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林 江湖/무림천하

김용 무협소설의 중국 상상 연구

초암 정만순 2018. 1. 12. 19:01



김용 무협소설의 중국 상상 연구



국문초록


武俠小說은 80년대 이후 중국 대륙에 재소개되면서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게 되었다. 독자들의 호응과 문학 관념의 변화는 대륙의 학술계로 하여금 무협소설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하였고, 이로써 무협소설은 정식 문학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金庸의 武俠小說은 무협소설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는데, 문학 연구자들이 무협소설 연구의 필요성을 제창할 수 있었던 것은 金庸의 武俠小說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에서의 武俠小說 연구와 金庸 小說 연구는 대부분 그것의 문학적 가치와 성취를 규명하는 것에 치중하였다. 嚴家炎, 錢理群, 陳平原, 陳墨 등은 金庸 小說이 획득한 문학적 성취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고, 袁良駿, 王彬彬 등은 金庸 小說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金庸 小說을 중심으로 한 이들의 대립은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것 같은데, 그것은 이 양측의 서로 다른 문학적 관점 때문이다. 합치된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논의는 문학적 측면에서 金庸 小說이 가진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밝혔다. 따라서 필자는 다시 문학적 관점에서 金庸 小說을 논의하는 것은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기 어렵다
고 생각하고, 金庸 小說에 대한 논의의 각도를 바꾸기를 제안한다.
필자가 이 논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 것은, 金庸 小說과 중국인들의 관계, 넓게는 무협소설과 중국인들과의 친연적 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즉, 중국인들에게 있어 무협소설의 의미는 무엇이며, 중국인들은 무협소설을 통해 무엇을 향유하며, 또 무협소설의 어떤 요소가 이를 가능케 하였는가 하는 문제이다. 필자가 볼 때, 무협소설은 근대 이후 중국인들의 자기 상상 행위이자 그 산물이다. 중국인들은 무협소설에서 과거의 중국을 상상해내는데, 이러한 상상의 과정 속에서 중국인들은 근대 이후에 겪었던 정치적 좌절이 야기한 정신적 외상을 극복(또는 망각)할 수 있었으며, 大陸人․香港人․臺灣人․海外華僑로 분열되기 이전의 자기의 정체성을 상기하게된다. 필자는, 金庸 小說이 중국인들이 상상하는 중국의 모습을 가장 핵심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으며, 또 중국인들의 자기 상상과 정체성의 상기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金庸 小說을 중심으로 이러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필자는 먼저 중국인들에게 있어 ‘江湖’와 ‘俠’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는데, 이는 ‘江湖’와 ‘俠’이 무협소설의 중국 상상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며, 이와 동시에 중국인들의 ‘江湖’와 ‘俠’에 대한 인식 방식에서 무협소설이 상상해낸 세계 즉 중국이 어떻게 중국인들에게 실재의 중국을 대체하고 압도하는 것으로 작용하였는지를 알게 해주는 메카니즘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江湖와 俠의 연원을 따져보면, 그것들은 모두 구체적인 실체에 대한 지시물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詩歌, 小說, 戱曲 등과 결합되면서 원래의 그것의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게 되며, ‘문학적 상상’으로 새로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江湖와 俠은 ‘문학적 상상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항상 실재로 존재했던 것으로 인식되며, 그래서 중국인들은 江湖와 俠을 상상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러했던 것으로 상상한다. ‘江湖’와 ‘俠’을 중심으로 무협소설이 상상해낸 중국의 모습을 자연스러운 母國의 모습으로 상상하고, 이를 가지고 실재했던 중국의 모습을 대체하는, 무협소설 독자로서의 중국인들의 상상의 방식은 ‘江湖’와 ‘俠’에 관한 위의 인식 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본문의 3장과 4장은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金庸 小說 속에 드러나는, ‘江湖’와 ‘俠’이 만들어내는 중국과 중국인에 관한 상상이 어떤 것인지를 살폈다. 여기서 ‘江湖’는 金庸 武俠小說의 세계이며, ‘俠’은 金庸 武俠小說의 주체를 의미한다. 金庸의 江湖에서 중심적인 것은 역사와 로맨스, 전통문화가 결합되어 있다. 金庸의 ‘中國想像’에서 가장 중심적인 것은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金庸은 漢族과 夷民族의 대립과 투쟁을 중심적으로 다루었다. 그는 ‘歷史의 江湖化’, ‘江湖의 歷史化’를 통해 그의 강호를 과거 중국을 대신하는 세계로 바꾸어놓았다. 하지만, 金庸의 역사를 통한 중국 상상은 낙관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 실재 역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金庸은 실재 역사로 다시 돌아감으로써 이야기를 끝마치려 했는데, 그가 다시 돌아간 역사는 金庸 자신이 무협소설 쓰기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즉, 그는 歷史 想像의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는 여성과 전통문화의 전유를 통해 이루어 진다. 金庸 小說에서 여성은 ‘聖女’/‘惡女’/‘惡女→聖女’이라 세 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 金庸은 이 여성들을 숭배하거나 희생시키고, 처벌하거나 용서하는 방식을 이용하여 그녀들을 남성의 질서 내로 포섭한다. 이 여성들의 전유를 통해 金庸은 자신의 강호를 ‘陽剛中國’의 표상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거세당한’ 중국의 남성성의 확인과 회복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金庸은 중국의 전통문화를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강호를 ‘文化中國’으로 상상해낸다. 전통문화는 金庸의 강호를 심미화, 윤리화, 신비화시켜 하나의 文化的 空間으로 변모시킨다.

또한 金庸은 전통문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秘儀性을 활용하여 중국인이라는 주체를 부각시킨다. 실재 역사가 좌절과 패배의 역사라고 한다면, 金庸이 상상해내는 ‘文化中國’은 중국인들의 심리적 우월감을 강화시키며, 또 이를 바탕으로 ‘炎黃子孫’으로서의 신분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편, 金庸은 자신의 무협소설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협객을 통해 ‘想像的 中國’의 주체를 구성해낸다. 이는 주로 金庸의 협객의 성격 변화를 통해서 드러난다. 즉, 金庸의 초기 작품에서 협객은 기존의 강호의 질서와 이념의 수호자이며 계승자이지만, 뒤로 갈수록 이러한 성격은 약화되고, 강호의 질서와 이념의 비판자 혹은 새로운 질서와 이념의 대변자가 된다. 그들은 아버지의 이념과 질서에 대해 회의하고, 비주류적이고 근대적인 입장에서 강호를 재편성한다. 즉, 그들은 ‘漢族의 俠’에서 ‘中國의 俠’으로 변모하는데, ꡔ鹿鼎記ꡕ의 韋小寶는 ‘中國의 俠’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협객을 ‘國民의 俠’으로 만들어냄으로써 金庸은 자신의 ‘中國 想像’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한족을 중심으로 역사를 상상함으로써 직면할 수 있었던 역사 상상의 곤경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金庸이 무소설이라는 장르의 ‘중국 상상’으로 제대로 회귀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金庸이
ꡔ鹿鼎記ꡕ를 封筆의 작품으로 삼아 더 이상 무협소설을 창작하지 않은 것은, 그가 ꡔ鹿鼎記ꡕ를 통해 完整한 ‘中國 想像’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金庸의 武俠小說은 ‘陽剛中國’, ‘文化中國’, ‘中國의 俠’을 상상해냄으로써, 중국인들에게 근대 이후 좌절의 역사를 대체할 자기의 모습을 제공하였으며, 분열된 신분적 자아를 통합할만한 원래의 신분을 상기시켰다. 필자가 볼 때, 이는 武俠小說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잠재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욕망을 실현시킨 것이다. 金庸의 武俠小說은 이를 실현해냄으로써, 문학적 측면에서의 성취와 가치 이상의 성취와 가치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주요어 : 金庸, 武俠小說, 江湖, 俠, 俠客, 陽剛中國, 文化中國, 書劍恩仇錄, 碧血劍, 射鵰英雄傳, 神鵰俠侶, 倚天屠龍記, 天龍八部, 笑傲江湖, 鹿鼎記, 韋小寶

<목 차>
국문초록 ····························································································································· i
Ⅰ. 序論····························································································································· 1
1. 기존 武俠小說 및 金庸 小說 연구의 검토와 문제 제기 ··································· 1
2. 연구의 전제와 연구 방법 및 대상 ······································································ 14
1) 연구의 전제로서의 무협소설에 대한 인식 ··················································· 14
2) 연구 방법과 대상 ····························································································· 20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28
1. 江湖와 俠의 기원과 의미 확장 ··········································································· 28
1) 正統 文人들의 정치적 기호로서의 江湖 : 廟堂의 부속물로서의 江湖····· 28
2) 세계 인식의 표현 혹은 俗化된 의미로서의 강호 : 江湖風波險惡············ 30
3) 역사적 실체로서의 俠······················································································ 33
4) 문학적 상상으로서의 俠·················································································· 38
5) 협객의 활동 공간으로서의 江湖: 문학적 상상으로서의 江湖···················· 44
6)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48
2. 武俠小說과 ‘江湖’․‘俠’ ························································································· 53
1) 무협소설 장르와 ‘江湖’․‘俠’ ··········································································· 53
2) 江湖 : 무협소설의 ‘세계’ ················································································· 57
3) 俠 : 무협소설의 ‘주체’ ····················································································· 61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 66
1. 金庸 小說의 江湖 : 역사․로맨스․전통문화의 결합 ······································ 66
2. 역사의 성찰과 상상 ······························································································ 68
1) 金庸의 역사 차용의 의미 ················································································ 68
2) 歷史의 江湖化··································································································· 74
3) 江湖의 歷史化··································································································· 84
4) 金庸의 역사 상상의 딜레마 ············································································ 90
3. ‘陽剛中國’의 상상 ·································································································· 92
1) 로맨스의 개입 ··································································································· 92
2) 金庸 小說의 여성 ····························································································· 96
3) ‘陽剛中國’의 상상 ···························································································· 114
4. ‘文化中國’의 상상 ································································································ 117
1) 金庸 小說과 傳統文化···················································································· 117
2) 江湖의 文化 空間化························································································ 119
3) 傳統文化의 秘儀性························································································· 130
4) ‘文化中國’의 상상 ···························································································· 134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 139
1. 金庸 ‘俠’의 변화 과정 ························································································· 139
2. 아버지의 계승과 극복 ························································································· 144
1) 협객의 아버지들 ····························································································· 144
2) 역사와 아버지 ································································································· 150
3. 비주류․근대의 입장에서의 강호 질서와 이념의 재편 ·································· 153
1) 江湖의 질서 재편의 의미 ·············································································· 153
2) 주류적․전통적 강호에 대한 회의와 재편 과정 ········································ 155
4. ‘國民의 俠’의 탄생 : 주체 상상의 완결 ··························································· 161
1) ‘反俠’의 출현 : 漢族에서 中國人으로 ·························································· 161
2) ‘中國之俠’의 탄생 : 주체 상상의 완성과 그 의미 ····································· 167
Ⅴ. 結論························································································································· 175
참고문헌 ························································································································ 181
中文摘要························································································································ 189


Ⅰ. 序論 1
Ⅰ. 序論
1. 기존 武俠小說 및 金庸 小說 연구의 검토와 문제 제기
文革 이후 중국 대륙에서 무협소설이 다시 읽히기 시작하면서 무협소설 연구 필요성이 일각에서 제기되기 시작한다. 중국의 저명한 고전문학 연구자 章培恒 교수는 ‘역사는 인민 대중이 창조하는 것이고, 광대한 인민 대중은 사회의 진정한 주인이다. 이러한 즉, 무릇 인민 대중이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중시되어야 한다. … 오늘날 문학계에서 무협소설은 저열한 것, 전문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나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1)고 주장하였으며, 「金庸武俠小說與姚雪垠的<李自成>」이라는 글에서 金庸의 무협소설을 ‘최고의 작품(上乘之作)’이라고 평가하였다.2)
章 교수의 위의 언급은 당시 중국의 사회적 맥락 하에서 해석하지 않으면, 무협소설의 연구가 극단적인 대중 추수적 경향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해석될 소지가 있다. 그렇지만 중국 대륙에서의 무협소설 연구의 시작이 대중들의 무협소설에 대한 발견과 애호에서 추동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1970년대 말부터 남방을 중심으로 시작된 무협소설의 인기는, 1980년대 초 영화 ꡔ少林寺ꡕ의 개봉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이후 무협소설과 무협영화, 무협드라마 등은 중국 인민들의 중요한 대중적 오락거리로 자리잡았다.

3) 일례로, 嚴家炎은 1) “歷史是人民群衆創造的, 廣大人民群衆是社會的眞正主人. 旣然如此, 凡是人民群衆所需
要和喜歡的東西, 就應該受到社會的重視. … 今天仍認爲武俠小說是文學界的低人一等的品種, 不値得加以專門硏究, 這是我所不能苟同的.” 曺正文의 ꡔ武俠世界的怪才-古龍 小說談ꡕ의 序文 「對武俠小說的再認識」 중, 曹正文의 ꡔ中國俠文化史ꡕ에서 재인용, p
269.
2) 章培恒은 金庸의 武俠小說이 상상력, 작품의 구조, 유머감 등의 면에서 茅盾文學獎을 수상한 姚雪垠의 ꡔ李自成ꡕ보다 뛰어나다고 지적하였고, 적어도 純文學과 通俗文學의 고하를 ꡔ李自成ꡕ과 金庸의 武俠小說을 통해서는 분별해낼 수 없다고 주장하였
다. 章培恒, 「金庸武俠小說與姚雪垠的<李自成>」, ꡔ書林ꡕ, 1988年 第2期 참조.
3) 무협소설이 중국의 인민들의 중요한 오락거리였던 것은 물론,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1923년 平江不肖生이 ꡔ江湖奇俠傳ꡕ을 발표한 후부터, 무협소설은 1951년 중국정부에 의해 창작과 출판이 금지되기까지 중국 인민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문학 장
르였다. 무협소설의 열기는 항전 활동이 진행되던 3,40년대에도 시들지 않고 지속되다.

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1994년까지 대륙에서 ‘정식’ 출판된 金庸 小說을 읽은 독자만 해도 약 2억 명에 달한다고 추정하면서 ꡔ金庸小說論稿ꡕ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현재 중국어로 창작한 작가 중 가장 많은 독자를 보유한 이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할 것이다. “金庸!”若問當今華文作家中擁有讀者最多的是誰, 大槪人們會異口同聲地回答: “金庸”4)
하지만 章교수의 언급에서도 드러나듯이, 엄청난 독자군의 존재에서 무협소설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했던 연구자들과는 달리 학계의 주류는 무협소설의 가치와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수많은 학자들은 여전히 무협소설을 저열한 통속문학으로 인식했으며, 독자수를 빌어 무협소설 혹은 金庸 小說의 연구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을 학자적 태도의 상실5)이라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무협소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무협소설 연구자들의 무협소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인식 때문이었다.
중국 무협소설은 역사가 길러낸 것이고, 시대의 산물이다. 비록 여러 차례에 걸쳐 풍파를 겪고 성쇠를 거듭하였지만,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으며 또한 적지 않은 독자군을 보유하고 있다. … 무협소설은 중국 소설 발전사, 특히 통속소설 발전사에서 배제해버릴 수 없는 내용 중의 하나이다. 중국문학사, 소설사의 연구자들은 무협소설의 탄생과 발전, 쇠퇴의 역사를 연구해야 하고, 이에 대해 과학적으로 총결하고, 무협소설에게 역사적 지위를 돌려주어야 한다.
中國武俠小說是歷史孕育的, 是時代的産兒. 它雖然幾經波折․歷盡盛衰, 但它迄었다. 袁良駿은 불완전한 통계임을 전제로 民國 時期의 무협작가의 수가 200명이 넘었고, 장편 무협소설은 2000부 이상 발표되었으며, 총 권수로는 3억 권 이상이 될것이라고 추정하였고, 1928년 ꡔ江湖奇俠傳ꡕ의 일부를 영화로 만든 ꡔ火燒紅蓮寺ꡕ의 여주인공 紅姑 역을 맡아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여배우 胡蝶의 말을 인용하여, ꡔ火燒紅蓮寺ꡕ의 성공으로 1928년부터 1931년까지 무협영화가 200편 넘게 제작, 상영되었음을 밝혔다. 이 당시의 무협소설의 인기와 주요 작가, 작품에 대해서는 ꡔ무협소설이란 무엇인가ꡕ의 정동보의 논문, 전형준의 ꡔ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ꡕ 33-41 페이지와 陳山의 ꡔ중국무협사ꡕ 310-315, 袁良駿, ꡔ武俠小說指掌圖ꡕ(新華出版社, 2003년 제1판) 119-128 페이지 등을 참조할 수 있다.
4) 嚴家炎, ꡔ金庸小說論稿ꡕ, 北京大學出版社, 1999년 1월, p. 8
5) 王彬彬, ꡔ文壇三戶: 金庸․王朔․余秋雨ꡕ, 大象出版社, 2001. 12. pp. 3-22

Ⅰ. 序論 3
今仍然存在着․發展着幷擁有着爲數不小的讀者群. … 武俠小說是中國小說發展史, 特別是通俗文學發展史上不可抹煞的內容之一. 中國文學史․小說史的硏究者應當 硏究它的産生․發展․衰敗的演變歷史, 給它以科學的總結, 還它的歷史地位.6)
이는 무협소설을 현대적 의미의 통속소설, 혹은 대중소설로 보기 이전에 중국 전통소설의 계승 형태로 보고, 이를 소설사의 각도에서 연구하자는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 대륙에서 30여 년 동안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던 무협소설의 존재를 소설사 혹은 문학사의 입장에서 다시 확인하고, 무협소설의 역사를 복원하자는 주장은 80년대 중반 이후 제기된 ‘20세기 중국문학론(二十世紀中國文學論)’과 ‘문학사 다시 쓰기(重寫文學史)’의 문제 의식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7)이렇게 중국 대륙의 무협소설 연구는 무협소설에 대한 커다란 두 가지 인식을 바탕으로 출발한다. 하나는 대중이 선택한 문학 장르로서의 무협소설이며, 다른 하나는 문학 발전사 상의 중요한 문학 장르로서의 무협소설이다. 무협소설에 대한 이 두 가지 인식은 이후 중국 대륙에서 무협소설을 연구하거나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공히 나타나며, 무협소설에 대한 연구 방식 혹은 그에 대한 담론 형태에 대체적 틀을 제공하게 된다.

8)무협소설 연구에 있어서 金庸 小說에 대한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두말할 나위 없이 크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金庸 小說이 없었더라면 무협소설의 연구가
6) 胡文彬, 「論中國武俠小說之出版及其硏究」(1986), ꡔ武俠小說論 卷上ꡕ(明河社出版有限公司, 1998. 5.), pp. 231-232
7) 사실 1980년대 중반 이후 ‘20세기 중국문학론’과 ‘문학사 다시 쓰기’의 문제 의식이 제기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구체화된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고, 또한 무협소설에 대한 가시적 연구 성과가 나오게 된 것 역시 90년대 중반
을 지나면서였다. 임춘성 교수는 ꡔ中國現代文學三十年ꡕ(錢理群 등 著)의 초판본(87년)과 수정본(98년)의 변화를 지적하면서 초판본에서는 통속문학에 대한 자각이 그다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수정본에서도 통속문학의 서술에 많은 지면을 할애
하였지만 그것이 통속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 것 같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임 교수는 무협소설 등 통속문학에 대한 연구가 ‘20세기 중국문학론’이라는 포괄적인 문제의식에 근거했다기 보다는 순문학과 통속문학의 병행적 관계를 강조하
는 范伯群 등이 주장하는 ‘양날개 문학론(雙翼文學論)’에 더 의지하고 있음을 지적하는데, 수긍할 만한 견해로 보인다. 錢理群의 경우에 통속문학 전반에 대한 견해와 金庸 小說에 대한 견해 사이에 약간의 편차가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임춘성, 「中國近現代文學中的大衆化與金庸作中人物的實用理性」, ꡔ中語中文學ꡕ, 제33집, 韓國中語中文學會, 서울, 2003. 12, pp. 663-664 참조.
8) 중국 대륙에서의 무협소설 연구의 주요한 내용과 방식, 그 한계 등은 유경철, 「중국대륙의 무협소설 연구 고찰」(ꡔ중국현대문학ꡕ 제28호)을 참고할 수 있다.

