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대구
조선 후기에만 해도 대구엔 98개 저수지와 83개 보가 있었다
동화천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를 아우르는 스토리의 보고(寶庫)다. 극적이고 애틋한 이야기가 깃들어있는 유적과 인물 스토리가 물을 무대로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
탈레스가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한 것은 이러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최근들어서는 산업의 영역으로 확장돼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도 진행형이다. 물의 변주는 무궁무진하다. 대지를 품고 흐르며 마을을 만들고 도시를 발전시킨다. 동시에 그윽하고 숱한 이야기를 피워왔다. 그러한 이야기는 역사적이면서 사람살이의 두께와 깊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물에 관련된 민속신앙과 설화·신화가 많이 등장하는 까닭이다. 대구를 수식하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물의 도시’이다. 도심을 품으며 관통하는 너른 강과 민초들의 삶이 투영된 하천이 실핏줄처럼 연결된 도시가 바로 대구다. 곳곳에 남아있는 저수지는 수변공간으로 탈바꿈해 새로운 삶의 더께가 채워지고 있다. 물길을 따라 펼쳐진 이야기는 대구의 역사이면서 정체성이기도 하다. 특히 금호강과 동화천, 대구의 젖줄로 불리는 신천은 스토리의 보고(寶庫)나 다름없다. 대구 유학의 역사가 깃든 현장이면서, 민초들의 삶이 강과 하천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영남일보는 대구시와 공동으로 ‘물의 도시 대구’시리즈를 16회에 걸쳐 연재한다. 시리즈는 대구를 대표하는 금호강과 동화천, 그리고 신천을 중심으로 다룬다. 물길을 따라 펼쳐진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1. ‘물의 도시’ 대구
대구를 수식하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물의 도시’다. 너른 강과 민초들의 삶이 투영된 하천이 실핏줄처럼 연결된 도시가 바로 대구다. 특히 물길을 따라 펼쳐진 이야기는 대구의 역사이면서 정체성이기도 하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신천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
대구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도시다. 북쪽에는 해발고도 1천193m의 팔공산이, 남쪽에는 1천84m의 비슬산이 들어서 있다. 그 사이를 크고 작은 산들이 능선을 이루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해발고도 1천m가 넘는 높은 산이 거대 도시를 품고 있는 형세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사방을 높게 둘러싼 산은 그 복판에 넓은 들을 펼쳐 놓았고, 강과 하천이 들판을 품고 가로지르며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낙동강은 대구를 감싸안으며 굽이치고, 금호강은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팔공산지에서는 동화천을 비롯해 율하천·불로천·팔거천 등이, 비슬산지에서는 대구의 젖줄인 신천을 비롯해 욱수천·달서천·진천천 등이 발원해 도심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산과 들판 그리고 강과 하천이 조화를 이루며 균형 잡힌 자연환경을 갖춘 도시, 대구를 물의 도시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대구의 중심 생태축은 팔공산지~동화천~금호강~신천~비슬산지(앞산)로 이어진다. 산과 물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이러한 생태축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대구를 품고 가로지르며 실핏줄처럼 연결된 강과 하천은 도심을 풍요롭게 하는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옛 문헌에도 대구가 강과 하천의 도시, 물의 도시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대구도호부 형승(形勝) 편과 ‘여지도서’ 대구 형승편에는 ‘대천우영사방지회(大川紆 四方之會)’라는 구절이 나온다. ‘큰 내가 구불구불 얽혀 있으니 사방에서 모인다’라는 뜻으로 예부터 대구가 물의 도시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낙동강이 대구 감싸안고 흐르고
시내에는 금호강·동화천·신천
영웅부터 민초까지 이야기 寶庫
세종실록 “대구 큰 저수지 4개”
강 이용 물류운송 발전 원동력
물길따라 흩어져있는 이야기들
묶어서 벨트화하는 전략이 필요
강과 하천뿐이 아니다. 대구는 물이 풍부한 저수지의 도시였다. 세종실록 경상도지리지에는 대구에 성당제(聖堂堤)·불상제(佛上堤)·둔동제(屯洞堤)·부제(釜堤) 등 4개의 큰 저수지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후기(1899년, 1907년)에 발간된 ‘대구부읍지’ 제언조에는 98개의 저수지와 83개의 보 이름이 나온다. 물론 도심 개발로 현재는 일부 저수지만 남아 있지만 대구는 강과 하천, 저수지가 많았던 도시였다.
