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 遺跡 /문화재 유적

神道碑

초암 정만순 2018. 2. 6. 23:17



神道碑


요약 죽은 사람의 평생사적(平生事蹟)을 기록하여 묘 앞에 세운 비.


 정철신도비       


정철신도비

정철 신도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7호,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장사(葬事)에서 비를 많이 세우는 제도가 있었으며, 진한(秦漢) 이래 죽어서는 공업(功業)이 남았고 살아서는 덕정(德政)이 있는 자는 모두 돌로 비를 세웠다.

신도비의 제도는 중국에서 진송(晉宋, 5세기초) 때 비롯되어 천자 및 제후들이 모두 신도비를 세웠다.

처음에는 그 각문(刻文)이 다만 ‘모제(某帝)’ 혹은 ‘모관신도지비(某官神道之碑)’라고 하였다.

신도비를 묘의 동남쪽에 세우게 된 것은, 지리가(地理家)의 말에 따르면 동남쪽을 신도라 하기 때문이다.

후한(後漢) 때에는 묘 앞에 길을 트고 석주(石柱)를 세워 표하였던 것을 신도라 칭하였으나, 진송 이후 비각(碑刻)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신도비는 조선시대 왕릉의 신도비로서 태조의 건원릉신도비(建元陵神道碑)와 세종의 영릉신도비(英陵神道碑)가 있다.

또, 사대부의 신도비는 웬만한 위업과 공훈을 세웠거나 도덕과 학문에 투철한 자들의 묘 앞에 7, 8척(尺)되는 큰 비가 서 있어 이수(螭首)·귀부(龜趺)의 위용을 보인다.

즉, 조선시대 이후 관직으로 정2품 이상의 뚜렷한 공업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의 사표(師表)가 될 때에는 군왕보다도 위대할 수 있는 일이라 하여 신도비를 세워 기리도록 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사대부의 신도비는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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