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錢理群의 말을 빌자면, 金庸 小說의 존재는 기존의 문학사 서술 체계에 대해 다시 사고하게 하는 것이다.9) 적어도 金庸 小說이 무협소설에 대한 편견에 대항할 수 있는 본보기라는 점은 대체로 동의를 얻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金學派의 金庸 小說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10) 金學派는 대륙에서뿐만 아니라 대만, 홍콩에서 무협소설의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기 전부터 존재하였다.11) 하지만 金學派의 金庸 小說 연구 방식은 학문적 엄정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金學派의 출발이 출판사의 상업적 기획에서 출9) 錢理群, 「金庸的出現引起的文學史思考」, 王敬三 編, ꡔ名人名家讀金庸ꡕ, 上海書店出版
社, 2000, p. 19
10) ‘金學硏究’, ‘金學派’라는 이름은 臺灣의 遠景出版社가 ꡔ金學硏究叢書ꡕ와 ꡔ諸子百家看
金庸ꡕ 시리즈를 출판하면서 생겼다. 대만에서 金庸의 小說이 전격적으로 소개된 것
은 1979년부터이다. 물론 이 전에도 ꡔ鹿鼎記ꡕ가 司馬翎이라는 작가의 이름으로 ꡔ神
武門ꡕ과 ꡔ小白龍ꡕ으로 나누어져 소개되기도 하였지만, 金庸의 小說이 정식으로 대만
독자들에게 소개된 것은 1979년 9월 7일 ꡔ連城訣ꡕ이 ꡔ聯合報ꡕ에 실린 것이 최초이
다. 대만에서 金庸의 小說이 그 전까지 소개되지 못한 이유는, 金庸이 젊은 시절 좌
파 성향의 ꡔ大公報ꡕ에 근무했으며, 그의 정치적 성향이 좌익에 가깝다는 대만 당국
의 판단에 따른 판금 조치 때문이었다. 대만에서의 金庸 小說의 소개와 출판에 지대
한 공헌을 한 사람은 沈登恩이라고 하는 遠景出版社의 사장이다. 그는 金庸 小說이
대만에서 판금되어 있을 때부터 金庸과 관계를 갖고, 金庸으로부터 ꡔ金庸作品集ꡕ 출
판에 관한 판권을 인도받았고, ꡔ金庸作品集ꡕ을 출판하면서 동시에 金庸의 오랜 친구
이자 그 자신도 무협소설과 SF소설 작가로 명성을 얻고 있던 倪匡으로 하여금 ꡔ我
看金庸小說ꡕ을 출판하게 했다. 그 후 倪匡은 81년부터 84년까지 ꡔ再看金庸小說ꡕ부터
ꡔ五看金庸小說ꡕ을 지속적으로 출판하였고, 이러한 분위기에 더불어 楊興安의 ꡔ漫談
金庸筆下世界ꡕ와 ꡔ續談金庸筆下世界ꡕ, 三毛 등의 ꡔ諸子百家看金庸ꡕ(1-5권), 溫瑞安의
ꡔ釋雪山飛狐與鴛鴦刀ꡕ, ꡔ天龍八部欣賞擧隅ꡕ, 蘇墱基의 ꡔ金庸的武俠世界ꡕ, 陳沛然의
ꡔ情之探索與神鵰俠侶ꡕ, 潘國森의 ꡔ話說金庸ꡕ, 薛興國의 ꡔ通宵達旦讀金庸ꡕ, 舒國治의
ꡔ讀金庸偶得ꡕ 등의 金庸에 관한 專書들이 발표된다. 遠景出版社는 바로 이 책들을
ꡔ金學硏究叢書ꡕ와 ꡔ諸子百家看金庸ꡕ 시리즈로 출판하였다. 대륙에서는 1998년 中國
友誼出版公司에서 ꡔ金學硏究叢書ꡕ와 ꡔ諸子百家看金庸ꡕ을 재편집하여 ꡔ金庸茶館(1-
6)ꡕ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의 출판 연기에서 王榮文은 沈登恩을 “金學硏究”의 수창
자로 부른다. 沈登恩, 「我與金庸小說-遠景版ꡔ金學硏究叢書ꡕ出版緣起」(ꡔ金庸茶館 參ꡕ, 中國友誼出版公司, 1998, pp.145-149), 林保淳, 「臺灣的武俠小說與武俠硏究」(ꡔ中國語文
論叢ꡕ 17輯), 王榮文, 「金庸硏究的新起點-ꡔ金庸茶館ꡕ出版緣起」(ꡔ金庸茶館 壹ꡕ) 등 참
조.
11) 1950년대 梁羽生과 金庸의 무협소설이 인기를 얻으면서 대만과 홍콩에서는 무협소
설과 관련된 수많은 글들이 잡지나 신문지 상을 통해서 발표된다. 하지만 대만, 홍
콩에서 무협소설에 대한 보다 진지하고 학술적 방식으로의 연구가 시작된 것이 대
략 1987년 말 中文大學에서 열린 ꡔ國際中國武俠小說硏討會ꡕ 이후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 대륙에서의 무협소설 연구가 대만, 홍콩에서의 그것과 그다지 큰 시차
를 두고 이루어지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Ⅰ. 序論 5
발했던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의 저작 중에는 佟碩之의 「金庸梁羽生合論」
이나 舒國治의 「讀金庸偶得」과 같은 비교적 객관적이고 정치한 글들이 포함되
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金學派의 金庸 연구는 대체로 반(半) 학술, 반(半) 유희
적 성격을 띤다. 그들은 金庸 小說을 분석하고, 설명하였지만, 그것은 연구자의
입장과 방식보다는 金庸의 독자로서의 입장과 태도에 근거한 것에 가깝다.12) 그
들의 글에서 글쓰는 이는 한 사람의 金庸의 독자로서, 또 다른 金庸 小說의 독
자이자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과 더불어 金庸 小說 읽기의 쾌감을 공유하고,
金庸 小說 애호가로서의 동질감과 유대감을 증진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金學派의 이런 면은 한편으로 金學派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金學派의 연구 방식은 무협소설 연구에서 자주 목격된다. 중국 대륙에서
무협소설 연구의 초기에 출판된 梁守中의 ꡔ武俠小說話古今ꡕ은 그 대표적인 예
이다. 이 책의 앞 부분은 「武俠小說的過去和現在」라는, 무협소설의 연원과 발전
과정을 소개하는 글이고, 뒷 부분은 「從“無招勝有招”談到“無劍勝有劍”」, 「口上談
兵的武林高手」, 「目不識丁的武林高手」, 「金庸筆下的人名趣談」, 「ꡔ蜀山ꡕ的法寶與
怪物」, 「武俠小說的恐怖描寫」 등 무협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무술, 상황 등에
대한 감상이나 논평의 성격을 띠는, 서너 페이지의 잡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들은 현재 인터넷 상의 수많은 무협소설 관련 싸이트와 동호회 상에 존재하
는 무협소설 애호가들의 글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협소설 연구 혹은 金庸 小說 연구의 학문적 엄정성의 결여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일련의 글들이 무협소설 독자들이 무협소설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무협소설 독자들은 단지
무협소설을 읽고 소비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무협소설의 해독 과정에 스스
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 과정을 통해 무협소설 속의 세계는 무협소설 밖으로 확
장되어 나온다. 그들의 글쓰기와 감상의 공유 과정은 현실에서 무협소설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이며,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생산적’인 과정이다. 이는 무협소설,
金庸 小說이 갖는 막강한 위력 혹은 迷魂湯으로서의 작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가치 판단과는 별개로 金庸 小說을 포함하여 무협소설이 독
12) 이에 대해 대만 학자 林保淳은 그들의 글이 ‘金庸의 이력과 金庸의 小說 속의 인물,
애정관, 역사의식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하게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가 독자의 감상의 각도에서 출발한 것이고, 주관적 감정이 행간에
넘쳐 나서 엄숙한 연구의 태도를 결여하고 있고’, ‘가공송덕의 의도가 너무 농후하
다’고 지적하였다. 林保淳, 「臺灣的武俠小說與武俠硏究」, ꡔ中國語文論叢ꡕ 17輯, 1999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자를 확보하는 이유가 단순히 오락적 독물(讀物)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金庸 小說 등 무협소설은 어떤 세계 구축의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다.
金學派 등의 연구와 글쓰기를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내용 때문이 아니며, 그들
이 무의식적으로 金庸 小說이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다른 각도에서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무협소설과 金庸 小說의 연구는 구체적 성과를 나타내
기 시작한다. 중요한 저작만 살펴보자면, 대륙에서는 1988년 王海林의 ꡔ中國武
俠小說史略ꡕ을 시작으로 90년 羅立群의 ꡔ中國武俠小說史ꡕ, 91년 劉蔭柏의 ꡔ中國
武俠小說史․古代部分ꡕ, 92년 陳山의 ꡔ中國武俠史ꡕ, 94년 曹正文의 ꡔ中國俠文化
史ꡕ 등이 연달아 출판되었고, 홍콩에서는 89년 홍콩 中文大學 中文硏究所 주편
의 ꡔ武俠小說論卷ꡕ이, 대만에서는 94년 葉洪生이 자신의 무협소설 연구를 총괄
한 ꡔ論劍-武俠小說談藝錄ꡕ이 발표된다.13) 이 책들은 대부분 두 가지 방향에서
작업을 수행하였다. 하나는 중국문학에서의 무협소설의 연원과 발전 과정을 살
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성행하였던 무협소설(舊派武俠
小說)과 1950년대 홍콩, 대만 등지에서 성행한 무협소설(新派武俠小說)의 작가와
작품 등의 상황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 연구들은 그동안 문학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무협소설을 정식으로 연구하였다는 의의를 가진다. 무협소설은 ‘소
설사 혹은 문학사의 각도’에서 행해진 이 연구들을 통해 그동안 망각되었던 존
재를 드러내게 된다. 하지만 이 연구들은 필연적으로 무협소설의 전통문학의 계
승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서술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 때문에 근대시기에
출현한 무협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독특성, 내재적 의미 등을 살피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 연구들은 무협소설을 설명하고 소개하는
데 그치고, 무협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는 무협
소설을 ꡔ史記ꡕ의 「游俠列傳」, 「刺客列傳」으로부터 시작된 俠義類 서사의 계승
형태 혹은 변형 형태로만 파악하였기 때문이고, 또 이는 ‘소설사 혹은 문학사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무협소설 연구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연구자들의 의
도가 강하게 작용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무협소설과 金庸 小說의 연구가 본격화되기는 하였지
만, 그것은 아직도 중국문학계 일각의 일이었는데, 94년에 발생했던 일련의 사
건은 金庸 小說과 무협소설을 중국문학계의 중심적 관심사가 되게 했을 뿐만
13) 林保淳, 앞의 글.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Ⅰ. 序論 7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이슈가 되게 했다. 1994년 5월 三聯書店은 金庸 小說을
15종 36권으로 묶어 ꡔ金庸作品集ꡕ을 정식 출판하였고14), 北京師範大學의 젊은
교수 王一川은 ꡔ20世紀中國文學大師文庫․小說卷ꡕ을 주편하면서 金庸을 魯迅,
沈從文, 巴金의 뒤이자, 老舍, 郁達夫, 王蒙, 張愛玲의 앞인 4번째의 자리에 올려
놓았으며, 10월 北京大學에서는 金庸에게 명예교수 직함을 수여하였다. 이 자리
에서 중국현대문학 학계의 저명한 학자이자 北京大學 중문과의 원로교수인 嚴
家炎 교수는 金庸의 무협소설 창작을 ‘또 하나의 문학혁명, 조용히 진행된 문학
혁명(另一場文學革命, 一場靜悄悄地進行着的文學革命)’15)라고 치하하였다. 다음
해 嚴家炎은 北京大學의 학부생을 대상으로 ꡔ金庸小說硏究ꡕ라는 과목을 개설하
였고16), 같은 해 12월에 출판된 ꡔ彩色揷圖中國文學史ꡕ는 ‘엄숙문학과 통속문학
사이의 경계와 분야를 소멸시켜 무협소설로 하여금 순문학의 예술 전당에 올라
서도록 했다’17)는 평가와 함께 金庸 小說을 문학사 서술에 편입시켰다. 吳曉黎
는 1994년 즈음의 일련의 사건들을 金庸 小說이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음을 의
미하는 것으로 보고, 그것을 ‘문학 경전을 향한 매진(向經典邁進)’이라 이름 붙
였다.18) 물론 이러한 金庸의 ‘文學 經典化’ 작업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았다. 郾
烈山은 94년 12월 「拒絶金庸」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北京大를 중심으로 한 金庸
숭배 행위를 정면으로 반박하였고19), 魯迅 연구자로 유명한 袁良駿 역시 金庸
小說의 과대평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14) 三聯本 ꡔ金庸小說集ꡕ이 나오기 전에도 대륙에서 金庸 小說은 널리 읽혔다. 그 당시
중국에 판권의 개념이 없기는 하였지만 지금의 입장에서 본다면 1992년 이전에 소
개된 金庸 小說은 모두 盜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三聯本 ꡔ金庸小說集ꡕ이 나온 이
후로도 盜版 형식의 金庸 全集은 시중에 나돌고 있고, 三聯本 역시 도판 인쇄되어
시중의 특가 서점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5) 嚴家炎, 「一場靜悄悄的文學革命-在査良鏞獲北京大學名譽敎授儀式上的賀辭」, ꡔ金庸小
說論稿ꡕ, 北京大學出版社, 1999, p.208.
16) 嚴家炎은 이 수업의 내용을 ꡔ金庸小說論稿ꡕ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한다. 吳曉黎에 따
르면, 嚴家炎은 ‘경전 텍스트 연구방식’으로 金庸 小說을 대학의 강단에 도입하고,
또 학술 專著를 출판한 대륙 최초의 학술계 인사이다. 吳曉黎, 위의 책, 위의 글,
p.132 참조.
17) “他的作品消滅了嚴肅文學與通俗文學之間的界限與分野, 使武俠小說登上了純文學的藝
術殿堂.” 氷心, 董乃斌, 錢理群 編, ꡔ彩色揷圖中國文學史ꡕ, 中國和平出版社, 1995,
p.230
18) 吳曉黎, 「90年代文化中的金庸-對金庸小說經典化與流行的考察」, 戴錦華 主編, ꡔ書寫文
化英雄ꡕ, 江蘇人民出版社, p. 132
19) 郾烈山, 「拒絶金庸」, ꡔ南方周末ꡕ, 1994년 12월 2일자 참조.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嚴家炎, 錢理群, 陳平原, 袁良駿, 王彬彬 등 중문학계의 주요 연구자와 劉再復,
陳墨 등이 학술계의 중심에서 金庸 小說의 문학적 성취와 공헌 등을 논한 것,
1999년 말 王朔이 전면적으로 金庸을 비판하면서 전개된 ‘金王之爭’20) 등에 힘
입어 金庸은 새로운 밀레니엄의 전후 시기 중국 사회의 중심적 화제 중의 하나
로 떠올랐다.
학술계에서의 金庸 小說에 관한 논의는 주로 金庸 小說의 문학적 성취와 공
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21) 嚴家炎, 劉再復, 陳墨 등은 金庸 小說이 雅文學과
俗文學의 대립을 타파, 초월하여 雅俗共賞의 경지에 다다랐으며, 新文學과 舊文
學, 中國文學과 西洋文學의 전통을 조화롭게 통합하였고, 傳統 白話에 기반한
새로운 문학 언어를 창조했다는 점 등을 들어 金庸 小說이 ‘20세기 중국문학사’
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기에 손색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錢理群과 陳平原 또한
金庸 小說의 가치를 인정하였는데, 그들의 논의의 초점은 金庸 小說을 빌어 그
동안 중국문학계의 중심적 문학 관념이었던 五四 新文學적 관점과 新文學 文學
史 서술 체계를 비판하는 것에 맞춰졌다. 그들의 주장은 五四 新文學 운동의 성
공 등이 만들어 놓은 ‘文學 神話’에 기반한 新文學史 서술 체계가 20세기 중국
문학사의 발전 과정을 편향 혹은 왜곡되게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러한 경향 속에서 무협소설 등의 통속문학의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존재 사실마
저도 부정되었음을 지적하고, 新文學史 서술 체계에 의해 은폐되었던 작가와 작
품의 복원뿐만 아니라 古代文學과 現代文學의 이행 과정을 새롭게 설명할 방식
을 찾고자 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80년대 중반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20세기 중
국문학사론’과 ‘문학사 다시 쓰기(重寫文學史)’의 연장선상에 있다.
袁良駿, 王彬彬 등은 金庸 小說의 문학적 가치와 성취, 공헌 등을 역설하는
위 연구자들의 견해에 정면으로 반대한다. 그들의 기본적 인식은, 무협소설 등
舊文學은 봉건 사상의 전파와 공고화 수단이었으며, 인민들에게 제공된 迷魂湯
과 다름없는 유해한 것이며, 또 문학적으로도 저열한 것이라는 관점이다. 그들
은 金庸 小說이 일반 무협소설보다는 우수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여도 그것이
무협소설인 한에 있어서는 무협소설의 병폐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음을 강조한
다. 따라서 金庸 小說을 文學의 殿堂에 들여놓는 일은, 문학에 한정된 것이 아
20) ‘金王之爭’에 관련된 글들은 ꡔ金庸小說論爭集ꡕ(廖可斌 編, 浙江大學出版社, 2000. 11
월)에서 찾아볼 수 있다.
21) 이에 대해서는 유경철, 「金庸 小說의 문학적 성취와 공헌을 둘러싼 논의의 고찰」
(ꡔ中國文學ꡕ 第42集, 韓國中國語文學會, 서울, 2004년 11월)을 참고 할 수 있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Ⅰ. 序論 9
니라 新文學運動 전체의 의미와 가치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
적하고, 이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다.
중국문학 학술계 중심에서 벌어진 金庸 小說에 대한 논란의 핵심은 金庸 小
說을 문학적 측면에서, 그리고 문학사적 측면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金庸 小說의 문학적 가치와 성취를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 또 그것을 문학사에 편입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에 그치지 않는다. 즉,
이 문제는 기존의 문학관과 문학사 서술 체계에 대한 재평가의 문제와 연결되
어 있다. 찬반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다. 그래서 이 논란은 金庸 小說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과 견해의 차이를 드러내
는 것에 그쳤는데, 사안의 중대성이나 동일한 대상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너무
나 크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는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다만, 긍정적이든 부
정적이든 金庸 小說에 대한 이해의 내용이 드러나고, 또 그 이해의 깊이가 심화
되었다는 점은 이 논란의 과정을 통해 얻어진 성과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협소설 장르에 대한 심화된 고찰이 나오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무협소설 장르는 ‘자명한 어떤 것으로 전제되어 있
는 것처럼 보인다.’22) 金庸 小說에 긍정적인 논자들은 무협소설을 이전의 俠義
類 서사의 맥을 잇는 전통적 통속문학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으며, 金庸 小說에
부정적인 논자는 무협소설을 일반적 통속소설 혹은 대중소설의 하나로만 인식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통속문학-대중문학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성찰이 문
학사회학적 맥락에서도 정신분석학적 맥락에서도 거의 없다’23)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면에서 무협소설 연구의 초창기에 발표된 陳平原의 ꡔ千古文人俠客夢-武
俠小說類型硏究ꡕ24)는 주목할만하다. 중국에서 무협소설을 하나의 장르로 인식하
고, 그 변화의 과정과 장르적 속성에 대해서 논한 것으로 陳平原의 ꡔ千古文人俠
客夢ꡕ이 처음이다. 陳平原은 통시적 고찰과 공시적 분석을 결합하여 무협소설
장르를 검토하였는데, 통시적 고찰을 통해 游俠을 제재로 하는 문학(小說뿐만
아니라 詩歌까지 포함한) 안에서 俠에 관한 기록이 실록의 단계→서정(抒情)의
단계→판타지(幻設)의 단계로 변화되었고, 淸末 俠義小說의 단계를 지나면서 公
22) 전형준, ꡔ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ꡕ,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 9, p. 79
23) 전형준, 앞의 책, 같은 페이지.
24) 陳平原, ꡔ千古文人俠客夢 -武俠小說類型硏究ꡕ 人民文學出版社 1992. 3.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案的 요소를 떨쳐내고 무협소설로 전화, 정착되었음을 밝혔다. 다음 그는 무협
소설에 대한 형태 분석을 시도하여 무협소설의 기본적인 서사기법을 살폈는데,
무협소설 특유의 요소를 크게 네 가지, 협객의 行俠 수단(仗劍行俠), 협객의 행
협 주제(快意恩仇), 협객의 행협 배경(笑傲江湖), 협객의 행협 과정(浪迹天涯)으
로 나누어 그 구체적 내용을 분석하는 동시에, 무협소설의 기본적 서사 어법의
문학적, 문화적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런 작업에도 불구하고 陳平原이 무협소설이라는 ‘장르’ 그 자체에
갇히고 말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陳平原은 무협소설 속에서 ‘도
화원의 동경(桃源情結)’과 ‘기혈의 욕망(嗜血慾望)’과 같은 중국인들의 무의식적
문화 심리를 지적해냈고, 무협소설이 ‘俠’을 통한 인간의 ‘구원(拯救)’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무협소설이 가진 너무나 본질
적이고, 그래서 일반적인 내용일 뿐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는 그가 무협소
설이라는 장르를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범위를 중국 근대시기에 탄생된
‘무협소설’과 그 이후의 新派武俠小說에 한정하지 않고, 전체 俠義類 서사 일반
까지 포괄한 것과 관련된다. 즉, 陳平原이 말하는 무협소설은 중국의 전통적인
俠義類 서사 일반을 지칭하는 것이고, 그의 관심은 俠義類 서사 전체의 보편적
속성과 그 발전 과정의 탐색에 집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적
극적인 상호 침투를 통해서 자기를 구성하고 또 반복, 변형되어 가는 장르소설
의 특성에 대한 고찰은, 俠義類 서사 일반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인간의 욕망
과의 상관 관계의 지적으로 대체되었다. 즉, 문제는 무협소설을 일반적 대중소
설의 범주에서만 보고 있다는 데 있다.
필자는 무협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해명하기 위해서는 중국인과의 관계에
서 무협소설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이 논문의 가장 근본적인 문
제 제기이다. 물론 무협소설은 중국인들만이 소비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의 예
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인들만이 무협소설을 창작하는 것도 아니다. ‘무릇
중국인이 있는 곳이면 金庸(혹은 武俠小說)이 있는’ 것처럼 ‘중국인이 없는 곳에
도 金庸(혹은 武俠小說)은 있다.’25) 하지만 한국인들의 무협소설에 대한 애정은
25) 金庸의 동료이자 수하인 彦火는 金庸 小說의 소비와 번역 상황을 개괄하면서 이 말
을 사용했다. 저명한 紅學 연구자인 林以亮 선생이 말한 ‘凡有中國人, 有唐人街的地
方就有金庸’을 중국인들에게 있어서의 金庸 小說의 위치를 설명하는 데 사용했고,
다시 외국에서의 상황을 ‘沒有中國人的地方, 也有金庸的武俠小說’이란 말을 만들어
설명하였다. 彦火, 「漫談金庸武俠小說的影響」, 王敬三 編, ꡔ名人名家讀金庸ꡕ, 上海書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Ⅰ. 序論 11
각별하지만 한국인들에게 무협소설은 일반적 대중소설 중의 하나이다.26) “한국
에서 종래의 무협소설관으로는 포괄되지 않는 ‘신무협’이 나오고”, 이것이 “어떤
면에서 종래의 무협소설관을 붕괴시키거나 해체시킬 수 있었던 것”27)은 한국인
과 무협소설 장르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객관적’ 거리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인
들은 중국인들에 비해 무협소설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무협소설과의 관계에서 그다지 자유롭지가 못하다. 이 말은 중국인들의 무협소
설의 창작과 소비가 무협문화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유구한 역사적, 문학적 자
산 위에 혹은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중국
인과 무협소설 장르 사이에 어떤 ‘고착적’인 관계, 혹은 ‘회귀적’인 관계가 존재
한다는 의미이다. 즉 중국인과 무협소설 장르 사이에는 그들과 여느 대중소설
등에서는 살펴볼 수 없는 ‘특수한 관계’가 존재하며, 따라서 무협소설에 대해서
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서
중국인은, 뒤에 상론하겠지만 필자가 무협소설을 그 이전의 俠義類 서사와는 다
른 새로운 문학 장르로 보는 것과 같이, 근대 이후의 중국인을 말한다. 근대 이
店出版社, 2000. pp. 333-335참조.
26) 한국에서의 무협소설 연구를 살펴보자면,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중국문학
연구자들의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비중국문학 연구자들의 연구이다. 비중국문학 연
구자들의 연구는 대체로 무협소설을 한국인들에게 각별한 문학 장르로 파악하지만
일반적으로 대중소설의 하나로 보고 연구에 임한다. 이는 한국에서 무협소설이 문학
작품으로 보다는 오락적 소모품으로 소개되었던 것, 한국산 무협소설 등이 적지 않
게 등장했던 것 등과 무관하지 않다. 무협소설이 실제의 제목과 작가의 소개와 함께
소개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김현은 「무협소설은 왜 읽히는가-허무주의의 부정적
표출」(ꡔ세대ꡕ, 1969년 10월호)에서 무협소설 독자의 독서 심리를 그들의 사회 계층
및 특성과 연관하여 분석하였다. 최혜실은 「무협소설의 미학」(ꡔ디지털시대의 문화
읽기ꡕ 소명출판, 2001)에서 ‘놀이’의 원리에 빗대어 무협소설의 메카니즘을 분석하였
다. 즉, 무협소설은 ‘비일상적 공간’에서 그 자체의 ‘규칙 만들기와 규칙 지키기’를
통해 즐거움을 추구하는 ‘놀이’로 설명된다. 대중문학연구회의 ꡔ무협소설이란 무엇
인가ꡕ(예림기획, 2001.3.)에는 일부의 중문학자가 참여하고 있는데, 이 책은 한국에서
의 무협소설의 번역 및 창작, 소비 상황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金庸 등 무
협소설 작가의 작가론, 무협소설의 변형 행태인 무협만화에 대한 분석 등을 담고 있
다.
중국문학 연구자들의 연구는 이치수, 이등연, 정동보, 김명신, 공상철, 전형준, 임춘
성 등의 논문 및 저작이 있다. 이들은 전공의 특성을 살려 무협소설과 협의소설의
관계 양상을 고찰하거나 중국 무협소설의 역사와 작품, 작가들을 소개, 해설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이 중 전형준 교수는 1990년대 중반부터 나온 한국의 ‘신무협’에 주
목하였다. 그는 ‘신무협’의 전복성과 삶의 모색과 반성 등에서 대중문학과 고급문학
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힘을 발견해내고 있다.
27) 전형준, 앞의 책, p.82.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후의 중국인들은 근대 이전, 즉 하나의 통합된 사회로서의 고대 중국과 중국인
에 대한 기억과 동시에 근대로의 진입 과정에서 겪었던 치욕의 기억을 가지는
존재이며, 중국인에서 대륙인/대만인/홍콩인/해외 화교로의 신분의 변화 과정을
겪는 존재이다. 무협소설은 이런 중국인들과 함께 탄생하였으며, 줄곧 같이 존
재해왔다.
무협소설과 상당 부분 많은 유사점을 보이는 미국의 서부소설은 일종의 문화
적 의식(文化的 儀式, Cultural Ritual)으로 파악된다. 즉, 서부소설이 그 독특한
역사적 배경과 주제, 갈등의 해소 등을 통해 미국 사회 일원들의 귀속감을 강화
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미국의 독립 기념 의식과 비견할 만
하다는 지적이다.28) 또한 헨리 내쉬 스미스(Henry Nash Smith)는, 서부소설의 작
가들이 단지 자신을 독자 대중의 수준으로 끌어내려 시장 논리에 영합한 게 아
니라, 책의 발행인들, 그리고 독자 대중과 힘을 합쳐 서부 확장 정책과 관련된
집단적 가치와 이상을 형성시키고 강화하였다고29)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은
서부소설이 미국인에게 있어 단순한 오락거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시
사한다.
필자는 무협소설 역시 중국인에게 단순한 오락거리이거나 막연한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볼 때, 무협소설과 金庸
小說은 제국주의의 폭력적 침탈과 함께 시작된 중국 근대의 역사, 그리고 현대
로 넘어오면서 중국인들이 겪어야 했던 자기 정체성의 변화, 이에 따른 중국인
들의 공동의 문화에 대한 노스탤지어 등이 만들어낸 ‘중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상상 행위’이다. 무수한 반복과 변주를 통하여 무협소설이 하나의 장르로 고착
되면서 중국인과 무협소설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관계 양상이 희미해지거나
소멸된 것도 사실이지만, 무협소설 장르에 내장된 이러한 무의식적 성격은 무시
할 수 없다. 중국의 학자들이 무협소설의 이러한 특성을 보지 못하는 것은 어쩌
면 당연해 보이는데, 이것은 무협소설이 그들에게 있어 자명한 어떤 것으로 인
식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협소설이 원래부터 중국에 있었던 俠의 전통과 俠義
類 서사의 연장 내지 변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인식 속에서, 그들이 실제라고 생각했던 俠
28) John G. Cawelti, The Six-Gun Mystique, Second Edition, Bowling Green State University
Popular Press, 1984. p. 100
29) 토마스 샤츠 지음, 한창호․허문영 옮김 ꡔ할리우드 장르의 구조ꡕ 한나래, 1995, p. 33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Ⅰ. 序論 13
의 전통과 俠義類 서사 등이 (문학적) 상상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상상이 무
협소설 장르에 의해서 증폭, 확대되었고 사실화되었음이 간과되었다는 데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중국인들은 무협소설과 무협영화, 무협물 등을 자국의 자연
스럽고도 고유한 문화 산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해서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는
다.30)
반면에 우리는 한편으로는 중국인과 마찬가지 무협소설을 즐기면서도 한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그것은 무협소설과 그것을 끊임없이 생산, 소비, 전유하는 중
국인들 사이의 필연적 관계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사물과 소유자 간의 관계에
관한 사고 이상인데, 예를 들어 金庸 小說과 중국인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임춘
성 교수의 가설과 같은 것이다. 즉, 金庸의 작품(혹은 무협소설 장르)가 ‘중국인
다움(Chinesness)’의 어떤 부분을 잘 파악하여 형상화해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
에 ‘진융의 작품을 대륙과 홍콩, 타이완 그리고 여러 지역의 화교들을 통합시키
는 기제로 보거나’ ‘중국인들이 진융을 통해 다시 통합되는 것은 아닐까’31)라는
가설이 그것이다. 물론 이것은 현재로서는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하지만 이 가
설은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 가설이며, 무협소설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가장 핵
심적인 가설이다. 필자의 문제 제기는 이러한 가설 위에 서 있고, 이 논문은 내
면적으로 이러한 가설의 타당성을 확인하려는 내용을 담게 될 것이다.
30) 이런 면에 있어서 홍콩의 林凌翰, 대만의 黃錦樹, 미국에서 활동하는 田曉菲, 그리고 北京大에서 金庸 小說로 박사학위를 받은 宋偉杰 등의 金庸 연구는 金庸에 대한 새
로운 연구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林凌翰은 「文化産業與文化認同-論金庸武俠小說呈
顯的植民處境」(陳淸僑 編, ꡔ文化想像與意識形態ꡕ, 牛津大學出版社, 1997)에서 무협소
설을 근대 중국의 역사 경험과 연관시켜 해석하며, ꡔ鹿鼎記ꡕ를 홍콩의 식민 상황에
대한 은유로 해독하고 있다. 黃錦樹는 「否想金庸-文化代現的雅俗․時間與地理」(ꡔ’98 金庸小說國際學術硏討會論文集ꡕ, 遠流出版社, 1999)에서 무협소설의 시간성을 분석하
면서 ‘文化中國’의 개념과 金庸 小說의 관계에 대해서 논하였다. 田曉菲는 「從民族主
義到國家主義-ꡔ鹿鼎記ꡕ, 香港文化, 中國的(後)現代性」(2000’ 北京 金庸小說國際硏討會
論文集ꡕ, 北京大學出版社, 2002.)에서 ꡔ鹿鼎記ꡕ에서 金庸이 이전의 민족주의적 관점
에서 국가주의로 전향하였음을 논하고 있다. 宋偉杰은 ꡔ從娛樂行爲到烏托邦衝動-金
庸小說再解讀ꡕ(江蘇人民出版社, 1999)에서 金庸 小說을 젠더, 국민국가, 역사 등의
관점에서 논하였다. 이 글들의 공통점은 문학 연구의 방식 보다는 문화 연구의 방식
을 이용한다는 점이고,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개념을 중심으로, 金庸
小說 해설에 탈식민주의적 문제 의식을 접합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의
문제 의식과 접근 방식은 위의 연구의 그것들과 상당히 유사하며, 때로는 이들의 논
의 성과에 의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들과 다른 견해를 수립하면서 진행된다.
31) 임춘성, 「金庸 小說을 통해본 ‘僞君子’와 ‘眞小人’의 實用理性」, ꡔ中國現代文學ꡕ, 제22
호, p. 380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2. 연구의 전제와 연구 방법 및 대상
1) 연구의 전제로서의 무협소설에 대한 인식
무협소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본 연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전제적인 요
건이다. 앞서 살폈듯이, 무협소설을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존재했던 俠義類 서사
의 계승 혹은 변형으로 인식하는 것은 무협소설 장르의 내재적 속성을 간과하
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무협소설은 전체적으로 俠義類 서사 안에 포함될 수
있다.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협객은 ꡔ史記ꡕ의 「游俠列傳」과 「刺客列傳」 이후 계
속 존재하였던 협객을 원형으로 삼고 있으며, 무협소설 속의 사건들은 새로이
만들어진 것도 있기는 하지만, 고대부터 각종 문학 작품이나 전설, 민담 속에서
회자되던 것들이 반복, 변주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무협소설
은 그 이름이 새로 생겨난 것이듯이32), 중국문학에서 줄곧 다뤄져 온 제재와 내
용 등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의 俠義類 서사와는 다른 내용과 방
식을 가지게 된다. 전형준 교수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32) 武俠, 武俠小說은 淸末에 출현하였는데, 중국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처
음 등장하였다. 일본 통속소설가 押川春浪의 소설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무협
혹은 무협소설이라는 말은 梁啓超, 定一, 徐念慈 등을 통해서 중국에 처음으로 소개
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무협, 무협소설은 중국에서 쓰이는 무협, 무협소설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押川의 무협소설은 일종의 해양 SF소설이다. 과학 기술의 산물인
잠수함을 타고 바다를 누비면서 적들, 대체로 러시아군과 싸워 이기는 과학자 혹은
모험가의 활약상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 된다. 押川의 대부분의 소설은 중국에 번역,
소개되었는데, 徐念慈는 이를 ‘武俠小說’이라 불렀다. 이 신조어가 중국에서는 협객
이 무공과 기예를 발휘하여 적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
다. 하지만 무협소설이라는 말이 처음부터 전면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에는 무협소설을 비롯한 技擊小說, 俠義小說, 俠情小說, 奇俠小說, 劍俠小說 등의 이
름이 같이 쓰였고, 무협소설이라는 말은 이후에 그들과의 경쟁을 통해 압도적인 지
위를 확보했던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武俠이라는 말은 새로운 말이기는 하지만, 생
소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협에 관한 이야기와 관념, 그리고 무술과 技
藝에 관한 이야기와 관념은 중국에서 줄곧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武俠’이라는
말, ‘武俠小說’이라는 말은 협객과 무공 혹은 무예가 결합된 것, 그것에 관한 이야기
로 쉽게 인식되었고, 이런 이유로 무협소설이라는 말이 그것을 지칭하는 여타의 이
름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또 이런 이유 때문에 ‘武俠小說’
이라는 장르는 그 새로운 특성에 비해 전통문학의 계승이라는 측면이 부각될 수밖
에 없었다. 葉洪生 著, ꡔ論劍-武俠小說談藝錄ꡕ, 學林出版社, 1997, pp. 8-11/岡崎由美,
「“武俠”與二十世紀初葉的日本驚險小說」, 王敬三 編, ꡔ名人名家讀金庸ꡕ, 上海書店出版
社, 2000. 참조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Ⅰ. 序論 15
중국에서 무협소설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15년이었다. 청말의 서양
소설 번역자로 유명한 린수(林紓)의 문언(文言), 즉 한문(漢文) 단편소설 「부미
사(傅眉史)」가 무협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발표된 것이 그것이다. 그 전에는
무협소설이라는 말은 없었다. 말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소급해서 무협소설이라
고 부를 만한 소설도 없었다. 물론 전통문학 속에서 그 문학적 연원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원일 뿐 그 자체로 무협소설과 같은 것은 아
니다.33)
전형준 교수는 위와 같은 무협소설 인식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있어서 무협소설은 적어도 1915년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내용
과 경향의 협에 관한 서사임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무협소설이 무협소설 이전의
俠義類 서사와 동일한 문학적 연원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들과 차별화될 수
있었던 표지는 무엇이며, 이를 가능케 했던 조건은 또 무엇인가를 제시하지 않
으면 안된다.
무협소설이 이전의 俠義類 서사에 비해 뚜렷이 드러나는 변화는 무술, 무공을
전면화시킨 점이다. 물론 협객이 등장하는 서사에서 그들의 무공을 서술해내는
일은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협소설은 무공의 시연과 협객들의 대결 장면 등
을 상당히 자세히 묘사하기 시작하였으며, 또 이에 많은 분량의 지면을 할애하
였다. 무공의 묘사가 주는 박진감과 현장감은 무협소설 읽기가 주는 쾌감의 중
요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무공 혹은 무술이 무협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무공과 무술은 현실의 그것에 기초하긴 하
였지만 상당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창조되었다.
그리고 이런 무공과 무술은 무협소설 속의 세계를 구성해내는 중요한 장치의
역할을 수행한다. 少林과 武當, 昆侖, 崆峒, 蛾眉 등은 自派의 고유한 무공을 바
탕으로 江湖의 중요한 門派로 등장하였고, 이외에도 수많은 幇派들이 무협소설
을 통해 새롭게 창조되었다. 일반적으로 무협소설의 세계를 江湖 혹은 武林이라
는 말로 부르는데, 江湖라는 개념이 중국 고대부터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존재
했었던 데 비해 武林은 무협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34) 즉, 무협소설
은 江湖, 綠林 이외에 武林이라는 세계를 창조해냈는데, 이는 무협소설이 기대
33) 전형준, ꡔ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ꡕ,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 9. p.25
34) 葉洪生은 白羽의 등장과 더불어 ‘江湖’와 ‘綠林’ 이외에 ‘武林’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고 설명한다. 葉洪生, 앞의 책, p. 41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는 세계 자체가 무공과 무술 등이 전면화된 세계 혹은 무공과 무술 등에 의해
직조된 세계임을 말한다. 무협소설 속에서 협객들은 자신의 고유한 무공과 무예
를 바탕으로 개인적 원수나 문파의 원수 혹은 민족적 치욕을 되갚거나, 무림의
비급이나 보물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런데 무협소설에서 무공과 무술 등은 세
계를 구성하는 장치이거나 묘사됨으로써 무협소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해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 자체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협소설의 이야기는 영웅으로서의 협객의 이야기, 미스터리에
빠진 사건의 해결 과정, 또는 미녀와의 애정담 등과 함께 결합된다. 무협소설은
다양한 장르에 속하는 이야기들과 줄곧 결합해 왔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
은 무협소설이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을 ‘흡수’한다는 사실인데, 여러 가지의
이야기가 무협소설에 결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것은 ‘무협소설’이라
는 이름으로 지칭된다. 이것은 무협소설이 가지는 특성, 무예와 무공의 전면화
와 무림의 구성 등이 가지는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힘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장르적 특성의 위력은 협객의 이야기라고 하는 동일한 제재를 취하는,
무협소설 이전의 俠義類 서사와의 관계에서도 충분히 발휘되어 무협소설을 俠
義類 서사와 구분짓는 표지가 된다.
무공, 무술의 전면화가 무협소설의 서사 양식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특징
으로서 비교적 눈에 잘 띄는 무협소설의 변별적 요소라고 한다면, 다음의 한가
지는 무협소설 장르의 내면적 정체를 추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데, 무협소설
에 내재된 요소이기도 하지만 시대적 상황과 더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무협소
설은 ‘중국인’들의 문학 장르이다. 물론 이전의 俠義類 서사 역시 중국인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 두 중국인들 사이에는 분명한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俠義
類 서사의 독자로서의 중국인이 고대 국가 체계 내에서의 중국인인데 반해, 무
협소설 독자로서의 ‘중국인’은, 무력하기는 했지만 근대 국가 기구 하의 중국인
이다. 실질적으로 이 ‘중국인’ 사이에도 여전히 민족적 분기에 따른 정체성의
차이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漢
族이나 滿洲族이라는 ‘종족적 정체성(ethnical identity)’에서 벗어나 근대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갖게 된 것이다. 무협소설의 작가와
독자가 근대국가의 국민의 신분이었다는 사실은 무협소설의 기본적 속성을 이
해하고, 해명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단서이다. 이로써 무협소설은 두 가지의 차
원에서 검토가 가능하다. 하나는 무협소설과 ‘근대(Modern)’라는 시간성에서의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Ⅰ. 序論 17
검토이고, 다른 하나는 무협소설과 제국주의와의 관련성에서의 검토이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서로 교묘하게 연관되어 있다.
1928년 창작을 시작하여 30년대 초까지 ꡔ碧血丹心大俠傳ꡕ, ꡔ碧血丹心于公傳ꡕ,
ꡔ碧血丹心平藩傳ꡕ 등 민족주의적 성향의 무협소설을 발표했던 文公直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시사적이다.
나의 작은 뜻으로 충협을 빛나게 하고, 퇴폐하고 황당한 글을 거두고, 민족을
위기에서 구원하며, 무협에 대한 이 시대의 오해를 바로잡고, 더욱이 민족 영웅
의 분노를 토하고자 하여 ꡔ碧血丹心ꡕ이라는 작품이 있게 되었다. 감히 독자에
게 바쳐 고하는 바이다. 오늘날 漢․滿․蒙․回․藏의 五族이 하나가 되었지만
前人들이 종족을 지켰던 공은 실로 후인들을 부끄럽게 한다. 동서의 열강이 우
리를 핍박하는 것은 오이라이트족이 明에 했던 것 보다 심하다. 이 글을 읽고
분발하여 五族을 위해 도모해야만 大中華民族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因直微志, 欲昌明忠俠, 挽頹唐之文藝, 救民族之危亡. 且正當代對武俠之謬解,
更爲民族英雄吐怨氣, 遂有ꡔ碧血丹心ꡕ說部之作, 敢掬誠以告讀者者. 今日雖已五族
一家, 而前人衛族之豊功, 實足以觀感後人御侮之觀念. 東西列强對我之壓迫較之瓦
剌之爲于明爲尤甚, 則讀此益奮起而進, 爲五族謨之, 則大中華民族其庶幾乎.35)
여기서 文公直은 무협소설의 독자들을 五族 혹은 大中華民族이라는 말로 지
칭하고 있으며, 자신의 독자들이 무협소설 읽기를 통해 大中華民族으로서의 정
체성을 확고히 하기를 기원한다. 그런데, 文公直이 五族 혹은 大中華民族의 정
체성을 부르짖는 이유는 바로 ‘동서의 열강(제국주의 열강)’의 핍박 때문이다.
이는 무협소설의 창작과 소비에 제국주의 열강의 폭력적 침탈이라는 청말 이후
의 현실적 상황이 개입되어 있음이 드러나는 예이다. 물론 모든 무협소설이 이
러한 현실에 대한 의식적 자각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예
는 무협소설이 새로운 창작 의도와 상황의 구성 위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드
러내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무협소설 초기 작품이었던 平江不肖生의 ꡔ近代俠義
英雄傳ꡕ은 제국주의(국가의 武士 혹은 力士)에 대항해서 싸운 民族(中國)적 영
웅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은 무협소설이 취하는 주요한 제재
중의 하나였다. 상존하는 제국주의의 위협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그에 대해 현실
적이고, 실제적인 대항 방식을 모색하게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이에 ‘상상적’으
35) 范伯群 주편, ꡔ中國近現代通俗文學史 上ꡕ, 江蘇敎育出版社, 1999년, p.622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로 대응하는 방식 또한 모색하게 하였으며, 이때 강화된 것은 文公直의 예에서
처럼 자기 정체성의 인식이다.
‘近代俠義英雄傳’類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보다 직접적으로 무협소설 안
에 끌어들었다면, 이후 민족적 정서에 호소하고 이를 강화하려는 작품들의 대부
분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경향을 취했다. 그 작품들은 근대 이전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 거기에서 제재를 취하였다. 이때 주로 포착된 것은 漢族과 夷民
族 오랑캐의 대립과 투쟁의 역사였다. 여기서 한족 은 무협소설의 서사와 독서
의 주체를 대변하는 존재였고, 이민족 오랑캐는 한족의 적대적 존재였다. 무협
소설은 일면 ꡔ岳飛傳ꡕ이나 ꡔ大明英烈傳ꡕ의 주제로 회귀한 듯 보였다. 하지만 재
미있는 사실은 무협소설이 읽히던 시점에 더 이상 이민족 오랑캐가 중국에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이민족은 이미 五族, 大中華民族 안으로 포
섭된 상태이며, 그래서 이민족 오랑캐는 현존하는 소수민족의 조상을 직접적으
로 지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존하는 주체를 위협하는 존재를 상징하는 아이
콘이다.36) 즉, 제국주의의 위협은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무협소설의 형성과
그 내면의 구성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林凌翰은 金庸 小說을 분석하면서, 홍콩의 식민지 상황 속에서 金庸이 무협소
설을 통해 스스로가 중국과 하나가 되었음을 증명함으로써 제국주의에 의한 식
민적 거세를 보충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金庸 小說에서 드러나는 중국 전통
문화에 대한 집착과 무공의 신비화 등을 중국의 상징적 거세에 대한 보충 행위
라고 주장하는데37), 이러한 주장은 좀더 확장되어 무협소설 일반에 대한 이해로
연결될 수 있다. 제국주의의 거세 위협이 중국인들로 하여금 무공과 전통문화를
핵심 내용으로 삼는 俠義類 서사에 눈을 돌리게 했으며,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
니라 무공과 무술, 즉 제국주의의 艦堅砲利에 맞설 수 있는 ‘중국적’ 수단을 상
상적으로 소환, 전면화시키는 무협소설 장르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
한 견해는 무협소설에 대한 또 하나의 이해 차원과 연결된다.
무협소설과 관련된 시간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무협소설이 다루
36) 물론 이는 무협소설 독자 뿐만 아니라 작가들도 혼동하는 부분이다. 무협소설이 스
스로 자기 이야기 패턴과 방식을 만들게 되면서, 또 무협소설이 일반적 대중소설의
차원으로 확실히 부상하면서 이민족 오랑캐에 대한 설정은 그 자체로 한족에 대한
미화와 이민족에 대한 경멸의 내용을 생산하게 된다. 이는 金庸의 예에서도 드러난
다.
37) 林凌翰, 「文化産業與文化認同-論金庸武俠小說呈顯的植民處境」, 陳淸僑 編, ꡔ文化想像
與意識形態ꡕ, 牛津大學出版社, 1997, p. 235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Ⅰ. 序論 19
는 시간, 즉 과거의 시간이며, 다른 하나는 무협소설이 창작, 소비되는 시간, 즉
근대(Modern)의 시간이다.38) 이 두 가지 시간의 존재는 무협소설이 俠義類 서사
와의 차이를 드러내는 지점 중의 하나이다. 俠義類 서사의 경우에도 서사된 시
간과 서사의 시간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이 차이의 존재는 俠義類
서사가 갖는 일반적 특성을 규정짓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俠義類 서사에 존
재하는 두 가지 시간 사이에서 무협소설의 그것에 존재하는 간극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즉, 俠義類 서사의 두 시간은 모두 전통 시기에 속하는 과거라고 말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俠義類 서사는 동시대의 서사인 셈이다. 이에 반해, 무
협소설과 관련된 두 가지의 시간, 과거(전통)와 근대(현대)에는 무시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간극은 단지 시간적인 의미만을 가지지 않는다. 그
것은 전통 중국의 마감과 새로운 시대 상황의 도래(물론, 이 사이에 제국주의의
침략이 개입되어 있다)라는 엄청난 사건을 내재한다. 무협소설은 이 엄청난 간
극을 넘어서 과거를 현재로 소환시킨다. 그런데 무협소설의 특이점은, 이 소환
이 ‘상상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고, 이는 무협소설이 역사소설과 갈라지
는 지점이다. 무협소설을 통해 현재로 소환된 과거는 ‘있는 그대로의 과거’가 아
니라 ‘그랬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과거’ 즉 ‘상상된 과거’이며, 이런 의미에서 무
협소설은 과거를 소환한다기보다는 상상한다. 과거 중국에 대한 상상은 무협소
설의 세계 즉 ‘강호’로 현재화된다. 이 세계는 때로는 비교적 현실적인 모습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환상적이고, 초월적 요소를 내장하기도 한다. 다양
한 존재 양상에도 불구하고 江湖가 의미하는 것은 비교적 분명한데, 그것은 강
호가 ‘武’, ‘俠’ 등을 중국의 전통문화와 결합시키거나 그 자체로 傳統文化化시키
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드러난다. 강호는 실제의 중국과 상상된 중국의 혼합과
착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상 중요한 것은 강호가 상상된 중국을 지향하며
계속적으로 중국을 상상한다는 점이다. 무협소설의 강렬한 ‘중국 상상’의 욕망은
중국인들의 과거에 대한 일상적 노스탤지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을 당대
현실에 대한 상상적 해결 방식과 연결시켜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
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협소설은 일반적 俠義類 서사와는 분명히 달리 해석되어야
38) 黃錦樹는 리얼리즘 소설과 무협소설의 재현을 차이를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무협소
설의 장르적 속성을 파악하고자 했는데, 이때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가 바로 시간성
의 운용에 기초를 둔 재현 방식의 다름이다. 黃錦樹, 「否想金庸-文化代現的雅俗․時
間與地理」, ꡔ’98 金庸小說國際學術硏討會論文集ꡕ, 遠流出版社, 1999, pp. 596-59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2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한다.39) 무협소설은 꿈이나 유토피아의 동경 이상의 구체적 의미를 갖는다. 왜
냐하면, 무협소설은 제국주의의 거세 위협에 대한 공포와 기억과, 전통중국에
대한 동경과 추억이 만나는 지점에서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무
협소설을 제국주의의 폭력적 침탈과 함께 시작된 중국 근대의 역사, 그리고 현
대로 넘어오면서 중국인들이 겪어야 했던 자기 정체성의 변화, 이에 따른 중국
인들의 공동의 문화에 대한 노스탤지어 등이 만들어낸 중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상상 행위로 파악하는 것이다.
2) 연구 방법과 대상
金庸의 무협소설이 모든 무협소설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의미에서
金庸 小說은 무협소설에서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도 있다. 수많은 문학 연구
자들이 金庸에게 보내는 찬사와 지지는 무협소설 작가들에게 흔한 일이 아니다.
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가 아직은 유보적이라 할지라도 무협소설 작가로서 그의
명성과 성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이는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다.
金庸의 무협소설은 탁월한 상상력,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 전통문화에 대한
풍부한 이해 등이 어우러진 무협소설 최고의 작품이다. 또한 金庸의 무협소설만
큼 많은 독자를 확보한 무협소설은 없었다. 金庸의 무협소설은 영화, 연속극, 연
극, 만화 등으로 변형되어 중국인들과 대면하고 있다. 필자가 金庸 小說을 택해
무협소설과 중국인의 관계를 탐색하려 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金庸 小說
은 중국인들의 중국 상상으로서의 무협소설의 핵심적 위치에 있으며, 가장 광범
위하고 가장 위력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텍스트이다. 그래서 金庸 小說의 중국
39) 이 말은 필자가 무협소설이 俠義類 서사와 완전히 다른 서사물이라고 생각함을 의
미하지 않는다. 어쩌면 무협소설은 俠義類 서사와 차이점 보다는 유사점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는 무협소설이라는 장르를 깊이있게 이해하기 위해
서는 무협소설을 일반적 대중소설의 차원에서 보는 것 이상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 무협소설이 창작되고 소비되는 과정은 여타 대중소설의 그것
과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무협소설과 중국인들의 관계를 문제로 상정해 놓고 보
자면, 현재로서는 많은 부분이 희석되거나 의식되지 않기는 하지만 무협소설의 창작
과 소비가 중국인들이 과거, 특히 근대 시기 겪어야 했던 상처 혹은 오욕의 심리와
관련되어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ꡔ臥虎藏龍ꡕ이나 ꡔ英雄ꡕ 등의 무협영화들은 이러한
심리와 기억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협류가 중국의 문화를 신비
화하고 과장하는 이면에 그들의 과거 치욕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내장되어 있음을
읽어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Ⅰ. 序論 21
상상의 내용이 무협소설의 그것을 가장 잘 대변하리라 확신한다.
위 절에서 무협소설을 왜 중국인의 중국에 대한 상상 행위(혹은 그 산물)로
파악하는지를 살펴보았는데, 이는 金庸 小說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浙江 嘉興
출신의 金庸이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곳은 홍콩이다. 그는 그곳에서 무협소설을
창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ꡔ明報ꡕ라는 신문을 창간하여 유력한 언론 매체로 키웠
다. 중공 정권 수립 이전의 중국인들에게 무협소설이 그려내는 중국과의 거리가
시간적 차원에서만 존재하였다면, 본토 대륙에서 유리된 중국인들에게 무협소설
속의 중국은 시간뿐만 아니라 지리, 공간적, 나아가서는 정치적 거리까지 덧붙
여졌다. 그들에게 있어 무협소설 창작과 소비를 통한 중국에 대한 회상과 상상
은 시간과 공간 혹은 정치적인 의미에서까지 그 거리를 무화시키기 위한 노력
이다. 그들이 중국을 상상하고, 이를 통해 전유함으로써 얻으려 했던 것은 ‘중
국’이며,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그들은 대만에서, 그리고 홍콩에서 ‘新中
國’이 아닌 ‘중국’을 희망하고 염원하였는데, 이것은 이 시대에 그들에게만 주어
진 특권이기도 했다. 물론 그들이 상상해낸 ‘중국’은 이제 그들의 것만이 아닌
모든 중국인들의 공동 소유가 되었으며, 그것은 적어도 현재에는 ‘중국’의 상상
이 정치적인 의미를 초월하는 행위가 되었음을 뜻한다. 무협소설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갈라진 중국의 미래적 통합을 가능케 하는 어떤 요소를 추정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 상상의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놓인 金庸 小說이 상상해내는
중국은 어떤 모습이며, 金庸은 그것을 이끄는 주체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있는가
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은 바로 이러한 내용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金
庸은 무엇을 중심으로, 어떠한 과정과 경로를 통하여 어떤 모습의 중국과 중국
인을 상상해내는가를 살피기 위하여 논문의 본론은 모두 세 개의 장으로 구성
된다.
본론의 첫 번째 장인 Ⅱ장에서 ‘江湖’와 ‘俠’에 대해서 다루었다. 이는 ‘江湖’와
‘俠’이 무협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이며, 중국인들에게 있어 무협소
설 속의 세계가 하나의 대안적 세계로 인식되며, 따라서 이 세계는 실제 역사의
중국을 대체하는 효과를 발휘하는데, 이러한 작용이 ‘강호’와 ‘협’을 이해하는 그
들의 방식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를 ‘상상’으로서의 강호
와 협에 내재된 효과 혹은 위력으로 본다. 여기서 ‘상상’이라는 말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The Imagined Community)’라는 개념(이는 에릭 홉스봄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2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의 ‘만들어진 전통과 전통 만들기’의 ‘만들기’ 즉 ‘발명(invention)’이라는 개념과
유사한 점이 있다)과 라깡의 ‘상상계(the Imaginary)’ 등에서 착안한 것이다. 앤더
슨의 ‘상상’이라는 개념은 특정한 시기의 문화적 조형물로서의 민족의 탄생과
그것이 발휘하는 효과 등을 설명하는 것인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민족(nation)’
은 상상을 통해 탄생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부터 줄곧 존재해 온 것
이라는 믿음을 유포시키고, 그로 인하여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 공동체의 성
원으로 믿고, 행동하며, 그것을 위해 희생도 감수하게 하는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의 과정에 내면화되어 있는 것은 일종의 오해와 착각이다.
상상을 매개로 하여 탄생한 것과 상상이 가해지기 전의 실체 사이에는 동일한
연원을 갖는다는 것(사실, 이 연원의 문제도 모호한 경우가 많다) 이외에 다른
동질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상상되기 전의 것과 상상된 이후의 것은 서로
다른 질과 차원을 갖는다. 하지만 상상된 것은 상상 이전의 것과 자신을 동일시
한다. 이는 상상된 것의 자기 존재 근거의 확보를 위한 의도에서 나오는 것이지
만, 문제는 상상된 것이 그것을 아무런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단지 자연스
러운 행위라고 인식한다는 데 있다. 이는 상상된 것이 스스로를 이전부터 존재
해 온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인데, 따라서 그것에게 있어 상상 이전의 것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오해 혹은 착각이라는 사실은 무시된다. ‘상상’의 과정
은 이렇게 오해와 착각을 동반하는 것인데, 필자가 라깡으로부터 도출해내는
‘상상’의 또 하나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필자는, 중국에서의 ‘강호’와 ‘협’이라는 개념이 구체
적 실체를 부르는 말에서 하나의 ‘관념’으로 전화되는 과정과, 그것이 발휘하는
작용과 효과에 대해서 살필 것이다. 1절에서는 구체적인 것에 대한 이름으로서
의 ‘강호’와 ‘협’이 그들에 대한 기대와 표현 방식 등을 통해 하나의 ‘문학적 상
상’으로 전화되었으며, ‘문학적 상상’으로 전화된 ‘강호’와 ‘협’이라는 관념이 현
실에서 그것에 대한 인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중국인들은 그것을
가지고 자신들의 과거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등을 살필 것이다. 2절에서는 ‘강
호’와 ‘협’이 무협소설에서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인지, 또 그것들이 어떻게 중국
과 중국인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필 것이다.
Ⅲ 장에서는 金庸 小說에서 ‘상상의 중국이자 중국의 상상’인 강호가 어떤 방
식으로, 어떠한 중국을 상상해내고 있는지를 살필 것이다. 金庸의 강호에서 가
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역사, 로맨스, 문화가 중점적으로 부각된다는 점이다. 그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Ⅰ. 序論 23
래서 이 장에서는, 金庸이 왜 이것들을 중심으로 해서 자신의 강호를 구성하였
는지, 그럼으로써 金庸의 강호는 어떤 성격으로 구현되며, 또 그것이 지향하는
혹은 상상하는 중국은 무엇인지를 살필 것이다.
1절에서는 歷史와 金庸의 江湖와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역사는 金庸
小說의 가장 중심적 테마이다. 金庸은 중국의 과거 역사에서 자신의 무협소설을
시작한다. 이때 金庸이 주로 주목한 역사는 漢族과 夷民族의 대립과 투쟁의 역
사였다. 金庸은 자신의 소설을 통해 이러한 과거의 역사를 성찰하고 반성하며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상상한다. 필자는 金庸의 강호와 역사의 관계를 두 가지
각도에서 고찰하는데, 하나는 ‘歷史의 江湖化’이고, 다른 하나는 ‘江湖의 歷史化’
이다. ‘역사의 강호화’란 역사를 다루는 金庸의 방식을 의미하는데, 金庸이 역사
에 접근하여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무협소설의 방식이며, 또 그것을 통해 역사
를 재구성해내고 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강호의 역사화’는 강호라는 상상을
하나의 독립적이고 완결된 세계로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하는데, 金庸은 강호를
조직화하고 거기에 그 자체의 역사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과거의 실재 역사를
대체할 만한 대안적 현실로서의 체계를 갖추게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필자가 볼 때, 역사를 강호화하고 강호를 역사화함으로써 과거의 역사
를 대체할 새로운 역사를 상상해내려고 했던 金庸은 그 자체만으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金庸이 주목하였던 역사가 한족과
이민족의 대립과 투쟁의 역사였기 때문인데, 金庸은 역사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역사로 되돌아가 끝내려 했지만 그 역사는 자신이 상상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
던 역사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역사였다. 필자
는 이를 金庸의 역사 상상이 직면한 딜레마라고 해석하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
서 중요한 것은 金庸이 처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그로 하여금 새로운 방식의
중국과 중국인을 상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즉, 金庸은 역사(중국)
에 대한 상상이 드러낸 공백과 한계를, 여성과 문화를 부각시키고 전유함으로써
보충하려 했으며, 새로운 주체를 모색하고 상상해냄으로써 극복하고자 하였다.
Ⅲ 장의 2절과 3절에서 다루는 내용은 女性과 傳統文化가 金庸의 중국 상상
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구체화된 중국 상상은 어떤 형태이며,
그것이 무의식적 차원에서 지향하고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다.
2절에서는 로맨스의 개입이 金庸의 강호를 유연화, 현실화시켜 그것을 의사현실
(擬似現實)로 인식되게 한다는 점과 金庸의 여성들이 남성들의 상상의 산물임을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2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지적하고, 여성들의 여러 가지 형태를 분석한다. 金庸의 여성을 분류하는 데 있
어서 필자는, 로라 멀비가 남성들이 거세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형상화해내는 여
성의 모습이라고 제시한 두 가지 여성상, 즉 성녀와 악녀를 참고하는데, 金庸의
여성의 경우에는 이 두 가지의 유형에 이 둘의 결합 형태가 추가된다. 필자는
金庸이 여성을 전유하는 방식 즉, 숭배하거나 희생시키고, 처벌하거나 용서하며,
남성 사회로 귀환시키는 것 등에 대해서 살필 것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상상과
전유는 金庸의 ‘陽剛中國’ 상상의 표지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인데, 金庸은 여성
들을 상상해내고 전유함으로써 자신의, 혹은 중국의 남성성이 건재함을 확인하
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필자는 이것이 근대 진입기 제국주의의 폭력적 침탈의
경험에 대한 상상적 극복이자, 망각의 차원에서, 그리고 자신의 역사 상상의 결
함에 대한 보충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것이다.
3절에서는 金庸 小說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중국의 전통문화의 활용
양상과 그 의미와 효과를 살펴본다. 필자는 金庸이 자신의 소설에서 중국의 전
통문화를, 무협소설 속의 자아 혹은 독자로서의 중국인들로 하여금 심리적 우월
감을 경험하게 하거나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는 장치로 사용하
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런데, 이러한 효과는 金庸이 자신의 작품 속에 전통문화
를 개입시키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金庸의 전통문화를 다루는
방식에 있는데, 그는 전통문화의 심미적, 윤리적 속성 등을 극도로 과장하고 부
각시키며, 또한 전통문화의 비의성 측면을 강조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즉, 金庸
은 전통문화의 과장과 심미화를 통해 그의 강호를 문화 공간으로 인식되게 하
고, 전통문화를 비의적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강호의 주체와 타자를 성립시킨
다. 이는 杜維明의 ‘文化中國’의 개념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 즉 무기력한 정치
를 우수한 ‘문화’로 대체하고자 하는 발상, ‘문화’를 중심으로 중국(혹은 중국인)
의 통합을 이루려는 의도와 견주어 설명될 것이다. 이 절을 통해, 金庸의 전통
문화의 발견과 부각은 ‘文化中國’이라는 표상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것은 중국
인들의 정치적, 군사적 차원에서의 패배와 좌절을 문화적 우월성으로써 상쇄시
키고, 한편 지속적으로 중국인들의 원래의 정체성을 상기, 확인시키고 있음을
강조할 것이다.
Ⅳ 장에서는 ‘상상의 주체이자 주체 상상’의 매개인 金庸의 俠의 변화 과정을
중점적으로 살핌으로써 金庸의 중국 상상과 주체 상상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살핀다. 金庸 小說은 시종 한족과 이민족의 대립과 투쟁이라는 동일한 제재를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Ⅰ. 序論 25
주로 다루지만, 초기작들에서 그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 입장은 후기작에서의 그
것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金庸이 상상해내는
협의 모습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즉, 초기작에서 주로 ‘爲國爲民의 俠之大
者’였던 ‘漢族의 俠’은 金庸의 마지막 작품에서는 ‘反俠’이자 ‘國民의 俠’으로 모
습을 바꾼다. 필자는 이것이 과거 역사를 바라보는 金庸의 시각의 변화 때문이
라고 생각한다. 金庸은 중국의 역사를 반성하고 상상하는 데 있어서 초기에 한
족을 중심에 두었지만 그 때문에 그의 역사에 대한 상상은 딜레마에 처하게 된
다.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해가는 과정은 金庸이 한족의 협을 대체할 새로운 협
을 상상해내는 과정이고, 그것은 국민의 협을 탄생시키는 데 이른다는 것이 필
자의 주장이다.
2절과 3절에서는 金庸 협의 변화의 조짐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2절에
서는 金庸의 협과 그들의 아버지들의 관계를 통해 그것을 살필 것이다. 金庸의
협의 아버지들은 역사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읽힐 수 있는데, 그들은 초기에 계
승되어야 할 ‘정신적 아버지’로 등장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극복되어야 할 아버
지, 혹은 아들 세대에게 원죄를 부과하는 아버지로 변화하게 된다. 이에 따라
金庸의 협객들은 아버지들을 계승하는 태도에서 점차 아버지를 극복해 가는 모
습으로 바뀌게 된다.
3절에서는 金庸의 협이 주류적이고 전통적인 강호의 질서와 이념에 저항하고,
비주류와 근대적 입장을 가지고 그것을 재편해내는 상황을 살필 것이다. 이 재
편 과정의 중심에는 한족과 이민족의 대립적 설정을 근원이었던, 한족-자아, 이
민족-타자라는 金庸의 인식 내용의 회의와 변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밝힐 것이
다.
4절에서는 ꡔ鹿鼎記ꡕ와 韋小寶에서 金庸의 중국 상상과 그 주체에 대한 상상
이 완성되고 완결되고 있음을 살필 것이다. 여기서 먼저 韋小寶에게 붙여진 ‘反
俠’이라는 말의 의미를 살필 것인데, 필자는 그것을 ‘한족의 협’으로서의 기존의
협과는 다른 범주 혹은 차원의 협, 즉 ‘국민의 협’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협’의 탄생은 金庸이 에스닉(종족)의 차원에서 중국의 역사를
다루던 것에서 탈피하여 내이션(국민 혹은 민족)의 차원에서 그것을 보게 되었
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金庸은 역사 상상에서 직면해야 했던 딜레마에서
완전히 탈피하게 되는데, 이때 金庸은 제3의 세력(러시아인 등 서구인들)을 ꡔ鹿
鼎記ꡕ의 새로운 적으로 설정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할 것이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2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金庸은 1955년 ꡔ書劍恩仇錄ꡕ을 시작으로 1972년 9월 ꡔ鹿鼎記ꡕ가 완간될 때까
지 약 15년 간 총 15편의 장단편 무협소설을 써냈다. 金庸의 무협소설은, ꡔ越女
검ꡕ을 제외한 나머지 14편 무협소설의 첫 글자를 따서 “飛雪連天射白鹿, 笑書神
俠倚碧鴛”의 對聯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 金庸은 1970년 3월부터 1980년 중반까
지 자신의 전 작품을 수정, 발표하였다. 일반적으로 수정 전의 金庸 작품을 ‘金
庸舊版小說’, 약칭하여 ‘舊版’이라 부르고, 수정 이후의 金庸 小說을 ‘金庸新版小
說’, 약칭하여 ‘新版’이라 부른다. 현재 金庸은 ‘新版’을 재수정하여 발표하고 있
는데, ‘新新版’이라 불리는 재수정판은 2003년 ꡔ書劍恩仇錄ꡕ이 처음으로 선을 보
였고, 계속적으로 출간될 계획에 있다.40)
그래서 현재 일반적으로 읽히는 金庸 小說은 金庸新版小說이다. 필자가 본 논
문을 위해 텍스트로 삼은 金庸 小說 역시 ‘新版’ 金庸 小說이며, 1994년 대륙에
서 처음으로 정식 발표된 三聯書店本 “金庸作品集”이다. 舊版과 新版, 그리고
新新版 사이에는 약간의 내용이 수정되었고, 또 수정될 것이다. 하지만 舊版 金
庸 小說은 현재 일반적으로는 구하기 힘들며, 新新版은 아직 전모를 드러내지
않았다. 또한 필자는 각 판에서의 수정이 金庸 小說 전체의 면모를 바꿀 정도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新版本을 가지고 金庸 小說을 논하는 것은, 金
庸 小說의 版本 연구가 아닌 이상 그다지 큰 문제는 없으리라 본다.
하지만 여기서 먼저 밝혀둘 것은, 본 논문이 역사에 대한 金庸의 성찰과 상상
의 내용을 주로 다룸으로 해서 불가피하게 논의되는 작품이 편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장편만 놓고 볼 때도, 역사적 사건을 주로 다루는 작품들, ꡔ書劍
恩仇錄ꡕ, ꡔ碧血劍ꡕ, ꡔ射鵰英雄傳ꡕ, ꡔ神鵰俠侶ꡕ, ꡔ倚天屠龍記ꡕ, ꡔ天龍八部ꡕ, ꡔ鹿鼎
記ꡕ 등이 많이 거론되고 인용되는 반면, 그 외의 작품들 ꡔ雪山飛狐ꡕ, ꡔ飛狐外
傳ꡕ, ꡔ連城訣ꡕ, ꡔ俠客行ꡕ, ꡔ笑傲江湖ꡕ 등은 앞의 작품들에 비해 많이 거론되지
않는다. 金庸 小說의 대표작품을 거론하거나 대중적 호응도를 따지는 것은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ꡔ笑傲江湖ꡕ를 제외한 후자의 작품들
은 중요도나 인지도는 전자의 그것에 비해 낮은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후자
의 작품들에서도 ‘陽剛中國’과 ‘文化中國’에 대한 상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작품들은 주로 이와 관련하여 논의할 때 참고하거나 인용하고 있음
을 밝힌다. 金庸 小說의 전체 창작 및 수정 사항 등은 다음의 표를 참고할 수
있다.41)
40) 陳鎭輝, ꡔ金庸小說版本追昔ꡕ, 匯智出版, 香港, 2003. 11, pp. 13-1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Ⅰ. 序論 27
金庸 武俠小說 創作 年度
장(중)편소설 창작 개시년 등재 간물 수정년도
書劍恩仇錄1955-56 新晩報1975
碧血劍1956-1957 商報1975
射鵰英雄傳1957 香港商報1976
雪山飛狐1957 新晩報1974
神鵰俠侶1959 明報1976
飛狐外傳1959 武俠與歷史1977
倚天屠龍記1961 明報1976
白馬嘯西風(中) 1961 明報1977
鴛鴦刀(中) 1961 明報1974
天龍八部1963 明報1978
連城訣1963 東南亞週刊(明報副刊) 1977
俠客行1965 東南亞週刊(明報副刊) 1977
笑傲江湖1967 明報1980
鹿鼎記1969 明報1981
越女劍(短) 1970 晩報
41) 다음 표는 宋偉杰의 ꡔ從娛樂行爲到烏托邦衝動-金庸小說再解讀ꡕ(江蘇人民出版社, 1999.
9, pp. 32-33)에 실린 것을 번역, 수록한 것이다. 宋偉杰이 제시한 수정 연도와 위에서
필자가 제시한 수정 연도에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필자는 金庸가 언급한 수
정의 완료 시기를 참고하였고, 宋偉杰은 각 작품에 덧붙여진 후기가 씌어진 때를 수
정의 완료 시기로 보았기 때문이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2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1. 江湖와 俠의 기원과 의미 확장
1) 正統 文人들의 정치적 기호로서의 江湖 : 廟堂의 부속물로서의 江湖
원래 江湖는 長江과 洞庭湖를 일컫는 말로서, 처음에는 다른 함의를 지니지
않은, 단지 지리를 나타내는 말이었다.42) 그러다 이후에 五湖, 三江五湖까지를
지칭하게 되는데, 이는 춘추시기 范蠡의 이야기에 대한 문헌들 사이의 서술의
대조를 통해서 드러난다. ꡔ史記․貨殖列傳ꡕ에서 춘추 시기 越王 勾踐을 도와 吳
나라를 멸망시킨 范蠡가 다시 越王 勾踐이 자신을 해칠 것을 두려워하여 미녀
西施와 함께 ‘조각배에 몸을 실고 강호를 떠돌았다(乃乘扁舟浮于江湖)’라고 서술
하고 있고, 같은 이야기를 ꡔ國語․越語下ꡕ에서는 ‘작은 배를 타고 오호를 부유
하였으니,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遂乘輕舟, 以浮于五湖, 莫知其所
終極)’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陳平原은 이를 통해 강호가 五湖, 三江五湖를 지칭
하는 것으로 확장되었음을 밝힌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때부터 강호
라는 말이 더 이상 지리를 지칭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越王 勾
踐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배를 띄우고 강호를 부유하였다는 范蠡의 선택은 정
치적 사건의 전형적인 한 형태로 인식되면서 이후 문인들 사이에서 관용되는데,
陳平原은 그러한 예로 高適의 ‘天地莊生馬, 江湖范蠡舟(莊生은 말을 타고 천지
를 내달리고, 范蠡는 배를 타고 강호를 떠돈다) 「古樂府飛龍曲留上陳左相」’, 杜
甫의 ‘欹枕江湖客(병들어 누운 강호객) 「竪子至」’, 杜牧의 ‘落魄江湖載酒行(낙백
하여 술을 싣고 강호를 떠돈다네) 「遣懷」’ 등을 제시한다. 이는 강호라는 개념
이 하나의 정치 기호화되었음을 보여주는데, 이로써 江湖는 朝廷 혹은 廟堂과
상대적인 의미를 갖는다.43)
그런데 여기서 江湖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
42) 陳平原, ꡔ千古文人俠客夢ꡕ, 人民文學出版社, 1992년, p.130
43) 陳平原, 같은 책, pp. 130-131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29
나는 냉혹한 정치적 논리가 지배하는 공간이 아닌, 超越과 飄逸, 自由의 공간이
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輔國安民이라는 정치적 포부를 실현할 기회를 상실
당하고, 차단당한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이 두 가지의 의미는 강호라는 개념 속
에 교묘하게 자리잡고 있다. ꡔ江湖ꡕ에 따르면, 유가 사상의 영향을 받은 문인들
의 경우, 廟堂에 있을 때는 강호 생활의 자유와 한적함을 즐길 수 없고, 江湖에
있어서는 국가의 평안을 도모하고자 하는 포부를 실현할 수 없어서 이와 같은
모순을 해소하고자, 어떤 이들은 몸은 廟堂 안에 있지만 마음은 강호에 둔다거
나 몸은 강호에 있지만 마음에 廟堂을 담는다는 식의 해결책을 제기한다. 또 강
호에 몸담고 있는 이는 의기투합하는 이를 만나 천하의 일을 이야기하기를 즐
기고, 조정에 몸이 묶인 이들은 江湖人을 자처하며 스스로 정신적 위안을 찾게
된다.44) 陳思和는 중국 고대 지식인의 정치 지향성을 설명하면서 “출세와 입신,
은일과 벼슬, 산림과 종묘, 재야와 조정, 노장(老莊)과 유교 등과 같은 많은 대
립적인 범주가 지식인들의 거시적인 정치의식 속에서 고도로 통일을 이루고 있
었다”라고 언급하였다.45) 이 언급은 중국 문인들의 사고 속에서 상호 대립적으
로 보이는 江湖와 廟堂이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되는지를 명확히 설명해준다.
사실, 이 경우 江湖란 朝廷 혹은 廟堂이라고 하는 개념의 부속물이다. 강호가
廟堂의 존재에 의지하고 있다는 말인데, 강호는 廟堂의 존재 방식과 廟堂에 대
한 이해 방식에 따라 그 성격과 의미가 규정된다. 위에서 말한 강호의 두 가지
의미는 廟堂의 성격 규정에 의해 도출된다. 廟堂이 내부적 정치 암투와 부패의
공간으로 인식될 경우, 강호의 성격은 자연 전자의 의미를 갖게 되고, 廟堂이
정치적 포부를 실현하고 입신의 공간으로 인식될 경우, 강호의 의미는 후자의
쪽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강호 인식은 이후 민간 사회 혹은 민간의 통속적 문학 속에서 드러나
는 강호의 인식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왜냐하면, 이때의 강호는 중국 정통 문
인들의 사고 속에서 도출된 하나의 정치적 기호일 뿐, 그 자체로서 자기의 성격
과 면모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강호는 정치적 논리를 초월한 은자
들의 은둔처, 혹은 정치적 포부의 실현과는 거리가 먼 일반 백성들의 세계를 지
칭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때에도 강호는 朝廷 혹은 廟堂, 나아가서는 일
44) 陳宏, 張旺, 陳千里, ꡔ江湖ꡕ, 百家出版社, 2002년 12월, pp. 9-10
45) 陳思和 저, 한국외대 중국현대문학연구회 역, ꡔ20세기 중국문학의 이해ꡕ, 청년사,
1995년 9월, p. 139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3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상적 생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초월적 정신 상태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 정
신적 위안과 자유를 제공해주는 공간의 의미가 범속한 일상으로서의 공간의 의
미보다 더 강하게 작용한다.
2) 세계 인식의 표현 혹은 俗化된 의미로서의 강호 : 江湖風波險惡
앞에서 강호가 ‘長江과 洞庭湖’의 지칭에서 ‘三江五湖’의 지칭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의미의 인신(引伸) 과정을 통해 강호는 ‘天下’를
의미하는 데로까지 이어진다.
ꡔ江湖ꡕ에서는 曹操의 다음과 같은 말, “강호가 아직 조용하지 않으니, 제왕의
자리를 넘겨줄 수가 없도다. 영토를 다 획득한 후에나 떠날 수 있다(江湖未靜,
不可讓位, 至于邑土, 可得而辭)”를 인용하여 강호가 ‘천하’를 대신하는 의미로 사
용되는 예를 보이고 있다.46) 袁良駿으로부터 ‘劍仙型 俠義小說’ 중의 하나로 분
류되는 ꡔ紅線ꡕ에서도 비슷한 예가 보인다.
저는 전생에 본시 남자였습니다. 강호를 돌아다니며 神農氏께서 지은 의서와
약서를 읽었으며, 재난과 질병에 고통받는 세상사람들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某前世本男子, 歷江湖間, 讀神農藥書, 救世人災患
이 부분은 紅線이 자신이 모시던 薛嵩에게 자신의 이력을 밝히는 대목인데,
여기서의 강호 역시 천하라는 말과 대치될 수 있다. 그런데, 위 두 가지 경우에
서 모두, 강호가 지칭하는 천하는 일상적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다. 그것은 ‘江湖
未靜’으로 표현되거나 ‘神農藥書․世人災患’ 등의 말과 함께 표현되는데, 평탄한
일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공간이 아니라 어지럽고 혼란스러우며 위험과 재난
이 상존하며, 심지어는 神農의 의서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 경우, 강호는 항상
어떤 일이 혹은 어떤 일이라도 발생하고 발생할 수 있는 세계로서의 공간이다.
이러한 강호는 중국인들의 세계 인식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세계는
혼란과 위험, 나아가서는 이해불가능성, 미묘한 신비감으로 가득한 세계이다.
하지만 강호라는 세계의 인식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포괄적이기 하지만, 강
호라고 하는 지칭은 중국에서 상당히 구체적인 지시 내용을 가지고 쓰였던 것
46) 陳宏, 張旺, 陳千里, 앞의 책, p. 8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31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강호는 중국에서 사회의 주변부 혹은 음지에 속하는 이
들, 그들의 생활 방식과 활동 공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용되어 왔다.47) 현재 강호는 ‘黑社會’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사용은 고대에서부터 연유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때는 주로 ‘游
民 집단’에 대한 지칭과의 관련 하에서 사용되었다.
중국의 游民은 대부분 천재나 인재를 당하여 생존의 조건인 토지를 잃어버린
농민이 주된 구성원을 이루었는데, 그들은 삶의 근거를 상실함으로써 정착지를
정하지 못하고 四海를 유랑하며 연명하였다. 그들은 士農工商의 四民 이외의 사
람들이었다.48) 특히 宋代 이후 도시 경제의 활성화는 이들 유민들을 도시로 끌
어들이게 되는데, 이들은 대갓집의 종이나 식당의 종업원, 길거리의 잡화상, 혹
은 거리의 연주자나 彈唱者로서 연명하면서 도시 밑바닥의 불안정한 사회 계층
즉 ‘도시 유민’을 형성한다.49) 陳寶良이 淸代 汪康年의 글을 인용하여 보여준 유
민의 여러 모습은 바로 ‘도시 유민’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50)
이런 도시 유민들을 중심으로 볼 때, 강호는 이들의 주 활동 공간, 구체적으
로 말하자면 시정 혹은 도시의 밑바닥 등을 지칭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강
47) 紅葦, ꡔ體驗江湖ꡕ, 上海三聯書店, 2000년 6월, pp. 2-5
48) 游民에 대해서 정의하고 그 범주를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다만 막연
하게나마 토지와 삶의 근거를 잃고 떠도는 사람들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陳寶良
은 중국 고대의 流氓에 대한 연구에서 游民과 流氓의 차이에 대해서 논했는데, 游民
을 ‘四民 이외의 사람’ 혹은 ‘일정한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 자(不事恒業者)’라고 비
교적 포괄적으로 정의하였고, 流氓은 游民에서 생겨 나왔지만 ‘오로지 빈둥거리는
것을 일삼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며,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는 악한’으로 규정하였
다. 그는 游民과 流氓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는 하지만, 流氓은 범법자나 악한의 의
미가 강하여 이 둘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陳寶良 저, 이치수 옮
김, ꡔ중국유맹사ꡕ, 아카넷, 2001. 2월, p.27/pp. 58-61. 참조
