련초 농축액으로 만든 알약을 반 년 동안 복용하였더니 눈과 귀가 밝아지고 머리칼이 다시 검어졌으며 정신이 총명해지고 정력이 충만해져서 20대 젊은이와 다름없이 되었다.
몇 년 뒤에 왕여계는 절강성으로 행의(行醫)를 떠났다. 행의란 의원이 집을 떠나서 먼 고장에 가서 의술활동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덕망이 높은 유의(儒醫)들이 한 해에 한 번씩 집을 나서서 한 달 가량 팔도(八道)를 떠돌아다니면서 환자들을 구료하는 전통이 있었다.
왕여계는 절강성 여주(麗州)에서 우연히 고향 친구인 왕앙(王昻)을 만났다.
왕앙은 왕여계의 안색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예전과 달리 얼굴에서 빛이 나고 하얗던 머리칼이 까마귀처럼 검어졌으며 병색이 전혀 없었으므로 무슨 좋은 약을 복용했느냐고 물었다.
왕앙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덕분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날마다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간과 콩팥이 몹시 허약해져 있었다.
왕여계는 어릴 적 친구인 왕앙에게 광나무 열매와 한련초로 간과 콩팥을 튼튼하게 하는 약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왕앙은 왕여계가 알려준 대로 광나무 열매와 한련초로 약을 만들어 복용하고 20대 젊은이 못지않게 정력이 충만하고 몸이 튼튼해졌다.
왕앙은 왕여계의 탁월한 의술에 감탄하여 돈을 많이 주면서 자기 집에 머물면서 환자를 치료하도록 해 주었다.
광나무 열매와 한련초로 만든 약 덕분에 왕여계의 명성이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몇 년 뒤에 왕여계는 <의방집해(醫方集解)>라는 의학책에 광나무와 한련초를 이용해서 만든 처방을 수록하면서 그 처방에 이지환(二至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지환이란 이름은 광나무와 한련초의 채취시기를 두고 지은 것이다.
곧 광나무 열매는 동지(冬至)에 채취하는 것이 약효가 가장 높고, 한련초는 하지(夏至)에 채취한 것이 약효가 가장 좋다.
광나무 열매는 음기가 가장 높은 철에 따야 하고, 한련초는 양기가 가장 높은 철에 베어서 말려야 한다.
이지환은 동지와 하지의 두 시기에 채취한 지극한 효능이 있는 두 가지 약초로 만든 약이라는 뜻이다.
가장 검은 것 두 가지를 합쳐서 만든 이지환
광나무 열매와 한련초는 모든 약재 중에서 빛깔이 가장 검다. 광나무는 열매는 속까지 다 까맣고 한련초는 줄기나 잎을 자르면 맑은 진이 나와서 먹처럼 까맣게 변한다. 광나무 열매는 겨울을 대표하는 검은색 약재이고, 한련초는 여름을 대표하는 검은색 약재이다. 계절에 따라 빛깔이 가장 검은 두 가지 약초를 합쳐서 만든 약이 이지환이다.
광나무는 엄동설한이 다가오면 제 세상을 만난 듯 생기가 넘치며 동지 무렵이 되어야 열매가 속 중심부까지 먹빛으로 익어 진한 향기를 풍긴다. 한련초(旱蓮草)는 여름이 되면서 줄기와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하여 하지 무렵에 줄기 속에 검은 즙이 가장 많아진다.
한련초 역시 콩팥과 간의 기능을 튼튼하게 하고 피를 맑게 하며 머리칼을 검게 하고 잘 자라게 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광나무 열매는 이른 봄에서부터 한겨울까지 하늘의 청명한 별빛의 정기가 오랫동안 모여서 응축(凝縮)된 것이고, 한련초는 한여름 뜨거운 햇볕의 양기가 빠른 시간에 응집(凝集)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의 기운이 한데 모이면 정신을 총명하게 하고 콩팥과 간의 기능을 자양하는 데 가장 좋은 약이 되는 것이다.
이지환은 집에서 간단하게 환(丸)이 아니라 탕(湯)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물 1.5리터에 광나무 열매 30그램과 한련초 30그램을 넣고 두 시간쯤 약한 불로 끓여서 물이 절반쯤으로 줄어들게 하여 하루 동안 수시로 물이나 차 대신 마시면 된다.
날마다 달여서 먹기가 귀찮으면 알약을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 먼저 광나무 열매 500그램을 맑은 술을 한두 번 뿜어서 쪄서 말려서 가루를 낸다. 그 다음에 한련초 500그램에 물 10리터를 붓고 4시간 정도 끓여서 건더기는 건져내고 남은 물을 물엿처럼 될 때까지 졸여서 농축한다. 광나무 가루와 한련초 농축액에 꿀 60그램을 섞어 반죽하여 녹두알이나 오동나무 씨 만하게 알약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알약을 통에 담아서 보관해 두고 하루에 9그램씩 따뜻한 물로 두 번이나 세 번에 나누어 복용한다.
간과 콩팥 기능이 허약한 사람이 이지환을 복용하면 오랫동안 가물었던 땅이 단비를 만난 것과 같이 활력과 생명력이 넘치게 된다. 얼굴에서 환하게 빛이 나고 몸이 따뜻해지며 눈과 귀가 밝아지고 장의 기능이 좋아져서 변비와 설사가 없어지고 차츰 머리칼이 까맣게 바뀐다. 양기가 좋아지고 전립선이 튼튼해지며 기운이 나고 늙지 않고 오래 살 수 있게 된다. 이지환은 꾸준히 오랫동안 먹을수록 좋다.
