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들꽃에세이 ② 대나무
백년 만에 꽃을 피워 행운의 봉황을 부르는…
학명 Phyllostachys reticulata
속씨식물문 외떡잎식물강 벼목 벼과의 상록성식물
머리오리는 소쇄(瀟灑)하니 바람을 쓸고 가슴은 텅 비어 무심한데 사계절 곧은 그림자는 밤마다 달빛을 희롱한다.
풀도 아니요 나무도 아닌 비목비초(非木非草)의 한 가운데를 살아 백년에 한번 꽃을 피운다면 어찌 새 세상의 성군을 만나는 행운의 봉황을 못 부를까...
봉황새는 중국 최초의 황제인 황제(黃帝)때 나타났다고 하여 전설이 되었다.
봉황은 출현할 성군을 위해 나타나고, 대나무는 그 봉황을 맞이하기 위해 열매(봉황새가 유일하게 먹는다는 ‘죽실’)를 예비한다는 ‘각본’이다.
예로부터 대나무는 서상(瑞祥)한 식물로 여겨져 왔다.
그 특이성은
첫째, 초고속 생장력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자라는 식물답게 하루에 무려 60~100cm를 자라 약 3개월 만에 성목이 된다.
둘째는 공동(空洞)현상이다.
마디 속 텅 빈 공간은 영혼이 머물기 좋은 청정한 장소로 생각할 만하다.
셋째, 개화현상이다.
대나무의 원래 수명은 15~20년(수명이 다해도 지하경이 매년 신장하여 다시 새순을 낸다.)인데, 개화는 60~120년 만에 한번 오고 개화하면 모두 말라 죽고 만다.
넷째, 마치 달이나 갈대 같은 것이 긴 세월을 치르는 동안 나무로 해뜩 변해버린 듯 기묘한 식물이라는 점이다.
줄기의 굵기는 한 해에 다 자라는데 몇 십 년이 지나도 줄기가 목질(木質) 상태로 살아 있다.(목본성이 갖추어야 하는 분류학적 조건은 ‘나이테’인데, 대나무는 비대생장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이테가 없는 대나무는 초본식물에 속하지만 겨울이 없는 열대지방 식물의 경우는 또 나이테 없이도 비대생장을 한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 서정춘「죽편1」여행(전문)
대나무가 내놓은 역시 ‘백년만의 개화’는 누가 보아도 매력이다.
단 한번 지핀 불길에 목숨을 건다? 사랑 말인가 깨달음 말인가?
하긴 죽음을 예감하는 모든 식물들이 ‘유정란’의 수많은 씨앗을 퍼트리는 걸보면 종족 보존의 절박성에 따른 몇 가지 설을 엿들어 볼 필요는 있겠다.
예컨대 대강 100년을 주기로 피는 것이 확실한지, 영양결핍 따위에 의한 것인지, 병해 때문이거나 갑작스런 기후변화 탓은 아닌지, 태양흑점설을 연결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러나 기특한 이 나무의 매력을 필자는 다른 곳에서 찾는다.
가늘고 곧아서 푸르른 것이 사시를 흔들며 우리들의 영혼을 맑혀주는 댓바람소리나 그 바람 그친 청정한 날 선지(扇紙) 같은 달빛이 지상에 그어대는 눈부신 수묵화들!
눈 내리는 날 죽총(竹叢)에 앉아보라. 거기 어디에 지상의 삿된 언어와 허튼 욕망이 도사리고 있으며 거기 어디에 위선과 훼절과 굴욕의 만신창이가 웅크리고 있는지! 흰 눈 소복이 올라앉은 댓잎 한 장의 미감(美感)에서, 도리질을 한다.
김진수 전남들꽃연구회장(전남타임스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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