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암침법4- 장부경락 허실
■ 장부와 경락의 허실(1) ■
사암침법이 장부 또는 경락의 허실에 입각하여 이를 조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격과 승격을 운용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암침법(또는 침구학)이 모델로 삼는 장부나 경락의 허실 개념은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많습니다.
腎正格을 운용한다면 그 대상이 되는 것이 腎虛인지 足少陰經의 虛함인지, 그리고 腎虛와 足少陰經의 虛함이 임상적으로 일치하는 개념인지 각각 독립된 개념인지, 그리고 만약 이들이 각각 구분되는 개념이라면 무엇을 근거로 구분하며 진단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일단 한의학의 허실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素問·通評虛實論』에서 제시한 “邪氣盛則實, 精氣奪則虛”라는 명제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에 의하면 개략적으로 虛는 精氣(正氣)가 허탈되거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精氣(正氣)란 인체의 생리적 기능과 항상성을 정상적으로 유지시키는 기운이라는 광범위한 의미로서 선·후천적 의미를 모두 포괄하므로 精血의 기능이 이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外邪에 대한 방어적 기능을 발휘하는 衛氣의 기능과 연관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병증으로서 허증은 精氣(正氣)의 부족이나 기능 부전에서 발현되는 병증을 의미합니다.
實은 邪氣가 충실하거나 과잉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원래 邪氣란 병증을 유발하는 구체적인 인자로서 외감의 주요 요인인 風寒暑濕燥火의 六淫을 지칭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외감만을 전제로 한 개념이 아니며 내상에 의해서도 유발될 수 있습니다.
즉 邪氣란 광범위하게 말하자면 ‘不正之氣’로서 인체의 정상적 생리 활동을 비정상적으로 전환시키는 삿된 기운을 통칭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邪氣란 개념적으로 고정된 의미가 아니며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실체적 개념을 전제하지도 않습니다. 정상적 생리상태의 氣血水가 변조되어 병리적 상황을 유발시키는 것을 邪氣로 이해하는 것이 실증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적절합니다.
그러므로 실증이란 不正之氣인 邪氣에 의해 내외적으로 精氣(正氣)의 정상적 운행이 저해되거나 왜곡된 상태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유형의 積이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邪氣所湊, 其氣必虛”, “邪之所在, 皆爲不足”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의학에서는 邪氣의 유래가 내적이든 외적이든 간에 결국 精氣의 허약을 틈타 병을 일으키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邪氣의 존재가 반드시 실증을 전제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한의학적 치료의 궁극적 목표는 일방적으로 邪氣를 내모는 것이 아니라 精氣(正氣)를 회복하여 체내 항상성 조절 기능[神]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이로 보아 원초적으로 虛와 實은 精氣(正氣)와 邪氣의 성쇠 여부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병증의 발현 양태인 증후로서의 허실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의 증후를 의미하는 虛證과 實證이라는 개념에서 虛와 實의 의미는 발현되는 증의 양상이 허하다거나 실하다는 의미로 이해해야지, 이를 체력이나 기력이 건실하다거나 부실하다는 식으로 이해해 버리면 곤란합니다.
어떠한 질병이든 간에 병은 精氣(正氣)와 邪氣의 대립 양상으로 표출되는데 일반적으로 이러한 표출의 반응이 현저하고 강렬하면 實證으로, 이와 반대라면 虛證으로 규정되는 것일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衛氣의 활동에 의한 正邪투쟁의 결과 병증의 양상이 극렬하게 나타나면 실증으로 규정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환자의 기력이 저하되었다 하더라도 유형의 積이 존재하고 이를 구축시켜야 한다면 이 상황을 實로 규정하고 치료해야할 경우가 있습니다.
고열이 지속되어 탈수에 이른 상태에서 대변이 굳어 통하지 않는 大承氣湯證의 예를 들어보자면 이 환자는 ‘壯火食氣’하여 체력이 바닥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환자에게 실증을 다스리는 大承氣湯이라는 약물을 투여할 수 있는 근거는 燥矢라는 유형의 積邪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일단 燥矢가 빠져나가야 환자의 精氣와 진액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죠.
결국 “邪氣所湊, 其氣必虛”라 하였듯이 증후로서 허실이란 고정적 개념이 아니며 가변적인 양태로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실제 임상에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虛實이 협잡되어 나타나거나, 실제 病情의 허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타나는 일이 허다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근거로 허하면 보하고 실하면 사한다는 원칙을 적용해야 할 것인지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精氣(正氣)를 중심으로 보는 한국의학사의 관점에서는 병증이 허에서 기인한 것으로 파악되는 경우가 많지만 萬病一毒說에 근거한 의론이 주를 이루었던 일본의학사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邪氣(毒)에 의해 조장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파악되었던 거죠.
■ 장부와 경락의 허실(2) ■
경락내에서 氣와 血의 추동은 宗氣에 의해 비롯되기 때문에 경락의 허실은 원초적으로 경락을 통해 흐르는 유동체인 血氣(血을 동반한 氣)의 유여나 부족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경맥이 虛하다는 것은 ‘氣不足’이라 표현되는데 이는 經氣 자체의 본태적 쇠약이나 그와 연계되는 장부의 허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맥이 實하다는 것은 ‘氣盛有餘’라 표현되는데 이는 경맥에 비정상적으로 血氣가 유여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주로 항진적 병증 반응을 의미하며 병태상 음양의 偏勝으로 표출됩니다.