이지환은 간과 콩팥을 보양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그러므로 간과 콩팥의 기능이 허약해서 생기는 여러 증상을 두루 치료한다. 곧 입맛이 쓴 것, 목이 마르는 것,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운 것, 눈앞이 가물거리는 것, 잠을 잘 못 자는 것, 꿈이 많은 것, 허리와 무릎에 힘이 없고 시큰거리고 아픈 것, 정액이 저절로 새는 것, 몸이 비틀리는 것, 머리털이 일찍 희어지는 것 등을 낫게 한다.
신경쇠약, 이명증, 불면증에도 효험 있어
한련초를 구하기 어려우면 광나무 열매만을 단방으로 써도 효과가 좋다. 광나무 열매에 청주(淸酒)를 뿜어 시루에 쪄서 곱게 가루를 내어 5그램씩 아침저녁으로 먹는다. 심장과 간, 콩팥이 튼튼해지고 변비가 없어지고 정력이 좋아지며 소변이 시원하게 잘 나간다. 허리와 무릎이 아픈 증상, 이명증, 신경쇠약, 불면증, 고혈압, 불임증, 냉증,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 등이 없어지고 눈이 밝아지며 피로가 없어진다. 모름지기 겨울철에 허약한 간과 신장을 보양하고 뇌기능을 좋게 하여 머리를 맑게 하는 데 가장 좋은 것이 광나무 열매다. 광나무 열매는 남녀를 가릴 것 없이 누구한테나 다 좋다.
광나무는 우리나라의 따뜻한 남해안과 서해안의 바닷가 지방이나 섬 지방에 저절로 나서 자라는 물푸레나뭇과에 딸린 늘푸른떨기나무다. 둥글둥글하고 두꺼운 잎이 보기에 좋고, 봄철에 하얗게 피는 꽃은 향기가 좋고 꿀이 많아서 벌과 나비가 많이 모여든다. 남쪽 지방에서는 뜰에 관상수로 심거나 더러 길옆이나 마당가에 심어 울타리로 삼기도 한다.
광나무가 자라지 않는 중부 이북의 추운 지방에서는 그 사촌뻘이 되는 쥐똥나무 열매를 대신 약으로 쓴다. 쥐똥나무는 겨울에 잎이 지는 것만 다를 뿐 생김새와 성질, 약효가 광나무와 거의 같다. 쥐똥나무를 민간에서는 물쪼가리나무라고 하고 한자로 남정목(男貞木)이라고 하며 북한에서는 검정알나무라고 부른다. 물쪼가리나무는 소갈병(消渴病) 곧 당뇨병을 낫게 해 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고, 남정목은 여정목보다 남자한테 더 좋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며, 검정알나무는 쥐똥나무라는 이름이 천박하다고 하여 고쳐 부르는 이름이다.
광나무 열매의 효능에 대해서는 황도연(黃道淵)이 지은 <방약합편(方藥合編)>의 약성가(藥性歌)에 간략하게 잘 설명되어 있다.
“여정실고오자발(女貞實苦烏髭髮) 거풍보허장근골(去風補虛裝筋骨)”
“여정실은 맛이 쓴데 수염과 머리칼 검게 하고, 바람과 나쁜 기운을 몰아내며 허약한 것을 보하고 힘줄과 뼈를 튼튼하게 하네.”
짠맛이 제일 강한 나무
광나무는 나무 중에서 짠맛 곧 함성(鹹性)이 강해서 다른 나무보다 오래 살고 여간해서는 벌레가 먹거나 병이 들지 않는다.
주로 까맣게 익은 열매를 약으로 쓰지만 새로 난 잎을 따서 살짝 덖어서 차로 우려내어 마셔도 좋다.
녹차보다 맛이 좋고 카페인이 들어 있지 않아서 몸에 이롭다. 봄
철에 새순을 따서 살짝 데쳐서 양념을 해서 나물로 무쳐 먹거나 밥 지을 때 넣어 나물밥으로 먹을 수도 있다.
광나무 열매는 겨울이 제철이다. 겨울철에 잘 익은 열매를 따서 햇볕에 말려 두고 약으로 쓴다.
맛은 쓰고 짜고 시고 떫으며 성질은 따뜻하고 독이 없다. 주로 간과 콩팥에 작용한다.
진액을 늘리고 뇌를 총명하게 하며 눈과 귀를 밝게 하고 기력을 좋게 하며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대소변을 잘 나가게 한다.
기침을 멎게 하고 갖가지 균을 죽이며 염증을 삭이고 암세포를 죽이거나 억제하는 등의 작용도 있다.
열매뿐만 아니라 잎, 껍질, 뿌리를 모두 약으로 쓸 수 있다.
여러 해 전에 겨울철에 광나무의 잎과 열매를 채취하여 가마솥에 넣고 오랫동안 달여서 우러난 물을 농축하여 고(膏)로 만들어 여러 종류의 환자들한테 써 본 적이 있다.
간과 콩팥의 기력이 쇠약해진 사람과 만성 피로, 양기부족, 무기력증, 신경쇠약, 당뇨병 환자들한테 특히 효과가 좋았다.
20년 동안 이명증으로 인해 귀에서 매미소리가 요란하여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한테 써 보았더니 6개월 만에 완전히 나았고, 다른 한 사람은 눈처럼 하얗던 머리칼이 까마귀처럼 검어지기도 했다.
요즘 한약 건재상에서 구할 수 있는 광나무 열매는 모두 중국산이다.
중국산은 곰팡이가 피었거나 상한 것이 많고 질이 떨어져서 약으로 쓰기 어렵다.
국산은 시중에 유통되지 않으므로 남쪽 지방에 가서 직접 채취하는 수밖에 없다.
조물주는 겨울철에 필요한 약초는 겨울철에 채취하도록 남겨 두었다.
광나무는 콩팥에 양기가 부족해지기 쉬운 겨울에 양기를 한껏 보태줄 수 있도록 하늘이 마련해 놓은 약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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