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 遺跡 /佛敎 美術 建築

尋牛圖

초암 정만순 2018. 2. 12. 09:11


 


尋牛圖(심우도)=牧牛圖=十牛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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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적 세계를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선화가 십우도(十牛圖)이다.

    소는 말없이 자기 할 일을 한다.

    묵묵히 나아갈 길을 가며 봉사하는 소의 과묵함과 쉼 없는 정진력은 예로부터 불법에 자주 비유되었다.

    『아함경』에서는 수행자가 불법을 잘 수행하는 방법을 소치는 일에 비유하고 있으며,

    『법화경』에서는 보살도의 가르침을 소가 끄는 수레, 우거(牛車), 백우거(白牛車)에 비유하고 있다.

    불법의 심오한 뜻을 소가 만들어내는 우유, 낙(酪), 제호(醍醐)에 비유한 것은 널리 일반화된 일이었다.

    선종에서는 소의 말없는 정진력과 저력 있는 생명력에서 오로지 한길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납자(衲子)들의 본분(本分)을 볼 수 있었다.

    논밭을 갈고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일상 속의 소는 바로 행주좌와의 일상성 그대로 청정한 불성의 세계를 찾던 선사(禪師)들의 마음 그대로였다.

    그래서 깨달음의 대의를 소를 통해 시각화한 것이 십우도인 것이다.

    심우도(尋牛圖) 또는 목우도(牧牛圖)라는 이름은 마음을 소에 비유한 뜻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목우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것은 12세기 송대 곽암(廓庵)선사가 게송으로 정리한 십우도이다.

    제1은 심우(尋牛)이다. 우

    거진 수풀을 헤치고 소의 자취를 찾는다.

    제2는 견적(見跡)이다.

    소를 찾을 실마리가 되는 발자국을 본 것이다.

    제3은 견우(見牛)이다.

    자취를 따라 찾아 들어가 드디어 소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소의 성질은 알지 못한다.

    제4는 득우(得牛)이다.

    정신을 집중하여 소를 잡았으나 날뛰는 소를 뜻대로 다루지는 못하고 산 속으로 구름 속으로 헤매며 채찍을 가한다. 제5는 목우(牧牛)이다. 이제 뜻대로 길들여져 채찍과 고삐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사람을 잘 따르기에 이르렀다.

    제6은 기우귀가(騎牛歸家)이다.

    몸을 소등에 올려놓고 하늘을 쳐다보며 피리 불며 집으로 돌아온다.

    제7은 망우존인(忘牛存人)이다.

    소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소는 사라지고 사람만 한가롭다.

    달은 구름을 벗어나고 한줄기 서늘한 빛이 영겁의 밖을 비춘다.

    제8은 인우구망(人牛俱忘)이다.

    소도 소를 몰던 채찍도 소용없고 사람마저 텅 비었다.

     백 가지 새가 꽃을 물어오니 한바탕 웃음이로다.

    이제야 조사가 하나되는 경지에 선다.

    제9는 반본환원(返本還源)이다.

    본래 청정하여 한 티끌의 미혹함도 없으니 어찌 닦음을 더하랴.

    암자에 앉아 암자 이전이 무엇인가 보지 않아도 물 절로 잔잔하고 꽃 절로 붉다.

    제10은 입전수수(入纏垂手)이다.

     표주박 차고 거리에 들어 집집마다 다니며 더불어 사는 속에 성불하도록 한다.


    십우도

    소의 말없는 정진력과 저력 있는 생명력에서 일상성 그대로 청정한 불성의 세계를 찾는 선사들이 깨달음을 소를 통해 시각화한 십우도. 제1 소의 자취를 찾는 심우(尋牛).

    십우도

    제2 발자국을 본 견적(見跡).

    십우도

    제3 자취를 따라 찾아가 소를 보게 된 견우(見牛).

    십우도

    제4 소를 잡았으나 아직 뜻대로 다루지 못하고 채찍을 가하는 득우(得牛).

    십우도

    제5 뜻대로 길들여져 스스로 사람을 잘 따르는 목우(牧牛).

    십우도

    제6 소를 타고 피리 불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우귀가(騎牛歸家).

    십우도

    제7 소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소는 사라지고 사람만 한가로운 망우존인(忘牛存人).

    십우도

    제8 소도 없고 사람마저 텅 빈 인우구망(人牛俱忘).

