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命理 風水地理/김두규의 국운풍수

경북 문경 ‘몽천재’

초암 정만순 2018. 1. 20. 14:42

 

 

경북 문경 ‘몽천재’

 

 

경북 문경 ‘몽천재’ 전경(사진 위)과 풍수도.
집은 ‘혈(穴)’이라 표기된 곳에 지어졌다. / 김두규 제공 

          

'언어는 오래된 낡은 집이다.' 유학 시절 전공 교수 한 분의 핵심 명제였다.

강의를 들으면서 언어와 집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깨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집은 거주하는 곳이다. 그냥 먹고 자는 곳이 아니라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데 존재(거주)한다는 것은 건축함이란다.

고대 독일어로 올라가면 내가 '존재한다(bin)'와 '건축하다(bauen)'가 근원이 같다.

그래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건축함이란 본질적으로 거주함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누구나 아무 데나 살려 하지 않는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전세살이를 거쳐 마지막으로 서울 ○○동에 내 집을 마련했을 때에도 그랬다.

또 지금까지 20년 넘게 주중의 대부분을 보내는 산촌에서 몇 번 사는 곳을 옮겼을 때에도 아무렇게나 집을 구하지 않았다.

 

흥부도 놀부에게 쫓겨나 유랑걸식하면서도 집터를 찾으려고 애썼다.

강경·법성포·줄포 등을 모두 찾아다니지만 바닷가 비린내 때문에 그만두고 청학동·백학동·복흥 등을 가보았지만 소금이 귀해서 그만두었다.

마지막에 고향 근처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 복덕(福德)이란 마을에 정착한다.

흥부는 그곳에서 자기 집을 '건축하였다(bauen).' 그래 봤자 '흥부 집 짓기'였다.

집 짓는 데 한나절도 안 걸렸다.

수숫대 몇 다발로 지은 집이었다.

그래도 춘삼월이 오면 '입춘대길'을 써붙였다. 그렇게 그는 '존재했다'.

 

흥부 팔자가 아닌 필자는 이때까지 나의 집을 지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친구 집 짓는 데 동참하게 되었다. 친구는 고향 땅 어디쯤 한옥을 짓고자 하였다. 물론 필자 집이 아니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순 없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서 '사쿠테이키(作庭記)'의 지침을 따랐다. '주인의 의도를 정확하게 반영하되 각 장소에 맞는 풍정(風情)을 구상하는 것'이다.

 

친구 고향은 경북 문경이었다. 터를 고르느라 주말마다 그곳에 내려가 땅을 살폈다. 뒷산이 옥녀봉이었다. 옥녀봉 아래 마을이 있었고, 그 한쪽에 '박샘'이라는 큰 샘이 있었다.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물이었고, 처녀총각 데이트 장소였다. 지금도 콸콸 솟는다. 옥녀봉과 '박샘'을 잇는 지맥 위에 집이 들어설 만한 한 조각[一片]의 땅을 찾았다. 무덤은 한 줄기 선[一線]을 찾으면 되고, 집터는 한 조각 땅을 찾는 것이 풍수의 핵심이다. 옥녀봉[山]과 샘[水] 그리고 그사이에 거주(존재)하게 될 사람[人]의 집을 짓는 일이다. 그래서 '옥녀급수형(玉女汲水形)', 즉 '옥녀가 물을 긷는 형국'으로 형상화하자고 제안하였다.

 

터가 정해지고 설계가 끝나고도 집이 완성될 때까지 토목·건축·조경과 관련하여 풍수적 자문은 이어졌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풍수의 마지막 단계는 이름 짓기이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그를,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으로 다가왔다'는 김춘수의 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름이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 새로 지어진 집은 '옥녀봉'이라는 산 아래, 그리고 '박샘'이라는 샘[泉] 옆에 있다. 내 친구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이다. 다른 기업에 비하면 아직도 헤쳐나가야 할 일이 많다. 마치 산 아래에 처음 솟는 어린 샘물[몽천·蒙泉]이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그러나 샘물은 스스로 물길을 만들어 내가 되고 강이 되고 큰 바다에 이를 것이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주관한다[水主財].' 그 이미지를 살려 '몽천재(蒙泉齋)'라 이름 지었다. 친구가 흔쾌히 수용하였다. 문경 점촌에 가시거든 몽천재도 한번 들러보시길 권한다. 주인 인심도 넉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