49) 陳宏, 張旺, 陳千里, 앞의 책, p. 12
50) 汪康年은 강호를 떠도는 당시의 유민을 크게 여덟 종류로 분류하였고, 그 각각은 또
세부적인 몇 가지로 분류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9경(經)․18피(皮)․4리(李)․3과
(瓜)․7풍(風)․8화(火)․5제(除)․6요(妖) 등이 그것인데, 경은 붓을 놀려 살아가는
자로서, 점쟁이, 관상쟁이, 글쟁이, 화공 등 9가지로 세분되고, 피는 약 파는 자, 이
는 요술을 부리는 자, 과는 권사 혹은 차력사이다. 汪康年은 이들 네 부류는 형법을
어기지 않는 자인 반면에, 다른 네 가지의 유사는 형범을 어기는 자들이라고 구분하
였다. 풍은 칼쓰는 일이나 사기 도박을 하는 자들이고, 화는 위폐 제조와 관련된 자
들이며, 제는 살인을 하는 자, 요는 여자들이다. 汪康年의 유민에 대한 세세한 분류
는 당시 유민들의 현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유민들이
이 8가지 경우로만 귀속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汪康年, ꡔ王穰卿筆
記ꡕ 卷 4, 「雜記」, 陳寶良의 ꡔ중국유맹사ꡕ pp. 60-61 참조.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3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호의 실체가 ‘시정’ 혹은 ‘도시의 밑바닥이나 뒷골목’이라 할지라도, ‘강호’라는
말은 항상 그 이상의 것들까지도 포괄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때 주로 포착되는 유민 집단은 민간의 비밀결사의 구성원, 綠
林黨, 土匪 등으로 불리는, 정상적 사회 질서의 바깥에서 자신들의 운영 원칙과
조직 체계를 가진 집단으로서의 유민이다. 이들의 존재는 강호에게 ‘모호한 포
괄성’ 혹은 ‘신비감’을 부여하였다.
실제로 이들은 일반적으로 사회 질서 바깥에 있는 집단들이 그러하듯이 집단
내부의 응집력이 대단히 강했고, 일반 사회의 규범과는 다른 형태의 집단 운영
원칙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상 언어 이외에 집단 내부의 비밀 언어를 의사소통
에 이용하기도 하였다.51) 이들의 이러한 존재 방식은 자발적인 것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였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을 일상인
들과 다른 세계에 위치하도록 하였다. 이들의 세계와 일상인들의 세계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구축되었는데, 분리된 양자의 세계 사이에서 오해 혹은 상상이
발생한다. 이들은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동경의 대상이 되기
도 하였다. 이는 타자 내지는 이국적인 대상에 대한 인식에서 흔히 보이는 모순
되면서도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이들 유민 집단에 대한 인식은 외부에서부터 형성되었다기 보다는, 내
부에서 먼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土匪들이 盜跖과 莊蹻를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삼아 祠堂에 그의 동상을 모셔 놓고 기렸다던지52), 天地會의 내부
문건인 ꡔ會簿ꡕ에서 신화, 전설의 형식을 취해서 자신들의 연원을 기록했다는
것53) 등은 이러한 일부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 집단의 정체성과 단
합의 강화라는 차원에서 스스로에게 과거와 역사를 부여하였다. 물론 이렇게 구
성된 자신들의 이야기들은 사실이기보다는 대부분 허구에 의존한 것이었지만,
동경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51) 유민 집단의 생활 방식, 결맹의 방식, 조직 재편 등의 상황, 그리고 그들의 독특한
언어에 대해서는 ꡔ江湖ꡕ pp. 37-49, pp. 52-61, pp. 64-74와 ꡔ體驗江湖ꡕ의 pp. 33-37,
pp. 52-57, pp. 89-92 등 참조 바람.
52) 陳寶良, 앞의 책, p. 62
53) 天地會는 소림사의 중 108명이 청 정부를 도와 서역을 정벌을 나섰다가 도리어 강
희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었고, 이로써 이 중들이 복수를 위하여 천지회를 창립하였
다는 전설을 자신들의 기원으로 삼았다. 譚松林 등은 역사가들이 이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천지회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와 논란을 야기했다고 지적한다. 秦寶
琦, 譚松林 著, ꡔ中國秘密社會ꡕ 第1卷, 福建人民出版社, 2002년 10월, pp. 33-37 참조.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33
아니었다. 일상인들은 이미 자신들과 다른 삶의 방식,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법
제과 도덕 윤리 등에서 벗어나 독특한 집단의 운영 방식과 생활 방식을 영위하
는 존재들을 동경하거나 신비화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그들이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세계 이외의 세계, 즉 危險과 風波가 존재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신비하고 불가해한 세계인 강호에 대한 열망을 기탁할
세계를 필요로 했음을 의미하며, 이런 의미에서 유민 집단으로부터 강호라는 말
이 도출된 것이라기 보다는, 강호라고 하는 이미 존재했던 세계 인식의 표현이
유민 집단이라는 구체적 대상을 만나 그들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이게 된 것
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정의 점쟁이나 의사, 무술가나 차력사 등을 ‘江湖術士’, ‘江湖郎中’, ‘江湖藝
人’ 등으로 불렀다는 것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의미의 강호를 속화시킨 것에
불과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화된 의미의 강호는 중국에서 대표적인 강호
개념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일반적으로 세속화된 의미의 강호는 ‘黑社會’에 대한
지칭으로 많이 쓰이는데, 이때 강호는 ‘風波’와 ‘險惡’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
하다. 하지만 이때에도 ‘四海之內皆兄弟’라든가, 의리에 대한 중시, 血盟 형식의
幇派의 규합, 영웅적 남성성에 대한 숭배 등 유민 집단의 정서와 행동 방식으로
상상하는 내용들은 강호를 단순히 악한이나 무뢰배의 세계로만 인식하게 하지
않는다. 이는 유민 집단에 대해서 느끼는 일상인들의 모순된 감정과 관련된 것
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호라는 세계 혹은 세계 인식 자체에 이미 내장되
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강호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집단 혹은 세계 너머
에 존재하는 집단과 세계와 더욱 밀접하게 관련된다. 강호가 협객을 동반하고,
그들로 하여금 강호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속화
된 의미의 강호는 현재 강호에 대한 대표적인 표상이기는 하지만 강호를 대변
한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강호가 그 이름 이상의 것으로 존재함을
의미하며, 그것의 실체가 모종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3) 역사적 실체로서의 俠
陳山은 ꡔ중국무협사ꡕ에서 馮友蘭의 견해를 빌어 俠이라는 글자가 戰國 시대
말기 서적에서 처음 보였으며, 그 중에서 ꡔ韓非子ꡕ에서 가장 많이 보인다고 주
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俠이란 정식 호칭의 출현은 俠이 사회에서 하나의 독립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3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된 사회집단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54) 俠, 당시의 명칭으로
는 游俠이라는 존재의 기원과 출현 과정을 陳山의 견해에 근거해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55)
협의 초기 형태는 先秦 시기의 游士이고, 游士의 기원은 士 계층에서 찾을 수
있다. 선진 사회에서 士 계층은 귀족과 평민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계층으로,
사회의 전문 무사 계층을 형성하였다. 사 계층의 분화가 시작한 것은 春秋시기
에 들어서면서인데, 그 분화와 변질의 핵심은 귀족들에 의해 독점되었던 文에의
접근 여부였다. 즉, 文에 접근할 수 있었던 이들은 士 계층으로부터 분화되어
이후 儒士로 발전하는 文士가 되었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국가의 무력 수단이
었던 國士를 거쳐 游士로 발전하게 된다. 이 游士는 자유 신분을 가지고 있던
특수한 평민으로서 자신들의 무예를 수단 삼아 농경에서 벗어나 列國을 자유롭
게 다닐 수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초기 형태의 협이다. 이들은 春秋戰國의 혼
란스러운 정국에서 비롯된 養士의 풍조, 자객의 양성과 출현, 墨家의 선동 등에
힘입어 독립적인 사회 집단화를 이루었고, 마침내 俠이라는 정식 명칭을 얻게
된다. 이들은 초기 游士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游俠이라고도 불린다.
ꡔ韓非子ꡕ 등에서 협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는 하지만, 협, 즉 游俠의 성격과
구체적 행적은 司馬遷의 ꡔ史記ꡕ의 「游俠列傳」에서 비로소 구체화되었고, 이로
써 游俠의 존재는 정식으로 부각되었다. 司馬遷은 俠을 布衣之俠, 卿相之俠, 閭
巷之俠, 匹夫之俠 등으로 구분하였고, 이들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
음을 애석히 여기면서 漢代의 朱家, 田仲, 王公, 劇孟, 郭解 등을 游俠으로 소개
하였다. 司馬遷은 「太史公自序」에서 유협을 가지고 열전을 꾸민 이유를, 그들이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 빈곤한 사람을 구제하며(求人于厄, 振人不瞻)’, ‘신
의와 언약을 저버리지 않는 것(不旣信, 不倍言)56)’이 仁과 義라는 측면에서 높이
살만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는데, 游俠에 대한 그의 평가는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잘 드러난다.
오늘날 유협은 그 행위가 비록 정의(正義)에 의거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말
에는 반드시 신의가 있고 그들의 행동은 과감하며, 이미 승낙한 일은 반드시
54) 陳山 저, 강봉구 역, ꡔ중국무협사ꡕ, 동문선, 1997, p. 48-49
55) 陳山, 앞의 책, pp. 18-35 참조.
56) ꡔ史記列傳ꡕ 「太史公自序」 중에서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35
성심을 다했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남의 고난에 뛰어들 때에는 생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덕을 내세우
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아마 이밖에도 찬미할 점이 많을 것이다.
今游俠, 其行雖不軌於正義, 然其言必信, 其行必果, 其諾必誠, 不愛其軀, 赴士之
厄困; 旣已存亡生死矣, 而不矜其能, 羞伐其德, 蓋亦有足多者焉.57)
신의를 중시하며, 과감하게 행동하며, 생명마저 돌보지 않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를 돕는 데다 겸양의 미덕을 갖춘 이를 司馬遷은 游俠으로 칭하고 있는
데, 이는 그가 「太史公自序」에서 밝혔듯이 仁과 義라고 하는 儒家적 관점에서
유협을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史記列傳」에서 협의 풍모를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游俠列傳」이라기보다는 「刺客列傳」이다.58) 「刺客列
傳」에 등장하는 曹沫, 專諸, 豫讓, 聶政, 荊軻 등의 인물들은 목숨을 내걸고 자
신을 인정해준 이의 복수를 감행한다. 「刺客列傳」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것은,
협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살인 혹은 자살 등의 극단적 방식의 선택을
피하지 않는다는 것과 협의 행위 동기가 사회적 차원에서 나온다기보다는 개인
적 차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는 협이 전체 사회 질서 내부에 존재하지 않
는 존재이며, 사회 질서에 충격을 주고 교란하는 존재임을 말한다. 陳山은 游俠
의 이러한 성격을 ‘문화 이탈자’라는 말로 설명한다.59) 협의 이러한 성격은 韓非
子에 의해 ‘俠以武犯禁’이라는 말로 비판받았고, 司馬遷 역시 협의 행위가 모두
‘정의에 의거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 받았다.
하지만, 협이 매혹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수없이 많은 문학 작품에서 회자되
었던 이유는 사회 질서와 규범, 일상적 사고와 감성에서 이탈하여 행동하고 존
재하였던 협의 본성에서 기인한다. 물론, 이때에도 주의해야 할 점은 문헌에 나
57) 司馬遷, 정범진 외 역, ꡔ史記列傳 下ꡕ, 까치, 1995. p. 1084
58) 葉洪生은 ‘자객은 무로써 은혜를 갚고, 유협은 인으로써 은혜를 베푼다(刺客‘報恩’以
武, 游俠‘施恩’以仁)’라고 평가하면서 이들이 신의를 중시하고 생명을 가벼이 여긴다
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들의 행위의 동기와 방식은 다르다고 주장하였다(ꡔ葉洪生,
ꡔ論劍 - 武俠小說談藝錄ꡕ 學林出版社 1997. 1, pp. 4-7.). 하지만 유협이 武의 사용과
완전히 무관한 존재가 아니며, 자객 역시 유협과 신분적으로 거의 동일한 존재란 점
을 감안하면 이 양자의 차이에 대한 부각이 협객의 일종으로서의 자객의 존재를 등
한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司馬遷이 「游俠列傳」과 「刺客列
傳」을 따로 둔 것은, 암살이라는 자객의 독특한 행위 방식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자객을 유협이나 협객의 부류에서 제외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59) 陳山, 앞의 책, p. 50.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3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타난 협에 대한 언급의 많은 부분이 劇化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
이다. 이는 협의 고찰에 있어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인데, 현재 우리
가 인식하는 협의 모습과 역사적 실체로서의 협 사이에는 적지 않은 괴리가 존
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 같지만 쉽게 망각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ꡔ大俠ꡕ에서 龔鵬程이 표현하는 당혹감은 바로 이 때문이다.
龔鵬程은 적지 않은 史料에서 협이라 불리는 이들의 행위가 자신이 생각하는
협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음을 토로하고, 협의 성격에 대해서 되짚었다. 龔鵬程
이 느꼈던 당혹감과 문학적 상상으로서의 협의 성격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론하
기로 하고, 먼저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은, 龔鵬程에게 당혹감을 안겨주었
던 협의 구체적인 예가 漢代에 형성되어 魏晉南北朝를 거쳐 隋唐代까지 이어졌
던 豪俠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龔鵬程은 ꡔ後漢書 董卓列傳ꡕ, ꡔ北齊書 單義
雲傳ꡕ, ꡔ北夢瑣言ꡕ, ꡔ舊唐書 郭元振傳ꡕ 등에서 그 예들을 추출해냈는데, 자타에
의해 명백히 협이라고 명명되는 이들이 아녀자를 희롱하고, 백성의 재산을 노략
질하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를 마음대로 살인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들 협객의 모습은 불량소년이거나 土豪惡覇, 도적, 시정의 무뢰배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60)
협의 이러한 모습은 현재의 협에 대한 이미지와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春秋
戰國 시기의 游俠의 그것과도 완연히 다르다. 협의 이러한 변화에는 협의 朋黨
化, 세력화 경향과 사회 상층부의 游俠으로의 개입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
하였다.61) 협은 이제 사회 상층부, 정치 세력 등과 밀착하게 되는데, 이로써 그
들은 사회 질서와 규범의 이탈자로서의 성격을 상실하게 된다. 이는 협이 더 이
상 游俠으로서의 본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며62), 이런 이유로
그들은 豪俠이라고 불린다.
豪俠의 출현은, 그들의 행위가 任俠으로 불릴 자격을 상실함으로써 사실상 중
국에서 ‘실체로서의 俠’이 사라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협이라는 이름은 이후에도 계속 존재하였고, 任俠意識 역시 중국에서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제 현실에서 하나의 구체적 세력 혹은 계층으로서 협은 더 이상 존
재하지 않게 되었다. 협을 구체적인 사회 계층으로 볼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가
60) 龔鵬程, ꡔ大俠ꡕ, 錦冠出版社, 1987, pp. 1-10
61) 龔鵬程, 위의 책, pp. 68-82
62) 전형준, ꡔ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ꡕ,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 9, p. 11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37
줄곧 제기되었던 것은 이러한 사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劉若愚는 ꡔ中國之俠ꡕ
에서 ‘游俠은 어떤 특수한 사회 집단이 아니며, 단지 협객의 기질을 가진 일군
의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다’63)라고 주장했다. 즉 ‘游俠이 타인을 위한 것은 대부
분 기질의 문제이지, 사회 출신에 의해 그러했던 것은 아니며’ 그래서 ‘游俠은
일종의 습성이지 직업은 아니다’64)라는 게 劉若愚의 협을 보는 관점이다. 물론
劉若愚도 협이 구체적인 연원을 가지고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
다. 다만 협이 중국의 역사에서 고정된 집단 혹은 사회 계층을 형성하였다는 점
을 부인한다.65) 사실, 협을 구체적인 사회 계층이나 집단으로 규정할 것인지, 아
니면 모종의 기질과 특성을 가진 개별적 존재에 대한 일반적 호칭으로 인식할
것인지 하는 문제를 규명하는 일은 대단히 복잡하며, 일반적으로 협이라는 말은
이 두 가지 경우를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쓰이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는, 기질이나 습성을 의미하는 협이 游俠이라는 실체로부터 연유하
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游俠의 소멸과 豪俠의 출현으로 인해 협이라고 하는 기
질과 습성이 사회의 구체적인 실체에서 벗어나 하나의 ‘관념’으로 존재하게 되
었다는 것이다. 즉, 豪俠의 출현과 더불어 명실공히 협이라는 말에 걸맞는 ‘고정
된’ 사회적 실체는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이때부터 협은 관념과 기질로서 부유
하게 되며, 어느 누구에게든 그 이름의 자격에 부응할 만한 이들에게 붙여지게
되는 이름이 되었다.
陳山이 豪俠 이후의 협으로 제시하는, 宋代 이후의 義俠 즉 ‘近代俠’은 새롭게
협으로 불릴 자격을 얻은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도시 사회와 도시
문화의 발달과 함께 탄생하였고, 넓게 보면 宋代 이후의 유민 집단의 소속이라
고도 할 수 있다. 陳山은 近代俠을 주로 武林과 綠林, 비밀사회 속에서 발견해
내는데, 이들은 주로 무예와 무력, 이를 수단으로 한 일련의 행동으로 俠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물론 이들 역시 任俠意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겠지만, 이
63) “游俠不是特殊的社會集團, 只不過是一群具有俠客氣質的人.” 劉若愚 著, 周淸霖, 唐發
鐃 譯, ꡔ中國之俠ꡕ, 上海三聯書店, 1991, p. 3
64) “游俠爲人大多是氣質問題, 而不是社會出身使然, 游俠是一種習性, 不是一種職業.” 劉
若愚, 위의 책, 같은 페이지
65) 대신 劉若愚는 협의 내함 혹은 기질, 정신 등을 중심으로 협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가 요약하는 협의 기질과 정신은 모두 8가지이다. 1. 남을 돕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助人爲樂). 2. 공정하다(公正). 3. 자유를 중시한다(自由). 4. 지기에 충실하다
(忠于知己). 5. 용감하다(勇敢). 6. 신의를 중시한다(誠實, 足以信賴). 7. 명예를 귀하게
여긴다(愛惜名譽). 8. 이익을 탐하지 않는다(慷慨輕財). 劉若愚, 위의 책, pp. 4-6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3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때 任俠意識은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집단적 행동 규범으로서의 의미를
떠나 일종의 도덕적 관념과 같은 차원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들에
게 협이라고 붙여지는 이름은 존경과 찬사를 전달하는 호칭 이상의 의미를 갖
지 않는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이러한 호칭은 대상자의 품성과 기질 등과 관련
되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근대협이 협객으로 호명된다는 것은, 그들
이 협이라는 모종의 관념 혹은 기질에 부합되는 일면을 가졌다는 것 이상을 의
미하지는 않는다. 이런 면에서 그들은 豪俠과 동일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豪俠과 近代俠은 游俠이라는 실체와 더불어 형성된 협이라는 관
념 혹은 상상에 스스로를 기탁함으로써 俠이라는 명칭을 얻었을 뿐이다. 물론
이 말은 협에 관한 관념이나 상상이 游俠에게서만 나왔다거나 游俠의 시기 이
후에는 협에 관한 관념이나 상상이 지속되거나 새로 추가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唐代 이후 협에 관한 서사와 그들에 관한 상상은 더욱 활발하고
왕성하였다.
하지만 명확히 해야할 것은, 游俠의 소멸과 더불어 모호하게 얽혀 있던 협이
라는 실체와 협이라는 관념이 분명하게 갈라지고 있다는 점이며, 이와 더불어
실체로서의 豪俠, 近代俠 등은 관념 혹은 상상으로서의 협에 압도되고, 그에 기
생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이다.
4) 문학적 상상으로서의 俠
豪俠의 실상을 접한 후, 龔鵬程이 느꼈던 당혹감은 다음과 같은, 협에 대한
龔鵬程의 이해에서 비롯된다.
역사 속 어두운 밤하늘 위로 외로이 우뚝 협과 의를 행하는 영웅 협객이 출
현한다. 그는 차갑고 어두운 밤 갑작스레 나타났다 일순간 사라지는 빛나는 유
성처럼 우리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흥분에 떨게 한다. 굽히지 않는 신념과 강
한 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義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장렬함, 깊은
밤 검을 튕기며 부르는 비가(悲歌)에 담긴 고독과 방황, 이는 남다른 느낌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在歷史陰闇的夜空裏, 偶然出現一些特立獨行的任俠仗義之英雄俠客, 彷佛在陰冷
的寒夜, 偶然發現了一兩顆亮麗的流星, 帶給人們一霎時莫名的興奮. 他們那種堅持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39
信念, 不畏强梁的勇氣, 義之所在, 雖死不辭的壯烈, 以及那種白晝悲歌, 深宵彈劍
的孤寂與放浪, 也在在顯示了與衆不同的情操, 扣人心弦.66)
이와 같은 협에 대한 인상과 이해는 龔鵬程에게만 해당하는 예외적인 것은
아닌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인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협소설이나 무협
영화 등을 접해본 적이 있는 이들에게 협은 정의와 의리, 신의와 용기, 장렬함
과 고독 등과 관련된 낭만적 영웅으로 인식된다. 결국, 龔鵬程은 자신의 협객에
대한 인상이 ‘왜곡’된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龔鵬程은 ꡔ大俠ꡕ을 통해서 ‘곡
해된 협객의 형상’ 즉 ‘협객에 대한 신화적 동경’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를 규
명하며, 진실한 협의 모습을 밝히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를 위해 龔鵬程은 협에 대한 서사의 특성에 먼저 주목하였으며, 협에 대한
기록과 묘사가 줄곧 역사와 상상이 서로 혼합된 형태로서 존재하였고, 그 안에
는 史傳的 성격의 寫實과 俠義文學的인 것이 함께 들어있었음을 지적하였다.67)
그런데, 그가 판단할 때 기존의 협에 관한 연구는 문학 작품으로부터 이해한 협
의 모습에 기반하여 협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수행하는 오류에 빠져 버린다. 협
의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이해 내용에 어긋나는 자료들을 누락하거나 곡해하였
고, 이런 과정에서 그 동시대에 민간에서 떠돌면서 도적질하던 자들, 土豪惡覇,
惡少年 등 역시 협이었다는 사실은 망각되고, 협은 숭고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식된다. 역사적 실체로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던 협 중 어느 하나가 선택
되어 이상화되고, 이렇게 이상화된 협의 모습이 다시 역사 속으로 투사되어 역
사 속의 협은 모두 이러한 모습인 것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 龔鵬程의 견해이
다. 龔鵬程의 ꡔ大俠ꡕ은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고, 협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재조
명한다. 하지만 龔鵬程 역시 협의 변화 과정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자신이 지적
한 오류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唐代에 중국 사회가 극변한 것과 함께 협의 모습도 커다란 변화를 겪는
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의 핵심은 劍俠의 출현, 즉 협의 신비화 경향이다. 龔鵬程
은 唐代에 들어서 협과 지식인들이 결합하게 되고, 이로써 협객의 이성화 경향
이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경향이 발전하여 宋代에는 협의 원시적 기질이
점차 사라지고 이성적 가치 취향이 강하게 나타남으로써 대중적 俠義의 개념이
66) 龔鵬程, 앞의 책, p. 1
67) 龔鵬程, 위의 책, p. 5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4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이전의 俠義의 개념을 대체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면서 나타난 것이
바로 劍俠이다. 그들은 사회와 국가에 공헌하기보다는 원래의 俠義 전통의 계승
에 집착하였는데, 협의 원시성을 회복, 증가시키는 동시에, 신비화 경향으로 나
아가게 된다. 龔鵬程의 이러한 견해에 근거하자면, 唐 이후의 협은 두 가지로
갈라진다. 하나는 이성적이고 대중적이며, 현실적인 협이며, 다른 하나는 원시적
이고 개인적이며 신비한 협 즉 劍俠이다. 전자의 협은 현실적이고 사실적 존재
라는 면에서 唐 이전의 협을 계승하며, 후자는 개인적이고 원시적이라는 면에서
唐 이전의 협을 계승하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龔鵬程이 협의 한 상상의 형태인 劍俠을 극도로 사실적인 존
재로 한정하고자 하는 데서 발생한다. 龔鵬程이 劍俠에 주목한 이유는, 그의 표
현에 따르면 ‘왜곡된 협’의 인식 즉 협을 신비하고 신화화된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겨난 연유를 설명하고자 한 때문이다. 협이 하늘을 나르고, 하룻밤에
몇 천리를 내달리며, 뛰어난 무공을 소유하고 있다는 인식은 劍俠이라는 존재에
의해서 비롯된다는 게 龔鵬程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龔鵬
程은 飛天夜叉術, 幻術, 神行術, 用藥, 斷人首級, 劍術 등을 劍俠의 특징적 능력
으로 제시하고, 이러한 능력들이 과장되기는 하였지만 능히 수행될 수 있었음을
실례를 들면서 설명한다. 하지만 劍俠의 실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인용하는
내용들은, 그 스스로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아니(未必可信)’68)라고 말했던 雜
俎, 筆記 혹은 唐 傳奇 등에서 취한 것이었다.69) 그래서 紅線이나 聶隱娘 등 ‘문
학적’ 인물들은 사실적 劍俠의 존재를 뒷받침하기 위해 소환된다. 이로써 龔鵬
程은 자신이 비판한 종래의 협 연구가들의 오류를 스스로 반복하게 된다. 龔鵬
程은 연구의 서두에서 협의 진면목을 살피고, ‘협객에 대한 신화적 동경’이 어떻
게 형성된 것인지를 살피기 위해서 ‘잠시 환상과 동경의 문을 걸어 닫고, 역사
의 막을 열어젖히기를(暫時關閉幻想和憧憬之門, 揭開歷史的布幔)’70) 제안했으나,
역사를 재해석하기 위해 그가 의지한 것은 역시 ‘환상과 동경’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오류의 반복은 방법 상의 오류라고 볼 수만은 없다. 그것은
애초에 협의 진면목을 구현해내고자 했던 그의 목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의
생각 속에는, 협은 사실적 실체로만 존재하였고, 또 ‘협객에 대한 신화화된 동
68) 龔鵬程, 앞의 책, p. 100
69) 그는 주로 ꡔ酉陽雜俎ꡕ, ꡔ太平廣記ꡕ, ꡔ劇談錄ꡕ, ꡔ北夢瑣言ꡕ, ꡔ集異記ꡕ 등과 裵鉶의
ꡔ傳奇ꡕ 등에서 劍俠의 실례를 발굴해냈다.
70) 龔鵬程, 앞의 책, p. 3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41
경’은 협의 왜곡이라는 강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협에 대한 동경을 걷
어내면 온전한 협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
은 협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생각일 뿐이다. 즉, 중국에서 협은 한
번도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선보이지 않았다. 협은 언제나 가치 판단이나 동경,
혹은 오해에 기대어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협은 그 자체로 협이기 때문에 중
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에게 동경과 갈망을 불러일으키고, 또 이러한
동경과 갈망이 협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상상하게 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협에 대한 상상은 문학 장르를 매개로 하면서 증폭되었는데, 이로써 협
은 실체로서보다는 하나의 관념, 즉 문학적 상상으로 더 자주 구현된다. 이렇게
협은 실재의 협과 그들로부터 비롯된 관념 혹은 상상이 공존하는 개념인데, 이
때 협에 있어서 더 중요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오히려 후자의 것이다. 龔鵬程
이 ꡔ大俠ꡕ의 전반부에서 ‘정의의 신화’, ‘영웅의 숭배’가 ‘문학적 상상’으로서의
협을 만들어내었고, 또 이것이 실재의 협을 압도하고 대체하는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대단히 정확하다. 하지만 그는 ‘문학적 상상’으로서의 협을 왜
곡된 협으로 규정하고, 이 왜곡된 협에 의해 은폐된 협의 진면목을 재구성하려
는 순간 자가 당착에 빠진다. 왜냐하면 협은 실재했지만, 협의 ‘진면목’은 어디
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龔鵬程이 말한 ‘협의 왜곡’은 협의 왜곡이 아
니라, 그것이 바로 협의 본모습이다.
龔鵬程은 협에 관한 서사와 기록은 역사와 상상이 혼합되어 있고, 그 속에는
사실과 허구가 상존한다고 지적하였지만, 자신은 그것을 역사와 사실, 상상과
허구가 등가의 비중과 가치로 분리되어 있으면서 합체되어 있다는 말로 이해한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상상과 허구에 의해 윤색된 역사와 사실, 혹은 상상과
허구에 의한 역사와 사실의 소실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 있어서 陳平原의 협에 대한 이해는 龔鵬程의 이해 방식보다는 상
상과 허구의 역할을 제대로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陳平原은 역사
상 협에 대한 서사가 세 단계의 변화 과정을 겪고 있음을 포착하였다. ꡔ史記ꡕ의
「游俠列傳」을 대표로 하는 ‘實錄의 단계(兩漢)’, 游俠詩를 대표로 하는 ‘抒情의
단계(魏晉에서 盛唐)’, 豪俠小說을 대표로 하는 ‘환타지(幻設)의 단계(中晩唐)’가
그것이다. 실록 단계의 협객의 이미지에도 역시 작가의 주관적 평가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록 단계의 협객의 모습은 실제 현실 세계
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협객의 모습이 영웅화되고 기호화되는 것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4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은 서정 단계에서 눈에 띄게 증가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시인들
의 상상이다. 환타지의 단계에서는 상상과 허구가 위주가 되지만 협객에게 다시
피와 살이 덧붙여지고, 현실감이 부여되기도 한다. ꡔ聶隱娘ꡕ, ꡔ崑崙奴ꡕ, ꡔ虯髥客
傳ꡕ에서 보이는 것처럼, 傳奇 작가들은 실록이라는 외투를 완전히 벗어버리기를
희망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들은 허구적 이야기를 구체적 역사 배경 하에 배치
하고, 심지어는 역사적 인물 등을 등장시켜 증인으로 삼거나, 이야기의 출처를
제시함으로써 협객에 관한 허구적 이야기를 근거있는 假象으로 만든다.71)
여기서 陳平原이 주목한 것은, ꡔ後漢書ꡕ 이후로 협객이 역사가들의 시야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어, 협객을 표현하는 임무가 역사가로부터 시인, 소설가, 극작
가 등에게로 넘어가게 된다는 점이다. 이로써 협의 관념은 초창기 역사적 구체
성으로부터 탈피하여 ‘俠骨’, ‘俠氣’, ‘俠節’ 등으로 표현되는 정신 혹은 기질로
전화된다. 따라서 이때부터 협은 인간 사회의 구체적인 구성, 예를 들어 가족
관계와 배경 등과 절연하고, 또 어떤 구체적인 계층에도 속하지 않은 채, 매력
적인 정신적 풍모와 행위 방식으로만 이야기될 뿐이다.72) 陳平原의 경우, 협의
실체성의 규명보다는 서사화되어 드러난 양태로서의 협에 주목함으로써 협을
둘러싼 오해와 곡해에서 멀찍이 벗어날 수 있었는데, 다음의 언급은 협을 이해
하는 陳平原의 방식을 집약적으로 드러내준다.
무협소설 속의 ‘협’의 관념은 역사상 객관적으로 존재했거나 한두마디 말로
설명해낼 수 있는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기록과 문학적 상상의 융합이
자 사회적 규정과 심리적 욕구의 융합이며, 당대적(當代的) 시야와 문류적(文類
的) 특징의 융합이다. 관건은 이러한 ‘융합’의 추세와 과정을 고찰하는 데에 있
지, 딱 맞는 ‘정의’를 도출해내는 데 있지 않다.
武俠小說的“俠”的觀念, 不是一個歷史上客觀存在的․可用三言兩語描述的實體,
而是一種歷史記載與文學想像的融合․社會規定與心理需求的融合, 以及當代視界
與文類特徵的融合. 關鍵在于考察這種“融合”的趨勢及過程, 而不在于給出一個確鑿
的“定義”73)
이 언급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陳平原이 협의 소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71) 陳平原, ꡔ千古文人俠客夢 - 武俠小說類型硏究ꡕ 人民文學出版社 1992. 3, pp. 23-24
72) 陳平原, 위의 책, p. 6
73) 陳平原, 위의 책, p. 2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43
점이다. 그가 말하는 협은 ‘무협소설 속’의 협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陳
平原의 협에 대한 언급은 ‘서사화’된 형태의 협에 관한 것이다. 즉, 陳平原에게
있어 서사화되지 않거나, 상상과 허구, 기대와 욕구에 의해 윤색되지 않은 협이
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역사적 기록과 문학적 상상’, ‘사회
적 규정과 심리적 욕구’, ‘當代的 시야와 文類的 특징’의 융합으로서의 협 역시
‘무협소설 속’의 협을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협에 대한 관
념과 이미지는 무협소설 혹은 무협영화 등 협에 대한 서사물로부터 형성되고
유지되고 있다. 龔鵬程이 말했던 ‘왜곡된 협의 모습’이란 왜곡이 아니라 역사적
실체에 대한 문학적 변용 혹은 재창조이다. 그리고 협의 변용과 재창조는 중국
에서 과거에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과거 기록에서 보이
는 협의 모습과 우리가 상상하는 협의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놀랄 만한 일은 최근 협에 대한 연구 경향에서 발견된다.
중국에서 협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무협소설 연구가 시작되면
서부터이다. 무협소설에서 발견되는 협을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무협소설 연구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무협
소설에서 협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는 점과 더불어, 협의 존재와 해석
이 무협소설의 긍정적 가치를 주장하는 데 있어서 유용하였기 때문이다. 협에
대한 재발굴과 조명은 크게는 무협소설의 문학적 가치 및 연구 가치를 제기하
는데, 작게는 무협소설의 유해성 등에 대한 지적과 비판에 대해 해명하는 데 사
용되었다. 협은 儒佛道墨 등 중국의 전통 사상과의 관계 하에서 범주화되었고,
鋤强扶弱, 不求報施․ 路見不平, 拔刀相助 등 협의 행위 방식이 다시금 부각되
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협은, 그것이 존재하고 드러나는 방식과의 관련 하에서
이해되기보다는, 즉 역사와 상상, 사실과 허구의 융합이라는 성격은 감안되지
않은 채 극도로 사실화되고 실체화된다. 이 연구자들은 협의 재인식 혹은 재구
성을 통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재구성하는 데까지 나아가는데74), 이는 애초
74) 龔鵬程이 협의 진면목을 규명하려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연구 경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볼 때, 협은 儒家는 물론이고 墨家와도 그다지 상관성이 없는 존재이
다. 하지만 대다수 연구들은 협을 중국의 전통 사상, 儒佛道墨과의 연관 하에서 고
찰하며, 이로써 협을 고대 중국의 우수한 전통으로까지 확정한다. 이 과정에서 상상
된 것으로서의 협의 성격은 외면되고, 龔鵬程이 지적한 것과 같이 다양한 협객의 모
습은 연구자의 편의에 따라 사상되고 만다. 徐斯年, ꡔ俠的蹤迹ꡕ(人民文學出版社,
1995. 12), pp. 1-16/陳墨, ꡔ刀光俠影蒙太奇-中國武俠電影論ꡕ(中國電影出版社, 1996.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4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그들의 의도를 훨씬 뛰어넘는 무의식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는 있지만 그보다는
무협소설과 협을 전통문화 속에 편입시켜 그 가치를 제고하려는 시도가 필연적
으로 귀결되는 결론이기도 하다. 이렇게 문학적 상상으로서의 협은 그것이 가진
허구적, 상상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허구적, 상상적 힘에 의지하
여 중국 역사와 전통문화 혹은 사상의 한 표상으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이는 문
학적 상상으로서의 협이 ‘상상으로서의 협’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5) 협객의 활동 공간으로서의 江湖: 문학적 상상으로서의 江湖
陳平原은 소설 속에서 강호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宋元 話本에
서부터라고 주장한다. 이전의 唐代 傳奇 등에서 강호는 ‘조정(朝廷)’ 혹은 ‘관장
(官場)’과 구별되는 민간 정도의 의미이고, 구체적인 묘사 또한 없었지만, 宋元
話本에서 강호는 强盜, 黑話, 蒙汗藥, 人肉饅頭 등의 구체적인 외현을 갖기 시작
하였고, 이후 ‘江湖’는 무협소설 속에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주장이
다.75) 陳平原의 이러한 주장은, 점차 구체화되어 가는 중국의 소설 양식의 발전
에 따라 ‘강호’ 역시 구체적인 자기 모습을 갖게 되며, 무협소설에 와서는 강호
없이는 무협소설 자체가 성립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
로 읽힌다. 그런데, 陳平原이 강호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로 들고 있는 强盜, 黑
話, 蒙汗藥, 人肉饅頭 등은 상당히 협소한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데, 이것들
은 강호를 黑社會로만 인식되도록 규정하는 측면이 강하다. 물론, 강호에 대한
陳平原의 전체적인 언급은 그러한 인식이 오해라는 것을 알게 하지만, 陳平原의
언급 속에서 무협소설 이전의 강호와 무협소설 이후의 강호의 지시는 사뭇 달
라 보인다. 陳平原은 전자를 ‘江湖氣’라고 부를 수 있는 강호의 특성에 맞추어
설명하고 있고, 후자는 무협소설의 중요한 키워드 혹은 무협소설 장르 자체를
지시하는 표지로 사용한다.
강호의 구체적 외화 형태를 黑社會的인 것에서 찾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잘
못된 시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강호의 전체적 면모로 인식되는 것은 오해
의 소지가 있다. 그렇다면, 강호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위에서 江湖라는 개
10), pp. 69-76/曹正文, ꡔ中國俠文化史ꡕ(上海文藝出版社, 1994), pp. 7-11/羅立群, ꡔ談劍
錄ꡕ(百家出版社, 2001. 5), pp. 3-23 등 참조 바람.
75) 陳平原, 앞의 책, pp. 133-134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45
념이 지리적 개념, 정치적 부호, 세계 인식, 黑社會의 한 표현으로 쓰이고 있음
을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강호의 인식은 구체적 시대에 근거해봤을 때, 거의 동
시적이며 상호 보완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어느 순간 혹은 어떤 계
기를 거치며 ‘강호’에는 여타의 다른 인식들을 압도할 만한 커다란 지시 내용이
덧붙여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지시 내용이란 바로 ‘협객의 활동 공간’이다.
실상, 강호는 그것이 강호라고 명명되지 않을 때조차도 강호로 인식되었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협객의 존재’이다. 여기서 협객의 존재란 위에서 살
펴본 것과 같이 구체적인 역사적 실체로서의 그것을 넘어선 것이며, 그 협객의
행동거지와 기질, 그가 벌이는 사건까지를 의미한다. 강호라는 세계를 협객과
그들의 행위와 사건 등과 관련하여 이해한다면, 강호에 대한 묘사와 언급은 陳
平原이 말하는 그것 보다 더욱 포괄적인 형태를 띠며, 더 오래 전부터 존재하게
된다.
예를 들어, 陳平原은 ꡔ紅線傳ꡕ에 ‘江湖’라는 말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강호에
대한 세부 묘사가 없다고 언급하였는데, 이는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구체적
사건 혹은 사물(그것도 흑사회적 특성에 맞추어진)에서만 강호의 모습을 보고자
한 까닭이다. ꡔ紅線傳ꡕ에서 강호는 紅線이라는 인물의 이력과 그녀가 펼치는 초
인간적인 능력과 행위들을 통해서 드러난다. 紅線이 전생에 남자였으며, 그때 신
농의 의서를 익혔고, 현재에는 潞州 절도사 薛嵩을 위해 하루 밤만에 왕복 700
여 리를 내달려 侍衛들이 겹겹으로 둘러싸고 호위하는 魏博 절도사 田承嗣의 침
실에 잠입하여 金盒을 훔쳐오는 신출귀몰한 행위를 전개하는 속에서 이미 강호
는 존재한다. 강호의 이미지는 협녀 紅線의 존재와 행위 속에서 스스로 구축된
다고 봐야 하는데, 이러한 예는 ꡔ搜神記ꡕ의 干將莫耶의 고사에서도 드러난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신의 머리를 客에서 넘겨주는
眉間尺 赤과, 그로부터 머리와 雄劍을 받아들고 楚王을 찾아가 楚王과 함께 죽
는 客의 존재와 행위는 그들이 몸담고 있는 세계가 일상적인 세계가 아닌 협객
들의 세계임을 말한다. 이 이야기는 근대 무협소설의 기본 얼개를 정확하게 가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楚王-干將-莫耶, 干將-莫耶-赤, 楚王-赤-客의 이야기는
하나의 江湖 軼事이며, 赤과 客은 그대로 俠士의 모습이다. 또한, ꡔ史記ꡕ의 「游
俠列傳」, 「刺客列傳」의 세계 역시 역사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강호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강호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고정시키는 데 있어서 그 어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4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떤 작품보다도 공헌이 큰 것은 ꡔ水滸傳ꡕ이라고 할 수 있다. ꡔ水滸傳ꡕ에서 宋江,
武松, 魯智深 등으로 대표되는 108 영웅들이 근거지로 삼고 있는 ‘梁山泊’ 자체
가 ‘강호’와 같은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108 영웅들 자체도 그 이전
까지 민간에서 떠돌며 존재했던 영웅호걸들의 모습을 망라하고 있고, 또 그들에
게서는 俠과 義라고 하는 긍정적 요소도 발견되지만 사실 그들은 폭력과 살인
을 일삼으며, 일상적 세계의 틀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세계를 위협하는 자들이
다. 그들은 한편으로 위험한 존재이고, 불안을 야기하는 존재이지만, 한편으로는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의협심과 용기를 가지고 있으며 일상 세계의 구
속을 벗어나 자신들의 생활 방식에 의거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ꡔ江湖ꡕ에서 유민
들의 보편적 심리가 ꡔ水滸傳ꡕ과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게 했던 토양이 되었다
고 하는 점은 바로 이 때문이다.76) ꡔ水滸傳ꡕ은 俠士로서의 성격과 무뢰배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며, 또 이를 동시에 표출해내는 주인공들을 창조해냄으로써
일반적 상으로서의 강호의 모습을 구성해내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강호의 모습이 ꡔ水滸傳ꡕ에서 가
장 핍진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라 ꡔ水滸傳ꡕ이 그 문학적 성취와 영향력을 통해
강호에 대한 어떤 한 형태의 모습을 고정시켰다는 사실이다.
물론, ꡔ水滸傳ꡕ이 강호의 모습을 고정시켰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강호의 모습
은 다채로운 형태를 띠게 된다. 강호의 형태와 모습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협객의 존재인데, 협객의 모습은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하나의
문학적 상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강호는 그것을 주도하는 협객의 모습
과 능력이 초인간적일 경우 초현실적인 양태를 띠게 되며, 협객의 모습과 능력
이 사실에 근접해 있을 때 강호는 인간 사회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다.77) 물론, 이 양극단 사이에도 다양한 형태의 강호가 존재한다. 이것은 강호가
문학적 상상으로 만들어진 협객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와 더불어
강호 역시 하나의 문학적 상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정통 문인들의 정치
76) 陳宏, 張旺, 陳千里, 앞의 책, p. 16
77) 보통 무협소설의 연구자들은 무협소설을 크게 두 가지의 종류로 나눈다. 즉 袁良駿
의 경우에 이는 ‘俠客型’과 ‘劍仙型’으로 표현된다. 협객형은, 그의 말에 의하자면,
무협소설이 그려내는 강호가 현실은 아니지만, 되도록 ‘怪力亂神’을 배척하여 ‘강호
와 현실 인생의 거리를 좁힌’ 무협소설(219)로서, 舊派 무협소설가 중 寫實派로 지칭
되는 白羽의 작품이 대표적이고, 검선형은 등장인물과 그들의 능력, 사건 등이 神魔
小說的 형태를 드러내는 것들인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還珠樓主의 ꡔ蜀山劍俠傳ꡕ
을 들 수 있다. 袁良駿의 ꡔ武俠小說指掌圖ꡕ(新華出版社, 2003) 참조.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47
적 기호로서의 강호이든, 불안과 신비, 위험과 불가해성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강호이든, 협사들의 활동 공간으로서의 강호이든, 강호에 대
한 인식은 항상 문학적 상상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자의이건 혹은 타의이건 정치적 포부를 실현할 수 있는 廟堂이라는 공간으로
부터 소외된 문인들에게 강호는 그 자체로 구체적인 실체를 갖지 않는 공간이
나 개념으로서 詩化되었고, 협객으로 지칭될 수 있는 인물들이 자신의 막강한
능력을 바탕으로 行俠 활동을 선보이는 강호는 물론이거니와, 민간을 떠도는 유
민 집단의 구체적 삶의 공간이나 존재 방식을 지칭하는 것으로서의 강호 역시
구체적인 실체를 갖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극화(劇化)된 형태였다. 이런 점에서
강호는 하나의 ‘문학적 상상’이다. 이 말은 강호가 문학 작품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또 사람들이 강호를 문학 작품 내에서만 만날 수 있으며 그 안에서만
그것을 향유할 수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고, 강호라는 인식 자체가 ‘문학적’ 인식
이며, 그것은 항상 현상태로 확인되는 것보다 더 풍부하며, 더 신비하게 ‘상상’
된다는 의미이다. 강호의 모습은 그것을 인식하고 상상하는 모든 이들에게 각각
제각기의 모습으로 형상화될 수 있는데, 그것들이 모두 강호라는 범주 내에 속
할 수 있는 것은 강호가 지속적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강호는 무한
히 확장되는 개념이나 인식으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강호에 대한 상상이
만들어내는 강호의 상은 무한히 만들어질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떤 인식적 범
주 내에서 ‘변주’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호의 인식적 범주는 무엇인가? 사실, 이 질문은 강호에 대한 이
해나 해명에 그다지 도움이 되는 질문은 아닌데, 강호는 그것을 강호로 인식하
게 하는 것들을 해부하고 설명한다고 해서 규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
다. 강호는 그것을 해체하여 분석하는 순간, 새로운 강호의 상과 인식을 우리
앞에서 드러내놓다. 다만, 강호라는 개념이나 인식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이 사실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 혹은 어떤 시기부터 존재하게 되었다
고 볼 수 있는데, 우리는 다만 이에 대해서만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강호가 존재하게 된 것은 그것에 대한 ‘공인(公認)’을 통해서였다. 강호에 대한
인식은 그것이 강호라고 이름 붙여지기 전부터 존재하였고, 그것이 강호라는 이
름과 결합하게 된 것은 사람들이 하나의 세계 인식이나 혹은 구체적 사건들을
강호라고 하는 것으로 공통적으로 인식하게 되면서인데, 이것이 바로 진정한 강
호의 탄생이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강호의 탄생에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4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 속에 존재하는
협사들의 모습, 또 그들의 활약상은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또 모호하게만 존
재했던 강호의 상과 이미지를 구체화, 가시화해 드러내 보였다. 그리고 이들의
반복과 변주는 사람들의 머리와 심중에 있던 강호를 실체로서 확인시켜주었고,
또 강호에 대한 계속된 주입은 그들로 하여금 강호에 대한 상상을 지속할 수
있게 하였다.
6)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앞에서 강호와 협을 ‘문학적 상상’이라고 명명한 것은, 강호와 협이 구체적인
지시물 그 자체로서보다는 상상된 형태, 즉 허구적 재현물로서 존재하게 되며,
그것들의 허구화가 문학 장르 나아가서는 문학적 표현 방식과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강호와 협은 시, 소설, 희곡 등 문학 장르를 통해서 주로
선보였고, 역사적 기록에서 그려질 때에도 대부분 詩化 혹은 劇化의 방식을 통
해 형상화되었다. 또 강호와 협은 그것을 제재로 한 무수히 많은 문학 작품들,
문학적 상상들을 만들어냈다. 龔鵬程의 한계는 협(그리고 강호)이 이렇게 무수
한 문학적 상상 행위 속에서 구축되며, 이러한 협이 역사적 실체로서의 협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강호와 협은 일
종의 문학 행위의 산물, 즉 문학적 상상의 산물이며, 또 동시에 문학 행위와 문
학적 상상을 추동해내는 동력인 셈인데, 강호와 협을 중심으로 한 문학적 순환
과정 속에서 그것들은 어느새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내용과 엄청난 의미를 부여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낸다. 즉, 강호와 협은 허구적 재현
물이라는 의미의 ‘문학적 상상’이라는 규정을 뛰어넘게 되는데, 필자는 베네딕
트 앤더슨이 말한 ‘상상의 공동체(the imagined community)’라는 개념과 라캉의
‘상상계’의 개념으로부터 착안하여 이를 ‘상상으로서의 강호와 협’으로 부르고
자 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nation)을 ‘상상의 공동체(the imagined community)’라는
이름으로 정의한다. 그는 봉건 왕조국가가 쇠퇴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시기
에 나타나는 특정한 ‘문화적 조형물’로서의 민족과 민족주의가 일단 창조, 성립
된 이후에는 애국주의, 제국주의 등의 논리와 결합하면서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정체성과 결속감을 부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49
18세기 말경에 이 민족주의라는 문화적 조형물들이 서로 관련이 없는 역사적
동력들이 복잡하게 ‘교차해서’ 나온 우발적인 증류물로 창조되었지만 일단 창조
되자 그것은 아주 다른 사회적 환경에 다양하게 의식적으로 이식될 수 있는
‘조립물’이 되었으며, 여러 종류의 정치적․이념적 유형들을 통합하고 이 유형
들에 흡수될 수 있었다.78)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은 민족이 근대라는 특수한 시기에 생겨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항구적이고 영원하며, 대외적으로는 배타적이고, 내적으로는
동질감을 형성하는 공동체로 상상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앤더슨에 따르면,
민족은 그것이 탄생되어야 할 역사적 필연성에 따라 만들어졌거나, 그 자체로서
어떤 규정적 내적 동질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민족의 구성원들이 스스
로 그렇다고 상상하고, 믿을 뿐이다.79) 그런데, 문제는 민족이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기 때문’에 ‘각 민족에 보편화되어 있을지 모르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에도 불구하고’80)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죽음이라는 희
생까지 감수하게 한다는 점이다.81)
민족의 형성, 유지와 관련한, 앤더슨의 상상(imagination)은 두 가지의 차원에
서 복합적으로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는 민족이라는 관념을 상상해내
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상된’ 민족이라는 관념으로 아직 그 구성원으로 포섭
되지 않은 사람들을 그 구성원으로 상상해내는 것이다. 나중에 민족의 구성원이
되는 사람들은 ‘상상된 것’의 ‘상상하기’를 통해 탄생하며, 또 존속된다. 이때 상
상은 ‘발명(invention)’의 의미를 내포하며, ‘발명’이라는 개념은 ‘상상’이란 개념의
이해를 보다 분명히 해준다. 앤더슨이 ‘상상’이라는 말을 통해 민족의 기원과 민
족주의의 전파에 대해서 논하였다면, 홉스봄은 ‘발명’이라는 말을 가지고 유럽에
서 민족국가 성립 시기를 즈음하여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ed tradions)’과 ‘전통
78) 베네딕트 앤더슨 저, 윤형숙 역, ꡔ상상의 공동체ꡕ, 나남출판, 2002. 6, p. 23
79) 민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사람들과 민족이란 이름을 부여받기 전 사람들은 전
혀 다른 존재이다. 민족은 한정된 경계를 통해 제한되고, 그 제한된 경계 안에서 주
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데, 이 제한은 경계 안팎의, 혹은 경계 이전과 이후의 사
람들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든다. 민족을 구성해내는 ‘상상’이 그 이전의 실재와
이후의 실재를 분리하고,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
상’은 그 산물로 하여금 스스로를 이전에도 그렇게 존재했던 것으로 믿게 한다.
80) 앤더슨, 위의 책, p. 27
81) 앤더슨은 민족이 가지는 동료의식, 친교의식 등이 근대 소설 및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서 강화되었음을 지적한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5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의 발명(inventing traditons)’이 민족국가의 자기 확립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
는 지를 설명하였다.
홉스봄이 볼 때, “통상 낡은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낡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전통들(traditions)’은 실상 그 기원을 따져 보면 극히 최근의 것일 따름
이며, 종종 발명된 것”이다.82) 그런데, 국경일, 국가 상징물, 국가 의례 등 새롭
게 만들어진(발명된) 전통들이 과거와의 연속성을 인위적으로 내세움으로써 특
정 집단들 혹은 공동체들의 사회 통합이나 소속감을 구축하거나 상징화하고, 제
도, 지위, 권위 관계를 구축하거나 정당화한다. 홉스봄은 이러한 전통 만들기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음에 주목하면서 민족주의, 민족국
가의 성립과 유지 등의 현상을 살피는 데 있어서 ‘전통의 발명’에 대한 주목이
빠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앤더슨의 ‘상상’이라는 개념과 홉스봄의 ‘발명’이라는 개념은 어떤 사물의 탄
생과 그것의 지속과 유지 과정의 메카니즘을 지적해내고 있다. 앤더슨과 홉스봄
의 주장은, ‘상상’과 ‘발명’을 통해 만들어진 사물이 모종의 작용을 통해 이전부
터 존재해왔던 것이라는 인식을 유포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엄청난 위력과 효력
을 발휘한다는 것이다.83) 여기서 모종의 작용이라는 것은 종교 공동체와 왕조
국가와의 연관성을 형성해내는 것(앤더슨), 과거와의 연속성의 인위적 강조(홉스
봄)이며, 그것들이 발휘하는 위력은 그 구성원의 소속감과 정체성의 강화이다.
앤더슨과 홉스봄은 이러한 만들어진 것들의 자기 노력에 대해서 드러내놓고 비
난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그것들의 자기 노력이 (그것들이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것이라는, 또 그 구성원들이 동질적이며 일체라고 하는) 허위적 인식을 만들어
내고, 또 거기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상
상’과 ‘발명’이라는 개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상상되거나 만들어진 것이 일종
의 허위적 믿음을 상상해내고, 발명해내고 있다는 점이다.84) 상상되어진 것들이
82) 에릭 홉스봄 외 지음, 박지향, 장문석 옮김, ꡔ만들어진 전통ꡕ, 휴머니스트, 서울,
2004. 7, p. 19
83) 물론, 여기서의 어떤 사물이란 앤더슨에게 있어서는 ‘민족’과 ‘민족주의’이고, 홉스봄
에 있어서는 근대 민족국가 체계 하에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사물,
제도, 관념 등이다.
84) 이때 ‘상상’과 ‘발명’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거나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필자
는 허위적 믿음의 창출이라는 의미에 보다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개념은, ‘발
명’ 보다는 ‘상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어의 의미 상, ‘발명’은 주로 구체적 사물과
호응되며, ‘믿음’과 ‘관념’과 같이 사유의 경우는 ‘상상’과 같은 정신적 활동을 지시하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51
위력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을 상상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가 ‘허위적’이라는 수식을 붙여 표현한 ‘믿음’이란 것 자체가 하나
의 ‘상상’이다. 그리고 이때의 ‘상상’은 라캉적 의미의 ‘상상’이다. 라캉은 인간의
주체 혹은 자아 형성 과정을 세 단계, ‘실재계(the Real)’, ‘상상계(the Imaginary)’,
‘상징계(the Symbolic)’로 나눠 설명하였다. 이 중 상상계는 ‘거울단계(The mirror
stage)’로도 표현되는데, 생후 6-18개월 사이에 해당하는 유아적 단계로서, 주체
와 타자와의 관계가 미분화된 상태를 말한다. 즉, 이 단계의 유아는 거울에 비
친 자기의 모습을 자기라고 상상한다. 이 유아는 거울 속의 이미지를 자신과 혼
동하고, 그것을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다른 아이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자기와
동일시한다.85) 이 단계의 유아가 ‘나는 거울 이미지, 곧 나라고 믿는 실체는 오
인된 실체이고 환상’86)이며, 이런 의미에서 여기서 ‘상상’이라는 말은 오해 혹은
착각의 의미를 내포한다. 상상된 것들이 만들어내는 믿음(상상), 즉 자신이 이전
부터 존재했던 무엇인가의 계승, 연장이며 따라서 자신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
이라는 믿음, 또 그 구성원들은 동질적이며 일체라는 믿음은 일종의 오해와 착
각으로서의 상상이다.
앤더슨의 상상(그리고 홉스봄의 발명), 라캉의 상상 등의 개념은 중국에서의
‘강호’와 ‘협’, 그리고 그에 대한 이해와 활용 방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강호’와 ‘협’이 구체적인 실체로부터 출발하였고, 지속적인 문학적 상상
과정과 결합되면서 하나의 ‘문학적 상상’으로 발전하였음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강호’와 ‘협’은 구체적 실체와 그것에 대한 관념이 복잡하게 결합되어 있는 개
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강호’와 ‘협’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후자의 것이다. 필자가 ‘문학적 상상’으로서의 ‘강호’와 ‘협’을 중요하게 다룬 것
은 바로 이 때문이고, 이때의 ‘강호’와 ‘협’은 하나의 ‘관념’이다. ‘강호’와 ‘협’이
상상하기를 통해 개념과 형상의 외연적 확장을 계속할 뿐만 아니라 어떤 순간
에는 기존의 개념과 형상을 전복하는 질과 내용까지를 자기 의미 체계 안에 포
괄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관념’으로서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관념’으로서의 강호와 협이 ‘상상된 것’이
라는 점이다. 이것들이 구체적 실체로서의 ‘강호’와 ‘협’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는 말과 어울리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85) 전경갑 지음, ꡔ현대와 탈현대의 사회사상ꡕ, 한길사, 서울, 1996년판
86) 이승훈, 「라캉의 자아 개념」, ꡔ한국언어문화ꡕ 제20집, 한국언어문화학회, 2001. 12.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5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것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관념으로 정착된 그것들은 구체적
인 그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며, 또 그것들을 대체하고 압도한다. 하지만 그
럼에도 불구하고 상상된 강호와 협은 언제나 실체로서의 그것과 혼동되었다. 龔
鵬程의 당혹감이나 기존의 협의 연구에 대한 그의 반발은 이러한 사실에서 비
롯된다. 물론, 龔鵬程은 상상된 협을 왜곡된 협으로 규정함으로써 협이라는 관
념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였지만, 그는 기존의 협에 대한 연구가 연구
가들의 협에 대한 인상 혹은 염원의 투영으로 인해 실체로서의 협을 실재와 다
르게 해석하고 부각해내고 있음은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즉, 그들이 해석해낸
혹은 발굴해낸 협은 관념과 실체가 혼동되고 뒤섞여 있는 것이다. 龔鵬程은 이
를 역사 해석의 객관성 상실이 빚어낸 결과라고 인식하지만, 실상 이것이 바로
협의 본모습이며, 협이라는 관념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이다.
상상된 협과 실재의 협에 대한 혼동은 최근 협의 연구가 공히 노출하는 문제
이지만, 실상 이것은 최근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龔鵬程은 梁啓超의 ꡔ中國之武
士道ꡕ를 고찰하면서 그것이 梁啓超에게서도 발견되는 문제임을 지적한다. 梁啓
超는 근대 초기 중국이 외세의 침략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尙武精神
의 상실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를 부흥시키기 위해 중국의 武士道 즉 ‘俠’을 부
활시켜야 한다고 역설하였다.87) 이러한 주장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있
어 협이 ‘復讐精神’ 혹은 ‘尙武精神’의 표상이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는 고대 墨
家 집단에서 협의 원형을 찾는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상상된 협에 근거하여 실
재의 협을 발견, 소환해내는 것인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자기의 관념 속의
협과 발견해낸 협이 동일한 협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또한 그는 이 협이 국가적
위기를 타개해 줄 수 있다고 상상한다. 그런 의미에서 梁啓超가 협을 발견, 소
환해내는 것은 그 자체로 협을 상상해내는 것이다.
梁啓超의 이러한 작업은, ‘상상된 협’을 과거 역사 속의 협과 동일시함으로써
당시 중국의 국가적 위기를 타개할 수단을 중국인 자신들의 역사와 과거 속에
서 찾으려는 시도이다. 여기서 협은 과거 중국에 실재했던 것으로 인식되기 때
문에 국가 위기를 타개할 임무와 능력을 부여받게 된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
떤 효과를 발휘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협에 어떤
기대와 염원이 부여되고 있다는 사실이고, 이것은 상상된 것으로서의 협의 성격
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87) 龔鵬程, 앞의 책, pp. 20-25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53
그리고 이러한 협에 관련된 상상의 내용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상상된
것으로서의 협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무협소설이다. 근대 무협소
설은 이전의 협에 대한 상상을 이어받는 동시에 그것을 반복, 변주해가면서 협
의 상상을 추가하였는데, 이때 새롭게 추가되는 것은 협을 통해 국가적 치욕을
극복하고자 하는 상상이다. 무협소설은 협을 상상하는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상
상한다. 협을 중심으로 구성된 무협소설의 세계는 중국의 당대적 상황을 대체할
만한 상상의 세계로 구성(또는 상상)된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當代
적 현실을 극복하거나 망각하고자 하는 중국인들의 열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
상된 협이 상상해내는 세계가 이 협이 실재했던 협과 동일한 것이라고 인식(오
인)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중국과 동일한 것이라고 인식(오인)되기 때문
이기도 하다. 즉, 상상된 중국은 당대적 중국 혹은 치욕스러운 과거의 중국을
덮어버리거나 대체하는 이미지로 부상한다. 무협소설이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얻
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상상해내는 대안적 중국이 그 허구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기 때문인데, 이는 바로 ‘상상으로서의 협과
강호’이 발휘하는 위력이다.
실상 협과 강호에 관한 모든 상상은 어떤 욕구, 염원과 관련되어 있다. 이 욕
구와 염원은 협과 강호를 상상하게 하고, 상상된 것을 실재라고 착각, 혼동하게
까지 한다. 그리고 이때 협과 강호는 과거 중국의 역사와 문화 등을 재구성하거
나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하게 하는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상상으로서의 협과 강호’라는 말은 이러한 전 과정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붙
여진 것이다.
2. 武俠小說과 ‘江湖’․‘俠’
1) 무협소설 장르와 ‘江湖’․‘俠’
1923년 世界書局의 사장이자 저명한 출판상인 沈子方의 제안에 따라 向愷然
이 平江不肖生이라는 필명으로 ꡔ江湖奇俠傳ꡕ을 쓰기 시작한 것을 보통 무협소
설의 출발로 본다.88) 이후 전 중국은 무협소설 열풍에 휩싸이게 되고, 그 열풍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5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은 中華人民共和國이 성립하여 무협소설의 창작과 판매를 금지하기까지 계속된
다. 보통 이때까지의 무협소설을, 1957년 이후 홍콩에서 시작하여 전 중화권에
다시 한번 무협소설 열풍을 불러일으킨 金庸, 梁羽生의 무협소설을 新派 武俠小
說 혹은 新武俠小說이라고 부르는 것과 대비하여 舊派 武俠小說, 舊武俠小說이
라고 부르는데89), 무협소설이라는 장르의 탄생을 촉발시킨 작품의 이름이 ꡔ江湖
奇俠傳ꡕ이라는 점은 사뭇 시사하는 바가 크다. ꡔ江湖奇俠傳ꡕ은 武林의 두 문파
인 昆侖과 崆峒 간에 펼쳐지는 투쟁을 그리고 있는데, 그 제목은 무협소설 장르
전체의 내용과 성격을 완전히 대표한다. ‘강호’와 ‘협객’은 무협소설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두 가지 요소이고, 무협소설이란 ‘강호’에서 벌어지는 ‘협객’들의
이야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존 카웰티(John G. Cawelti)는 The Six-Gun Mystique에서 서부소설과 서부극을
분석하면서 ‘포뮬러(formular)’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포뮬러란 ‘문화적 생산물
을 구성해내는 관습적 체계’로서, 장르와 신화가 삶에 관한 인간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인식에 근거하는 것이라면 포뮬러는 ‘특수한 문화, 특수한 시기와 관
련되어 있어서 플롯, 등장인물, 배경 등의 상당히 제한적인 레퍼토리를 갖고 있
88) 平江不肖生의 ꡔ江湖奇俠傳ꡕ이 나오기까지의 배경과 그 인기에 대해서는 袁良駿의
ꡔ武俠小說指掌圖ꡕ pp. 119-128 참조 바람.
89) 葉洪生도 지적하듯이, 舊派武俠小說과 新派武俠小說의 근본적인 차이를 구별해내기
란 쉽지 않다. 다만, 홍콩에서 梁羽生 등의 무협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광고매체가
선전의 차원에서 ‘新派’란 말을 사용하면서 ‘新派武俠小說’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으
로 보인다. ‘新派武俠小說’이라는 말은, ‘舊派武俠小說’과의 차별성을 염두에 둔 것이
라기보다는 당시 홍콩에서 유행하였던, 廣東 지역의 영웅(예를 들어 黃飛鴻 등 같
은)과 전설을 다룬 무협소설인 ‘廣派武俠小說’과의 차별성을 더 염두에 둔 것 같다.
즉, 새로 나온 무협소설이 ‘廣派’와는 다른, 이전의 정통 무협소설의 계보를 잇는 새
로운 무협소설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新派武俠小說’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
다. 이 무협소설이 ‘新派’로 규정되면서 이전에서 대륙에서 유행하였던 무협소설은
자연스레 ‘舊派武俠小說’로 칭해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신파무협소설이 구
파무협소설에 비해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는 인식에 기반하여 이러한 구분과 명명은
이후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사용된다. 하지만, 陳平原은 이 둘 사이에 ‘소설 장르
로서 그 기본 정신과 서술 방식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고’, 따라서 그
러한 구분은 ‘지역과 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며, 무협소설의 특징과 발
전의 경향을 파악하려면 이를 통합적으로 고찰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新派’와 ‘舊
派’라는 구분 방식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필자는 陳平原의 관점에 대해
서는 동의하지만, ‘新派’와 ‘舊派’의 구분이 가져다주는 편의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양자의 구분이 필요한 경우, 위의 명명법을 사용할 것이다. 葉洪生,
ꡔ論劍 -- 武俠小說談藝錄ꡕ(學林出版社 1997. 1) pp.48-49/ 陳平原, 앞의 책, p. 61 참
조.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55
는 것’으로 설명한다.90) 그래서 카웰티는 서부소설과 서부영화 등을 ‘포뮬러 소
설(formular fiction)’으로 규정한다.91) 그는 웨스턴이나 탐정 소설이 프라이가 로
망스의 전형적 패턴으로 정의한 ‘영웅의 역정(hero’s quest)’이라는 면에서는 동일
하지만, 배경이나 등장인물, 사건 등에서 근본적으로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서로
다른 포뮬러 소설이 된다고 주장한다. 즉, 미스테리한 범죄의 해결이 없는 탐정
소설이 탐정소설이 아닌 것처럼, 서부나 서부의 변경에서 일어나지 않거나, 사
회의 질서와 무정부 상태 사이의 긴장이라는 역사적 시기에 벌어지지 않거나,
추격 등의 어떤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 웨스턴은 웨스턴이 아니다. 각 포뮬러 소
설의 배경, 등장인물, 사건 등의 특수성이 특수한 형식의 흥미와 가치, 긴장을
반영하고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포뮬러 소설에 대한 카웰티의 설명에 따르면, 무협소설은 명백히 포뮬러 소설
로 인정된다. 무협소설은 ‘근대 이전 중국의 역사, 문화와 관련되어 있으며, 협
객들이 강호에서 벌이는 투쟁과 활약’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물론, 무협소설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기타 포뮬러 소설 혹은 장르 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과
결합하고, 그 장점들을 흡수했다. 무협소설에서 神魔小說, 公案小說, 鴛鴦蝴蝶派
小說 등의 흔적이 많이 발견되는데, 무협소설은 이렇게 다른 장르의 요소를 흡
수하여 스스로를 풍부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협소설은 일관되게 그 장
르 자체의 특수성을 유지한다. 무협소설의 가장 큰 장르적 특수성은 무예 혹은
무공과 그에 근거한 대결 형태를 전면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전형준 교수가
무협소설을 근대에 탄생한 새로운 소설로 인식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그 이전의 어떤 중국 소설도 갖지 못했던 특징이다. ꡔ水滸傳ꡕ
이나 俠義小說 등에도 무공과 싸움, 대결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무협소설
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수없이 다양하고 기묘한 무공과 초식이 무협
소설에서 만들어지고, 협객들은 이러한 무공과 무예를 바탕으로 계속적으로 결
90) John G. Cawelti, The Six-Gun Mystique, Second Edition, Bowling Green State University
Popular Press, 1984, pp. 56-60.
91) 카웰티는 장르를 비극, 희극, 로망스 등 상위장르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정하고, 서
부소설, 탐정소설 등은 포뮬러 소설로 지칭하는데, 이는 그가 노드롭 프라이의 장르
개념에 입각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웰티가 포뮬러 소설이라고 명명한
것은 하위장르 소설에 대한 지칭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포뮬러 소설이라는 말은, 우
리에게는 일반적으로 장르 소설 혹은 장르 문학이라고 칭해지는 그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필자는 가능하면 포뮬러 소설이라는 말보다는 ‘장르 소설’이라는 말을 사용
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최근의 장르 문학, 장르 소설 및 영화에 대해서는 2004년
ꡔ문학과 사회ꡕ 여름호의 특집 ‘장르 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참고할 수 있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5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투를 진행한다. 또 협객들은 대부분 門派와 幇派를 결성하여 대립하고 투쟁한
다. 이러한 형식을 통해 무협소설은 자기 정체를 확정한다. ꡔ雪山飛狐ꡕ에서 추
리를 통한 이야기와 사건의 구성이 아무리 중요한 비중을 갖는다하더라도 그것
은 당연히 무협소설로 규정되며, ꡔ神鵰俠侶ꡕ에서 楊過와 小龍女의 사랑이 작품
내에서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은 애정이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무협소설일 뿐이
다.
하지만 무협소설은 이러한 장르적 속성으로 인하여 수많은 비판자들을 갖게
된다. 폭력적 대결, 살인과 살상으로 얼룩진 소설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가장 중심적인 주장이다. 이 문제는 가부로서 판단할 문
제이거나 표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이러한 문제의 제기 이전
에 인식해야 될 것은, 무협소설은 그 존재 기반이 여타의 문학과는 다르다는 점
이다. 김태환은 환상소설에 대해 설명하면서 ‘환상소설은 현실을 구성하는 디폴
트 값 대신 다른 값을 설정한 소설’이라고 정의했는데, 그의 정의의 정확성 여
부에 대한 고려를 떠나서 그의 이러한 정의가 환상소설의 존재적 특성을 적절
히 지적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92) 이를 염두에 둔다면, 무협소설
역시 일반 소설과는 다른, 자기 구성을 갖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무
공과 대결 형식이 갖는 의미가 무협소설에서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무협소설 속에서 이것들은 ‘강호’라는 세계와 그 주재자인 ‘협객’을 통해
외현된다.
출중한 무공의 소유자, 심지어는 술법에 통달한 자로서의 협객과, 이들이 기
상천외한 기예와 술법을 이용하여 대결하고 관계 맺는 세계로서의 강호는 무협
소설을 귀납하는 두 요소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강호라는 인식에는 어떤
사건, 즉 위험과 풍파, 대립과 투쟁 등이 상존하는 세계로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협객은 비범하고 일탈적이며 폭력적인 행위와 기질의 내포자로서 인식
된다. 따라서 이 둘의 결합은 필연적으로 어떤 사건을 포함하게 된다. 카웰티가
포뮬러 소설의 중요한 표지 중의 하나로 제시한 플롯, 즉 사건이 무협소설에서
92) 김태환은 컴퓨터 프로그램 자체 내에 미리 정해진 설정치를 말하는 디폴트 값이라
는 것에 착안하여, 디폴트 값을 ‘현실에 비추어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는 지식’이라
고 정의하고, 현실성의 경계를 정하는 최소한의 설정치들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경
우, 이러한 디폴트 값들의 총합을 디폴트 현실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후, 이에 근거해서 환상소설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환상성 구조에 관한 몇 가지
단상들」, ꡔ문학/판ꡕ 2002년 가을호, pp. 82-83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57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무협소설에서 부차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강호와 협 안에 이미 흡수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협소
설에서 사건, 즉 대립과 투쟁은 그것이 무협소설의 장르적 특성으로 돌출되어
보이기는 하지만, 강호와 협이라는 두 가지를 떠나서 설명될 때 그것의 의미는
순식간에 소멸되어 버린다.93) 그래서 강호와 협은 무협소설 구성의 핵심 요소라
고 할 수 있고, 또한 강호와 협은 무협소설을 통해 새롭게 상상되는 계기를 얻
게 된다. 무협소설은 전면적으로 강호와 협을 소비하고 또 생산해낸다. 강호와
협은 무수한 반복과 변주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상상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 둘
은 단순히 무협소설의 배경이나 등장인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 江湖 : 무협소설의 ‘세계’
무협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에 대해서 말하자면, ‘近代 이전의 中國’이라고 포괄
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무협소설은 근대 이전의 중국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그것도 宋代에서 淸代까지의 중국을 이야기 전개의 배경
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협소설에 고정적인 시공간적 배경에
대한 확정은 있을 수 없다. 金庸의 단편 무협소설인 ꡔ越女劍ꡕ은 춘추전국시기
范蠡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梁羽生의 ꡔ大唐游俠傳ꡕ은 唐代 安祿山의 亂 전후
의 시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平江不肖生의 ꡔ近代俠義英雄傳ꡕ은 義
和團의 亂, 八國 聯合軍의 北京 侵攻 시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등 무협소설
의 시간적 배경은 암묵적으로만 합의되고 있다고 보이고, 그 한계선은 청말, 예
외적으로는 근대 초까지이다. 공간적 배경에 있어서도 무협소설의 이야기는 중
원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西域, 西夏, 東北의 白頭山 등 현재 중국의 영토 내부
가 주된 공간이 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북극, 러시아 등에서도 사건이 벌어지
93) 丁泳强은 「新派武俠小說的敍事模式」(ꡔ藝術廣角ꡕ, 1989년 제6기)에서 무협소설의 핵
심적 장면을 15개로 나열하였다. 1. 원수의 도발(讐殺) 2. 도피(流亡) 3. 스승을 만남
(拜師) 4. 무공 수련(練武) 5. 복수에 나섬(復出) 6. 여자를 만남(艶遇) 7. 좌절(遇挫)
8. 새로운 스승을 만남(再次拜師) 9. 사랑의 바뀜(情變) 10. 부상(受傷) 11. 치료(療傷)
12. 보물을 얻음(得寶) 13. 악한을 물리침(掃淸幇凶) 14. 성공(大功告成) 15. 귀은(歸
隱) 그러나 무협소설에 대한 이러한 방식의 해설은 무협소설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무협소설 안에 담겨 있는 다양한 욕망과 상상까지를 읽어내
는 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5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고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한다.
그래서 무협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은 ‘옛날 옛적 중국’으로 표현될 수 있겠는
데, 사실 무협소설에서 ‘배경’은 그것이 시간적인 것이든, 공간적인 것이든 작품
에서 그다지 큰 의미를 띠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배경은 그 안에서 벌어지
는 사건의 의미와 내용을 규정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질 때, 그 의미가 발생한다
고 볼 수 있는데, 무협소설에서 배경은 단지 하나의 무대장치의 역할 이상을 갖
지 못한다. 왜냐하면 무협소설에서 배경으로 선택되는 각 시간이나 공간이 그에
걸맞는 묘사와 표현을 가진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협소설은 시대적 특
성과 사회적 상황에 대한 묘사와 표현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는 무협소설이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 역시 마찬가지이다. 무협소설은 역사
적 사건의 의미와 그 전망을 탐색하거나 반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이
바로 무협소설이 歷史小說과 다른 점이다. 그래서 무협소설이 宋代, 明代, 淸代
