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 遺跡 /문화재 유적

螭首

초암 정만순 2018. 2. 6. 22:52





                                                                                                                                                                                                                                                      螭首


 


요약 용모양을 새긴 비석의 머릿돌.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비.

높이 2.1m. 국보 제25호.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릉의 비로서 현재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을 뿐 비신은 소실되었다.

내용

또는 궁전의 섬돌이나 도장 또는 종정(鐘鼎:종과 솥) 등에 새긴 뿔 없는 용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螭)’자는 본래 뿔이 없는 용, 혹은 교룡(蛟龍)을 가리키는 글자로서, 이수는 뿔이 달리지 않은 가상적인 동물인 용 두 마리가 서로 어울려 있는 것이다.

이수라는 용어는 일찍이 중국에서부터 사용한 것으로, 본래는 이기(彛器:나라의 의식에 쓰이는 그릇)·비액(碑額)·석주(石柱)·석계(石階)·인장(印章)·종(鐘)·정(鼎) 등의 표면과 머리 부분에 뿔 없는 용의 형체를 조각하여 장식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조형물 중에서도 이수의 형체나 크기로 보아 가장 크고도 뚜렷하며, 웅장한 형용을 보이는 것은 비액의 정상부에 장식한 이수이므로, 오늘날의 일반적인 개념은 위에 장식된 이수를 말하고 있다.

비의 기원은 주대(周代)라고 하나 이때는 단조로운 형태의 비신뿐이었으며, 이수가 나타난 것은 한대(漢代)부터이다.

처음의 비두는 뾰족하였으나 점차 변모되어 반원이 되고 다시 운(훈, 暈)으로 발전하였으며, 여기에 용 문양이나 다른 문양을 조식하던 것이 뒤에 이수가 된 것이다. 즉, 한대의 비는 정상부가 반원형이며 ‘운(훈)’이 주연을 장식하고 있다. 이 운에는 가끔 용을 조각하는 예가 있으며, 또한 운의 양단에 용의 머리를 장식한 것도 있어 여기에서부터 이수가 발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사실적인 이수를 볼 수 있는 것은 당대(唐代)의 석비로서, 당비 이수의 특색은 좌우 각 2, 3마리의 반룡(蟠龍)들이 서로 얽힌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반룡의 머리만을 나란히 하여 석비를 물고 비신을 일제히 들어올리는 듯한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는 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 태종무열왕릉비의 이수에서 이러한 형체를 볼 수 있어, 이수를 갖춘 석비양식의 첫 시도임을 알 수 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수는 석비 건립의 하나의 양식으로 정립되어 대부분의 석비 정상은 이수로 장식되어 있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항상 하늘을 향하면서 신성, 웅장함을 나타내고 있어 이수는 비의 품격을 더욱 높인다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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