한편 음양의 편승 자체가 邪氣이므로 병태상으로 경맥이 실하다는 것이 반드시 ‘感’을 전제하지는 않으며 邪氣 자체는 유무형의 성상을 모두 포괄합니다.
즉 경맥이 실하다는 것은 血氣나 水氣의 정상적 소통을 저해하는 유형의 邪가 실체적으로 존재함을 의미하기도 하고 병증의 상황에서 血氣의 불통으로 인한 울체 반응이 특정 병소나 병위에서 항진적으로 나타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經氣의 허실 징후는 맥을 통해 반영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맥진의 징후 자체가 경맥의 허실과 동일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특히 標本論상 사지 원위부인 本部나 주로 경맥의 原穴부위에 해당하는 脈口를 통해 脈盛하거나 脈虛한 것으로 표출되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人迎과 氣口의 상하 맥상이 맥폭상 상응하지 않는 것으로도 파악되었습니다.
따라서 침을 놓아 경맥의 허실을 조절한다는 것은 단순히 허실의 병후를 호전시킨다는데 국한되지 않고 병증으로 인해 유발된 맥상의 이상 변화가 정상화되도록 기술적으로 유도한다는 것에 이릅니다.
이것이 ‘得氣’하여 “氣至而有效”한다는 것이고 침구 치료가 노리는 구체적 효과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경맥의 허함은 장부에서 유래하기 쉬우므로 장부의 허쇠시 그 징후가 경맥을 통해 반영됩니다.
특히 陰分의 五臟에 저장된 精氣가 허탈하게 되면 해당 경맥으로 흐르는 기혈이 허쇠해지거나 부족해져 경맥의 기능적 약화를 초래하게 되므로 이 경우 五臟과 해당 경맥의 허증 징후는 일반적으로 일치합니다.
하지만 五臟이 허한 것과 경맥이 허한 것은 개념상 구분되어야 합니다. 五臟이 허하다 할 때 그 대상은 五臟에 저장된 精氣지만 경맥이 허하다 할 때 그 대상은 경맥안을 흐르는 血氣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五臟에 저장된 精氣가 허탈하게 되면 당연히 해당 경맥이 허하게 되지만 경맥의 허함이 반드시 五臟에 저장된 精氣의 허탈에 의해 초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陰分의 五臟이 극도로 허쇠하고 精脫한 상황일 경우 침술은 적절한 치법이 될 수 없습니다.
침술은 아무리 보법을 운용하더라도 그것이 허한 경맥에 血氣의 운행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해당 五臟을 기능적으로 정상화시키는 것이지 직접 精을 보충시켜줄 수 있는 수단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陰精의 휴손이 심한 상태에서 침술을 통해 기혈의 소통을 유도한다면 오히려 脫氣와 脫精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때는 침이 아닌 약물을 통해 補精을 유도하고 뜸을 통해 완만하게 기혈의 소통을 유도하는 것이 적절한 대응이 되는 것이죠.
사암침법에서는 경맥이나 장부의 허증에 기본적으로 정격을 운용합니다.
『經濟要訣』의 서문에서 저자가 “病者, 虛也”라는 표현을 통해 병이란 기본적으로 精(正)氣의 허함에서 비롯된다는 전제의 병리관을 내세우고서 경맥을 통해 이를 다스리는 수단으로 정격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정격의 의미는 해당 경맥이나 그와 연계되는 장부의 精(正)氣를 보충시킨다는 뜻으로 통용됩니다.
그러나 『經濟要訣』에서 “정격을 사용하는 것은 禮樂刑政과 같다”고 하였듯이 정격에서 ‘正’의 의미를 말 그대로 바르게 해준다는 의미로도 해석해 보자면 정격이란 경맥과 연계되는 장부가 지닌 본태적 생리를 정상화시키는 방법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肺正格이 지향하는 바가 肺의 정상적 생리 상태라는 것이고 역으로 肺正格의 구성을 통해 肺의 정상적 생리 구조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격과 달리 승격은 일반적으로 경맥이나 장부가 실한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목표로 운용됩니다.
그러나 승격의 의미를 특정 경락에 침습한 邪氣를 사한다는 식으로 邪氣의 존재를 실체적으로 전제하여 이해하면 운용 범위를 협소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 의미마저 매우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경락이나 장부의 精(正)氣가 허하여 邪氣가 침습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일차적으로 扶正祛邪의 차원에서 정격을 운용하기 때문입니다.
승격이 대상으로 하는 실증이란 주로 특정 경맥이나 장부, 그리고 병위로 血氣나 水氣가 비정상적으로 변조되어 과잉화된 상황에 해당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경락이나 장부의 정상적 생리 기능은 과부하에 걸린 상태로 이르게 되는 것이고 이 상황이 심하거나 장기화되는 경우 精(正)氣는 당연히 약화되고 손상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勝’의 의미는 이러한 상황에서 음양적 속성으로 偏勝하게 표출되는 血氣나 水氣의 과잉을 직접 다스리고 제어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결국 승격의 시술은 특정 경맥이나 장부에 대한 과부하 상태를 해소하여 精(正)氣의 소모와 약화를 막으며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경맥과 장부의 정상 생리가 복구되도록 유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鍼灸 小考 > 사암오행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암침법 6 - 송혈과 수혈 (0) | 2017.07.03 |
---|---|
사암침법 5 - 오수혈 (0) | 2017.07.03 |
사암침법 2 - 3양3음 (0) | 2017.07.02 |
사암침 강좌 1- 서론 (0) | 2017.06.30 |
천부혈 보사 (0) | 2017.03.19 |