등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차이, 말하
자면 宋代에는 거란족, 明代에는 몽고족, 淸代에는 만주족 등이 등장하여 역할
을 수행한다는 차이를 제외하고는, 각 시대적 특징과 차이가 발견되지는 않는
다. 이는 무협소설이 역사 시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歷史’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江湖’를 다루기 때문이다. 즉, 무협소설의 시공간은 ‘강호’에 의해 재배
치되며, 그렇게 해서 구성된 시공간은 ‘강호’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강
호는 단순히 무협소설의 배경이 아니라 무협소설의 세계 자체를 지칭한다. 그래
서 무협소설에서 강호는 무협소설이 해석하고 상상하고 구성하는 세계이다.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무협소설의 장르적 특징인, 무공과 무공을 바탕으로 한
대결과 투쟁의 전면화는 강호라는 독특한 세계의 존재 방식 아래서 진행된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무공이 존재하고, 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고
수들이 대결을 벌이는 ‘상상’의 상황은 강호에서는 다반사이다. 그런데, 강호는
비현실적이고 허구적인 세계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의 운영 원리와 규칙을 가지
고 있다. 舒國治가 「金庸的武藝社會」에서 도출해낸 이 몇 가지의 ‘강호의 규
칙’94)은 金庸의 강호만의 것이 아니고, 대다수 무협소설가들이 공통적으로 인정
94) 허락없이 다른 이의 무술을 훔쳐 보거나 배워서는 안된다(不可偸學別人武功)/ 문파
내의 서열과 존비가 분명하다(長幼有序, 尊卑分明)/ 남녀는 평등하다(男女平等)/ 나이
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老少平行)/ 무예인은 체면을 중시한다(武人最好面子)/
무예인은 신의를 가장 중하게 여긴다(武人最重信義)/ 정과 사는 양립할 수 없다(正邪
對立)/ 사부가 제자를 선택할 수 있듯이 제자도 사부를 선택할 수 있다(師擇徒, 徒擇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59
하는 것이다. ‘강호의 규칙’은 무협소설 장르 전개의 측면에서 보자면, 하나의
금기 혹은 게임의 룰로서 작용하는데, 그것의 훼손과 위반은 이야기 전개의 중
요한 계기가 된다.95)
이외에 ‘강호의 규칙’의 존재는 강호 세계의 독자성과 자립성을 강조한다. 여
기서 말하는 독자성과 자립성이란, 陳平原이 말하는 ‘官府의 세계’와의 대치와
대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陳平原은 ‘무협소설의 강호 세계는 官府의 세계
와 더불어, 세계를 똑같이 양분하는 제2의 사회’96)라고 정의하였는데, 이때 그가
말하는 강호는 무협소설에서 형상화되는 세계의 한 축으로 축소된다. 그 역시
강호가 일상적 세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운영된다는 사실은 인정하는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호 세계를 전체 무협소설 속에서 특정화된 일부
로만 볼 뿐이다. 하지만, 이는 무협소설에서 강호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소홀
히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필자가 무협소설의 세계가 강호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했듯이, 무협소설 속에서 모든 인물과 사건이 ‘강호’의 방식으로 서사되고
존재한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무협소설을 구성하는 강호는 무협소설이 다
른 소설 장르와 구별되게 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것이 현실 세계 혹은 일상 세
계와도 완전히 다른 ‘상상’의 세계로 존재하게 한다. 강호 세계의 독자성과 자립
성이란 현실 세계를 상대로 한 것이다.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협소설이 구성
하는 세계가 그 독특성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독특성에 힘입어 현실에 대한 대
체 욕망과 결합하면서 ‘대안적 현실’의 상상과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호가 자체로 독자적이고 자립적인 세계란 점은, 강호의 본연적 속성에 해당
한다. 즉 강호가 독자적이고 자립적인 세계라는 점이, 강호가 현실 세계의 존재
적 무게감까지를 자연스럽게 확보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협소설의 비현실성
과 황당함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는 직접적으로는 바로 이 때문인데, 대
부분의 무협소설들이 강호의 특성에 안주함으로써 강호 세계의 자기 완결성(현
실 모사 능력)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 ‘不
食人間煙火’ 등의 비판에 대한 대응으로 험지에 내몰린 주인공이 어떻게 그곳에
서 먹을거리를 찾아 연명할 수 있었는지를 첨부하는 등의 방식을 이용하여 강
호 세계 현실성의 보충으로 삼기도 하였다. 하지만, 강호가 그 자체로 인정받을
師). 舒國治, 「金庸的武藝社會」, ꡔ金庸茶館ꡕ 제2권 129-135.
95) 최혜실, ꡔ디지털시대의 문화 읽기ꡕ, 소명출판, 2001. 7 참조.
96) 陳平原, 앞의 책, p. 14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6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만한 완결성을 확보하는 데에 있어서 이런 방식들은 부차적일 뿐이고, 문제는
강호 세계에 인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사건과 인물이 넘쳐나는 강호에 인간성을 부여하는 것은 무협소설
의 성패 여부에 대단히 중요한 작용을 했는데, 그것은 무협소설의 현실 재현의
차원에서가 아니고 무협소설 내부적 현실성과 완결성 차원의 문제이다. 그래서
무협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때 이 문
제들은 리얼리티 차원의 것이 아니라 내적 심리의 극단적 갈등과 동요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들은 극단적 선택의 기로에 놓여 인간적 고뇌를 경험하면서 인간성
을 획득한다. 무협소설이 자주 이용하는 방식은, 협객으로 하여금 무협소설 스스
로가 정해놓은 규칙, 즉 강호의 규칙을 위반하게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
게 하는 것인데, 師承의 문제, 正邪의 문제, 愛情의 문제 등이 주로 선택된다.
이 중 애정의 문제는 무협소설 속에서 가장 많이 이용된다. 무협소설은 대중
소설에 있어서 애정의 문제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생태적으로 체현한 것으로 보
이는데, 애정 문제가 개입됨으로써 강호는 자체 세계의 완결성을 꾀할 중요한
계기를 얻게 된다. 폭력과 피로 얼룩진 강호는 애정 문제의 개입을 통해 ‘현실
화’되고 ‘유연화’된다. 물론, 이때에도 그 현실성의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
고 비판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과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무
협소설은 무협소설 식의 방식으로 현실을 모사하고 있음을 부정하지는 못하는
데, 현실에 대한 모사 내지는 상상을 통해서 무협소설은 자기 완결성을 모색한
다. 무협소설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현실’, 달리 말하자면 ‘강호’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때의 ‘현실’ 혹은 ‘강호’는 유토피아와의 관련 하에 논의되곤 한다.
ꡔ水滸傳ꡕ의 梁山泊에서 구체적으로 형태를 드러낸 강호는 그 자체로 유토피
아와 반(反)유토피아의 이중적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혼탁하고 무기력한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이상 사회, 정의와 공도(公道)를 대표하는 협객의 제시가 강호
의 유토피아적 양상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폭력과 음모로 가득한 험악한 공간,
그릇된 욕망에 의해 발생하는 풍파는 강호의 반유토피아적 일면이다. 하지만,
강호는 그 반유토피아적 상황에 대한 제시와 서술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무협소설에서 그 지향은 유토피아를 향하게 되는데, 宋偉杰은 이를 ‘유토피
아 충동(烏托邦衝動)’이라는 말로 표현한다.97) 리쾨르에 따르면, 유토피아는 현
97) 宋偉杰, ꡔ從娛樂行爲到烏托邦衝動-金庸小說再解讀ꡕ, 江蘇人民出版社, 1999. 9, pp.
60-64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61
실을 배척하는 비판적 수단이며, 동시에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피난처인데98),
무협소설의 강호 역시 하나의 유토피아로서 과거 역사와 현실에 대한 개입과
도피를 동시에 수행한다. 강호는 과거를 훼손과 결핍의 공간, 질서가 사라진 공
간으로 설정하고, 거기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며 결핍과 훼손을 보상하려는 시
도를 반복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는 과거에 대한 비판적 재생산이기도 하지
만, 과거에 대한 망각이며 도피이기도 하다. 앞에서 무협소설이 근대 중국의 역
사적 상처와 관계 있음을 지적하였다. 무협소설은 강호를 통해서 과거를 반복하
고 변주하며 재생산하는데, 이때의 강호는 과거에 대한 비판이며, 그 결핍의 보
충이며, 동시에 과거의 망각이기도 하다. 즉 강호를 통해서 과거와 중국에 대한
‘상상’이 이루어지며, 이런 의미에서 강호는 과거와 중국에 대한 ‘상상’이다. 宋
偉杰은 강호 유토피아가 ‘노스탤지어(懷舊)’와 ‘나르스시즘(自戀)’의 심태를 제공
하는데, ‘노스탤지어’는 무협소설 속의 과거를 진정한 과거, 진실한 현재와 분리
되게 하고, ‘나르스시즘’은 일종의 환상으로서 독자의 신체와 주체 의식을 박탈
한다고 지적하였다.99) 宋偉杰의 입장은 金庸의 무협소설을 부각시키기 위한 그
의 시도와 더불어 살펴보아야 하는데100), 그가 간과한 것은 무협소설의 과거와
중국에 대한 강박적 반복 혹은 무의식적 차용이 독자들로 하여금 과거와 중국
에 대해 지속적으로 상상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 상상은 그것의 진실성 여부와
는 상관없이 현실과 미래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101) 金庸 小說을 예로
들자면, 그것은 ‘文化中國’, ‘陽剛中國’에 대한 무의식적 확신과 기대로 표현된다.
3) 俠 : 무협소설의 ‘주체’
宋偉杰이 무협소설의 한계와 金庸 小說의 우수성을 논할 때, 협객의 형상과
98) Paul Ricoeur, Lectures on Ideology and Utopia,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6, p. 309
99) 宋偉杰, 위의 책, pp. 86-87
100) 그는 金庸의 小說은 이러한 한계를 초월한다고 본다. 협객의 명징한 의식과 영웅적
풍모는 유토피아 충동을 추동하며 희망을 불러오는데, 이는 절망에 대항할 수 있는
역량이라는 것이 金庸 小說에 대한 그의 평가이다. 앞의 책, pp. 91-94
101) 물론, 앞 절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강호를 통한 상상 혹은 강호에 대한 상상에는
오해와 착각이 필연적으로 개입하게 되며, 따라서 이 과정에 허상에 의한 실상의
대체가 이루어지는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상으로
믿고자 하는 열망에 의해 현실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6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풍모에 의지한 것은 일리 있는 방식이었다. 왜냐하면, 무협소설의 도덕적 지향
과 주제 등은 모두 俠을 통해서 구현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강호의 모든 사건
은 협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진행된다. 협은 강호를 형성하고, 주재하는 주체이
다. 초기 무협소설 연구가 협의 의미와 사상적, 도덕적 범주와 그 지향을 탐색
에 주력했던 것은 무협소설 속에서 俠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102) 또 무협소설의 대체적 분류가 협객의 성격에 근거해서 이루
어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무협소설에서의 俠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무협소설에서 협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무협소설의 이야기와 주제,
도덕성이 협을 통해서 발현된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그 중요성은 독서 과
정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무협소설 속의 매혹적인 협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동일시의 대상이 된다. 宋偉杰은 독자와 주인공의 동일시 상태를 일
종의 자기 환상이며, 자아의 망각이라고 지적하며, 이러한 자기 망각은 독자를
‘空虛’한 主體, ‘存在’하는 ‘不在’가 되게 한다고 주장한다.103) 사실, 무협소설을
읽는 독자의 정신적 반응에 대해서는 자세히 연구된 적이 없다. 하지만, 무협소
설에 빠져든 독자는 독서 과정 속에서 주인공과의 동일시를 경험하게 되고, 이
는 긍정적으로는 현실의 압박으로부터의 해방과 압박감의 발산으로 해석되며,
부정적으로는 자아와 현실에 대한 망각과 도피로 이해되는 것이 보통이다. 물
론, 이러한 이해와 해석은 그다지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는 일반적인 대
중소설의 독서 과정에 대한 이해와 별다르지 않는데, 필자는 무협소설과 협의
존재가 독서과정에서 위에서 제시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영
향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무협소설을 근대 중국의 역사 과정, 중국인
의 신분 변화의 과정과 더불어 이해할 때 파악이 가능해진다.
중국의 많은 학자들은 淸代 俠義小說 속의 俠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를 내
보인다. 그 주요한 원인은, 협객들이 조정의 대신과 관료에 의해 통솔되고 봉건
왕조를 위해 봉사하기 때문이다.
102) 俠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조명은 무협소설의 도덕적 가치의 검증으로 인식되었고, 俠의 儒佛道墨 등의 전통사상과 상호 관계에 대한 탐색은 俠을 중국 전통적 사상
범주 중의 하나로 가정함으로써 무협소설의 사상적 가치의 제고에 이바지하였다.
무협소설을 통해 俠은 지속적으로 상상되고 생산되었는데, 이제 俠은 무협소설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103) 宋偉杰, 앞의 책, p. 8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63
협의소설의 정신은 行俠仗義, 除暴安良이다. … 하지만 일단 협객이 관부에
들어가거나 아문의 소속 혹은 “황제의 수하(御猫)” 등이 되면 성질이 완전히 변
한다. ꡔ七俠五義ꡕ를 예로 들자면, 비록 소설에 충과 불충의 판별은 있지만, 협
객의 반대측은 반란을 꾀한 襄陽王이다. 그러나 이는 필경 통치 계급 내부 심
지어는 황실 내부의 권력 투쟁이다. 협객들은 이 사이에 끼여들어 황실을 위해
충성을 다함으로써 더 이상 협객이 아니라 노예로 변한다.
俠義小說的魂魄是行俠仗義, 除暴安良 … 而一旦俠客們走入官府, 成了官府的衙
役或“御猫”之類, 性質便完全變了. 以ꡔ七俠五義ꡕ爲例, 雖然小說有忠奸之判, 俠客
們的對立面是妄圖謨反的襄陽王, 但這畢竟是統治階級內部甚至皇室內部的爭權奪
利之爭, 俠客們參與其間, 爲皇室效忠, 便不再視俠客, 而變成了奴才.104)
俠義小說의 협객은 行俠仗義, 除暴安良이라는 측면에서는 이전의 협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다만, 그들이 이전의 협과 다른 점은 황실, 조정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봉건 정치 권력을 안정화하는 데 일조한다는 점이다. 俠義小說의 협
객은 체제 옹호적이다. 俠의 표지 중 중요하게 거론되는 ‘俠以武犯禁’의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俠義小說 속 협객의 정치 권력에의 일조와
체제 옹호적 성격에 대한 비판은, 협이라는 관념의 정체와 범위를 다시금 환기
시켜준다기 보다는 비판자들의 협에 대한 이해 방식과 내용만을 확인시켜줄 뿐
이다. 즉 그들의 관념 속에 있는 협은 조정 및 정치 권력에 대항하는 것을 대단
히 중시한다는 점만이 확인되며, 그들이 자기 관념으로서의 협을 가지고 실재하
는 협의 내용을 평가하려 한다는 점이 목격된다. 사실, 俠義小說 이전의 俠은
대체로 사회적, 문화적 일탈자이며, ꡔ水滸傳ꡕ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집단적으로
조정과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세력의 모습을 띤다. 하지만, 이것이 협의 전면적
모습은 아닌데, 陳平原이 지적한 것과 같이 ꡔ水滸傳ꡕ의 영웅들도 완전히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모습만은 아니며, 建功入德의 목적이 협객의 지향과 완전히 다
른 것도 아니다.105) 이는 ‘문학적 상상으로서의 협’의 성격 때문인데, 협은 다양
하게 상상되고 존재하며, 개별 협의 양상은 무수히 다른 모습으로 외화될 수 있
기 때문이다. 협에 대한 판정과 그 기준은 일정치 않다. 다만 어떤 기질과 행위,
덕목의 충족과 위반에 의해서 俠으로 규정되거나 규정되지 않거나 할 뿐이다.
즉, 협은 귀납적인 개념이라기 보다는 연역적인 개념이다. 그래서 협에 있어서
104) 袁良駿, ꡔ武俠小說指掌圖ꡕ, 新華出版社, 2003, p. 104
105) 陳平原, 앞의 책, pp. 47-53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6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反俠’ 역시 협으로 규정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俠義小說 속의 협객에 대한 비판에서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발견
된다. 그것은 비판자들의 비판의 이유가 황실과 조정에 대한 협객의 ‘봉사’와
‘충성’ 때문이 아니라 협객이 봉사하고 충성하는 대상이 ‘청의 황실과 조정’이기
때문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의 비판은 魯迅의 俠義小說에 대한 평가로부터
도출되고, 그로부터 비판의 힘을 빌려온다. 魯迅은 ‘ꡔ三俠五義ꡕ가 시정의 사람들
을 위해 쓰여졌고, 비교적 ꡔ水滸傳ꡕ의 여운을 갖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역시
겉모습을 말하는 것이고, 정신은 아니다’106)라고 ꡔ三俠五義ꡕ에 대해서 평가했고,
‘俠義之士가 도적을 없애고, 반란을 평정하지만 그 과정에 매번 조정의 신하와
관료가 모든 것을 통솔한다’107)라고 지적하였다. 魯迅의 맥락에서 강조되는 것
은 ‘반역성’과 ‘저항성’의 소실이다. 하지만 이는 비판자들의 맥락에서는 ‘정권과
황실의 하수인 혹은 개’라는 의미로 변화된다. 이는 滿淸에 대한 정치적 관점과
관계 있는 것으로 보인다. 滿淸 정부의 부패와 정치적 무기력은 근대 중국의 위
기를 불러온 주요한 원인으로 제기된다. 게다가 이민족 정치 권력으로서의 淸의
정체 또한 이와 연관된다. 이는 무협소설의 주요한 이야기 구성의 하나가 된다.
이민족과 한족의 대결 구도는 무협소설의 주요한 갈등 구조가 되는데, 이로써
만주족뿐만 아니라 몽고족, 거란족 등도 漢族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부상한다.
이때 한족은 무협소설의 담화자로 나서게 된다.
물론, 무협소설에서 漢族은 한족 그 자체라기 보다는 ‘국민국가’ 성원으로서의
중국인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金庸의 작품이 있기까지 漢
族이 무협소설에서 절대적 선으로 기술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무협
소설이 발견하고, 주로 의지하는 주제이다. 이 경우에 한족에 대한 입장과 한족
정치 권력에 대한 입장은 동일하지 않았다. 무협소설이 절대적으로 한족의 입장
에서 기술되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한족 정치 권력에 대한 긍정으로까지 전화되
지는 않았는데, 무협소설이 俠義小說 등과 다른 점은 협객이 정치 권력에 봉사
하고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권력을 대신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민족 국
가 체계 내에서는 한족을 대표해서 이민족 정권과 대립하고, 한족 국가 체계에
106) ꡔ三俠五義ꡕ爲市井細民寫心, 乃似較有ꡔ水滸ꡕ餘韻, 然亦僅其外貌, 而非精神. 魯迅, ꡔ中
國小說史略ꡕ, 第27篇, 「淸之俠義小說及公安」, 百花文藝出版社, 2001. 2월판, p.216
107) 俠義之士, 除盜平叛的事情, 而中間每以名臣大官, 總領一切. 魯迅, ꡔ中國小說的歷史變
遷ꡕ, 第6講 「淸小說之四派及其末流」, ꡔ魯迅全集ꡕ 第9卷, 人民文學出版社 1991판, p.
339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Ⅱ. 상상으로서의 江湖와 俠 65
서조차도 무기력한 국가 권력을 대신하여 역사를 주도한다. 무협소설 내에서 한
족 국가 권력은 협객에 의해 대체되고, 소멸되어 버린다. 그런데, 한족 국가 권
력이 무협소설에서 소멸되는 것은 그것의 정치력의 소실 및 불인정을 의미한다.
역사에서 그것의 종말은 이민족에게의 굴복이었다. 중국 근대의 현실은 이의 반
복이자 재연이다. 무협소설의 시작은 이로부터 출발한다.
앞에서 무협소설의 특수성은 무공 및 대결의 전면화라고 언급하였는데, 이는
주로 무협소설의 서사적 특성에 해당한다. 의식적 측면에서 무협소설의 특징 혹
은 차별성은, 무협소설이 이전 俠義類 서사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부차시되었
던 ‘민족의식’ 혹은 ‘국가의식’에 기반하고,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점이다. 이
는 대결과 투쟁을 위주로 삼는 무협 장르에서 ‘이민족’을 적의 진영에 새롭게
추가했다는 정도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무협소설이 이
전의 俠義類 서사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쓰여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무협소
설은 서사의 주체를 새롭게 발견하였다. 그것의 표현은 한족으로 나타나지만,
‘한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은 근대 중국의 상황이었다. 서구 열강에 의
해 침탈당하고 유린당했던 중국은, 현실적인 차원에서 부분적으로는 서구 열강
을 자기 발전의 모델로 삼기도 했지만, 정서적으로, 또 전체적으로는 그것을 적
대시하였다.
서구 열강이 적대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중국인으로서의 자아를 인식
하게 된다. 이 자아는 세계의 중심, 中華로서의 자아와는 다른 것이었다. 오욕과
굴종의 자아는 과거 역사에서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였는데, 그것은 이민족에
침탈당하고, 유린당했던 한족의 모습이었다. 이때 과거 이민족은 서구 열강의
반복적 재연이며, 이 가운데에서 협은 국가 권력을 대신해서 한족을 위기에서
구원할 존재로 부상하였다. 협은 강호의 주체이고, 강호의 영도자이지만, 이제
그것을 넘어 역사의 주재자로 새로 태어난다. 그리고, 그것은 한족의 역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중국의 역사로 확장된다. 金庸은 한족과 이민족의 관계를 새롭
게 사고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한족 중심주의는 의심할 문제이다. 그는 한족을
폐기하고, 중국인으로 나아간다. 이때 상상으로서의 협은 ‘국민의 협’으로 다시
상상된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6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 金庸 小說의 江湖 : 역사․로맨스․전통문화의 결합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강호는 무협소설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무
협소설을 다른 소설 장르와 구분하게 하는 하나의 표지이다. 강호는 무협소설에
서 자기만의 조직 원리와 규칙 등을 가진 독자적이고 자립적인 세계이며, 나아
가 무협소설의 세계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무협소설이 현실 세계
와 맺는 관계 방식, 또 그것의 중국에 대한 상상을 살피는 데 있어서 강호의 상
황과 성격 등을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중국에 대한 상상 행위로서의 金庸 小說
이 구성해낸 강호 모습은 과거 중국에 대한 金庸의 기억과 평가, 염원 등이 무
엇이었는지, 그가 꿈꾸는 ‘중국’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金庸이 자신의 강호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중점적으로 활용하고 의지하는 것
은 역사, 로맨스, 그리고 전통문화이다. 이것들은 金庸 小說의 중심적 제재이며,
또 金庸의 강호에 생명력과 성격을 부여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것들과 결합함
으로써 金庸 小說은 폭력문학, 저급문학으로 지탄받던 무협소설의 위상을 재검
토하게 했는데, 이는 위의 요소들이 무협소설의 폭력성과 말초적 오락성을 상쇄
하고 희석시켰다는 의미보다는 그의 소설, 나아가서는 무협소설 일반까지를 무
협소설의 틀 내에서만 사고하지 않게 하였다는 의미이다. 金庸 小說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金庸 小說을 역사소설 혹은 ‘서사시(史詩)’로 보고자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는 바로 金庸의 강호가 역사적 문제를 다루고, 사고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108) 물론 그들의 주장의 타당성은 그다지 설득력 있게 받아
들여지지는 않지만, 金庸이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중국의 과거에 대해서 나름대
로 성찰하고 중국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金
庸이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소설에 끌어들인 것은 일차적으로는 무협소설의
108) 그들은 주로 金庸 小說이 역사적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 과정에 봉건 전제 왕
조, 전통적 관념에 대한 비판 등이 드러난다는 점에 의지하여 金庸의 무협소설을
역사소설 혹은 서사시로 규정하고자 한다. 陳墨의 ꡔ金庸小說賞析ꡕ(百花洲文藝出版
社版, p.21)와 金山의 「金庸小說是一部特殊的“史詩”」(ꡔ閱讀金庸世界ꡕ, 上海書店出版
社, pp. 50-60) 등 참조.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67
현실감을 높이기 위한 시도로 보이지만, 그가 주로 朝代의 변환기, 즉 漢族과
夷民族의 전면적 대립과 충돌 시기를 작품의 배경이자 주요한 사건으로 다룬
점 때문에, 그것이 무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일지라도, 필연적으로 과거
중국의 역사에 대한 평가와 성찰을 동반하게 된다. 또한 한족 정치 세력의 무능
과 무기력을 강조하고 협객 혹은 협객 집단을 내세워 그들을 대체해버리는 그
의 방식은, 金庸은 이러한 시도를 모두 성공으로 귀결시키지는 않지만, 중국의
역사에 대한 비판이며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상상적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金庸 小說에서 다루는 역사는 ꡔ鹿鼎記ꡕ를 제외하고는, 중
국에 대한 낙관적이고 건설적인 상상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이는 역사를 다루
는 金庸의 딜레마이다. 金庸은 역사적 사실로부터 시작하여 역사적 실제로 귀환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귀환하는 그 역사는 협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바꿔 놓
을 수 없는 실체이다. 金庸이 상상해낼 수 있는 중국 역사의 승리와 낙관은, 그
의 소설의 시작과 끝에 놓인 역사 사이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金庸 小說에서 로
맨스의 개입과 전통문화 활용이 두드러지고, 극대화되는 것은 역사를 다루는 그
의 딜레마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로맨스의 개입과 전통문화의 활용은 金庸 小說 속 강호의 극단적 두 측면을
강화한다는 점에 있어서 다른 역할을 수행하지만, 반대로 강호를 유연화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 金庸의 강호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는
폭력성과 그로테스크함은 로맨스와 전통문화를 만나면서 희석되고 상쇄된다. 애
정은 폭력과 살상을 자행하는 인물들의 인간적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전통문
화는 고아하고 문아한 문화의 향취를 강호에 불어넣음으로써 강호를 유연화시
킨다. 그래서 金庸의 강호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결과 투쟁에도 불구하고 쉽게
폭력적 세계로 인식되지 않는다. 반면에 로맨스와 전통문화는 강호의 서로 반대
되는 성격을 동시적으로 부각시킨다. 로맨스는 비상한 능력, 혹은 비현실적 능
력을 소유한 협객을 무장해제시킨다. 애정의 문제 앞에서 어떤 협객도 범인의
모습 이상이 아니다. 그들은 사랑 때문에 희열하고, 질투와 정욕 때문에 괴로워
하는 인간들 그 자체이고, 이런 의미에서 강호는 보통 인간들이 살아가는 현실
의 세계 그 자체이다. 하지만 전통문화와 결합된 강호는 대체로 이와 반대의 모
습이 부각된다. 金庸이 전통문화에 부여한 심오함과 신비함, 秘儀的 감정은 강
호의 비현실성을 극대화한다. 초월적 협객들과 기이한 사건들이 비일비재한 공
간으로서의 강호는 극단적 상상으로 재구성된 전통문화를 만나면서 그 외연을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6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무한적으로 확장하게 된다. 강호는 로맨스의 개입으로 인해 현실 세계라는 규정
을 얻게 되는 동시에 전통문화를 만나서면 그 규정을 파기하는데, 이로써 강호
는 그 개념에 걸맞는 자기 모습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金庸의 강호를 강
호로 만들게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金庸이 로맨스와 전통문화를 강호에
개입시킨 종국적 이유는 아니다. 金庸이 로맨스와 전통문화를 강호에 끌어넣고,
또 이를 극단적으로까지 부각시키는 이유는, 강호를 이용한 金庸의 역사 상상의
좌절 때문이다. 金庸은 역사를 강호화시키고, 강호를 역사화시킴으로써 과거 중
국을 평가하고 성찰할 수는 있었지만 그로부터 그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희망
과 낙관이라기보다는 좌절과 패배이다. 이것은 金庸만의 딜레마나 난감함이라기
보다는, 무협소설이라는 장르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 즉 근대
이후 중국 역사에서의 좌절과 시련과 연관되며, 단지 金庸 역시 이에서 자유로
울 수 없었던 것뿐이다. 따라서 金庸은 좌절과 시련의 기억을 해소할 것으로 로
맨스와 전통문화를 선택했다.
이러한 사실은 金庸이 로맨스와 전통문화를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그려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즉 여성과 문화라는 두 가지를
완벽하게 자기 소유로 만들고 있음에서 드러난다. 이 두 가지의 전유를 통해 金
庸은 역사적 좌절에서 오는 결핍을 보충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109) 그리고 그
의도는 ‘陽剛中國’과 ‘文化中國’의 상상을 낳게 된다.
2. 역사의 성찰과 상상
1) 金庸의 역사 차용의 의미
袁良駿 교수는 金庸 小說의 강렬한 역사감을 그의 성공의 비결이자 독자를
매료시키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 꼽는다. 하지만 袁良駿은 이와 동시에 金
庸의 역사감을 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지적하는데, 그것은 金庸의 역사
109) 물론 이러한 의도는 金庸에게 있어서 의식적이기도 하고, 무의식적이기도 하다. 하
지만 그것이 무의식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金庸 개인 차원의 무의식일 뿐이다.
즉, 그가 무협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했을 때 그의 무의식은 장르 자체가 가지는
의식성에 의해 무화되고 만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69
에 대한 언급이 ‘제멋대로 역사를 꾸미는 것(戱說歷史)’에 지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袁良駿은 金庸의 ‘戱說歷史’에 대한 논거로, 첫째, 조정을 ‘강호’화하
고, 帝王과 將相을 무협화하며 둘째, 역사에서 협객의 지위와 역할을 극도로 과
장하고 있고 셋째,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무협 인물을 숭고화하며 넷째, 帝王
과 將相,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을 ‘멋대로 짝짓기(亂点鴛鴦譜)’한다는 등을 든
다.110) 사실, 袁良駿의 이러한 주장과 근거는 대단히 정확하다. 단지 문제는 그
가 무협소설로서의 金庸 小說의 장르적 특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
다. 그래서 역사를 다루는 金庸 小說의 방식을 정확하게 지적했음에도 불구하
고, 이것을 金庸 小說의 ‘역사의 왜곡과 날조’를 지적하고 비판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하는 데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金庸의 역사 처리 방식이 그의 소설의 치명적 약점이라는 袁良駿의
판단과는 반대로, 다음과 같은 평가는 대부분 金學派들의 인식을 대변한다.
金庸은 광범한 사회의 배경을 소설의 창작적 환경으로 삼는데 뛰어난데, ꡔ倚
天屠龍記ꡕ 또한 예외가 아니다. 작자는 元末 明初의 사회적 대혼란을 소설 창
작의 대배경으로 삼는 동시에, 역사 상의 明敎와 朱元璋, 徐達, 常遇春 등의 역
사적 인물을 작품으로 끌어들여 소설 창작의 진실감을 강화시켰다.
金庸善于把廣闊的社會背景作爲小說的創作環境, ꡔ倚天屠龍記ꡕ也不例外, 作者以
元末明初的社會大動蕩作爲小說創作的大背景; 同時將歷史上的明敎與朱元璋․徐
達․常遇春等歷史人物注進作品, 加强了小說創作的眞實感.111)
이러한 판단은 무협소설이 갖는 허구성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한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역사적 배경과 역사적 인물 등을 작품에 끌어들인 것은, 金庸이 자
신이 구성하는 허구의 진실성을 강화하기 위한 행위로 해석된다. 물론 이러한
평가와 이해 방식은, 金庸 小說의 장르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袁良駿의
그것보다는 金庸 小說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더 유리한 지점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金庸 小說의 문학성 확보의 측면을 부각하는
것에 그침으로써 金庸 小說이 역사를 다루고, 구성하는 의식, 무의식 의도의 고
찰을 외면한다는 점에 있어서 한계를 노출한다.
110) 袁良駿, ꡔ武俠小說指掌圖ꡕ, 新華出版社, 北京, 2003, pp. 248-250
111) 張秀奇, 李志英 편저, ꡔ一個人的江湖-金庸武俠完全手冊ꡕ, 中華工商聯合出版社, 2003.
1. p.135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7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金庸의 무협소설은 총 15작품, 12부 장편소설과 3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다. 이 작품들은 약간의 무리를 감안하면112),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작품이 역사적 배경과 사건 등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적 상황과 배경 등이 작품의 내용과 그다지 연관되지 않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작품은 春秋戰國 시기 范蠡의 고사를 다루는 단편 ꡔ越女劍ꡕ,
송대 즈음의 이야기로 추정되는 ꡔ連城訣ꡕ과 ꡔ俠客行ꡕ, 明代의 이야기인 ꡔ笑傲江
湖ꡕ, 淸初의 이야기인 ꡔ雪山飛狐ꡕ와 ꡔ飛狐外傳ꡕ, 淸代로 추정되는 두 단편 ꡔ鴛
鴦刀ꡕ와 ꡔ白馬嘯西風ꡕ 등이다.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작품은 宋, 遼, 西夏, 大
理, 西藏 등이 병존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ꡔ天龍八部ꡕ, 宋末에 시작하여 元
代를 거쳐 明의 건국 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ꡔ射鵰英雄傳ꡕ, ꡔ神鵰俠侶ꡕ, ꡔ倚天
屠龍記ꡕ의 ‘射雕三部曲’, 明末에서 淸初까지의 시대를 다룬 ꡔ碧血劍ꡕ, ꡔ鹿鼎記ꡕ,
ꡔ書劍恩仇錄ꡕ 등이다. 金庸 小說의 우열을 나누는 것은 저마다의 취향과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더 많은 독자들의 지지
를 받는 작품은 ꡔ笑傲江湖ꡕ를 제외하고 대부분 후자의 작품들이다. 그것은 후자
의 작품들이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동원함으로써 허구성과 핍진성을
동시에 획득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런 의미에서 후자의 작품들은 편폭이나
주제적인 면에서 金庸 小說의 주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金庸 小說들을 살펴보면, 宋末 元初, 元末 明初, 明末
淸初 등 朝代 변환 시기를 주로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陳墨은 金庸이 선택한 朝代 변환기이자 사회적 혼란이며, 민족적 모순이 격화된
시기가 무협소설에서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고
대 영웅의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정신을 표현할 수 있었고, 일반적 협 뿐만 아니
라 爲國爲民의 ‘俠之大者’까지도 그려낼 수 있었다. 둘째, 이러한 시기는 ‘영웅의
112) 金庸 小說을 분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金庸 小說을 계열로 분류하는 것
은 언제나 약간의 무리수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金庸 小說 등이 각
작품마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또 많이 다른 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金
庸 小說 연구가 그것의 분류 작업을 수행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때문이다. 여기
서 역사와의 관련성을 가지고 金庸 小說을 두 가지로 분류하는 것 역시 정확한 분
류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역사와 그다지 관련을 맺지 않는 작품으로 분
류되는 ꡔ雪山飛狐ꡕ와 ꡔ飛狐外傳ꡕ의 경우에도 李自成과의 관련, 또 ꡔ書劍恩仇錄ꡕ과
같은 작품과의 연관성 등으로 볼 때, 완전히 역사와 동떨어진 것이라만은 볼 수 없
으며, ꡔ天龍八部ꡕ 같은 작품은 金庸의 역사에 관한 관점의 변화 등을 살펴볼 수 있
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의 대체적 이야기가 역사라는 큰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71
전기(英雄傳奇)’와 ‘전기적 영웅(傳奇英雄)’을 출현시키기 용이하다. 셋째, 역사와
정치 문화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 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 넷째, 작가의
거대한 안목과 정신을 잘 드러낼 수 있다.113) 물론 陳墨의 이러한 설명 이면에
는 金庸이 이러한 의미들을 다 갖추었음에 대한 주장이 배어 있음은 말할 것이
없는데, 필자는 陳墨이 지적한 네 번째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
각한다. 이는 첫 번째의 의미와 어느 정도는 연관된다. 이 의미를 파악하기 위
해서 金庸이 선택한 이 시기가 어떤 시기인지를 살펴야 하는데, 이 고찰은 金庸
이 포착하는 역사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다.
金庸이 선택한 朝代 변환기란 한족 왕조에서 이민족 왕조로, 또 이민족 왕조
에서 한족 왕조로의 교체시기이다. 즉 金庸이 포착하는 역사는 바로 漢族과 夷
民族의 대립과 투쟁의 역사이다.114) 하지만 金庸이 한족과 이민족의 대립과 투
쟁을 통해 중국의 역사로 접근해 들어갔다는 사실이 金庸의 漢族 中心主義적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라고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것은
金庸의 역사관의 일부만을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무협소설 장르의 내면적
속성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찰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113) 陳墨 ꡔ金庸小說之謎ꡕ 金庸小說硏究系列 百花洲文藝出版社 1999. 1. pp.108-110
114) ꡔ鹿鼎記ꡕ에서 五族 공동의 中華民族으로서의 민족 혹은 국민(즉, nation)의 개념이
출현하기 전까지 金庸 小說에서의 ‘민족’은 ‘종족(ethnic)’을 가리키는 다른 말이다.
즉, 金庸 小說은 에스닉으로서의 한족과 만주족, 거란족, 몽고족 간의 대립을 다룬
다. 하지만 金庸의 무협소설 나아가 전체 무협소설에서 에스닉으로서의 한족 이외
에 다른 이민족이 에스닉의 차원에서까지 다루어지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무협소
설에서 서사의 중심이 되고, 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기 혹은 주체일 뿐이고, 타
자의 설정은 주체의 존재와 상상을 유발하는(혹은 돕는) 보조적 차원에서만 이루어
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협소설은, 적어도 金庸 小說은 에스닉으로서 한족만을 다루
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민족에 대한 멸시와 경계의 태도가 드러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무협소설이 드러나는 한족 중심주의적 태도라고 볼 수
는 없으며(이 이유는 본문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다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金庸
혹은 무협소설 작가들이 민족(혹은 국민, 國族으로도 칭해지는 nation)의 상상을 한
족이라는 에스닉을 통해서 진행시킨다는 점이다(한족 중심주의라는 지적은 이 과정
에 생긴 오해 혹은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즉 무협소설에는 민족(nation)=한족(ethnic)
이라는 등식이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金庸 연구자들이 金庸 小說에서 애국주
의나 민족주의를 읽어내는 것 또한 바로 맥락에서 나온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에
스닉(종족)과 네이션(민족)의 혼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협소설에서의 이러
한 혼동이 한족 중심주의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것은 무협소설 장
르 기원의 특수한 맥락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 생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ꡔ鹿鼎
記ꡕ는 에스닉으로서의 漢族이 아니라 中華民族으로서의 민족을 발견해냄으로써 무
협소설의 주체를 제대로 포착한 셈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상론하겠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7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앞에서 필자는 무협소설 초창기에 제국주의 열강이 중국 협객들의 직접적인
적대세력이었고, 이후에 이민족 오랑캐가 새로운 적대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
음을 살폈고, 이때 이민족 오랑캐는 그 실체로서보다는 어떤 역할 모델로서 인
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무협소설이 관습적으로 창작되는 과정에서 이
러한 원래적 의미가 망각되면서 이민족 오랑캐가 한족이라는 에스닉을 위협하
는 타자로서 부각되기도 했다는 사실 역시 지적하였다. 金庸 역시 이에서 예외
가 아니었다. ꡔ天龍八部ꡕ에서 민족의 문제에 대해서 다시 사고하기 전까지 金庸
은 한족과 이민족에 관한 무협소설의 관습화된 시각을 유지하게 된다. ꡔ碧血
劍ꡕ, ꡔ射鵰英雄傳ꡕ에서 袁承志와 郭靖이라는 ‘爲國爲民의 俠之大者’를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金庸은 적어도 역사적 차원에서는 이민
족에 대해서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았다.115) 그리고 그의 변모한 역사관과 민족
관은 北京大에서 행한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116)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金庸이 역사의 문제를 다룰 때 시종일관 한족과 이
민족의 대립과 투쟁을 끌어들였다는 사실이다. 첫 작품 ꡔ書劍恩仇錄ꡕ과 마지막
작품 ꡔ鹿鼎記ꡕ에서 피력하는 金庸의 민족적 관점은 완전히 상반된다. 그렇지만
이 둘은 공히 한족과 만주족, 명 왕조와 청 정권의 대립 위에서 전개되는데, 이
는 金庸이 중국의 역사에 관한 기본적 파악을 드러내는 것이며, 동시에 그 역사
를 다루는 金庸의 방식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金庸이 파악하는 중국의 역사는 외부 세력(이민족)에 의한 자아(한족 혹은 중
115) 金庸은 이를 다음과 같이 자신의 역사관과 민족관이 진보한 때문이라고 자평하였
다. “초기의 나의 소설은 漢人 皇朝의 정통 관념이 매우 강했다. 후기에 이르러서는 中華民族의 각 民族을 동일하게 보는 관념이 기조를 이루었다. 그것은 나의 역사관
에 비교적 진보가 있었던 까닭이다. (我初期所寫的小說, 漢人皇朝的正統觀念很强. 到了後期, 中華民族各族一視同仁的觀念成爲基調, 那是我的歷史觀比較有了些進步之
故.)” 「金庸作品集“三聯版”序」, ꡔ書劍恩仇錄ꡕ 上, 三聯書店, 2001. 5월 판, pp. 3-4
116) 金庸은 1994년 10월 29일에 진행된 북경대 강연에서 중국의 역사와 문명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때 金庸은 중국이 외족의 침략에 의해 모두 일곱 차례
중대한 위기에 놓인 적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 중 다섯 번째의 위기는 거란, 여
진, 서하 등이 침략했던, 五代에서 南北宋 시기까지 대략 4백년 간의 시기이고, 여
섯 번째의 위기는 몽고와 만주족에 의해 침략당했던 원, 명, 청의 시기이다. 金庸의
언급에 따른다면, 그의 작품들은 모두 중국의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의 위기 시기
를 배경으로 지어진 것이다. 북경대 강연에서 金庸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중국의
역사와 문명이 외래의 문명과의 충돌과 융합을 통해서 위기를 기회로 전화시켰고,
그런 의미에서 현 중국의 주된 정책이었던 개혁과 개방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부각
시키고, 이를 통해 중국이 이후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었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73
국인)의 핍박의 역사이다. 金庸은 자기의 역사를 피해자의 역사로 인식하며, 피
해자인 자아의 관점에서 역사를 반성하고 상상한다. 金庸 小說의 역사의 사고는
반성과 상상이 결합된 형태이다. 이 점은 그가 한족 국가 권력을 비판하고 부정
하며, 협객과 협객 집단으로 하여금 그들이 결여한 영도 능력을 확보하게 하는
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金庸은 중국 역사의 수난의 원인을 이민족 오랑캐에서 찾기보다는 한족 집권
세력에서 찾는다. 이민족 오랑캐가 적대적인 세력인 이유는 한족을 살상하고 유
린하는 그들의 잔혹성과 포악성 때문이며, 정치적, 역사적 차원에서의 그들의
존재는 그다지 부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金庸이 부정하고 비판하고자 하는
존재는 오히려 그들에게 침략의 빌미를 제공한 한족 집권 세력이다. ꡔ笑傲江湖ꡕ
와 ꡔ碧血劍ꡕ 등에서 드러나듯이117) 한족 국가 체계와 최고 권력자에 대한 불신
과 부정은 金庸의 역사관의 중심을 형성한다. 그들은 백성의 안위와 행복을 추
구하고 보장해야 되는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한 것에 대하여 金庸으로부터 질책
을 당한다. 이런 면에서 金庸의 역사에 대한 반성은 피해자로서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드러내고, 이러한 과거의 원인 제공자를 찾아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이
다.
그런데 金庸의 역사에 대한 사고는 반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역사에 대한 상
상과 결합한다. 어떤 의미에서 비판받고, 부정 당하는 한족 국가 권력은 金庸의
역사 상상의 희생물로 보이기도 한다. 金庸이 무협소설을 가지고 역사에 접근해
들어갔을 때, 이는 이미 예정된 것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金庸의 역사 상상이
강호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협객들이 활약하는 공간인 강호가 金庸 小
說에서 중국 전체로까지 확장되고 협객들이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때, 국가 체
117) 金庸이 주로 취한 시대적 배경이 송말 원초, 원말 명초, 명말 청초였던 까닭에 그
의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宋과 明의 漢族 王朝이다. 그 가운데서도 명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더욱 강하다. ꡔ笑傲江湖ꡕ에서 劉正風은 강호를 떠나 명의 관리
가 될 요량으로, 金盆洗手式을 거행한다. 하지만 그의 금분세수식은 강호를 떠나
관리의 길에 오르는 것을 수치스러워 하는 강호의 인사들에게 방해받고, 이 때문에 劉正風과 그의 식솔들은 비참한 결말을 맞는다. 또, ꡔ碧血劍ꡕ에서 명의 마지막 황
제 崇禎은 국가 위기 상황의 가장 근본적 원인 제공자로 지목된다. 즉 그는 간신배
의 손아귀에 놀아남으로써 袁崇煥과 같은 충신을 제거하고, 이는 끝내 한족의 강산
을 오랑캐의 손에 떨어지게 한 혼군이다. 이는 袁崇煥의 아들 袁承志가 淸 누루하
치을 살해할 기회를 잡고도 그의 심중의 말을 엿듣고 살해를 단념하는 것과는 완
전히 대조적이다. 즉, 백성들의 안위와 평화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金庸 小說에서
한족 왕조는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정권으로 비판받고, 부정당한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7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제와 권력은 강호의 주변부로 내몰릴 수밖에 없게 된다. 또 金庸이 민족 관념의
변화 여부와 상관없이 시종 한족과 이민족의 대립과 투쟁을 역사를 다루는 그
의 소설의 중심적 제재로 취한 것도 이 같은 사실과 연관된다. 金庸은 무협소설
과 강호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대결과 투쟁의 계기를 한족과 이민족의 대립
과 투쟁에서 찾은 것이다. 즉, 이는 金庸이 역사를 반성하고 사고할 때에도 무
협소설이라는 장르의 규정성을 벗어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戱說歷史’라는 金
庸 小說에 대한 袁良駿의 지적은, 비판과 폄하의 의미를 벗고 다시 재조명될 필
요가 있다. 무협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전제로 하며, 역사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고자 했던 金庸의 의도를 경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하며, 그것을 역사
를 다루는 金庸의 방식에 한정할 때, ‘戱說歷史’라는 지적은 상당히 정확한 개념
이다.
金庸이 역사에서 무협소설의 제재를 택한 것은 무협소설의 현실성 강화라는
의미 이상의 차원으로 발전한다. 그는 역사를 반성하고 상상하는 데까지 나아갔
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무협소설의 방식, 강호의 구축해내는 방식을 통해서 이
루어졌고, 따라서 이 점 때문에 그의 역사관과 역사를 다루는 방식은 비판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지지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金庸의 강호는 역사
에 대한 金庸 식의 해석 방식이며, 재구성 형태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에 대
한 평가에 앞서 그가 역사를 다루었던 방식을 세밀하게 살피는 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역사의 강호화’와 ‘강호의 역사화’라는 개념 하에 고찰할 것이다.
2) 歷史의 江湖化
陳墨은 金庸 小說을 ‘역사의 전기화(歷史的傳奇化)’와 ‘전기의 역사화(傳奇的歷
史化)’라는 말로 개괄하였는데, 이는 金庸 小說에서 歷史(사실)와 傳奇(허구)가
예술적으로 통일되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陳墨은 이를 통해 金庸 小說이 ‘진
실한 역사의 상황에 진입했으며’ ‘진실하고 깊이있는 역사의 의미를 갖게 된다’
고 평가하였다.118)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陳墨이 金庸 小說이 갖는 ‘역
사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金庸 小說의
‘역사적 의미’ 혹은 ‘역사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 평가어일 뿐이다. 그리고
118) 陳墨, ꡔ金庸小說之謎ꡕ, 金庸小說硏究系列, 百花洲文藝出版社, 1999. 5, pp. 111-112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75
이는 金庸 小說과 역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陳墨의 관심사가 ‘역사’에 기대어 金
庸 小說의 우수성을 부각시키는 데에만 한정되어 있음을 말해준다.119) 따라서
그의 작업은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공허할 뿐인데, 문제는 金庸 小說
이 역사와 허구를 통일시켰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그 둘을
결합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이 결합과 통일을 통해 金庸은 의식,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 그것은 또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면밀히 살피는 것
이다.
金庸이 무협소설을 통해서 중국의 역사에 대해 발언하려고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무협소설을 창작하면서 불가피하게 역사와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가 한족과 이민족 간의 대립과 투쟁을 무협소설의 주된 제재로
택함으로써 의도와는 무관하게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필자는 역사에 대한 그의 태도가 반성 혹은 성찰과 더불어 상상의 태도임을 말
하였고, 이는 그가 ‘무협소설을 통해서’ 역사와 대면했던 것과 관계되고 있음을
말하였다. 그는 역사를 무협소설식으로 재편하고 사고하였던 것이다. 그는 역사
를 강호로 다시 썼으며, 강호로서 역사를 상상하였다. 필자는 이를 ‘역사의 강호
화’와 ‘강호의 역사화’라는 말로 부르고, 해석하고자 한다. ‘역사의 강호화’란 金
庸이 무협소설식으로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을 의미한다면, ‘강호의 역사화’란 역
사를 대신하는 金庸의 강호가 스스로 독자적이고 완결적인 세계가 됨으로써 그
자체로 현실의 역사를 대신할 무게감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金庸의 뛰어난
점은 그가 상상한 세계가 실재했던 역사의 세계에 못지 않은 내적 연관성을 갖
는 세계라는 점, 또 이에 힘입어 金庸의 역사 상상이 실재 역사를 대체하거나
압도할 정도의 위력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역사의 강호화’와 ‘강호의 역사화’는 金庸 小說 속에서 상호 작용하며 상호
연관된다. 강호화된 역사는 강호에 사실성과 연속성을 부여함으로써 강호가 역
사화된 세계가 될 밑거름을 제공하며, 역사화된 강호는 자기의 생명력을 통해
역사의 강호화에 진실성을 부여한다. 이 둘은 상호 보완과 교류를 통해 金庸 小
說의 역사에 대한 상상을 강화시킨다. 하지만 이 둘은 ‘무협소설식의 역사 다루
기’와 ‘무협소설 세계의 역사화하기’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다른 역할과 작용을
119) 陳墨은 金庸 小說이 民間性, 民族性, 大衆性, 傳奇性, 英雄性, 藝術性 등 서사시의
성격과 특징에 부합되는, ‘특수한 형태의 서사시(特殊形態的史詩)’라고 주장한다. 그
의 관심사는 金庸 小說을 서사시와 연관시켜 그 가치가 일반적 무협소설 이상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陳墨, 같은 책, pp. 101-112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7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수행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 둘을 나누어 고찰하고자 한다.
필자의 ‘역사의 강호화’란 개념은 袁良駿이 ‘戱說歷史’라는 말로 지적한, 金庸
의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다. 다만 필자는 袁良駿이 내포한 비판과 폄하의 의미
를 배제하는데, 그것은 金庸이 무협소설을 가지고 역사를 다루고 있음을 인정하
기 때문이다. ‘역사의 강호화’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역사적 사실과 배경에
서 제재를 취한 무협소설 작품이 공히 취하는 방식인 셈이다.
金庸의 ‘역사의 강호화’는 크게 다음 세 가지의 구체적인 방식을 통해서 이루
어진다. 첫째, 협객의 부각과 역사적 사건의 배경화, 역사적 인물의 부속화 둘
째, 역사적 영웅의 신격화, 신화화 셋째, 야사 및 전설에 의한 정사의 대체 등이
다. 이는 역사가 金庸 小說에서 차용되는 방식이며, 또 한편으로는 역사가 강호
에 의해 대체되고 압도당하는 과정이다.
첫째, 협객의 부각과 역사적 사건의 배경화, 역사적 인물의 부속화
金庸이 朝代의 변환기이자 민족적 모순의 격화기를 배경으로 무협소설을 창
작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효과는 적지 않았는데, 그것은 다음 두 가지로 크게
요약된다. 하나는 국가적, 민족적 위기를 다룸으로써 국가, 민족 차원의 문제를
지적,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金庸 小說은 무협소
설의 시야를 무림의 일사를 넘어선 국가적, 민족적 차원으로 상승시켰던 것인
데, 이로써 金庸 小說은 단순히 오락적 차원에서만 읽히거나 해석되지 않고, 현
대 중국인들에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무협소설로 해석될 수 있었다. 金庸 小
說이 무협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와 비평가들에게 두루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민족 정신과 애국주의를 그 근저에 담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무협소설에 불가결한 폭력의 사용에 최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梁羽生은 무협소설에서 “‘俠’은 영혼이고, ‘武’는 몸통이며, ‘俠’
은 목적이고, ‘武’는 ‘俠’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俠”是靈魂, “武”是軀殼, “俠”是目
的, “武”是達成“俠”的手段.’)”120)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외부적으로는 무
협소설에 쏟아지는 폭력성에 대한 비판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며, 내부적으로는
무협소설 저질화에 대한 경고와 거리두기의 의미로 해석된다. 金庸은 한족과 이
민족의 갈등을 중심에 두고 이민족이 한족에 가한 무자비한 살상과 폭력을 부
각시킴으로써 주인공 협객의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였다. 한편 金庸이 무공과 초
120) 佟碩之, 「金庸梁羽生合論」, ꡔ金庸茶館 5ꡕ, 中國友誼出版公司, 1998, p. 218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77
식을 문학화, 심미화시킨 것 역시 폭력을 순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데, 이러한 두 가지를 통해 金庸은 무협소설의 폭력성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길을 연 셈이다.
이 두 번째의 효과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金庸은 역사적 사실을 취할 때 역
시 무협소설 창작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그가 민족적 위기 상황을
작품에 끌어들이면서도 그것을 역사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분석하고 사고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그의 소설에서 역사적 배경과 과제는 어떤 면에서
강호로 들어서기 위한 하나의 관문처럼 보인다.
ꡔ射鵰英雄傳ꡕ은 金나라 군사들의 횡포와 폭력, 宋나라 徽․欽․高宗의 부패와
무기력에 대한 분노의 표출로 시작된다. 이야기는 역사적 실존 인물인 丘處機의
등장으로부터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ꡔ射鵰英雄傳ꡕ의 두 중심인물인 郭靖과
楊康의 아버지들인 郭嘯天과 楊鐵心은 丘處機의 협행에 개입되어 목숨을 잃게
된다. 丘處機는 자신 때문에 화를 입게된 이 두 사람에 보답하기 위해 각기 아
이를 가진 그들의 부인들을 구하려고 하는데, 이 때문에 江南七怪와 오해가 생
겨 대결하게 된다. 결국 丘處機는 江南七怪에게 한 가지 대결 방식을 제안하게
되는데, 그것은 郭嘯天과 楊鐵心의 후손을 찾아 이들에게 각자의 무공을 전수하
고 18년 후 醉仙樓에서 그들로 하여금 대결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우열을 가
리는 것으로 삼자는 것이다. 이로써 이야기는 역사의 굴레를 벗어나 강호의 범
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郭靖이 ‘爲國爲民의 俠之大者’로 성장하는 것 역시
강호를 통해서이다.
이는 ꡔ碧血劍ꡕ의 袁承志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袁承志는 명말의 실존인물
袁崇煥의 아들이다. 袁崇煥은 당시 동북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만주족에 대
항하여 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崇禎皇帝의 불신으로 인하여 생을 마감하
게 된다. 袁承志가 강호에 나서는 것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闖王 李自成의 반란군을 만나 실제 역사와 조우하게 된다. ꡔ碧血劍ꡕ에
서 역사와 강호는 협객 袁承志에 의해 결합된다. 袁承志는 李自成의 반란군과
동조하는 한편, 金蛇郎君 夏雪宜와 溫家 집안 사이의 분규와 무림 맹주의 결정
등의 강호의 사건에도 개입한다. ꡔ碧血劍ꡕ의 이야기가 袁承志의 협으로서의 성
장 과정과 협행의 실행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됨으로써 역사는 강호화되고, 강호
속으로 흡수된다. 역사가 강호화되고, 주변화되는 것처럼 李自成, 李巖, 吳三桂,
崇禎皇帝, 누루하치 등 실존 인물들은 袁承志라는 협객의 주변에서 그와 관계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7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맺으면서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한다.
‘역사의 강호화’의 실례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ꡔ倚天屠龍記ꡕ에서
이다. ꡔ倚天屠龍記ꡕ는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무림의 명문 正
派인 六大門派와 邪派인 明敎의 대립이며, 다른 하나는 원에 대항해 새로운 한
족 국가를 건설하는 사건이다. 하나는 완전히 강호에 해당하는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에 해당되는 사건이다.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ꡔ倚天屠龍記ꡕ
역시 주인공인 협객 張無忌에 의해 역사와 강호는 조우하게 된다. 정파 출신의
아버지와 사파 출신의 어머니를 둔 張無忌가 六大門派와 明敎 사이의 대립과
투쟁에 휘말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소수와 약자인 明敎의 편에서
六大門派와 明敎 사이의 화해를 시도한다. 그런데, 張無忌가 明敎의 편에 서게
된 것은, 明敎가 정파인들의 오해 때문에 사파로 인식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明敎의 사람들이 抗蒙이라는 점에 있어서 명문 정파와 뜻을 같이하기 때문이기
도 하다. 金庸은 朱元璋, 徐達, 常遇春 등 명의 건국에 참여했던 인물을 모두 明
敎의 교도로 설정함으로써 역사를 강호화시킨다. 명의 건국이라는 대사건은 명
교를 이끄는 張無忌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강호의 협객 張無忌는 강호를
넘어서 중국 대륙을 관장하고 역사를 주재하게 되며, 이 순간은 역사가 강호화
되는 순간이며, 강호가 역사를 대체하는 순간이다.
무협소설에서 협객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협객의 존재 없이 무협소설
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또 무협소설이 담는 모든 염원은 협객들을
통해서 제기되거나 드러난다. 이는 金庸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金庸의 경
우에 협객들은 역사를 강호화시키기는 했지만 역사 그 자체를 배반하지는 못하
며, 이는 金庸이 처한 딜레마이다. 하지만 역사의 강호화의 최후의 귀결과는 상
관없이 협객의 존재는 역사의 강호화라는 金庸의 역사 다루기의 핵심에 존재하
며, 역사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金庸이 성찰과 반성 보다는 상상에 더 의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물론, 이 말은 金庸의 강호에 역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존재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협의 상상적 활동을 유발
시키는 동력이며, 金庸은 이 동력을 실존했던 역사적 영웅으로부터 얻어 협객에
게 전수한다. 이들 실존적 영웅들은 부차화되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강호의
근원적 열망으로 전화되며, 이것은 또 하나 ‘역사의 강호화’ 방식이다.
둘째, 역사적 영웅의 신격화, 신화화--岳飛와 袁崇煥의 예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79
역사를 다루는 金庸 小說에서 협객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체현하
는 민족정신이다. 金庸의 협객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인종적, 정치적 구성체의
이상적 대표이다. 따라서 ꡔ天龍八部ꡕ에서 金庸이 민족의 문제를 다시 사고하게
되면서 그가 대변하는 구성체는 인종적인 차원에서 정치적의 차원으로 변화하
게 된다. 즉, 역사를 다루는 초기의 소설들에서 金庸이 대변하고자 했던 것은
‘漢族’이었음이 분명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한족 중심주의적 사고에 매
몰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음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역사를 다루는 그의 방식이
역사를 상상하기는 하지만 역사적 사실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었던 까닭
때문이기도 하지만, ꡔ碧血劍ꡕ에서 袁承志가 청의 누루하치를 살해할 기회를 잡
고도 살해하지 않았던 것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金庸은 이미 정치적 차원에
서는 이민족의 실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다만 그것을 무협소설적으로 활
용했을 뿐이고, 또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초기작에서는 ‘한족’으로 형상화되는,
‘자기’ 혹은 ‘주체’였던 것이다. 그가 한족 정치 권력에 대해서 부정적 태도를 취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金庸은 한족 정치 권력을 대신하여 협객
을 상상하고, 이들로써 강호와 역사를 동시적으로 영도하게 만든다. 이때 또 하
나의 역사는 강호화되어 협객의 상상적 활동에 동력을 제공한다.
그 역사는 이미 실존하지 않는 역사이며, 자신들에 의해 훼멸된 비극적 역사
이다. 즉, 岳飛와 袁崇煥은 ꡔ射鵰英雄傳ꡕ과 ꡔ倚天屠龍記ꡕ, ꡔ碧血劍ꡕ에서 강호에
재등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이념이자 정신의 형태이며, 따라서 그들은
‘부재의 존재(缺席的在場)’의 방식으로 존재하며121), 그들의 존재는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환기시킨다.
岳飛와 袁崇煥은 민족을 대표하여 이민족의 침탈에 끝까지 대항했던 영웅적
실존인물이며, 또 그 때문에 같은 민족의 성원에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 인물
이다. 그들의 죽음은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졌고, 그들의 정신은 다음 세대의 협
객에게 이어진다.
ꡔ射鵰英雄傳ꡕ과 ꡔ倚天屠龍記ꡕ에서 한족의 민족 정신을 일깨우고, 민족을 수호
하고 강산을 되찾을 수 있는 힘은 岳飛로부터 나온다. 岳飛는 강호의 인사들에
게 숭배되는 것뿐만 아니라 신격화되고, 신화화된다. 이 신격화와 신화화는 岳
飛가 남겼다는 가상의 병서인 武穆遺書를 통해 이루어진다. 武穆遺書는 岳飛의
현신과 다름없다. 이 병서는 중국의 강산을 지켜낼 혹은 차지할 수 있는 엄청난
121) 宋偉杰, ꡔ從娛樂行爲到烏托邦衝動-金庸小說再解讀ꡕ, 江蘇人民出版社, 1999. 9, p. 99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8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위력을 가지고 있다. ꡔ射鵰英雄傳ꡕ에서 金國의 태자 完顔洪烈이 무사들을 이끌
고 南宋으로 잠입한 것은 武穆遺書를 얻기 위해서이다. 이 병서를 얻는다는 것
은 중원을 손에 얻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武穆遺書는 郭靖만이 얻
을 수 있었고, 그로써 그는 ‘爲國爲民의 俠之大者’로서 襄陽城에서 끝까지 몽고
군에 대항해 싸우게 된다.
또 武穆遺書는 ꡔ倚天屠龍記ꡕ에서 재출현하여 張無忌로 하여금 원군에 대항한
전투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하고, 명의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ꡔ倚天屠龍記ꡕ에서 倚天劍과 屠龍刀를 차지하기 위한 무림 고수들의 각축
은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인데, 이 倚天劍과 屠龍刀에 붙은 “武林至尊 屠龍寶刀
號令天下 莫敢不從(무림의 지존 도룡도가 천하를 호령할 것이니 누구도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倚天不出 誰與爭鋒(의천검이 출현하지 않으
면 무엇과 위력을 다투리오)”이라는 말은 무림의 고수들이 이해하듯이 이것을
얻으면 무림의 최고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倚天劍과 屠龍刀 속에
武穆遺書와 九陰眞經, 降龍十八掌이 숨겨져 있어 이를 얻는 자가 오랑캐의 손아
귀로부터 한족의 강산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金庸의 袁崇煥에 대한 신화화는 ꡔ碧血劍ꡕ 자체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ꡔ碧血
劍ꡕ의 뒤에 덧붙여진 ꡔ袁崇煥平傳ꡕ에서 이루어진다. 岳飛가 이미 공인된 민족적
영웅의 이미지를 확보하였다면, 袁崇煥의 그것은 金庸의 발견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ꡔ碧血劍ꡕ은 신화화된 袁崇煥에 대한 앙모와 숭배를
바탕으로 삼아 창작되었다. 金庸에 의하면, 袁崇煥은 명말 만주족이 동북에서
세력을 확장하면서 명의 영토를 잠식해가던 때 동북 지역의 방비를 맡은 최고
책임자였다. 하지만 그의 세력 확장을 의심한 崇禎의 무지와 편협함으로 인하여
모반의 죄명을 뒤집어쓰고 처형당하게 된다. 金庸은 ꡔ碧血劍ꡕ에서 袁承志를 袁
崇煥의 유복자로 설정하여 袁崇煥의 한과 정신을 계승하게 한다. 袁承志가 강호
로 나서면서 李自成의 反明 起義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게 되는 이유는, 직접적
으로는 아버지를 무고하게 죽게 한 崇禎皇帝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복수가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부패한 왕
조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라는 명제와 결합하면서 ꡔ碧血劍ꡕ이 포괄하는 시야는
국가와 민족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된다.
명 왕조에 대한 金庸의 평가는 신랄하기 그지없는데, 그에게 있어 ‘명조는 중
국 역사상 가장 전제적이고, 가장 부패했으며, 통치자도 가장 폭악적이었던 朝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81
代이며, 명말에 이르러서는 중국 수 천년 중에 가장 암흑적인 시기 중의 하
나’122)이다. 金庸이 이렇게 明에 대해서 비난하고 분노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崇禎皇帝의 나약함과 무지함, 무책임 때문이다. 이는 ‘후세에 평론가들이
대부분 袁崇煥이 죽지 않았다면 淸이 중국을 정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면서 그가 ‘崇禎이 황제로 있는 한에서 袁崇煥이 아무리
큰 능력을 가졌더라도 기본적 국면을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
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123) 그에게 있어서 袁崇煥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적
영웅과 다름없다.124) 袁崇煥은 무능한 정치 권력의 비극적 희생자이고, 따라서
무능한 정치 권력에 대한 울분과 분노를 회상케 하는 상징물이다. 金庸은 ꡔ袁崇
煥平傳ꡕ의 맨 마지막을 崇禎 2년 음력 섣달 북방의 상황을 소설적으로 재현한
다. 이때는 袁崇煥이 북경의 외곽에서 청 누루하치의 북경 진공에 맞서다 모반
죄로 감금당하는 때이다. 오랑캐에게 핍박당하는 백성들의 모습, 袁崇煥에게 철
수한 부하들에게 다시 돌아와 북경을 지키게 하라는 편지를 쓰도록 강요하는
신경질적인 어린 황제, 차디찬 감옥에서 부하에게 편지를 쓰는 袁崇煥의 심경에
대한 추측, 이를 받아들고 서러움에 북받치는 부하 장수의 모습, 이러한 끝맺음
은 실재하는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면서도 袁崇煥을 신화화시키는 ꡔ袁崇煥平傳ꡕ
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비극적 영웅으로서의 袁崇煥의 이미지는
ꡔ碧血劍ꡕ에서 그대로 차용된다. 그리고 袁崇煥에 대한 앙모는 漢人으로서의 자
괴감과 민족적 치욕에 대한 극복의 열망으로 전화된다. 하지만 ꡔ碧血劍ꡕ에서 이
러한 극복의 열망은 실현되지 못한다. 명의 수도를 함락시킨 李自成 군대의 변
질과 한인 吳三桂에 의한 청군의 중원 입성은 한족의 비극을 재연하는데, 이로
서 비극적 영웅으로서의 袁崇煥의 이미지는 한층 심화된다.
셋째, 野史 및 傳說에 의한 正史의 대체
金庸의 첫 번째 소설이자 이후 그의 창작의 추형이 되는 ꡔ書劍恩仇錄ꡕ의 이
야기는 하나의 전설에 근거한다. 이 전설은 金庸의 고향 海寧에서 전해오는 민
122) 明朝是中國歷史上最專制․最腐敗․統治者最殘暴的調帶, 到明末更成爲中國數千年中
最黑暗的時期之一. 「袁崇煥平傳」, ꡔ碧血劍ꡕ 下, 三聯本 金庸作品集 第4卷, p. 791
123) 後世的評論者大都認爲, 袁崇煥如果不死, 滿淸不能征服中國. 我以爲這種說法是不對
的. 只要崇禎是皇帝, 袁崇煥便有天大的本事也改變不了基本局面. 「袁崇煥評傳」, 앞의
책, p. 792
124) 「袁崇煥平傳」, 위의 책, p. 684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8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간 전설인데, 乾隆皇帝가 海寧 출신 한인 고관인 陳世倌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乾隆의 아버지인 雍正이 아직 황태자의 임명을 받지 못하고 있을 때, 후사가 있
는 것이 다른 형제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함을 알고 자신의 딸을 한날 한시에 태
어난 陳世倌의 아들과 맞바꿔치기하였는데, 바로 이 한인 관료 陳世倌의 아들이
훗날의 乾隆皇帝이라는 것이다. 乾隆이 漢人이라는 전설은 金庸이 밝히고 있듯
이 역사학자 孟森에 의해 믿을 수 없는 것임이 고증되었지만125), ꡔ書劍恩仇錄ꡕ
에서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 陳家洛은 反滿滅淸을 기치로 삼
는 紅花會의 總舵主인데, 그는 바로 陳世倌의 둘째 아들이다. 乾隆이 자신의 형
이며, 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陳家洛은 건륭을 설득하여 새로운 한족 국가
의 황제로 등극하기를 권유하고, 乾隆은 紅花會에 인질로 잡힌 상태에서 陳家洛
과 이를 피로써 맹세하지만 결국 그를 배신하고, 紅花會를 섬멸하려 한다. 이렇
게 ꡔ書劍恩仇錄ꡕ은 민간의 전설을 채취하여 그 허구적 세계를 구성하게 되는데,
역사 속에서 명군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乾隆은 金庸에 의해 신랄하게 풍자된
다.126)
ꡔ書劍恩仇錄ꡕ이 민간의 전설에서 모티프를 찾았다면, ꡔ碧血劍ꡕ, ꡔ雪山飛狐ꡕ,
ꡔ飛狐外傳ꡕ, ꡔ鹿鼎記ꡕ 등 李自成의 난을 작품의 주요한 모티프로 삼는 작품들은
李自成의 최후에 관한 여러 가지 설을 바탕으로 구성된다. 李自成은 자금성 입
성 후 애초 명에 저항하여 기의를 일으켰던 初心을 잃게 되고, 스스로를 황제라
고 칭하는 등 백성 위에서 군림하는 또 하나의 권력자의 모습으로 변질된다. 이
때 吳三桂는 청의 힘을 빌어 李自成을 몰아낼 심산으로 山海關을 열어 청나라
의 군대를 중원으로 끌어들이는데, 이로써 중국의 강산은 청의 손아귀에 들어가
게 된다. 이후 李自成은 湖北省의 九宮山에서 죽었다는 설과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 등으로 죽음이 확실시된다.127) 하지만 金庸의 小說은 이 역사
적 추측을 비틀어 李自成을 부활시킨다. ꡔ雪山飛狐ꡕ에서 金庸은 湖北의 九宮山
에서 목숨을 잃을 처지에 놓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李自成이 그의 衛士
인 飛天狐狸의 지략 덕분에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飛天狐狸는 李自
成과 비슷한 체구를 가진 병사의 시체를 구해 李自成의 죽음을 가장하고 李自
成을 피신시켰다. 이후 李自成은 石門縣의 夾山 普慈寺에서 출가하였고, 奉天玉
125) (ꡔ書劍恩仇錄ꡕ의) 後記, ꡔ書劍恩仇錄ꡕ, 三聯本 金庸作品集 第2卷, p.806
126) 위의 글, 같은 책, pp. 806-807
127) ꡔ明史ꡕ 卷三百九, 「列傳第一百九十七」, p. 7968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83
을 자신의 법명으로 삼았다. 奉天玉이란 李自成이 반란을 도모할 때 ‘奉天倡義
大元帥’라고 칭해졌는데, 奉天王이란 법명을 쓸 수 없어서 王 자에 점을 가하여
玉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후 李自成은 康熙 甲辛 二月 7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것이 金庸이 만들어낸 李自成의 또 다른 삶이다.128)
ꡔ雪山飛狐ꡕ에서 죽음을 모면한 李自成은 ꡔ鹿鼎記ꡕ에서 다시 출현한다. 그는
吳三桂가 平西王으로 봉해진 雲南으로 숨어 들어와 陳圓圓을 만나게 된다. 陳圓
圓은 金庸에 의해서 나라를 망치는 여인으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그녀는 崇禎의
애첩이었다가 李自成이 북경을 함락한 후 李自成의 노리개가 되었는데, 金庸은
그녀의 미모에 반한 吳三桂가 山海關을 열어 청군을 중원으로 끌어들인 것은
바로 陳圓圓을 李自成에게서 빼앗기 위해서라고 서술하고 있다. ꡔ鹿鼎記ꡕ에서
李自成은 吳三桂의 부인이 된 陳圓圓을 다시 만나 밀회를 가지게 되고, 이렇게
해서 태어난 이가 뛰어난 미모로 韋小寶의 애간장을 태우는 阿珂이다. 李自成은
陳圓圓과 阿珂를 위해 다시 강호로 들어서고, 그는 이후 李西華라고 하는 天地
會 소속의 청년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ꡔ碧血劍ꡕ에서 李自成을 위해 싸우다 결
국 李自成에게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李巖과 그의 부인 紅娘子의 아들
이다. 李西華를 만나 가책을 느끼게 된 李自成은 강물로 뛰어들어 사라지는데,
이로써 ꡔ鹿鼎記ꡕ에서 李自成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李自成의 죽음에 관련된 野史, 그리고 李自成-吳三桂 사이의 野史的
서술은 ꡔ碧血劍ꡕ, ꡔ雪山飛狐ꡕ, ꡔ鹿鼎記ꡕ 등에서 주요한 대목을 차지하게 된다.
즉 정사에서 묻혀졌거나 야사로 인식되는 이야기가 강호에서는 주목할만한 사
건으로 새롭게 구축된다. 강호는 이렇게 역사의 뒤를 이어 스스로 재창조되는
셈이다.
원래의 의도가 어떠한 것이었든 金庸은 무협소설에 역사를 끌어들임으로써
중국의 과거 역사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가한 셈이다. 그것은 ‘戱說歷史’라고 비
판을 받기도 하고, ‘새로운 형태의 서사시(特殊形態的史詩)’로 칭찬받기도 하는
데, 문제는 金庸의 역사에 대한 해석이 단지 해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
로운 역사를 상상한다는 점이다. 그 상상은 ‘역사의 강호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강호의 역사화’를 통해 보다 구체화된다. 金庸은 강호
를 자립적이고 완결적인 세계로 구성함으로써 실제 역사를 대체할 상상의 역사
의 구축을 시도한다.
128) ꡔ雪山飛狐ꡕ 三聯本 金庸作品集 第13卷, pp. 113-115 참조.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8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3) 江湖의 歷史化
金庸의 강호는 역사를 강호화함으로써 자신의 대체적 존재 방식을 확보하는
한편, 자기의 생명과 질서를 가짐으로써 허구적 상상 속에서 현실적 세계를 대
체할만한 능력을 구비하게 된다. 金庸의 강호가 현실 세계를 대체하고, 나아가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을 압도하는 위력을 행사하는 것을 필자는 ‘강호의 역사
화’라 부르고자 한다. 실재와 역사와의 관계는 많은 역사학자와 철학자들의 관
심사였다. 실제의 구성은 역사적 서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관점129)은 필자가
논지를 펼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지지점이 된다. 이 역사의 서술 과정과 방식
즉 역사화 과정을 통해 평면적인 사실들은 생명과 질서를 부여받게 되고, 하나
의 정체적 실체로 현현한다. 즉 역사화의 행위는 맥락화를 통해서 대상의 사물
에 생기를 불어넣는 과정이며, 이렇게 생기를 부여받은 대상의 사물은 원실재에
서 탈피하여 또다른 실재로 등장하게 된다.
역사로부터 민족의 대립, 무림의 쟁투, 사랑과 증오 등을 채취하여 스스로의
구성을 갖춘 金庸의 강호는 자신의 역사화를 통해 현실 세계와는 독자적인 하
나의 완결한 자기 생명을 갖추는데, 이 강호의 역사화 과정은 두 가지의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강호를 그 나름의 질서와 조직으로 재편해는 것이
고, 다른 하나는 강호라는 현재적 양태가 존재하게 되는 역사적 맥락을 형성하
는 것, 강호 자체에 나름의 역사를 부여하는 것이다.
첫째, 강호의 질서와 조직 구성
金庸 小說에서 중국의 실재 정치 권력과 집권층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특히
한족 국가의 집권층에 대한 분노와 불만은, 그가 청대 이민족 황제에 대해 동정
적이고,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이는 한족
의 정치 권력과 집권층이 국가와 민족의 안위에 신경쓰지 않아 조국의 강산이
이민족에게 침탈당하고, 백성들이 이민족의 핍박과 폭력에 신음하게 되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의 무협소설 쓰기는 민족적 아픔과 상처를 확인하고, 이
에 대해 상상적으로 대응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때 상상적 대응은 기존 역사
서술이 확인하고 정식화시킨 역사적 결과에 의지하면서 그 역사적 세부를 재조
129) Hayden White, “The Value of Narrative in the Representation of Reality”, The Content
of the Form,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7 참조 바람.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85
정하고 재구성하는 것, 혹은 역사적 사건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 조합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앞에서 예들을 통해 살펴보았다.
한족 집권층에 대한 분노와 비난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것 또한 역사에 대
한 상상적 대응의 일환이다. 그래서 金庸은 협객 집단을 내세워 실재 정치 집권
층에 의해 발생한 비극과 환란에 대응하게 한다. 이들 협객 집단은 金庸의 小說
속에서 ‘상상적’ 정치 대리 집단이다. 이들의 출현은 중국 대륙에 존재했던 실재
정치 조직과 집단을 일소한다. 실재 한족의 정치 집권층은, 오랑캐라고 불리는
이민족의 존재와 함께 극복되거나 대체되어야 할 대상으로서만 기능하는 셈이
다.射雕三部曲에서 金의 위협과 전횡, 蒙古의 세력 확장과 중국 지배, 元에 대한
저항과 明의 건국 등의 사건에 개입하여, 이민족에 저항하거나 한족 국가 재건
에 앞장서는 이들은 모두 무림의 인사들이다. 물론 이 무림의 인사들이 오로지
이러한 국가와 민족의 대사에만 온 정력을 투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강호
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 무림 맹주의 결정, 강호의 분규, 무림비급과 보물의
쟁탈전 등에도 참여한다. 역사가 강호화되면서 중국 대륙 또한 강호화되는데,
따라서 이 무림의 인사들은 강호라는 규정 아래에서 중국 대륙을 재편하고 조
직한다.
ꡔ射鵰英雄傳ꡕ에서 강호를 분할하고 재편하는 이들은, 제1차 華山論劍에 참여
했던 무림의 고수들이다. 이들은 동․서․남․북․중이라는 공간적 축도에 따라
현신하는데, 東邪 黃藥邪, 西毒 歐陽鋒, 南帝 一燈大師, 北丐 洪七公, 中神通 王
重陽 등의 편재는 이들의 역학 관계이며, 강호의 세력 판도이자 중국 대륙의 존
재 모습이다. 이들 사이의 공모와 결탁, 분리와 대립 등은 宋을 위협하는 金과
의 관계 양상, 武穆遺書와 九陰眞經이라는 무림비급의 쟁탈이라는 사건에 따라
반복되고 지속되면서 강호화된 역사의 편장을 채운다. 그리고 이들의 조직과 편
재는 ꡔ神鵰俠侶ꡕ에서 사건들의 대체적 종결과 더불어 전승되고 교체된다. 이러
한 전승과 교체는 1차 華山論劍 이후 25년 만에 다시 치러지는 2차 華山論劍에
참여한 무림 고수와 인사들의 합의에 따라 결정된다. 이렇게 해서 중국 대륙은
강호인들의 합의와 결정에 따라 東邪 黃藥邪, 西狂 楊過, 南僧 一燈大師, 北俠
郭靖, 中玩童 周伯通의 조직과 편재로 재구성된다.
ꡔ倚天屠龍記ꡕ의 강호 조직과 편재는 강호인들에게 사파로 규정된 明敎 집단
