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의 對話/목본(자)

작살나무

초암 정만순 2017. 8. 8. 17:26



작살나무


다른 표기 언어 Japanese Beautyberry , 紫珠 , ムラサキシキブ紫式部



요약 테이블
분류 마편초과
학명Callicarpa japonica

        

가을의 초입부터 낙엽이 뒹구는 늦가을까지 우리 산 가장자리에는 귀여운 보라색 구슬을 송골송골 매달고 있는 자그마한 나무가 눈길을 끈다.

고운 자수정 빛깔을 그대로 쏙 빼닮은, 대자연이라는 장인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조각품의 극치다.

가을 산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작살나무 열매가 바로 이들이다.

작살나무는 원래 습기가 많은 개울가에서 올망졸망한 크기의 다른 나무들과 사이좋게 살아간다.

그는 주위의 키다리 나무들과 햇빛을 받기 위한 키 키우기 무한경쟁에 무모하게 뛰어들지 않는다.

큰 나무들이 위로 올라가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아래 공간을 ‘틈새시장’으로 활용한다.

우선 알차게 이리저리 가지 뻗음을 해두고 나름대로의 방식에 따라 살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적게 들어오는 햇빛으로 광합성 효율을 높이는 기술은 비정한 식물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그만의 노하우다.

괜스레 덩치만 키웠다가는 실속도 못 차리고, 주위 나무들로부터 견제만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작살나무는 봄에서부터 여름까지 아름다운 가을 열매를 만들기 위하여 조용히 준비를 한다.

이 시기에는 엇비슷한 이웃나무들과 푸름에 섞여서 전혀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다. 전문가의 눈이 아니면 찾아낼 수도 없다.

 숲속의 초록빛이 한층 짙어진 한여름의 어느 날, 비로소 작살나무는 잎겨드랑이에 연보랏빛의 깨알 같은 꽃들을 살포시 내민다. 나무나라의 쓸 만한 백성이 여기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첫 신호다.

그러나 꽃이 너무 작아서 벌이나 나비들에게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어서 열리는 좁쌀 크기의 열매가 익어 가는 가을과 함께 차츰 연보랏빛으로 변신하면서 숨겨둔 아름다움을 조금씩 내보인다.


가을이 완전히 깊어지면 지름 2~5밀리미터의 동그란 열매로 성숙한다.

 ‘올챙이 시절’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자수정 구슬로 장식한 아름다운 작살나무 미인을 비로소 사람들이 알아준다.

열매는 혼자가 아니라 가녀린 가지가 휘어질 듯 수십 개씩 옹기종기 붙어 있다.

여름 끝 무렵에 열리기 시작하여 낙엽이 진 앙상한 가지에 삭풍이 휘몰아쳐 나뭇가지를 온통 훑어버릴 때까지 열매가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는 것도 작살나무의 자랑거리다.

하늘이 더욱 높아진 맑은 가을날 햇빛에 반사되는 작살나무의 보랏빛 열매는 우리나라 특유의 코발트 빛 가을 하늘과의 어울림이 환상이다.

중국 사람들은 작살나무 열매의 아름다움을 보라 구슬, 즉 ‘자주(紫珠)’라 했다.

반면 일본 이름은 ‘무라사키시키부(紫式部)’다.

《겐지이야기(源氏物語)》각주1) 라는 그들의 유명한 고전 소설의 저자와 같은 이름이다. 불과 25살에 과부가 된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인, 일본인들이 아끼고 사랑해 마지않는 그녀의 이름을 작살나무에 그대로 붙인 것이다. 그

만큼 작살나무 열매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랏빛 아름다움과 썩 잘 어울리는 낭만적인 이름이다.

그러나 같은 나무를 두고 우리만 ‘작살’이라는 조금은 삭막한 이름으로 부른다.

무슨 일이 잘못되어 아주 결딴나거나 형편없이 깨지고 부서질 때 우리는 흔히 ‘작살난다’라고 말한다.

작살나무의 가지는 정확하게 서로 마주나기로 달리고 중심 가지와의 벌어진 각도가 60~70도 정도로 약간 넓은 고기잡이용 작살과 모양이 닮았다.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작살나무는 다 자라도 사람 키를 조금 넘는 정도의 작은 나무이며, 대체로 줄기는 길게 늘어진다. 좋아하는 자람 터는 습기가 많은 구석진 곳이지만, 조금 메마른 땅에 심어도 운명처럼 적응하며 잘 자란다.

조그만 정원이라도 가진 분들이라면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작살나무 한 그루를 심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을에 씨를 따서 땅에 묻어두었다가 봄에 심으면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

작살나무는 좀작살나무와 새비나무를 포함하여 세 종류가 우리나라에 자란다.

서로 비슷하게 생겼으며 작살나무는 열매의 지름이 4~5밀리미터 정도로 다른 작살나무 종류에 비하여 좀 굵은 편이다.

좀작살나무는 잎의 가장자리 절반 이상에만 톱니가 있고, 열매는 ‘좀’ 자가 붙은 것처럼 지름이 2~3밀리미터 정도로 작살나무보다 훨씬 작다.

우리 주위에 흔히 심은 것은 열매가 더 앙증맞은 좀작살나무다.

새비나무는 작살나무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으나, 잎 표면에 털이 있고 주로 남해안의 섬 지방에서만 자란다.

이들 외에 열매가 우윳빛인 흰작살나무도 원예품종으로 개발되어 심고 있으나, 작살나무는 역시 보라 구슬을 달고 있어야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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