    십우도

    제9 본래 청정하여 더 닦을 일이 없는 경지 반본환원(返本還源).

    십우도

    제10 거리에 들어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속에 성불하도록 하는 입전수수(入纏垂手).

    십우도는 선 수행의 과정과 의미를 소에 견주어 그림과 시로서 도상화하여 근원적인 진리를 깨치는 선을 시각화한 것이다. 깨침의 길을 걷는 수행자의 어려움과 깨달음 그리고 수행과 깨달음이 하나되는 세계에서 더 나아가 선의 일상화를 추구한다. 그림의 배경과 인물의 형상은 달라도 오늘에 우리의 언어와 정신으로 살아 읽힐 선화이다.

    이처럼 선화는 경설(經說)에 기반을 두지 않기 때문에 출발에서부터 생동적이다. 기존의 불화가 가고자 하는 길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예배의 대상이던 불화의 성스러움을 털어내고 차안(此岸)에서 고뇌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주체적인 자아를 찾는 견고한 의지를 표현한다. 따라서 대담한 생략과 추상화가 필연적이다. 화면의 가지런한 정돈과 구성도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림은 그림일 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바로 볼 때, 의심의 둥치가 눈 녹듯 사라지고 대명천지가 열릴 것이다.


    일원상(경봉, 지본, 69×69cm)

    본래 둥그렇다고 말한 적도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모나지 않고 둥그런 진리 일원상. 우주 만상이 이 안에 있다고 제발은 덧붙인다.



    심우도(尋牛圖)

     

    십우도라고도 하며, 심우도는 본래 도교의 팔우도(八牛圖)에서 유래된 것으로 12세기

    중엽 중국 송나라 때 곽암선사(廓庵禪師)가 두장면을 더 추가하여 십우도(十牛圖)를

    그렸다고 합니다.

    십우도는 마음의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어린 동자가 소(마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열가지 그림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심우도의 내용>

     

    ① 심우(尋牛): 동자가 소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 자신의 본성을 잊고 찾아 헤매는 것

         은 불도 수행의 입문을 일컫는다.

     

     

    ② 견적(見跡): 동자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간다. 수행자는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본성의 발자취를 느끼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③ 견우(見牛): 동자가 소의 뒷모습이나 소의 꼬리를 발견한다. 수행자가 사물의 근원

         을 보기 시작하여 견성(見性)에 가까웠음을 뜻한다.

     


    ④ 득우(得牛): 동자가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아 막 고삐를 건 모습이다.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성(佛性)을 꿰뚫어보는 견성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즉 이제 본성을 찾았지만 아직 번뇌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더욱 열심히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⑤ 목우(牧友): 동자가 소에 코뚜레를 뚫어 길들이며 끌고 가는 모습이다. 얻은 본성을

         고행과 수행으로 길들여서 삼독(三毒: 탐.진.치)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 소도 점점 흰색

         으로 변화된다. 깨달음 뒤에 오는 방심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했다.

     



    ⑥ 기우귀가(騎牛歸家): 흰소에 올라탄 동자이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더 이상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무애의 단계로 더할 나위없이 즐거운 때이다.

         드디어 망상에서 벗어나 본성의 자리에 들었음을 비유한 것이다.

     



    ⑦ 망우존인(忘牛存人): 소는 없고 동자만 있다. 소는 단지 방편일 뿐 고향에 돌아

         온 후에는 모두 잊어야 한다. 즉 본각무위(本覺無爲)로 돌아왔으나 쉬지 않고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⑧ 인우구망(人牛俱忘): 소도 사람도 실체가 없는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텅빈

         원(圓)상만 그려져 있다.  즉, 정(情)을 잊고 세상의 물(物)을 버려 공(空)에 이르렀다

         것을 비유한 것이다. 

     


    ⑨ 반본환원(返本還源):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붉게 피어 있는 산수풍경만이 그려져 있

         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는 것으로 이는 우주를 아무런 번뇌 없이 참된 경지

         로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즉 그의 본심은 본래 청정하여 아무 번뇌가 없어 산은 산대

         로 물은 물대로 보게 되며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얻었음을 비유한 것이

         다.



    ⑩ 입전수수(入廛垂手): 지팡이에 도포를 두른 행각승의 모습으로 많이 그려진다. 이는
         육도중생의   시장골목에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는 뜻으로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나아감을 뜻한다.  즉, 이타행(利他行)을 한다.
     