과 정파를 자처하는 육대 문파로 크게 대표된다. 그리고 6대 정파는 무림의 양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8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대 산맥인 少林과 武當, 그리고 峨嵋, 昆侖, 崆峒, 華山으로 이루어진다. 명교와
육대 문파는 항몽이라는 공통의 과제와 염원에도 불구하고, 惡人 成昆의 계략에
빠져 대결전을 치르게 되는데, 이로써 중국은 한인과 몽고족의 대립, 한인의 내
부적 대립의 양상을 띈다. 그리고 이 대립은 武當의 제자 張翠山과 邪派 출신
殷素素 부부의 아들인 張無忌에 의해서 해소된다. 허락될 수 없는 정파인과 사
파인의 결합의 소생인 張無忌는 정사 양측의 계승자이며 동시에 중개자이다. 그
는 수세에 몰린 명교를 구하기 위해 명교 교주의 신분을 받아들이고, 명교와 정
파 사이의 오해와 갈등을 제거하는 동시에, 명교인으로 상정된 朱元璋, 徐達, 常
遇春 등 역사 인물들을 지휘하여 명을 건국할 기틀을 만든다. 명이라는 한족 국
가 건설의 주체는 강호의 영수인 張無忌와 그가 지휘하는 강호인들이다. 특히
명교는 左右光明使, 四大法王, 五散人, 五行旗(朱元璋과 徐達은 五行旗 중의 하
나인 厚土旗 소속이다) 등과 그 소속의 여러 조직과 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이
런 조직과 체계는 그들이 원과 대립하여 승리를 획득할만한 정치적 지도력과
물리적 역량을 동시에 갖춘 수권 세력임을 증명한다.
ꡔ笑傲江湖ꡕ에 등장하는 日月神敎 역시 明敎에 버금가는 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다. 교주 아래 여러 고수급 인사와 百藥門, 五仙敎, 天河帮 등의 支流 幇派와
수많은 敎衆이 日月神敎의 위세를 가늠하게 한다. 日月神敎의 교주 任我行은 吸
星大法이라고 하는 자신의 절세 무공과 휘하의 고수, 방파를 이용하여 무림맹주
의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千秋萬載, 一統江湖’의 구호는 강호를 평정하려는 그
의 야심을 드러낸다. 무림 맹주라는 허욕에 사로잡히기는 五嶽劍派의 掌門人들
도 마찬가지인데, ꡔ射鵰英雄傳ꡕ에서 東․西․南․北․中으로 조직되었던 강호는
다시 중국의 五嶽 즉 華山, 崇山, 恒山, 衡山, 泰山에 근거한 劍派들로 재구성된
다. 권력에 대한 탐욕의 위해와 허망을 조롱하는 ꡔ笑傲江湖ꡕ에서 무림 맹주라는
지위는 절대 권력의 상징인데, 강호는 이 절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공간이 된
다. ꡔ笑傲江湖ꡕ는 권력에의 욕망과 절대 권력의 폐해를 지적함으로써 일부의 비
평가들로부터 文革에 대한 조롱과 풍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130), 구체적
역사의 현장에서 빠져나온 ꡔ笑傲江湖ꡕ는 권력 일반에 대한 맹목적 추구의 내용
을 주된 이야기로 채택함으로써 삶에 관한 하나의 寓言으로 읽힌다. 단편적 이
야기를 통해 삶의 본질과 가치를 우회적으로 지적하고 암시하는 寓言과의 등치
130) 특히 日月神敎의 “千秋萬載, 一統江湖”의 구호는 文革의 개인 숭배에 대한 비꼼이
라고 보는 연구자들이 많다. 하지만 金庸은 이에 대해서 수 천년 중국 역사에서 보
편적으로 발견되는 오류에 대한 지적일 뿐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87
는 ꡔ笑傲江湖ꡕ의 강호를 삶의 일반적 풍경으로 인식시킨다. 日月神敎, 五嶽劍派,
少林과 武當, 昆侖, 丐幇 등의 집단이 구성하고 있는 강호는 중국 대륙이라는
구체적 공간을 넘어서 세속의 삶으로 지칭되는 현실 세계 전체를 지시하게 된
다.
이런 방식의 강호의 조직과 재편은 강호가 중국 대륙 혹은 실제적 삶의 대리
양상으로 화하게 한다. 이로써 강호는 비록 축약적이긴 하지만 삶의 한 대리 양
식으로써 자기 존재 의미를 획득한다.
둘째, 무림비급에 새겨진 강호의 역사
陳平原은 金庸의 무협소설이 文과 武를 겸비했다는 점에서 무협소설의 폭력
성 등을 상쇄하고 문화서로서의 성격을 획득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金庸이 내공
을 무협소설에 끌어들였고, 주인공의 무공의 획득이 무림비급과 같은 文類를 통
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131)
金庸의 무협소설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무림비급은 九陰眞經, 九陽眞經, 辟
邪劍譜, 葵花寶典 등이다. 보통 무협소설에서 무림비급은 강호의 분규에 원인을
제공하는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고, 강호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권위이다.
무림비급이 사라진 강호는 권위와 질서가 부재한 혼란의 세계인데, 사라진 무림
비급의 재출현은 강호의 무질서를 종식시킬 재조정의 시작을 의미한다. ꡔ射鵰英
雄傳ꡕ, ꡔ倚天屠龍記ꡕ, ꡔ笑傲江湖ꡕ에서 무림비급의 재출현과 무림 고수 사이에서
벌어지는 쟁탈전은 질서가 사라진 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과정이
다. 그런데, 金庸 小說에서 무림비급은 강호의 질서를 의미하는 상징이자, 권위
인 동시에 강호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강호의 역사서이다. 무림비급을 손에 얻는
것은 현재화된 강호의 맹주가 되는 것, 그래서 강호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인데,
이것은 바로 강호의 역사 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강호라고 하는 세계에서 역
사적 정통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한편, 무림비급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쟁탈전은
강호의 현재이고, 무림비급을 통해서 강호의 과거와 현재는 서로 연관을 맺게
된다.
ꡔ射鵰英雄傳ꡕ에서 九陰眞經은 무림 최고의 무공이고, 강호 분란의 원인이다.
1차 화산논검에서 東邪, 西毒, 南帝, 北丐, 中神通이 무공을 겨뤄 무림 최고수를
131) 陳平原, 「武俠小說中的“劍”」, ꡔ文學史的形成與建構ꡕ, 廣西敎育出版社, 1999, pp.
215-21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8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가리고자 한 이유는 九陰眞經 때문이다. 그들은 무림의 최고수가 九陰眞經을 차
지하기로 언약하였고, 이 論劍에서 中神通 王重陽이 승리함으로써 九陰眞經은
그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王重陽은 九陰眞經이 이후 강호에 커다란 재난을 불
러일으킬 것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없애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의 뜻은 이루
어지지 못하고 九陰眞經은 다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원래 九陰眞經은 達摩祖師
가 중국으로 들어와서 중원의 무사들과 技藝로써 승부를 가리기 위해 9년 동안
의 면벽을 통해서 깨우친 무학의 정수를 적은, 무학 제일의 奇書이다. 이후 九
陰眞經은 간혹 강호에 출현하거나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그것이 강호에 출현
하게 되면 무림의 인사들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죽고 죽이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王重陽이 九陰眞經을 없애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ꡔ神鵰俠侶ꡕ의 끝에 출현하고, ꡔ倚天屠龍記ꡕ에서 중원 최고 무림비급으로 일컬
어지는 九陽眞經도 달마조사가 창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張君寶(武當의
창시자 張三豊의 어릴 적 이름)는 九陽眞經을 만든 이가 달마조사가 아닐 것이
라고 추측한다. 처음 천축의 문자로 쓰인 九陰眞經과는 달리, 九陽眞經은 천축
문으로 쓰인 凌枷經의 행간에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張君寶는 천축 사람인
달마조사가 중원의 글자에 통달하지는 못했을 것이니 뜻이 심오한 九陽眞經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고, 후세에 무예에 뛰어난 少林의 高僧이 써서 달마조사의
이름을 빌어 능가경 속에 기록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楊過와 郭襄, 覺遠大師
의 도움으로 九陽眞經을 반쯤 익혔던 張君寶는 이후 道學에 심취하게 되어 以
柔克强의 원리를 깨달아 少林과 더불어 中國 武學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는 武
當派를 창시하게 된다.
少林의 武學을 창시했다고 하는 達摩師祖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九陰眞經
과 九陽眞經은 탄생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강호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데, 射雕
三部曲은 九陰眞經과 九陽眞經이라는 최고의 무림비급과 관련된 역사이다. ꡔ射
鵰英雄傳ꡕ, ꡔ神鵰俠侶ꡕ, ꡔ倚天屠龍記ꡕ를 射雕三部曲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각
각의 작품들이 독자적인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음에도 이 작품들이 전후의 연관
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南宋의 末에서 시작하여 明初까지 이어지는 시간에
서 전개되는 射雕三部曲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東․西․南․北․中으로 조직,
편재된 강호가 ꡔ射鵰英雄傳ꡕ과 ꡔ神鵰俠侶ꡕ에서 계승되고 있는데, ꡔ射鵰英雄傳ꡕ
에서 등장하는 주요한 인물들은 빠지지 않고 ꡔ神鵰俠侶ꡕ에서도 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ꡔ神鵰俠侶ꡕ는 ꡔ射鵰英雄傳ꡕ의 후편의 성격인데, 물론 ꡔ神鵰俠侶ꡕ에서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89
는 楊過와 小龍女의 사랑이 작품에서 주요한 이야기거리로 존재한다. ꡔ神鵰俠
侶ꡕ의 끝 부분은 九陽眞經의 행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ꡔ倚天屠龍記ꡕ의
존재를 암시한다.
九陽眞經의 존재 이외에 ꡔ神鵰俠侶ꡕ와 ꡔ倚天屠龍記ꡕ을 연관시키는 중요한 단
서는 역시 九陰眞經이라고 할 수 있다. 黃蓉은 郭靖과 함께 襄陽城에서 원에 저
항하다가 장엄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 그녀는 元에 의한 宋의 멸망이라는 대세
를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 倚天劍과 屠龍刀를 주조하여 무학의 최고 경지인
九陰眞經과 최고의 병법서인 岳飛의 武穆遺書를 그 속에 감추어둔다. 그녀의 뜻
은 후세의 영웅이 나타나 倚天劍과 屠龍刀 속에 감추어진 九陰眞經과 武穆遺書
를 얻음으로써 중원에서 원을 몰아내게 하기 위함이었다. ‘武林至尊 屠龍寶刀
號令天下 莫敢不從 倚天不出 誰與爭鋒’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암시하
는 것인데, 후세 무림의 인사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屠龍刀를 차
지하는 자가 강호의 최고수가 된다는 의미로만 해석하여 屠龍刀를 얻기 위한
쟁탈전을 벌인다. 倚天劍을 전수받은 黃蓉의 딸 郭襄은 이후 峨嵋派를 창시하는
데, 이후로 倚天劍과 屠龍刀에 얽힌 비밀은 峨嵋派의 장문인들에게만 전해진다.
결국 ꡔ倚天屠龍記ꡕ의 주인공 張無忌는 倚天劍과 屠龍刀를 얻을 뿐만 아니라 그
에 관한 비밀까지 알게 되어 중원에서 元을 몰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즉 張無忌는 九陰眞經, 九陽眞經, 武穆遺書를 모두 얻게 되었고, 이로써
그는 射雕三部曲의 이야기를 종결짓게 된다.
射雕三部曲에서 九陰眞經과 九陽眞經, 그리고 武穆遺書 등은 이야기 속에서
세 가지 역할을 하는데, 첫 번째는 이야기가 시작되기 이전 강호의 역사를 밝힘
으로써 그것을 현재의 강호와 연결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그것들을 둘러싼 쟁탈
전의 양상으로 진행되는 강호의 현재를 구성하는 것이고, 셋째는 射雕三部曲
속 이야기 시간 속의 강호를 역사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射雕三部曲의 이야기
는 하나의 역사를 가짐으로써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세계를 구성하게 된다. 射雕
三部曲을 구성하는 ꡔ射鵰英雄傳ꡕ, ꡔ神鵰俠侶ꡕ, ꡔ倚天屠龍記ꡕ는 각각이 하나의
완결된 성격을 가지는데, 이 각각의 완결성은 상호의존을 통해 강화된다.132) 그
132) 金庸 小說의 각 작품들 간의 상호의존은 金庸 小說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
를 갖는다. 射雕三部曲의 예 이외에도 ꡔ書劍恩仇錄ꡕ은 ꡔ雪山飛狐ꡕ, ꡔ飛狐外傳ꡕ과
서로 연결되며, ꡔ碧血劍ꡕ은 ꡔ鹿鼎記ꡕ와 서로 연결되고 있다. 물론, 射雕三部曲에 비
하면 이들 간의 연결과 상호의존은 비교적 느슨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
구하고 이 작품들은 상호 연결과 의존을 통해서 각각의 ‘강호의 존재’적 사실성을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9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리고 이 세계들을 연결시키고, 질서화하는 것은 무림비급의 존재이다.
강호의 역사는 九陰眞經 등의 무림비급을 통해서 구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무
림비급은 강호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강호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
요한 사실은 이 강호의 역사가 원래부터 존재했던 역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金
庸의 九陰眞經 등 무림비급에 대한 상상은 강호의 역사를 구성하게 한다. 그래
서 이 강호의 역사는 상상적으로 구성되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상상적으로
구성된 강호의 역사는 실제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되고, 언
제나 실제의 역사를 대체할 역량을 갖추게 된다.
4) 金庸의 역사 상상의 딜레마
金庸은 ‘역사의 강호화’와 ‘강호의 역사화’를 통해 과거 중국의 역사를 반성하
고, 이를 대체할 강호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이렇게 구축된 강호는 상상적이나
마 역사를 대체할 충분한 요건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金庸은 여기서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역사로 어떻게 귀환하느냐의 문제이다.
역사에서 시작하여 강호로 나아간 金庸 小說은 다시 역사로 돌아가야 하는 운
명에 놓였고, 그것은 金庸에게 있어 곤혹스러움이 아닐 수 없었다. 金庸이 다시
돌아가야 하는 역사의 시간은 여전히 이민족에 의한 핍박의 시간이었다. 그는
역사를 반성하고 상상하였지만 실재의 역사를 뒤바꾸지는 못하였다. 역사에서
시작된 金庸 小說의 결말이 대단원을 맞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역사와는 무관한 강호의 이야기인 金庸의 다른 작품들, ꡔ雪山飛狐ꡕ, ꡔ連城
訣ꡕ, ꡔ俠客行ꡕ, ꡔ笑傲江湖ꡕ 등의 결말과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이
작품들은 숨겨진 보물과 돈, 무림비급의 해석, 무림 맹주의 쟁탈 등이 이야기의
중심적 내용이 된다. 金庸은 허구적 사건과 인물들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자
유로웠듯이 그들의 결말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자유로웠고, 따라서 그 결과
이 소설들은 비교적 짜임새 있는 대단원을 갖추게 된다. 즉, 원래 이 소설의 이
야기에 있어서 중심적 사건들, 그리고 중심적 욕망과 염원은 어떤 방식으로든
강화하며, 나아가서는 ‘강호’라는 세계로 하여금 현실의 복잡한 인과관계를 모방하
게 함으로써 그 자체가 하나의 유사현실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한다. 金庸 小說에서
상상된 강호가 어떤 의미에서 유사현실과 받아들여지고, 또 그 과정에서 현실을 대
체하거나 압도하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은 그것이 상호 연관된 거대한 세계
로서의 면모와 기능을 갖추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91
수습되고 해소된다.
하지만 역사와 관련된 金庸 小說들에서 시작은 자유로웠지만 결말은 그렇지
못하였다. 金庸이 이 소설들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와 실현해야 할 염원으로 설
정한 것들은 결코 쉽사리 해결되거나 실현되지 못한다. 물론 이것은 金庸의 잘
못은 아니며, 그가 역사에서 제재를 선택했을 때 이미 예정된 것이다. 그래서
金庸은 그의 협객들을 강호에서 떠나게 하는 것으로, 대단원을 대신한다.
ꡔ書劍恩仇錄ꡕ에서 陳家洛은 乾隆의 계략에 말려 反淸復明의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을 위해 희생한 香香公主를 기리기 위해 서역으로 떠날 수밖에 없
었고, ꡔ碧血劍ꡕ의 袁承志 역시 자기의 포부를 이루지 못하고 李自成軍의 변질,
만주족의 중원 입성으로 인해,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중원을 떠나 浡泥國 근처
의 이름 모를 섬으로 은둔한다. ꡔ射鵰英雄傳ꡕ과 ꡔ神鵰俠侶ꡕ의 俠之大者 郭靖 역
시 결국 元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襄陽城에서 순국하게 된다. ꡔ倚天屠龍記ꡕ
의 張無忌는 明의 건국을 이룩한 업적을 쌓았지만 결국 朱元璋의 계략에 속아
연인 趙敏과 周芷若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물론 이러한 설정은 결국 강호를 떠나 은둔하거나 은거하는 것을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강호와 협에 관한 서사의 재연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를 다루는 金
庸 小說에서 협객의 은둔과 귀의의 선택은 관습적으로 볼 때 자연스러운 것이
기는 하지만, 그들의 귀결이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런 면에서 이들의 은둔은 ꡔ笑傲江湖ꡕ의 令狐冲과 任盈盈의 은
거와는 거리가 멀다. 令狐冲과 任盈盈은 五嶽劍派와 日月神敎 사이에서 벌어진
무림 쟁투를 해결하고, 그들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강호를 떠난
다. 그들이 강호를 떠나는 것은 강호에 더 이상 그들이 해결해야 할 사건이 존
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 그것은 자신들의 염원을 실현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袁承志 등의 은둔은 자신의 염원의 실현이 아니라 그것의 좌절이다.
그들은 자신의 염원을 실현하지 못한 채 급작스레 강호에서 ‘퇴출’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역사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던, 金庸의 예정된 행로 때문이었
다. 여기서 金庸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역사를 통해 강호로 들어섰고, 이로써 역
사를 상상했던 金庸은 결국 그 상상을 멈추고 역사로 귀환해야만 했다. 문제는
귀환해야 할 역사가 상상을 시작하게 했던 역사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
데 있다. 협객을 동원하여 진행하였던 상상의 과정은 말 그대로 하나의 허망한
상상으로 전락한 것처럼 보였다. 金庸 小說 초기의 두 편 ꡔ書劍恩仇錄ꡕ, ꡔ碧血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9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劍ꡕ에 깔린 비극적 정조는 이를 예감했던 金庸의 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
다.133)
하지만 金庸 小說에서 金庸의 역사 혹은 중국에 대한 상상은 결국 낙관적인
방향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강호에서 새로운 요소들을 발견하고, 부
각시키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한편으로는 金庸이 역사적 자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즉 이것은 金庸이 역사를 성찰하거나 상상
할 때 강호의 방식에 의지했던 것과 관련되는데, 金庸의 강호에서 중요하게 다
루어진 것은 역사만이 아니었다. 앞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金庸의 강호는 역사
와 로맨스, 전통문화가 같이 공존하고 있다. 이들의 공존은 우연적인 것처럼 보
이지만, 후자의 두 가지가 역사 상상이 갖는 예정된 한계를 보충하는 것으로 볼
때, 이들의 상관성은 분명히 드러난다. 金庸은 강호에서 여성과 문화를 발견해
내고, 이들을 극단적으로 부각시키고, 전유함으로써 역사 상상에 내재된 좌절감
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3. ‘陽剛中國’의 상상
1) 로맨스의 개입
일반적으로 무협소설에서 로맨스는 협객들의 대결과 투쟁 못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龔鵬程에 의하면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龔鵬程은
이것이 鴛鴦蝴蝶派 작가들의 무협소설 쓰기에 의해서 부각되기 시작했다고 주
장한다. 그에 따르면, 鴛鴦蝴蝶派 작가들은 무공이나 技擊, 강호의 恩怨 등이 무
협소설의 중요한 내용이 되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장
기를 무협소설 창작에 발휘하였다. 그들은 협객의 개체성을 중시하였고, 협객의
내면적 감정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협객과 미인의 연애담을 무협소설의 중요한
133)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의 金庸의 비관적 정조가 극복되는 것은 그의 마지막
작품인 ꡔ鹿鼎記ꡕ를 통해서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金庸이 과거의 역사에서 민
족의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적 주체(국민)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ꡔ倚天屠龍
記ꡕ에서 조짐이 보였고, ꡔ天龍八部ꡕ에서 기본적인 입장을 정립한 金庸은 잠시 역사
와 결별하였다 ꡔ鹿鼎記ꡕ를 통해 역사의 문제를 재거론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자신
의 역사감을 완전히 정립하게 된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93
사건으로 끌어들였다. 이제까지 무협소설의 중심인물의 자리를 차지하였던 중년
의 好漢들은 새롭게 등장한 소년 협객과 여협 등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었
다. 이로써 무협소설은 성질과 풍격 등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는데, 龔鵬程
은 이것을 중국 협의문학 전통의 일대 轉變이라고 지적한다.134) 즉, 무협소설은
‘俠骨柔情’135)의 세계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136)
이런 의미에서 볼 때, 金庸의 무협소설은 ‘俠骨柔情’의 극치를 보여준다. 陳墨
은 金庸이 그려낸 ‘애정 세계’가 그 엄숙성, 풍부성, 심각성, 독창성에 있어서 梁
羽生, 古龍을 비롯한 여타 무협소설 작가의 그것을 훌쩍 넘어서 있다고 주장한
다. 즉, 金庸은 애정을 色情이나 무협의 보조물로 보는 태도를 탈피하여 애정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으며, 그의 애정 세계는 애정 고사의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모습의 사랑을 다루는데, 그 깊이는 삶의 성찰에까지
이르며, 독창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는 점 등이 陳墨이 평가하는 金庸의 ‘애정
세계’의 성과이다.137) 물론, 金庸에 대한 陳墨의 숭배에 가까운 추종은 간혹 金
庸에 대한 과장되고 과도한 평가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金庸이 무협소설에서 로
맨스를 다루는 솜씨가 대단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138) 대부분 무협소설
의 독자가 남성인데 반해, 金庸의 독자 중에는 여성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그가
그려낸 로맨스의 비중과 매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첫 번째 소설 ꡔ書劍恩仇錄ꡕ만하더라도, 陳家洛-喀絲麗-霍靑桐, 陳家洛의
義父 于萬亭-陳家洛의 어머니 徐潮生, 文泰來-駱氷, 徐天宏-周綺, 陳正德-關明梅
등의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들의 사랑은 때로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기도
하고, 행복한 결실을 맺기도 하는데, 이러한 연인들의 사랑과 이별, 행복, 상심
은 무협소설 독자들을 사로잡는 중요한 요소이다. 滅滿興漢을 기치로 내세우며
134) 龔鵬程은, 鴛鴦蝴蝶派 작가들이 무협소설을 창작하게 된 이유를 무협소설의 인기,
기존 무협소설 쓰기에 대한 불만, 도시의 여성 독자들의 증가 등에서 찾는다. 龔鵬
程, ꡔ大俠ꡕ, pp. 241-251
135) 龔鵬程에 따르면, ‘俠骨柔情’이라는 말은 徐枕亞의 ꡔ雪鴻淚史ꡕ에 대한 評語로 등장
하였다.(ꡔ大俠ꡕ, p. 249 참조) 하지만 이 말은 이후 무협소설 세계를 지시하는 말 중
대표적인 것이 되었다.
136) 王度廬는 구파무협소설 작가 중 로맨스를 가장 잘 활용한 작가로 손꼽힌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무협소설 연구가들에게 ‘悲劇俠情’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영화 ꡔ臥虎
藏龍ꡕ은 “鶴鐵 五部曲” 중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137) 陳墨, ꡔ金庸小說情愛論ꡕ, 百花洲文藝出版社, 1999. 1월, pp. 3-14
138) 舒國治는 “애정이야말로 金庸 小說의 뿌리”라고 평가한다. 舒國治, 「小說ꡔ天龍八
部ꡕ中的愛與罪」, ꡔ金庸茶館ꡕ 3卷, p.110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9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淸의 전복을 꾀하는 紅花會 조직의 투쟁을 그려내는 이 작품에서 각종 사랑의
전개와 파국 등은 紅花會와 乾隆 사이의 대결과 투쟁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로맨스의 개입이 강호를 현실화시켜주
며, 또 유연화시켜주고 있다는 점이다. 즉, 로맨스의 개입은 국가 권력의 장악이
라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는 협객들, 최고의 상승 무공과 초인간적인 능력을
보유한 협객들에게 인간의 감정과 고뇌를 불어넣는다. 金庸의 무협소설에서 느
끼는 현실감, 사실감은 등장인물의 인간적 면모를 통해 확인될 뿐인데, 그들의
인간적 면모란 인간적 욕망의 발산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金庸에게 있어 인간적
욕망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망이다. 무림
맹주의 권력과 명예에 대한 집착은 金庸의 무협소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무협
소설에서 자주 나타난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은 작품 속에서 극히 제한적인 인
물들에 한정된다. 그 인물들은 무협소설 속에서 反派的 인물에 속하고, 그들의
결말은 비극적 최후로 귀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또 그것은 최고 상승 무공의 획
득, 수련과 연결된다. 다른 하나의 욕망은 애정에 대한 것이다. 애정에 대한 욕
구와 갈망은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공유한다. 사랑을 실현하고 애정을 획득하는
일은 무공의 획득과 연마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보유한 고수라 할지라도 사랑 앞에서는 무력하기 마련이다. 즉 애정과 관련하여
서 무협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철저하게 인간화될 뿐이다. 무협소설 속 애정의
문제에 있어서 협객들은 보통의 인간 이상이 아니다. 그들은 사랑의 희열에 들
뜨고, 사랑의 상실에 가슴 아파하며 질투하고 시기하는 보통의 인간일 뿐이다.
역사적인 대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협객들이 상상 불
가능한 일들을 벌이는 金庸의 강호가 그대로 역사적이고 초월적인 투쟁의 장에
서 멈추지 않고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강호
에 개입된 로맨스의 작용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맨스의 개입으로 金庸의 강
호는 인간의 욕망과 정서, 내면이 서로 상충하고 화해하는 하나의 삶의 공간이
되게 하였다. 金庸의 小說이 인생의 축도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金庸의 小說에서 로맨스는 강호의 풍파와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 ꡔ倚
天屠龍記ꡕ에서 벌어진 강호의 血怯은 明敎의 楊교주에게 사랑하는 이를 빼앗긴
成昆의 질투와 복수심 때문이었고, ꡔ天龍八部ꡕ 역시 段譽의 아버지 段正淳이 벌
인 애정 행각에 의해 강호의 풍파가 시작된다. 애정의 문제는 金庸의 대부분의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95
소설에서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작용하며,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이에
관계하게 된다. ꡔ神鵰俠侶ꡕ에서 楊過와 小龍女의 사랑은 이야기에서 가장 중심
적이지만, 楊過는 小龍女 이외에 郭襄, 公孫綠萼, 陸無雙, 程英 등과 미묘한 관
계에 놓이는데, 이러한 관계는 여타의 인물들과의 결합을 통해 확장된다. ꡔ倚天
屠龍記ꡕ의 張無忌 역시 그러한데, 張無忌는 趙敏, 周芷若, 小昭, 殷離 등과 감정
을 교류한다. 이 중 趙敏은 元 汝陽王의 딸이며, 周芷若은 후에 峨嵋派의 장문
인이 되어 천하의 흥망에 관련된 峨嵋派의 비밀을 알게 되어 張無忌와 대립하
기까지 한다. 또 小昭는 明敎 紫衫龍王 黛綺絲의 딸이며, 殷離는 殷野王의 딸이
다. 이들은 단순히 張無忌와 애정을 교류하는 사이만이 아니라 ꡔ倚天屠龍記ꡕ의
강호 풍파와 明의 건국이라는 대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물들이다. 이러
한 방식은 ꡔ天龍八部ꡕ, ꡔ鹿鼎記ꡕ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로맨스는 강호의 풍파가 마무리되었을 때 얻어지고 완성되는 귀결이다.
ꡔ笑傲江湖ꡕ에서 令狐冲과 任盈盈은 무림의 권력 쟁투가 종결된 후 함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사라지며, ꡔ鹿鼎記ꡕ에서 韋小寶가 天地會와 康熙 황제 사이에서
벌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그만 두기로 결심하고 通吃島로 떠날 때, 그와 함
께 하는 이들은 그의 7명의 아내들이다. 마치 사랑의 결실은 고단하고 험악한
강호의 삶을 정리할 때 협객들에게 주어지는 위로의 선물처럼 보인다. 협객들이
강호의 풍파를 가라앉히고, 강호의 모든 恩怨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할 때 그들에
게 남는 것은 사랑하는 이이고, 이때 사랑의 결실은 협객들의 수고에 대한 代價
인 셈이다.
이렇게 金庸 小說의 로맨스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하는 것으로,
강호의 중대사 중 하나이다. 그것은 강호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킴으로써 강호
를 ‘현실화’한다. 물론, 이때의 현실화란 현실의 재현적 측면이나 문학적 리얼리
티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金庸 小說 속의 로맨스는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측면
이 강해서 초월적인 무공의 발휘만큼이나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강호의 ‘현실화’라는 의미는 로맨스의 개입으로 인하여 강호라는 상상의 시공간
이 현실 세계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존재하고 있음이 부각된다는 의미이
다. 이 말은 중의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는데, 하나는 강호라는 시공간이 극단
화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삶의 어떤 부분을 모사하고 있다는 동의를 얻게 됨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상상의 시공간으로서의 강호가 비록 상상의 형태이기는 하
지만 독자들의 사고 속에서는 무게감을 가진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金庸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9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小說에 나타난 로맨스의 양상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상상의 시공간을 현실화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로맨스는, 金庸
小說에서의 비중과 중요성으로 인하여 강호라고 하는 상상에 중요한 표지를 심
어둔다. 그 표지는 남성중심주의라는 간단한 말로 단정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
지만, 그러한 단정이 金庸 小說의 풍부함에 걸맞는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金庸
의 경우, 남성중심주의나 陽剛에 대한 숭배는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드
러나지 않는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金庸 小說이 다른 무협소설들이 쉽게
빠지는 병폐에 대해 충분히 자각하고 있고, 또 이를 극복한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金庸 小說의 뭇 여성들은 진취적이고 지혜롭다. 그들의 지력과 능력은 남
성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金庸의 경우, 강호에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는 남성의 보조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金庸 小說에서 여성은 金
庸이 혹은 남성이 상상하는 것, 즉 남성의 상상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여기서는 金庸의 여성에 대한 상상, 혹은 성별에 대한 상상을 중심으로 논의하
기로 한다. 이는 金庸 小說의 로맨스가 강호를 통해 무엇을 상상하게 하는지를
보기 위한 작업이다.
2) 金庸 小說의 여성
嚴家炎은 金庸 小說의 現代意識에 대해 논하면서 마지막에 金庸 小說 속의
非現代意識을 지적하였는데, 그것은 金庸 小說의 남자 주인공이 언제나 여러 명
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여성들은 출현
하면서부터 오로지 사랑과 귀속처만을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嚴家炎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金庸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였을지 몰라도 그의 소설이 중국에서
수천년 동안 존재해 온 남성 중심의 文化心理意識에 젖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
한다.139) 이러한 의견은 嚴家炎만 지적한 것이 아니라 金庸 小說에 옹호적 입장
을 가진 연구자 중에서도 대체로 지적하는 사항이다.
宋偉杰도 이에 대해서 대체로 동의한다. 그는 金庸 小說의 여성들은 거의 사
랑을 위해 태어났고, 사랑은 그들의 유일한 출발점이자 유일한 귀속이라고 지적
한다. 하지만 그의 관점에서 볼 때, 金庸 小說의 남자 주인공은 多情子이기는
139) 嚴家炎, ꡔ金庸小說論稿ꡕ, 北京大學出版社 1999. 1, pp. 99-100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97
하지만 결국에는 한 사람의 연인에게 사랑을 바치는 사람이기도 하다. 宋偉杰은
金庸 小說이 기존의 무협소설식 사랑의 패턴을 유지하고 회귀하는 것으로 보이
지만, 항상 그것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수정을 가하고 있음을 중시한다. 이는 사
랑의 문제에만 해당하지 않고, 무협소설 속의 남성 중심적 질서에 대해서도 마
찬가지이다. 宋偉杰에게 있어서 金庸 小說은 기존의 남녀 관계에 대한 가장 전
복적이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형상화해내고 있는데, 그것은 “雙劍合璧”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이것은 남녀의 차이를 초월한, 음양의 합일이며 完整한 合體를
의미한다.140) 宋偉杰의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동의 가능한데, 그것은 그가 金庸
의 小說을 기존 남녀 관계와 남성 중심적 질서에 대한 ‘부분적’, ‘국소적’인 개조
와 수정으로 본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의 관심은 金庸의 小說이 남녀 관계의 묘사에 있어서 진보적이지
보수적인지, 혹은 그가 남성 중심적 사고에 사로 잡혀 있는지, 아니면 그로부터
멀찍이 벗어나 있는지를 판정하고 이를 근거로 金庸 小說을 평가하는 데에 있
지 않다. 王彬彬의 경우에, 金庸이 애정 관계을 그려내는 것은 대단히 저속하고
비정상적인 데 반하여, 성에 관해서는 극도로 ‘깨끗함’을 강조하는 데 주목하여,
이는 어쩌면 金庸 자신의 男女觀과 性 관념이 불순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비난
한다. 앞에서도 지적한 것이지만 金庸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는 그의 소설을 평
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 필자가 여기서 논의하고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金庸 小說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애정 묘사의 양상을 가지고 金庸
을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하의 논의에서 불가피하게 구체적인 예를
들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에 근거해 필자가 논의하려는 것은 金庸 小說에서 애
정의 문제와 남녀 관계를 다루는 것이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살피려
는 것이고,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또 어떤 관념을 생성해낼 가능성을 내포하는지
를 밝히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金庸 小說 속 등장하는 여성
의 실체를 분석하는 것이다.
로라 멀비는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ema)」141)라는 글에서 프로이트와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이용하여 가부장적
140) 宋偉杰, ꡔ從娛樂行爲到烏托邦衝動-金庸小說再解讀ꡕ, 江蘇人民出版社, 1999, pp. 121
-137
141) Laura Mulvey, “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ema”, Visual and Other Pleasures,
Indiana University Press, 1989, pp. 14-26 /유지나․변재란 편 ꡔ페미니즘․영화․여
성ꡕ, 여성사, 1995년판, pp. 50-66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9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이데올로기 하에서의 영화 특히 헐리우드 영화의 여성 재현의 메카니즘을 분석
하였다. 그녀는 영화를 가부장제 사회의 무의식이 그대로 전이된 것, 또는 그것
에 의해 구조화된 것으로 본다. 그녀는 가부장제 무의식의 전이 방식을 드러내
는 것으로, 영화와 관련된 ‘시선(the look)’을 주목하였다. 그녀는 영화와 관련된
시선을 세 가지, 즉 영화적 사건을 기록하는 카메라의 시선, 완성된 영화를 바
라보는 관객의 시선, 스크린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서로 주고받는 시선으로 분류
하였고, 이 세 가지의 시선이 모두 남성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영화는 남
성들의 관음적 쾌락에 의해 구조화되는데, 이때 남성은 시선의 담지자로, 여성
은 보여지는 대상으로 명백하게 구분된다.
여기서 그녀는 정신분석학에서 여성이 남근의 결핍을 의미한다는 점, 그래서
남성에게 끊임없이 ‘거세 위협’을 상기시킨다는 점을 주목하였고, 영화 속 시선
의 거세 위협에 대한 해소 방식에서 영화에서 재현되는 여성의 상반되는 두 가
지 유형이 나오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거세 위협에 대응하는 영화의 시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새디즘적 관음주의(sadistic voyeurism)이고, 다른 하나는 물신
숭배적 절시증(fetishistic scopophilia)이다. 전자는 여성을 사악한 존재로 보고, 그
것을 가치절하하거나 처벌, 용서하는 데에서 쾌락을 느끼는 시선이고, 후자는
여성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 그것으로 결핍된 남근의 보충물로 삼거나 그것이
주는 위험성 보다는 안정감을 강조하는 시선이다. 영화 특히 헐리우드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여성의 재현 양상, 공포와 처벌의 대상(팜므 파탈 혹은 거미여
인, 악녀, 요녀)으로서의 여성과 숭배의 대상(현모양처, 성녀, 동정녀)으로서의
여성은 이러한 메카니즘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142)
하지만, 팸 모리스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이러한 재현 방식은 영화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며, 영화에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문학에서 여성을 순종, 희생,
아름다움 혹은 공포와 위험, 음탕함 등과 연결시키는 것은 뿌리깊은 관습이며,
이는 통속문학뿐만 아니라 고급문학에서도 답습되고 있으며, 남성 작가들에 의
142) 사실, 멀비의 글의 의미는 헐리우드 영화가 재현해내는 여성의 양상을 드러낸 데
있다기 보다는, 줄곧 그런 식으로 형성되었던 여성의 재현 방식이 가부장제적 사회
속에서 왜 그런 식으로 재현되었는가를 밝힌 데 있으며, 그녀가 이를 프로이트와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접목시켜서 분석하고 있다는 데 있다. 즉, 그녀는 페미니즘
영화 연구에 프로이트와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도입한 거의 최초의 연구자이고, 이
후 정신분석학을 이용한 영화의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한 논의는 본격적으로 활기
를 띠게 된다. 멀비 이후의 영화에서의 섹슈얼리티의 논의는 ꡔ메두사의 웃음ꡕ(커뮤
니케이션북스, 1998) pp.93-102를 참조 바람.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99
해서 뿐만 아니라 여성 작가들에 의해서도 행해져 왔다.143)
金庸 역시 여성에 대한 이러한 재현 방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위에서 말한 여성의 두 가지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金庸 小說에서는 이 두 가지 이외에 이 둘의 혼합적 형태가 추가되고 있
다. 그래서 金庸 小說의 여성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聖女, 童貞女로서 香香公主, 小龍女, 小昭, 王語嫣, 阿朱, 儀琳 등을 대표
적으로 들 수 있다.
둘째, 妖女, 惡女, 魔女로서 梅超風, 李莫愁, 葉二娘, 康敏 등이다.
셋째, 惡女와 聖女의 혼합형으로 黃蓉, 溫靑靑, 任盈盈, 趙敏, 周芷若, 殷素素
등이다.
첫 번째 경우의 여성들은 남성들이 고래로부터 꿈꾸어왔던 이상적인 여성이
다. 그들은 하나같이 미모의 소유자이고, 순결한 그녀들은 남성 주인공에게 지
고지순하고 대가 없는 사랑을 바치는가 하면, 남성 주인공을 위해 죽음까지 불
사한다. 그녀들은 남성 주인공을 구원하는 천사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구원하고
매료시키는 것은 남성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그녀들은 출현과 동시에 남성 주인
공은 물론, 남성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ꡔ書劍恩仇錄ꡕ의 香香公主는 回族
의 우두머리 木卓倫의 딸이며, 본명은 喀絲麗이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풍기
는 그윽한 향기 때문에 香香公主라고 불린다. 陳家洛과 그녀의 만남은 陳家洛이
호수에서 목욕하는 그녀의 모습을 ‘엿보면서’ 시작된다.
백옥같은 팔이 수면 위로 뻗어 나왔고, 이어 물에 젖은 머리가 솟아 나왔다.
그녀는 그를 보고 외마디 탄성과 함께 다시 물 속으로 사라졌다.
이 짧은 순간에 陳家洛은 그녀가 빼어난 미모를 가진 소녀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설마 요괴는 아니겠지?” 그는 바둑알 세 개를 손에 잡아 쥐었다.
한줄기 물결이 동쪽으로 향하더니, 삭하는 소리와 함께 소녀의 머리가 꽃나
무 사이에서 솟아났다. 푸른 나무 가지의 틈 사이로 눈처럼 흰 그녀의 살빛이
내비쳤고, 칠흑같이 검은 그녀의 긴 머리는 호수의 수면 위로 흩어졌다.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눈이 자신 쪽을 향하였다. …
그녀는 맨발이었고, 얼굴과 머리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143) 팸 모리스 저, 강희원 옮김, ꡔ문학과 페미니즘ꡕ, 문예출판사, 1997년 4월, pp. 37-60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0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보자 陳家洛의 가슴은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하였다. ‘세상에 이런 미녀가 있다
니!’一只潔白如玉的手臂從湖中伸了上來, 接着一個濕淋淋的頭從水中鉆出,一轉
頭,看見了他, 一聲驚叫, 又鉆入水中.
就在這一刹那, 陳家洛已看淸楚是個明艶絶倫的少女, 心中一驚:“難道眞有山精水
怪不成?” 摸出三粒圍棋子扣在手中.
只見湖面一條水線向東伸去, 忽喇一聲, 那少女的頭在花樹䕺中鉆了起來, 靑翠的
樹木空隙之間, 露出皓如白雪的肌膚, 漆黑的長髮散在湖面, 一雙像天上星星那麽亮
的眼睛凝望過來
她赤了雙脚, 臉上髮上都是水珠. 陳家洛一見她的臉, 一顆心又是怦怦地跳, 暗想:
“天下哪有這般美女?”144)
香香公主를 향한 시선은 陳家洛의 것일 뿐만 아니라 金庸 자신을 포함한 모
든 남성들의 것이다. 이 시선에 포착된 香香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극단적 환
상과 기대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천진함과 순결함
은 여성에 관한 신화적 환상에 다름 아닌데, 남성들로부터 ‘과연 속세의 사람인
가?’를 의심받는 그녀는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신화적으로 재연된다.
아침해가 막 떠오르던 그때, 두 사람이 말에 올라 햇빛을 받으며 천천히 움
직이는 것이 보였다. 소녀의 머리칼, 얼굴, 손등, 옷은 담담한 햇빛을 반사해냈
다. 수만의 청 관군의 두 눈은 그녀를 향했고, 그들의 심장은 격렬히 요동쳤다.
병졸과 장수 할 것 없이 모두 그녀의 절세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다. 활시위를
당긴 채 일대 혈전을 앞두고 있던 수만의 양쪽 군사들은 이 순간, 모두 뭔가에
씌인 듯이 멍청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쨍그랑” 한 청군 병사의 손에 들려 있던 창이 땅에 떨어졌다. 이어 수많은
병사들이 창을 땅에 떨궜으며, 궁사들은 당겼던 시위를 거두었다. 장수들도 저
지할 줄 모르고, 멀리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
兆惠는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내렸다. “철수하라!”
其時朝陽初升, 兩人迎着日光, 控轡徐行. 那少女頭髮上, 臉上, 手上, 衣上都是
淡淡的陽光. 淸軍官兵數万對眼光凝望着那少女出伸, 每個人的心忽然都劇烈跳動起
來, 不論軍官兵士, 都深醉在這絶世麗容的光照之下. 兩軍數万人馬箭拔弩張, 本來
血戰一觸卽發,突然之間, 便似中邪昏迷一般, 人人都呆住了. 只聽得當啷一聲, 一
名淸兵手中長矛掉在地下, 接着, 無數長矛都掉下地來, 弓箭手的弓矢也收了回來.
144) 三聯本, ꡔ書劍恩仇錄ꡕ, 下卷, pp. 499-500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01
軍官們忘了喝止,望着兩人的背影漸漸遠去.145)
남성의 환상과 기대에 의해 전유되는 香香의 역할은 이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녀는 신화적 인물이며 성녀인데, 그것의 완성은 그녀의 희생을 통해 구현된
다. 香香公主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긴 乾隆은 陳家洛과 담판을 짓는데, 그것은
陳家洛으로부터 香香公主를 양보받는 대신, 淸을 폐하고 새로운 한족 국가를 건
설하는데 협조한다는 것이다. 陳家洛은 민족적 대의를 이루기 위해 그녀를 자신
의 친형인 乾隆에게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香香은 陳家洛에 대한 사랑으
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당신이 나에게 무슨 일을 하라 해도 당신을 따르겠어요”…
“아니, 아니요, 날 보세요! 당신이 날 처음 보았을 때, 난 목욕을 하고 있었어
요. 오늘 마지막… 당신이 날 보고 영원히 날 잊지 않기를 바래요!”…
그녀는 옷을 하나하나 벗었다. 물 소리가 나지막히 들리는 협곡에서 황금빛
햇빛이 그녀의 아름다운 몸을 감쌌다. 陳家洛은 어지러움을 느꼈고, 그녀를 똑
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천진무구한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그녀가 서너 살
의 발가벗은 아이처럼 아름답고 순결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몸을 만
들어내다니 역시 하느님은 전지전능한 신이시구나!’ 마음 속에서 갑자기 숭배
감와 감사의 마음이 생겨났다.
“你要我做什麽, 我總是依你.”
“不, 不! 我要你瞧着我. 你第一次見我, 我正在洗澡. 今天是最后一次…, 我要你
看了我之后, 永遠不忘記我.”
但見她將全身衣服一件件地脫去, 在水聲淙淙的山峽中, 金黃色的陽光照耀着一個
絶世無倫的美麗身體. 陳家洛只覺得一陳暈眩, 不敢正視, 但隨卽見到她天眞無邪的
容顔, 忽然覺得她只不過是一個三四歲的光身嬰兒, 是這麽美麗, 可是又這麽純潔,
忽想: “造出這樣美麗的身體來, 上天眞是有一位全知全能的大神吧?” 心中突然彌漫
着崇敬感謝的情緖.146)
陳家洛의 청을 수락하고, 그에게 자신의 벗은 몸을 보여주는 香香은 남성들의
환상을 넘어서 탐욕의 산물이다. 그녀의 벗은 몸을 대한 陳家洛은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몸을 만들어내시다니, 하느님은 진정으로
145) 위의 책, pp. 514-515
146) 위의 책, pp. 762-763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0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전지전능하신 신이시구나!” 엿보기를 통해서 시작된 陳家洛의 香香에 대한 전유
는 香香의 자발적인 보여주기로 이어지며, 그녀의 자살을 통해서 완성된다. 乾
隆의 약속이 거짓임을 알게 된 香香은 죽음으로써 이를 陳家洛에게 알리고자
자살을 감행한다. 陳家洛이 香香을 乾隆에게 넘기기로 한 것이 민족적 대의를
위해서라면, 香香이 그것을 수락하고 또 죽음을 불사한 것은 陳家洛에 대한 사
랑 때문이다. 그리고 陳家洛에 대한 사랑은 그녀가 자발적으로 희생을 선택하도
록 하였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점은 香香에게는 민족적 대의와 같은 이념의 추
구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것과, 그녀의 일련의 행동이 그녀의 자발성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香香의 언니인 霍靑桐이 자기 민족과 부모의 원수로서의 淸에
대한 적개심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 저항을 수행하는 것과 香香의 행동은
완전히 다르다. 그녀의 시선과 사고는 한 남자에 대한 사랑 안에 갇혀 버렸다.
하지만 이는 그녀에게 구속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다. 물론, 그녀의
자유의지가 남성으로부터 부여된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래서 金庸 小說
에서 香香公主는 철저하게 남성의 시선과 관점, 환상과 기대을 통해 출현하였
고, 소멸하게 되는 대표적 인물이다.
ꡔ天龍八部ꡕ의 阿朱 역시 香香公主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연인 蕭峯을 위해 스
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蕭峯과 함께 蕭峯의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아다니던 阿
朱는 자신의 아버지 段正淳이 蕭峯의 부모를 죽인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다. 변장술에 능했던 그녀는 어두운 밤 段正淳으로 변장하여 蕭峯 앞에 나타나
蕭峯의 일격을 맞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죽음을 택한 것은 아버
지 段正淳의 죄값을 대신하고자 해서가 아니다. 그녀는 蕭峯으로 하여금 실수로
벌어진 잘못에 대해 용서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 蕭峯 앞에 나타나
죽음을 자초했다. 그녀가 진정으로 우려한 것은, 蕭峯이 段正淳을 죽임으로써
段氏 가문과 원수를 맺게 되고 이로써 六脈神劍이라는 위력적인 무공을 소유한
段氏 가문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蕭峯으로 하여금 자신
이 벌인 실수를 인식케 함으로써 段正淳을 용서하고, 이로써 蕭峯 자신도 스스
로의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香香公
主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阿朱 역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
하고, 용서와 화해를 모색하게 하는 성녀로서 형상화된다.
ꡔ天龍八部ꡕ의 王語嫣은 남성으로 하여금 그녀를 위해 희생하게 하는데, 이것
은 숭고한 대상에 바치는 숭배인데, 이를 통해 남성은 淨化된다. 원래 王語嫣이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03
사랑한 것은 大燕國 왕족의 후예인 慕容復이다. 그러나 慕容復은 오로지 大燕國
의 부활만을 꿈꾼다. 그는 절세의 미인이자 천하 무공의 이치와 원리에 통달한
王語嫣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는 王語嫣의 헌신
과 사랑을 아랑곳하지 않고 西夏國의 부마가 되어 大燕의 부활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녀는 미모와 헌신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남자에게 버림받게 되는데,
이때 그녀의 미모에 반해 그녀의 멸시와 모욕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줄곧 사랑
했던 段譽는 그녀를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그녀는 마음 깊은 곳에서 나 段譽를 생각할 것이고, 어느 누구도 나보다 그
녀를 위해 성심성의를 다한 자가 없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걱정 마시오! 내가 가서 서하국의 부마가 되리다. 당신의 사촌 오라버니는
부마가 되지 못하면 당신과 결혼하게 될 것이오”…
이때 왕어언은 마음 깊이 감동받아 손을 내밀어 段譽의 손을 잡았다.
‘她內心深處, 仍會想到我段譽, 知道這世上全心全意爲她設想的, 沒第二個人能
及得上我.’…
“你放一百二十個心, 讓我去做西夏駙馬. 你表哥做不成駙馬, 就非和你成婚不可
了”…
這一次却是王語嫣心下感動, 伸手與段譽相握.147)
段譽는 王語嫣이 慕容復과 사랑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대신 西夏國의
부마가 되기로 결심하는데, 이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자기 헌신이자 희생이다.
ꡔ書劍恩仇錄ꡕ의 于萬亭과 ꡔ鹿鼎記ꡕ의 美刀王 胡逸之 역시 자신이 사랑하는 여
인을 위해 헌신한다. 于萬亭은 자신의 옛 연인이자 陳家洛의 어머니인 徐潮生이
雍正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가 되자 신분을 감추고 그녀의 집에서 하인 노릇을
하며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보호했고, 그녀의 아들 陳家洛을 제자로 삼아 무공
을 전수했으며, 乾隆이 황제가 되자 목숨을 걸고 황실에 잠입하여 乾隆에게 그
의 출생 비밀을 전한다. 결국, 그는 徐潮生이 죽은 뒤 마음에 병을 얻어 자신도
세상을 떠나게 된다. ꡔ鹿鼎記ꡕ의 胡逸之 역시 당대 최고의 미인 陳圓圓에게 반
하여 그녀를 위해 일생동안 헌신한다. 그 또한 젊었을 적 당대 최고의 미남자였
고, 무림의 고수였다. 于萬亭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陳圓圓
의 집에서 23년 동안 하인 노릇을 한다. 陳圓圓의 사랑을 얻을 수 없었던 그는
147) 三聯本 ꡔ天龍八部ꡕ 第5卷, pp. 1745 -174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0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그녀의 곁에 남아 그녀를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는 23년 동안 자신이
陳圓圓에게 서른 아홉 마디의 말을 건넨 것에 비해 陳圓圓은 그에게 쉰 다섯
마디의 말을 건넸다는 사실에 감격해 할 뿐이다. 이들의 일화는 무협소설 속 남
성들에게도 순정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들은 무협소설의 남성들을 대신
하여 그들의 여성에 대한 무정함과 군림에 대해 속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듯
이 보인다. 이때 그 연모의 대상인 여성들은 남성의 자기 정화와 속죄의 대상이
된다. 이 경우, 여성은 남성의 정화와 속죄를 위해 ‘호출(interpellation)’148)된다.
여성의 성스러움은 이렇게 부여되며, 그것은 남성에 대한 구제와 구원을 위해
활용된다.
하지만, ꡔ倚天屠龍記ꡕ의 小昭의 경우에서처럼 여성에게 부여된 성스러움이란
여성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억압이다. 그녀는 明敎 紫衫龍王 黛綺絲의 딸로서 나
중에 페르시아 明敎의 聖女가 된다. 그녀가 성녀가 되는 것은 그녀의 자의에 의
해서가 아니며, 페르시아 明敎의 결정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성녀의 가장 중요
한 조건은 처녀성이다. 타의에 의해 성녀가 된 그녀는 張無忌에 대한 사랑을 거
둘 수밖에 없었다. ‘성녀 = 처녀’라는 등식은 성녀에 부과된 억압성을 드러낸다.
ꡔ神鵰俠侶ꡕ에서 小龍女에 대한 楊過의 사랑이 충격적인 것은, 그것이 스승과 제
자 간의 사랑이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小龍女가 尹志平에 의해 처녀성을 상실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白衣’로 상징되는 小龍女의 순결함은 처녀성의 상실과
더불어 훼손되는데, 이를 복원해주는 것은 楊過의 포용이자 사랑이다. 楊過의
주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의 추구는 처녀성의 상실로 인해 피동적이 된 小龍女
를 구원하게 된다. 즉, 金庸 小說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억압을 제공하기도 하지
만 해방을 부여하기도 한다. 聖女와 童貞女 형의 여성들은 남성적 강호을 유연
화시켜주기는 하지만, 남성의 강호에 충격을 주거나 이를 거부하는 데로 나아가
지 못한다. 그것은 매우 당연한 귀결인데, 그녀들의 출현과 소멸은 모두 남성
작가와 주인공, 독자의 환상과 기대 내에서 이루어지게 때문이다.
이 여성들이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환상과 기대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妖女,
惡女, 魔女로서의 여성들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공포와 혐오로부터 만들어진
다. 그녀들은 ‘저지르지 못할 악행이 없는(無惡不作)’ 이들이며, 이로써 강호에
파란과 공포를 가져오며 남성 중심적 강호의 질서를 교란한다. 하지만 金庸 小
148) 팸 모리스, 앞의 책, p. 59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05
說에서 그녀들의 위협과 악행은 언제나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리고 그녀들은
강호의 질서에 도전한 죄값을 철저히 치르게 되는데, 그 처벌은 바로 죽음이다.
ꡔ天龍八部ꡕ의 康敏은 전형적인 妖婦이다. 그녀는 丐幇의 副幇主 馬大元의 부
인인데, 丐幇의 百花大會에서 喬峯이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喬
峯을 음해한다. 타고난 미모와 지략을 이용하여 그녀는 개방의 장로들와 사통하
였고, 이 관계를 이용하여 喬峯이 한족이 아니라 거란족임을 폭로한다. 그녀의
음모에 의해 강호에 한바탕의 피바람이 몰아친다. 강호의 질서는 그녀에 의해서
허물어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강호의 질서를 전복할 의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는 喬峯이 자신의 미모에 경탄하고 찬사를 보내지 않은 것 때
문에 喬峯에게 복수하고자 한 뿐이고, 이를 위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했
을 뿐이다. 즉, 그녀는 한낱 ‘변태적인 여인(最變態的女人)’일 뿐이다.149) 이런 면
에서 그녀의 존재는 강호 질서의 공고함과 안정성을 확인시켜주고, 그 존재 이
유와 가치를 역설적으로 표명한다. 강호는 그녀를 이용하여 강호의 이데올로기
를 우회적으로 전파한다. 이런 면에 있어서 그녀 이외의 다른 인물들 역시 다르
지 않다.
ꡔ神鵰俠侶ꡕ의 李莫愁는 金庸 小說 속 인물 중 가장 잔인한 악녀이다. 그녀는
강호에서 살인 행위를 무수히 저지른 대악마이다. 그 중 유명한 것은, 何老拳師
일가족 20명을 죽인 일과 沅江 위에 떠있던 63척의 운송선을 훼멸시킨 일이었
다. 그녀가 이런 악행을 저지른 이유는, 何沅君이 그녀의 연인이었던 陸展元을
빼앗아가서 그녀를 원수처럼 생각하기 때문이었고, 何老拳師의 일가와 沅江에
띄워져 있던 운송선의 이름이 그녀의 원수인 何沅君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렇게 강호의 대악녀가 된 것은 사랑의 상실 때문이다. 이외에, 陳墨은
李莫愁가 가진 여성 중심적 의식이 그녀를 악녀로 만들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녀
가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질 수 없었고, 세상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녀가 古墓派의 제자였던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古墓派를 창건한 林朝英은 남
성 세계에 속하기를 거부했던 인물이다. 그녀는 제1차 華山論劍에서 최후의 승
자가 된 王重陽과 무공의 고하를 다투었고, 王重陽에게 패배한 후 고묘에 숨어
살면서 세상과 담을 쌓고 古墓派를 만들었다. 자각적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었
지만, 그녀들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체현하였다.150) 남성 중심적 질서에
149) 覃賢茂 編著, ꡔ金庸武俠小說鑑賞寶典ꡕ, 四川人民出版社, 2001, pp.975-976
150) 古墓派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하였지만, 만약 남성으로부터 헌신의 약속을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0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대한 반항과 도전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 古墓派의 제자였던 李莫愁는 무의식적
으로 남성을 피동적 주체로 인식하였는데, 陳墨은 그녀의 연인이었던 陸展元이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151)
李莫愁가 大惡女, 大魔女이기는 하지만, 독자들에게 그녀가 지탄과 혐오의 대
상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동정의 대상, 비극적 인물로 받아들여
진다. 왜냐하면, 그녀가 악녀가 된 이유가 사랑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李莫愁의 모성 본능 때문이다. 李莫愁는 郭靖과 黃蓉
의 어린 딸 郭襄을 楊過와 小龍女의 딸로 오해하고 납치한다. 이는 郭襄을 이용
하여 小龍女로부터 玉女心經을 빼앗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郭襄을 양육하면서
李莫愁는 모성 본능을 드러낸다. 李莫愁가 黃蓉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들과 함께
楊過를 찾아 나서게 됨으로써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그
기회를 이용해서 玉女心經을 얻기 위한 것이지만 그녀의 내면에 존재했던 郭襄
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 때문이다. 강호 최고의 악녀이자 마녀인 李莫愁는 사랑
과 모성에 의해 남성 세계 안으로 포용된다. 그녀가 남성 고수에 의한 처형의
형태로 죽음을 맞지 않고,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듦으로써 자살을 죽음의 방법으
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들이 그녀에게 베푼 최소한 자비이다.
ꡔ天龍八部ꡕ의 四大惡人 중 하나인 無惡不作 葉二娘 역시 손꼽히는 악녀이다.
그녀의 잔인함은 영아 살해를 통해 드러난다. 그녀는 매번 영아를 납치하여 데
리고 놀다 싫증이 나면 아이의 목을 졸라 살해한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사랑
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과 어느 순간 화가 폭발하여 아이를 죽여버리는 그녀의
행위는 매우 극단적인 양면이며, 끔찍하고 불가해하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그
녀의 잔혹함은 자신의 아들을 납치 당했던 과거와, 이에 대한 보복 심리에서 비
롯된 것임이 밝혀진다. 모성 본능과 그 집착이 그녀를 대악녀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 虛竹, 그리고 그녀와 정을 통해 虛竹을 낳았던 少
林 지주 玄慈와 재회하는 순간, 그녀는 평범하고 순정적인 여인의 모습을 되찾
게 된다. 그녀 안의 모성이 드러나고 발견되는 순간, 그녀는 악녀에서 보통의
여인으로 귀환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강호 안으로 포용되지는 못한다. 그녀는
받아낸다면 세상에 나갈 수 있다는 원칙 또한 존재하였다. 그녀들은 남성에 헌신하
는 것을 부정하였고, 남성들을 그녀들에게 복종시키고자 하였다. 李莫愁는 이러한
규율을 지키지 않고 무단으로 古墓를 빠져나감으로 인해 古墓派의 반역자가 되었
으며, 小龍女는 楊過로부터 헌신을 약속을 받아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151) 陳墨, ꡔ衆生之相-金庸小說人物談ꡕ, 上海三聯書店, 2001년 6월, pp. 133-13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07
과거의 실수를 숨기고 살았던 자괴심과 죄책감으로 인하여 자살을 선택하는 남
편 玄慈를 따라 자신도 목숨을 끊는다.
金庸은 이들 악녀를 통해 인간 내면에서의 선악의 상존과 충돌, 인간의 이중
적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착한 사람에게도 악한 면이 있으며, 악한 자에게
도 선한 면이 있다는 사실152)을 金庸은 그의 인물들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고,
많은 독자와 비평가들은 金庸 小說의 등장인물들이 성공적인 이유를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 전체 서사의 전개와 구조화의 측면, 등장인물의 성격 구성의 면을
고려할 때, 이러한 지적은 수긍할만하다. 하지만, 金庸의 요녀, 악녀들은 여성을
이용하고 처벌하고 용서함으로써 여성을 통제, 전유하고자 하는 金庸의 무의식
을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드러낸다. 그녀들은 남성의 거세공포로부터 탄생하였
고, 그러한 공포를 지속적으로 상기시켰다. 그녀들의 제거는 따라서 남성들에게
있어서 정당한 행위이다. 게다가 그녀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는 그녀
들의 반성과 뉘우침이다. 남성들은 그녀의 반성과 뉘우침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녀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다. 이로써 남성들은 위
협과 도전으로부터 강호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세 번째 여성들의 경우, 그녀들의 妖女, 惡女로서의 기질은 두 번째 여성들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별반 다르지 않다. 黃蓉은 동사 黃藥邪의 딸이라는 것에
손색없을 정도로 사악하고, 무례하여 ‘小東邪’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이고, 任盈
盈은 日月神敎 교도들에게 공포와 숭배의 대상이다. 溫靑靑과 殷素素 역시 제멋
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들이고, 趙敏, 周芷若 등은 張無忌에 대한 애정과 사
랑의 질투 때문에 적지 않은 악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그녀들은 일찌감치 남성
의 세계로 편입해 들어옴으로써 요녀, 악녀들이 남성 세계의 용서와 자비를 죽
음을 통해 비로소 얻을 수 있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행복한 결말
을 맞이한다. 그녀들은 요녀, 악녀에서 성녀, 동정녀로서 변모하게 됨으로써 남
성 중심적 강호에서 자기의 역할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이
첫 번째의 여성들과 비슷한 결말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녀들이 처음
152) 내가 그려낸 인물들 또한 선인과 악인으로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다. 악인에게도 동
정할 구석이 있다. …악인에게도 선한 면이 있으며, 선인에게도 악한 부분이 있다.
(我寫的角色也不是好人․壞人相當分明的, 壞人也有値得同情的地方. … 壞人身上也會
有好的成分, 好人身上也會有壞的成分.) 黃里仁 等, 「掩映多姿跌宕風流的金庸世界」,
ꡔ金庸茶館ꡕ 3卷, p. 225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0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부터 남성 중심적 강호를 동경하며, 언제든지 강호로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
으며, 또 강호에 적응할만한 자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처음부터 하나의 ‘강호인’으로 설정되고 있다. 그녀들이 첫 출현에서
대부분 남장을 하고 있다는 데서 드러나듯이 그녀들은 남성적 질서인 강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한다. 黃蓉과 溫靑靑, 趙敏, 殷素素는 남장을 한 채 강호
에 나타나 강호의 동정을 살피거나 강호에 어떤 사건을 저질러 놓음으로써 강
호라는 세계를 학습한다. 남장한 그녀들은 강호의 남성들이 갖지 못한 풍모를
가졌는데, 그것은 준수함과 문아함 등의 서생적 풍모이다. 남성 주인공들은 대
부분 그녀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부러움을 느끼거나 감탄하고 존경스러워하
기도 한다. 그러나 金庸 小說에서 인물들에게 나타나는 준수함, 문아함 등은 그
다지 긍정적인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ꡔ倚天屠龍記ꡕ의 宋靑書,
ꡔ天龍八部ꡕ의 慕容復, ꡔ笑傲江湖ꡕ의 林平之 등이 그러한 자질과 풍모를 가진 인
물들인데, 그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준수함, 문아함 등은 결국 신의 없음과
배신, 사악함 등을 예시하는 표지가 된다. 그래서 그녀들의 남장은 결국 어떤
파란과 사건 등을 예시한다.
그녀들은 강호에서 경원시되거나 거부되는 집단 혹은 가문의 자손이다. 黃蓉
은 東邪의 딸이며, 溫靑靑은 溫氏 가문의 자손이며, 趙敏은 元 汝陽王의 딸이며,
殷素素는 邪派에 속하는 天鷹敎의 교주 殷天正의 딸이고, 任盈盈은 日月神敎의
전 교주 任我行의 딸이다. 그녀들의 남장 혹은 변장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
한 방편이다. 남성 주인공과 그녀들의 만남은 그래서 어떤 커다란 사건의 예고
와 같다.
이들의 첫 만남은 보통 남성 주인공이 강호에 첫 발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宋偉杰은 남성 주인공의 그녀들과의 만남을 “金庸 小說의 ‘성장 주
제’에서 남성 협객이 아버지의 보호를 떠나 강호에 나감으로써 필연적으로 대면
해야 할 수많은 문제 중에서 가장 큰 것”153)이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강호인
들 특히 정파의 사람들에게 ‘요녀’ 혹은 ‘사교의 여자’로 규정되는 이 여성들은
‘남성 중심적 강호의 정상적 질서에서 벗어난’ ‘문제적 여성’이며, 이들과 대면하
게 된 남성 주인공 역시 자기 집단의 이탈자가 되기 때문이다. 宋偉杰은 남성
주인공과 이 여성들의 사랑은 남성 주인공의 성장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
153) “在金庸小說的“成長主題”里, 南俠脫離父親庇佑而獨闖江湖, 必將面臨很多問題, 而其
中最大者, 是遭遇一個女子, 甚至是遭遇一個正派人士眼中的“妖女”或者“邪敎女子.”” 宋偉杰, 앞의 책, p. 10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09
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즉, 해서는 안되는 사랑을 통해서 남성 주인공은 강호
의 기존의 正邪觀과 계급 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이로써 기존에 준수되던
가치관에 대한 회의와 검증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154) 宋偉杰은 남성 주인
공과 이 여성들의 결합 방식이 남성의 여성의 세계로의 진입이 아니라 여성의
남성의 본래 세계로의 진입이며, 이 두 세계로부터 모두 이탈하게 된 그들이 최
후의 귀속으로 삼는 것은 남성 협객의 전통 세계임을 인정하지만15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남성 주인공과 이 여성들의 사랑이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강호
의 규범을 수정하여 새로운 위치를 갖게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필자는 宋偉杰의 주장보다는 그의 인정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
는데, 金庸 小說에서 기존의 남성 중심적 강호의 규범이나 남녀의 등급 관계는
그것이 소설의 어떤 지향이나 주제와 관련하여 존재하고 형상화된다기 보다는,
무협소설 전개 상의 필요에 의해서 배치된 요소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생
각 때문이다. 金庸의 남성 주인공들은 기존에 정해진 어떤 법칙, 예를 들어 남
녀 관계에 대한 관습, 師承 관계, 正邪 관계 등의 앞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게 되
는데, 그들은 이것들의 부분적 위반을 통해 사건이나 갈등을 증폭시킨다. 그런
데, 일반적으로 무협소설 속의 법칙과 관습 등은 무협소설이 구성하는 강호 세
계 안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그래서 이 법칙과 관습의 준수와 위반
의 문제를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무협소설 안에서만 고민의 가치가 인정될
뿐이며, 이 고민도 실상은 이야기 전개 상의 요구와 관련되고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따라서 무협소설 속 주인공의 행위을 가지고 주인공의 가치관이나 사
상을 논하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156) 金庸 小說에서 金庸의 사상
이나 이념 등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주인공 등의 행위 방식을 통하는 것보다는
金庸의 사건과 인물 등의 의식, 무의식적 배치 방식과 그들의 귀결을 살피는 것
이 더 정확하다.
이런 의미에서 金庸 小說의 남성 주인공들이 강호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요녀,
154) 宋偉杰, 같은 책, p. 111
155) 宋偉杰, 같은 책, p. 113
156) 嚴家炎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金庸 연구자들은 金庸 小說에서 金庸의 가치관과 사
상을 읽어내려고 노력해왔다. 특히 嚴家炎은 金庸 小說 속의 현대의식에 대하여 논
의하였는데, 그가 논거로 제시하는 것은 대부분 金庸 小說 주인공의 행위 방식이
다. 하지만, 그는 그들 주인공들의 행위과 서사 전개의 필요성의 관계를 포착하지
못하였고, 또 그들의 행위 방식을 金庸 小說과 金庸의 가치관과 사상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1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악녀 식의 여성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시사이다. 그들은 이 여
성들을 통해서 강호라는 세계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며, 앞으로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그래서 남성 주인공에 있어서
이 여성들은 강호에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자 ‘시련’이다. 물
론, 이 관문과 시련은 그리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남
성 주인공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그것은 이 여성들을 요녀, 악녀에서
성녀, 동정녀로 귀환시킴으로써 가능하다.
곽정이 말했다. “우리 둘은 죽어도 헤어지지 않을거야.”
황용은 처량한 심정이었으나, 어떤 다짐과 맹세보다 더 중한 곽정의 이 말을
듣고,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굳게 맺어졌으니, 세
상에 더 이상 누구도, 또 어떤 힘도 둘을 갈라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맞아! 기껏해야 죽는 거지.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게 있을라구...’라고 생각하고는
곽정에게 말했다.
“정(靖)오라버니, 영원히 당신의 말에 따르겠어요. 우리 둘은 죽어도 헤어지
지 말아요.”
郭靖道: “喒倆死也不分開”
黃蓉本來心中凄苦, 聽了他這句勝過千言信誓․萬句盟約的話, 突然間滿腔都是信
心, 只覺兩顆心已牢牢結在一起, 天下再沒什麽人․什麽力道能將兩人拆散, 心想:
“對啦, 最多是死, 難道還有比死更厲害的?” 說道: “靖哥哥, 我永遠聽你話. 喒倆死
也不分開.”157)
남성 주인공들은 그녀들을 감복시키고 그녀들의 사랑을 쟁취함으로써 그녀들
을 자신의 동반자이자 조력자로 만든다. 그리고 이 여성들은 이를 통해 진입을
열망하던 강호의 세계에 안착하게 된다. 이로써 그녀들의 男裝과 妖女로서의 행
위는 끝이 나고, 그녀들은 순수한 여성으로서의 신분을 되찾게 된다. 물론, 이
여성들은 이후에도 자신들의 기질과 개성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는데, 그녀들이
잠시나마 악녀적 본성들을 발동하는 것은 남성 주인공의 사랑을 의심하게 될
때이다.
“張無忌, 당신은 이 요녀의 꾀임에 빠져 결국 날 버릴 셈인가?”…
157) 三聯本, ꡔ射鵰英雄傳ꡕ, 第2卷, p. 410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11
“가려거든 다시 돌아올 생각은 말아라!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를 빌겠다.”…
周芷若은 머리에 쓰고 있던 관을 벗어 한 손으로 관의 꼭대기에 있는 구슬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관을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손에 쥐고 있던
구슬을 짓이겼다. 구슬은 가루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나 周芷若이 오늘의 치욕을 갚지 않는다면 이 구슬과 같은 꼴이 될 것이
다!”
“張無忌, 你受這妖女迷惑, 竟要舍我而去麽?”…
“你去了便休再回來, 只盼你日後不要反悔.”…
說着揭下頭頂珠冠, 伸手抓去, 手掌中抓了一把珍珠, 抛開鳳冠, 雙手一搓, 滿掌
珍珠盡數成爲粉末, 簌簌而落, 說道: “我周芷若不雪今日之辱, 有與此珠.”158)
그녀들을 다시 악녀로 만들었던 것이 남성 주인공의 사랑이었듯이, 그녀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 또한 남성 주인공의 사랑이다. 남성 주인공의
사랑은 그녀의 정체를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진다. 그녀들은 남성 주인공의 사랑
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악녀에게 가해지는 처벌을 피할 수 있었으며, 행복한 결
말을 맞이하게 된다. 남성 주인공의 사랑은 그녀들의 활약에 대한 보상인 셈이
다. 사랑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들은 무협소설 속에서 조역자의 역할에 머무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지만, 이로써 그녀들은 비극적 최후를 피해갈 수 있었다. 그
녀들은 남성 협객의 세계에 안착하여 그곳을 자기의 귀속처로 삼는 것, 그리고
金庸의 小說이 훌륭한 애정소설이라는 평가를 부여받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金庸은 대체로 여성인물들에게 동정적이다. 그는 여성인물을 보호하고, 그녀
들에게 최대한의 자비를 베풀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이는 분명한 전제를 조건
으로 한다. 그것은 그녀들이 남성의 질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기꺼이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金庸은 그의
여성들에게 최대한의 동정과 자비를 베푼다. 여기서 金庸의 남녀관이 드러난다.
그는 여성을 사랑스러워하고, 여성을 동정하고, 여성에게 자비를 베풀고자 하지
만 여성을 남성과 같은 지위에까지 올리려 하지는 않는다. ꡔ碧血劍ꡕ, ꡔ鹿鼎記ꡕ
에서 등장하는, 당대 최고의 미인이자 金庸 小說 중 최고의 미인으로 손꼽히는
陳圓圓과 ꡔ天龍八部ꡕ의 段正淳의 처리에서 그것은 분명히 드러난다. 段正淳은
희대의 바람둥이다. 그는 준수한 외모와 능란한 언변으로 뭇 여성과 사랑을 나
158) 三聯本 ꡔ倚天屠龍記ꡕ, 第4卷, pp. 1304-1305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1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눈다. 그의 애정 행각은 ꡔ天龍八部ꡕ의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단서이며, 그 때문
에 수많은 비극적 사건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는 그에 따른 어떠한 책임도 추
궁 당하지 않으며, 그에게 사랑의 배신을 당한 여인들은 그를 증오하지만 그의
부드러운 말 한 마디에 다시 부드럽고 순정적인 여인으로 변해버린다. 그의 연
인들은 그의 사랑 앞에서는 거의 백치가 되어 버린다.
이에 반해, 陳圓圓은 천하 제일의 미모 때문에 나라를 혼란케 한 여인으로 등
장한다. 金庸은 吳三桂가 청군을 중원으로 끌어들인 이유를, 李自成에게 빼앗긴
애첩 陳圓圓을 되찾기 위한 것으로 서술하며, 李自成의 군대가 북경을 함락한
후 약탈과 횡포를 일삼게 되는 것도 李自成이 陳圓圓에 정신을 빼앗겨 이들을
통솔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서술된다. 陳圓圓은 본의 아니게 중원이 오랑캐의 수
중으로 들어가게 한 장본인이 된다. 또 그녀는 ꡔ鹿鼎記ꡕ에서 吳三桂와 李自成이
그녀 때문에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일 때에 그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는 유
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吳三桂가 비열하고 야비한 민족의 배신자이지만 자
신의 남편이라는 점 때문에 그를 배신하지 못하고, 李自成에 대해서는 호방하고
남자다운 면모에 이끌려 그에게 동정심을 갖게 된다. 그녀의 미모와 그녀의 유
약함은 그녀를 비극적 인물이 되게 하였는데, 그녀는 이러한 자신을 처지를 한
스럽게 여기면서도 이에 대해 스스로 자책한다.
“이 구절은, 숭정 황제께서 돌아가시고, 平西王(吳三桂)과 만주족 청병이 연
합하여 李自成을 패퇴시키고 북경에 입성했던 그 해의 이야기입니다. 관병들은
황제를 위해서 상장을 달았다지요. 그러나 平西王이 출병한 것은 저 이 불길한
사람 때문입니다.”…
“李自成은 나를 빼앗았고, 후에 平西王은 다시 나를 빼앗았지요. 저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에 불과합니다. 힘이 센 자가 차지하는 거지요.”…
“사람들은 제가 妖女여서 대명의 강산을 그르쳤다고 욕을 하지요.”
“這是說當年崇禎天子歸天, 平西王和滿淸聯兵, 打敗李自成, 攻進北京, 官兵都爲
皇帝戴孝. 平西王所以出兵, 却是爲了我這不詳之人.”…
“李闖把我奪了去, 後來平西王又把我奪回來. 我不是人, 只是一件貨色, 誰力氣
大, 誰就奪去了.”…
“世人罵我紅顔禍水, 誤了大明的江山.”159)
159) 三聯本 ꡔ鹿鼎記ꡕ 第4卷 p. 1233-123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13
金庸이 段正淳의 다정함을 그의 풍류인 것처럼 그려냈다면, 陳圓圓의 다정함
은 그녀의 비극적 원인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한번도 사랑에 있어서 주동적이지
못했고, 언제나 권력자들의 욕망의 대상이었지만, 그녀는 그들의 욕망이 그녀에
게 가한 억압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안주하려 한다. 金庸이 陳圓圓에게
동정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녀는 주어진 운명에 최대한 순
응하는 순종적인 여성이다. 그녀는 남성들의 억압에 대해서 전혀 반항하지 않으
며, 그들의 질서에서 벗어날 생각 역시 전혀 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의 노예
인데, 여기서 ‘사랑’이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소유하기 위한 하나의 속임수
이다. 그런 의미에서 金庸이 그녀에게 부여하는 동정심은 허구적이다.
金庸이 여성에게 행하는 최대한의 예우가 그녀들에게 동정심과 자비를 베푸
는 것이라면, 이것이 가능한 것은 여성이 남성의 품안에 있기 때문이다. 남성의
질서와 권위 안에 여성이 존재할 때 그 여성은 최소한의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은, 金庸이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남성이라 할지라도 그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경우에 처벌과 비난의 대상
이 된다. ꡔ笑傲江湖ꡕ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분리와 구분을 강조한다. ꡔ笑傲江
湖ꡕ의 최고의 무공인 葵花寶典, 辟邪劍法은 남성을 제거해야만 온전히 수련할
수 있는 ‘사악한’ 무공이다. 東方不敗는 葵花寶典을 익힘으로써 차츰 여성으로
변화되며, 林平之와 岳不群 역시 辟邪劍法을 익히기 위해서 남성이기를 포기한
다. 이들이 남성이기를 포기하는 이유는 무림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이
며, 또 부모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성을 버리는 대가
로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로써 이들은 후안무치한 인
간으로 그려진다.
그들은 날선 목소리로 지껄이는 東方不敗의 이 말을 듣자 점점 손에 땀이 났
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었고, 그것으로 보아 그의 정신은 멀쩡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의 기이한 모습은 그들을 갈수록 두렵게 했다.

