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숲 일반

生體時計

초암 정만순 2018. 3. 12. 10:32




生體時計

생명체 활동 주기 만드는 '생체 시계'… 유전자 명령받아 일정한 리듬 형성
식물은 온도·빛에 따라 유전자 작동… 계절 변화 감지해 봄 되면 꽃 피우죠


내일(22일)은 우리나라 24절기 중 하나인 소설(小雪)이에요. 24절기는 1년을 스물네 기간으로 쪼갠 달력의 일종인데, 이 중 소설은 겨울의 둘째 절기에 해당하지요. 첫눈이 온다는 뜻으로 매년 11월 22~23일이 소설이에요.

예로부터 우리 조상은 소설에 아주 추워야 보리·밀 농사가 잘된다고 믿었어요. 속담에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요. 보리·밀 씨앗을 보통 늦가을에 심는데, 이맘때쯤 기온이 뚝 떨어져야 곡식의 '생체 시계'가 잘 돌아간다고 믿은 거예요. 오늘은 '생체 시계'에 대해 알아봐요.

◇냉장고로 생체 시계를 조절한다?

'생체 시계(biological clock)'란 생명체 내에서 일어나는 주기적 변화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사람은 뇌하수체(뇌 한가운데 있는 기관으로 호르몬 분비를 총괄)에서 조절하는데, 보통 24시간 주기로 호르몬 분비나 심박 수, 체온 등을 조절해서 일정한 생체 활동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주지요.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에 도착하면 가장 어려운 것이 시차(時差)에 적응하는 것이에요. 한군데서 오래 살면 그 지역 낮과 밤에 맞춰 몸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지구 반대편인 나라로 이동하면 갑자기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내 몸의 생체 시계와 현지 시각이 어긋나는 상황이 벌어져요. 이때 우리는 잠이 잘 오지 않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신체 부적응을 겪게 되지요.

생체 시계
/그래픽=안병현
최근 발표한 노벨 생리의학상도 초파리를 이용해 생체 시계 작동 원리를 밝혀낸 미국 과학자 세 명이 받았는데요. 우리 몸속에서 생체 시계를 움직이고 조절하는 '피리어드' 유전자를 찾아내 어떤 일을 하는지 밝혀냈답니다.

생체 시계 속 유전자는 해가 진 캄캄한 밤에는 생체 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을 세포에 저장하고, 해가 떠 있는 낮에는 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을 분해해요. 유전자의 명령을 받아 세포는 마치 시계처럼 움직이지요. 그런데 이 유전자를 변형했더니 생체 시계가 망가져 생체 주기가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한 거예요.

이런 세포가 모여 있는 사람 몸이 생체 시계의 활동에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며칠 동안 밤늦게까지 잠을 안 자고 일하거나, 내가 살던 시간과 여행지 시간이 달라지면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부적응을 겪는 이유가 밝혀진 것이지요.

식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체 시계가 있어요. 식물의 생체 시계는 옛 소련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1898~1976)가 발견했답니다. 당시 소련 농부들은 늦가을에 밀을 심었어요. 밀은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가 오기 직전 싹이 텄다가, 땅이 따뜻해지는 봄이 오면 꽃을 피웠지요.

그런데 1920년대 예년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내자 이듬해 봄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새싹은 돋았는데 꽃이 피지 않는 거예요. 꽃이 피지 않으니 벌과 나비가 꽃가루를 묻힐 수 없었고 열매(밀)도 맺을 수 없었어요.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식량 부족으로 굶주려야 했지요.

리센코는 밀의 '생체 시계'가 반드시 추위를 겪고 나서야 작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밀 씨앗을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보관한 뒤 따뜻한 밭에 심었지요. 그랬더니 실제 길고 추운 겨울을 보내지 않았던 밀이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우리 조상이 '소설이 추워야 농사가 잘된다'고 믿었던 것도 바로 이런 생체 시계의 원리 때문이랍니다.

◇온도와 빛으로 작동하는 생체 시계

식물에는 눈도 없고 코도 없는데, 어떻게 계절을 구별하는 걸까요? 많은 과학자가 연구했더니, 식물이 봄과 겨울을 알아차리는 것은 생체 시계 속 '스위치' 구실을 하는 유전자 덕분이었답니다. 이 유전자는 온도와 빛으로 작동하지요.

늦가을에 심은 밀과 보리에는 이미 '개화 억제 유전자'가 작동하고 있어요. 겨울이 오기 전 미리 꽃이 피는 것을 막아주는 유전자이지요. 그런데 이 유전자는 '저온 감지기'라는 또 다른 유전자의 도움을 받아요. 길고 혹독한 겨울이 지속되면 '저온 감지기'가 발현하면서 '개화 억제 유전자'의 작동을 멈추고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이지요. 반면 겨울이 따뜻하고 짧으면 '저온 감지기'가 발현하지 않아 '개화 억제 유전자'가 계속 유지돼요. 봄이 되어도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이죠.

계절을 구별하는 데는 낮의 길이, 광(光)주기도 매우 중요한 요인이에요. 보통 봄에서 여름으로 갈수록 낮의 길이(광 주기)가 점점 길어지고, 반대로 가을에서 겨울로 가면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죠. 식물은 이를 통해 계절을 알 수 있어요.

광 주기가 식물의 생체 시계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우연히 발견됐어요. 1920년대 미국 농무부 산하 메릴랜드연구소에 근무하던 가너 박사와 앨러드 박사는 담배로 다양한 유전자 실험을 하다, 우연히 '매머드 담배'라는 돌연변이 담배를 얻었어요. 이 담배는 꽃은 피우지 않고 키만 엄청나게 자라는 담배였지요. 연구자들은 그 담배를 들판에 내다 버렸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가너 박사가 매머드 담배에서 꽃이 피는 것을 발견했어요. 온실에선 꽃이 피지 않던 담배가 들판에선 꽃을 피운 거예요. 연구 결과, 온실은 밤늦게까지 인공 조명이 낮처럼 환하게 비치지만 야외는 광 주기가 짧기 때문에 식물이 이를 계절 변화로 인식하고 꽃을 피운 거였지요.

내년 봄이면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꽃을 피울 거예요. 이런 꽃도 사실은 올해 늦가을에 겨울눈을 만들고 추위를 견뎌낸 뒤 이듬해 봄에 꽃을 피우는 거랍니다. 우리가 봄에 만나는 꽃들도 사실은 늦가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몰라요.



서금영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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