    * 사진출처: 제(venuslv)가 찍음   장소: 서울 봉국사 만월보전 외벽의 심우도


    十牛圖頌



    ①심우(尋牛):동자승이 소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

    자신의 본성을 잊고 찾아헤매는 것은 불도 수행의 입문을 일컫는다.

    망망발초거추심(茫茫撥草去追尋)
    수활산요로갱심(水闊山遙路更深)
    역진신피무처멱(力盡神疲無處覓)
    단문풍수만선음(但聞楓樹晩蟬吟)

    아득히 펼쳐진 수풀을 헤치고 소 찾아 나서니,
    물은 넓고 산은 먼데 길은 더욱 깊구나.
    힘 빠지고 피로해 소 찾을 길은 없는데,
    오로지 저녁 나뭇가지 매미 울음만이 들리네.

    In the pasture of this world, I endlessly push aside the tall grasses in search of the bull. Following unnamed rivers, lost upon the interpenetrating paths of distant mountains, My strength failing and my vitality exhausted, I cannot find the bull. I only hear the locusts chirring through the forest at night.

    ②견적(見跡):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간다.

    수행자는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본성의 발자취를 느끼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수변림하적편다(水邊 林下跡偏多)
    방초리피견야마(芳草離披見也마)
    종시심산갱심처(縱是深山更深處)
    요천비공즘장타(遼天鼻孔 藏他)

    물가 나무 아래 발자국 어지럽게 많으니,
    방초를 헤치고서 그대는 보는가 못보는가?
    가령 깊은 산 깊은 곳에 있다 해도
    하늘 향한 등창코를 어찌 숨기랴!

    Along the riverbank under the trees, I discover footprints! Even under the fragrant grass I see his prints. Deep in remote mountains they are found. These traces no more can be hidden than one's nose, looking heavenward.

    ③견우(見牛):동자승이 소의 뒷모습이나 소의 꼬리를 발견한다.

    수행자가 사물의 근원을 보기 시작하여 견성(見性)에 가까웠음을 뜻한다.

    황앵지상일성성(黃鶯枝上一聲聲)
    일난풍화안유청(日暖風和岸柳靑)
    지차갱무회피처(只此更無回避處)
    삼삼두각화난성(森森頭角畵難成)

    노란 꾀꼬리가 나뭇가지 위에서 지저귀고,
    햇볕은 따사하고 바람은 서늘한데 언덕의 버들은 푸르기만 하다
    더 이상 빠져나아 갈 곳이 다시 없나니,
    위풍당당한 쇠뿔은 그리기가 어려워라.

    I hear the song of the nightingale. The sun is warm, the wind is mild, willows are green along the shore, Here no bull can hide! What artist can draw that massive head, those majestic horns?

    ④득우(得牛):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아 막 고삐를 건 모습이다.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성(佛性)을 꿰뚫어보는 견성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갈진정신획득거(竭盡精神獲得渠)
    심강력장졸난제(心强力壯卒難除)
    유시재도고원상(有時裳到高原上)
    우입연운심처거(又入煙雲深處居)

    온 정신을 다하여 이 놈을 잡았으나,
    힘 세고 마음 강해 다스리기 어려워라.
    어느 땐 고원 위에 올랐다가도,
    어느 땐 구름 깊은 곳에 들어가 머무누나.

    I seize him with a terrific struggle. His great will and power are inexhaustible. He charges to the high plateau far above the cloud-mists, Or in an impenetrable ravine he stands.

    ⑤목우(牧友):동자승이 소에 코뚜레를 뚫어 길들이며 끌고 가는 모습이다.

    얻은 본성을 고행과 수행으로 길들여서 삼독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 소도 점점 흰색으로 변화된다.

    편삭시시불리신(鞭索時時不理身)
    공이종보입애진(恐伊縱步入埃塵)
    상장목득순화야(相將牧得純和也)
    기쇄무구자축인(旣鎖無拘自逐人)

    채찍과 고삐를 늘 몸에서 떼지 말라.
    두렵도다, 멋대로 걸어서 티끌 세계에 들어갈까봐.
    잘 길들여서 온순하게 되면,
    고삐를 잡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을 따를 것이다.

    The whip and rope are necessary, Else he might stray off down some dusty road. Being well trained, he becomes naturally gentle. Then, unfettered, he obeys his master.