“수염이 쑹쑹난 남자도 상관없고, 여우같은 계집도 상관없어, 내가 제일 혐오
하는 것은 여장한 놈팽이이지” …
“됐어요, 이 자는 사람이 아니라, 요괴예요. 아, 어릴 적에 그는 날 데리고 산
에 가서 과일도 따주며 놀아주곤 했는데... 오늘 이렇게 변해서 이런 최후를 맞
다니..”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1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衆人聽他尖着嗓子說這番話, 漸漸地手心出汗, 這人說話有條有理, 腦子十分淸楚,
但是這副不男不女的妖異模樣, 令人越看越是心中發毛. …
“是須眉男汗也好, 是千嬌百媚的姑娘也好, 我最討厭的,是男扮女裝的老旦.” …
盈盈身子一顫, 低聲道: “別說啦, 這不是人, 是妖怪, 唉, 我小時候, 他常抱着我
去山上采果子游玩, 今日却變得如此下場.”160)
東方不敗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혐오는 인간의 본성을 버린 때문인데, 그것은
남성을 포기하고 여성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거세를 자행하여 남성을 버리고
여성이 된다는 것은 남성이기 때문에 거세공포에 시달려야 하는 남성들에게 있
어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사악하고 패륜적인 행위이며, 남성의 권위를 스
스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처벌이 불가피한데, 岳不群과 林平
之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東方不敗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불러들인 당연한 귀결이다. 물론, 여기서도 東方不敗는 여성으로서, 남
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가짐으로써 비참한 최후보다는 비극적이고 장렬한 최
후를 맞게 된다.
3) ‘陽剛中國’의 상상
무협소설에서 강호는 ‘해결해야 할 사건’이 존재하는 곳으로 출현한다. 이 ‘문
제적 시공간’에서 문제를 제거하는 것, 그래서 위태한 강호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바로 무협소설의 이야기 과정이다. 그리고 金庸이 강호의 문제로서 제기한
것은 역사 상의 과오에 집중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무협소설 속에서 과거의 역
사를 재구성한다. 하지만, 金庸이 역사를 다루는 방식은 역사를 강호화하는 것
에 멈출 수밖에 없다. 그는 실제의 사건들을 부분적으로 다시 쓰고, 재해석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으로 역사적 현실은 뒤바뀌지 않는다. 金庸 小說이 결말로
갈수록 긴장감과 재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역
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해석할 수는 있었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탈할 수는 없
었다. 이것이 무협소설에서 역사를 다루었던 金庸의 딜레마이다.
그가 역사에 대해서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강호의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
이었고, 강호를 통해서 중국에 대해 상상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이 상상을 통해
160) 三聯本, ꡔ笑傲江湖ꡕ, 第4卷, pp. 1223-1229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15
역사적 상처를 부분적이나마 치유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상상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협객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었다. 협객은 실제 역사의 시공
간 속으로 들어가서 강호라는 상상의 시공간을 창출해내는 주체이다. 그는 역사
의 현실을 뒤바꿀 수는 없었지만, 역사적 현실 속에서 새로운 시공간과 세계를
구성해낼 수는 있었다. 말하자면, 이 새로운 시공간과 세계 즉 강호는 역사적
현실에 대한 상상적 대체물이다. 근대를 거치면서 생겨난 과거에 대한 자괴와
반성은 강호라는 시공간을 구축을 통해 자기 정체와 역사에 대한 재사고와 재
해석으로 변모하게 된다.
중국 근대의 역사는 부권 혹은 남성의 상실과 훼손이다. 서구 제국주의에 의
한 중국의 침탈은 중국의 남성적 권력을 무력화시켰다. 근대 이후 성행한 무협
소설은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남성으로서의 자질과 지위를 되찾기 위한 시도
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한족이며, 남성 협객이다. 그들은
과거에서 이민족 집단을 불러들여 적의 편에 세움으로써 자기를 주체화하고 확
인할 수 있었으며, 여성을 강호에 호출하여 자기 질서 내의 위계를 재건하였다.
이는 무협소설에서 중요한 관습이 되었다. ‘俠骨柔情’이라는 무협소설에 대한 지
칭은 로맨스, 여성의 개입으로 陽剛 위주의 무협소설이 외적으로 유연화되었음
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협소설이 기대고 있는 남성 중심적인 강
호의 지배적 가치와 질서에 어떤 변화가 발생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성과 로맨스의 개입은 강호의 속성을 은폐시켰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로써 남성 중심적 사고와 질서는 보다 은밀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전파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었다. 金庸 小說은 이러한 주장을 입증해주는 좋은 예이다.
金庸 小說에서 여성이나 로맨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위에서 거론한 것처럼 대
단히 크다. 그의 소설은 한편의 애정소설처럼 읽히기도 하며, 등장하는 여성들
역시 단순히 미인으로만 형상화되지 않는다. 그들은 다양한 재능과 뛰어난 지략
의 소유자들이며, 개성적이며 활동적이다. 때로 그녀들은 남성 주인공과의 관계
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金庸은 이들 여성들에게 비교적
관대하며, 동정적이다. 金庸 小說의 여성들에게 비극적 최후는 있지만, 비참한
최후는 없다. 蕭峯의 손에 죽어간 康敏을 제외하고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 여성
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리 사악한 요녀와 악녀들이라 할 지라도 金庸은 그녀
들을 용서하려 노력한다. 그녀들에게 이유를 부여하고, 인간적 면모를 발견하고
자 하는 것은 그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점이 金庸 小說의 여성에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1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대한 전유 방식을 분명히 드러낸다. 金庸이 여성에게 자비와 동정을 베풀 수 있
었던 것은 그 여성들을 남성의 세계로 끌어들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는 어
떤 여성, 즉 무자비할 정도로 잔인한 악녀라 할지라도 그녀들을 남성의 세계 속
에 끌어들인다. 이로써 그녀들에 대한 자비와 동정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金庸
小說이 남성 중심적 관념과 기존의 남녀의 등급 관계에 대해서 부분적이나마
개조하고 수정하였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로 金庸이 서 있는 자리는 분명하다. 그는 모든 妖女와
惡女를 동정하고 용서할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서 聖女와 童貞女를 숭배하고 욕망한다. 이 자리는 남성이 위치하는 자리이며,
위치하기를 꿈꾸는 자리이다. 이 자리에서 金庸은 자신의 남성 주인공과 (남성)
독자들과 시선을 공유한다. 그런데, 이 자리는 金庸이 역사를 바라보는 자리이
기도 하다. 그런데 金庸이 이 자리에서 바라본 역사는 과거의 치욕과 오명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역사이다. 金庸이 여성들을 만들고 전유하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실재 상황을 상상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근대 진입 이
후 줄곧 자신들의 괴롭혔던 거세의 경험, 즉 제국주의에게의 패배라고 하는 실
재의 역사 상황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자 했던 것인데, 그것은 金庸 小說에서
여성의 전유라고 하는 남성성의 확인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에게 있어서 여성의
전유란 여성을 전유할 수 있는 능력을 드러내 보이는 전시(展示) 행위이고, 이
런 의미에서 그것은 남성성의 확인이자 그것에 대한 공포(公布)이다. 金庸은 ‘陽
剛中國’의 상상을 陽剛의 강호를 통해 구현해냈고, 陽剛의 세계로서의 강호의
구축은 여성에 대한 전유를 통해 완성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金庸의 여성에 대한 전유가 여성의 굴복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여성에 대한 숭배와 희생, 동정과 자비
라고 하는 비교적 온화하고 유연한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金庸의 남성 중심적 사고의 은폐 전략 혹은 변형된 남성 중심주의라는 점은 분
명해 보이는데,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방식의 채택이, 金庸이 이러한 방식을 통
해 그의 여성들 특히 요녀나 악녀까지도 남성의 세계로 귀환하게 함으로써 강
호가 지향하는 陽剛의 위력과 포용력을 확대시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으
로 수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그가 상상하는 ‘陽剛中國’에 호응하게 하였다는 점
이다. 즉 金庸의 ‘陽剛中國’의 상상이 가지는 힘은, 남성과 여성의 경계와 위계
를 모호하게 드러내는 金庸의 방식이 얻어낸 효과이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17
4. ‘文化中國’의 상상
1) 金庸 小說과 傳統文化
陳平原은 무협소설이 얼마만큼의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갖는가 하는 문제는
개별 작가의 문화적 소양과 창작태도에 달린 문제란 점을 분명히 하였지만161),
무협소설을 빌어 중국인과 중국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재미있는 시도라는 사실
또한 인정하였다.162) 그는 중국인들의 관념과 중국문화의 정신이 무협소설 속의
협객, 그리고 협객이 사용하는 무기와 무공 등에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우선, 협객은 일반인들의 구원에의 욕망과, 현재적 삶과 그 구속, 구체적으로는
국가의 제도와 법률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인들, 특히 중국의 문인들이 협객을 그토록 좋아하고 또 끊임없이 가송한 이유
이다.
그리고, 협객의 이미지와 관련하여 陳平原이 주목한 것은, 협객의 주요한 무
기가 劍이라는 점이다. 즉, 무협소설에서 劍은 건공입덕의 꿈과 낭만, 호방한 기
질의 표현임은 물론, 협객의 심미성을 대변해줌으로써 협객을 표상하는 무기로
기능한다. 이는 검이 辟邪라고 하는 도교적 관념과 결합되어 있고, 따라서 神聖,
正義, 陽剛 등을 표상하는 것으로서의 문화적 의미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협소설에서 협객과 검의 대응은 무협소설 속의 대결과 결투가 단순한
폭력의 향연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어떤 정신적 경지의 지향과도 관련되고 있음
을 드러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협소설 속에서 협객이 주로 검을 주요한 무기
로 사용하는 것이나, 암기와 독약의 사용이 저열하고 사악한 수단으로 치부되는
것, 氣功과 內功 등이 무협소설에서 새로운 무공으로 개발되는 것 등이 바로 그
러한 예이며, 한편으로 이것은 무협소설에 윤리적 내함과 문화 정신이 삼투한
결과이기도 하다.
陳平原은 이러한 원인을 무협소설 창작자와 소비자들이 공히 무협소설의 ‘武’
에서 ‘文’을 읽고자 하는 희망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그래서 결국 좋은 무협소설
이란 결투에서 ‘인생’을 읽어내고, ‘武’에서 ‘文’을 표출해내는 것들이며, 무협소설이
161) 陳平原, ꡔ千古文人俠客夢 -- 武俠小說類型硏究ꡕ 人民文學出版社 1992. 3. p. 213
162) 陳平原, 「武俠小說中的“劍”」, ꡔ文學史的形成與建構ꡕ, 廣西敎育出版社, 1999, p. 21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1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수많은 독자를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 陳平原은 1920~30년
대 무협소설의 주요한 독자가 소시민이었는데 반해, 1960~70년대 이후에 대학
교수, 대학생 등이 무협소설을 즐겨 읽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
였고, 이 현상을 대중문화가 文人文化로 침투해가는 것, 그리고 동시에 무협소
설이 더 이상 대중문학으로만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로 풀이한다.
陳平原의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무협소설 작가로서 金庸과 梁羽生 등
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전통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에 대한 활용 능력을
갖춤으로써 일반적인 무협소설 작품과 작가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피할 수 있
었으며, 그들의 무협소설을 대중문학 이상의 것으로 평가받게 한 몇 안 되는 무
협소설 작가들이다. 陳墨은 이들의 작품이 역사학, 지리학, 민속학, 종교학 등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여, ‘중국 전통문화의 소백
과사전’163)이라고 칭하였다. 물론, 이 두 작가의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 정도를
따지자면, 梁羽生이 金庸보다는 한 수 위로 평가된다. 梁羽生은 佟碩之란 이름
으로 발표한 「金庸梁羽生合論」에서 金庸의 고전 시문 활용에서 드러난 오류 등
을 지적하였고, 金庸이 전통문화보다는 오히려 영화 등 서구적 문예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지적하였지만164), 그렇다고 해서 金庸의 전통문화에 대한 이
해와 지식이 미천하다고 생각할 근거는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전통문화의
제 특징들을 활용하여 무협소설의 재미와 품위를 동시에 획득해내는 면에 있어
서 金庸의 성취가 梁羽生의 성취보다 크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어쨌든 金庸이나 梁羽生의 예와 陳平原의 주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전통문
화(전통 사상이나 윤리 의식까지를 포함한)의 활용이 무협소설을 저급문학, 또
는 폭력문학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주로 문학적 평가에 입각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
은 폭력과 살상을 기본으로 하는 무협소설이라는 장르가 비인간적이고 비문학
적인 소재와 내용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정식 문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
가 무엇인지를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과 주장은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金庸에게 있어서 전통문화의 활용을 문학적 차원에서만
살피는 것은, 金庸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것의 활용을 통해 거둘
수 있었던 성과에 비추어 볼 때 극히 일부만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필
163) 陳墨, ꡔ金庸小說與中國文化ꡕ 金庸小說硏究系列 百花洲文藝出版社 1999. 1, p. 3
164) 佟碩之, 「金庸梁羽生合論」, ꡔ金庸茶館 5ꡕ, 中國友誼出版公司, 1998 참조.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19
자의 생각이다. 필자는 앞에서 과거 중국과 그 역사에 대한 상상에서 金庸이 딜
레마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여성을 전유하
고 있음을 지적하였는데, 金庸에게 있어서 전통문화의 활용과 집착 역시 동일한
필요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중국의 전통문화를 부각시킴으로써 자신의 역사 상
상의 딜레마를 탈피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즉, 金庸은 정치적 차원에서의 상실
을 문화를 부각시킴으로써 보충하려 하였는데, 金庸의 강호가 하나의 문화 공간
화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陳墨이 ‘金庸의 小說은 중국인의 민족문화와 정신세계의 감춰진 마음의 현을
울렸으며’, ‘金庸의 무협소설을 대하는 것은 실제로 중국문화의 기이한 장관을
대하는 것’165)이라고 평가하고, 馮其庸 역시 金庸 小說을 ‘중국문화의 자랑이자,
중국문학의 자랑’166)이라고 보는 것처럼, 그의 의도는 대체로 성공적으로 실현
되었다. 金庸은 적지 않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작품을 중국 문화의 정수
를 체현해낸 작품으로 인식하게 하고, 나아가 Meir Shahar가 지적한 대로, 그들
로 하여금 金庸이 묘사해낸 중국문화 자체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표출하게 하였
다.167) 즉, 金庸이 상상해낸 ‘文化中國’은 적지 않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그것을
자신들의 표상으로 삼게 하였던 것이다.
2) 江湖의 文化 空間化
金庸 小說이 장악하고 활용한 전통문화의 요소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전통 사상과 관념․도덕 등의 운용과 흡수이며, 둘째는 전통문화
속의 예술 장르 및 성과물 등의 도입과 운용, 셋째는 전통 문자 사용 방식의 채
택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金庸 小說에서 전통문화의 어떤 요소가 활
용되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으며, 그것은 金庸
이 상상해내는 강호 혹은 중국을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보
는 것이다. 전통문화를 활용함으로써 金庸의 무협소설이 일반적인 대중소설의
165) ‘它(金庸小說)能撥動中國人的民族文化精神世界的隱秘的心弦’, ‘你面對金庸的武俠小
說, 實質上是面對着一種中國文化的奇觀’, 陳墨 위의 책, p. 6와 p. 7에서
166) ‘這應該說是中國文化的驕傲, 是中國文學的驕傲!’, 馮其庸, 「ꡔ金庸硏究ꡕ序」, 王敬三
編, ꡔ閱讀金庸世界ꡕ, 上海書店出版社, 2000. 8, p. 3.
167) Meir Shahar, 「金庸武俠小說-以文化爲武器」, ꡔ2000’ 北京 金庸小說國際硏討會論文
集ꡕ(北京大學出版社, 2002년 11월 출간), p. 58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2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수준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지적이지만, 주로 문학이라는 문
제 의식의 틀 내에서 의미가 있을 뿐이다. 필자가 볼 때, 전통문화의 활용과 재
현이 얻어낸 궁극적인 효과는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과거의 역사와 현재
적 결핍 상황을 망각하거나 혹은 그것을 대체할만한 표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다. 그리고, 그것은 일단 金庸의 ‘강호’가 폭력과 살상의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심미적이고 도덕적이며, 문화적인 공간으로 재구성되는 것으로부터 시작
된다. 즉, 전통문화와 결합하면서 金庸의 강호는 文化 空間化된다. 이제 金庸의
강호는 폭력과 피로 얼룩진 공간이 아니라 심미적이고 고상하며 심지어 도덕적
이고, 철학적이기까지 한, 문화 공간으로 탈바뀜한다. 위에서 말한 金庸 小說이
장악하고 활용한 전통문화의 세 가지 요소는 바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
다.
강호의 문화 공간화는 우선적으로 폭력의 공간으로서의 강호의 이미지를 탈
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金庸은 이를 위해 크게 두 가지 방식을 취
한다. 하나는 강호를 심미화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호를 도덕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金庸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는 결국 서로 통합되는 것인데, 이 두
가지 방식을 통해서 金庸은, 무협소설에서 피할 수 없는 폭력의 사용, 대결과
살상 행위를 배제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무협소설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金庸이 강호를 심미화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크게 의지했던 것은, 중국 전통문
화의 예술 장르와 그 성과물을 작품 속에 도입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일단, 그
는 다양한 詩詞 등을 작품 속에 직간접적으로 인용하고 있으며, ꡔ鹿鼎記ꡕ의 회
목을 모두 査愼行의 싯구에서 따온 것과 같이 싯구 혹은 對聯을 回目으로 이용
하기도 한다. 그밖에 書․畵․祺․樂․醫術․氣功․點穴 등의 내용을 풍부하게
활용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단지 작품 내에 전시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즉,
金庸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전통문화에 대한 지식들은 무공과 초식의 개발, 대
결과 결투의 묘사 등을 위해 이용되는데, 이 부분에서 여타 무협소설 작가와 구
별되는 金庸의 탁월한 능력이 발휘된다.
金庸은 무공의 설계에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실제 무공의 초식과 원리 등에
기반하고 있지만, 대부분 그의 소설 속의 무공은 상상력에 기반한 것이며, 이때
金庸이 가장 많이 의지하는 것은 중국의 고대 전적과 문학 작품 등이다.
내 소설 속의 초식은 대부분 내가 생각해낸 것이다. 일단 인물이 어떤 동작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21
을 필요로 하는가를 보고, 성어 혹은 시사, 사서오경 속에서 적당한 글귀를 따
서 초식의 이름은 삼는다. 적당한 것을 찾지 못할 경우, 내가 4개의 글자를 만
들어 붙였다. 어쨌든간에 초식의 이름이라는 것은, 반드시 이미지화를 이루어야
하고, 그러면 되는 것이다. 중국 무술의 일반적 초식은 모두 이미지화된 것이
다. 그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그 동작을 상상해낼 수 있다.
我的小說里面的招式, 大多數是我自己想出來的, 看看當時角色需要一個什麽樣的
動作, 就在成語里面, 或者詩詞與四書五經里面, 找一個適合的字彙來作那個招式的
名字. 有時找不到適合的, 就自己作四個字配上去. 總之那招式的名字, 必須形象化,
就可以了. 中國武術一般的招式, 總是形象化的.168)
예를 들어 ꡔ書劍恩仇錄ꡕ에 나오는 ‘庖丁解牛’ 무공, ꡔ射雕英雄傳ꡕ에서 洪七公
의 상승무공인 降龍十八掌, ꡔ天龍八部ꡕ의 凌波微步, ꡔ連城訣ꡕ의 唐詩劍法 등은
ꡔ莊子, ꡔ易經ꡕ, ꡔ洛神賦ꡕ등 중국 고전과 문학 작품에서 착안해서 만들어낸 무공
들이다.
‘고홍해상래, 지황부감고’ 이 두 초식은 ‘바다 위를 나는 기러기는 육지의 작
은 연못은 절대로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시구는 당에서 재상을 지
냈던 장구령이 지은 것으로, 그는 권력과 이익을 탐하지 않는 자신의 청고함을
비유하였다. 그것을 검법으로 만들었으니, 그 동작은 주위를 둘러보는 가운데
의연하고 당당한 기품이 묻어나도록 해야한다.
這兩招‘孤鴻海上來, 池潢不敢顧’, 是說一只孤孤單單的鴻鳥, 從海上飛來, 見到陸
地上的小小池沼, 並不棲息. 這兩句詩是唐朝的宰相張九齡做的, 他比擬自己身分淸
高, 不喜跟人爭權奪利. 將之化成劍法, 顧盼之際要有一股飄逸自豪的氣息.169)
한편, 金庸은 무공의 창시와 개발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대결과 결투의 묘사에
있어서도 전통문화의 유산을 활용하였다. 무협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대
결과 결투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서 金庸이 특히 고심한 것은 대결과 결투를 어
떻게 미적으로 묘사해내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書․畵․祺․樂 등을 무공
과 결합시키고, 그 원리를 이용하여 대결과 결투를 묘사해냄으로써 그것을 최대
한 미적으로 승화시켰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각적으로 진행되는 대결과 결투를
문자화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은 그 전달에 있어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168) 翁靈文, 「金庸暢敍平生和著作」, ꡔ金庸茶館 3ꡕ, 中國友誼出版公司, p. 158
169) 三聯本, ꡔ連城訣ꡕ, p. 25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2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것이기도 하지만, 金庸은 이러한 한계를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였다. 그는 문자
화된 방식으로 표현되는 대결과 결투가 오히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독
자들로 하여금 감성적으로 그것을 향유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그의 무공과 결투의 묘사는 시각적인 감상뿐만 아니라
시적이고 감성적인 감상이 극대화되도록 꾸며진다.170)
ꡔ笑傲江湖ꡕ에서 등장하는 江南四友의 존재는 金庸 小說의 전통문화의 활용의
집약이자 극치이며, 전통문화가 어떻게 金庸 小說을 심미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江南四友는 黃鐘公, 黑白子, 禿筆翁, 丹靑生 4인인데, 그들은 東方
不敗의 지시에 따라 杭州 西湖의 지하 감옥에 감금된 任我行을 감시하는 임무
를 띠고 은거 중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日月神敎 내의 권력 투쟁에 염증을 느끼
고 강호를 떠나 자기들만의 기호를 추구하기 위해 이 임무를 자처하였다. 이 네
사람은 그들의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각각 음악, 바둑, 서법, 회화에 심취해 있었
다. 令狐冲과 이들의 만남은 任我行을 구출하려한 向問天의 계획에 의해 이루어
진다. 向問天은 令狐冲으로 하여금 그들 네 형제와 대결을 벌이도록 하는데, 江
南四友는 각각 자신의 무기를 이용하여 令狐冲에 맞선다. 丹靑生은 검술에 뛰어
나서 令狐冲과 검으로 대결하였고, 서법에 심취해 있던 禿筆翁은 判官筆을, 바
둑에 조예가 깊은 黑白子는 자석으로 만든 바둑판을 이용하여 令狐冲의 검술에
맞섰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黃鐘公은 令狐冲에게 퉁소를 들게 하고, 자신은 瑤
琴을 무기로 대결을 펼친다. 이때 金庸은 江南四友로 하여금 자신의 무기에 걸
맞는 초식과 무예를 부여하였으며, 각각의 대결을 그에 걸맞은 표현 방법으로
묘사해낸다.
170) 金庸의 小說은 숱하게 영상 매체로 재현되었다. 金庸 小說의 영화화나 드라마화는 金庸 小說을 원작을 삼는다는 이유만으로 관객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金庸
의 독자들이 영상화된 金庸의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인데, 그들은 실제
배역을 맡은 배우가 金庸 小說의 등장인물의 성격과 외모를 얼마만큼 훌륭하게 재
현해냈는지, 혹은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드라마적으로 어떻게 해석
하고 재구성해내는지 등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金庸 小說을 원작으로 한
영상물들에게 찬사가 쏟아지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그것은 金庸 독자들의 金庸 小
說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추종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독
자들에게 시화된 상태로 상상된 소설 속의 인물들, 행위들이 영상으로 구체화되면
서 고정되고, 속화되기 때문이다. 영상으로 재현된 대부분 金庸의 小說들은 金庸의
원작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냈다는 의미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들은 시각적인
재현에만 집착하면서 金庸 小說이 시적, 감성적으로 재현되고, 감상된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23
“… 내 이 필법은 ꡔ배장군시(裴將軍詩)ꡕ라고 한다. 안진경이 쓴 시첩(詩帖)에
서 변화되 나온 것으로, 모두 스물 세 자이며, 매 글자는 삼 초(招)에서 16초까
지 모두 다른 초식을 담고 있다. …”
독필옹은 판관필을 들어 영호충의 왼쪽 뺨 쪽에 연속 세 차례 찍기 공격을
가했는데, 이는 “배(裴)” 자의 처음 세 필획이었다. 하지만 이는 허초였다. 높이
들려진 판관필이 밑을 향하여 쭉 내려그어질 참이었다.
영호충은 장검을 뽑아서 그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그의 오른 쪽 어깨를 찔러
들어갔다.
“… 我這一套筆法, 叫做ꡔ裴將軍詩ꡕ, 是從顔眞卿所書詩帖中變化出來的, 一共二
十三字, 每字三招至十六招不等. …”
禿筆翁大筆一起, 向令狐冲左頰連點三點, 正是那“裴”字的起首三筆, 這三點乃是
虛招, 大筆高擧, 正要自上而下地劃將下來, 令狐冲長劍逮出, 制其機先, 疾刺他右
肩.171)
흑백자는 또 한 차례 막은 다음에 생각했다. “반격을 하지 않으면 선(先)을
잡을 수 없겠군!”
바둑에서 선수(先手)가 중요하듯이 무공의 대결에서도 선수가 중요하다. 흑백
자는 바둑의 이치에 정통해서 선수 잡는 법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는 바둑판
을 들어 영호충의 오른 쪽 어깨를 향해 내려쳤다. 이 바둑판은 가로세로 두 척
의 정방형에, 두께는 일촌이나 되는, 엄청나게 묵직한 병기였다. 만약 이것이
칼을 때린다면, 바둑판에 자성이 없다고 할지라도 검이 두 동강나지 않을 리
없었다.
黑白子又是一封, 心想: “再不反擊, 如何爭先?” 下棋講究一個先手, 比武過招也
講究一個先手, 黑白子精于棋理, 自然深通爭先之道, 當卽擧其棋枰, 向令狐冲右肩
疾砸. 這棋枰二尺見方, 厚達一寸, 乃是一件甚爲沉重的兵刃, 倘若砸在劍上, 就算
鐵枰上無吸鐵的磁性, 長劍也非給砸斷不可.172)
황종공이 말했다. “풍 노선생은 일대의 검호(劍豪)였지요. 저는 줄곧 그 분을
존경해왔습니다. 그 분께서 전수하신 검법이라면 반드시 보통이 아닐 것입니다.
풍소협! 자!”
영호충은 퉁소를 들어 가볍게 휘둘렸다. 바람이 퉁소의 구멍을 지나면서 부
드러운 소리를 발산해냈다. 황종공은 오른 손으로 금의 현을 튕기자 금의 소리
171) 三聯本 ꡔ笑傲江湖ꡕ 第2卷, p. 760
172) 위의 책, p. 763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2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가 울려 퍼졌고, 금의 머리 부분이 영호충의 오른쪽 어깨 쪽으로 향해 밀쳐 들
어왔다.
영호충은 금의 소리를 듣자 마음이 조금 흔들렸으나, 퉁소로 천천히 황종공
의 팔꿈치를 짚는 공격을 가했다.
黃鐘公道: “風老先生一代劍豪, 我向來十分佩服, 他老人家所傳劍法定是非同小
可. 風少俠請!”
令狐冲提起簫來, 輕輕一揮, 風過簫孔, 發出幾下柔和的樂音. 黃鐘公右手在琴弦
上撥了幾下, 琴音響處, 琴尾向令狐冲右肩推來.
令狐冲聽到琴音, 心頭微微一震, 玉簫緩緩點向黃鐘公肘後.173)
禿筆翁이 令狐冲과의 대결에서 顔眞卿의 필법에서 개발해낸 무공을 사용했듯
이, 黑白子는 바둑에서의 선수의 이치를 이용하여 令狐冲 대결하였으며, 黃鐘公
은 瑤琴에 내력을 주입하여 令狐冲과 대결하였다. 그런데, 이 대결들은 목숨을
건 대결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검술 혹은 무공의 고하만을 가리는 것으로 서로
만족할 뿐이다. 金庸은 인문적 가치를 체현하고 있는 전통문화를 살겁과 연결시
키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金庸이 차용하는 전통문화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함의를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말은 중국의 전통적인 도덕적 관념 자체 역시 金庸이 차용하는 전통
문화의 한 부분 속에 포함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金庸이 차용하는 전통문화가 무협소설이 상실하기 쉬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내함들을 보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또 반대로
생각할 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들은 金庸 小說의 미적 가치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증해주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金庸 小說에서 도덕
적인 것과 미적인 것은 동보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그것은 金庸 小說이 차용하
는 중국의 전통 관념과 미적인 것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林以亮이 강조하는 것처럼174), 金庸 小說에는 중국의 전통 사상과 관념, 도덕
173) 위의 책, p. 774
174) 林以亮은 金庸과의 인터뷰에서, 해외에 거주하는 수많은 학자와 학생들이 金庸 小
說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밝히면서, 그 이유를 金庸의 小說이 ‘줄곧 중국의
유가, 도가, 불가 등의 정신과 경지를 논하고 있다는 점(你的小說, 經常談到中國儒
家․道家․佛家的精神․境界)’, ‘또 중국 문화의 전통적 도덕 표준인 충, 효, 인, 의
를 거론하고 있다는 것(也經常講到中國文化的傳統道德標準: 忠, 孝, 仁, 義)’, ‘중국
문자의 우수함을 유지하고 있고, 매우 중국적이며, 일반적 문학 작품과는 달리 서
구화 문투가 거의 없다(仍然保留料中國文字的優點, 很中國化, 幷沒有太像一般文藝作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25
등의 흔적이 강하게 드러난다. 金庸은 儒佛道 사상과 관념, 전통적 윤리 의식을
소설의 기본적 정조로 채택하였고, 이것들은 각 소설이 지향하는 주제와도 연관
을 가진다. 물론, 金庸은 儒․佛․道 관념 중 어느 하나에 특별히 경도되는 경
향을 보이지 않으며, 작품 별로 각각의 사상적 관념들을 부각시킬 뿐이다. 예를
들어, ꡔ射雕英雄傳ꡕ과 같은 경우에는 輔國安民과 忠義라는 유가적 관념이 우세
하게 드러나고, ꡔ天龍八部ꡕ에서는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와의 관련성이
두드러지며, ꡔ笑傲江湖ꡕ는 도가적 자유와 낭만이 눈에 띈다. 하지만 金庸 小說
에서 전통 사상과 관념이 소설의 기본적 정조의 구성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며,
또 각 소설의 주제적 지향과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이 金庸이 각 사상에 정통해
있으며, 작품 속에서 그것의 가치를 고취시키거나 또 작품을 통해서 그것을 전
파하려 한다는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金庸은 작품의 내용과 주인공의 성격의
구성을 위해 그것들을 선택적으로 활용할 뿐이며, 그 개별적인 관념과 사상은
주인공 협객의 성격과 기질 등에 의해 선택적으로 부각될 뿐이다.175) 즉, 金庸
은 폭넓은 의미에서의 미적 효과의 창출을 위해 전통 사상과 관념, 도덕 등을
이용할 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金庸 小說이 적지 않은 중국인들에게
전통적 사상과 관념을 계승하고 해석하며, 전파하는 텍스트로 읽힌다는 사실은
중요하게 고려될 사항이지만, 金庸 小說 속의 전통 사상 등이 일반화된 윤리의
차원과 심미적인 차원 이상의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또 어떤 의미에서 윤리적 차원으로 제시되는 전통 사상, 특히 유가와 불가의 내
용들 역시 심미적인 효과 창출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충과 효,
그리고 나라와 백성의 안위에 대한 근심 등은 金庸 小說에서 차용하는 유가적
관념의 실체이며, 인과응보와 살생의 금지 등은 金庸이 불가에서 차용하는 관념
의 실체인데, 이는 유가와 불가와 관련된 도덕적 윤리 그 자체를 넘어서지는 않
는다. 이 둘은 주인공의 협객이 가져야 할 태도이자 삶의 방식, 그리고 작품의
주제와 주로 연결되지만, 실상 金庸 小說에서 그것들은 무협소설 속의 주인공
혹은 세계에 가해지는 제약 혹은 금기로서 더 많이 기능한다. 그것들은 부정적
品造句的西洋化)’ 등에서 찾고 있다. 「金庸訪問記」, ꡔ金庸茶館 3ꡕ, 中國友誼出版公
司, 1998, p. 185
175) 陳墨은 「金庸小說主人公的人格模式及其演變」에서 金庸의 俠을 그의 성격과 지향에
따라 여섯 가지로 분류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儒家之俠: 陳家洛, 袁承志, 郭靖 2.道家之俠: 楊過, 張無忌 3.佛家之俠: 石破天, 段譽, 蕭峯 4.無俠(非俠): 狄雲, 李文秀, 5.浪子: 令狐冲 6.“反俠”(小人): 韋小寶, 陳墨, ꡔ孤獨之俠-金庸小說論ꡕ, 上海三
聯書店, 1999. p. 18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2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으로 깨어지고 위반됨으로써 이야기를 진행하게 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심미적
이고 오락적인 효과를 창출해낸다. 역설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도덕화된 유가와
불가의 사상은 간접적으로는 강호의 폭력성과 부도덕성을 상쇄시킴으로써 강호
의 폭력적 행위와 비도덕적 행위의 제시를 통한 오락적 효과의 달성을 도우며,
동시에 직접적으로는 제약과 금기로서 오락과 심미의 창출을 돕는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도덕적 윤리 개념과는 거리가 먼 도가적 사고는 金庸 小
說에서 그 자체로 심미적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은 도가에 내재된 형용모순
의 사고 방식 혹은 초월성을 지향하는 정신적 경지의 차용에서 이루어진다. 金
庸은 ꡔ神鵰俠侶ꡕ와 ꡔ笑傲江湖ꡕ에서 이 정신적 경지를 검과 무공에 빗대어 이야
기한다.
신조(神鵰)가 두 발톱으로 검총(劍塚)의 돌무더기를 파헤치자 얼마 되지 않아
가지런히 놓인 검 세 자루가 드러났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검 사이에 길다란
석편(石片)이 놓여 있었다. …
양과가 맨 오른쪽의 첫 번째 검을 집어 들자 검 밑의 돌 위에 두 줄로 새겨
진 다음과 같이 글귀가 나타났다.
“날카롭고 강하여 자르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약관 이전까지 이를 가지고서
하삭(河朔)의 군웅들과 최고를 다투었다(凌厲剛猛, 無堅不摧, 弱冠前以之與河朔
群雄爭鋒).”
다시 그 검을 보니, 4척의 길이에 푸른 빛이 번득이는 것으로 보아 이기(利
器)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검을 제자리에 놓고 옆의 길다란 석편을 집어 들었
는데, 석편 밑의 돌에도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자미연검으로, 삼십 세 이전에 사용하였다. 의로운 이를 다치게 한 탓으로
계곡에 던져버렸다(紫薇軟劍, 三十歲前所用, 誤傷義士不詳, 乃棄之深谷).”
… (두 번째의) 검 밑에도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무겁고 뭉툭하니 대교불공(大巧不工)의 경지의 것이다. 사십 세 이전까지 이
에 의지하여 천하를 주름잡았다(重劍無鋒, 大巧不工. 四十歲前恃之橫行天下).”
…(세 번째의 검은) 원래 목검이었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 칼날과 손잡이가
부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검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사십 세 이후에는 사물에 얽매이지 않았으니 초목(草木)과 죽석(竹石)이 모
두 검이 되었다. 이로부터 수련에 정진하여 차츰 ‘무검승유검(無劍勝有劍)’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四十歲後, 不滯于物, 草木竹石均可爲劍. 自此精修, 漸進
于無劍勝有劍之境).”
但見神雕雙爪起落不停, 不多時便搬開塚上石塊, 露出幷列着的三柄長劍, 在第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27
一․第二兩把劍之間, 另有一塊長條石片. …
楊過提起右首第一劍柄, 只見劍下的石上刻有兩行小字:
“凌厲剛猛, 無堅不摧, 弱冠前以之與河朔群雄爭鋒.”
再看那劍時, 見長約四尺, 靑光閃閃, 確是利器. 他將劍放回原處, 拿起長條石片,
見石片下的靑石上也刻有兩行小字:
“紫薇軟劍, 三十歲前所用, 誤傷義士不詳, 乃棄之深谷.”
…看劍下的石刻時, 見兩行小字道:
“重劍無鋒, 大巧不工. 四十歲前恃之橫行天下.“
…原來是柄木劍, 年深日久, 劍身劍柄均已腐朽, 但見劍下的石刻道:
“四十歲後, 不滯于物, 草木竹石均可爲劍. 自此精修, 漸進于無劍勝有劍之境.”176)
楊過는 우연히 전설적인 검객 獨孤求敗가 남긴 세 자루의 검과 그 옆에 새겨
진 글자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들은 무공의 네 가지 단계와 경지를 요약한
다. 첫 번째 검은 4척의 길이에 푸른 빛을 섬뜩하게 발하는 검이다. 이 검은 날
카로움과 강함, 견고함을 특징을 하고 있고, 獨孤求敗가 약관 이전의 어린 나이
에 河朔의 군웅들과 겨룰 때 사용했던 것이다. 두 번째 검은 紫薇軟劍으로 獨孤
求敗가 30세 이전에 사용했던 검인데, 실수로 의로운 이를 다치게 함으로써 깊
은 계곡에 버려졌고, 그래서 劍塚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세 번째 검은 3척 정도
의 검은 빛이 도는 검인데, 놀라운 것은 그 무게가 칠팔십 근에 달해서 전장에
서 쓰는 가장 무거운 金刀나 大戟 보다도 수십 배나 무거우며, 검의 끝과 양날
이 모두 둥글둥글하며 둔탁하다는 점이다. 獨孤求敗는 무겁고 날이 없는 이 검
에 의지해서 40세 이전에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 네 번째 검은 獨孤求敗 무공의
최고 경지를 말해주는 것으로 한 자루의 목검에 지나지 않으며, 楊過가 그것을
발견했을 때 이미 劍身과 손잡이 모두 부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검은 獨孤求
敗가 더 이상 검 자체에 의지하지 않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즉, 獨
孤求敗는 ‘검이 없이도 검을 이길 수 있는 경지(無劍勝有劍)’에 오를 수 있게 되
었음을 의미한다. 강하고 날카로운 검에서 시작하여 軟劍의 단계와 重劍의 단계
를 거쳐 도달한 無劍의 경지는 “완전한 자유의 경지이며, 중국 철학에서 꿈꿔오
던 최고의 경지”이며, “무공의 경지이면서 인생의 경지”이기도 하다.177) 道家의
176) 三聯本 ꡔ神鵰俠侶ꡕ 第3卷, pp. 968-967
177) “那眞是…走向完全自由的境地, 也就是中國哲學所夢想的最高境界, 旣是武功的境界, 也是人生的境界.” 嚴家炎, ꡔ金庸小說論稿ꡕ, 北京大學出版社 1999. 1, p. 53.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2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無爲와 절대자유의 추구가 獨孤求敗라는 무림 최고수의 무공을 통해 현현한 것
인데, 이는 ꡔ笑傲江湖ꡕ에서 다시 등장한다. 華山派 劍宗의 대표였지만 同門의
氣宗派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은거하게 된 風淸揚은 令狐冲을 만나 자신의 검술
을 전수하는데, 그가 강조하는 것 역시 ‘無招勝有招’이다.
풍청양이 말했다. “초식을 배우고 사용하는 데 있어서 모두 살아있는 것이어
야 한다(活學活使)는 것은 단지 첫 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출수(出手)함에 있어
서 초식이 없는 것, 이것이야말로 고수의 경지에 접어든 것이다. 네가 말한 ‘초
식을 복잡하게 섞어 사용하면 상대가 그것을 깨뜨릴 수 없다’는 것은 절반 만
맞는 말이다. ‘복잡하게 섞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초식이 없어야
한다. 너의 검초가 아무리 복잡하고 또 뒤섞여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근원
을 추적해낼 수 있으면 상대는 공격할 틈을 발견해내게 된다. 그러나 근본적으
로 초식이 없다면 상대가 너의 초식을 어떻게 깨뜨릴 수 있겠느냐?”
風淸揚道: “活學活使, 只是第一步. 要做到出手無招, 那才眞是踏入了高手的境
界. 你說‘各招渾成, 敵人便無法可破’, 這句話還只說對了一小半. 不是‘渾成’, 而是
根本無招. 你的劍招使得再渾成, 只要有迹可尋, 敵人便有隙可乘. 但如你根本幷無
招式, 敵人如何來破你的招式?”178)
위의 예에서 발휘되는 미적 효과는 초월성의 지향의 구성에서 비롯된다. 獨孤
求敗의 네 가지 검의 초월은 무기의 실제에서의 초월이며, ‘無招勝有招’의 초월
은 무공의 실제로부터의 초월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어떤 존재로부터의 초월과
탈피를 지향하는데, 이러한 지향의 존재는 金庸의 강호를 닫힌 공간이 아니라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이 되게 한다. 金庸의 강호는 역사적 현실 속에 존재하지
만 그 현실을 초월하는 신비하고 비현실적인 공간으로까지 확장된다. 즉, 金庸
의 강호는 현실과 비현실, 역사와 전설 등이 혼재된 공간이다. 동양 의술에 관
한 첨가나 전설의 도입 등은 강호의 이러한 속성을 시사한다.
ꡔ飛狐外傳ꡕ의 程靈素, ꡔ倚天屠龍記ꡕ의 胡靑牛와 張無忌, ꡔ笑傲江湖ꡕ의 平一指
등은 뛰어난 의술에 통달한 名醫들로서 醫仙 또는 神醫 등으로 불린다. 그들은
맥과 혈 등 동양 의술 고유의 개념을 가지고 의술을 펼치는데, 특히 平一指는
사람을 고칠 때 단지 손가락 하나만을 사용할 정도로 뛰어난 솜씨를 가졌다. 그
는 죽어 가는 자를 살릴 때 반드시 한 가지 요구 조건을 내거는데, 그것은 살아
178) 三聯本 ꡔ笑傲江湖ꡕ 第1卷, p. 372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29
난 자는 반드시 平一指 자신이 지목한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의 의술 때문에 죽는 자와 살아 있는 자의 균형이 깨질 것을 두려워한 때
문이다. 그는 스스로 閻王을 대신하여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역할까지도 수행한
다. 이들 神醫들의 존재는 강호에 신비함, 불가해성 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전설의 도입 역시 강호의 초현실성과 불가해성을 강화한다.
흑백자가 말했다. “진짜로 유중보(劉仲甫)와 여산(驪山)의 여 신선이 두었던
대국의 기보를 보았단 말이오? 그러한 기록을 옛 사람들의 글 속에서 본 적이
있긴 하오. 당시 이 나라 최고의 고수였던 유중보가 여산 기슭에서 시골 노파
와 바둑을 둬서 크게 패했고, 이 충격에 피를 엄청나게 토하고 말았다는 기록
이지요. 그래서 그 기보를 ꡔ구혈보(嘔血譜)ꡕ라 부른다 하더군요. 설마 세상에
이 ꡔ구혈보ꡕ가 진짜로 존재한단 말입니까?” …
상문천이 말했다. “25년 전에 사천 성도 어느 세력가의 구택(舊宅)에서 본 적
이 있습니다. 대국이 워낙 살기등등하여 무척 놀랐는데, 그래서 25년이 지난 지
금도 전체 112수의 한 수 한 수를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黑白子道: “你當眞見過劉仲甫和驪山仙姥對弈的圖譜? 我在前人筆記之中, 見過
這則記載, 說劉仲甫是當時國手, 却在驪山之麓給一個鄕下老媼殺得大敗, 登時嘔血
數升, 這局棋譜便稱爲ꡔ嘔血譜ꡕ. 難道世上眞有這局ꡔ嘔血譜ꡕ?” …
向問天道: “在下卄十五年之前, 曾在四川成都一處世家舊宅之中見過, 只因這一
局實在殺得太過驚心動魂, 雖然事隔卄十五年, 全首一百一十二着, 至今倒還着着記
得.”179)
역사와 비(탈)역사, 현실과 비현실 등이 혼재된 金庸의 강호는 심미적 강호라
고 할 수 있다. 이는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듯이, 金庸이 중국의 역사를 무협소
설식으로 다루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金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역사’가 아니라 그에 대한 ‘상상’이다. 金庸에게 있어 역사에 대한 발언의
장인 강호가 심미화되고 있고, 또 이 심미화의 과정에 중국의 전통문화의 요소
들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金庸이 활용하
는 전통문화는 역사의 해석하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를 상상하는 차원에서 동원
되고 있으며, 그 역사의 상상은 미적인 역사 혹은 미적인 중국을 내용으로 한
다. 그리고 여기서 미라는 것은 대상을 숭고화하는, 혹은 숭고한 대상에 대한
179) 三聯本 ꡔ笑傲江湖ꡕ 第2卷, pp. 744-745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3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미이다.
金庸 小說에서 전통문화는 그 자체로 숭고한 대상이다. 그것들은 실제하고 있
는, 혹은 전수되어 온 실재의 문화적 유산이라기보다는, 현재적 시간 밖에 존재
하는, 감지하거나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세계 혹은 대상과 관련된 이미지로서
활용된다. 그것들의 존재는 金庸의 강호를 숭고한 공간이 되게 하는데, 전통문
화와 결합함으로써 金庸의 강호가 폭력성과 부도덕성 등 무협소설에 대한 비판
에서 구제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것이 발휘하는 전체적인 효과에서 볼 때 미미
한 효과에 불과하다. 金庸의 강호가 전통문화의 활용에 힘입어 숭고한 공간으로
상상될 때, 이민족에 의한 핍박과 치욕의 역사로서의 강호의 이미지는 급격히
축소되거나 소실되며 자기 민족의 무한한 잠재력이 내재된 공간으로 상상된다.
金庸 小說의 실재적이고 일상적인 강호의 형태는 한족이 이민족에게 핍박당하
는 모습이지만, 이 강호 속에서 상상되는, 진짜 강호의 모습은 그 실재의 강호
의 배면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배면의 강호는 작품 표면상에서 많이 드러
나지는 않지만, 실재로 드러나는 강호 보다 더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치욕
의 역사로서의 강호가 소설 속 현재의 강호로 선택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배면
의 강호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이성적으로는 예측할 수 없
는 심오함과 불가항력적인 위력을 지닌 것으로 상상되는 강호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현실 역사의 모든 패배와 굴욕을 상쇄시켜 주었는데, 金庸 小說에서 활
용되는 전통문화는 이러한 믿음과 상상의 토대로서 작용한다.
3) 傳統文化의 秘儀性
金庸 小說 속의 전통문화는, 작게는 金庸 小說의 문화적 품위와 수준을 제고
시키고, 크게는 金庸이 다루는 역사적 현실과 관련된 정신적 상처를 망각 또는
극복하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전통문화를 심미화,
숭고화시켰던 金庸의 재현 방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통문화 자체
가 이미 심미, 또는 숭고화된 상태로 존재한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문화는 전통
이라고 하는 시간과 분리되어 현재에 존재 혹은 재현되면서 자연스럽게 심미적
이고 숭고한 대상으로 변모해 있었다. 金庸이 전통문화를 포착하여 자신의 소설
속에 활용하였던 것은 무의식적 차원에서나마 그것의 이러한 속성을 인식하였
기 때문으로 보이며, 金庸의 활용을 통해 전통문화의 이러한 속성은 보다 강화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31
되고, 또 전면적으로 부각되었다. 앞에서, 중국의 독자들 특히 金庸의 연구자들
이 金庸이 묘사해낸 중국문화 자체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표출하고 있다는 Meir
Shahar의 지적을 언급하였는데, 중국인들의 자부심의 표출은 그들이 金庸 小說
을 통해 강화되고 부각된 전통문화의 심미적이고 숭고한 이미지를 전면적으로
수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문화와 중국을 동일시하는 중국
인들의 사고인데, 그들은 문화를 강조하거나 전유함으로써 ꡐ중국ꡑ이라는 존재
를 부각시키거나 자기 존재를 규정하고자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상당히 뿌리
깊은 것인데, 근대 이전의 중국에서 그것이 주동적이고 권위적인 차원에서 존재
하였다면180), 중국이 근대로 넘어오면서는 비교적 수세적인 차원에서 존재하게
된다.
金庸 小說은 전통문화와 관련된 중국인들의 자기 정체성 확인이 어떻게 이루
어지고 있는지, 즉 전통문화가 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활용되고 있는지에 관
하여 좋은 예를 보여준다. 문화가 하나의 집단 혹은 민족에게 정체성을 부여하
게 되는 것은, 그것이 그들에게 공동의 ‘과거의 기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과거의 기억은 개인의 사회화나 집단적 결속 그리고 사회적 정통성의 유지나
그것에 대한 도전에 대해서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181) 그런데, 이 과거의
기억이 하나의 집단을 통합시킬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이 집단의 공동의 것이라
는 점과 더불어 그것이 도덕적이고 우월한 것이라는 상상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金庸 小說에서 활용 혹은 재현된 전통문화는 중국인들의 정체성
확인에 있어서 막강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이는데, 그것들은 과거의 유산
그대로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보다는, 일종의 상상되는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
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과 같이, 金庸 小說에서 전통문화는 도덕적이고, 심오
하며, 숭고한 것으로 상상된다. 이러한 상상은 중국인들의 자기 문화에 대한 자
부심과 우월감의 근거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자기의 것에 대한 자부심과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자
아의 형성은 반드시 타자의 성립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자아는 자아의 범위 내
180) 王曉明은, 근대 이전에 중국에서 華夷을 구분하는 기준이 혈통이나 피부색 등이 아
니라 문화였음을 지적하였다. 즉, 고대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문화를 갖춘 존재, 이
민족을 문화를 갖지 못한, 무지한 이들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왕샤오밍, 「현대 중국
의 민족주의」, ꡔ황해문화ꡕ, 2003년 가을, 40호, p. 307
181) 강상중 지음, 이경덕, 임성모 옮김, ꡔ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ꡕ, 이산, 서울, 1997, p.
160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3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에 포섭되지 못한 존재의 출현과 동시에 출현하게 된다. 金庸 小說에서 전통문
화는 이러한 자아와 타자의 동시적 출현에 의한 자아의 정립을 보여주는 수단
으로 활용된다.
영호충은 술을 다 비운 후 맛을 음미하며 말했다. “이 술은 또 다른 이상한
점이 있군요. 백 이십여 년 쯤 된 것 같기도 하고, 또 십 이삼년 쯤 된 것 같습
니다. 새로운 맛 가운데 오래된 맛이 나며, 오래된 맛 속에서 새로운 맛이 느껴
집니다. 백년 이상 된 보통의 명주와 비교해서 또 다른 풍미가 느껴집니다.”
… 단청생은 더욱 기뻐하며 말했다. “형제는 정말 나의 지기구려. …” 그는
상문천이 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을 보고,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令狐冲將杯中酒喝乾, 辨味多時, 說道: “這酒裏有一個怪處, 似乎已有一百二十
年, 又似只有十二三年. 新中有陳, 陳中有新, 比之尋常百年以上的美酒, 另有一股
風味.”
…丹靑生更是喜歡, 說道: “老弟眞是我的知己. …” 他見向問天顯然不懂酒道, 對
之便不加理睬.182)
여기에서 令狐冲과 丹靑生은 술을 매개로 상호 소통하고 지기로서 연대하게
된다. 여기에서 술은 단순한 기호품의 이상이다. 그것은 그 자체의 내용과 의미
에 대해 정통하며 그에 대한 뛰어난 심미적 판별력을 갖춘 이들 앞에서만 자신
의 가치를 드러내며, 그 가치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존재들을 소통하고 연대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술을 매개로 한 그들 간의 소통에서 向問天
이 소외된다는 점이다. 向問天은 뛰어난 지략가이기는 하지만, 술에 있어서는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다. 向問天은 令狐冲과 丹靑生 사이의 소통과 연대에 참
여할 수 없는데, 向問天의 소외는 令狐冲과 丹靑生의 결속을 강조한다. 이때 술
이라는 전통문화의 요소는, 각종의 국경일, 국기, 국민의례 등이 국민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전통문화의 가치와 의미를 판별해내는 것은
비밀스러운 의식에 동참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의식에의 동참은 동참자에게
동일한 정체를 부여한다. 전통문화는 비의적 대상이 되고 있으며, 金庸은 전통
문화의 비의성을 바탕으로 자아와 타자를 구분해낸다. ꡔ書劍恩仇錄ꡕ에서는 이것
이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82) 三聯本, ꡔ笑傲江湖ꡕ, 第二卷, p. 742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33
장소중이 말했다. “당신 가슴의 ‘현기혈(玄機穴)’을 짚어가겠소!” 원사소가 소
리쳤다. “훌륭하군! 공세를 거세게 이어가다니, 역시 고수답소. 나는 서북 방향
으로 ‘귀매(歸妹)’를 밟고 당신의 하체를 공격하겠소.” 장소중이 말했다. “‘송
(訟)’으로 피하면서 ‘무망(無妄)’으로 나아가 ‘천천혈(天泉穴)’을 짚겠소.”
고금표와 하합대는 두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들으면서도 그게 무
슨 말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합대는 등일뇌의 옷소매를 잡아 끌면서 나지
막한 소리로 물었다. “저 사람들의 말은 무슨 암어(暗語)요?”
등일뇌가 말했다. “그건 암어가 아니라 복희의 육십사괘 방위와 사람의 혈자
리이라오.”
고금표와 하합대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은 구두 대결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지상담병(紙上談兵, 글을 가지고 병법을 논한다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있었지만, 이처럼 구두로 대결을 펼치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張召重道: “我隨卽點你胸口‘玄機穴’!” 袁士霄喝道: “好! 攻勢綿若江河, 確是高
手. 我踏西北‘歸妹’, 功你下盤.” 張召重道: “我退‘訟’位, 進‘無妄’, 點‘天泉’.”
顧金標和哈合臺聽他二人滿口古怪詞句, 大惑不解. 哈合臺一扯滕一雷的衣襟, 悄
聲問道: “他們說的是什麽黑話?” 滕一雷說道: “不是黑話, 是伏羲六十四卦方位和人
身血道.” 顧哈二人這才明白, 原來這兩人是在嘴鬪比武, 從來只聽說有“紙上談兵”,
如此口上搏鬪却是聞所未聞.183)
顧金標와 哈合臺는 袁士霄와 張召重 간에 이루어지는 ‘구두 대결’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초식은 64괘의 괘명과 사람의 혈자리의 명칭으로 이루
어져 있다. 이 두 고수 간에 이루어지는 구두 대결은 그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밀스러운 의식과도 같다. 그 秘儀的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여기서
소외됨으로써 타자로 형성된다. 이 ‘소외시키기’는 내부적 소통, 결합과 동시에
진행되며, 내부적 소통과 연대는 외부 즉 타자를 배제하기, 소외시키기를 통해
서 강화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통문화의 秘儀性에 대한 강조가 단지 자아와
타자를 구분해주는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 자체의 위계적 질서까
지 형성해낸다는 점이다. 즉 전통문화의 秘儀性을 간파한 자아는 단순히 타자와
만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자아 내부의 상층 단위를 지향하고, 그 곳에 위치하는
자아이다. 金庸 小說이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한
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아를 형성해내기 때문이다. 金庸 小說의 독자로서의
183) 三聯本 ꡔ書劍恩仇錄ꡕ 第2卷, p. 650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3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중국인들은, 단순히 중국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구분만으로 자기 정체를 증
명하는 중국인이 아니다. 그들은 중국적 정수를 간파할 수 있고, 이미 그것을
체득한 중국인이다. 그들은 金庸 小說을 통해 전통 중국의 도덕성과 심미성을
확인하게 되는데, 金庸 小說이 높이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독자들로 하여
금 이러한 경험을 제공한다고 믿게 하기 때문이다. 金庸 小說은 고대 중국의 이
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중국적인 것’, 그 정수를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
문에 그렇게 평가된다.
사실, 金庸이 구성해내는 전통문화는 ‘秘儀性’에 기반하기 때문에 중국적인 것
으로 인정된다. 그것의 심오함과 신비함, 숭고함 등은 실상 하나의 이미지에 불
과하다. 金庸의 독자들은 金庸이 전시한 각종의 전통문화를 이지적으로 접수하
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金庸이 허구적으로 구성해 놓은 전통문화를 金庸의 주
석에 근거하여 허구적이고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과정
을 허구적으로 재해석해낸다. 그들은 ‘상상된 것’에 불과한 것을 실재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고, 그런 면에서 ‘상상계’ 속에 속한 아이와 다르지 않다. 그
리고 그들이 ‘상상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현실에 대한 도피 과정이기도 하지
만 한편으로는 현실을 극복하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4) ‘文化中國’의 상상
‘文化中國’은 중국공동체의 구상 방식으로 杜維明에 의해 제안된 개념이다.
‘文化中國’은 정치적 일체감에 대한 충성심이나 의무를 연상시키는 ‘중국인’ 공
동체가 아니라 공동의 조상과 문화적 배경을 갖는 ‘華人’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
공동체를 이루는 주요 구성 요소는 셋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중국본토, 대만, 홍
콩, 싱가폴 등 문화적, 인종적 중국인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이고, 둘
째는 전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 화인 공동체, 셋째는 중국을 知的으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중국에 대한 개념을 자신들의 언어공동체에 전파하는 개인들이다.184)
杜維明의 ‘文化中國’의 개념은 국민국가를 넘어선 중국의 새로운 정치구성체를
구상하는 것인데, 이때 ‘문화’는 중국 본토와 홍콩, 대만, 해외 화교들을 하나로
184) 杜維明, ꡔ文化中國的認知與關懷ꡕ, 稻鄕出版社, 臺北, 1997, pp. 5-12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35
개괄해내는 근거이다. 물론, 백영서가 이해하는 文化中國론에 입각했을 때, 杜維
明이 관심 갖는 주체, 즉 이를 주도적으로 실현시킬 잠재력을 가진 주체는 ‘변
방에 있는 사람들(제2,3의 실체 및 타이완․홍콩․싱가포르)’이고, 이는 본토의
중국인들이 문화를 중심으로 한 중국공동체의 구상과 실현에 있어서 주도적 역
할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의미하지만185), 그렇다고 해서 본토
의 중국인들이 ‘문화’를 중심으로 한 중국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즉,
杜維明의 ‘文化中國’이라는 제안은 현실적(혹은 현재적)으로 불가능한 중국인들
의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이라는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문화’를 통해 자신들의
공동체 구성의 가능성을 열고자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문화’
가 중국인들을 하나의 단일한 공동체로 구성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인
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 중국인들에게 있어 자기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것이 ‘정치’(혹은 정치 체계)라기 보다는 ‘문화’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때의 ‘문화’
란 중국이 정치적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중국의 문화 즉 중국의 전통문화를 말
한다.
그런데, 문화를 통한 자기 정체성의 구성의 시도는 근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
까지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丘靜美에 따르면, 20세기
의 중국 정치 체계의 변동 양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1911년 이전 제국 통치의 中國(Middle Kingdom)
2) 국민당이 영도한 공화시기의 중국(Republican China)
3) 1949년 이후 공산당 영도의 사회주의 중국(Socialist China)
4) 1949년 이후 국민당 집정의 대만
5) 1892년 이래 영국 통치 하의 홍콩186)
물론 1)과 2)의 중국이 과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5)의 홍콩 역시 1997년
7월을 기점으로 3)에 귀속됨으로써 현존하는 정치 체계는 사회주의 중국과 대
만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로 홍콩은 一國兩制의 체제 속에서 아직
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다른 국가 체제 하에 있지만 해외 화교
185) 백영서, ꡔ동아시아의 귀환ꡕ, 창작과비평사, 2000. 11, p. 41
186) 丘靜美 作, 唐維敏 譯, 「跨越邊界-香港電影中的大陸顯影」, (鄭樹森 編, ꡔ文化批評與
華語電影ꡕ, 麥田出版, 臺北, 1998년), p. 188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3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역시 여전히 중국인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정치
체계의 변동 등과 더불어 중국인의 신분은 대륙 본토인과 대만인, 홍콩인, 해외
화교 등으로 나뉘었다.
이들의 신분 변동과 자기 문화에 대한 의식의 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사건은 아편전쟁 이후 제국주의의 중국에 대한 침탈과 사회주의 중국의
성립이다. 첫 번째 사건은 중국인들의 자기 문화와 정치 체계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을 뒤흔들었다. 그들은 서구 및 일본 제국주의의 물리적 힘에 굴복 당하면
서 자기 문화와 정치 체계에 대해 의심하고 회의하기 시작하였다.
丘靜美가 지적한 대로187), 대부분 중국인들의 심중에는 Middle Kingdom으로서
의 ‘중국’이 모든 ‘중화정치실체(Chinas)’의 대표이자 ‘모든 과거, 현재, 미래의 중
국인의 母國’으로서 자리잡고 있고, 따라서 그들은 항상 자신을 ‘중국’의 일원으
로 상상하는데, 그런 점에서 두 번째 사회주의 중국의 성립은 첫 번째 사건에
못지않게 중국인들의 신분과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가져왔다. 사회주의 중국의
성립은 단지 하나의 정치 체계의 탄생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새로운 중국
(新中國)’의 탄생을 가져왔는데, 이는 그것이 이전의 중국과의 완전히 다른 중국
임을 표방하였다. 사회주의 이전의 중국 사회는 봉건 사회 혹은 구중국으로 규
정되었으며, 제반의 유산들은 봉건적인 것, 구사회의 것으로 정의되었다. 사회주
의 중국의 과거와의 단절은 중국의 전통문화를 부정하고, 훼멸하는 형태로 드러
났으며, 문화대혁명은 이러한 자기 정립 과정의 극좌화된 오류이자, 이러한 과
정의 정점이었다.
정치 체계의 상이함은 더 이상 중국인들을 하나의 ‘중국인’으로 존재하도록
남겨두지 않았다. 이로써 중국인들은 크게 둘로 분리된다. 중국 본토에 남은 사
회주의 중국의 중국인과 중국 본토에서 유리된 자본주의 체계 국가의 중국인이
그것이다. 이들 양자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적대적인 관계와 협력의 관계를 동
시적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그들 사이에서 정치 체계를 중심으로 한 분기는 여
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문화 이상으로 중국인들의 분열된 정체성을 통합시켜
줄 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중국 본토에서 유리된 중국인들은 자기 정체성에 대
한 위기감과 상존하는 모국에 대한 향수를 전통문화를 전유함으로써 치유하고
자 했고, 대륙의 중국인들도 문혁 이후 전통문화의 가치를 재인식하기 시작하였
187) 丘靜美, 위의 책, p. 189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Ⅲ. 金庸의 江湖 : 상상의 중국과 중국의 상상 137
다.
무협소설이 중국인들의 전통문화 전유와 향유 과정 속의 유일한 도구는 아니
었지만, 적어도 그것이 중국인들의 자기 정체성 상기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
사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다음과 같은 언급은 중국인들, 특히 해외의 중
국인들에게 무협소설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화교 자녀의 부모들은 金庸, 梁羽生의 무협소설을 가지고 그들의 흥미를 유
발시켜 자녀들이 독서 과정을 통해 중국어 실력을 향상하도록 했으며, 조국의
찬란한 문화를 망각하지 않도록 했다. 그 결과 화교 자녀들은 무협소설을 통해
중국어를 적지 않게 익혔으며, 중국의 전통문화에 대해서도 깊은 흥미를 가지
게 되었다.
他們的父母便用金庸․梁羽生的武俠小說來吸引他們, 讓他們在閱讀中提高中文
水準, 不忘祖國的燦爛文化. 結果這些華僑子女, 果然從武俠小說中學到了不少中文
文字, 而且還對中國的傳統文化産生了濃厚的興趣.188)
그 시절에 내가 중국 전통문화를 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접한 무협소설은 내가 중국 전통문화(문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
였고, 결국 나로 하여금 중국어로 문학 창작하는 데로 이끌었다. …
나는 이런 사람이 수천 수만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들 중 하나일 뿐
이다. 그들은 각기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 ‘무협문화’의 단비와 같은 혜택을
입었다. 무협소설 읽기를 통해 중국문학을 사랑하게 된 것은 결코 나 하나 뿐
이 아닐 것이다.
這段時期, 我接觸中國傳統文化是很不容易的. …但我最先接觸到的武俠小說, 提
供了我接受中國傳統文化(文學)的根基, 它終于推動我走向參與中文文學創作. …
我堅信我只是其中一人, 我相信有千千萬萬的人, 他們在各處․各地․各個不同的
時候, 也蒙受過這“武俠文化”甘霖的滋潤. 通過讀武俠小說, 開始喜愛上中國文學,
這決不會是我一個人.189)
이들 중국인들에게 있어, 무협소설은 중국어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통문화를
망각하지 않게 해주는 수단이었는데, 이는 이들로 하여금 중국인으로서의 정체
성을 환기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는 무협소설이 중국인들의 영원한 모국을 상
188) 梁守中, ꡔ武俠小說話古今ꡕ, 中華書局(香港), 江蘇古籍出版社, 1992, p. 207
189) 曹正文, ꡔ中國俠文化史ꡕ, 上海文藝出版社, 1994, pp. 5-6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3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상해내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는데, 특히 그것을 상상해내게 하는 것들이 협, 전
통문화 등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염원을 기탁하여 상상해낸 것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金庸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무협소설 쓰기가 오락의 추구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한다. 이는 金庸의 겸양의 표현일 수도 있고, 고도의 자기 선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무협소설 쓰기를 역사로부터 시작하고 있고, 또 전통문
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부터 그의 무협소설 쓰기는 단순한 오락적 차원의
의미를 넘어서게 되었다. 그는 전통문화를 단순히 활용한 것이 아니라, 전통문
화를 상상적으로 재구성해냈다. 그는 전통문화의 심미성, 윤리성, 심오함을 극도
로 확대, 부각시켰고, 그것을 비의적 대상으로 변용시켜 ‘文化中國’을 상상해냈
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무협소설을 고급문학 또는 순문학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金庸 小說을 “엘리트문화로 통속문학을
개조하려는 노력이 거둔 성공”이며, “근대 무협소설을 최초로 문학의 궁전에 들
어가게 만들게 한” “또 하나의 문학혁명”190)이라고 칭찬하는 것은, 문학적 관점
에서의 평가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의 ‘문학적 성취’에만 근거하는 것
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평가는 문학적 틀 이외의 혹은 이상에서의 성
과에 대한 문학적 틀과 언어로의 치사로도 보인다. 그의 ‘文化中國’의 상상은 중
국인들로 하여금 과거의 역사에서 상처와 아픔만을 보게 하지 않고, ‘과거의 기
억’으로부터 심리적 우월감과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였다. 이는 문학적 시
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金庸 小說의 성과이다.
金庸이 자신의 역사 상상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전통문화를 활용했던 것
은 이런 의미에서 대단히 정확한 선택이었으며, 또 어떤 의미에서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문화가 근대 이후 중국의 정치적 차원에서의 상실과 결핍을 보충해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문화의 선택과 그것에 대한 과장
이 중국인들의 과거 혹은 현재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도피일수도 있고, 극복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든 金庸이 ‘文化中國’을 상상해냈다는 것은 중국
인들에게는 커다란 위안이자 자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190) 嚴家炎, 앞의 책, p. 213.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39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 金庸 ‘俠’의 변화 과정
협은 무협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협은 俠客으로서의 협과 俠義, 俠
氣 등으로서의 협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협객으로서의 협은 무협소설의 중심적
인물을 지칭하는 말이며, 俠義, 俠氣, 俠德 등은 협객의 협객다움을 규정하는 정
신적 내용과 협객의 기질을 말한다. 梁羽生이 ‘무협소설에서 俠은 목적이며, 武
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191)라고 언급했을 때의 협은 바로 후자의 것
들 지칭한다. 이 양자의 의미를 포괄하고 있는 협이라는 말은 무협소설에서 일
차적으로는 그 주인공이며, 좀 더 포괄적으로는 무협소설의 주제와 이념적 지향
으로까지 확대된다. 그래서 무협소설이 지향하는 가치와 주제 등을 살필 때 협
이 어떤 성격을 가지는가를 살피는 것은 상당히 유용하다.192)
무협소설과 협의 관계, 무협소설에 있어서의 협의 중요성은 단지 이러한 것으
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무협소설의 탄생은 중국에서 수 천년 간 지속적으로 존
재해 왔던 협에 대한 상상에 힘입고 있다. 협은 역사적 기록물, 문학적 서사, 민
간의 전설 등을 통해 인구에 회자되었으며, 끊임없이 상상되었고, 어느 순간부
터는 하나의 고정된 상상체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龔鵬程이 역사적 기록물 속
의 협을 대하고 느꼈던 당혹감의 실체는 바로 이 때문이다. 어느 사이 협은 우
리의 뇌리 속에 자신의 형상을 새겨 놓았으며 우리는 그 형상을 통해 역사적
실체로서의 협을 평가하고 인식하게 되었다. 즉 무협소설이 협의 상상으로부터
그 탄생을 빚졌다면, 다른 한편으로 무협소설은 협의 상상을 다시금 확대함으로
191) 佟碩之, 「金庸梁羽生合論」, ꡔ金庸茶館 5ꡕ, 中國友誼出版公司, 1998, p. 218
192) 陳墨은 金庸 小說의 주인공의 성격 변화를 검토하면서 협의 성격 변화가 金庸 小
說의 창작 순서와 거의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는 협의 성격 변
화 양상을 金庸 小說의 주제 혹은 내용의 변화와 더불어 고려할 수 있음을 암시한
다. 예를 들어, ꡔ射鵰英雄傳ꡕ의 주인공이 郭靖으로 설정된 것이나 ꡔ鹿鼎記ꡕ의 주인
공이 韋小寶로 설정된 것은 무협소설이 지향하는 가치와 주제 등과 주인공인 협객
의 성격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陳墨, 「金庸小說主人公的人格模
式及其演變」, ꡔ孤獨之俠-金庸小說論ꡕ(上海三聯書店, 1999년판) pp. 185-18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4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써 그 빚을 갚게 된다. 하지만 무협소설의 협에 대한 상상의 확대가 상상 내용
의 확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협소설 속의 협은 이전의 협의 다양성과
다채로움을 사상시켜 버리고 협의 면모를 약간의 고정된 틀 안에 가두었다.
물론 이 고정된 틀이라는 것은 무협소설이 탄생하고 유행하게 된 근대와 근
대 이후의 시기의 염원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의미에서 무협소
설의 협은 고전적 의미에서의 협과 근대적 의미에서의 협의 혼합, 착종 형태라
고 말할 수 있다. 즉, 무협소설은 기존의 협에 관한 일체의 서사를 반복하며, 동
시에 변주하는 셈이다. 이렇게 탄생한 무협소설의 협은 이전에 존재했던 협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모를 가지게 된다.
金庸의 협 역시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협의 고전적 형태를 유지하
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기에서 거리를 두거나 심지어 전복한다. 그들은 약자
를 대변하고 신의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면서도, 이전의 협들의 그로테스크한 면
을 거의 떨쳐버렸으며, 근대적이거나 반전통적인 의식과 사고를 보유하고, 심지
어는 ‘反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데, 金庸의 협은 이전의 협을 반복
하거나 변주하는 것이면서도, 자체 내에서도 반복과 변주를 계속한다. 이러한
반복과 변주의 연속은 金庸의 협이 ‘爲國爲民의 俠之大者’에서부터 ‘反俠’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하고 변화하게 한다. 陳墨은 이를 구체적으로 살폈
다. 그는 金庸의 주인공들의 성격이 창작의 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변화하고
있음을 고찰하였다.193)
첫째, 주인공의 ‘俠氣가 점점 사라지고, 邪氣가 점점 증강하여’ 협의 전형적
인 모습으로부터 갈수록 멀어진다(主人公“俠氣漸消, 邪氣漸長”, 離開俠的典範模
式越來越遠).
둘째, 주인공의 형상에서 ‘공통의 성질(共性)’이 갈수록 줄어들고, ‘개성’은 갈
수록 부각된다(主人公的形象的“共性”越來越少, 個性越來越突出).
셋째, 주인공의 이념적 힘이 갈수록 작아지고, 현실 사회의 충돌과 사회 환경
이 가하는 제약의 힘이 갈수록 커진다(主人公的理念的力量越來越小, 現實社會
衝突及社會環境的制約力量越來越大).
넷째, 주인공의 성격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내적 자아의 모순과 충돌이 갈수
록 많아진다(主人公的人格力量越來越複雜, 內心的自我矛盾衝突越來越多).
다섯째, 주인공의 이상적 측면은 갈수록 약화되고, 주인공의 현실성과 그 의
193) 陳墨, 앞의 책, p. 185-186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41
미는 갈수록 강화된다(主人公的理想性越來越弱, 而其現實性及其意義越來越强).
여섯째, 간단히 말해서, 正義之俠-大俠-中俠-小俠-無俠-反俠으로 변화된다(簡單
地說, 是正義之俠-大俠-中俠-小俠-武俠-“反俠”).
陳墨이 파악한 이러한 양상은, 金庸 小說의 주인공인 협이 보통의 무협소설의
협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출발하였지만 점차 정격의 협의 궤도를 벗어나 독자적
이고 독특한 성격을 획득하게 되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陳
墨은, 金庸의 협을 金庸 小說이 거대한 예술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가장 중
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본다.194) 그는 무협소설이 천편일률적인 반복과 중복으
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협소설이 협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195), 이때 협은 중국 문화의 이상적 인격 행태이
며, 무협소설이 독자들을 사로잡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
협소설의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陳墨에
의하면, 金庸만은 여기서 예외인데, 金庸은 무협소설 주인공의 이상적 인격 행
태를 부단히 깨뜨렸으며, 부단히 변혁, 창신하고 부단히 풍부화, 심화시킴으로써
자기의 소설을 독특한 예술적 경지에 올려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196) 陳墨은
金庸의 협의 변화 양상을 통해서 金庸이 여타의 무협소설과는 다르게 고급문학
에 비견할 만한 문학적 가치와 성취를 이룩하였음을 주장하고자 하였다. 즉 陳
墨의 관심사는 金庸 小說의 문학적 가치를 규명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필자의 관심사는 金庸 小說의 문학적 가치를 조명하는 데 있지 않다.
그래서 필자에게 중요한 것은, 金庸의 협의 성격과 그들의 활동, 그리고 그 변
화 과정을 통해서 金庸이 어떻게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상상을 완결해 갔는지
를 살피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협은 중국인들에게 있어 하나의 상상
된 주체이다. 협은 개인적인 것이든 국가적, 민족적인 것이든 중국인들의 욕망
과 염원을 해소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부단히 호출되고 소환되었으며, 그 과정에
서 부단히 새롭게 상상되었다. 무협소설가로서의 金庸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협
을 지속적으로 상상하고 창조해냈다. 金庸 小說의 협의 변화 양상은 이런 차원
에서 다시 고찰될 필요가 있는 대상이다.
무협소설 창작 초반에 金庸은 중국의 역사를 주로 다루었다. 그것은 과거의
194) 陳墨, 앞의 책, 같은 글, p. 185
195) 위와 같음
196) 위와 같음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4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역사를 반성하고 성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며, 또 동시에 그 역사를 새로운 방
식으로 해석하고 상상해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金庸 초기작들의 협객들, 陳
家洛, 袁承志, 郭靖 등이 滅滿興漢, 反淸復明에 나서거나 李自成의 起義에 참가
하거나 抗金, 抗蒙 대열에 서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역사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의 金庸의 딜
레마는 그로 하여금 새로운 방식의 역사 상상과 중국 상상의 필요성을 제기하
였다. 그가 여성을 전유하고 문화를 부각시킨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 돌파구
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딜레마는 협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다면
金庸은 자신의 페르소나라고도 할 수 있는 협을 통해 어떻게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게 하였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金庸의 부
단한 협의 상상은 ꡔ鹿鼎記ꡕ를 통해서 완성된다. 즉, ꡔ鹿鼎記ꡕ의 韋小寶는 金庸
이 상상해낸 협의 완성체이며, 결국 金庸은 韋小寶라는 인물, 새로운 중국 상상
의 주체를 발견해냄으로써 자신의 역사와 중국에 대한 상상을 ‘희극적으로’ 종
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金庸 小說의 마지막 협객이자 ‘反俠’인 韋小寶라는 인물을 ‘金庸 협의
완결체’로 놓고 볼 때 그 이전의 협객들의 성격과 그 변모 과정, 그리고 그들의
행동과 그 이유 등을 비교적 명확하게 해명할 수 있다.197) 이들은 대부분 金庸
의 역사와 중국에 대한 상상의 과정 속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陳家洛, 袁
承志, 郭靖의 경우는 金庸이 중국의 역사를 핍박받은 한족의 역사로 규정하고
인식할 때의 협객이다. 따라서 그들은 (한족의) 민족적 대의의 실현을 가장 중
요한 자기 과제로 삼는다.198) 물론, 이들의 과업은 성공하지 못하며 그들은 강
호를 떠나 은거하거나 강호의 조연으로 사라진다.
이후 나타나는 협객, 楊過와 張無忌는 기본적으로는 위의 협객들의 대의를 이
어받기는 하지만 이미 그들은 ‘爲國爲民의 俠之大者’는 아니다. 그들은 민족적
197) 물론 이 말은 개별 협객들이 가진 독자적 성격과 행동 방식을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매 작품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건들을 만나고 해결한다. 그리고 金
庸의 매 작품은 그 작품 나름대로의 이야기와 의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金庸
의 전체적 창작을 총괄하여 개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적지 않은 누락
과 단순화를 기본적 한계로 내포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의 논의에서 역사적 사건
과는 무관한, 비교적 강호 자체의 사건만을 중심적으로 다루는 작품들이 자주 등장
하지 않는 것 또한 이러한 이유이며, 특히 ꡔ雪山飛狐ꡕ와 ꡔ飛狐外傳ꡕ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198) 이런 의미에서 陳墨은 이들을 ‘유가의 협(儒家之俠)’이라고 지칭한다. 陳墨, 앞의
책, 앞의 글, pp.188-191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43
대의 못지 않게 개인의 자유와 욕망도 중시하며, 강호의 질서와 이념에 반항하
거나 강호의 구질서를 새로운 질서로 재편한다. 그들을 통해서 강호가 절대적
선과 정의에 의해서만 지탱되는 것은 아니며, 주류와 전통적 사고가 정과 선의
명목으로 주도권을 행사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노출된다. 그리고 張無忌를 통
해서는 기존의 강호의 역사관과 민족관의 회의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ꡔ倚天屠龍記ꡕ의 다음 작품 ꡔ連城訣ꡕ은 협객 狄雲이 중요하다기보다는199), 그
의 사부 戚長發의 설정이 눈에 띄인다. 戚長發은 金庸 小說에서 사부로서는 처
음으로 악인으로 등장한다. 그는 재물에 눈이 어두워 제자를 배신하고 곤경에
빠뜨린다. 金庸 小說에서 강호의 권위이자 이념의 대변자이기도 한 사부가 악인
으로 묘사되면서 강호는 이상과 염원의 실현 공간이라는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강호가 회의되면서 민족 이념의 확인 공간이자 실현 공간으로서의 그 가치 역
시 상실되는데, 하지만 이는 기존의 역사관과 민족관의 변환과 더불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된다.
한족 중심의 역사관, 민족관이 최초로 회의되는 ꡔ天龍八部ꡕ에서 그 주요한 협
객들, 蕭峯, 段譽, 虛竹, 심지어 慕容復까지 아버지의 죄과를 대신 짊어지게 된
다. ‘정신적 아버지(精神之父)’인 사부뿐만 아니라 ‘육신의 아버지(生身之父)’인
친부까지 부정과 회의의 대상이 되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역사에 대한 회의이자
재조명의 의미를 내포한다. 이전의 협객들이 잦은 고난과 고뇌에도 불구하고 계
승하고 유지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역사, 즉 한족의 역사는 아버지에 대한 회의
와 더불어 부정 혹은 전환의 필요에 입각하게 된다. 그리고 한족의 고수들이 거
란족 무사 蕭峯에게 무참히 패배한 것과 더불어 한족의 강호 역시 붕괴를 맞게
된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ꡔ鹿鼎記ꡕ의 암시와 예고이지만, 잠재적으로 완성되
어 가던, 새로운 강호와 협, 다른 말로 중국과 역사의 주체가 초보적 형태로 언
뜻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ꡔ天龍八部ꡕ 이후 ꡔ鹿鼎記ꡕ 이전의 두 작품 ꡔ俠客行ꡕ과 ꡔ笑傲江湖ꡕ의 두 주인
공인 石破天과 令狐冲이 더 이상 역사에 개입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은 앞으로 도래할 협객의 전신인 셈인데, 石破天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여 고뇌하는 것, 고아인 令狐冲이 아버지와 다름없는 사부 岳不群에 대항하
여 승리하는 것은 강호의 새로운 주체의 모색이자 새로운 강호 질서와 이념의
199) 狄雲은 범인과 별로 다르지 않으며, 협의를 추구하거나 어떤 이념에 의해 행동하는
자들이 아니고, 陳墨은 이를 ‘無俠’ 혹은 ‘非俠’이라고 규정한다. 陳墨, 위의 책, 같은
글, pp. 196-199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4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탐색의 의미를 가진다.
ꡔ鹿鼎記ꡕ의 韋小寶는 이렇게 출현하게 된다. ‘反俠’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그는 이전의 모든 협과는 완전히 다른 협이다. 그는 무공을 할 줄 모르며,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 것은 둘째이고, 사기와 속임수, 거짓말에 능통한 자이다.
이런 그가 출현한 공간은 만주족에 대한 한족의 저항이 결렬한 현장이다. 이러
한 공간, 즉 강호는 이전에도 줄곧 출현하였지만, 여기서의 의미는 이전과는 완
전히 다르다. 이 공간은 그들의 대립과 투쟁이 여전히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결
국 그것이 봉합되는 공간이다. 韋小寶는 康熙 황제와 天地會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이를 모색한다. 역사는 더 이상 재연되지 않고 혁명적 변환을 맞게 된
다. 그것은 金庸이 중국과 중국인을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족의
협객들로부터 시작된 중국에 대한 상상은, 민족적 틀을 넘어서 중국인으로 탄생
한 韋小寶를 통해 완결된다. 그것은 韋小寶가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협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것은 어떤 의미로는 기존의 협객들에 대한 전복이자 풍자이
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기존 협객들의 시행착
오와 좌절 역시 중국에 대한 상상의 과정이었으며, 韋小寶는 이러한 긴 과정을
통해서 태어난 산물이며, 그들 속에서 추출된 인물이다. 金庸이 무협소설을 통
해 상상하고자 했던 역사는 중국과 중국인을 발견함으로써 완수된다.
이렇게 金庸 小說의 협객들은 상상된 주체로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주체를 상
상해가는 과정 속에 놓인다. 중국의 상상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기
존의 역사와 강호를 계승하면서 한편으로 그것을 회의하고 재편해나갔기 때문
이다. 다음 절에서는 중국과 중국인의 발견까지 이르는 金庸의 중국 상상의 전
과정에서 협객들이 밟았고, 행했던 구체적 내용들을 살펴보겠다.
2. 아버지의 계승과 극복
1) 협객의 아버지들
金庸 小說의 이야기는 협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金庸은 협객의 뒤를 따라다
니며 그의 모든 행위와 생각 등을 빠짐없이 서술해내는데, 이것이 바로 金庸 小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45
說의 전부이다. 金庸의 협객들은 陳家洛, 喬峯, 令狐冲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처음에 보잘것없는 아이로 등장한다. 이들은 대부분 평범한 아이에도 미치지 못
하는 결핍된 소년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강호의 고수를 스승으로 모시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뛰어난 무공을 갖추게 되며 협객으로 성장하게 된다.200) 하지만
협객의 성장이 무공의 연마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인과
의 만남과 사랑, 邪派 혹은 魔敎인들과의 접촉, 민족 간의 투쟁과 대립에의 개
입 등을 통해서 인생관 및 성격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 오히려 이것이 바로 협
객의 진정한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처음부터 청년의 모습으로 등
장하는 陳家洛 등이나 韋小寶도 金庸의 小說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셈이며, 따
라서 金庸의 小說은 한마디로, ‘협객의 성장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金庸
협의 성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와의 관계
이다.
일반적으로 무협소설에서 아버지로는 생부와 사부가 존재한다. 생부는 협객에
게 생명과 육체를 부여한 아버지이고, 사부는 협객이 강호에서 협객으로 성장할
수 있는 무공을 전수해주는 아버지이다.201) 하지만 아버지는 그 기능과 역할에
따라 추상화하면, ‘육신의 아버지(生身之父)’와 ‘정신적 아버지(精神之父)’로도 표
현될 수 있다.202) ‘육신의 아버지’가 생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신적 아버지’
는 생부이기도 하며, 사부이기도 하다. 또 경우에 따라서 ‘육신의 아버지’와 ‘정
신적 아버지’는 하나의 인물일 수도 있으며, 이 경우 그는 협객의 생부이자 사
부인 셈이다.
金庸 小說에서 동일한 인물이 생부과 사부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하지 않으며,
생부의 역할과 사부의 역할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정신적 아버지’의
역할은 생부와 사부 둘 다 담당하기도 한다. 또 일부의 사부는 ‘정신적 아버지’
의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金庸 小說에서 협객과 아버지의 관계는
대단히 복잡한데, 宋偉杰은 이를 도표로 정리하였다.203)
200) ꡔ鹿鼎記ꡕ의 韋小寶는 金庸 小說의 협객 중 유일하게 무공을 구사할 줄 모르며, 무
공을 익히려 하지 않는 자이다.
201) 이런 의미에서 협객의 무공 습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무림비급 역시 사부의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202) 宋偉杰, ꡔ從娛樂行爲到烏托邦衝動-金庸小說再解讀ꡕ, 江蘇人民出版社, 1999. 9, p. 97
203) 宋偉杰, 위의 책, pp.98-99 번역 인용, 원 표에는 ꡔ連城訣ꡕ의 부분이 빠져 있다. 위
의 ꡔ連城訣ꡕ 부분은 다른 체제에 근거하여 필자가 직접 만들어 넣은 것이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4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金庸의 俠과 아버지와의 관계
인물 작품 생부, 그와 ‘자식세대’와의 관계 사부와 제자의 관계
陳家洛書陳閣老: 청렴한 관리,
귀공자의 학식과 기질에 영향
袁士霄: 무공과 기본적 가치관의 전수,
홀로 신강 지역을 떠돎
袁承志碧袁崇煥: 피살,
부재하는 이상적 아버지
穆人淸: 위와 동일, 정신적 아버지 형
금사비급: 약간의 邪氣가 존재
郭靖射郭嘯天: 피살,
부재하는 이상적 아버지
江南七怪․홍칠공: 정신적 아버지 형
洪七公은 이상적 아버지의 형상
楊過神楊康: 스스로를 해침,
죄인으로서의 아버지
洪七公: 이상적 아버지
歐陽鋒: 정신착란의 아버지
小龍女: 부인이 됨, 가치관의 착란을 가져옴
神雕(獨孤求敗): 무공의 새로운 경지
胡斐雪