고대부터 물과 공존해온 자연환경은 대구를 살찌우고 풍요롭게 한 배경이었다. 물은 인류가 정착하고 마을을 형성하는 주요 기반이었다. 무엇보다 원시적인 농업기술로 터전을 마련할 때 큰 하천 유역을 선택했다. 생리적으로 물을 요구하는 기본적인 필요성 외에도 농경활동에서 물이 필수요소였기 때문이다. 하천은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생명의 물줄기’나 다름없었다. 하천은 다시 크고 작은 저수지를 곳곳에 만들었다. 하천의 물을 저장한 저수지는 우리 몸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처럼 들판 구석구석에 농업용수를 제공했다.
강과 하천이 많았던 물의 도시 대구도 마찬가지였다. 물길 주변을 중심으로 사람이 정착하고 마을이 번성하며 도시가 발달했다. 그 증거가 대구의 강과 하천 주변에서 발견된 고대 유적과 취락의 흔적들이다. 대구의 신천·진천천·욱수천·팔거천·동화천 등지에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과거 대구에는 3천여 기의 고인돌이 하천을 따라 분포했다고 한다. 대구에 사람이 정착하고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물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대구가 조선후기 경상도 내륙지방의 대표적인 상업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물’ 덕분이었다. 당시 대구는 경북에서 생산되는 곡물류와 약재류, 의복재료, 과실류, 연초 등 각종 상품작물이 모였다가 전국으로 거래됐다. 시장거래의 거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대구를 감싸 안고 흐르는 낙동강과 금호강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을 이용한 수운은 물류운송의 핵심이나 다름없었고 대구를 발전하게 한 성장동력이었다.
물의 가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물은 이야기가 생성하고 변화하며 무수히 가지를 쳐나가는 무대였다. 이야기는 전설처럼 떠돌기도 하고, 역사가 되어 시대를 관통하기도 한다. 영웅의 모습을 그려내고, 민초들의 삶을 투영한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해학적이며, 때로는 교훈적이다. 물길을 따라 펼쳐진 옛 이야기는 오늘의 교훈으로 되살아나고, 다시 내일의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한 이야기는 무엇보다 대구의 역사이면서 정체성이기도 하다.
#2. 금호강과 동화천, 그리고 신천
금호강과 동화천, 그리고 신천은 대구를 대표하는 강과 하천이다. 무엇보다 물길을 따라 수많은 이야기와 사람살이의 아련한 추억이 담겨 있는 스토리의 보고(寶庫)다. 영웅의 이야기부터 민초들의 애틋하고 살가운 사연까지 갖은 이야기가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수면 위에서 피어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금호강과 동화천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를 아우르는 ‘이야기의 백화점’이나 다름없다. 극적이고 애틋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유적과 인물 스토리가 물을 무대로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옛 사람들의 문학과 열정,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소통하고 교류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더욱이 동화천 하류인 금호강 합류 지점에서 상류로 올라갈수록 이야기를 품고 있는 다양한 유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대구지역 조선 유학의 르네상스 발흥지인 세심정과 나루터가 금호강변에 이야기를 펼쳐놓았고, 올곧은 선비의 신념을 느낄 수 있는 송계당과 서계서원이 동화천 지척에 서 있다. 또 선사시대 대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서변동 유적지와 광해군 태실, 수령 1천년의 연경동 느티나무가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 터도 동화천을 지척에 두고 자리하고 있다. 동화천은 또 고려 왕건과 백제 견훤의 동수전투의 현장이기도 하다. 대구의 대표적인 정자인 화수정과 환성정도 천을 마주하고 동·서변동에 위치하고 있다. 모두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의미있는 장소들’이다.
대구 도심을 관통하며 굽이굽이 흐르는 신천도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신천 역시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전 시대를 아우르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특히 공룡 발자국부터 구석기시대의 유적까지 역사시대 이전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곳이 신천이다. 또 신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은 대구판관 이서의 스토리를 비롯해 민초들의 삶이 투영된 기복신앙 이야기, 광복 직후 이재민들과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애환도 신천의 수면 위에 깃들어 있다. 대구의 명소로 거듭난 김광석길도 신천 변에 자리하고 있다. 신천을 대구의 역사와 문화가 태동하고 발달한 거점, 대구의 젖줄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호강과 동화천, 그리고 신천은 물의 도시 대구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대구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고 있는 이야기의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그 이야기들은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사람살이의 두께와 깊이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제 물길을 따라 흩어져 있는 이야기를 선으로 잇고 면으로 묶어 벨트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물의 도시 대구를 확고히 하는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영남일보가 강과 하천을 따라 흩어져 있는 이야기를 수집하고 체계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백승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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