    ⑥기우귀가(騎牛歸家):흰소에 올라탄 동자승이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더 이상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무애의 단계로 더할 나위없이 즐거운 때이다.

    기우이리욕환가(騎牛離理欲還家)
    강적성성송만하( 笛聲聲送晩霞)
    일박일가무한의(日拍一歌無限意)
    지음하필고순아(知音何必鼓唇牙)

    소를 타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가노라니,
    오랑캐 피리소리가 저녁 놀에 실려간다.
    한 박자 한 곡조가 한량없는 뜻이려니,
    곡조 아는 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Mounting the bull, slowly I return homeward. The voice of my flute intones through the evening. Measuring with hand-beats the pulsating harmony, I direct the endless rhythm. Whoever hears this melody will join me.

    ⑦망우재인(忘牛在人):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소는 단지 방편일 뿐 고향에 돌아온 후에는 모두 잊어야 한다.

    기우이득도가산(騎牛已得到家山)
    우야공혜인야한(牛也空兮人也閑)
    홍일삼간유작몽(紅日三竿猶作夢)
    편승공돈초당간(鞭繩空頓草堂間)

    소를 타고 이미 고향에 도착하였으니,
    소도 공하고 사람까지 한가롭네.
    붉은 해는 높이 솟아도 여전히 꿈꾸는 것 같으니,
    채찍과 고삐는 띠집 사이에 부질없이 놓여 있네.

    Astride the bull, I reach home. I am serene. The bull too can rest. The dawn has come. In blissful repose, Within my thatched dwelling I have abandoned the whip and rope.

    ⑧인우구망(人牛俱忘):소도 사람도 실체가 없는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텅빈 원상만 그려져 있다.

    편삭인우진속공(鞭索人牛盡屬空)
    벽천요활신난통(壁天遼闊信難通)
    홍로염상쟁용설(紅爐焰上爭容雪)
    도차방능합조종(到此方能合祖宗)

    채찍과 고삐, 사람과 소는 다 비어 있나니,
    푸른 허공만이 가득히 펼쳐져 소식 전하기 어렵도다.
    붉은 화로의 불꽃이 어찌 눈을 용납하리오
    이 경지에 이르러야 조사의 마음과 합치게 되리라.

    Whip, rope, person, and bull -- all merge in No-Thing. This heaven is so vast no message can stain it. How may a snowflake exist in a raging fire? Here are the footprints of the patriarchs.

    ⑨반본환원(返本還源):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붉게 피어 있는 산수풍경만이 그려져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는 것으로 이는 우주를 아무런 번뇌 없이 참된 경지로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반본환원이비공(返本還源已費功)
    쟁여직하약맹롱(爭如直下若盲聾)
    암중불견암전물(庵中不見庵前物)
    수자망망화자홍(水自茫茫花自紅)

    근원으로 돌아가 돌이켜 보니 온갖 노력을 기울였구나!
    차라리 당장에 귀머거리나 장님 같은 것을,
    암자 속에 앉아 암자 밖 사물을 인지하지 않나니,
    물은 절로 아득하고 꽃은 절로 붉구나!

    Too many steps have been taken returning to the root and the source. Better to have been blind and deaf from the beginning! Dwelling in one's true abode, unconcerned with that without -- The river flows tranquilly on and the flowers are red.

    ⑩입전수수(入廛垂手):지팡이에 도포를 두른 행각승의 모습이나 목동이 포대화상(布袋和尙)과 마주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육도중생의 골목에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는 뜻으로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나아감을 뜻한다.

    로흉선족입전래(露胸跣足入廛來)
    말토도회소만시(抹土途灰笑滿時 )
    불용신선진비결(不用神仙眞秘訣)
    직교고목방화개(直敎枯木放花開)

    맨 가슴 맨발로 저자에 들어오니,
    재투성이 흙투성이라도 얼굴에 가득한 함박웃음.
    신선이 지닌 비법 따위를 쓰지 않아도,
    당장에 마른 나무 위에 꽃을 피게 하누나!

    Barefooted and naked of breast, I mingle with the people of the world. My clothes are ragged and dust-laden, and I am ever blissful. I use no magic to extend my life; Now, before me, the dead trees become alive.


    『정주양산확암화상 십우도송병서』는 확암화상의 십우도송(十牛圖頌)과 서문이다.

    십우도송는 본성이라는 소를 찾아 산중을 헤매다가 마침내 도를 깨닫는 과정을 그림과 송(頌)으로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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