胡一刀: 피살, 대협의 풍모,
아들 세대가 바라는 이상적 아버지
조상으로부터 전수받은 刀譜
張無忌倚
張翠山: 자살을 선택한 무고한 아버지,
아들에게 강호의 험악함을 인
식케 함
張三豊: 정신적 아버지
九陽眞經․乾坤大挪移
狄雲連無: 부재, 고아로서의 자식
戚長發: 악인으로서의 사부
丁典: 결의형제, 강호의 이치와 무공의 깨닫
게 함 蕭遠山: 죽음을 가장한 부재,
죄짓는 아버지,
喬三槐: 양아버지
玄苦: 蕭峯 무공의 전수와 기본적 가치관의 확립

慕容復
慕容博: 죽음을 가장한 부재, 정신적
지주, 경외의 대상, 하지만 일
대의 간웅
慕容博: 좌와 동일
段譽
段正淳: 자애로운 아버지, 친부는 아님
段延慶: 친부, 사대악인의 우두머리,
아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쳤
으나 뭇여성들과 혈연적 위기
에 빠진 아들을 구원
神仙妹妹: 무공의 전수, 연정의 대상
大理段氏의 六脈神劍
虛竹玄慈: 책임의 도피자 無涯子, 天山童姥姥:
무공의 전수, 正과 邪의 측면을 동시에 가짐
石破天俠 無: 부재(‘黑白分明’의 협객 부부가 부
모일 가능성이 있음)
謝煙客․不三不四․史婆婆:
무공의 전수, 하지만 사표는 아님
令狐冲笑無: 부재, 고아로서의 자식
岳不群: 거짓 정신적 아버지
風淸揚: 새로운 정신적 아버지
任我行: 무공의 전수,
존경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
韋小寶鹿無: 부재, 고아로서의 자식 陳近南: 정신적 아버지
獨臂神尼: 무공의 전수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47
이 표와 金庸 小說 전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金庸 협의 친부가 피살되
거나 박해 받는 존재인 경우가 많으며, 그들이 반드시 아들에게 ‘정신적 아버지’
의 존재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며, 협의 사부 역시 긍정적인 역할과 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袁承志와 郭靖, 胡斐의 아버지들은 모두 피살에 의
해 생을 마치게 되고, 楊過의 아버지는 민족의 배신자로서 피살당하게 되며, 蕭
峯, 慕容復, 段譽, 虛竹의 아버지들은 아들에게 원죄와 고통을 전가한다. 또 사
부들의 경우에도 적지 않은 사부들이 협에게 무공과 올바른 가치관을 전수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악하거나 위선적인 사부들도 적지 않다. 이런
면에서 金庸 협의 친부와 사부들은 협객들이 모방하고 계승해야 할 존재이기도
하지만 희의하고 극복해야 될 존재이기도 하다. 아버지들의 모방과 계승, 회의
와 극복은 金庸의 협이 협객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관건적인 과제이며, 金庸
의 협이 점차 변화되고 변모하는 데 있어서의 중요한 동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金庸 협의 아버지들의 존재 양태와 기능 등을 살펴보면, 그 안에서
변화의 단계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金庸 협의 성격과 행동 방식
의 변화의 단계와 비슷하게 진행되며, 이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金庸 小說의 단
계적 변화 양상이기도 하다. 즉, ꡔ書劍恩仇錄ꡕ, ꡔ碧血劍ꡕ, ꡔ射鵰英雄傳ꡕ의 경우,
협의 아버지들이 모두 긍정적인 인물들이다. 陳閣老는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그는 적어도 陳家洛에게 자신의 재학과 기질, 그리고 백성을 위
하는 마음을 전하는 인물이다. 袁崇煥과 郭嘯天은 피살되어 현재의 강호에 부재
하지만, 그들의 ‘爲國爲民’의 정신은 아들들에게 계승되어 그들을 ‘부재의 존재
(缺席的在場)’로 만들었으며, 이런 이유로 그들은 이상적 아버지이자 정신적 아
버지이다. 또한 이들 협객의 사부들, 袁士霄, 穆人淸, 江南七怪, 洪七公 등도 무
협소설에서 기대되는, 正格의 사부 그 자체이며, 한편으로 그들은 아버지를 잃
은 협객들의 아버지의 역할을 대리수행하고 있고, 이런 의미에서 그들 역시 정
신적 아버지란 칭호를 받기 손색이 없다.
하지만 ꡔ飛狐外傳ꡕ과 ꡔ雪山飛狐ꡕ를 예외로 치고, ꡔ神鵰俠侶ꡕ, ꡔ倚天屠龍記ꡕ,
ꡔ天龍八部ꡕ의 생부와 사부는 많은 경우에 이전의 그들과 사뭇 다르다.204) 물론,
여기서도 洪七公, 張三豊, 玄苦 등 비교적 이상적이고, 협이 계승하고 배워야 할
사부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부들의 존재는 무협소설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
204)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ꡔ俠客行ꡕ과 ꡔ笑傲江湖ꡕ의 아버지들도 그들과 많이 다르지
는 않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4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이기도 하며, 따라서 이들의 존재는 어떤 의미에서는 金庸 무협소설의 독자적
특징을 대변하기에는 그다지 불충분하다고도 보이며, 실제 張三豊과 玄苦는 작
품에서 중요한 인물이라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들 작품에서 부각되는 인물
들은 적어도 이전에 金庸 小說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아버지 상의 인물들이다.
楊康은 ꡔ射鵰英雄傳ꡕ에서 주로 활동하고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민족을 배신하고
金나라의 편에 선 인물로서 袁崇煥과 郭嘯天, 그리고 자신의 생부 楊鐵心의 대
척점에 선 인물이다. 그는 친부로서 아들에게 원죄를 부가했는데, 다행히 楊過
는 아버지의 원죄를 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ꡔ天龍八部ꡕ의 蕭峯은 아버지의 원죄를 씻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려
야 했다.205) 蕭峯의 아버지 蕭遠山은 강호에 혈겁을 일으킨 인물이고, 그의 죄
가는 蕭峯에게 고스란히 전수된다. 이제 아버지는 모방하고 계승해야 될 이상적
인물이기 보다는, 아들에게 원죄와 고난을 전가하는 인물이다. ꡔ天龍八部ꡕ에 등
장하는 친부들은 이런 면에서 모두 동일하다.206) 또한 이 시기의 사부들 역시
205) 蕭峯은 친부를 찾기까지 喬峯이란 이름을 가졌다. 蕭峯의 친부는 蕭遠山이라는 거
란족 무사였으며, 그는 송나라 군사와 한인 고수들의 거란족에 대한 보복적 살상
과정에 살해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蕭峯은 양부의 손에 한인으로 길러졌고, 소
림 고승 玄苦로부터 무예를 전수받아 개방의 방주이자 무림 최고의 고수로 성장한
다. 그러나 강호의 풍파에 연루되면서 그의 신분이 거란족인 것이 드러나고, 강호
의 혈겁을 일으킨 자가 다름 아닌 자신의 생부 蕭遠山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결국 喬峯이란 이름을 버리고 蕭峯이란 이름을 되찾았으며, 송을 떠나 거란족의 품
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의형제처럼 여기던 耶律
洪基가 그로 하여금 송을 침략하는데 앞장서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에 蕭峯은 송과
거란과의 분쟁으로 인한 살상의 반복을 멈추게 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
한다. 그의 죽음은 金庸 小說 전체를 통털어 가장 장렬하고 비극적인 죽음이다. 그
는 자신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송과 거란 간의 연쇄적 살상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그의 아버지 蕭遠山이 강호에 일으킨 혈겁에 대한 보상이
기도 하다. 蕭峯은 자신의 생부가 거란족임이 밝혀지면서 그가 몸담아왔던 강호의
고수들과 살육전을 벌이게 되었으며, 백 여명이 넘는 강호의 고수들은 蕭峯의 손에
죽음을 당하게 된다.
206) 段譽는 마지막 부분에 아버지가 둘 임이 밝혀지는데, 그것은 段正淳의 아내이자 段
譽의 어머니인 刀白鳳이 남편의 바람기에 분노하여 段延慶이라는 자에게 몸을 맡
김으로써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段譽의 친아버지 段延慶은 大理國 찬탈을 노리는
자이며, 강호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四大惡人의 우두머리이며, 또 다른 아버
지 段正淳 역시 숱한 여인들과 염문을 뿌림으로써 강호에 풍파가 일어나는 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또한 虛竹의 아버지인 소림 방장 玄慈는 葉二娘과 사통하
여 虛竹을 낳았지만 이를 감추었고, 이로써 葉二娘이 無作不惡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대악인 중의 하나가 되게 했으며, 慕容復의 아버지 慕容博은 아들로 하여금 大燕
의 재건에 사활을 걸게 하기 위해 죽음을 가장하여 배후로 숨어들었으며, 이로써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49
이전의 사부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楊過의 義父이자 사부 중의 한
명인 西毒 歐陽鋒, 張無忌의 의부이자 사부인 金毛獅王 謝遜, 虛竹의 두 사부
無崖子와 天山童姥 등이 그 예이다. 西毒 歐陽鋒은 ꡔ射鵰英雄傳ꡕ에서 楊康과 손
을 잡고 金나라의 宋 침략을 도모하였으며, 개인적으로는 이 과정에 무림 최고
수의 명예를 얻고자 한 인물이다. 결국 그는 무림 최고수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走禍入魔하여 정신착란에 빠지게 된다. 金毛獅王 謝遜 역시 邪派의 인물로서 스
승 成昆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강호의 고수들을 연쇄 살인하며, 無崖子와 天山童
姥는 연적 관계로부터 연유한 서로에 대한 원한을 풀기 위하여 虛竹을 이용하
고 괴롭힌다. 물론 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이 사연 때문에 악행
을 저지르고 사악함을 발산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모방되거나 계승해야 할
스승이 아니라 회의하고 극복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부의 모습은 ꡔ鹿鼎記ꡕ 이전까지 반복된다. ꡔ俠客行ꡕ에 등장
하는 謝煙客, 不三不四, 史婆婆 등은 무공은 뛰어나지만, 개인적이고 괴팍한 사
부들이며, ꡔ笑傲江湖ꡕ의 岳不群은 무림맹주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음모를 꾸미
고 악행을 자행하면서도 겉으로는 君子然하는 僞君子이다. 이런 면에서 ꡔ鹿鼎
記ꡕ에서 天地會의 영수로 나오는 陳近南은 이전 사부들의 부활이다. 하지만 그
의 명에 대한 충성과 백성에 대한 근심은 계승되어야 할 것이라기 보다는, 극복
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 역시 근자의 사부들과 동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ꡔ天龍八部ꡕ 이후의 작품에서 친부는 등장하지 않는다. 石破天의 부모가 ‘黑白
分明’이란 外號의 부부 협객임이 암시되기는 하지만, 결코 그들도 石破天의 부
모로서 어떤 기능과 작용을 하지는 못하며, 이런 의미에서 마지막 세 작품의 친
부는 작품 내에서 부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ꡔ俠客行ꡕ과 ꡔ笑傲江湖ꡕ의
친부의 부재와 ꡔ鹿鼎記ꡕ의 친부의 부재는 서로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ꡔ鹿
鼎記ꡕ에서의 친부의 부재가 이전까지의 친부와는 다른 새로운 친부의 발견의
의미를 갖는다면, 전작 둘의 친부의 부재는 이전의 친부와의 단절의 욕망을 내
포한다. ꡔ天龍八部ꡕ에서 이미 회의되거나 혹은 권위의 손상을 입음으로써 이후
의 작품에서 친부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고, 새로운 친부의 출현을 위
해 아버지의 자리를 비워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친부와 사부의 존재 양상의 변화가 시사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
은 이 아버지들, 특히 친부가 어떤 내면화된 의미의 외적 현현체로 작용하고 있
慕容復을 정신병자가 되게 한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5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아버지의 존재 양상 혹은 부재의 방식이 그것의 변화와
함께 변화하고, 새롭게 대체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때 金庸 小說
에 내면화된 의미라는 것이 바로 역사이자 민족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2) 역사와 아버지
金庸의 무협소설 창작 행위는 역사(중국)에 대한 상상이라는 것은 앞에서 설
명하였다. 즉, 金庸은 무협소설을 통해 중국의 과거, 역사를 다룸으로써 역사와
중국을 상상하였던 것이다. 간혹 그가 역사와 무관한 강호의 이야기만을 구성해
내고, 또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조차도 강호의 비중을 더 크게 하고 있다 할지
라도, 그의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이 모두 역사적 현실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
의 주요한 작품들 또한 그러한 형태를 취함으로써 역사와 중국을 상상하고자
했던 그의 욕망은 쉽게 감지된다. 하지만 그가 이것을 무협소설로, 혹은 무협소
설의 방식으로 행하고자 했던 것의 중요함은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의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과 내용, 그리고 그 결과물까지 모두 상상의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협과 강호라는 상상을 가지고 역사와 중국을 다시 상상했
다. 이때 강호와 협은 상상의 수단이며 상상의 구현체이다. 특히 협은 상상된
역사와 중국을 지탱하고 유지하는 주체이다. 그렇다면 이 주체가 어떻게 생성되
었으며, 무엇으로 완성되어 가는 지를 살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
리고 이 과정은 협과 그의 생부와의 관계 양상과 관련을 맺는다.
무협소설에서 생부는 단지 협에게 육신만을 제공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협이
보유해야 하며 지향해야 하는 정신을 전수하는 존재이며, 더 중요한 것은 협에
게 ‘민족적 혹은 국가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존재이다. 일반적으로 무협소설에서
생부보다는 사부의 존재가 더욱 큰 것에 반해서 여기서 생부의 존재에 더욱 주
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은 협에게 정체성을 제공하였고, 협객은 그
정체성에 기반하여 역사와 강호에 뛰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협객의 정체성은 협
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호해지며, 이와 더불어 그가 뛰어든 역사와 강호의
현장 역시 갈수록 복잡해진다. 이 속에서 협객은 갖은 고뇌와 번민, 고통과 아
픔을 겪어야만 했다.
협객이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유는, 역사 상상에 있어서 金庸의 딜레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51
마 때문이었다. 陳家洛과 袁承志, 郭靖은 金庸이 딜레마를 감지하기 전이거나
딜레마를 감지해 가는 과정 속에 탄생한 인물들이다. 그들의 친부들은 그들에게
있어 나아가야 할 좌표를 제시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협객들에게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확장된 한족이라는 정체성을 제공하였고, 그들의 역사를 인식하게 하
였다. 그들의 역사는 피해자의 역사이며,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한 역사이다. 그
래서 그들은 민족의 운명과 대의를 지키기 위해, 혹은 회복하기 위해 나서는 것
에 아무런 회의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의 아버지들의 정신과 이념
이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이며, 또
협객 스스로도 이를 ‘성공적’으로 완성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협객은 물론이거
니와 金庸 역시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아무런 회의가 있을 수 없던 아
버지의 정신과 방식, 아버지의 역사에 대한 회의와 극복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한다.
楊過와 張無忌는 아직은 민족과 역사로 표현되는 아버지를 정면으로 회의하
지는 않는다. 楊過는 아버지의 과오를 깨달고 친부와 정신적으로 결별함으로써
더 큰 아버지의 품으로 회귀하며, 張無忌 역시 아버지의 역사를 새로 창조하는
데 일조한다. 다만, 그들은 아버지의 정신으로 충만한 강호의 이념과 주류적 사
고에 대항하는 것으로, 아버지의 정신과 이념에 대해 저항하고자 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다음 절에서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아버지의 역사와 아버지로서의 민족의 가치와 이념에 정면으로 회의하고 그
것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ꡔ天龍八部ꡕ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ꡔ天龍八部ꡕ는 사
실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회의와 극복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민족의
문제가 확연히 드러나고, 기존의 민족관에 대한 회의가 모색된다. 즉, 아버지의
문제와 역사, 민족의 문제가 하나의 틀 속에서 중첩되고 있다. 이제까지의 아버
지는 민족이자 민족혼과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모방하고 계승하는 협
객의 출현과 완성은 아버지의 부활이다. 이런 면에서 이전의 모든 협객은 ‘민족
의 협’이다. 개별적으로 그들은 반항적이기도 하고, 개인적이기도 하며, 자유주
의적이기도 했지만 결국 그들을 포괄해낼 수 있는 명칭은 ‘민족의 협’, 더 정확
하게 말하자면 ‘한족의 협’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들의 최고의 과제이
자 지상의 과제는 민족(한족)을 위망에서 구해내는 것, 그리고 민족의 자존심과
가치를 회복하고 대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契丹族의 俠’ 蕭峯과 ‘鮮卑族의 俠’ 慕容復이 등장하면서 협객의 정체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5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성에 일대 혼란이 발생한다. 물론 그들은 그 민족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협객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 ‘北喬峯․南慕容’이라는 칭호는 그들이 중원
의 강호를 대표하는 협객임을 말해준다. 특히 喬峯은 무림의 영수와 다름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喬峯은 거란족이란 신분이 드러나면서 한족의 강호를 떠나며,
이로써 그는 蕭峯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 그는 거란족의 무사 蕭遠山의 아들이
라는 원래의 신분을 되찾게 된다. 아버지와 신분을 되찾게 되는 것은 그에게 업
보를 물려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는 강호를 떠나기 전 ‘聚賢莊’에서 백여 명이
넘는 한족의 고수들, 한족의 협객들과 일대 혈투를 벌이게 되고, 이들을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한다. 蕭峯은 아버지 蕭遠山이 지은 죄과를 고스란히 물려받게
되는데, 蕭峯이 한족과 거란족 사이의 끊임없이 계속되는 살육의 역사를 저지하
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 살육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
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죄과에 대해 스스로 내리는 처벌이기도 하
다. 앞에서도 잠시 살폈듯이, 蕭遠山 이외에도 慕容博, 段正淳, 段延慶, 玄慈 등
의 협객의 아버지는 모두 협객에서 업보를 물려준다. 아들 협객들은 각각 원죄
를 갖고 태어나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서 회의하고 부정하고자 할 때에 민족의 문제가 거론된
것이며, 민족의 문제가 거론되면서 필연적으로 이전과는 다른 아버지, 회의되고
극복되어야 할 아버지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아버지들은 한족의 아
버지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거란족의 아버지, 선비족의 아버지들 역시 회
의되고 극복되어야 할 아버지인 것이다. 왜냐하면, 한족 또한 가해자였음이 밝
혀지는 것이 가해자로서의 이민족 아버지의 가해의 역사를 덮을 수 없기 때문
이다.
“… 당나라 때, 당신 한인들의 무공은 극에 달했소. 그래서 얼마나 많은 우리
거란족 병사들을 살육했으며, 얼마나 많은 우리 거란족 아녀자들을 노예로 삼
았는지를 모를 지경이오. 지금은 당신 한인들의 무공이 약해져서 우리 거란인
들이 반대로 당신들을 공격해 죽이고 있소. 이렇게 죽고 죽이는 일이 언젠가
멈출지를 모르겠소.”
… “어느 때야 비로소 태평한 시대가 올지 모르겠소.”
“… 大唐之時, 你們漢人武功極盛, 不知殺了我契丹多少勇士, 擄了我契丹多少婦
女, 現今你們漢人武功不行了, 我契丹反過來攻殺你們. 如此殺來殺去, 不知何日方
了?”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53
… “可不知何年何月, 才有這等太平世界.”207)
아들 세대로서의 협객들은 아버지를 회의하고 극복하면서 아버지의 역사까지
도 회의하고 시정하려 한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 희생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蕭峯은 아버지가 준 생명을 버림으로써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민족적 정체를
탈피하였고, 이로써 ‘한족’과 ‘거란족’ 너머에 존재하는 새로운 정체를 꿈꾸었다.
하지만 아직 그 새로운 정체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단지 아버지의 역사와
아버지의 신분을 부정하고 뛰어넘음으로써 그간의 상상된 역사와 주체로부터
초월하고자 하였을 뿐이다.
물론, 이러한 극복과 초월의 욕망은 여기서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
것은 협객이 처음부터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단지 그것이
확연히 가시화되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다음 절에서는 협
객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과거와 현재에 대한 극복과 초월의 욕망에 대해서 살
펴보도록 하겠다.
3. 비주류․근대의 입장에서의 강호 질서와 이념의 재편
1) 江湖의 질서 재편의 의미
金庸의 협의 성장 과정은 아버지(와 그 역사)를 확인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협이 기존의 질서와 관념을 확인하고 또
이를 새로운 질서와 관념으로 재정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통 무협소설은, 협
이 강호에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여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강호에 뛰어들거나,
혹은 협이 강호에 뛰어드는 것 자체가 강호에 어떤 문제를 발생시키거나 하는
두 가지 양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金庸 小說의 경우 대부분은 전자에 속하
는데, ꡔ雪山飛狐ꡕ나 ꡔ鹿鼎記ꡕ는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에 있어서 협은 결국 강호의 질서나 판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협의 출현이 붕괴된 강호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경우에도 새로이 재편된 질서는
207) 三聯本 ꡔ天龍八部ꡕ, 第5卷, pp. 1950-1951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5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적어도 협 출현 이전의 질서와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이런 면에서 모든 무협소설은 강호의 새로운 질서 재편 과정이라고 볼 수 있
는데, 金庸 小說은 이를 정확하게 실현시키고 있다. 金庸의 협객들은 역사를 뒤
바꿀 힘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붕괴된 강호의 질서를 회복시키거나 이전의 강호
의 재편 양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판도를 형성해내는 데 있어서는 역량을
확실히 발휘한다. 이들의 이러한 노력과 시도는 역사 상상에서 당면한 딜레마에
대한 상상적 해결 방안인 셈이다. 그들은 실제의 역사 대신 강호라는 공간을 대
상으로, 그것의 정신과 이념, 질서를 재편하고자 하였다. 이는 한편으로 아버지
를 극복하고자 했던 협객들의 노력과 동일선상에 있는데, 이는 주류적이고 전통
적인 아버지를 회의하고 극복하고자 한 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아버
지의 정신과 이념으로 지탱되는 강호를 새로운 정신과 이념으로 질서화시키고
자 하였다. 이때 이들의 주요한 수단은 비주류적이고 근대적인 정신과 이념, 태
도와 자세였다.
嚴家炎은 金庸 小說이 체현하고 있는 現代精神에 대해서 논의한 적이 있
다.208) 그는 金庸 小說의 現代精神은, 金庸의 무협소설이 무협소설의 전통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사상적 면에서 예술적인 차원까지 새로운 혁신을 이룰
수 있도록 한 중요한 단서라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現代精神의 체현은, 임의
적 살상에 대한 부정, 민족 관념의 혁신, 정과 사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의 수정,
개성의 해방과 인간의 독립 정신 강조,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 현대 심리학을
이용한 인물의 창조와 분석 등으로 드러난다. 그의 金庸 小說에 대한 분석과 지
적이 비교적 정확함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그가 말하는
‘現代精神’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그의 ‘現代精神’은 경우에 따라서는 봉건시대와
구시대에 창작된 무협소설이 기반하는 봉건적이고 구시대적인 관념과 창작 방
식과 다른 정신 혹은 창작의 방식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근대성’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嚴家炎의 맥락에서 ‘現代精神’이라는 말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포괄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金庸의 小說은 이전의 무협소설과는 차별
화된 무협소설이며, 나아가 ‘근대성’에 기반하고 그것을 체현하는 소설이다. 이
로써 그는 金庸 小說을 ‘五四 이후의 新文學과 일맥상통하는’, ‘現代 中國文化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209)
208) 嚴家炎, 「論金庸小說的現代精神, ꡔ金庸小說論稿ꡕ, pp.78-101.
209) 嚴家炎, 위의 책, p. 99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55
이런 의미에서 볼 때, 嚴家炎이 사용하는 ‘현대정신’ 혹은 ‘현대성’이라는 말은
가치 평가어이다. 그것들은 金庸의 무협소설을 ‘문학’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중
요한 단서이다. 하지만 필자가 여기서 말하는 ‘근대’ 혹은 ‘근대적’이라는 것은
필자의 의도에서는 가치가 배제된 것이다. 이 말들은 金庸의 협이 기반하고 의
지하는 것이 전통에 반하는, 혹은 그것을 시정하고자 하는 태도와 자세임을 말
하는 차원에서 사용되었다. 물론, 金庸의 협객들은 ‘근대인’의 모습을 보이는 것
이 사실이다. 그들은 전통 사회의 중국 혹은 강호에 출현한 ‘근대인’이기도 하
다. 이는 金庸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관념과 방식으로 중국을 상상했기 때
문이고, 따라서 협객들이 근대인의 면모를 보인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金庸 협의 근대인의 면모가 협객을, 그리고 金庸 小
說을 우월하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은 그 가부를 떠나서 그리 관심이 가는 주제
는 아니다. 필자의 관심은 협객이 근대적 자세와 태도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金庸이 협객을 그렇게 형상화해내는 것이 무협소설의 재미와 새로움
의 획득이라는 단순한 이유나 차원을 넘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2) 주류적․전통적 강호에 대한 회의와 재편 과정
ꡔ倚天屠龍記ꡕ 이전의 작품에서는 주로 기존의 강호 질서와 정신의 계승의 측
면이 보다 두드러진다. 물론, 이 말은 상대적인 의미이다. 金庸은 대부분의 작품
에서 협객을 강호의 비주류에 속하게 하고210), 그의 근대적 사고 방식을 부각시
킨다. 이는 이 시기의 작품에서도 예외가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金庸의 협이
기존의 강호 질서와 정신을 계승하는 측면이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ꡔ碧血劍ꡕ의
袁承志가 계승하고 있는 것은, 청의 침략에 맞서 민족을 지켜내야 한다는 민족
적 대의이고, 이는 그가 무림대회를 통해 무림의 영수자가 되게 하는 중요한 요
인이다. 이런 면에서 郭靖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한때 강호를 떠나려고까지 했
지만 국가와 민족, 백성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하는 洪七公에게 감화되어 다시
협의 길을 걷게 되고, 결국 홍칠공을 계승하여 ‘東邪 黃藥邪, 西毒 歐陽鋒, 南帝
段智興, 北丐 洪七公, 中神通 王重陽’으로 이루어진 구 무림 구도를 ‘東邪 黃藥
210) 적어도 金庸의 협들은 정파와 사파, 혹은 주류와 비주류에 속하는 고수들의 무공을
두루 섭렵한다. 그들의 강호의 최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5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邪, 西狂 歐陽鋒, 南僧 一燈大師(段智興), 北俠 郭靖, 中玩童 周伯通’의 새로운
구도로 바꿔 놓았다.
물론 이 작품들 속에서도 기존 강호의 질서 혹은 이념이 전일적인 위력을 발
휘하는 것만은 아니다. 협객들은 拜師 방식과 애정의 방식을 통해서 그것에 어
긋나는 행위를 하며, 그로써 어려움을 당하기도 한다. 화산 무공을 근본으로 삼
은 袁承志는 강호의 奇俠으로 알려진 夏雪宜가 남긴 碧血劍과 金蛇秘笈을 접함
으로써 강호의 주류의 무공과 비주류의 무공을 모두 섭렵하게 되며, 괴팍하고
잔인하기도 하기도 한, 夏雪宜의 딸 溫靑靑과 사랑을 나눈다. 또 그는 五毒敎의
교주 何鐵手를 자신의 제자로 삼기도 한다. 郭靖은 東邪의 딸로, 小東邪란 별명
을 가질 정도로 제멋대로인 黃蓉을 만나 사랑하게 됨으로써 여러 가지 풍파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들에서 강호의 질서와 그것을 유지하는 이념들
은 그다지 의심받지 않는다. 협객들은 무림의 영수가 되어 훼손된 강호의 질서
를 회복시키고, 또 악녀적인 여인을 순종적인 여인으로 바꾸어놓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강호가 추구하는 이념들을 수호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여기
서는 강호의 질서와 이념을 위협하고 회의하는 자들의 존재가 역으로 그것의
공고함에 대한 증거로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ꡔ神鵰俠侶ꡕ에 대해서도
일부 적용된다. 강호의 이단아였던 楊過가 결국 강호로 귀환하며, 항몽 대열에
도 참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楊過가 보여준 반항적 태도는 너무나도 강렬했기
때문에 결국 그가 협의 자리로 돌아왔다 하더라도 ꡔ神鵰俠侶ꡕ에서 드러난 기존
강호의 질서와 이념에 대한 반항과 저항은 가볍게 볼 수 없다.
ꡔ神鵰俠侶ꡕ의 주인공 楊過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강호의 이단아이다. 그는 아
버지 楊康의 사악함과 교활함을 물려받았고, 정신 착란에 빠진 강호 최고의 고
수 西毒 歐陽鋒을 의부이자 사부로 모시면서 그의 사악함은 극대화된다. 그는
강호 질서의 주변에서 강호의 질서를 조롱하고 훼손하려 하는데, 이는 그가 남
자이면서도 古墓派의 제자가 된 것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楊過의 강호의 질서
와 이념에 대한 최대의 반항은, 스승인 小龍女와의 사랑으로 표현된다. 郭靖을
비롯한 강호인들은 제자와 스승 간의 혼인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과야, 어찌 누가 잘못이 없겠느냐? 선현들께서는, 잘못을 알고 고치면 이보
다 좋은 것이 없다고 하셨다. 너는 사존께 불경을 저지르고 있으니, 이는 커다
란 과오니라. 잘 생각해보거라.” …
“용소저는 너의 사부이고, 너의 어른이다. 남녀간의 사사로운 정이 있어서는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57
안된다.”…
“내가 여러분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으며, 또 누구를 해치기라고 했습니까?
이 분은 나에게 무공을 가르쳤을 뿐이고, 나는 그녀를 내 아내로 삼고자하는
것일 뿐입니다. 당신들이 나에게 칼 세례를 한다해도 나는 그녀를 내 아내로
맞을 것입니다.”
“過兒, 人孰無過, 過而能改, 善莫大焉, 這是先聖先賢說的話. 你對師尊不敬, 此
乃大過, 你好好的想一下罷.” …
“龍姑娘旣是你師父, 那便是你尊長, 便不能有男女私情.” …
“我做了什麽事碍着你們了? 我又害了誰拉? 姑姑敎過我武功, 可是我便要她做我
妻子. 你們斬我一千刀․一萬刀, 我還是要她做妻子.”211)
嚴家炎이 金庸 小說에서 드러나는 거의 유일한 ‘非現代精神’로 지적한 것은
협객과 여성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데212), 이런 의미에서 볼 때, 楊過의 小龍女
에 대한 사랑은 말 그대로 ‘現代精神’의 전형이다. 楊過는 남녀의 불평등 관계에
기반한 전통적 혼인관념에 정면으로 반항하는 것이고, 이것은 楊過로부터 목격
되는 가장 분명한 근대의식이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기의 근대의식을
관철하고자 하며, 그의 의지는 小龍女가 윤지관에게 정절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고도 변하지 않는다. 그의 사랑은 전통적이고 주류적인 관념에 대한 도전과
반항일 뿐만 아니라 남성 중심적 관념에 대한 도전과 반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ꡔ神鵰俠侶ꡕ에서의 그의 도전과 반항은 적지 않은 대가를 필요로 했는데, 楊過는
小龍女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한쪽 팔을 잃는 고난을 겪어야 했다.
이는 ꡔ神鵰俠侶ꡕ 이야기 그 자체의 애절함과 흥미를 배가시키는 장치이기도 하
지만213), 또한 내면적으로는 기존의 강호 질서와 이념에 대한 도전과 반항이 쉽
지 않음을 말하며, 그것이 부분적인 오류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것임을 역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ꡔ神鵰俠侶ꡕ에서 시작된 전통과 주류의 관념에의 저항과 회의는 ꡔ倚天屠龍記ꡕ
211) 三聯本 ꡔ神鵰俠侶ꡕ 第2卷, pp. 497-498
212) 嚴家炎, 앞의 책, pp. 99-100
213) 小龍女는 자신과 楊過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또 죽음의 위험에 노출
된 楊過를 구하기 위해 절정곡에서 투신한다. 하지만 楊過는 자신과 小龍女와의 사
랑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십여 년 동안 찾아 헤매었고, 결국 이 두 사람은
애절한 사랑을 완성하게 된다. 이런 요인 때문에 ꡔ神鵰俠侶ꡕ는 무협소설이면서 뛰
어난 애정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5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이후에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ꡔ倚天屠龍記ꡕ에서 金庸은 正과 邪의 문제를 집
중적으로 다룬다. 六大 門派로 대표되는 무림의 정파와 明敎로 대표되는 사파
사이의 대립과 투쟁은 抗蒙과 明의 건국이라는 역사적 문제와 더불어 ꡔ倚天屠
龍記ꡕ의 주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ꡔ倚天屠龍記ꡕ에서는 강호에서 다수와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고, 강호의 전통적 관념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무림의 정파는 편견
과 맹목적 권위의 상징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무림의 정파인들은 明
敎를 사파로 규정하는데, 이들에게 있어 정과 사는 곧바로 선과 악으로 등치된
다. 그들은 사파인들이 무림 정파의 고수들을 잔인무도하게 살인한다고 믿고,
그들과의 투쟁을 항몽 항쟁만큼이나 막중한 사명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파인들의 오해에 불과하였고214), 이러한 오해는 사파에 대한 그들의 편견으로
부터 시작된 것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정사를 통틀어 무림에서 가장 존경받는
존재인 武當의 張三豊 역시도 이러한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지만 실상 정파에 의한 사파의 규정은 주류에 의한 비주류의 경계짓기이다.
사파인들, 즉 명교인들은 실제 그들의 행위 보다는 그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의해서 사파로 규정되었을 뿐이다. 그들은 명교라고 하는 이질적 종교집단에 속
한 자이며215),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생활 방식, 습성 등을 유지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정파인들 즉, 강호의 주류에 의해 타자로 규정되었다. 물론, ꡔ倚天屠龍
記ꡕ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특이한 습성은 단지 육식과 술을 멀리하고, 채식을 위
주로 한다는 것뿐인데, 이것은 그들에 대한 편견과 결합되면서 그들을 비주류의
소수집단, 즉 타자의 집단으로 인식케 했다. 정파인들이 정파 고수들의 연쇄 살
인의 범인이자 배후로 명교인들을 지목하는 것은, 이미 정파인들이 그들을 사악
한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진짜 범인 成昆은 이를 이용했던 것이
다.
이때 그들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이는 협객 張無忌이다. 張無忌는 정파 武當의
제자 張翠山과 사파 고수의 딸 殷素素 사이에 태어남으로써, 그리고 사파 출신
214) 하지만 이것은 명교에 개인적 원한을 갚고, 강호를 죽고 죽이는 대 살육장으로 만
들어 무림인들의 항몽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는 악인 成昆이 자행한 것이었다.
215) ꡔ倚天屠龍記ꡕ에 나타나는 명교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明敎가 페르시아에서
들어온 摩尼敎로서, 唐 武則天 때 중국에 들어와 한동안 번성하였으나, 唐 會昌 三
年부터 조정의 압박을 받기 시작하였고, 이로써 明敎는 차츰 밀교로 낙인찍히게 된
다. 따라서 교도들의 행동이 괴이해지고 비밀스러워지게 되었고, 줄곧 조정과 적대
적인 관계에 있게 되어, 이 때문에 사람들이 摩尼敎의 摩자를 魔로 오해하게 되었
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59
의 金毛獅王을 의부이자 첫 번째 사부로 모심으로써 정과 사의 접합과 화해를
시도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닥칠 고난과 위험을 무
릅쓰고 명교인들의 편에 서고 결국 명교의 교주 자리에까지 오르는 것은, 한편
으로는 명교인들 역시 항몽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세력이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비주류와 소수에게 횡포를 가하는 주류와 다수의 부당함을 인식하
였기 때문이다. 강호의 주류와 다수이자 강호 전통의 계승자인 정파인들은 이제
부당함의 대명사로 탈바뀜하였고, 협객은 비주류와 소수자의 입장에서 그에 대
해서 저항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강호의 전통에 대한 부정과 저항인데, 이로써
협객은 전통적 강호가 아닌 새로운 강호의 구축을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새
로운 강호는 강호의 역사에서 볼 때, 반전통적인, 즉 근대적인 형태의 강호이다.
물론, 이 근대적이라는 말은 전통의 부당함과 억압성에 대한 반성 혹은 해체의
의미에서만 긍정적 평가를 인정받을 수 있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새로움 혹은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떤 의
미로건 강호의 질서가 새로운 재편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그
재편의 이면에 이전까지 주류와 전통을 대변하는 것 자체로 정 혹은 선으로 인
식되었던 것들이 비주류와 근대적인 것에 권위를 빼앗기게 되었다는 사실이 존
재한다.
ꡔ笑傲江湖ꡕ에서도 正派와 邪派 간의 대립과 충돌은 재연된다. 華山派의 제자
令狐冲은 사파 日月神敎 교주의 딸 任盈盈을 만나면서 사파 집단과 관계를 맺
게 된다. 여기서도 정사의 대립은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정파와 사파 모두
내부적 권력 투쟁에 휩싸여 있음으로 해서 정과 사의 문제보다는 권력의 문제
가 두드러지게 부각된다. 하지만 ꡔ笑傲江湖ꡕ에서도 협객은 소수자와 비주류의
편에 서며, 그들의 규합을 통해 강호의 판도를 재편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
게 된다.
ꡔ倚天屠龍記ꡕ에서 본격화된 기존 강호 질서의 재편과 새로운 강호 질서의 확
립은, ꡔ連城訣ꡕ을 거쳐 ꡔ天龍八部ꡕ에 이르게 된다. ꡔ連城訣ꡕ에서 金庸은 처음으
로 주인공(狄雲)의 사부(戚長發)를 악인으로 설정한다. 일반적으로 ‘정신적 아버
지’로 형상화되며, 강호 이념의 현현체라고 할 수 있는 사부가 악인으로 설정됨
으로써 이제까지 계승되고 유지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되던 강호의 질서와 이념
은 완전히 회의의 대상이 된다. ꡔ天龍八部ꡕ에서 그 회의의 대상이 또다른 아버
지인 친부를 향해 있음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이제 강호란 새로운 질서, 혹은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6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완전한 전복을 필요로 하는 세계가 되었고, 이는 결국 ꡔ鹿鼎記ꡕ라는 작품을 낳
게 된다.
ꡔ天龍八部ꡕ에서 회의되고 의심되는 것은 아버지들만이 아니다. ꡔ天龍八部ꡕ에
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의 민족 관념에 대한 회의이다. 이는 전작들에서 민족
관념이 강호의 가장 중요한 이념이었던 것을 볼 때 대단한 전환이며, 이로써 강
호는 중요한 지지 기반을 상실하게 된다. 金庸의 전통적 강호는 새로운 형태의
강호의 출현을 대비해야 한다. 이때 金庸의 협에게, 그리고 金庸에게서 목격되
는 것은 그야말로 ‘근대적’인 것이다. 물론, ꡔ天龍八部ꡕ에서는 아직 그것이 명확
하게 정립되지는 못하였다. 앞 절의 ꡔ天龍八部ꡕ 蕭峯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었
던 것과 같이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은 漢族 아니면 契丹, 宋 아니면 遙이
고216), 이 둘의 대립과 경계를 허무는 것은 백성 아니면 인간일 뿐이다.
蕭峯이 목숨을 던져 막고자 한 것은 한족과 거란족 간에 끝없이 이어지는
살상의 역사이다. 이것은 이전까지 오랑캐에 의해 가해진 한족의 살상을 넘어
서, 한족 역시 오랑캐에게 가해자였음을 확인하는 것이며, 한족과 오랑캐를 통
틀어 반복되는 폭력의 순환에서 고통받는 일반 백성들의 고충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이때 일반 백성은 아직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중국인’의 다른 이름이
다. 다만 蕭峯은 아직 그것을 ‘근대인’으로서의 중국인으로 인식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ꡔ鹿鼎記ꡕ를 통해 완전히 강호의 주체로 등장하는 ‘중국인’은 ꡔ天龍八部ꡕ에서
한족, 거란족, 혹은 일반 백성이란 이름으로 언뜻 등장하게 된다. 잠재적으로 모
색되어 가던 강호의 새로운 주체가 ꡔ天龍八部ꡕ에서 언뜻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근대적 주체의 암시적 등장은 강호의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거
란족을 무림의 영수로 맞이했던 한족 고수들은 감추고자 했던 그들의 과오가
낱낱이 드러나고, 聚賢莊에서 무수히 죽어갔으며, 아버지로서의 지위와 영예마
저 훼손당한다. 강호는 그 질서와 이념의 주체였던 한족의 고수, 그리고 아버지
들의 명예훼손과 더불어 위태로운 처지에 빠져버리며, 그 이전의 강고했던 강호
역시 회의되고, 심지어는 붕괴의 조짐을 보이게 된다. 아직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은 ‘근대인’으로서의 중국인의 등장이 이제까지 강고했던 강호를 붕괴 일보
216) 耶律洪基는 蕭峯의 자살을 보고, 그것이 요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송으로부터 공
로를 인정받기 위한 것인가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인’이라는 정체가 蕭
峯에게서도 아직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ꡔ天龍八部ꡕ의 인물들
역시 그것의 정체에 대해서 감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61
직전까지 몰고 들어갔던 것이다.217) 하지만 이것으로 강호가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金庸에게 있어 최종적 목적은 강호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
고 역사와 중국을 대체할 강호를 상상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ꡔ天龍八
部ꡕ에서 거의 붕괴 일보 직전까지 갔던 강호는 이런 의미에서 이제까지와는 완
전히 다른 정신과 이념으로 구축된,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 등장한다.
더 이상 역사적 문제를 다루지 못한 ꡔ天龍八部ꡕ 이후의 두 작품 ꡔ俠客行ꡕ과
ꡔ笑傲江湖ꡕ는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강호의 출현, 완전히 새로운 주체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된 강호의 출현을 예비하기 위한 잠재기이기도 하다. ꡔ俠客行ꡕ에서
협객 石破天이 ‘자신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고, 순진무구와
일자무식을 수단으로 무림 최대의 난제를 풀어내어 강호의 고수들을 망연케 하
는 것, ꡔ笑傲江湖ꡕ에서 고아인 令狐冲이 자신의 아버지와 다름없는 사부 岳不群
을 극복하는 것 등은 그 자체로 새로운 강호와 그 주체의 모색이면서, 동시에
ꡔ鹿鼎記ꡕ의 강호와 협의 출현에 대한 암시와 예비이다. ꡔ鹿鼎記ꡕ가 金庸의 다른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장 뛰어난 그의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ꡔ鹿鼎記ꡕ
는 집중적으로 고찰되고 분석할 대상이다.
4. ‘國民의 俠’의 탄생 : 주체 상상의 완결
1) ‘反俠’의 출현 : 漢族에서 中國人으로
ꡔ鹿鼎記ꡕ에 대해서 주목해야 할 것은, 첫째 그것이 金庸의 封筆의 작품이라는
점과 둘째 그것이 이전의 金庸 小說과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점이다.218) 이 두
가지가 의미하는 것은 ꡔ鹿鼎記ꡕ에서 金庸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 즉 이전 방식
의 전복 혹은 부정으로까지도 보이는 방식으로 중국과 역사에 대한 상상을 진
행하였고, 이것이 중국과 역사에 관한 金庸의 최종적 상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217) ꡔ天龍八部ꡕ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아들들인 段譽와 虛竹이 모두 불가에 귀의
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강호의 소멸 혹은 강호의 붕괴를 의미한다.
218) ꡔ鹿鼎記ꡕ가 明報에 연재되었을 때, 독자들은 이 작품이 金庸의 작품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적지 않은 의심을 품었다고 한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6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즉 金庸에게 있어서 ꡔ鹿鼎記ꡕ는 자신의 기존의 중국과 역사에 대한 상상의 전
복 내지 부정인 동시에 그것에 대한 완결이자 완성이다.
田曉菲는 金庸 小說을 논할 때, ꡔ鹿鼎記ꡕ와 그 이전의 작품을 서로 다른 각
도에서 해석하였다.219) 그런데, 그녀의 지적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ꡔ鹿
鼎記ꡕ를 金庸의 전체 작품에서 분리하여 사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전체 金庸의 무협소설을 ‘중국(역사)와 중국인에 대한 상상이자 그 과정’으로 보
고자 하는데, 이때 ꡔ鹿鼎記ꡕ는 그 全 과정의 종착점이며, 金庸의 전작들은 ꡔ鹿
鼎記ꡕ라고 하는 (어떤 의미로는 해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종착점에 닿기 위한
前 과정이다.220) 金庸은 자신의 소설을 통해 자신의 역사에 대한 상상의 내용을
지속적으로 변화시켜 왔다고 볼 수 있는데, ꡔ鹿鼎記ꡕ의 탄생은 이러한 변화 혹
은 극복의 과정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로써 그 상상은 완성되고 종결된다. ꡔ鹿鼎
記ꡕ를 배제하고서는 金庸 小說의 전체적 변화 과정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으며,
219) 田曉菲는, ꡔ鹿鼎記ꡕ가 金庸 小說 중 가장 성숙된, 그리고 가장 복잡한 작품임이기
는 하지만, 金庸 小說을 대표하는 작품이 될 수는 없다고 평가한다. 이것은 그녀가 金庸 小說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반풍(Irony)의 소멸’이라고 주장한 것과 관계된다.
그녀는 金庸이 풍부한 중국 전통문화를 다채로운 이야기와 인물들 속에 융합시켜
냈고 이로써 독자들이 완전히 새로운 ‘완전히 다른 질을 가진 또 하나의 시대를 경
험(觸摸另一個時代的質地)’할 수 있도록 한 점과, 중국 전통문화에 바탕을 둔 ‘도덕
공간의 구성과 문화적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 것을 金庸 小說의 중요한 특징이
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때 金庸 小說의 또 하나의 특징이자 가장 중요한 특징인 ‘反
諷의 소멸’은 그 전제로 작용한다. 즉, 金庸이 중국 전통의 도덕 문화의 틀을 만들
어내고, 이를 통해 전통적 세계관 자체가 이미 희미해진 독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과
만족을 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가 바로 ‘反諷의 소멸’이라는 것이다. 田曉菲는
‘反諷의 소멸’을 장편소설의 ‘전체성(totalitarian)’과 연결시키지만, 이것이 그 자체로 金庸 小說에 대한 부정적 의미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무협소설의 극도의
전체성이 회의와 풍자, 불안과 초조 등으로 가득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독자들에
게 안정과 심리적 평안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金
庸 小說 역시 중국 전통 도덕문화 정신을 이용하여 특수한 시공간, 즉 이미 사라져
버린 ‘文化中國’을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ꡔ鹿鼎記ꡕ는 풍자를 기본 구
조로 삼음으로써 金庸이 전작들에서 구축한 순수한 情義世界에 反諷의 정신으로
조망한다고 주장한다. 田曉菲, 「反諷的消解: 金庸筆下的“小說中國”」, ꡔ名人名家讀金
庸ꡕ, 上海書店出版社, 2000. 8. pP. 166-180 참조.
220) 물론, 이는 ꡔ鹿鼎記ꡕ 이전의 金庸의 작품들 ‘개별’의 의미를 무시하는 것으로 해석
될 수도 있는데, 필자의 논의가 金庸 小說의 문학적 의미와 가치를 논하는 것이 아
니라 金庸 小說을 중국에 관한 상상으로 보고 그것의 양상을 고찰하는 것이라 이
때 ꡔ鹿鼎記ꡕ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 어떤 작품보다 크며, 또 ꡔ鹿鼎記ꡕ 이전의 작품
도 단지 이러한 관점에서 고찰하기 때문에, 이러한 오해는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
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63
또한 金庸의 ‘중국(역사)과 중국인에 대한 상상’의 내용 또한 살펴보기 어렵게
된다.
ꡔ鹿鼎記ꡕ가 드러내는 전작과의 다름은, 단순히 전작의 창작 경향을 부정하거
나 극복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동안 지속해 왔던 자신의 상상을 완성하고 완
결하기 위한 시도 혹은 이미 완성되고 완결된 자신의 상상의 내용을 공포(公布)
하기 위한 일련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金庸은 완성과 완결을 근거로 전복과
부정을 실행하였고, 전복과 부정을 통해서 완성과 완결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金庸이 달라진 상상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서사 방식(특히 주
인공에 있어서)을 채택하였다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에 ꡔ鹿鼎記ꡕ가 갖는 이전
과 다른 면을 고찰하는 것은 그것이 이전과 어떻게 다른 상상의 내용을 갖는
지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단서이다.
전작들과 다른, ꡔ鹿鼎記ꡕ의 상이함은 거의 전적으로 주인공 韋小寶로부터 나
온다.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은 ‘反俠’이라는 말이다. 즉, 그는 前作의 金庸의
협, 더 넓게는 기존의 무협소설의 협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출현한다. 그는
협이라는 칭호를 붙여도 되는 것인가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인물인데, 이때 ‘反
俠’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韋小寶가 일반적으로 ‘협’에게 기대하는 기질 혹
은 행위와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로운 일을 행하며,
약한 자를 돕고,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버릴 수 있
는 협의 기질과 행동을 韋小寶에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韋小寶는 공공의 이익보
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의리보다는 이익을 우선시하며, 삶을 탐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무
공이 아니라 교활함과 약삭빠름, 속임수와 입놀임 등을 자신의 최대 무기로 삼
는, 시정의 무뢰배에 다름 아니다. 그가 때로 의롭거나 옳은 일을 하는 것은 협
객의 자질이 발동되어 나와서가 아니라 멀리 있는 더 큰 이익을 도모하거나 협
객의 행세를 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이전 金庸의 협들과
완전히 상반되는 인물이고, 그래서 그에게 反俠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에 이견
이 있을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反俠’에 대한 이해는 단지 여기서만 그치면 안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反俠’의 성격은 단지 韋小寶가 기존의 협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 즉 현상만
을 드러내줄 뿐이기 때문이다. 韋小寶의 이러한 겉모습은 그가 기존의 협과는
다른 범주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협임을 암시하기 위한 사사로운 장치에 불과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6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여기서 ‘反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다
면 먼저 金庸의 협(필자는 이것이 일반적인 무협소설의 협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이 공동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봐야 한
다. 前作에서의 金庸의 협들은, 蕭峯이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모두 동일한 ‘민족
(종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의심할 것 없이 모두 한족의 협이다.
민족의 문제가 거론되는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이 거론되지 않을 때도 그들
은 당연하게 ‘한족의 협’으로 인식되는데, ‘한족으로서의 정체성’은 金庸의 협에
게 있어서 불문가지의 것이다. 蕭峯과 韋小寶의 특이함은 이들이 ‘한족으로서의
정체성’ 밖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도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韋小寶가 한족 뿐만 아니라
에스닉(종족)의 문제 그 자체의 밖에 존재하고 있는데 반하여, 蕭峯은 한족과
거란족이라고 하는 에스닉의 문제 한 중앙에 서 있다는 점이다. 蕭峯의 비극은
이 에스닉의 충돌에서 오는 비극이고, 이런 의미에서 그는 한족과 이민족 간의
대립과 투쟁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金庸의 여타의 협객들
과 동일한 범주에 속하게 된다. 蕭峯은 중국인과 한족을 동일시하는 시기의 金
庸이 이에 대해서 회의를 품게 되면서 구상해낸, 예외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에스닉의 차원에 속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韋小寶가 갖는 차별성까지는 획득하
지 못하였다.
반면에 韋小寶는 에스닉의 차원에서 구상된 인물이 아니라 내이션(국민)의 차
원에서 구상된 인물이다. 물론, 韋小寶가 뛰어든 세계는 한족과 만주족이 대립
하고 충돌하는 공간이며, 작품의 마지막에 그의 아버지가 五族 중의 어느 하나
로 모호해지기 전까지 그가 한족의 후예임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그를
움직이는 동력이 한족으로서의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反淸復明을
기치로 내세우는 天地會 陳近南의 제자가 되고, 또 天地會에서 비교적 높은 자
리에 임명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反淸復明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康熙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심복이 되어 滿淸의 정당성
을 역설하기까지 한다. 그가 서 있는 자리는 한족과 만주족의 대립의 한 가운데
이지만, 그는 이 대립의 소용돌이 안으로 개입되기를 거부한다. 즉, 그는 이전의
협이라면 당연히 선택했을 길을 거부한다. ‘反俠’으로서의 韋小寶의 위상은 바로
여기에 있다.
韋小寶는 金庸의 전작들을 지탱하였던 가장 핵심적인 주제와 완전히 결별하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65
였고, 자신의 선배 격인 다른 협객들과도 결별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ꡔ鹿鼎記ꡕ
는 金庸 전작들과의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221) ꡔ鹿鼎記ꡕ에서 韋小
寶의 한족과의 결별은 그가 사부로 모셨던 陳近南의 죽음을 통해 암시된다. 韋
小寶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陳近南의 죽음은 한편으로는 한족의 정통성과
정당성의 소멸을 의미하며222), 韋小寶의 애도는 그것과의 결별의 고통과 아쉬움
을 표하는 儀式과도 같다.
위소보는 울음을 터뜨렸다. “사부께서 돌아가시다니!” 그는 아버지가 없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찍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사부를 아버지로 생
각하며 그 허전함을 메웠다. 사부를 잃은 아픔이 세찬 물길처럼 주체할 수 없
이 밀려들었다.
韋小寶道: “師父死了, 死了!” 他從來沒有父親, 內心深處, 早已將師父當成了父
親, 以彌補這個缺陷, 只是自己也不知道而已; 此刻師父逝世, 心中傷痛便如洪水潰
堤, 難以抑制.223)
사부의 죽음 즉 한족 공동체 및 그것의 이념과의 결별은 동시에 그와 대립하
던 滿淸 정부에 대한 새로운 입장의 출현을 동반한다. 韋小寶에게 陳近南이 아
버지와 같은 존재라면, 康熙 황제는 친형과 같은 존재이다.224)
나는 중국 황제로서 비록 무슨 요․순․우․탕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림에 온 힘을 쏟았다. 명조의 황제 중 누가 나보다 더 나
은가? 지금 삼번은 이미 평정되었고, 대만도 귀속시켰으며, 로찰국도 감히 국경
을 넘보지 못하니, 이제부터 천하는 태평할 것이고 백성들은 편안히 생업에 종
사할 수 있을 것이다. 천지회의 반도들이 복명을 주장하고 있지만, 백성들이 주
씨 황제의 치하에서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거란 말인가?
我做中國皇帝, 雖然說不上堯舜禹湯, 可是愛惜百姓, 勵精圖治, 明朝的皇帝中,
有哪一個比我更加好的? 現下三藩已平, 臺灣已取, 羅刹國又不敢來犯疆界, 從此天
221) 물론 이 경우에도 金庸의 전작들(특히 중반 이후의 작품들)이 ꡔ鹿鼎記ꡕ라고 하는
새로운 상상을 가능케 한 전초적 탐색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222) 陳近南의 죽음이 그가 대항하였던 청 정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가 충
성을 다해 모셨던 한족 정권(臺灣 鄭氏)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점은 한족 정권 재건
립 시도의 허망함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223) 三聯本 ꡔ鹿鼎記ꡕ 第5卷, p. 1753
224) 陳墨, 「中國文化的精靈與怪胎-韋小寶論」, ꡔ孤獨之俠-金庸小說論ꡕ, p. 88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6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下太平, 百姓安居樂業. 天地會的反賊正要規復朱明, 難道百姓在姓朱的皇帝治下,
日子會過得比今日好些嗎?225)
康熙는 한족 정권에서 누리지 못했던 백성들의 안위와 행복을 이끌어 냄으로
써 중국의 황제이자 백성들의 아버지의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226) 이 순간은 康
熙 황제가 한족 백성들의 새로운 아버지로 등장하는 순간인데, 韋小寶는 이러한
康熙의 말을 顧炎武, 黃宗羲 등에게 전함으로써 ‘反俠’으로서의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다. 물론, 韋小寶가 滿淸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해서 그가 또다른
에스닉의 관점을 채택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한족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역사에 대한 수정일 뿐이다. 그리고 이 수정은 또다른 에스닉 차원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 구성으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즉, 韋小寶는 金庸의
전작들이 기반하고 있던 문제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문제의 구성 위에서 탄생
하고 활동한다. 여기서 새로운 문제의 구성이란 국민으로서의 내이션(nation)의
차원에서 과거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ꡔ鹿鼎記ꡕ의 전복성과 前作에 대
한 부정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反俠’의 동원은 기존의
협으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예를 들어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金
庸이 직면했던 딜레마), 혹은 기존의 협으로는 제기조차 할 수 없는 문제를 제
기하고 해결할 수 있게 해주었다. ‘反俠’이 기존의 협과는 범주를 달리하는 협이
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그는 더 이상 ‘漢族의 俠’이 아니라 ‘國民
의 俠’이다.
225) 위의 책, p. 1968
226) 林凌翰은 ꡔ鹿鼎記ꡕ를 당시 홍콩 사회의 식민지 상황과의 관련성 하에서 해석하였
는데, 그는 金庸이 康熙 황제의 현명함과 위민정신을 강조하고, 羅刹國(러시아)를
개입시켜 滿漢一家의 주장을 펼치는 것에서, 滿淸이 홍콩에서 비교적 ‘평화롭고 안
정적인’ 식민 정책을 펼치는 영국 정부에 대한 은유로 변환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ꡔ鹿鼎記ꡕ에서 成語의 誤記, 치욕의 희화화 등으로 표현되는 역사와 문화에 대
한 건망증과, 설서 및 唱戱에 대한 집착 등 韋小寶의 행위가 역사, 정치 의식 등이
미약하고, 대중문화에 함몰된 홍콩인들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더욱 확실해진다. 하
지만 그는 ꡔ鹿鼎記ꡕ의 滿淸이 영국만을 지시하는 게 아니고, 滿淸의 문자옥으로 대
륙 정권의 문혁 상황을 비유할 때, 滿淸은 대륙 정권의 은유이기도 하다고 보았다. 林凌翰, 「文化工業與文化認同-論金庸武俠小說呈現的植民處境」, 陳淸僑 編, ꡔ文化想
像與意識形態ꡕ, 牛津大學出版社, 1997년, pp. 229-254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67
2) ‘中國之俠’의 탄생 : 주체 상상의 완성과 그 의미
林興宅은 ꡔ鹿鼎記ꡕ가 겉으로 드러나는 해학적인 요소와 황당함, 유머와 기지
때문에 희극적인 작품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의 소리는 대단히 비극적인 의미를
전달해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227) 그것은 그가 ꡔ鹿鼎記ꡕ를 ‘중국 역사와 문화
에 대한 反諷’에만 한정하여 사고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이 말은 ꡔ鹿鼎記ꡕ
의 풍자성이나 해학을 부정하거나 林興宅의 주장의 타당성이나 의미228)까지 부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ꡔ鹿鼎記ꡕ의 핵심은 중국 상상에 있어서의 주체를 발견하
고 탄생시킨 것이고, 이 때문에 ꡔ鹿鼎記ꡕ의 유머와 시끌벅적함은 새로운 주체
탄생에 대한 환희와 자축으로 보인다. 韋小寶의 신분이 확인되는 ꡔ鹿鼎記ꡕ의 마
지막 부분은 이러한 예이다.
위소보는 어머니를 방으로 끌어 들어와 물었다. “엄마, 내 아비는 대체 누구
요?”
227) 林興宅은 ꡔ鹿鼎記ꡕ의 이중적 의미에 대해 다루었다. 그는 ꡔ鹿鼎記ꡕ의 겉으로 드러
나는 모습, 황당한 스토리나 익살스러운 묘사 방식 때문에 독자들이 종종 ꡔ鹿鼎記ꡕ
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거나, 이해한다고 해도 각자의 이해 내용에 상당한 편차가
존재한다고 지적하였다. 그것은 ꡔ鹿鼎記ꡕ가 ‘반풍(Irony)’ 즉 ‘문면에서 말하는 의미
와는 다른(일반적으로 완전히 반대되는) 내재된 함의를 전달해내는 말하기 방식’을
주요한 의미 전달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ꡔ鹿鼎記ꡕ의 가장
된 모습이 그 진의를 숨겨버리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ꡔ鹿鼎記ꡕ의 진의란 ‘중국 역
사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반풍’를 구성해내는 것이다. 즉 원초적 욕망의 상징인 韋小寶를 신성화된 궁정 세계와 무협 세계에 침투시켜 충과 의로 표현되는 두 세
계의 가치 관념의 허구성을 지적한 것이 ꡔ鹿鼎記ꡕ의 숨은 의도이며, 이로써 중국의
역사와 문화는 욕망이 주연하는 무대이며 욕망의 粉飾임이 드러난다. 그래서 그는
ꡔ鹿鼎記ꡕ가 ‘표면상으로는 해학적이고, 황당하며 유머와 기지로 가득한 희극인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뼛속은 장엄하고 엄숙하며 정련된 비극 사시이며 문화적 우언’
이라고 주장하며, 이 때문에 ‘金庸 小說 창작의 최고 성취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林興宅, 「具有多重反諷結構的象徵系統-ꡔ鹿鼎記ꡕ的文化隱喩解讀」, ꡔ名人名家讀金庸ꡕ, 上海書店出版社, 2000. 8, pp. 148-165
228) 金庸이 ꡔ鹿鼎記ꡕ의 후기에서 韋小寶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魯迅의 아Q에 대해서 거
론한 뒤로 많은 연구자가 韋小寶와 아Q의 상관성에 대해서 논하였다. 이는 韋小寶
의 비도덕성이나 탐욕, 공리성의 추구 등을 중국인의 전형적 성격이라는 관점에서
파악, 비판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林興宅 역시 이러한 관점을 갖는다. 그는 韋小寶
를 金庸의 중국 상상에 있어서 새롭게 탄생한 주체로 보기보다는, 중국의 역사와
중국인의 저열성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서는 林興宅의 위의
글, 陳墨의 「中國文化的精靈與怪胎-韋小寶論」(ꡔ孤獨之俠ꡕ에 수록ꡕ, 呂啓祥의 「藝林
高手長相知-ꡔ鹿鼎記ꡕ與ꡔ紅樓夢ꡕ」(ꡔ名人名家讀金庸ꡕ에 수록) 등 참조 바람.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6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위춘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위소보는 이마를 찡끄리며 다시 물었다. “엄마 뱃속에 내가 들어서기 전에
어떤 손님을 받았수?”
“그땐 니 어미가 괜찮았거든, 그래서 매일 손님이 적지 않았어. 그러니 내가
그들을 어찌 다 기억해!”
“손님들이 모두 한인이었수?”
“당연히 한인도 있었지, 만주족 관리도 있었고, 또 몽고인 무관도 있었다.”
“양놈은 없었나?”
위춘화는 화를 내며 말했다. “니가 이 어미를 뭘로 보는거냐? 양놈도 받았냐
고? 젠장할, 러시아놈, 화란놈들이 여춘원에 오면 내가 빗자루로 다 쓸어 내쫒
아버렸다.”
위소보는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거 잘했네!”
위춘화는 옛일을 회상하듯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회
족 사자가 하나 있었지, 자주 날 찾아왔어. 준수하게 잘 생겼거든. 내 생각에는,
네 놈 코가 아주 잘 생긴 게 그 사람을 닮은 것 같아.”
“한인, 만주족, 몽고족, 회족 말고, 서장인은 없었수?”
위춘화는 득의한 듯 말했다. “왜 없어? 그 서장 중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염불을 욌지, 그러면서 눈알을 힐끔거리면서 날 쳐다봤지. 네가 눈알을 돌리는
걸 보면 꼭 그 라마승같애!”
韋小寶將母親拉入房中, 問道: “媽, 我的老子到底是誰?” 韋春花瞪眼道: “我怎知
道?” 韋小寶皺眉道: “你肚子里有我之前, 接過什麽客人?” 韋春花道: “那時你娘標
致得很, 每天有好幾個客人, 我怎記得這許多?”
韋小寶道: “這些客人都是漢人罷?” 韋春花道: “漢人自然有, 滿洲官兒也有, 還有
蒙古的武官呢.”
韋小寶道: “外國鬼子沒有罷?” 韋春花怒道: “你當你娘是爛嫖子嗎? 連外國鬼子
也接? 辣塊媽媽, 羅刹鬼․紅毛鬼都麗春院來, 老娘用大掃箒拍了出去.” 韋小寶這
才放心, 道: “那很好!”韋春花抬起了頭, 回憶往事, 道: “那時候有個回子, 常來找我,
他相貌很俊, 我心裏常說, 我家小寶的鼻子生得好, 有點兒像他.” 韋小寶道: “漢滿
蒙回都有, 有沒有西藏人?”
韋春花大是得意, 道: “怎麽沒有? 那個西藏喇嘛, 上牀之前一定要念經, 一面念
經, 眼珠子就骨溜溜地瞧着我. 你一雙眼睛賊忒嘻嘻的, 眞像那個喇嘛!”229)
ꡔ鹿鼎記ꡕ의 맨 마지막 부분이자 金庸 小說 전체의 맨 마지막 부분인 이 대목
229) 三聯本 ꡔ鹿鼎記ꡕ 第5卷, p. 1995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69
은 중국(역사)와 중국인에 대한 상상으로서의 金庸 小說 전체를 집약하고 완성
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漢族인 것처럼 인식되었던 韋小寶의 정체는 이로써 滿
洲族, 蒙古族, 回族, 西藏人으로까지 확장된다. 이 대목을 통해 金庸은 韋小寶가
단지 한족의 자식이 아니라 五族, 즉 大中華民族의 자식임을 선포하고 자신의
상상의 과정을 완결 짓는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金庸이 자신의 무협소설 창
작의 시발점을 부정하거나 전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그는 한족의 입장에서
중국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반성, 상상을 시도하였지만 결국 한족의 입장이 폐
기되고 중국인이라는 주체로 회귀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입장을 부
정하거나 전복한 것이라기 보다는 수정한 것이며, 무협소설 쓰기의 원래적 지향
과 목적을 인식하고 그것으로 회귀한 것일 뿐이다.
필자는 서론에서 무협소설 쓰기가 외부 즉 제국주의의 충격과 침탈에 대한
중국인들의 상상적 대응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음을 밝혔다. 무협소설의 주적(主
賊)은 원래 ‘자아’ 밖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당시 자아의 설정에 있어서 滿淸 정
부는 중국 근대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제공자로서 또 하나의 ‘타자’로 설정되었
고, 滿淸 정부에 대한 반대는 만주족에 대한 적대시의 형태로 표출되었다.230)
이는 내이션(국민 혹은 민족)의 확립 과정에서 에스닉(종족)의 문제가 활용된
것인데, 물론 정치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오류는 얼마 가지 않아 수정되었다. 하
지만 무협소설은 주로 과거의 시공간과 경험을 활용하는 탓에, 내이션의 문제,
즉 중국인 자아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스닉의 충돌 상황을 이
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무협소설 쓰기의 관습처럼 굳어지면서 이 양자가
혼동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무협소설을 한족 중심주의에 기반한 장르라고 인식
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무협소설이 드러내는 현상 그 자체를 지적한 것으로는
그다지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무협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의 탄생과 관습화 경향
까지를 염두에 둘 때에는 약간의 수정과 주석을 필요로 하는 주장이다.
여기에서 金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역시 중국인의 역사와 과거에 대한 성
230) 王曉明은 중국에서 反滿의 정서가 1898년 무술정변의 실패와 더불어 생겨났다고
보고 있다. 光緖帝의 권위를 빌어 사회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것이 무산되면서 일
부의 급진적 문화 인사들이 비판의 화살을 청 왕조에게 돌렸던 것인데, 이들에게
있어 청 왕조를 타도하는 것은 그대로 공화국을 수립하는 혁명 운동으로 인식되었
다. 王曉明은 원래 중국에서의 華․夷의 구분은 문화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으나,
이들이 종족을 그 구분의 기준으로 삼았고, 이로써 유사-인종주의적 적대감이 발생,
확산되었다고 주장한다. 왕샤오밍, 「현대 중국의 민족주의」, ꡔ황해문화ꡕ 40호, 2003
년 가을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7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찰과 상상을 한족이라는 에스닉의 입장에서 수행하였다. 창작 초기에 金庸은 비
교적 이러한 입장에 충실했다. 하지만 창작이 계속되면서 그는 이에 대해서 회
의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회의를 불러 일으켰던 것은 역사를 다루는 데 있
어서 金庸 자신이 직면해야 했던 딜레마 때문이었다. 결국 金庸은 ꡔ天龍八部ꡕ를
거쳐 ꡔ鹿鼎記ꡕ의 창작 단계에 와서 비로소 자신이 내이션의 문제를 거론함에
있어서 에스닉을 수단으로 삼았음을 깨닫게 되었고, 이를 시정하게 되었다. 韋
小寶가 성격과 활동 면에서 기존의 金庸의 협과는 완전히 다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며, 또 이런 이유에서 金庸은 ꡔ鹿鼎記ꡕ를 무협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소
설이라고 보는 편이 낫다고 언급하게 된다.231)
金庸은 (에스닉의 차원에서 진행되는) 무협소설의 관습화된 문제의 설정과 처
리 방식의 오류를 깨닫고 무협소설 본연의 문제의식(중국인이라는 내이션의 자
기 인식과 정체성의 강화)으로 돌아가는 순간, 본인의 소설이 역사소설로 읽히
기를 희망하였던 것이다. 金庸 자신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ꡔ鹿鼎記ꡕ를 역사소설
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희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
스스로 ꡔ鹿鼎記ꡕ를 자신의 前作들과 달리 평가하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ꡔ鹿鼎記ꡕ가 이민족 왕조를 단지 한족의 침략 세력으로만 규정하던 기존의 관점
을 탈피하여 滿淸을 중국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왕조라는 사실을 강조함
으로써 자신의 前作들과는 분명히 다른 소설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고,
ꡔ鹿鼎記ꡕ에 역사소설이라는 말을 붙이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으
로 보인다. 그는 ꡔ鹿鼎記ꡕ가 중국의 실제 역사 자체를 인정함으로써 역사 그 자
체의 사실에 좀 더 밀착하게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金庸은 ꡔ鹿鼎記ꡕ
가 무협소설적 관점보다는 역사적 관점에 더욱 충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
고 여기서 역사적 관점이란 五族 共同體를 기반으로 한 중국인 혹은 大中華民
族의 입장 그 자체이다.
그리고 金庸이 중국인 혹은 대중화민족의 입장으로 선택함으로써 ꡔ鹿鼎記ꡕ의
강호는 그 이전과는 또 다른 대립 양상을 출현시킨다. 즉, 한족에서 탈피하여
만주족 등의 이민족 등으로까지 자신의 정체를 확장한 ‘중국의 협’은 그 정체의
강화를 위해 또 다른 적대 세력과 맞부딪히게 된다. 이 새로운 적은 위의 ꡔ鹿鼎
記ꡕ 마지막 부분의 인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羅刹鬼 혹은 紅毛鬼로 불리는
231) “ꡔ鹿鼎記ꡕ는 이미 무협소설과는 많이 다르다. 차라리 역사소설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ꡔ鹿鼎記ꡕ已經不太像武俠小說, 毋寧說是歷史小說)” 金庸, 「(ꡔ鹿鼎記ꡕ의) 後記」,
삼련본 ꡔ鹿鼎記ꡕ 第5卷, p. 2005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71
이들이며, 이들의 새로운 등장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즉, 이들은 ꡔ鹿鼎記ꡕ에서 암시적으로 혹은 잠정적으로 형성된 ‘중국’이라는 국민
국가(nation-state)와 대립하는 또 다른 국민국가의 성원들이다. 사실, ꡔ碧血劍ꡕ에
서 스페인 군대가 등장한 것이 ꡔ鹿鼎記ꡕ 이전에 유일한 서양인의 출현이다. 그
러나 ꡔ碧血劍ꡕ에서 그들은 한족의 직접적인 적대 세력은 아니었는데, 그것은
ꡔ碧血劍ꡕ의 시기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한족과 만주족 간의 에스닉 차원에서의
대립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직 적대 세력으로 등장할 단계에 있지 않았다.
이에 반해, ꡔ鹿鼎記ꡕ가 내이션 차원의 문제 위에서 구성되면서 羅刹國人은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인 적으로 부상하였다.
진근남이 말했다. “맞다. 하지만 이해(利害)를 따진다면, 러시아인들이 청의
오랑캐 보다 더 무섭지.”
위소보는 곧바로 대꾸했다. “맞아요. 오랑캐들도 황색 피부에, 까만 눈, 펑퍼
짐한 코라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아요, 하는 말도 거의 비슷하고요. 외국 놈들
은 빨간 머리, 파란 눈에다가 입만 열면 솰라솰라거리니, 알아들을 수나 있나
요?”陳近南道: “這也不錯. 但利害相權, 比較起來, 羅刹人比韃子更加可怕.”
韋小寶道: “是啊. 韃子也是黃皮膚, 黑眼睛, 扁鼻頭, 跟我們沒什麽兩樣, 說的話
也是一般. 外國鬼子紅毛綠眼睛, 說起話來嘰哩咕嚕, 有誰懂得?”232)
羅刹鬼는 한족에게 있어서 만주족보다 더 무서운 존재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김새나 언어 등에 있어서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羅刹鬼의
출현 앞에서 한족과 만주족의 에스닉적 차이는 무화된다. 金庸은 한족과 만주족
간의 민족적 대립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또다른 화이론을 등장시킨 것이다.233)
즉, 羅刹鬼는 金庸이 중국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구상해낸(만들어낸) 존재이다.
이들은 중국인들의 민족(국민)적 정체성의 인식과 강화, 역량의 확인과 과시를
위해 활용된다. 韋小寶가 모스크바에까지 진출하여 중국 전통 연예(설서나 희
극) 등을 통해 익힌 지식과 기지를 바탕으로 황권을 찬탈하려는 세력을 대신
물리치는 것이나, 외국과 중국간에 체결된 최초의 대외 조약인 네르친스크 조약
232) 三聯本 ꡔ鹿鼎記ꡕ 第4卷, p. 1317
233) 田曉菲, 「從民族主義到國家主義-ꡔ鹿鼎記ꡕ, 香港文化, 中國的(後)現代性」, ꡔ2000’ 北京
金庸小說國際硏討會論文集ꡕ, 北京大學出版社, 2002, p.35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7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을 체결하는 것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金庸은 羅刹鬼라는 존재를 이용하여
중국인들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환기, 주입시킨다. 네르친스크 조약의 체결
에 대한 金庸의 주석은 이를 잘 드러낸다.
이(네르친스크 조약)는 중국이 외국과 체결한 첫 번째 조약이었다. 강희가 많
은 힘을 들여 치밀하게 계획하였고, 파견된 관리들이 힘쓴 결과, 이 조약을 통
한 국경의 확정에서 중국은 크게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조약은 북쪽으로는 외
흥안령을 양국 간의 경계로 지정함으로써, 지금의 소련 땅 아무르 성과 빈해성
의 전 영토가 중국으로 귀속되었다. … 쌍방이 국경을 논의할 때, 그 땅은 원래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었다. 중국이 차지한 땅은 러시아에 속하지 않았던 곳이
다. 다만 러시아가 그 곳에 성을 쌓고 백성들을 이주시켰던 것뿐인데, 조약의
체결 후 그들은 모두 그곳에서 철수하였다. 이는 실로 중국의 군사와 외교 방
면에서의 승리이다.
這是中國和外國所訂的第一份條約. 由于康熙籌劃周詳, 全力以赴, 以所遣人員又
十分得力, 是以尼布楚條約劃界, 中國大占便宜. 約中規定北方以外興安嶺爲界, 現
今蘇聯之阿穆尒省及濱海省全部土地盡屬中國. … 雙方議界之時, 該地區原無歸屬,
中國所占之地亦非屬于羅刹, 但羅刹已在當地築城植民, 簽約後被迫撤退, 實爲中國
軍事及外交上之勝利.234)
여기에서 네르친스크 조약은 청과 러시아 간에 맺어진 협정이 아니라 ‘중국’
과 러시아 간에 맺어진 협정이다. 여기서 淸은 탈역사화되어, 아직 탄생하지도
않았던 국민국가(nation-state)로서의 중국과 동일시된다. 田曉菲가 ꡔ鹿鼎記ꡕ의 중
국 상상이 국가주의로의 귀결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은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이
다. 金庸 스스로가 획득했다고 생각하는 역사적 관점은 바로 국민국가적 관점이
고, 그런 면에서 그는 ‘20세기 중국 독자들이 보기를 희망하는 것’235)을 보여준
셈이다. 그런데, 田曉菲가 볼 때, 문제는 金庸이 이를 위해서 역사적 진실을 왜
곡하거나 감추었다는 데 있다. 그녀는 康熙의 영명함과 백성에 대한 사랑이 부
각되면서 康熙가 저질렀던 각종 文字獄과 漢人에 대한 경계와 핍박의 사실들이
ꡔ鹿鼎記ꡕ에서는 사라져버리며, 만주족과 한족의 동질성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하
는 ‘紅毛鬼(네덜란드인)’라는 존재가 사실은 ꡔ鹿鼎記ꡕ의 시대에 揚州라는 곳까지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며, 한인들의 만주족에 대한 적대감이 그들에 대한 적대감
234) 三聯本 ꡔ鹿鼎記ꡕ 第5卷, p.1930
235) 田曉菲, 위의 글, p. 360.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Ⅳ. 金庸의 ‘俠’ : 상상된 주체와 주체의 상상 173
보다 작을 수 없다는 사실 등은 고려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236) 즉, 金庸은 ‘국
민의 협’이라는 역사의 주체를 상상해내고, ‘중국’이라는 국민국가를 상상해내는
과정에 적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왜곡과 망각은 무의식적인 혹은 (국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
어서) 자동적인 산물이기도 하지만, 다음과 같은 金庸의 언급은 그것이 단지 무
의식의 차원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염원과도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을 암시한다.
사실 주유(周瑜)가 조조(曹操)를 속여 수군 도독(都督)을 죽이게 한 일은 역사
상 존재하지 않았고, 소설가가 지어낸 것이다. 소설가의 말이 후에 사실이 되어
중국의 수백년 기운에 영향을 미쳤다. … 만주인들이 중원에 들어와 영토를 개
척하였으니, 중국의 지도가 명조의 세 배가 되었다. 그것은 한(漢)․당(唐)의 전
성기 때보다 월등한 것이며, 그 영향은 오늘날에까지 미치고 있는데, 여기에 小
說, 戱劇, 設書의 공도 또한 적지 않다.
實則周瑜騙得曹操殺水軍都督, 歷史上幷無其事, 乃是出于小說家杜饌, 不料小說
家言, 後來竟尒成爲事實, 關涉到中國數百年氣運. … 滿人入關後開疆拓土, 使中國
版圖幾爲明朝之三倍, 遠勝于漢唐全盛之時, 餘蔭直至今日, 小說戱劇說書之功, 亦
殊不可沒.237)
지어낸(상상된) 이야기가 나중에 사실이 되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 이는
무협소설이, 혹은 협과 강호에 관한 상상 등이 공히 염원하는 것이며, 이러한
염원은 적지 않게 현실화되기도 한다. 무협소설은 근대 중국의 역사적 상처의
자각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상상된 중국으로 실재하는 오욕의 역사를 대체하고
자 하는 염원에 기반하고 있다. 물론, 무협소설의 상상을 현실로 믿는 독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무협소설을 읽고 즐기는 가운데, 스스로 상상하고 싶
어하며 그 상상 속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고, 잊고 싶어하는 것을 잊고자
한다. 중국에서 중국의 무협소설 독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 잊고 싶어하는 것
은 비교적 자명하다. 金庸이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역사에서 출발
하였고, 그 과정에 지속적으로 중국과 중국인을 상상해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결국 金庸은 ‘陽剛中國’과 ‘문화中國’을 구성해냈으며, ‘국민의 협’을
236) 田曉菲, 위의 글, pp. 356-360
237) 三聯本 ꡔ鹿鼎記ꡕ, 第4卷, p. 1433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7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탄생시켰다. 중국의 독자들은 그것이 상상된 것임을 알면서도 어느 순간 이 상
상에 동참하게 된다. 중국에서의 金庸 小說 혹은 무협소설의 의미와 그에 담긴
욕망은 바로 이런 것이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Ⅴ. 結論 175
Ⅴ. 結論
무협소설이 오락적 욕구의 충족을 위해 읽히고 있으며, 또 그것에 부응하기
위해 창작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무협소설은 그 장르가 가진 독
특한 성격 때문에 적어도 중국에서 혹은 중국인에게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대중
소설이나 상업소설이 갖는 의미나 기능 이상의 의미와 기능을 갖는다. 이는 무
협소설이 전문적으로 과거의 중국을 소환, 상상해내는 것을 장르의 기본적인 요
건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원인은 무협소설이 근대시
기로 진입하면서 엄청난 사회, 역사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인들
의 정신적 상처를 자극하고, 그것을 상상적으로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일
조하였기 때문이다. 즉, 근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들은 제국주의 열
강의 폭력적 침탈, 국민국가로서의 중국의 성립, 내전으로 인한 극심한 혼란과
중국의 분리 등의 사건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거나 그 영향 하에 존재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일어난 중국인들의 가장 큰 변화는 신분의 변화였다. 그들은 대륙인,
대만인, 홍콩인, 해외 화교라는 신분으로 각기 분리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
협소설은 적아 간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아의 승리로 귀결시키는
방식을 통해 중국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패배의식과 상처를 상상적으로
치유하고자 하였으며, 과거 중국의 문화를 부각시키는 방식을 통해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근원적 정체를 상기하게 하였다. 중국인에게 무협소설의 창작
과 소비는 오락적 행위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그 자체
를 넘어서고 있다. 필자가 무협소설을 연구함에 있어서 문학 연구의 방식을 따
르지 않은 것, 그리고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이라고 하는 일반적 대중소설의 의
미로 무협소설을 해석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
이다.
무협소설이 소환, 상상해내는 중국은 실재 과거 역사 속의 중국을 대체해내기
위한 상상적인 중국이다. 무협소설이 이 중국을 상상해내기 위해 동원하는 것
은, 무협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강호’와 ‘협’이다. 그런데, 이때의 강호와
협은 중국의 역사 속에서 실존했던 혹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의 연원으로 인
식하게 하는, 강호와 협과는 별개의 것이다. 즉, 무협소설이 차용하는 강호와 협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7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은, 중국 전통 문인들의 정치적 기호, 세계 인식의 표현 형태, 주변부 사회에 대
한 지칭으로서의 강호와, 또 역사적 사실 속의 游俠, 豪俠 등과 다른 것이다. 그
것들은 그것을 열망하는 욕구와 결합하고, 또 詩化 혹은 劇化된 형태로 표현됨
으로써 하나의 문학적 상상으로 정착된 강호와 협이다. 무협소설은 이러한 문학
적 상상(실체를 벗어난 하나의 관념)으로서의 강호와 협을 차용하였고, 또 한편
으로 그것들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변주함으로써 ‘중국’을 상상해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이 ‘상상된 중국’이 하나의 이
미지를 넘어 과거 실재 중국을 대체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인데, 그것이 바
로 ‘상상으로서의 강호와 협’이 발휘하는 위력이다. 즉, 강호와 협은 ‘상상된 것’
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있었던 그 자체와 동일한 것이라고 인식됨으로써 막강
한 위력을 발휘한다. 무협소설은 상상된 강호와 협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과거의
중국을 재상상해내는 것이지만, 강호와 협이 상상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중국
에 존재했던 것이며 양자가 동일한 것이라는 믿음은 그것을 중심으로 상상된
중국과 과거의 실재 중국의 관계 역시 모호하게 만들어 상상된 중국으로 하여
금 과거 실재의 중국을 대체하게 한다. 이러한 전체적인 과정을 가능케 한 것
은, 근대 이후 중국인들의 사고 속에 잠재되어 있는 역사적 상처와 좌절감과 그
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그들의 모색과 노력인데, 실재 중국에 대한 거울 이미지
로서의 무협소설 속의 상상된 중국로써 실재를 대체하고자 하는 그들의 시도는
그들을 거울의 단계, 혹은 상상계 속의 어린 아이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한다.
또한 무협소설을 통해 혹은 중국의 전적과 역사 기술 속에 드러난 협을 통해
중국의 사고 체계와 도덕적 범주를 재구성해내려는 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무협소설이 과거 중국을 소환하고 상상하여 중국인들로 하여금 기억 속의 상
처를 치유하게 하고, 분열되어 현재화된 자신들의 정체성 너머에 존재하는 원
정체성을 환기시킨다고 할 때, 金庸의 무협소설은 이를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는 텍스트이다. 金庸은 중국의 실재 역사를 자기 작품의 주된 제재로 삼아 그
것을 성찰하고 재구성하고 있고, 그 안에서 대안적 중국의 상을 상상해내는 데
주력하였는데, 이는 그의 뛰어난 문학적 자질과 결합하여 그의 소설을 무협소설
최고의 작품이자 순문학 작품과 견주어 손색이 없는 무협소설로 평가받게 하였
고, 수많은 독자들을 보유하게 하였다.
金庸이 무협소설을 창작하게 된 것은 그의 절친한 친구인 梁羽生이 ꡔ龍虎鬪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Ⅴ. 結論 177
京華ꡕ를 발표하여 성공을 거둔 데서 촉발된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는 漢族과
夷民族의 대립과 투쟁의 역사에 주목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대안적 중국을 상상
하지 않을 수 없었다. 金庸이 구성한 대안적 중국은 협이라고 하는 상상의 주체
를 중심으로 구축된 강호라고 하는 세계로 드러난다. 이 세계에서 협객은 무기
력한 한족 국가 권력을 대신하여 침략자인 이민족과 대치한다. 즉 그의 소설에
서 과거 중국의 역사는 협객을 중심으로 한 강호의 역사로 탈바뀜한다. 또한 강
호는 자기 조직과 규율, 역사를 가짐으로써 그 자체로 독자적이고 완결된 하나
의 세계가 된다. 하지만 金庸은 강호와 협객을 통해 중국을 상상해낼 수는 있었
지만, 그 자체로서 치욕의 과거를 대체할만한 역사를 만들어내지는 못하였는데,
그것은 金庸이 한족과 이민족 간의 대립과 투쟁을 중심으로 중국을 상상해내려
했기 때문이었다. 즉 金庸의 小說은 역사적 현실에서 시작하여 다시 그 역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돌아가야 했던 그 곳은 여전히 한족에 대한 이민
족의 핍박과 지배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로써 치욕의 역사를 대체할 상
상의 역사를 구성해내고자 했던 金庸은 일종의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金庸의 노력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
되었다. 하나는 자신이 구축한 세계 즉 강호에, 역사적 현실을 직면하고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박탈감과 상실감을 보충하고 해소할 만한 요소들을 찾아내 부각
시키는 것, 강호를 대안적 중국으로 온전히 인식할 수 있는 세계로 구축하는 것
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역사 상상의 주된 제재로 사용했던 한족과 이민족의
대립적 상황을 다시 점검하는 것이었다.
전자의 의도 하에 진행된 것은 강호에 ‘陽剛中國’, 그리고 ‘文化中國’의 상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근대 이행기의 중국은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볼 때, 거세
당한 중국이었다.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중국의 침탈은 중국의 남성성의 훼손
즉 거세의 경험이었고, 金庸이 주목한 역사 역시 이런 의미에서 거세의 역사였
다. 金庸은 이러한 거세의 기억을 망각 혹은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남성성을 확
인해야 했고, 이를 위해 동원된 것은 여성이었다. 金庸이 만들어낸 여성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 가능하다. 聖女 혹은 童貞女, 惡女 혹은 妖女, 그리고 妖女에서
聖女로 변화되는 여성이 그것인데, 金庸은 자신의 협객들로 하여금 그녀들을 숭
배하거나 희생시키고, 처벌하거나 용서하는 방식을 이용하여 남성의 질서 내로
포섭하게 한다. 물론, 이때 金庸은 폭력적이거나 노골적인 방식을 회피함으로써
남성 중심주의적 사고를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金庸의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7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여성의 상상과 전유가 남성성의 획득 혹은 확인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은 부인
할 수 없다. 金庸은 여성들을 이용하여 강호의 ‘陽剛’적 성격을 부각시켰고, 이
때 강호는 ‘陽剛中國’ 상상의 외적 표현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한편 金庸은 자신의 강호 구축에 중국의 전통문화를 활용함으로써 강호를 문
화 공간화시킨다. 강호를 문화 공간화함으로써 金庸은 자신의 소설이 단순한 폭
력문학이나 저질문학으로 치부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고, 또 수많은 지식인까지
자신의 독자로 포섭할 수 있었지만, 그것의 효과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金庸은
전통문화의 심미성, 도덕성, 심오함 등을 극도로 부각하여 중국인들의 심리적
우월성을 자극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정치적, 군사적 차원의 패배와 좌절을 상
쇄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편, 金庸은 전통문화의 秘儀性을 부각시켰다. 그
것은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한 중국인들의 자기 정체성 구성과 관련된다. 즉, 전
통문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심오함과 秘儀的 속성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자
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누는데, 이로써 자아와 타자가 동시에 출현하게 된다.
물론, 무협소설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자아인데, 이들은 전통문화의 비의적
속성에 대한 이해와 여기서 비롯되는 심리적 우월감을 근거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중국인들이 무협소설을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협소
설이 이렇게 문화를 활용하고 부각하여 그들의 모국으로서의 중국을 지속적으
로 상상해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金庸의 ‘文化中國’의 상상은 金庸의 중
국 상상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다.
또 다른 차원에서의 金庸의 역사 상상의 딜레마의 해결 모색은 金庸의 협객
의 변화에서 이루어진다. 金庸 小說의 창작 경향의 변화는 협의 성격의 변화 과
정으로 드러나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金庸이 역사 상상의 주체를 한족으로 둠
으로써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딜레마를 탈피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金庸의 협은 초기 작품에서 명백한 漢族의 俠이고 正格의 俠이지만, 그들은 갈
수록 정격으로서의 협을 벗어나며 자신이 계승하고 추구해야할 가치들에 대해
서 회의하게 된다. 그들의 이러한 변화는 아버지의 계승에서 극복으로, 비주류
와 근대적 관점에서 주류와 전통적 강호의 질서와 이념의 재편 과정으로 드러
난다. 金庸 小說에서 아버지는 역사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초기 金庸의 小說에
서 그들은 한족 전통주의 입장의 담지자이며 수호자이며, 이때 아들인 협객들은
그들이 남긴 정신적 유산을 이어받아 그들이 완수하지 못한 과제를 대신 짊어
진다. 하지만 초기의 협들은 아버지가 남겨둔 과제를 완전히 수행하지 못한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Ⅴ. 結論 179
즉 이 과제를 완성할 수 없음은 협객들로 하여금 아버지가 남겨둔 과제와 아버
지의 역사에 대해 회의하게 되는데, 협객의 성격 변화는 이로부터 시작된다.
ꡔ鹿鼎記ꡕ 이전에 그러한 변화가 두드러진 작품은 ꡔ天龍八部ꡕ이다. 이 작품에서
蕭峯은 기왕의 아버지들이 남긴 과제가 허구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데, 이
때 아버지들은 아들인 협객이 계승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대상이
며, 아들들에게 고난과 고통의 원죄를 부여하는 아버지들로 변한다.
또한 협객들은 아버지 세대의 질서, 전통적이고 주류적인 강호의 질서의 수호
자라는 입장에서 그것에 대해서 반항하고 회의하는 존재로, 이와 더불어 그 질
서와 이념을 자기의 질서와 이념으로 재편하는 존재로 변화한다. 이때 그들의
입장은 비주류적이고 근대적인 입장이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자신의 입장의 실
체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다. ꡔ天龍八部ꡕ에서 蕭峯은 宋과 遼 사이에 끊임없
는 분쟁에서 한족들만이 피해자였던 것이 아니라 거란족들, 이민족들 역시 피해
자였음을 지적하고 있지만, 자신의 지적이 어떤 근거에서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한다. 이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드러나는 것은 金庸의 봉필작인 ꡔ鹿
鼎記ꡕ에서이다.
ꡔ鹿鼎記ꡕ의 협객 韋小寶는 ‘反俠’이다. 그런데, 그가 反俠인 이유는 그가 종래
의 협객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고의 지평 위에 존재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는 더 이상 ‘漢族의 俠’이 아니라 ‘中國의 俠’으로서 자신의 정체를 명확히 한다.
이제까지 의심되기는 하였지만, 그 의심의 근거를 찾지 못함으로써 여전히 탈피
하지 못하였던 것에서 韋小寶는 완전히 탈피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스스로가
漢族을 넘어서 大中華民族인 五族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
다. 즉, 韋小寶라는 인물을 탄생시킴으로써 金庸은 자신이 직면했던 역사 상상
의 딜레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그의 대안적 중국의 주체에
대한 상상의 완결이자 완성이며 동시에 역사 혹은 중국에 대한 상상의 완결이
자 완성이 되었다. 여기서 金庸이 상상해낸 중국과 중국인은 국민국가로서의 중
국이며, 그것의 구성원으로서의 국민이다. 金庸이 ꡔ鹿鼎記ꡕ에서 새로운 적들을
설정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새로운 적은 서양인들 즉 羅刹
鬼(러시아인), 紅毛鬼(네덜란드인)인데, 이들은 ‘중국’과 ‘중국인’의 입장의 성립
없이는 구상해낼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ꡔ鹿鼎記ꡕ 이전의 金庸의
小說들은 일종의 착오이기도 하다. 즉, 이 작품들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상상
을 한족을 주체로 수행했던 것이고, 金庸이 직면해야 했던 딜레마 역시 여기에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8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金庸은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제기하고 상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상에서 보는 것과 같이, 金庸의 무협소설은 중국인들이 경험한 역사적 상처
를 상상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과 더불어 이해할 수 있다. 金庸은 ‘陽剛中
國’과 ‘文化中國’과 ‘국민의 협’을 상상해냈고, 중국인들은 그의 상상에 동참함으
로써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거나 자신들의 원 정체
성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상상의 과정과 그에 대한 해석의 과정은 무협소설
이라는 장르의 기원과 존재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하지만,
무협소설이라는 장르가 중국인들의 자기에 대한 상상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는
필자의 지적은, 어쩌면 金庸 등의 소수의 무협소설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만 해
당되는 것일 수도 있다. 무협소설은 중국인들의 자기 상상과 정신적 상처의 치
유로만 해석하기에는 너무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으며, 그 형태 역시
소설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매체 형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무협소설 혹은 무협물은 몇 가지의 정의와 규정으로부터 이미 벗어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적, 내용적 방대함이나 매체 형식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무협물(특히 중국인들이 만들어내는 그것)은 ‘과거의 중국’을 소환해내고, 상상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며, 그것들이 ‘과거의 중국’에 대한 기억과 상상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필자가 볼 때, 이 기억과 상상이 극단
적으로 양분화된 자기 의식을 기반으로 삼는다. 즉, 과도한 패배의식과 극단적
우월감이 그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의식은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 근
원에 ‘제국’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기억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무협소설과 관련하여 조심스럽게 제기할 수 있는 것은, 무협소설이 기반하고 있
는 치욕과 좌절의 기억, 그리고 그것의 극복에 대한 강박이 제국으로서의 자신
에 대한 반성과 점검을 무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참고문헌 181
참고문헌
【 국 문 】
■논문류
김명석, 「韓中 대중소설 비교연구-무협소설을 중심으로」, 中國語文論叢 제21집,
2002
김명신, 「淸代 俠義愛情小說이 武俠小說에 끼친 影響」, ꡔ中國小說論叢ꡕ, 제11집,
2000.2
김태환, 「환상성의 구조에 관한 몇 가지 단상들」, ꡔ문학 판ꡕ, 2004년 가을호
김 현, 「武俠小說은 왜 읽히는가」, ꡔ반고비 나그네길에ꡕ, 지식산업사, 1978.
왕샤오밍, 「현대 중국의 민족주의」, ꡔ황해문화ꡕ, 2003년 가을, 40호
유경철, 「중국 대륙의 무협소설 연구 고찰」, ꡔ중국현대문학ꡕ 제28호, 한국중국현
대문학학회, 2004. 3
유경철, 「金庸 小說의 문학적 성취와 공헌을 둘러싼 논의의 고찰」, ꡔ中國文學ꡕ 第
42集, 韓國中國語文學會, 서울, 2004년 11월
이승훈, 「라캉의 자아 개념」, ꡔ한국언어문화ꡕ 제20집, 한국언어문화학회, 2001.
12.
임춘성, 「金庸 소설을 통해본 ‘僞君子’와 ‘眞小人’의 實用理性」, ꡔ中國現代文學ꡕ,
제22호, 2002. 6.
임춘성, 「中國近現代文學中的大衆化與金庸作中人物的實用理性」, ꡔ中語中文學ꡕ,
제33집, 韓國中語中文學會, 2003. 12
임춘성, 「중국 근현대 무협소설의 근현대성」, ꡔ中國現代文學ꡕ 제29호, 한국중국현
대문학학회, 2004. 6
정동보, 「金庸 武俠小說 初探」, ꡔ어학연구ꡕ, 순천대학교 어학연구소, 2000.
정동보, ꡔ淸代俠義小說硏究ꡕ, 전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 2
한명환, 「무협소설의 환상성 고찰」, ꡔ현대소설연구ꡕ, 한국현대소설학회, 2000. 12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82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단행본 류
C. 카스토리아디스 지음, 양운덕 옮김, ꡔ사회의 상상적 제도1ꡕ 문예출판사, 1994.
K. 만하임 지음, 임석진 옮김 ꡔ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ꡕ, 청아출판사, 1991. 1.
강상중 지음, 이경덕․임성모 옮김, ꡔ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ꡕ, 이산, 1997. 7.
강준만 지은, ꡔ대중문화의 겉과 속 Ⅱꡕ, 인물과사상사, 서울, 2003. 10
강현두 편, ꡔ현대사회와 대중문화ꡕ, 나남출판, 2000년 2쇄
고미숙 저, ꡔ비평기계ꡕ, 소명출판, 2000
곽한주 엮음 ꡔ컬트 영화, 그 미학과 이데올로기ꡕ, 한나래
괴란 테르본 지음, 최종렬 옮김 ꡔ권력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권력ꡕ 백의,
1994. 5.
그래엄 터너 지음, 임재철 외 옮김 ꡔ대중 영화의 이해ꡕ, 한나래
김소영 지음, ꡔ근대성의 유령들ꡕ,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0. 1.
김진곤 편역, ꡔ이야기 小說 Novelꡕ, 예문서원, 2001
김현 편, ꡔ장르의 이론ꡕ, 문학과지성사, 1987
魯迅 저, 조관희 역주 ꡔ중국소설사략ꡕ, 살림출판사, 1998. 10.
다니가와 미치오, 모리 마사오 저, 송정수 옮김, ꡔ중국 민중 반란사ꡕ, 혜안, 1996.
대중문학연구회 저, ꡔ무협소설이란 무엇인가ꡕ, 예림기획, 2001.3.
대중문학연구회 편 ꡔ대중문학이란 무엇인가?ꡕ, 평민사, 1995. 2.
레이 쵸우 지음, 정재서 옮김, ꡔ원시적 열정ꡕ, 이산, 2004.
롤랑 바르트 저, 이화여자대학교 기호학연구소 옮김, ꡔ현대의 신화ꡕ, 동문선,
1997
루샤오펑 지음, 조미원, 박계화, 손수영 옮김, ꡔ역사에서 허구로ꡕ, 길, 2001.
리타 펠스키 지음, 김영찬,심진경 옮김, ꡔ근대성과 페미니즘ꡕ, 거름
박성봉 저 ꡔ대중예술의 미학ꡕ 동연, 1995. 9.
백영서, ꡔ동아시아의 귀환ꡕ, 창작과비평사, 2000. 11, p. 41.
베네딕트 앤더슨 저, 윤형숙 역, ꡔ상상의 공동체ꡕ, 나남출판, 2002. 6
비체 벤베누토 등 저, 김종주 역, ꡔ라깡의 정신분석 입문ꡕ. 하나의학사, 서울,
1999
슈테판 크라머 지음, 황진자 옮김, ꡔ중국영화사ꡕ, 이산, 2000. 10.
스콧 래쉬, 조나단 프리드먼 편, 윤호병 등 옮김, ꡔ현대성과 정체성ꡕ, 현대미학사,
1997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참고문헌 183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소연, 유재희 옮김, ꡔ삐딱하게 보기ꡕ, 시각과언어, 1995. 2판
시노다 고이치 지음, 이송은 옮김, ꡔ중국환상세계ꡕ, 들녘, 2000. 4.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박홍규 譯 ꡔ오리엔탈리즘ꡕ, 교보문고, 1991. 4.
에르네스트 르낭 지음, 신행선 역, ꡔ민족이란 무엇인가ꡕ, 책세상, 서울, 2002
에릭 홉스봄 외 지음, 박지향, 장문석 옮김, ꡔ만들어진 전통ꡕ, 휴머니스트, 서울,
2004. 7.
에릭 홉스봄 저, 이수영 옮김, ꡔ밴디트ꡕ, 민음사, 서울, 2004
원용진 지음 ꡔ대중 문화의 패러다임ꡕ 한나래,
유지나․ 변재란 편 ꡔ페미니즘․영화․여성ꡕ, 여성사, 1995년판
이병혁 편저, ꡔ언어사회학 서설--이데올로기와 언어ꡕ, 까치, 1986. 10.
이수연 저, ꡔ메두사의 웃음ꡕ, 커뮤니케이션북스, 서울, 1998
이정우, ꡔ시뮬라크르의 시대ꡕ, 거름, 1999.
장 보드리야르 저, 하태환 옮김, ꡔ시뮬라시옹ꡕ, 민음사, 1997년
전경갑 저, ꡔ욕망의 통제와 탈주ꡕ, 한길사, 1999
전경갑 저, ꡔ현대와 탈현대의 사회사상ꡕ, 한길사, 서울, 1996년판
전형준, ꡔ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ꡕ,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 9
정정호․강내희 편 ꡔ포스트모더니즘론ꡕ, 문화과학사, 1989. 9.
제임스 커런 등 엮음, 백선기 옮김, ꡔ대중문화와 문화연구ꡕ, 한울아카데미, 1996
陳寶良 저, 이치수 옮김, ꡔ중국유맹사ꡕ, 아카넷, 2001. 2월
陳山 저, 강봉구 역, ꡔ중국무협사ꡕ, 동문선, 1997
쳔꽝싱 저, 백지운 외 역, ꡔ제국의 눈ꡕ, 창작과 비평사, 서울, 2003
최원식, 백영서 엮음, ꡔ동아시아인의 ‘동양’ 인식ꡕ, 문학과지성사, 1997
최원식, 전형준 등 엮음, ꡔ발견으로서의 동아시아ꡕ, 문학과지성사, 2000
최혜실, ꡔ디지털시대의 문화 읽기ꡕ, 소명출판, 2001. 7.
테리 이글튼 저, 윤희기 역, ꡔ비평과 이데올로기ꡕ, 열린책들, 1987
토마스 샤츠 지음, 한창호․허문영 옮김 ꡔ할리우드 장르의 구조ꡕ 한나래
팸 모리스 저, 강희원 옮김, ꡔ문학과 페미니즘ꡕ, 문예출판사, 1997. 4
프라센지트 두아라 지음, 문명기․손승회 옮김, ꡔ민족으로부터 역사를 구출하기-
근대 중국의 새로운 해석ꡕ, 삼인, 서울, 2004. 9
프랑코 모레티 저, 조형준 옮김, ꡔ근대의 서사시ꡕ, 새물결, 2001.
프랭크 랜트리키아 등 공편, 정정호 외 공역, ꡔ문학연구를 위한 비평용어ꡕ, 한신
문화사, 1994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84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남인영 옮김, ꡔ보이는 것의 날인ꡕ, 한나래, 2003.
피터 차일즈․패트릭 윌리엄스 지음, 김문환 옮김, ꡔ탈식민주의 이론ꡕ, 문예출판
사, 2004
허버트 J. 갠스 ꡔ대중문화와 고급문화ꡕ 나남출판, 1998. 4.
현택수 등 공저, ꡔ문화와 권력-부르디외 사회학의 이해ꡕ, 나남출판, 서울, 2002년

【 중 문 】
■논문류
Meir Shahar, 「金庸武俠小說-以文化爲武器」, ꡔ2000’ 北京 金庸小說國際硏討會論文
集ꡕ, 北京大學出版社, 2002. 11
岡崎由美, 「“武俠”與二十世紀初葉的日本驚險小說」, 王敬三 編, ꡔ名人名家讀金庸ꡕ,
上海書店出版社, 2000
佟碩之, 「金庸梁羽生合論」, ꡔ金庸茶館 5ꡕ, 中國友誼出版公司, 1998
閔建國, 「對通俗文學創作的思考」, ꡔ當代文壇ꡕ, 2000년 5기
徐岱, 「批評的理念與姿態」, ꡔ文藝爭鳴ꡕ, 2000년 2기
沈雁冰, 「封建的小市民文藝」, 魏紹昌 編, ꡔ鴛鴦蝴蝶派硏究資料ꡕ 上, 上海文藝出版
社, 1984
郾烈山, 「拒絶金庸」, ꡔ南方周末ꡕ, 1994년 12월 2일자 참조.
吳辛, 「武俠․文俠與新官場小說雜議」, ꡔ當代小說ꡕ, 2000년 6기
吳曉黎, 「90年代文化中的金庸-對金庸小說經典化與流行的考察」, 戴錦華 主編, ꡔ書
寫文化英雄ꡕ, 江蘇人民出版社, 2000
翁靈文, 「金庸暢敍平生和著作」, ꡔ金庸茶館 3ꡕ, 中國友誼出版公司, 1998
王方晨, 「金大俠豈能封筆」, ꡔ當代小說ꡕ, 2000년 10기
姚曉雷, 「金庸: 都市民間舞臺上的慾望舞蹈」, ꡔ當代作家評論ꡕ, 2000년 5기
袁良駿, 「文學低俗化潮流和對魯迅文學精神的呼喚」,ꡔ準「五講三噓集」ꡕ,福建人民出
版社, 2001. 9.
劉愛華, 「大陸金庸硏究二十年」, ꡔ中國現代當代文學硏究ꡕ, 1999년 제2기
林凌翰, 「文化産業與文化認同-論金庸武俠小說呈顯的植民處境」, 陳淸僑 編, ꡔ文化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참고문헌 185
想像與意識形態ꡕ, 牛津大學出版社, 1997
林保淳, 「臺灣的武俠小說與武俠硏究」, ꡔ中國語文論叢ꡕ 17輯, 1999, p.33
林以亮 등, 「金庸訪問記」, ꡔ金庸茶館 3ꡕ, 中國友誼出版公司, 1998
章培恒, 「金庸武俠小說與姚雪垠的<李自成>」, ꡔ書林ꡕ, 1988年 第2期
田曉菲, 「從民族主義到國家主義-ꡔ鹿鼎記ꡕ, 香港文化, 中國的(後)現代性」, 2000’ 北
京 金庸小說國際硏討會論文集ꡕ, 北京大學出版社, 2002.
鄭逸梅의 「武俠小說的痛病」, 芮和師, 范伯群 등 編, ꡔ鴛鴦蝴蝶派文學資料ꡕ 上, 福
建人民出版社, 1984
鄭振鐸의 「論武俠小說」, 芮和師, 范伯群 등 編, ꡔ鴛鴦蝴蝶派文學資料ꡕ 上, 福建人
民出版社, 1984
曾慶瑞․趙遐秋, ꡔ金庸小說眞是“另一場文學革命”嗎?」, ꡔ文藝理論與批評ꡕ, 2000년
4기
陳平原, 「“通俗小說”在中國」, ꡔ文學史的形成與建構ꡕ, 廣西敎育出版社, 1999
陳平原, 「武俠小說中的“劍”」, ꡔ文學史的形成與建構ꡕ, 廣西敎育出版社, 1999
馮其庸, 「ꡔ金庸硏究ꡕ序」, 王敬三 編, ꡔ閱讀金庸世界ꡕ, 上海書店出版社, 2000. 8
河滿子, 「破“新武俠小說”之新」, ꡔ中華讀書報ꡕ, 1999. 12. 1일자
胡文彬, 「論中國武俠小說之出版及其硏究」, ꡔ武俠小說論 卷上ꡕ, 明河社出版有限公
司, 1998. 5.
黃錦樹, 「否想金庸-文化代現的雅俗․時間與地理」(ꡔ’98 金庸小說國際學術硏討會論
文集ꡕ, 遠流出版社, 1999)
■단행본 류
ꡔ2000’ 北京 金庸小說國際硏討會論文集ꡕ, 北京大學出版社, 2002. 11
ꡔ’98 金庸小說國際學術硏討會論文集ꡕ, 遠流出版社, 1999
ꡔ金庸小說與二十世紀中國文學-國際學術硏討會論文集ꡕ, 明河社, 2000
氷心, 董乃斌, 錢理群 編, ꡔ彩色揷圖中國文學史ꡕ, 中國和平出版社, 1995.
艾濤 著, ꡔ金庸新傳ꡕ, 山東友誼出版社, 濟南, 2002. 1
曹亦氷, ꡔ俠義公案小說史ꡕ, 中國小說史叢書, 浙江古籍出版社, 1998. 12.
曹正文, ꡔ金庸小說人物譜ꡕ, 知書房出版社, 臺北, 1996
曹正文, ꡔ中國俠文化史ꡕ, 上海文藝出版社, 1994
陳宏, 張旺, 陳千里, ꡔ江湖ꡕ, 百家出版社, 2002. 12.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86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陳墨 ꡔ金庸小說情愛論ꡕ 金庸小說硏究系列 百花洲文藝出版社 1999. 1.
陳墨 ꡔ金庸小說人論ꡕ 金庸小說硏究系列 百花洲文藝出版社 1999. 5.
陳墨 ꡔ金庸小說賞析ꡕ 金庸小說硏究系列 百花洲文藝出版社 1999. 1.
陳墨 ꡔ金庸小說藝術論ꡕ 金庸小說硏究系列 百花洲文藝出版社 1999. 1.
陳墨 ꡔ金庸小說與中國文化ꡕ 金庸小說硏究系列 百花洲文藝出版社 1999. 1.
陳墨 ꡔ金庸小說之謎ꡕ 金庸小說硏究系列 百花洲文藝出版社 1999. 1.
陳墨 ꡔ金庸小說之武學ꡕ 金庸小說硏究系列 百花洲文藝出版社 1999. 1.
陳墨, ꡔ刀光俠影蒙太奇-中國武俠電影論ꡕ, 中國電影出版社, 1996. 10.
陳墨, ꡔ孤獨之俠-金庸小說論ꡕ, 上海三聯書店, 1999. 참조
陳平原, ꡔ千古文人俠客夢 -武俠小說類型硏究ꡕ 人民文學出版社 1992. 3.
陳平原, ꡔ文學史的形成與建構ꡕ, 廣西敎育出版社, 1999
陳淸僑 編, ꡔ身分認同與公共文化ꡕ, 牛津大學出版社, 1997
陳淸僑 編, ꡔ文化想像與意識形態ꡕ, 牛津大學出版社, 1997
陳山, ꡔ中國武俠史ꡕ 上海三聯書店 1992. 12.
陳穎, ꡔ中國英雄俠義小說通史ꡕ 中國小說通史系列叢書 江蘇敎育出版社 1998. 10
陳鎭輝 著, ꡔ金庸小說版本追昔ꡕ, 匯智出版, 香港, 2003. 11
杜維明, ꡔ文化中國的認知與關懷ꡕ, 稻鄕出版社, 臺北, 1997
戴錦華 主編, ꡔ書寫文化英雄ꡕ, 江蘇人民出版社, 2000. 10
戴錦華 著, ꡔ隱形敍事-90年代中國文化硏究ꡕ, 江蘇人民出版社, 1999. 9
戴錦華, ꡔ猶在鏡中--戴錦華訪談錄ꡕ, 知識出版社, 1996. 6.
范伯群 主編, ꡔ中國近現代通俗文學史ꡕ, 江蘇敎育出版社, 1999.
傅國涌 著, ꡔ金庸傳ꡕ, 北京十月文藝出版社, 北京, 2003. 9
紅葦, ꡔ體驗江湖ꡕ, 上海三聯書店, 2000. 6.
胡文彬 主編, ꡔ中國武俠小說辭典ꡕ, 花山文藝出版社, 石家庄, 1992
江蘇省社會科學院明淸小說硏究中心 文學硏究所 編 ꡔ中國通俗小說總目提要ꡕ 中國
文聯出版公司 1990. 2.
金庸․池田大作, ꡔ探求一個燦爛的世紀-金庸․池田大作對話錄ꡕ, 北京大學出版社,
北京, 1998
金庸․梁羽生․百劍堂主 著, ꡔ三劍樓隨筆ꡕ, 學林出版社, 上海, 1997`
孔慶東, 王偉華 編, ꡔ金庸俠語ꡕ, 岳麓書社, 長沙, 2000. 7
梁秉鈞 編, ꡔ香港的流行文化ꡕ, 三聯書店(香港)有限公司, 1997년판
梁守中, ꡔ武俠小說話古今ꡕ, 中華書局(香港), 江蘇古籍出版社, 1992.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참고문헌 187
廖可斌 編, ꡔ金庸小說論爭集ꡕ, 浙江大學出版社, 杭州, 2000
劉禾 著, 宋偉杰 等 譯, ꡔ跨語際實踐-文學, 民族文化與被譯介的現代性ꡕ, 三聯書店,
2002
劉若愚 著, 周淸霖, 唐發鐃 譯, ꡔ中國之俠ꡕ, 上海三聯書店, 1991,
劉紹明, 陳英明 編, ꡔ武俠小說論ꡕ, 明河社出版有限公司, 1998. 5.
盧敦基, ꡔ金庸小說論ꡕ, 浙江文藝出版社, 2000. 6.
羅立群, ꡔ談劍錄ꡕ, 百家出版社, 2001. 5.
羅立群, ꡔ中國武俠小說史ꡕ 遼寧人民出版社 1990. 10.
齊裕焜, ꡔ中國古代小說演變史ꡕ 敦煌文藝出版社 1990. 9.
錢理群, 「金庸的出現引起的文學史思考」, ꡔ名人名家讀金庸ꡕ, 上海書店出版社, 2000. 8.
p 19.
秦寶琦, 譚松林 著, ꡔ中國秘密社會ꡕ 第1卷, 福建人民出版社, 2002. 10
宋偉杰, ꡔ從娛樂行爲到烏托邦衝動-金庸小說再解讀ꡕ, 江蘇人民出版社, 1999. 9
唐小兵 編, ꡔ再解讀-大衆文藝與意識形態ꡕ, 牛津大學出版社, 1993
王彬彬, ꡔ文壇三戶: 金庸․王朔․余秋雨ꡕ, 大象出版社, 2001. 12
王德威, ꡔ想像中國的方法ꡕ, 三聯書店, 1998. 9
王海林, ꡔ中國武俠小說史略ꡕ, 北岳文藝出版社, 1988
王宏志․李小良․陳淸僑, ꡔ否想香港-歷史․文化․未來ꡕ, 麥田出版, 1997.
王敬三 編, ꡔ名人名家讀金庸ꡕ, 上海書店出版社, 2000.
王敬三 編, ꡔ閱讀金庸世界ꡕ, 上海書店出版社, 2000. 8.
王立, ꡔ偉大的同情--俠文學的主題史硏究ꡕ, 學林出版社, 1999. 2.
王曉明 編, ꡔ20世紀中國文學史論 第1卷ꡕ, 東方出版中心, 1997
王曉明 主編, ꡔ在新意識形態的籠罩下ꡕ, 江蘇人民出版社, 2000. 10
王岳川 著, ꡔ中國鏡像-90年代文化硏究ꡕ, 中央編譯出版社, 北京, 2001
魏紹昌 編, ꡔ鴛鴦蝴蝶派硏究資料ꡕ 上, 上海文藝出版社, 1984
吳昊, ꡔ香港電影民俗學ꡕ, 次文化堂, 1993. 7
徐斯年, ꡔ俠的蹤迹ꡕ, 人民文學出版社, 1995. 12.
嚴家炎, ꡔ金庸小說論稿ꡕ, 北京大學出版社 1999. 1.
閻大衛 著, ꡔ班門弄斧ꡕ, 海天出版社, 深圳, 1998
葉洪生 著, ꡔ≪蜀山劍俠傳≫探秘ꡕ, 學林出版社, 2002. 2
葉洪生, ꡔ論劍 -- 武俠小說談藝錄ꡕ 學林出版社 1997. 1.
袁良駿, ꡔ武俠小說指掌圖ꡕ, 新華出版社, 2003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88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袁良駿, ꡔ香港小說史ꡕ 第1卷 海天出版社 1999.3
張贛生, ꡔ民國通俗小說論稿ꡕ 重慶出版社 1991. 5.
張圭陽 著, ꡔ金庸與報業ꡕ, 明報出版社, 香港, 2000. 6
張偉雄 編, ꡔ江湖未定ꡕ, 2002. 7
趙希方, ꡔ小說香港ꡕ, 三聯書店, 2003. 5
趙遐秋 曾慶瑞, ꡔ中國現代小說史ꡕ 中國人民大學出版社 1985. 7.
鄭樹森 編, ꡔ文化批評與華語電影ꡕ, 廣西師範大學出版社, 2003. 10.
鄭文龍 編, ꡔ杜維明學術文化隨筆ꡕ, 中國靑年出版社, 北京, 1999. 1
芮和師, 范伯群 등 編, ꡔ鴛鴦蝴蝶派文學資料ꡕ 上, 福建人民出版社, 1984.
覃賢茂 編著, ꡔ金庸武俠小說鑑賞寶典ꡕ, 四川人民出版社, 2001
【 영 문 】
Hayden White, The Content of the Form,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7
James J. Y. Liu, The Chinese Knight-errant,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7
John G. Cawelti, The Six-Gun Mystique, Second Edition, Bowling Green State
University Popular Press, 1984
Laura Mulvey, Visual and Other Pleasures, Indiana Unversity Press, 1989
Paul Ricoeur, Lectures on Ideology and Utopia,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6
Prasenjit Duara, Rescuing History from the Nati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and London, 1995
Ray Chow, Woman and Chinese Modernity: The Politics of Reading between West
and East, Minnesota: Minnesota University Press, 1990.
Terry Eagleton Edited, Ideology, Longman, 1994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中文摘要 189
中文摘要
武俠小說自80年代以來在中國大陸重新得以介紹,受到了讀者的極大歡迎。讀者的熱烈反
應和文學觀念的變化,使學術界開始提出硏究武俠小說的必要性問題,由此武俠小說正式成
爲了文學硏究的對象。金庸的武俠小說被公認爲武俠里最出類拔萃的作品,文學硏究者們提
倡硏究武俠小說的必要性,正是因爲有金庸的武俠小說。
因此,中國的武俠小說硏究和金庸小說硏究,大部分傾重于文學的价値和成就。嚴家炎、
錢理群、陳平原、陳墨等人,肯定了金庸小說取得的文學成就。袁良駿、王彬彬等人,則對
金庸的小說堅持否定的立場。他們圍繞金庸小說形成的對立,似乎很難找到走向合解的方向,
這是因爲雙方的文學觀念相左。雖然難以取得共同的結論,但從文學層面來看,他們的論述
對金庸小說的優点和缺点都進行了比較詳細的整理。筆者認爲,從文學觀念出發論述金庸的
小說,已經很難再增加新的硏究內容,因此嘗試改變對金庸小說的硏究角度。
筆者通過本文想要整理金庸小說與中國人的關系,對于中國人來說武俠小說的意義究竟是
什么,中國人通過武俠小說究竟在享有什么。依筆者看來,武俠小說是近代以后中國人的自
我想象行爲。中國人通過武俠小說想象出過去的中國,在這一想象過程中,中國人能夠克服
(或忘却)近代以來因經曆挫折而導致的精神創傷,同時能夠記起中國人分裂爲大陸人、香
港人、台灣人、海外華僑之前的自我身份。筆者認爲金庸的小說描繪了中國人想象中的中國
形象的精髓,幷且對中國人的自我想象和身份記憶産生了非常大的影響,所以嘗試以金庸的
小說爲中心,考察類似的內容。
武俠小說通過江湖和俠來想象中國。卽,江湖和俠在武俠小說的中國想象中發揮了最核心
的作用。然而有一点需要注意,武俠小說中的江湖和俠本身就是想象出來的。考察江湖和俠
的淵源,它們都是具體實體的象征物。但是,它們同詩歌、小說、戱劇等相結合,具有了超
越本來意義的新的意義,重新誕生爲文學的想象。武俠小說通過這種文學想象中的江湖和俠
來想象中國。然而,江湖和俠雖然只是文學的想象物,却常常實際存在着。武俠小說想象出
的中國形象,雖然其實質是假想和虛構的,却發揮了能夠代替實際曆史的威力,正是源于人
們確信江湖和俠實際存在過的信念。這一想象的中國,以相信江湖和俠實際存在過的信念爲
基礎,發揮出几乎能夠代替中國曆史的威力。
筆者把金庸對中國的想象分爲江湖和俠進行考察。在這里,江湖是金庸武俠小說的世界,
俠意味着金庸武俠小說的主體。金庸的江湖的中心是曆史、愛情和傳統文化的結合。金庸的
中國想象,其中心部分通過曆史來實現。金庸集中描寫了漢族和異族的對立和斗爭。他通過
Copyright(c)2002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All rights reserved.(http://library.snu.ac.kr)
190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
曆史的江湖化和江湖的曆史化,把他的江湖變爲能夠代替過去中國的世界。不過,通過金庸
的曆史完成的中國想象,幷未取得樂觀的結果。從實際曆史出發開始講述故事的金庸,雖然
想重新回到實際曆史來結束故事,但是他返回的曆史里,自己想通過寫作武俠小說來解決的
問題仍然處于沒有解決的狀態。卽,他陷入了曆史想象的困境。
爲了從這種困境中掙脫出來,他企圖以女性和傳統文化的獲得來實現。金庸的小說里,女
性往往以聖女/惡女/惡女→聖女三種形象登場。金庸利用崇拜或犧牲、懲罰或原諒這些女性
的方式,把她們納入男性的秩序里。通過對女性的捕獲,金庸把自己的江湖扮成陽剛中國的
表象,因此能夠克服爲了遭受帝國主義的閹割而産生的痛苦。
另外,金庸充分運用中國傳統文化,把自己的江湖想象爲文化中國。傳統文化使金庸的江
湖更具審美化、倫理化、神秘化,便之轉變成一个文化空間。另外,金庸運用傳統文化內含
秘儀性的,刻畫出稱爲中國人的主體。如果說實際曆史是挫折和失敗的曆史,金庸想象出來
的文化中國增加了中國人的心理優越感,幷以此爲基礎,發揮出讓中國人記起炎黃子孫這一
身份的作用。
另一方面,金庸通過可以稱爲金庸武俠小說之主體的俠客,構成了想象的中國的主體。這
一点主要表現在金庸小說中俠客的性格變化上。卽,在金庸的早期作品里,俠客是旣往江湖
秩序和理念的守護者和繼承者;越往后的作品,這一特征越弱化,俠客逐漸轉變爲江湖秩序
和理念的批判者,或者是新秩序和理念的代言人。他們懷疑父輩的理念和秩序,站在非主流
和現代性的立場上重新改寫江湖。卽,他們從漢族的俠轉變爲中國的俠,≪鹿鼎記≫里的韋小
寶卽是一个以中國的俠登場的人物。通過把自己的俠客改爲國民的俠,金庸完成了自己的中
國想象,這一点意味着他能夠回避以漢族爲中心的曆史想象時,遇到的曆史想象的困境。同
時意味着金庸眞正回到了武俠小說這一體裁的中國想象。金庸把≪鹿鼎記≫作爲自己的封筆之
作,不再創作武俠小說,也是因爲他通過≪鹿鼎記≫實現了中國想象。
金庸的武俠小說想象了陽剛中國、文化中國、中國之俠,爲中國人提供了能夠代替近代以
來飽受挫折的曆史的自我形象,使他們記起足以把分裂的自我身份統合起來的本來的身份。
如上所述,金庸小說的成就和价値,超越了中國人在文學層面上認識到的成就和价値。
關鍵詞: 金庸, 武俠小說, 江湖, 俠, 俠客, 陽剛中國, 文化中國, 書劍恩仇錄, 碧血劍, 射
鵰英雄傳, 神鵰俠侶, 倚天屠龍記, 天龍八部, 笑傲江湖, 鹿鼎記, 韋小寶
學 號: 98102-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